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한가지 이야기의 두가지 측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자춘전(杜子春傳)은 당나라 때 이복언(李復言)이 편찬한 <속현괴록(續玄怪錄)>의 명나라 시대 판본에 실려있다. 그 원본은 대당서역기에 실려있는 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자춘 전의 원본에 대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선 원본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북주, 수 연간의 사람인 두자춘은 본디 세가의 자식으로 부유하게 자랐지만 가문의 재산을 탕진하여 빈곤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는 어느날 정말 우연히 노인 하나를 마주쳤는데 노인은 자춘을 어떻게 여겼는지 갑자기 그를 도와주며 친척도 주지 않을 큰 돈을 무상으로 그에게 줍니다. 자춘은 그에게 크게 감사하며 앞으로 착실하게 살리라 다짐하였지만 그것은 몇년을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금세 재산을 탕진하였고 상심해있던 그에게 노인이 또 다시 나타나 아까보다 더 큰 재산을 내려주며 이 재산으로 잘 살아보라고 말합니다. 자춘 또한 더욱 기뻐하고 감사해하지만 첫번째보다 더 큰 재산도 몇년이 걸리지 않아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이제 정말로 끝이구나 하고 상심해있던 자춘의 앞에 노인은 다시 한 번 나타나 그에게 이번엔 더 큰 재산을 줄텐데 이 재산을 가지고도 탕진하면 너는 평생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이야.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두자춘전은 실수를 반복하는 주인공과 그를 도와주는 신비로운 인물이라는 몹시 매력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 두자춘이 어떤 실패를 하고 어떤 반성을 하게 될까 기대하게 되는 법인데...의외로 두자춘은 여기서 실패하지 않는다.
몇 번의 재산의 탕진 끝에 교훈을 얻은 자춘은, 이번에 얻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재산을 자선을 위해 사용한다. 전화에 상처입은 지방을 재건하고 사람들을 구한다. 몇년 후에 자선을 행하고 있는 자춘을 만난 노인은. 그의 삶에 기뻐하면서 이제 살만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자춘은 노인을 향해 감사하면서 이제 속세의 삶은 누릴대로 누렸기 때문에 노인과 같은 신선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과연 노인은 신선이 맞았고 자춘을 자신이 살고 있는 화산에 데려가 신비로운 선술-연단술-을 행하는데 자춘에게 신신당부 하기를. 절대 입을 열어 말하지 말라. 그렇다면 너는 어떠한 해도 입지 않고 끝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면 나는 선단을 얻으며 너는 나와 같은 신선이 되리라. 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자춘은...생각도 해본 적 없는 신비로운 환상을 보게됩니다...
그러니까 두자춘의 세번의 기회는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길고 긴 프롤로그다. 그리고 내가 이 시점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소설가 아쿠다카와 류노스케가 지은 두자춘 전이다.
1920년 아쿠다카와는 잡지 <붉은 새>에 두자춘전을 발표하는데. 동화를 염두에 둔 구성과 그 내용으로 원래의 두자춘전과는 완전히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어떤 이야기냐면 앞부분은 완전히 같다.
두자춘은 명가의 자식이나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아 요행만을 노리는데 어느날 신비로운 노인을 만나서 그에게 세 번의 기회를 얻고. 그에게 감사해하지만 자신도 신선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를 제자로 삼기로 하고 아미산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아미산에 도착하자 노인은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서. 대신 내가 없는 동안 너는 온갖 유혹과 사술에 시달릴 수 있으니 내가 없는 동안 너는 어떠한 일이 닥쳐도 한 마디도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다짐을 받습니다.
노인을 기다리던 자춘이 본 것은 과연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그를 위협하더니 그 뒤에는 짐승들이 그를 위협합니다. 온갖 자연현상이 일어나더니 이제는 금빛 옷을 입은 장군이 그에게 너는 누구냐 왜 여기에 있느냐고 위협을 합니다. 그래도 말을 하지 않자 수천 수만의 군병들이 그를 위협합니다. 입을 벌리라! 말하라 네가 누군지! 왜 여기로 왔는지! 하지만 자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금빛 옷을 입은 장군은 자춘의 목을 한 칼에 날려버리고 맙니다.
자춘은 지옥에 끌려갑니다.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 자춘은 저승의 위엄을 손상시키는 자로서 엄한 벌을 받게 됩니다. 온갖 지옥을 돌아다니면서 고통을 받지만 자춘은 노인의 당부를 생각하며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기가 찬 염라대왕은, 한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려 축생도에 떨어져 있던 자춘의 죽은 부모를 데려옵니다. 자춘의 부모는 둘 다 말이 되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었고 자춘을 알아본 듯 합니다. 지옥의 졸개들은 오직 자춘이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 자춘의 부모를 가혹하게 고문하기 시작합니다. 자춘은 부모가 고통을 받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며 몇번이나 입을 열까 하다가도 노인의 말을 떠올리며 참습니다. 이윽고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우리는 괜찮다. 네가 행복한게 제일이니 네가 입을 열지 않아야 한다면 그대로 다물고 있거라. 라는 어머니의 말이 들렸습니다. 자춘은 참지 못하고 달려가 어머니를 껴안고 어머니라고 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춘이 깨어난 곳은 처음 노인을 만난 낙양이었습니다. 노인은 어떠냐 이래도 신선이 될 생각이 들더냐 라고 묻습니다. 자춘은 부정합니다. 노인은 오히려 웃으며 네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면 내가 그 자리에서 널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자 이제 신선도 부자도 되지 못한 너는 무엇이 될 것이냐 라고 묻고. 자춘은 사람답게 정직하게 살겠다고 대답합니다.
...
이것이 아쿠다카와 두자춘전. 그의 나이 28세에 지은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원전의 두자춘전은 어떻게 될까? 아쿠다카와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 두자춘이 선술에 걸려 환상을 보는 것은 완전히 같다...
입을 다물고 있는 자춘을 금빛 옷을 입은 신장은 위협을 가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신장은 어디선가 자춘의 아내를 잡아와 고문하기 시작합니다. 차마 여기에 쓰지 못할 만큼 고문은 가혹합니다. 아내는 자춘에게 빌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자춘은 처음과 같이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입니다. 아내는 자춘에게 원망의 말을 남기고 죽고. 신장은 지독한 놈이라고 혀를 차더니 자춘의 목을 한 칼에 날려버립니다.
자춘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곳에서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아 온갖 지옥을 도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도산, 화탕, 한빙, 검수, 발설...모든 지옥을 한 번씩 돌고도 자춘은 입을 다뭅니다. 그러나 염라대왕은 격노하여 이 자는 심기가 음한자이니 다음 생에서 여자로 태어나리라 하고 그를 인간계로 쫓아냅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산동성 선부현 왕근의 집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한대로 여자아이로 태어난 두자춘은 어릴때 부터 아무소리도,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통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았기에 벙어리 아이가 태어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벙어리인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미모를 가진 규수로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그녀이기에 구혼자가 끊이지 않았으나. 아버지 왕근은 그녀가 벙어리라는 이유로 아무 곳에도 시집보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노규라는 진사가 왕씨집 딸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끈질기게 구애를 하여 결국 혼담이 성사되었고. 왕씨집 딸이 벙어리임에도 불구하고 금슬이 매우 좋았습니다. 곧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도 말 한마디 없고 표정도 없는 왕씨에게 노규는 점점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두살이 되던 해 일이 터지고 맙니다. 너는 남편을 공경하지 않느냐, 너는 내 글 솜씨에 존경하는 마음이 들지 않느냐 하며 화를 내던 노규는...노규는 겨우 두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의 다리를 잡아 돌 위에 집어 던집니다. 원전은 아이의 머리가 깨지고 피가 다섯 걸음을 걸 정도로 흘러나왔다고 말합니다. 왕씨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릅니다.
왕씨, 아니 자춘이 깨어나보니 선술은 실패하였고 자춘의 눈 앞에 노인이 서있었습니다. 노인은 그가 칠정인 희노애구오욕(喜怒哀懼惡欲)을 모두 잊었으나. 마지막에 하나 사랑(愛)을 잊지 못하여 선단을 만드는 것도. 신선이 되는 것도 실패하였다며 그를 크게 탓하고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고 두자춘을 남긴 채 떠나갑니다.
어떤가? 두자춘전의 원전은 훨씬 잔혹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고 어느쪽 이야기가 더 아름답고 사리에 맞느냐고 묻는다면 열이면 아홉은 아쿠다카와의 두자춘전을 고를 것이다.
그렇다면 아쿠다카와가 어째서 두자춘전을 이렇게 편집-아니 재창작이다-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텐데 대답은 싱겁다. 애초에 이 작품을 발표한 붉은 새 부터가 어린이를 위한 아동문예집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난세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잔혹한 이야기가 반 이상이다. 거기에 어떠한 신비로운 전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두려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오히려 전개와 결말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린이 잡지에는 실릴 수 없을텐데 도대체 왜 굳이 이야기를 선택해서 각색했는지가 의문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 추측 할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애초에 아쿠다카와의 작품 중에 특별히 뛰어난 작품도 인기 있는 작품도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도 아니다.
다만 왜 결말을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두자춘이 새 사람으로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추측 할 수 있는데 그건 아쿠다카와가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어머니의 발광으로 인해서 외삼촌의 집에서 양자로 키워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양부모를 진짜 부모로 여기고 살아갔다고 하지만. 그가 11살 때 죽은 친 어머니에게서 광기를 물려받은게 아닐까 스스로 평생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가 한살이 되기 전에 큰 누나의 때 어린 죽음으로 광기가 발현된 어머니...그런 그에게 어린 아들이 살해당해 비명을 지르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1920년 당시 젊은 나이(겨우 스물 여덟살이었다)인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던게 아닐까. 1919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된 그는 자신과 똑같은 젊은이인 두자춘이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결말에서 모종의 구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결말을 알고 있다. 아쿠다카와의 두자춘전은 자춘이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는 것에서 끝나지만. 1921년 아쿠다카와는 신경쇠약을 앓기 시작한다. 위궤양(위궤양은 그의 스승 나쓰메 소세키의 직접적인 사인이기도 했다). 불면증. 매형의 자살로 인한 빚. 그는 겨우 1927년에 자살한다. 두자춘이 새로운 삶을 다짐한지 7년 후의 일인 것이다.
나에게 두 개의 두자춘전 중 어느 쪽의 두자춘전이 인생의 진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고민을 하지 않고 원전의 두자춘전이라고 하겠다. 아쿠다카와의 두자춘전은 너무나 아름답니다. 결말은 완벽하고 전개는 매끄럽다. 그러나 원전은 그런 것이 하나도 없고 그냥 어느날 어떤 비렁뱅이의 악몽을 적어놓은 것처럼 두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몹시 진실되다. 그래서 나는 의문을 갖는다.
이것은 두자춘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왕근의 딸에 대한 이야기인가. 살던 곳도 태어난 곳도 몹시 불분명한 두자춘과 다르게 왕근의 딸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한 질량을 갖고 있다. 흡사 두자춘이 아니라 왕근의 딸이야 말로 진짜로 있었던 사람인 것 처럼 말이다. 나는 두자춘이 떠난 후 그 세계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가 떠난 후 왕근의 딸은 자식이 죽은 그 세계에 그대로 남아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꿈처럼 스러져 사라지는 걸까.
여기 내가 생각한 두자춘전을 하나 더 써서 남긴다. 모든 이야기는 원전과 같다. 단지 마지막 부분이 다르다.
술에 취한 노규는 왕씨부인의 아름다운 - 무표정한 - 얼굴을 보면서 소리를 지른다. 옛날 가대부의 아내는 남편을 천하게 여겨 웃지 않았으나 남편이 꿩을 맞추자 마음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나의 글솜씨와 인품은 꿩을 맞추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데 너는 왜 나를 보며 웃지 않는 것인가. 남편이 아내의 존경을 얻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내가 여자에게 바보취급을 받는다면 재산이 무엇이며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보라. 노규는 방 구석에서 불안하게 부모를 바라보고 있던 자신의 장자를 들어 왕씨 부인의 앞에 들이밀었다. 술에 취한 노규는 얼굴이 붉고 그 숨은 거칠다. 왕씨 부인은 아이를 보지도 노규를 보지도 않는다. 흰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눈은 슬프게 가라앉았다. 입이 떨리는 듯 하더니 곧 굳게 닫힌다. 보란 말이다. 노규는 왕씨 부인을 다그친다. 아이를 흔들며 소리 친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운다. 노규가 굳게 잡은 손이 고통스러운 듯이 아이가 몸을 비튼다.
노규는 방을 나선다. 문은 연 채로 그대로다. 방 밖에서 불안하게 기다리던 하녀 하나가 비명을 지른다. 마님, 도련님. 도련님이. 다른 하녀 하나가 뛰어와 방 안을 살펴보고 비명을 지른다. 의원을...의원을...하고 말을 더듬으며 기듯이 자리를 떠난다. 노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숫제 도망치는 듯 하다.
바닥에 엎드린 왕씨 부인은 아이를 안고 있다. 흰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검은 머리는 더욱 검어졌다. 커다랗고 촉촉한 눈은 더욱 커다랗고 촉촉해졌다. 입은 굳게 다물고 울음을 참는다. 어매, 어매요. 어매요...중얼거리는 소리가 난다. 왕씨 부인의 목소리는 아니다. 작고 붉어진 것이 어머니를 부른다. 왕씨 부인은 필사적으로 비명을 참는다. 다만 피가 흘러나오는 곳을 손으로 부여잡고 피를 막는다.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왕씨 부인은 괜찮아 엄마가 여기있어 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왕씨 부인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은 아주 어릴 적 병약하여 항상 아버지에게 안겨있던 그녀에게 아버지 왕근이 그녀를 달래며 해주었던 어떤 이야기이다. 이야기에서는 두자춘이라는 건달이 있었는데 그는 재산을 탕진하고도 기회를 얻어 신선이 될 수 있는 시험을 보게 된다. 거기서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으면 신선이 되게 해준다는 스승의 말을 신의를 다해 지켜 신선이 된다. 그리고 모든 자신의 잘못과 고통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왕씨 부인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을까 궁금해한다. 아이는 이제 말을 하지 않고 자꾸 축 늘어진다. 의원은 아직도 오지 않는다.
왕씨 부인은 아이를 꼭 껴안고 울음을 속으로 삼키다가 방 한 쪽 구석에 서있는 당신을 발견한다. 당신은 이곳에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다. 왕씨 부인은 당신이 신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신의를 지키는지 확인하기 위해 온 신선. 희노애구구욕의 칠정을 모두 잊은 자신에게 사랑마저 잊었는지 확인하러 온 신선. 그리고 이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갑게 식어가는 아이도. 혼자 몸으로 병약한 딸을 키우느라 모든 자산을 탕진한채 늙어버린 아버지도. 바닥에 가득 흘러가는 자신의 눈물과 아이의 피도. 그래서 정신이 나가버린 눈으로 당신을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지. 당신은 왕씨 부인에게 무슨 말을 할지.
24년 8월의 글이다…
.....왕씨 부인은 혼자 몸으로 아이를 키운다. 노규는 그 날로 나서서 큰 길로 도망치다 달리는 말에 치어 죽었다. 의원이 제 때에 당도한 덕에 아이는 순조롭게 회복한다. 말이 늦되는 것은 아닌지 걸음이 느린 것은 아닌지 사람들이 걱정하였지만 왕씨 부인은 서툰 발음으로 괜찮아요 그래도 고맙기만 해요. 라고 말한다. 아이는 이제 왕씨 부인을 보고 곧잘 웃는다. 왕씨 부인 또한 아이를 보며 웃는다.
아버지인 왕근은 가끔 왕씨 부인을 찾아온다. 아버지는 늙었지만 아직 정정하다. 가끔 왕씨 부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왕씨 부인은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아버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왕근은 알 수 있었다. 왕근은 마음 속 깊이 천지신명과 신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왕씨 부인이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신선이나 다름없는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그녀가 불행해지는 곳으로는 갈 수 없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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