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저를 열고 닻이라고 검색한다.
이미지 검색 결과에는 우스울 정도로 비슷한 아이콘 이미지들만 가득하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낡고 검고 상처입어서는, 누군가의 몸뚱아리처럼 조용한 닻의 사진이었다. 조금 더 이미지를 스크롤해보다 생각을 달리해서 키워드를 바꿔 검색해본다.
어릴 적 나는 누군가에게 닻이 무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는 일이 좀처럼 없고 제 멋대로 단어의 뜻을 상상해보는 버릇이 있어 상대는 신기한 마음이 들었나보다. 나를 쳐다보며 뜸을 들이더니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잡아주는 무거운 추가 닻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뾰로통해져서는 물었다. 왜 배가 떠내려가면 안되는데? 그러니까 말야 왜 배가 그냥 가버리게 내버려두면 안되는거야?

나는 예전에 꽤 오랫동안 새벽3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났다. 그냥 깨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공포에 질리거나 아니면 울부짖으며 잠에서 깨어났으며. 잠에서 깨어나면 때때로 오열을 했고 가끔은 바로 다시 잠들었으며 대부분 두통약을 삼키고 그대로 누워 해가 뜨길 기다렸다. 다른 사람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두통약이 고통을 잊는데 도움을 줬고 밤에 겪는 고통보다는 살짝 더 견디기 쉬운 소화불량과 가끔 좀 버겁게 느껴지는 위통을 대신 주었다. 나중엔 이틀에 한 번은 두통약을 샀고 결국 나중에는 두통약을 200알 단위로 샀다. 일본 아마존은 가격이 싼 대신 약물 오남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충고도 해주지 않았다.
글쎄 어째서 새벽 3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만났던 연애는 긴 짝사랑에서 이어진 연애였는데. 정작 연애는 길지 않았고 이별 후의 매일은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좋아했는지, 아니 사랑하고 있는지를 되새기는 길고 지루한 과정이었다. 술을 마셨고 아무 약속이나 잡아서 나다니고 금세 우울해져서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들을 듣고 다녔다.
헤어진 뒤 그 사람과는 밥을 먹을 기회가 두번 있었고 몇번인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우리가 운명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집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는데, 어찌됐든 나는 그럴 때 마다 과하게 행복해했다. 어느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심하게 불어 무엇이라도 저 편에서 날아오지 않을까 싶던 날. 언덕에 올라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니 하늘이 맑았고 구름은 가벼워 바람소리와 저 멀리 자동차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내 일부의 어떤 것이, 아주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겨온 어떤 것이 정말로 물질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나를 떠나 휘익—날아가버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뭔가가 차오르는 것을 꾹 참아가며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도처럼 다리를 끌며 집으로 걸어갔고 집에 문을 따고 들어오자마자 문자 그대로 무너져 통곡했다.

그 뒤로 내가 새벽3시에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최소한 그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주 오래 전 일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오랜만에 새벽3시에 잠에서 깼다. 1분도 어기지 않은 그 시간이다. 아직 추분이 되지 못한 한 여름의 하늘도 그 때는 어둡고, 나는 몹시도 혼자여서 무시무시하게 겁을 먹은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잠이 오길 기다렸다.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꼭 몸이 물에 녹아, 남겨진 마음만 돌처럼 가라앉고 잊혀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과 초에 묶인 사람처럼 마음이 답답해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방을 치우고 입으로 소리를 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할 수만 있다면 발을 구르고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나는 나는 여기에 있어. 하고 말이다.

그러던 중 나는 닻의 이미지에 마음이 도달한다. 물 속에 조용히 잠겨서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묶어둔 무겁고 거대한 추. 물은 어둡고 더러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닻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나는 문득 그 닻이 꼭 내 몸뚱이처럼 느껴져서.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묶어둔 것이 따개비가 가득 붙고 녹색 해초들이 치감고 있는 내 몸이 아닐까 싶어져서. 황급히 일어나 거실의 불을 켜고 다시 끈다. 그렇게 하면 내 운명이 나에게로 주의를 돌려 내 목숨을 구해주기라도 할거란 듯이.

나는 그렇게 몇 번 더 새벽3시에 일어났다. 빈도는 점점 늘어나고 아마 곧 나는 매일 매일 그렇게 일어날 것이다. 내 운명은 왜 이렇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일까. 하고 나는 울먹이며 말한다. 그리고 불을 켠다. 다시 끈다. 그리고 다시 켠다.

22년 7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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