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1월 어떤 기사가 올라왔다. 시부야역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사망한 중년여성에 대한 기사로, 사인은 외상에 의한 지주막하출혈 - 뇌출혈의 일종이라고 담담하게 적고 있다. 뒷통수를 둔기로 가격당해 죽은 것이다.

며칠 뒤 확인된 사건의 개요는 간단했다. 죽음의 현장이었던 곳은 버스 정류장의 벤치로, 차가 끊기고 시작하는 그 짧은 심야 시간에 버스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했던 64세의 노숙인 오오바야시 미사코씨를 마음에 들지 않아한 한 남성이(그는 현장 근처에서 살고 있는 주민으로 알려져있다) 그를 돌을 넣은 페트병으로 가격하여 - 그 남성은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하였으나 - 살해한 것이다.

단신으로 처리 될지도 모르는 기사에 특이한 점이 있었던 걸까? 통행인이 많은 시부야 역의 일각에서 일어난 그 죽음의 무참함 때문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신이 발견되었을 당시 그에 대해 신분을 증명 할 만한 것들이 없어서 최초 신원 불상으로 발표되었던 이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신의 신분이 밝혀지게 되었고 범인은 그 후 일주일도 안되어 체포되었다.

내가 읽었던 기사는 범인이 체포된 시점의 기사로. 거기에는 가해자에 대한 긴 설명과 말도 안되는 변명도 같이 적혀 있었으나, 나는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지 않기에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가지 매체에서 찾아 퍼즐을 맞추듯이 알아내었다. 피해자 오오바야시 미사코씨는 노숙인으로 시부야 근처의 사람들에게도 안면이 알려져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사람을 피하는 노숙자치고도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극히 꺼렸는데 노숙 생활을 한 것은 올 11월을 꽉 채워서 생각해도 9개월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히키코모리로 살면서 평생 거의 일을 하지 않았던 가해자와는 달리 30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 된다. 

그는 20년 초 까지는 도내의 아파트에 혼자 살 고 있어 주거지가 안정되어 있었고 올 2월 까지도 파견직으로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주로 시식 업무를 담당하며 살아왔지만 최근 Covid-19의 확산으로 슈퍼마켓에서의 일자리를 잃었으며, 결국 어느 시점에선가 집세를 내지 못해 아파트를 나와 노숙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발표하였다.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노숙을 하고 있으면서도 행색이 깨끗하고 몸가짐이 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보기에는 전혀 노숙인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시부야의 버스 정류장에서도 버스의 막차가 끊기고 첫차가 오기 전의 아주 짧은 시간에만 잠시 쉬어가려는 듯이 벤치 위에 앉아서 쉬기만 하였다고 하며 누워서 자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주변의 시민들은 말하고 있다.
또 그가 항상 똑같은 시간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노숙인인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어쩌면 그가 노숙을 시작한 이후 짐을 두고 있는 다른 생활 공간이 있었고 단지 버스 정류장의 벤치는 밤을 잠시 피할 피난처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찰이 그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3일이 걸렸다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는 대해 결혼을 한 적이 없으며, 아이를 낳은 적도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꼭 그가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이었다는 듯 한 설명이었다. 죽음의 순간, 오오바야시 미사코씨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은 8엔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일본의 매체들이 8엔의 무상함과 비참함을 표현하려는 듯이 기사의 제목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보도된 후 시민들이 시부야에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우리가 그 일 수도 있다고 시위를 했으며 그 모인 숫자가 1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제목에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몇개월이 지났다. 그의 죽음 이후 나는 계속해서 NHK 등 주요 언론매체에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왔지만 12월 이후 더 이상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 이후로 일본사회에 무엇인가 바뀌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사회의 병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떠한 분열과 개인의 파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더 이상 그 기반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소 사업체는 무너져가고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온다. 투입한 자본을 돌려받지 못해 계속해서 무너져가는 사업체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쪽 켠에선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온 기술과 숙련을 인정받지 못하고 비숙련 노동자로서 불완전한 고용상태에 몰리고 있다. 그들을, 아니 우리를 지탱해줄 그물은 어디에도 없고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일자리를 잃은 것이 우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눈짓을 몰래 보낸다.

 

여기 숫자가 또 몇 개 있다.

옥스팜은 20년 4월 Covid-19으로 인해 전체 소득이 최고 20% 감소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며 이 경우 극빈층은 전세계적으로 4억 3천5백만명이 늘어 총 9억 2천 2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고, 월드 뱅크는 20년 10월 극빈층이 7억 3천만명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월드 뱅크는 덧붙여서 이전까지 극빈층은 저학력의 농업 종사자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기본 학력을 갖춘 도시 노동자들 사이에서 극빈층이 늘어나고 있음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하였다.
같은 날 발표 된 미국의 재산 분석 전문기관 웰스엑스는 순자산 3천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전세계 갑부들의 수가 23만 8천여명에서 28만 여명으로 늘었으며 세계 갑부들이 5개월 동안 늘린 재산은 6조 83백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모든 보고서는 오오바야시씨의 죽음 이전에 발표되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들이 인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부를 쌓은 사람들이 악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왕정에서 왕에 대한 무모하고 절대적인 충성이 죄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추구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 될 수 없다. 때때로 나는 그것이 우리 현재의 유일한 선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한다.
하지만 나는 숫자와 숫자화 된 사람들의 이름들을 떠올리고 이 모든 현상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단일화된 현상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우리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의 세대와 우리의 땅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신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쌓아올린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지운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써내려간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21년 4월의 새벽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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