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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혼자 서있다. 누군가 그를 1년이 넘게 기다리게 한 것 같은 모습이다.

6월이지만 홋카이도에 있기에는 조금 섣부른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발치에 작은 캐리어가 있다.

휴가의 첫날,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지만, 열차를 놓쳐 4시간이 넘게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다섯시가 된 지금에서야 열차를 한 번 갈아타고 4시간 가까이 걸려 섬의 남부에 있는 구시로란 도시로 갈 생각이다.

대합실엔 지친 한 무리가 날씨 예보가 나오는 NHK를 보고 있다. 


벌써 플랫폼 건너편은 새까맣다. 드문하게 서있는 교외의 건물들은 아무 흥미로운 것이 없는데 남자는 그 쪽을 쳐다본다. 

밭인지 공터인지 알 수 없는 땅이 있고 사람 한 명 짐승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다.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아이폰을 들어 역의 여기 저기를 찍는다. 반댓 편에는 남자 처럼 일찍 플랫폼에 기다리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다. 

저쪽 반댓 편은 숲이 있다. 숲의 건너편도, 까맣기는 마찬가지이다.


남자 자신 외에 아무도 그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남자는 허공을,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다.

곧 열차가 온다. 열차를 타고 그는 아주 멀리 갈 생각이다.

2015년 6월의 일이다.


혼자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었겠지만, 기차 여행을 하고 싶었다.

원래는 친구와 같이 가기로 했던 여름 휴가 계획이 어그러진 것은 5월이었다.

원래 일정은 파리였던가 하와이 였던가, 아니면 저 먼 남미였던가.

여행을 혼자 가려면 가지 않는게 나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주 멀리 느리게 흔들리며 나를 옮겨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저 소란과 말들 사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항에서 산 오리 인형을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오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복도자리라 창 밖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 흔들리고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아주 멀리로 가고 있다. 오리와 함께 이 밤의 기차를 타고. 

친구의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거지. 눈을 감는다.


구시로 역,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흩어진다.

이 남쪽 끝의 항구 도시는 홋카이도 열차의 마지막 도착지점이기 때문에 이 곳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오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11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에 내리는 걸까.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입으로 한국어를 중얼거리고 웃는다.

택시를 타도 괜찮았지만, 호텔은 걸어도 충분한 거리에 있다. 역 앞 사거리를 건너서 나도 월요일을 찾아 흩어지는 사람들중 하나가 되었다.

북쪽 항구 도시의 밤은 6월인데도 추웠다. 가방에 든 후드 티를 입을 생각도 못하고 반바지에 티 차림으로 신음 소리를 내며 걸었다.

지금은 영상 8도, 내일 해가 뜨는 시간은 3시 45분이고 첫번째 열차를 탈 때 쯤이면 기온이 14도까지는 올라갈 것이다.


아무도 없다. 사거리를 세번 건널 동안 마주치는 사람 한 명도 없고 건물은 완전히 불이 꺼져있다.

거리의 건물들은 2층보다 높은 건물은 거의 없다. 비교적 새로 만든 오피스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낡고 노란 가로등 불빛에 이라크의 흙벽돌 집처럼 보인다. 바람이 부는데도 그 바람소리 사이로 내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죽어있는 도시에 온 걸까. 사거리를 여섯개 지나쳐서 구시로 시청에서 오른쪽. 사거리를 다섯개 더 지나쳐서 구시로 시청에서 오른쪽.

졸음과 추위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중얼거린다. 세상이 내가 기차를 타고 있는 사이에 멸망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시청 옆의 편의점에 들어가 물을 샀다. 편의점의 점원도 호텔의 데스크에서 서있는 남자도 졸린 기색이 역력하다.

이 도시에 12시는 유령과 바람 외엔 아무 것도 지나다니지 않는 것이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아 안심한다. 그렇다 나는 이런 아무도 없는 풍경을 보러 이 곳에 온 것이다.


내일은 습지에 갈 것이다. 누우면 언제나처럼 잠이 온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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