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인가, 겨울 나절 아직 봄이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노인과 둘이서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나무는 앙상하니 얼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 오후라 멀리까지 바라보아도 사람 하나 없었다. 

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이었으니 산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발끝을 바라보며 걷던 노인은 익숙치 않은 외국어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은 기도를 하나요?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역시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누구에게요?"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앞서보다 더 천천히 나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나요? 

나는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짧은 말은 모두 필연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지만. 질문을 받은 이상 할 수 있는 최선의 언어로 대답해야하기에 나는 한기처럼 멈춰서서 생각을 했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확한 대답을 찾았다. “저 또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저는 저의 신에게 기도를 합니다. 저의 신은 침묵이며 숨결이고 질서입니다.
그는 중력처럼 연약하고 모든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어떤 때 어느 곳에서 기도를 하더라도 그가 저의 기도를 듣고 있을 거란 걸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때때로 제가 아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제는 모르게 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 정의에 부합하는 행위로 느껴집니다.

저는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말과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란 구절을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게으르지 아니한다면 해야할 바를 성취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은 언젠가 소멸한다는 말 또한 믿습니다.
사랑이 없는 자의 노력 또한 신에게 닿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 마저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젠가 세계의 색이 흘러내리고 그림자가 무게가 되어서도 우리의 말들이 공중에 그대로 남아 우리를 증언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언젠가 살아있었다는 유일한 증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네, 저는 기도를 합니다. 왕국도 도시도 노래도 코끼리도 책도 모두 언젠가 낡아 사라질 것이고. 별보다 이 기도가 오래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노인은, 늙은 외국인 엔지니어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하더니 이윽고 그 질문이 사실 혼잣말이었다는 듯이 기도는 하는 게 좋지요. 누구에게라도 누구를 위해서라도.

나는 몇 년이나 지나서 노인의 말을 떠올리고, 그의 마지막 말 앞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오래 전의 일이었고 그는 이미 은퇴한지 오래라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수가 없다.

나는 그 늙은 엔지니어를 위해 기도를 해보려 노력한다. 그러다 나는 변덕스럽게도 신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이 세상에 누군가 선량한 마음을 지닌 이가 있다면 그 누구보다 외로울것이기에, 누군가 한 명 쯤은 그의 평온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물방울이나, 새가 날개를 휘두르는 소리처럼 기도는 멀리까지 전해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도가 신에게 가서 닿을지는 아직 알수 없다.



19년 1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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