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을 샀다. 정확히는 2년 후에 지어질 집의 계약을 했다.

34평짜리 아파트고 4층에 1년 후에 집에서 가까운 곳에 신분당선이 지나가는 좋은 입지다.

지금도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통합 버스 정류장이 있다. 회사의 차장님은, 니네 집 때문에 

내 단골 아구찜 집이 없어졌어 하고 말했다. 

그거 말고 아직 내가 산 집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끔 생각이 나면 혼자 가서 찍은 모델 하우스의 사진을 보거나 평면도를 쳐다 보거나 한다. 

곧 팔아버릴 집이란 걸 - 내가 여기서 살 일은 없을텐데 - 알면서도.


갑자기 집을 살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작년부터 그 동네에 아파트가 생긴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Y에게 몇번 모델 하우스가 생기면 같이 가고 싶다는 얘길 한 적도 있다. 다만, 겨울이 지나갈 때 쯤 아무 것도 생각을 할 수 없을 때 서울의 W지구에 청약 분양을 하는데 해보지 않을래? 라고 친구 L이 말 할 때 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거기에 그런게 있었지 하고 확인해보니

바로 다음날이 청약을 신청하는 날이었다.


Y는 겨울 한가운데 쯤,나와 그만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Y와 나는 3년 반 쯤 알고 지냈지만, 나는 Y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작별인사를 들어야했다.


나는 요즘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지내고 있다. 한참을 생각해야 내가 무슨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회사의 내 자리에 앉아 W지구의 C아파트와 S지구의 E아파트에 대한 설명을 꼼꼼히 읽었다. 둘의 청약일정이 겹치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 밖에 신청 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C의 2차 일정과 E의 일정이 겹쳤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E지구를 신청한 걸까.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되는게 더 웃기겠어.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돈도, 가족도 없는데 말야. 그리고 심지어 하고 싶은 것도 없어. 하고 L에게 얘기했다.

L이 뭐라고 했더라.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빠르게 잊고 만다. 모든게 믿겨지지 않는 꿈 같다.


L과 중국집에서 만두를 먹으면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L은 지방에 파견 나가있는 배우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나는 새우가 들어있는 딤섬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그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언제 내려가서 그를 만날건지. 언제 그가 서울에 다시 올라올건지에 대해서 얘길 듣고 

내가 한 말을 그거였던 것 같다. 새우가 들어가면 샤오롱바오라고 부르면 안되는거 아냐?

응? 샤우롱바오야?


청약 당첨 문자가 왔을 때는 화가 났다. S지구의 E아파트였다.

아주 당연하게 나는 지금도 S지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W지구보다 당첨확률이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경쟁률이 충분히 높았기 때문에, 나는 이게 운명의 장난 같은건가 하고 생각했다.

왜? 나는 돈도 가족도 없어.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나는 같이 하고 싶은 사람도 없어. 

나는 새우가 들어간 딤섬에 대해서나 바보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인데 말야. 나말고 더 필요한 사람이 있는거 아냐?


그거 슈마이라고 하지. 작년 내 생일에 먹었었어. 하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새우가 들어간 딤섬을 먹었어. 그 때는 아직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너무 먼 전생 같아.

나는 15년 3월 15일 쯤 죽어서 전생의 일들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아.


계약일 쯤 되어서야. 그 전생에서 나는 가족을 갖고 싶다는 걸 기억해냈다.

인감도장이 필요했고(지금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 인감증명서와 계약금 4천 몇백만원이 필요했다.

나는 무이자로 중도금을 낼 것이고 17년에 잔금 1억 얼마를 내면 정말로 내 집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그 전에 누군가에게 내 집을 갖게 될 권리를 양도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한다.

왜냐하면 가족을 갖는 것은 14살때 이후로 내 유일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란 걸 깨달은 그 날부터. 내 알량한 재능이나 장래 희망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이 가족을 갖는 것만이 내 유일한 꿈이었다.

그러니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제 꿈을 사셨네요. 

당신은 분명 가족이 있는 사람이겠죠.


계약을 마치고 모델 하우스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이제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 가족이 올라와 시끄럽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방을 쓸거야, 여기 TV는 더 큰게 낫지 않아? 나는 원래부터 모델 하우스의 부속품이었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 그 가족이 지나치길 기다렸다.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L은 괜찮아.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라고 말했다. 정말 그런 걸까

모델 하우스를 나오니 비가 내렸다. 나는 여전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가방에 들어가있는 우산을 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주 조금 우는 척을 하고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비가 내리는 길을 걸어갔다. 4월 13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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