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면서 자리에 일어나 자판을 두들긴다. 나는 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책장을 살펴본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너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게 될까.


[20100131] 에필로그 또는 패배

나는 망가졌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를 미쳤다고 칭한다면, 나는 미친것 같다.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서 혼자 낄낄거리면서 웃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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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사진관 집 아들. 사진을 찍는 걸로 돈을 번 적도 있지만, 최근 충격적이게도 아마추어에게 "사진 정말 못찍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닥 틀린 얘기도 아닌지라 겸허하게 자신의 형편없는 촬영실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카메라를 갖게 된 것은 8년만이다. 군대에 가기 전 원래 아버지의 카메라였던 니콘과 렌즈를 돌려드리고 사진을 이제 다시는 안 찍어도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게 8년 전인 거다. 그 동안 두 명의 대통령이 있었고(세명의 대통령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몇 명의 여자친구가 있었고 대학 2년생이었던 나는 2년차의 회사원이 되었지만. 카메라는 한 개도 없었다.
카메라가 갖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찍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온 후론 주기적으로 카메라 뽐뿌에 시달렸다. 올림푸스 Pen에서부터 시작했고(실은 내 책상엔 지금도 오리지널 Pen이 있다. 바로 그 필카 말이다.) 소니의 Nex나 알파 시리즈 같은 거. 때로는 회사에서 나오는 등외품 카메라를 사고 싶어져서 마우스 훨만 주륵주륵 굴리곤 했다. 옆자리의 과장님에게 말한다. 저 또 카메라 뽐뿌왔어요. 사지 그러냐. 아니 잠시만 버텨내면 됩니다. 이렇게 2년을 버텼다. 그런데 문득 Pen이 싸게 팔길래, 다른 것도 아니고 몇십년 째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Pen이길래 사버렸다. 5분만에 고르고 2분만에 결재하고 1분만에 후회했다. 왜 샀지 왜 샀지 그러면서.
회사로 배송지를 잡은 것도 그래서일까. 왜 안오징. 주말인데 왜 안오징.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는 게 싫었나보다. 카메라를 기다리는 것도 가지고 노는 것도 싫었나보다. 주말 내내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뒹굴거리면서 곧 도착할 카메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사실 잘 보지 않았다. 일도 바빴거고요. 카메라가 도착했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얼른 택배 상자에서 메뉴얼만 빼서 가방에 집어넣고는 상자채로 봉인했다. 파트장이 다가오더니 왜 하이브리드로 샀냐. 똑딱이는 싫어서요. 데쎄랄은 부담스러워요 고르는데 세달 사는데 한달 걸릴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더니 잘했네. 이러고선 한참 상자를 본다. 삼성꺼 좋잖아. 옆자리 과장이 손사레를 친다. 무슨 소리에요 소니가 나아요 하이브리드는. 합치면 나이가 여든이 다되는 양반 둘이서 하이브리드로는 뭐가 좋은지로 싸우기 시작한다.

집에서 상자를 뜯었다. 하얗다. 응 내가 하얀거 샀지. 싶어서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메모리를 꽂는다. 그랬더니 할게 없어서 만지작만지작 스트랩을 묶는다. 한참이 지나도 충전은 될 기미가 안 보인다. 잠시 꽂았다고 충전이 되면 더 이상한게 아닐까. 모르겠다. 왜 충전이 안될까. 메뉴얼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예전엔 셔터 스피드랑 조리개만 대충 계산해서 노출 맞추면 됐었는데. 포커싱은 렌즈를 만지작거려서 헀는데. 뭐야 이건. 잔다.

이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배터리를 꽂는다. 켜보니 켜진다. 날짜를 맞춰보니 맞춰진다. 최소한 시계할만큼은 되는거지? 생각했다. 렌즈를 끼워보니 예쁘다. 흔들흔들 흔들어보고 메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간지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싶어서 카메라를 이곳 저곳에 겨눈다. 카메라를 잡은 손이 낯설다. 이젠 차라리 요리를 더 잘할거다. 프레스코화를 그려보라고 해도 이렇게 당황하지 않을텐데

찰칵, 하고 카메라가 돌아간다. 오른손에 잡히는 렌즈가 낯설지만. 친하게 지내자. 라고 말을 걸었다. 

카메라도 뭔가 대답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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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스무디킹을 홍보하는 엔젤푸드 봇.  

술이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얼굴이 빨갛게 되었나 싶으면 묵묵히 술자리를 정리하고 사람들을 집에 보낸다.
술을 싫어하시냐고 묻는다면. 결코 싫은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술을 먹는다는 것은,
너무 많이 마셔야하고 억지로 놀아줘야하고 재미없는 술자리 게임에 함께 해야하고 집에 늦게 가야된다는 걸 의미하니
좋아할 수가 없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의 범위가 지방출신 대학생 신촌 자취방 수준으로 좁으니 술자리 대부분이 싫다.
좋아한다면 친구들과 조금의 안주 작은 술병을 들고 잠시 쓸데없는 얘길 하다가 집에 가는 것.
돌아가는 길에 맥주를 사서 제3세계 작가의 책을 읽으며 홀짝거리는 것.
이런 내 음주취향에 대해 너무 노인스럽다는 의견도 있지만 뭐 어떻게 하겠는가.
혼자 방에 누워 세계가 나무처럼 천천히 확장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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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휴양지는 살기 좋다.

다른데선 500원 하는 생수가 1200원이라든가 앗차 하는 사이에 1주일 만에 한달치 월급을 다 쓴다던가 하는 문제만 제외하면 휴양지는 살기 좋다. 너무 비싸서 관광객이 아예 손도 대지 않을 정도로 비싸지 않는다면 정부도 물가에 신경쓰지 않지만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택시기사라든가 사기를 치는 가이드 같은데는 아예 철퇴를 내린다.

나로선 관광산업에 어디 정당한 목적이나 생산적인 부분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일단은 편안한 휴식과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관광객과 지역사회의 수요공급이 맞아 떨어졌을 때 관광지라는게 성립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사기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아무리 춘천이 강원도 도청소재지로서 닭갈비는 맛있지만, 조용해서 그닥 관광으로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고 해도 즌상이가(발음에 정말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살던 곳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떼로 몰려오는걸 볼 때. 그 메카니즘이 극히 불합리한 "선호"위에 합리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런 얘길 하는 이유는, 정말 외국의 생활을 알려면 관광지에 가서는 안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에 있어도 휴양지에 가면 실생활 감각을 잃고 보통 때라면 죽어도 안 살 부채춤추는 인형 같은걸 산다. 그런데 다른 나라, 심지어 휴양지에 간다면 오죽하겠는가. 뭐 다른 나라의 생활을 알기 위해 간다...면서 관광을 가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말이다.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를 다녀왔다. 
조호바루는 조호주의 주도로서 싱가폴에 맞붙어 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중에서도 유수의 부자도시이다. MRT(전철)을 타고 우즈랜드역에 내려 버스를 타면 금방 접경지역에 도착한다. 한국에선 왠지 상상하기 힘든 육로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다시 버스를 타면 지그재그 요상한 길을 올라 말레이시아에 도착한다. 

싱가폴에 워낙 가까이 있기 때문에 싱가폴 사람들에게 "시간 있으면 조호바루라도 다녀오세요."라는 얘길 많이 듣지만. 말레이시아 여러분 죄송합니다. 조호바루는 정말 아무 매력도 없는 땅이다. 여자로 치면 9살때 부터 아이돌가수의 팬덤에 투신해 어느새 삼만명 짜리 카페의 운영자가 된 14살짜리 여자아이며 남자로 치면 7세부터 22세까지의 모든 남자다.

취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낡은 건물과 시끄럽게 들려오는 볼리우드 풍의 음악이 매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불결한 음식물과 외국인을 째려보는 말레이인들이 매력이라고 해도 얘기가 다르다. 하지만 말이지 바닥에 얼룩무늬 처럼 새똥이 널려있고 터미널 바로 앞에서 관광객들이 먹다 남긴 맥도널드 사이드 메뉴를 씹고 있는 사람이 있는건 어떻게 봐도 매력은 아니다.

싱가폴 사람들은 강도 조심하세요,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정말 있어요. 그것도 많아요. 이런 소릴 하면서 도대체 왜 조호바루에 다녀오라고  하는지 알수가 없다. 아마 그건 과거 싱가폴이 말레이 연방의 하나 였으며 언제든지 말레이시아처럼 될 수 있다는 자각을 갖고 살아가야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 매력하나 없는 땅에서 나는 뭔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싱가폴 처럼 잘 정돈되어 있지도 않으며 방콕처럼 수도이자 관광지도 아니다. 험상궂은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일을 나가는 이 도시를 몇시간 동안 걸으면서 이 도시의 생활감각을 느낀 듯한 기분이 든다. 무슨 생각으로 이 오줌냄새 나는 교차로를 걷고 찌그러진 벤치에 앉고 더럽혀진 계단을 오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정말 말레이시아 사람이 되어 그들과 잠시나마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누구도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말레이시아의 관광지에 갔다면, 분명 느끼지 못할 기분이었으리라.

나는 웃지도 성내지도 않고, 묵묵히 길을 걸었다.

어긋나거나 주저함도 없이.

그렇게 많은 것을 잊은척 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이번은 칠리크랩의 이야기이다.

싱가폴의 가장 유명한 음식은 칠리크랩chili crab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게 요리임에도 불구하고 싱가폴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국의 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는 싱가폴에서 달리 눈에 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싱가폴의 문화 특징을 설명 할 수 있는 용어 중에 '페라나칸peranakan'이라는 것이 있다. 싱가폴에서는 주로 인도네시아인과 중국화교들과의 혼혈로 19세기부터 꾸준히 인도네시아와 부근 지역에서 살기 시작해 이제는 싱가폴의 다수로서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싱가폴의 특징적인 혼합문화를 설명하는데 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건축양식은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식문화에 있어서도 그들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데 칠리크랩이 말레이시아와 중국음식의 혼합이라는 면에서 싱가폴의 가장 싱가폴 다운 음식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칠리크랩은 신선한 레드칠리와 토마토 소스, 신선한 달걀, 파로 만든 그레이비를 곁들여 만든다. 걸죽한 양념과 함께 볶아내고 향초를 곁들인 커다란 게요리라고 할 수 있는데 매운 요리인 만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다. 토마토 소스의 영향으로 살짝 단 맛을 내는 이 요리는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먹게 되지만 손으로 먹는 것이 이 보다 잘 어울리는 요리도 드물다.
코리엔더 향이 약간 풍기는 소스에서 게 다리를 꺼내 껍질을 부순다. 살이 가득한 게살은 탄력이 가득하며 살짝 튀겨진 향초의 향이 콧속에 가득 퍼진다. 보통 추가적으로 시켜야하는 빵이나 볶음밥은 소스와 함께 먹기에 딱 좋다. 비싸기 때문에 먹기에 양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먹다보면 배가 부르는 것과는 다른 만족감이 생겨난다. 매운맛과 껍질을 입에 물고 먹어야하는 게라는 요소 때문인지 금세 입이 얼얼해지며 만족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칠리크랩이다.

유명한 가게로는 클락키의 점보가 있지만 점보는 관광객 상대의 가게로 싱가폴의 비싼 식당이 그렇듯 시간내에 식사를 마쳐야한다. 그것보다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이스트 코스트 시푸드 센터로 택시를 타고 가 그곳의 롱비치를 이용하는 것. 시푸드 센터 자체에 많은 해산물전문(정확히 말하자면 모두 칠리크랩이 메인인 가게)가게가 있지만 롱비치가 그중 가장 오래되었고 칠리크랩을 만들었, 아니 최소한 돈주고 팔기 시작한 가게로 소문이 나있다. 점보나 노사인보드 같은 가게도 물론 시푸드 센터에 입점해있다. 하지만 한국인 입맛에 가장 맞는 칠리크랩은 역시 롱비치. 맵고 자극적이다. 웨이트리스에게 한국인이란 걸 들키면 자연스럽게 가장 매운 (클래식도 있고 맵지 않은 것도 있다.) 칠리크랩을 추천해준다. 입가에 썩소를 짓고 가장 맵다는 칠리크랩을 먹어주도록 하자. 물론 그닥 맵지 않다 그래도 다 먹을 때 쯤엔 입술이 후끈거리는걸 피할 수 없다.

특이할 만한 점은 싱가폴의 가게는 기본으로 나오는 것이 없다는 점. 물티슈, 같이 나오는 땅콩 같은 것도 나중에 계산서를 확인해 보면 다 포함되어 있다. 물티슈야 칠리크랩을 먹는데 필수지만 땅콩은 맛도 없기 때문에 가지고 오자마자 필요없다고 돌려보내도록 하자.
롱비치에서 맛있는 것은 삼발깡콩이라는 야채 볶음. 빵을 시켜도 좋지만 세트로 책정되어 있는 메뉴를 먹으면 2인 메뉴 기준으로 키180이 넘는 남자 둘이 먹어도 배부르게 먹을 정도다.

또 주의해야할 점은 좀 비싼 음식이긴 해도 싱가폴 체류 중에 두 번 정도는 먹어주는게 좋다는 점. 맛있는 음식이지만 조금 비싸. 이렇게 생각되긴 하지만 한 번만 먹고 싱가폴을 떠나게 되면 꼭 생각나게 되어 있다. 두 번 먹어서 칠리크랩에 대한 미련을 싱가폴에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솔직히 정량은 두 번 반 정도라고 생각한다.
두 번 먹으면 조금 생각나지만 세 번 먹으면 조금 질리는 정도의 맛이다.

 

두 번 반. 오묘한 숫자다.

 

그 덕에 그 반만큼 나에겐 무언가가 남았다. 언젠가는 싱가폴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아침으로 라면을 먹어도 괜찮은 소년. 불행하면 살이 찌는 이중고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009년에 썼던 여행기를 블로그에 갱신 중이다.

여행기는 싸이 게시판에 써둔 것이다. 약 세달이 넘게 이어진 여행기로. 실은 '매일매일'썼다.
일부분은 저장을 하지 못해 연습장에만 써있고 일부분은 티스토리에는 게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용은 하나도 대중없이 웃긴가 싶으면 우울하고 정보가 가득한가 하면 쓸데없는 내용만 들어가있다. 친구가 여행기라면 좀 더 내용이 충실해야하냐고 물어본적이 있는데 그런 읽으면 보람이 찬 여행기를 읽으려면 서점에서 돈 주고 사라고 말해주고 엉덩이를 발로 차버렸다.

지금 본인으로서도 뭘 올려야하고 올리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초반부는 어떻게든 대부분을 다 실었지만 점점 글이 쉬르리얼리스틱해지고 저질스럽게 웃기게 된다. 특히 싱가폴 동물원에 대해서 쓴 동물원 3부작은 정말 웃기긴 하지만 정말 전위적이라. 이걸 일반에 공개해도 내 얼마 안남은 사회적 평판이 괜찮을지 고민이 된다. 
대작이지만, 제목도 이 따위이다.

1편: 아가씨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다.
2편: 호랑이는 우리 안을 배회한다.
3편: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지만, 안녕 곰아저씨 

궁금하다면 밑의 동물원 3부작 예고편을 읽어보자.

[1편 줄거리, 카레신사는 버스를 타고 동물원에 도착해 악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는 양키 남자 둘을 발견한다. 그런 그는 8.9불짜리 피자 네개를 시켜 먹고 있는 양키를 보고 다시 한 번 분노. 동물원에 들어가자마자 기념품 점으로 향하는데….카레신사는 양키에 대한 이 풀지 못할 분노를 극복할 수 있을까?]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겠는가? 이런걸로 본편의 내용을 가늠해낼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그 만큼 심혈을 기울여서 쓴 이야기라 티스토리에 올리려면 처음부터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누가 이런 걸 읽으면서 기뻐해줄 거라곤 생각 안하지만. 그래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기쁠 것 같다.

글을 쓰고 싶다. 더 많은 글을 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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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고 싶다.

항상 쓰고 있는 다이어리와는 별개로 뭔가를 쓰고 싶었다. 여행기일 수도 있지만 여행의 이야기이기보다는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며 내키는 대로 농담을 쓰거나 조금은 복잡한 사고를 거쳐서 나온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매일 날짜를 붙여서 그날 있었던 일과 관련된 일들을 쓰는건 그냥 그렇게 쓰는게 아무 맥락 없이 쓰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내 글 대부분이 그렇듯이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으며 (읽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싸이 게시판에 썼던 다른 글 처럼 곧 비공개로 전환되어 내 기록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내 답장이다. "세상"에 대한 답장. 결국은 글을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언젠가는 결론을 지어야 할 삶의 어떤 '장'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처음장과 함께 마지막 장이 같이 쓰여졌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Long goodbye(기나긴 이별)"이며 익히 알려진 것과 같이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 실질적인 최후의 작품이고 나는 이 작품을 내 이번 여행 가방에 쑤셔넣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미 존재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뭔가를 배워가고 꺠달아가고 있다는 듯이 쓰고 있었지만 마지막 한 문장을 이미 정해놓고 그곳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뿐. 내가 깨달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쩌면 나는 내가 어떤 외국생활을 하든지 결국에 어떤 흐름을 따라 한 결론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서 계속 쓰여지고 있고 결국은 내가 준비해 놓은 마지막 한 문장과 동시에 내가 준비해 놓은 끝으로 진행되게 된다. 나는 결국 글쟁이이기 떄문에 끝맺음을 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글 "인연"을 쓰면서 (원래 이번 글의 내용은 말레이시아 여행에 대한 농담이 될 예정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듯, 인생을 만들어 갈순 없는게 아닐까. 신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나로선 읽을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내가 하고 있는 짓은 자기 만족의 멍청한 짓이 아닐까.

적절한 갈등?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이야기 흐름? 완벽하 결말? 인생에 그런게 있던가. 내가 맺고 싶어하는 그러한 형태의 끝맺음은 인생에는 없는게 아닐까. 어떤 이야기든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인생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지 인생 자체가 이야기가 될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얼마 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불교의 교리처럼 우리 인간들의 인연이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긴 것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도, 이을 수도 없어서 삼생에 걸쳐서 이어지는 것이란 걸까. 나의 분노도, 사랑도, 노력도, 지혜도 모두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서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전생에서도 사랑했고 후생에서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깨달음을 기다린다.
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꺠달음을 기다린다. 내 사고와 감정을 넘어서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해줄 깨달음을 기다린다. 내가 세계에 "답장"을 보낼 수 있게 해줄 그런 것을.

아직은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전에 깨달음을 기다릴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분명 그럴 것이다.

누군가 여행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한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할까.

솔직히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무슨 얘길해도 너무 씨니컬하다느니 애가 부정적이라느니 하는 소릴 들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갖은 구박과 나에 대한 정당한 중상모략을 다 감수하고 얘길 하자면, 여행의 좋은 점은 자기가 뭘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태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필요한 태국말이 뭐였냐..고 한다면 역시 마이 싸이 팍치”, 팍치는 빼주세요, 라는 말이다. 팍치가 뭐냐 하면 영어로 코리앤더, 또는 실란트로(코리앤더의 잎을 실란트로라고 한다)라고 하며 우리나라 말로는 고수. 우리나라의 태국음식점에선 그닥 쓰지 않지만 굉장히 오묘한 향을 지닌 향초다. 몸에도 굉장히 좋고 특히 식중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서 동남아시아의 위생관념에 의문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먹어주는게 좋다.

, 먹을 수 있다면 말이지. 난 못먹겠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수 십년을 살면서 못 먹는 음식은 일단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솔직히 팍치는 못 먹겠다. 아니 먹긴 한다. 하지만 너무 괴롭다. 양이 적은 동남아시아의 음식들도 팍치가 들어만 가면 반그릇으로도 충분한 음식이 된다. 실제로 태국에서 여행할 땐 아메리칸 블랙퍼스트 식인 호텔 아침 부페만 죽어라 먹고 하루종일 소식만 하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태국인들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역시 인류는 하나다. 똠양(태국의 국물요리)은 너무 유명해져서 거의 맛이 스탠더드화 되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어딜 가도 비슷한 수준의 맛을 즐길 수 있는데, 불행히도 개중에는 팍치를 마음껏 쓰는 인심좋고 전통에 충실한 요리사들이 있다. 제발 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 요리사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가.

 

또 싫어하는걸 깨달은 게 있다면 바로 코코넛. 영화 같은데서 코코넛을 너무나 맛있게 깨먹기 때문에 다들 우왕 저건 맛있는거..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게 틀림없다.
진실을 얘기해주자면 더럽게 맛없다. 물도 아닌데 그렇다고 달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어정쩡한 맛이다. 삼킬 때 목으로 그냥 삼켜야한다. 혀에 닿으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피부로 코코넛의 수분을 흡수해서 입안에 넣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건 무리다. 우린 진화의 과정에서 뭔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리의 선조가 입을 통해 음식물을 흡수하기로 결정해버렸기 때문에 우린 코코넛을 입으로 먹어야 하는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코코넛이 싫다면 눈치 챘겠지만 코코넛 밀크도 싫다. 다시 말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모든 밥 종류가 싫다. 코코넛 밀크로 밥을 하기 때문인데 웃으면서 밥을 먹다가 입안 가득히 퍼지는 코코넛의 향기에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찾게 된다. 내가 만든 파스타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맛에 굉장히 관대한 편인데.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을 두 세번 먹다 보면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중국인에 대한 이상한 감정을 갖게 되는걸 느낄 수 있는데 내가 알기론 그 감정은 바로 사랑. 밥을 먹을 때 딤섬이나 중국음식점을 헤매여 찾게 되고(여기까지 와서 한식이나 일식을 먹을순 없지 않은가) 중국인들에게 동포의식까지 느끼게 된다. 졸지에 10억명의 형제가 생기는 셈. 말레이시아에 가면 확실히 그런걸 느끼게 된다. 중국인들도 이상하게 우리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다.

 

무엇보다 싫은게 있다면. 바로 두리얀. 과일의 여왕. 하지만 냄새는 왕.

기억난다.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이 싱가폴에 갔다온 이야기를 했을 때 한국에서 사과가지고 가서 비싼 과일이랑 바꿔먹었다느니 하는 소릴 하하 웃으면서 듣다가 갑자기 두리얀이라는 지옥의 과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심각한 모습이 되셨을 때, 나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두리얀을 들고는 호텔에도 비행기에도 못 들어간다는 얘기도 좀 과장이라고 생각했다.(물론 레스토랑에도 안된다. 태국에는 입구에 노 두리얀이 붙어있는 곳이 꽤 있고 호텔 경고문에 분명하게 써있다.)

아냐. 그거 정말이었어. 두리얀은 정말 지옥의 과일. 냄새에 관해선 진짜 왕에 가깝다.

나도 처음엔 그닥 역하지 않다. 나름 달콤한 냄새다. 라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냄새가 나는 쪽으로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냄새는 나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무슨 이상향처럼..)그렇다. 내가 맡은 냄새는 약 15에서 20미터 가량 두리얀에게서 떨어졌을 때 나는 냄새 였던 것이다.

쇠고기 만큼 다양한 등급의 두리얀이 있는데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건 역시 냄새의 강력함과 그 범위,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서양인을 냄새로 죽일 수 있는가로 판정 하는게 아닐까. 거짓말이 아니다 밀봉한 비닐 팩에 씌워놔도 3미터 밖에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과일가게는 10미터 멀리에서도 오직 두리얀 냄새 밖에 나지 않는다. 태국의 뒷골목, 그리고 싱가폴의 뒷골목에는 쓰레기 냄새 따윈 나지 않는다. 두리얀 냄새가 난다. 이제는 사라져 그 모습 간데 없지만 두리얀의 냄새는 뒷골목에 영원히 남는다. 미식축구 뛰고 보호장비 벗고 샤워는 안 한 채로 치즈 버거 먹으러 온 미국인보다도 훨씬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면 어떨까? 아니 냄새 발전기라 불리우는 인도의 카레 전문점의 냄새는? 솔직히 다 두리얀에게는 상대가 안된다. 그것은 바로 왕의 냄새. 범상한 인류가 판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내가 여행 도중 싫어한다는 걸 깨달은 세가지 물건. 또는 냄새에 대해서 적어보았다.(그 외에도 싫어하는게 많아지긴 했다. 예를 들어 태국의 교통사정이나 싱가폴의 택시 할증) 여행은 자기를 발견하는 것. 이라는 말에 대해 자기가 이제까지 몰랐던 싫어하는걸 발견하게 되는거니 역시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 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도 자기가 뭘 싫어하는지 발견하러 가는건 어떨까? 너무 늦기 전에 마이 싸이 팍치, 이 한 마디 만은 확실하게 익히고 태국을 가는게 좋을 것이다. 정신 차려보면 호텔의 아침 식사만 죽어라 먹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커다란 나무를 보면 기분이 좋다.

보통 너무 커다란 것을 보면 무서워 지기 마련인데(예를 들자면 미군부대에서 시킬수 있는 점보 사이즈 버거와 밀크 쉐이크, 슈퍼모델, 너무 큰 레포트 뭉치..) 나무는 아무리 커도 사람을 무섭게 만들지 않는 몇 안되는 물건이다.

싱가폴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많다. 길가에, 공원에, 그리고 도심에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년 수령의 커다란 나무들이 서있다. 남쪽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한 걸까? 아니다. 최소한 내가 본 방콕의 시내는 그렇지 않았다. 위도상으로 방콕이 살짝 북쪽이긴 하지만 거의 같은 기후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싱가폴은 훨씬 푸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싱가폴의 나무들은 대부분 아프리카 수종이다. 수십년전 아프리카에서 나무들을 사와 자기들의 땅에 심은 싱가폴 행정부는 나무에 번호를 붙이고 세심하게 그들을 관리한다. 이 섬뜩해보이기 까지 하는 싱가폴의 섬세한 국가정책은 싱가폴의 힘과 이 작은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모두 간접적으로 알수 있게 해준다.

싱가폴은 흔히들 유교적 사회주의라고들 한다. 농담처럼 현재 존재하는 단 세 개의 사회주의 국가를 일본, 싱가폴, 북한이라고 하는데, 싱가폴은 단 한 사람의 구상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정신적으론 영국인이자 싱가폴의 국가적 멘토인 '리콴유'는 오랜 시간에 걸쳐 싱가폴을 정교한 예술 제품처럼 만들어냈다. 물론 싱가폴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명성이나 국제적인 위상을 생각하면 이 적도 부근의 도시국가가 단 2세대 정도(65년 공화국 설립)에 만들어졌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물론 그가 싱가폴을 독재 하에 운영하고 있으며 수상자리를 자기 아들에게 맡김으로서 세습체제로 영구적인 권력자의 위치까지 노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국가들 또한 독재정부 하에 운영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 지역에서 싱가폴의 경우가 그리 특별하다고 볼 순 없으며 오히려 같은 독재 정부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자본 이동과 탄탄한 해운 산업 기반으로 일본과 홍콩에 버금가는 아시아 자본의 상징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의 독재가 매우 특별한 것이란걸 반증한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자본을 싱가폴로 결집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것이다. 혼란 속에 빠져 있던 1960년대의 동남아시아는 많은 자원과 인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독재나 군부의 통치 속에서 효율적으로 통제 할 수 없었고 행정적인 통치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국민들은 교육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낮아 치안도 불안했다.

그러나 일찌기 영국의 식민지이자 일본의 식민지였던 싱가폴은 일단 공화국으로서 기능하게 되자 사회주의 기조 하에 강력한 행정력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모든 독재국가는 강력한 행정력을 가질 수 밖에 없지만) 안정적인 국가환경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일단, 강력한 벌금과 국민통제를 통해 치안 등에서 외국에 신뢰받을 수 있게 되자 안그래도 해운에 있어서 중심지였던 싱가폴의 항구들은 치안이 불안정한 주변의 항구로 가는 배들을 모두 끌어들일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안정적인 치안과 효율적인 해운이라는 메리트는 주변의 화교자본을 끌어들이면서 싱가폴의 빠른 성장을 견인해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보이는 싱가폴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싱가폴 정부의 사회주의적인 특성때문이다.
싱가폴 도심을 다니다 보면 뜬금없이 녹지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새로운 쇼핑센터(한국과는 전혀 다른 규모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가 어디선가 계속 지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광경으로 가장 번화한 상점가인 오차드 로드에서 조차 새로운 쇼핑센터가 생겨나고 중심지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클락키에 5년전에만 해도 없던 레스토랑 가가 생겨나있다. 그건 싱가폴의 모든 토지가 실질적으로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99년, 999년 기준으로 국가를 사용자에게 빌려주며 이런 정책은 국가가 지대를 통해 자기의 배만 불린다고 비판을 듣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도시국가로서 부동산이 폭증할 가능성이 있는 싱가폴의 땅값을 안정시키며 낮은 수준으로 유지함과 동시에 국가가 전체적이고도 효율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해서 언제라도 도심지역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의 건축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하자면 영등포에 새로 생긴 타임스퀘어는 경방백화점의 자리에 생겨난 것으로 과연 우리나라의 그런  번화가 자리에 더 이상 대규모의 쇼핑몰이 생겨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한 서민아파트를 가장 중요한 지구인 지하철 부근에 건설함으로서 월 20만원 이하의 집세만으로도 서민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관리. 싱가폴의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교적인 서민주의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건 다민족 국가인 싱가폴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국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싱가폴은 불안정한 국가이다. 독재로 인한 강력한 행정과 결집되어 있는 국제적 자본, 사회주의 기조를 통해 이룩한 서민정책에도 불구하고 싱가폴의 위치는 불안하다. 전술한바와 같이 다민족국가에 외국인 노동자(한국 교민 2만, 일본 교민 7만..싱가폴 전체 인구가 430만 정도지만 실질적으로 300만 정도만 싱가폴 국민이라고 한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싱가폴은 군사적으로 강력한 대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낀 모래성과 같다. 싱가폴 자체적으로도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역사가 짧아 충성도가 낮고 소속감이 거의 없는 싱가폴의 국민들은 국가 산업 특성상 자유화 되어 있는 자본의 이동을 등에 업고 언제든지 싱가폴을 떠날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나무에 번호를 붙이듯이 통제해 온 싱가폴의 국민들이 국가적 위기에서 자신들의 자본을 희생해가며 싱가폴에 충성하리라 생각하기 힘들다. 민주주의 체계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쓸려나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바로 국가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는 자각에 의해서 였던 것이다.

1923년생인 리콴유에게 남은 시간이 길다고 보긴 힘들다. 얼기 설기 만들어져 강력한 행정력과 사회주의 기조 아래 완성된 이 나라가 언제까지 유지 될 수 있을지는 알수 없다. 싱가폴이 가진 강력한 자본은 사실 싱가폴이 가진 무기이자 주변 국가들이 싱가폴을 노리게 만드는 먹음직스러운 과실이다. 이 작은 나라가 작은 지방이 되는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항상 재미있게 살기는 참 힘들다. 내 경험에 의하면 시트콤 처럼 재미있는 일만 일어나는건 불가능에 가깝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항상 비루하고 지루하다. 있다면 그 어떤 한심한 일이라고 해도 재미있게 만들수 있는 재미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 재미있는 사건이 있는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항상 재미있게 살 수는 없다. 인간에겐 주어진 일정 수준의 재미 마일리지 란게 있어서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포인트를 가지는 법이라 보통 재미있는 사람도 마일리지를 다 소진하고 나면 한심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재미 마일리지가 머리 끝까지 차 있다고 해도 재미있게 만들기 너무너무 어려운 일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휴양지에서 4박5일의 휴가를 보낸 후 돌아가는 날 이라든지.
그렇다. 휴양지에서 돌아가는 날은 어떻게 해도 재미있게 되기 힘들다. 게다가 급하게 짐을 싸야하는 데다가 짐이란게 장난이 아닐 경우가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서 가볍게 싸온다고 싸왔는데 짐의 태반이 태국(태국 또한 한가지 예다)의 기후에 맞지 않는 옷이라 입지도 않았고 현지에서 사온 티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그 티셔츠란걸 아무 생각없이 너무 사버린 덕에 가방이 터질 정도고, 인도인 테일러를 만나 양복 합계 4벌 추가 바지 3개 셔츠 합계 8벌을 샀으며 각자 구두가 너무 싼 나머지 구두 두 켤레에 가방까지 사고 말았다.....는 예를 들 수 있는데. 생각만 해도 마음이 갑갑해질 정도 아닌가?

이런 짐을 급히 싸야하는데 마음이 풍요롭고 즐겁다면 그건 재미 마일리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즐겁다는 사람은 경찰에 신고해 아무래도 얘 마약하는 것 같아요, 라고 신고해야한다.

게다가 휴양지가 마음에 들었다면 더 빡치는 노릇이다. 돌아갈 곳이 에...예를 들어 싱가폴? 아니다 애팔래치아 산맥 같은 걸로 해보자.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에서 소를 치는 목동이 재미 마일리지를 3년간 모아 태국..아니 로스 앤젤레스에 갔다고 치자. 가서 스티븐 시걸도 보고 패리스 힐튼이 들린 가게도 가보고 채식주의자들이나 먹는다는 콩버거도 먹어보는 등 너무너무 즐거운 휴가를 보냈을 때.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돌아가는 그의 마음은 어떠할 까? 게다가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한 자각마저 한다. 아...나는 쇠고기를 싫어한다. 채식주의자였구나! 이러면서. 3년간 모아온 것이니 만큼 재미 마일리지가 300포인트 정도 남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울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휴양은 언제나 끝나는 법. 금세 끝나 버린 휴가는 길게 여운을 남기고 당신은 한참 동안 우울증에 빠져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당신이 어떤 재미 마일리지를 쌓는 사람인지 모른다. 어떤 꿈을 지니고 있고 뭘 위해서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다만 어금니를 깨물고 현재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만 알고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은 항상 인생 그 자체보다 더 긴 일상이다. 우린 또 어찌됐든 비루한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재미 마일리지를 사용해가며 재미 마일리지를 모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꾸면서... 즐길 수 없다고 그걸로 모든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애팔래치아에서 소를 치는 목동에게도 삶을 사랑할 기회는 언제나 있다. 즐거운 일 따윈 하나도 없지만, 당신이 운만 좋다면 일상을 휴가보다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믿으라. 내 말은 대부분 틀리지만 가끔가다 옳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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