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헤매는 사람에게야말로 달콤함이 필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지독하게 길을 헤맸는데

헤맬 때 마다 길바닥에 앉아서 울기보다는 아무가게나 들어가서 뭘 사먹었다.

홋카이도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전체적으로 다 맛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꿀맛이었던 것이 롯카테이 본점에서 먹었던 디저트들이었는데

그 디저트들을 먹은 얘기를 하려면 가장 장렬하게 길을 헤맨 3일째 날 얘기를 할수 밖에 없다.

시간 순서대로 써도 내가 도대체 왜 이 따위로 헤맸는지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기라

성의없이 휴먼굴림체로 대충대충 쓸 수 밖에 없다. 그 개요는 하기와 같다.

 

숙소 ->어리버리 -> 오비히로 역 -> 마나베 정원 -> 배고픔 -> 오비히로 역 -> 판쵸

-> 롯카테이 본점 -> 어리버리 -> 오비히로 경마장 -> 미도리가오카 공원 -> 폭우에서 길잃음 -> 오비히로 역

-> 롯카테이 본점 -> 모든 걸 포기 -> 오비히로 역

 

전날 구시로에서 3시간 기차타고 오비히로에 도착.

오비히로 시의 중심가는 오비히로 역을 중심으로 시의 북쪽에 기울어져 있는 형태인데 왼쪽으로 굽은 가지 처럼 통통하게 남서쪽으로 기울었다. 북쪽엔 토카치 천, 동쪽 끝에는 사츠나이천을 기대고 남서쪽의 끝에는 피파이로 산(성의없는 이름이다) 토카치호로시리 산을 접했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땅이 소위 말하는 토카치 평원의 일부로, 정원 문화와 낙농업이 크게 발달한 남쪽의 번화지역이다.

 

홋카이도에 와서 한 두번 실수한게 아닌데, 가이드북에 오비히로에서 가면 좋은 곳 뭐 이렇게 써있다고

절대로 가까운게 아니다. 대학교 들어가서 저 서울살아여 이러면 꼰대들이 서울이 다 니네집이냐 하는 이유가 있었다. 편의상 오비히로를 얘기할 때 토카치 지방과 함께 묶는데 정확히는 토카치에 오비히로가 있는 것으로 토카치 평야는 무려 3,600제곱키로미터(충청북도의 반정도)

그리고 정식 행정구역인 토카치 군은 오비히로 주변의 군이니까 복잡하기 짝이 없다 토카치 지방과 토카치 평야와 토카치 군은 다르다! 알게 뭐야 하여튼 넓다.

 

이 쪽에서 가려고 한건 토카치 천년의 숲이라고 인공적으로 만든 거대한 수목원.

천년 후 까지 남을 숲을 만들겠다는 그 스케일에 반했습니다. (사실은 치즈가 맛있다고 해서 가려고 했지만)

전날 인상 깊었던 구시로 습원에 한 번 더 갈까 고민하는 바람에 전날 관광버스 예약을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2분의 4박자로 비가 내려서 걍 무슨 습원이냐 수목원이나 가자 라고 생각했는데

비오는 날에 습원은 가면 안되지만 수목원에도 가면 안된다는 생각은 못한 나는 바보.

솔직히 버스 예약 안 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한게 정말 바보 같았다.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니까 차 타고 40분 넘게 걸리는 곳인데 예약도 안하고 가실려구요 하길래 포기. 

다른데 갈만한 곳 없냐고 물어보니까 오늘은 반에이 경마도 없는 날인데 하고 말끝만 흐리고...

 

반에이가 뭐냐 하면 만화 은수저에 나오는 바로 그 짐수레 끄는 말로 하는 경마가 바로 반에이 경마.

거기 경마장에 바로 오비히로에 있고(여기만 있다) 은수저 만화 자체도 오비히로 농고가 배경이다. 덕후들 참조요.

 

멍청한 외국인이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걸 귀찮아 하지 않은 친절한 호텔 프런트에서 어렵게 찾아봐 준 곳은 홋카이도 식 정원인 마나베 정원.

이런 홋카이도식 정원은 오비히로와 아사히카와에 많은데 일종의 개인이 운영하는 수목원.

전통적인 일본 정원과는 다르게 유럽식 정원의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식생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넓다.

솔직히 이 시점에서 나도 그냥 정원이겠지 금방 끝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날 하루 종일 걷고 걷고 또 걷게 될줄은 몰랐던 것이다. 안 그랬다면 이런 개인 규모의 수목원 따위 가지 않았을 거다.

 

- 마나베 정원

잠시였지만(이 때는 잠시 그친건지 몰랐지...) 비가 그쳤기에 버스를 타고 마나베 정원으로 갔다. 시내에서 15분 정도의 거리.

마나베 정원에 가니까 입구에는 화분들을 잔뜩 팔고 관광객들에겐 15분/30분/45분짜리 산책 코스가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가니까 젊은이는 나 밖에 없다. 서른살도 넘은게 젊은이라고 하면 웃기지만 거기 가면 알수 있다 압도적인 차이로 내가 최연소인게 분명.

할아부지 할머니들이 버스를 타고 몰려와 (일본인답게) 조용히 산책하거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이 곳의 공기에 스며들지 못하는 느낌...

내 선택지는 저 보기보다 늙었어요, 라고 늙은 척 하거나 저 길가다가 우연히 헤맨겁니다, 두 개 밖에 없었다. 

당연히 후자를 골랐습니다. 후드 뒤집어 쓰고 어쩌다 흘러들어온 힙스터인 척하면서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도 메소드 연기를 했습죠.

마나베 정원은 전형적인 홋카이도식 정원 중의 하나라는데, 꽤 넓은 부지에 구역을 나눠서 식생을 완전히 분리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45분 정도 정원을 걸어다니니까 예쁘기도 하고 나무들도 평화롭고 폭포도 있고 연못도 있고 하여튼 그래서 나올때 쯤엔 마음이 온화해졌쯤.

수많은 노인들과 동료의식 느꼈다. 그들도 나를 동료로 받아준 듯한 느낌이 들어...

 

- 판쵸

1시간 정도 산책을 한건데 버스 시간 안 맞아서 40분간 수목원에서 비맞으며 기다리다 시내로 돌아오니까

이미 기력은 제로였다. 비는 오고 쉴 수 있는 곳도 없고.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점심은 계획이 있었다. 일본 최초의 부타동 집이었다는 판쵸가 바로 오비히로 역 앞에 있는 것. 무려 1909년에 개점한 집으로.

흔히 돼지갈비 덮밥 같은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풍부한 고기에 달기보다 짠맛 베이스의 양념이라 생각했던 맛과 다르다.

8테이블 남짓한 작은 가게라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줄을 서서 기다리기 시작한 시점에 들어가 아이고 부타동 조상님 하고 넙죽 업드려서 제일 비싼 1300엔 짜리 시켰더니 밥 위에 돼지고기만 잔뜩 올려져 나왔는데 합석한 아저씨들이랑 눈치보며 어색하게 한술 뜨다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뛰어난 밥맛과 숯불구이한 돼지고기의 풍부한 맛이 어우러져 밥 먹다가 박수 칠뻔. 

게다가 비도 완전히 그쳐서(착각이었다 오후 늦게 비 미친듯이 오기 시작함) 오비히로 괜찮은 곳이구나.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쩔수 없었던게 그 시간대에 다음 숙박지(아사히카와) 로 가는 기차가 없었는데, 어디 들어가서 그냥 휴식이나 취하지, 그 때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돼지고기가 과했을까. 8장이나 되는 돼지 고기를 먹으니 힘이 너무 난 탓이었다.

앞으로 에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오비히로시를 탐험해보자!(=할거 없으니 그냥 돌아다니자)라고 생각한 것. 오비히로시는 삿포로시와 같이 계획하에 만들어진 도시이다. 서구의 도시처럼 스트리트와 애비뉴가 정확하게 나눠져있진 않지만 구획을 정하고 그 위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방향만 똑바로 잡으면 길을 찾는게 편하다.

낯선 도시를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 분명 이것저것 즐거운 게 많을거야.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설명했지만, 남쪽의 번화가이자 낙농업이 발달한 토카치 지방의 중심가가 아닌가.

 

- 롯카테이 본점

우선 첫번째 목적지는 오비히로 중심가의 북쪽에 있는 롯카테이의 본점. 롯카테이는 홋카이도의 유명한 제과 기업으로 일본 면세점을 가도 꽤 자주 볼 수 있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가게다. 하지만 초콜릿만이 업이 아니라 일본에서 접할 수 있는 스위트 종류는 대부분 취급하고 있다.

일본식 과자의 세계야 워낙 넓고도 깊어서 모든걸 취급한다고 볼순 없지만 팥 계열의 모나카, 안미쯔, 젤리야 당연히 취급하고 각종 케익류, 샌드류도 폭넓게 취급하고 있다. 내가 특히 즐겁게 먹은 것은 본점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크림과 바삭한 과자류. 파손과 부패에 약한 것들만 골라서 먹었는데 과연 훌륭했다. 많은 여행객이 지적하는 바, 다른 음식들은 특별히 싼건 아니지만 

홋카이도 특히 오비히로의 스위츠들은 말도 안되게 싸고 괜찮은 퀄리티다.

바로 이런 단 음식이야 말로 여행을 즐겁게 해주는 소소한 기쁨. 입에 달콤한 것이 들어오면 그야말로 펄펄해진다.

1층에는 제과점, 2층에는 카페를 운영하며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는데 스프카레가 있는걸 보고 저녁때 너를 먹으러 올게 스프 카레야하며 롯카테이를 20분도 채 안 머무르고 용감하게 떠난 것이 오후 1시쯤.

 

- 반에이 경마장

두려울게 없는 상태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오비히로 읍내를 도는 것이 아니냐. 볼만한 것은 다 보겠다 하는 심정으로 반에이 경마가 열리는 오비히로 경마장으로 걸어갔다가 남쪽에 있는 미도리가오카 공원(동물원이 같이 있다)을 한바퀴 돌며 오비히로 시내의 평범한 일상을 만끽하겠다 하는 오늘의 마지막 잘못된 판단을 했었던 것이다.(아니 몇개 더 한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이 끝난 지금 그날 내가 롯카테이 본점 부터 걸어간 루트를 구글 맵으로 계산해보니 약 14키로미터 정도.

비오는 6월 말의 홋카이도. 얼간이 같이 걸어갔던 나.

매주 주말, 혹은 월요일만 열리는 반에이 경마가 있다. 말에 관한 박물관과 홋카이도 식료품을 파는 마트, 음식점 등이 있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종합 휴식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경마가 열리지 않는 날에도 충분히 즐거운 공간이지만. 경마가 열렸다면 더 즐거웠겠지...왜 여길 기를 쓰고 걸어갔을까.

 

- 미도리가오카 공원

오비히로의 가장 커다란 공원. 얼마나 커다랗냐 하면 50헥타르 부지에 있습니다. 안에 미술관, 오비히로100년 기념관, 오비히로 동물원이 있고도 남는다.

무려 뉴욕의 센트럴 파크 7분의 1넓이입니다. 이게 얼마나 넓은건지 잘 이해하기 힘들겠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100헥타르인 에버랜드의 반, 서울랜드는 28헥타르 입니다.

미도리가오카 공원을 산책한 일 하나가 에피소드 반 정도의 분량이 될것 같은데. 다른 이유는 없고 공원 안에서 길을 잃었다...잃을 정도로 숲이었습니다.

비도 오고 그래서 그런지 50헥타르 부지에 나 혼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롯카테이에서 사온 팥떡을 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서 꾸역꾸역 먹었답니다.

1시간 넘게 헤매다가 문득 이러다간 큰일나겠다 싶어서 찻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쳐나갔더니 풀밭에서 사람들이 고기를 굽고 놀고 있었다.

 

미도리가오카 공원을 나오고도 한참을 걸었다. 오비히로 역까지도 멀었고 저녁을 먹을 생각이라 롯카테이까지 꾸역꾸역 걸어서 레스토랑이 저녁 개점을 하는 시간을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창 밖을 보고 있노라니 뭔가 귀찮아져서 저녁을 먹지 않고 기차를 타러 떠났다. 스프카레? 먹었으면 체했을게 틀림없다.

로바다야끼의 본고장이 구시로라 여기서라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결국 그대로 모든걸 포기하고 오비히로를 떠났다.


- 총평

혼자서니까 가능한거지, 누군가. 예를 들어 당신이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여행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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