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으로 오면서 내가 블로그에 너무 많은 글을 쓰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들도 그런 고민은 안 할텐데, 참 생각도 사서하시네요. 하지만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냥 회사원이고 현실과 가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단편들을 조금 올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블로그의 내용은 에세이이다.
너무 내 삶이라는 뜻이다.

차라리 소설만 써서 올리는 블로그를 했다면 좋았겠지만 여러분, 소설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듭니다.
6년 전 쯤 머릿속으로 구상해놓고 쓰지 않았던 소설을 요즘에 다시 쓰고 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세상에 갑자기 유리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어느날 부터 세상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고, 다른 사람은 결혼하려던 애인과 헤어진다.
쓰다보니 점점 길어져서 내가 질리고 있는 중이다. 어째서 이렇게 베스트 극장 대본 같은 걸 쓰고 있담.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여러분은 베스트 극장이 뭔지 알고 있습니까? MBC에서 방영하던 단막극 프로그램이다.
위키를 찾아보았는데 베스트셀러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83년도(!!)부터 방영하던게 시작이었고 그 후로 이름을 바꿔가며 방영. 결국 2013년에는 종영을 맞이한 것 같다.
방송시간은 하여간 밤이었는데 한시간 정도 남짓 하는 내용으로 1회성 드라마들을 방영해주었다.
내용은 대중이 없이 치정극일 때도 있고 사회극일 때도 있다. 공포나 추리일 때도 있었는데 추측하기로는 드라마 제작에 필요한 리소스들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  놀고 있는 인력이 없도록 뭔가를 계속 돌려야했고 정규 드라마 시간에 편성되지 않은 주요 스텝들의 훈련을 겸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그러다보니 실험성이 강한 작품도 꽤 많이 나왔었고 뒤에 굉장히 유명해지는 사람들이 여기서 데뷔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수의 명작 문학들을 영상화 하는 경우도 많아서 문학과 영상 사이의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그런 방송이기도 했다. 다른 방송국에도 비슷한 성격의 방송이 있었지만 내가 챙겨본 것은 문화방송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나는 그렇게까지 문학적이지는 않아서 단막극에서 사회성이 짙은 것들은 꽝이라고 생각했고 터무니없는 내용이 나올 수록 좋아했다.
생각해보라, 여러분이 가챠를 돌릴 수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돌릴 수 밖에 없고 대박이 터진다고 해도 상품은 기껏해야 한시간 동안 재미있는 시간 보내기라니.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즐겁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의 삶은 대충 이랬다. 매일 종이 신문을 보면서 공중파의 편성표를 본다. 그리고 좋아하는 방송의 편성시간과 또 무슨 특별한게 있는지 가슴 떨려하며 확인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방송이 하는 시간이면 경건하게 10분 정도 전부터 티비 앞에서 기다린다. 광고는 모두 본다. (그래 그것이 올바른 자본주의적인 태도이다.)
그렇게 보다보면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이어서 티비를 보고 그랬다. 그런 행태를 보고 모두가 아 티비는 바보 상자구나 하고 걱정하고 그랬는데 하하 걱정도 팔자셨다.
곧 유튜브가 나오는데 말이지.
또 뭘 좋아했냐면. 어린이 프로그램과 만화, 다큐멘터리와 코미디 프로그램.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그래 그러고보니 그 때는 비디오라는게 있었다. 그게 뭐냐면…그…동영상을 저장하는…테이프 레코딩…하여간 설명하기 어려우니 검고 단단한 필름맛이 나는 장치가 있었다고 알면된다.
넷플릭스의 혁신이 발생하기 전에 우리 20세기 인간들은 집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비디오테이프라는 게 필요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고 진짜로.
하여간 어머니는 가끔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현금으로 얼마를 맡겨두고 누나와 내가 마음껏 비디오를 볼 수 있게 해줬다.
몇달 지나지 않아서 누나와 나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너무 성인물인 것을 제외(그렇다고 그냥 성인물은 보지 않았는가? 목이 잘리는 것 정도는 그냥 보았다.)하고는 보지 않은 영화가 없게 되었는데. 시네필을 만드는데 꽤 정석적인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금세 새로운 영화에 목말라서 몸부림을 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당시 공중파에는 주말의 명화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주말의 적당한 저녁때가 되면 주로 미국의 영화들을 방영해주었다. 얼마나 영향이 컸던지 극장에서 내려간지 몇년 되지 않은 할리우드 대작 영화 같은게 방영한다는게 알려지면 학교가 술렁이고 그랬다. 집에 비디오 재생기가 생기기 전부터도 그런게 있으면 챙겨봤는데, 비디오를 마구 보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혼탁해진 나는 티비에서 해주는 모든 영화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어떤 내용이라도 좋았다. 어떤 나라 영화라도 좋았다. 나는 영화가 시작하면 꼼짝 않고 그 영화를 다 보았고 다음 영화를 볼 때 까지 그 봤던 영화를 머릿 속에서 계속해서 재생했다. 인상깊은 장면을 생각하고 대사를 읊고. 이걸 다르게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면 될까를 생각했다.
현실보다 영화 쪽이 내겐 더 현실에 가까웠다. 어릴 때의 그 나이에는, 망상 쪽이 현실보다 더 사랑스러운 법이다.

어떤 영화를 봤는지는 굳이 여기에 쓰지 않겠다. 사실 어떤 명작이라고 불렸던 영화들보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든 것은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어떤 광경이다. 기차역에서 이별하는 사람들과 각이 진 자동차를 몰아 어디론가 가는 남자. 아름답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못한 눈을 가진 여자. 캘리포니아의 햇볕과 홍콩의 밤거리 같은 것들 말이다.
어느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홍콩에 갔던 날. 비가 오는 홍콩의 해변을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데 저 멀리 비안개 너머로 홍콩의 거리가 천천히 보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어떠한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당신에게 내가 무엇을 봤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21세기의 이야기이고.
나의 마음 속에 머물러있는 몇 되지 않는 사랑으로 가득찬 순간이다. 당신에게 말한다면 직접 말해주고 싶다.

어느날 후배와 영화를 보러가면서 얘길 했는데. 후배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안방에 기어들어가 - 안방에만 티비가 있었기 때문에 - 매일밤 잠이 든 부모님의 발치에서 영화를 두편, 때때로 한편을 보고 학교에 갔다고 한다. 본인의 학업은 둘째치고 본인의 부모님에게도 못할짓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았는데. 후배는 실로 광기에 가득찬 얼굴로 오빠, 그럼 오빠는 영화보고 싶은걸 참을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영화는 해로운 매체가 맞고 어서 깡그리 다 불태워버려야한다.

나는 가끔 궁금해한다.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주인공들. 저 멀리 사라지는 햇볕 아래에서 찍은 것처럼 갈색으로 바래있던 그 광경들. 총을 맞아 쓰러진 사람들. 어딘가로 떨어져 굴러가버린 과일들. 그 모든 것들은 정말 세상 어딘가에 존재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모두 영화의 구성요소와 세트일 뿐으로 저 모든 사람들과 과일들 모두 촬영이 끝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일까? 그리고 모두들 21세기가 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는걸까?
그리고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것들이 정말 나의 것일까 아니면 천개가 넘도록 본 티비 드라마 단막극의 주인공이 하고 있던 생각일까.

24년 8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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