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면서 John Butler Trio의 "Sunrise over sea"에 포함되어 있는 곡 "What you want"를 들었다.

오늘은 16년 6월 14일. 여행기 다섯 번째 까지 써있던 홋카이도 여행은 약 350일 전의 이야기이고. 

두번째 홋카이도 여행은 그저께 끝이 났다. 아름다운 기타리프와 시작되는 이 곡의 단순한 가사는 아래와 같다.


넌 어떤 얘길 하고 싶은거야, 집에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난 전화로 하는 이런 이야기에 질렸어. 

하지만, 나한테 네가 어떤 기분인지 말해봐,
나도 너처럼 외롭고 너에 대해 알길 바라.
지금 난 춥고, 얼간이 같아 너처럼 말야.

하지만 난 날아가 버릴 수도 있고, 완전히 타인이 될 수도 있어.
그리고 넌 산 위에 비추는 햇빛이 될 수도 있어.

그것도 아니라면, 넌 단지 어리로 와서 머무룰 수도 있지.
넌 집으로 바로 갈 수도 있고.
...
나는 오래된 실수들을 고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해.
....


여행기의 두번째 시작은 16년 6월 5일 부터 시작한다.

홋카이도 동부를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홋카이도에서 조차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인 노츠케 반도에 가기 위해 

삿포로 역에서 국내선을 타고 나카시베츠 공항으로 이동. 거기서 세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길거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시골 중의 시골.

오다이토미나토에 도착한다.(미나토란 "항"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나는 오다이토 항에 도착했다)

홋카이도에 처음오는 것도 아니고 일상회화 수준의 일본어는 어렵지 않게 하며, LTE 로밍이라는 강력한 아군을 지닌 나로서도 

터프하기 짝이 없는 일정이었는데, 홋카이도 동부의 일정이란 것이 그런 식이었다.

다들 렌트카를 몰고 다니거나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4번 밖에 없는 버스를 잡아 타거나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타야했다.

심지어 어떤 버스는 일년 중 5개월에만 운행하기도 하였다. 동네란 것들이 "쵸(정)"하나에 편의점이 하나 밖에 없는 곳들이 잔뜩 있었고 며칠 후 시레토코의 우토로에 도착했을 때는 길을 건너서 편의점 두개가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손을 합장하며 자본주의의 은혜에 감사했을 정도였다.


거기서 나는 한 시간에 한 대 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나카시베츠 버스 정류장으로 간 다음

(믿어집니까? 공항인데 공항 앞에 버스가 한시간에 하나야?)

버스 정류장에서 시베츠로 가는 버스를 탔다. 뭔가 적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놀랍게도 내가 나카시베츠 버스 정류장에서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을 빼앗긴 액션스타처럼 버스를 탄 나는 여기까지 했으면 뭐라고 해야지 하는 미친 생각에 시베츠 버스 정류장으로 가지 않고 시베츠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는 살몬(연어)과학관이라는 곳에 간다. 연어와 연어 초밥을 같이 전시해두고, 제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칠성장어에게 손을 물리는 체험을 하는 수조였는데(칠성장어는 이빨이 없어서 물려도 안 아프단다) 내가 제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 곳은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강에서 장난감 낚시대로 물고기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들을 낚는 곳이었다. 과학관을 나와 2킬로미터 남짓을 걷는데도 힘이 들었다.

12키로미터 쯤 걸어서 오다이토 미나토의 숙소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1.5키로미터 지점 쯤에서 날아갔다. 유럽처럼 단정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한 도로의 구석 벤치에 앉아 후드 하나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동부 홋카이도의 6월 날씨와 내가 도대체 여길 왜 온거야 하는 자괴감에 넉다운이 되어서 앉았다.

물론, 거기서 나를 기적적으로 북돋아 준 응원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고 터벅터벅 걸었고 가지고 온 짐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나는 현명하게도 보통 3일용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캐리어에 옷만 꽉차게 담아갔다) 마음을 굳게 먹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꼼짝없이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국내선 항공을 조금 고생해서 12시 편을 탄 덕에(원래 계획은 5시 30분 정도에 도착하는 편이었다) 연락 버스가 아직 있었고. 대절하다 시피 버스를 혼자 타고 오다이토 미나토 항과 숙소인 우타세야까지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시바견 두마리가 나를 보고 미친듯이 짖기 시작했다. 그날 내가 미나토항에서 갈매기 외에 목격한 유이한 생명체였다.


여관은 2층에 온천, 12테이블 규모의 식당까지 갖춘 멋들어진 건물이었는데

그날의 손님은, 나 혼자였다. 저녁은 해물 특선이었는데, 이 항구의 명물인 특대형 가리비도 있었다.

얼마나 큰지 손바닥 만 한 것을 양념을 치지도 않고 그대로 구워내는데도 맛이 있다.

여관의 주인(보통 여자인 경우가 많고, 오카미상이라고 부른다)은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테이블 옆에 서서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했다.


"손님은 왜 이런 구석진 곳 까지 온거에요? 한국인이라며"

"아, 이번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있을 때 노츠케 반도의 사진을 봤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여길 꼭 가야지 하고 생각해서"

"홋카이도 여행의 전체를 노츠케 반도를 방문하는 걸 기본으로 짰어요 오늘이 제 이번 여행의 첫번째 날이자 하이라이트입니다"

"어머 대단하네 그런 멀리서 노츠케 반도를 보러 오고 말야"


주인에게 했던 얘기는 진실의 반 밖에 되지 않았다.

노츠케 반도를 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째서 이런 세상의 끝이나 다름 없는 풍경을 보고 싶어했는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 곳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겠지. 그걸 누구한테 말하겠는가.


그날 밤 나는 밤새 앓았다. 머리가 아팠고 토했고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어서 아침이 되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기만을 바랐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있는거지 하는 생각을 이백번 쯤 했고

어디든 좋으니 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사백번 쯤 했다. 물론 하나 하나 세어 본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세어봤어도 비슷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홋카이도 두번 째 여행의 첫 번째 밤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오래된 실수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칠 수 있다면 그건 오래된 것도 실수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고칠 수는 있다.


이제야 나카시베츠 버스 터미널에서 뭘 했는지 기억이 난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 버스 정류장을 안내 받았다.

라멘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다 시간에 쫓겨 바로 버스를 탔다. 인간은 이렇게 쉽게 잊어버린다.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고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집에 갈 때 까지 뭔가 말해볼 생각이다.


다음 글은 아마 15년의 여행에 대해서 조금 더 쓰게 될 것이다.

이렇게 15년과 16년의 여행을 내 안의 맥락에 따라 번갈아 가면서 올리게 될 것 같다.

고백 할 것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에겐 유일한 친구이다. 

나에게 친구란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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