곧 3년차 직장인이 되는 2년차 직장인. 곧 만으로 29살이 되는데
이런 잔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매일 매일 여기저기에 화를 내고 있다.

문득 어느날 밤의 일이 생각났다. 그날, 나는 여자아이와 밤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그래 T라고 하자. 여기서 여자아이의 이름이 그리 중요한게 아니니까. 
10월의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던 T와 나는, 전쟁터에 버려진 오누이라도 되는 양 꼭 붙어서 거리를 걸었다.

그 날 밤 종로 거리에는, 바람보다 더 적은 사람들이 있었고. 커다란 동물들 처럼 버스가 천천히 다가오고 빠르게 사라졌다.
내 품에 파고들어 바람을 피하던 T는 조금 걸어요. 라고 말했다.

버거킹 앞 사거리에는 땅 바닥에 앉아 통곡하는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여자 아이는 남자아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완전히 길바닥에 주저 앉았고, 남자아이는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질리지도 않고 여자아이를 위로했다. 버거킹에서 새나오는 빛보다 밝은 것은 거리에 없었으니, 내가 그 여자아이라도 울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T는 몇번이나 뒤돌아 보면서 괜찮을까 저 아이. 라고 말했다.

인사동 앞 거리에는 택시들이 잔뜩 나와 서로 코를 부비고. 어깨를 부닥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길 기다리는 T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손을 붙잡고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거웠을 것이고. 생각을 하는 T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겁이 났던 것이다.
나에게 T는 완벽한 미지의 존재이고.그 아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두려웠다.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었고. 이 모든 밤거리와 잡고 있는 손도 모두 어떠한 계절에만 꿀 수 있는 꿈같은 것이었다.

인사동에는 아무도 없었다. T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바람을 참아가며 찻집을 찾던 T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그 거리에서 나에게 내 남자친구 할래요? 라고 물었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눈에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아직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데, T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숨처럼 그렇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해의 10월 15일의 일.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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