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월 모일.

어머님의 기별을 살피고 밭에 나가 하인들과 기장을 살피었다. 노대가 올해는 비가 잦지도 부족하지도 않아 기장이 잘 자랄 것이 틀림없다고 몇번이나 반복하였다. 오후엔 구방인이 인편이 보낸 편지가 왔다.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편지를 읽었다

모월 모일.

낮에 말을 보아달라는 사람이 왔다. 손대인 손대인 하며 내 분에 넘치는 선물을 가져왔기에 선물은 돌려보냈지만 말을 감정해주었다. 나보단 수도의 구방인이 명인이니 다음엔 그를 알아보오 하자. 어찌 천하에 백락선생보다 말을 감식하는데 뛰어난 자가 있겠소 하고 부끄러운 말을 했다.

모월 모일.

기장을 돌보는 중 사람이 왔다. 백락 선생. 하고 부르기에 고개를 숙였는데 구방인이 찾아온 것이라 왈칵 껴안고 구대인 어찌 기별도 없이 오셨소 하고 물었다. 말없이 웃기만 하여 밤새 술을 기울였다.
내 말을 하나 골라두었다오. 하더니 수도에서 본 말 중에 제일로 훌륭하니 선생께 보내겠소. 하며 웃었다. 싱겁기도 하다 그 친구. 어떤 말이길래 그토록 훌륭하오? 하고 물어보니 밤색의 암말이라오. 하고 대답했다. 새벽이 되자 곧 채비를 하더니 목공이 기다리시는 수도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월 모일.

하루 종일 동풍이 불어 바람막이를 세웠다. 백락 선생은 귀하신 몸인데 어찌 이런 일을 직접 하는가? 하고 촌부가 묻기에 술을 꺼내 한 잔을 마시라 하고 주었다. 말을 보는데 최고의 명인은 이제 구방인이오. 내 하나 뿐인 벗이라오. 하고 말하자 촌부는 과연 과연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구방인이 보냈다는 암말이 도착하질 않았다. 수도에 돌림병이 돈다니 그 탓이 아닌가 싶다.

 

모월 모일.

수도에서 사람이 왔다.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온 그는 곧바로 내 집 앞에 달려와 구방인이 병마로 숨이 경각에 이르렀으니 나를 모시러 왔다고 말했다. 소매를 묶고 여행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사람이 수도에서 와서. 구방인 어르신이 한시라도 빨리 백락 선생을 모시러 오라 하였다고 했다. 동구 밖을 건너자 멀리 이마에 흰 수건을 두른 사람이 보였다.

망연자실하여 수도까지 다녀오는데 손발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모월 모일.

목공께서 사람을 보내 이제 말을 알아보려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냐고 전갈을 보내셨다. 이제 저는 말을 찾으러 가기 위해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없나이다. 멀리 수도를 향해 절을 드리고 서한을 인편에 전달하였다.


모월 모일.

구방인이 보낸 말이 도착하였다. 구방인은 밤색 암말이라고 하였으나 도착 한 것은 검은색 종마였다. 달리는 모습을 보니 역시나 천하에 다시 없을 명마였다. 잘 자란 기장 밭이 얼마나 푸른지 눈이 시려왔다.

 

 

몇 년 전 내가 꽤 오랫 동안 다리를 절고 다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얘기 하지 않았지만 이년 가까이 매일 진통제를 먹었고 매일 아침 일어나 덜 아프기만을 바랐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기어가듯 일어나 화장실로 갔지만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일 수도 없었다. 앉을 수도 없었다.
화장실 바닥에 누워서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


이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이없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고? 고통은 내가 살고 있는 집 바로 맞은 편에 있었다. 
다리는 어떻게 된거죠. 이런 경우도 있어요. 진통제를 강한 걸 드리겠습니다.
계속 이렇게 되나요? 아픈건 쉽게 가라앉으시지 않을거에요. 상태가 너무 심하니 조금 가라앉으면 수술을 하시죠. 수술을 하면 나아집니까. 수술만으론 나아지지 않습니다.
원래 이렇게 아픈가요. 네 원래 그렇게 아픈 겁니다.


매일 약을 먹고 일을 했다. 고집쟁이였기 때문이었다.
똑바로 걷는 연습을 했다. 좀처럼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아팠기 때문이다.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농담을 하고 일을 하고 집에 갔다. 일과에 병원이 추가되었고 일주일에 4시간은 병원에 있어야 했다. 사실 그냥 아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멀리서 부터 나를 알아봤던 친구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오는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지훈아 넌 줄 몰랐어. 다리를 절어서? 응. 다친거야? 아냐, 다친거 아냐. 나 이제부터 계속 이럴수도 있으니까 익숙해져야해.
말문이 막힌 친구는, 울기 시작했다. 나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에 내가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너무 많다. 그리고 사람의 수만큼 고통이 있다.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고통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삶을 이해 할 수 없다. 그냥 살아간다는 말에 납득할 수도 없다.
그 형의 말 대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내기라도 해야한다. 왜냐하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기 떄문이다.
앞으로, 앞으로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붙잡고 욕지기를 삼켜가며.


내가 이제 다리를 절지 않는 것은, 강남대로를 절룩거리며 걸어오는 나를 보던 친구가 나를 붙잡고 펑펑 울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5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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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를 먹는 즐거움. 2014년 5월 12일.


인천에서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다. 

이번 내 비행시간은 몹시 생산적이고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영됐는데, 이번 비행 동안 마왕이 찢어놓은 세계를 복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마물을 화염마법으로 지져놓았고. 4월 17일부터 5월 12일 까지의 가계부를 정리하였고(게을러서 항상 한 꺼번에 정리한다) 아베코보를 4페이지 읽었고 옆자리 꼬마에게 눈을 흘겨주었다(나는 너보다 나이가 25살은 더 많다고 크왕). 물론 그 중간중간 체력을 보충하는 잠까지 잤으니 이렇게까지 효율적이게 시간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업에 성공하고 싶으면 저처럼 시간을 사용하세요!


어쨌든 온갖 효율적인 일들을 다 하고 보니 뭔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져서 아이패드를 열었는데 별로 할일이 없다. 

(사실 닌텐도의 배터리가 다 닳았다. 왜 닌텐도는 돌리면 충전되는 미니 발전기와 발전기를 돌려줄 요정 두마리를 같이 팔지 않는 걸까)

한참이나 아이패드의 문서작성 어플을 열어놓고 뭔가를 써보려고 했는데 글은 무슨, 영어에세이 한 편을 뚝딱 쓸 기세였는데 실제론 5줄 쓰니까 더 이상 쓸 말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 정도 되면 본인의 재능을 탓해야 하지만 뻔뻔스러운 나는 '나는 배가 고픈걸까 배가 고파서 글을 쓰지 못하는거야' 하고 생각하고 있는 참에, 고맙게도 어탠던트 분들이 축축하고 끈쩍하게 늘어진 물건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그게 살아있는 붕어나 물에 적신 키친타올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크로와상에 치즈와 뭔가 이것저것을 싼 샌드위치였다. 

아 무엇을 숨기랴 나는 샌드위치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게 설령 랩으로 대충 싸서 안에는 습기가 차고 밖에는 마요네즈가 묻어나오는 물건이라고 해도 말이다.


샌드위치의 기본에 대해서 빵이라느니, 내용물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재료의 본질에 집착한 나머지 샌드위치라는 먹거리의 본질을 잊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좋은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가 좋다. 치즈는 한국의 슬라이스 치즈보다는 까망베르가 들어간 쪽을 좋아한다(그러려면 빵이 맛이 강해야지) 고기보다는 빵의 안 쪽에 버터를 발라 육류 맛이 나게 하는 편이 신나고 ...

아 미안합니다 이런 식으로 재료 얘길 꺼내면 끝이 없는데 말이지


하지만 진짜 기본은 샌드위치를 먹을 때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먹거리는 다 먹을 수 있었던 샌드위치 백작 나으리가 샌드위치를 찾은 것은 바로 져서는 안되는 카드 게임 때문이었고 분명 김혜수를 닮은 미녀가 옆 테이블에서 고혹적인 눈으로 '백작님이 이번 게임을 이기면 오늘 저 흐트러질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었을 것이고 12게임 연속으로 꽝카드만 나와서 이제야 말로 풀하우스 정도는 한 번 나오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오고 있는 그런 때였을 것이다. 맙소사 절대로 자리를 뜨지 않을꺼야. 야 집사! 빵이든 뭐든 아무거나 가져와! 네? 빵에다가 내가 좋아하는 소화 잘 되는 고기라도 껴서 가져오라고! 넵! 우오 샌드위치 먹는다 고기랑 빵 먹는다! 우오오!! 하고 먹었을 것이다. 굿럭 샌드위치, 당신은 멋진 남자였을게 틀림없을거에요.


샌드위치를 맛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것을 먹는 상황이다. 당신이 맛없고 비싼 부페에서 연어 샌드위치를 찾아 접시에 놓든, 여름의 낯선 거리를 헤매다 돌로 만들어진 계단에서 계란 샌드위치의 포장을 풀든. 

샌드위치의 본질은 바로 애타는 그 상황에 있고 그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그 상황이 당신을 샌드위치 적인 공간에 밀어넣는다. 당신이 여자친구와 있든, 여자친구에게 차였든, 여자친구가 될 사람 앞에 있든지 간에 샌드위치와 당신 밖에 없는 그 고독한 공간은 우리에게 흔치않은 성찰의 기회를 준다.


그럼 이제 샌드위치의 포장을 풀자. 갓 만들어진 거라면 모를까, 만든지 조금 된 샌드위치라면 포장지에 분명 소스가 잔뜩 묻어있을 것이다. 손가락에 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포장을 풀자. 어차피 소스가 손가락에 묻어 범벅이 되겠지만 빵을 만질때 까지 소스를 묻히는 것은 참아보자. 포장을 다 풀면 샌드위치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네가 바로 오늘의 샌드위치구나. 네 빵이 치아바타건 크로와상이건 상관없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하고 말해주자.

그리고 양손으로 샌드위치를 잡아라. 당신은 배가 고프고 이 신성한 먹거리는 몇시간 동안 당신을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손으로 잡지 말자, 두 손으로 잡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샌드위치라면 경건하게 떨리는 손으로 잡아주자) 준비가 되었으면 크게 한입 물자. 눈을 감고 물어야 하는지 뜨고 물어야 하는지 물어보지 말고 크게 한 입 물어서 빵과 삐져나온 내용물과 소스를 맛보자. 빵은 이빨에서 입술로, 입가로 번져가고 소스는 어느새 혀에 닿아 내용물과 섞이기 시작한다. 코에 기름기가 묻고 손가락에 빵가루가 묻었다.


알고 있다, 생각보다 맛이 없지. 샌드위치는 항상 그렇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맛있을수도 없고 이걸 따로따로 먹는 편이 훨씬 맛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입안에 든 샌드위치를 삼켜라. 두번째 한입은 분명 첫번째 한입 보다 맛있을 것이다. 인생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말이지.


샌드위치를 다 먹는 동안 그만 비행기가 착륙할 때가 되었다. 글은 언제 쓰지?

에라 모르겠다. 다음 샌드위치를 먹을 때 쓸수 있겠지. 항상 그런것 처럼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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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4일 오전 10시, 도쿄 오다이바 빅사이트

어제 누군가가 나에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수필로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네가 정말 느끼고 있는게 뭔지 생각하고 있는게 뭔지 적어보면 상처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내 경험상,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전부 드러내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언제부터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철이 들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증오하게 될 무렵에는 이미 내 모든 글이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해,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쓰는 글이 되어 있었다. 일부러 읽을 수 있는 곳에 일기장을 두었다. 노트의 구석에 사랑한다는 말을 써서 당신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읽었을까?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내 글을 읽고 어서 달려와 내 사랑을 깨닫고 나를 안아주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여지는 것에 가련할 정도로 신경을 기울이는 빈약한 자아로 쓰는 글이 얼마나 훌륭할지는...알수가 없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글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거기엔 진실이 아니라 가식이, 애정이 아니라 공포가, 삶이 아니라 애처로운 자기 변명만이 가득할 텐데 말이다.

그래도 글을 쓰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글을 쓰는 것 외에 나 자신의 조각이나마 구원하는 방법을 찾을수 없다. 
거짓말로 가득차 있는 내 인생에 흔적이나마 진실을 남기자. 
그것이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정당한 운명임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렇게 누군가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닿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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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신사: 닭이 싫은 한국인.


깐부치킨 순살크리스피를 사서 전철을 타니, 엄청난 냄새가 퍼져나갔다.

인내심이 없는 학생 몇명이 입을 모아 "치킨냄새"라고 외치면서 탐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누군가는 입을 열고,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쳐다보지만 모두들 끈쩍끈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팬티 라인이 비치는 흰 바지를 입고 전철에 탄 아가씨가 된 기분이다. 그만둬 내 엉덩이야 그만 쳐다봐.


어쩌다 이런 냄새나는 음식을 가지고 전철을 타게 되었느냐면, 그냥 일요일 오후에 뭔가 먹을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치킨을 먹으려고 했을 뿐이다. 평소에는 굽네치킨을 시켜먹지만 여자친구가 사줬던 깐부치킨이 맘에 들어서 그걸 먹으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 동네에는 매장이 없는 데다가 보통 배달도 안해준다고 해서 가장 가까운 매장으로 가지러 갔을 뿐이다.

그게 지하철로 4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막상 사러 갈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의지에 가득찬 원정이었구나.


솔직히 나는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한국 "치킨"요리가. 식감은 퍽퍽하고 고기는 빈약하다. 냄새는 역하고 튀기는 기술은 형편없으니 아무리 맥주랑 같이 먹는다고 해도 굳이 이런걸 먹어야 할 이유를 못 느낀다. 


물론 바야흐로 시대는 치킨의 시대라 내 초등학교 때 부터 멕시칸-페리카나-장모님으로 이어진 양념통닭라인 부터 안동찜닭의 시대. 치킨의 부활 교촌치킨. 오븐의 혁명 굽네치킨 그리고 현재의 닭한마리, 닭강정 열풍까지 한국인으로서 치킨에서 벗어나 살긴 힘들다. 프랑스의 근대 생활혁명의 모토가 가정에 닭을, 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고봉밥에 야채나 올려먹던 한국인의 식생활은 개선이 되어도 너무 되었다. 원래부터 학생에겐 치킨, 직장인에겐 삼겹살. 이었던 외식의 밸런스가 어느 때 부터인가 학생에겐 치킨, 직장인에겐 치맥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다.


다시 말해 치킨요리의 가장 중요한 원료인 닭(미안합니다 당연한 얘길 해서)이 수요과잉이란 점. 결국 이런 폭발적인 수요를 충당시키기 위해서 공장에서는 엄청난 양의 닭을 찍어내며 각종 영양제와 항생제를 먹인다. 운동은 커녕 산책도 한 적 없이 수많은 형제들과 꼬꼬댁거리다가 어린 나이에 뽑혀져 나오는 닭고기들이 맛이 있을리가 없다. 그런 닭 중에서 저품질의 닭은 당연히 원가압박이 심한 군부대나 학교로 납품이 될 것이고. 학생시절과 군인시절. 나는 그런 맛없는 닭을 먹으면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물론 옆의 전우들과 학우들은 닭마시쩡마시쩡! 이러면서 잘도 먹더만.


그래서 평소에 닭이라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이런 맛없는 걸 왜 먹어 라며 투덜거리는 나도. 어쩔수 없이 닭이 먹고 싶은 때가 있다. 결국 이렇게 수도사 복장 안에 터질 듯한 엉덩이를 감춘 흰 바지의 아가씨 같은 꼬락서니를 하고(그만해) 닭을 사러 나서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는 시간만 해도 왕복 24분. 집에서 역까지 왕복 20분. 가산 디지털 단지 역에서 깐부치킨 매장을 찾는데 10분(맙소사 지하에 있었어). 합계 54분이다. 뭔가를 먹으러 가는 것치고는 꽤 의욕을 부린 셈이다.

과연 이 치킨은 맛이 있을까? 여자친구는 집에서 치킨을 시켜서 이미 치킨이 도착했다는데. 나는 왜 이 추운 겨울에 코트에 냄새가 배도록 치킨을 껴안고 있는 것일까.


어서, 어서 먹자 치킨. 입가에서 침이 흐른다. 눈이 빨갛게 되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 신이시여 우리들의 이 더럽혀진 영혼을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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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고, 글을 읽지도 않은 사람.


글을 쓰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

책상위에 무실의 "특성없는 남자"는 읽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고, 어딘가 연구소에서 편집한 미래트랜드 보고서는 목차를 읽고 집어던져버렸다. 회사에서 선물받은 책이란게 그렇지 뭐.

오랫동안 집중을 하기가 힘들어서 비교적 간단한 책들을 읽고 있었다. 교고쿠 나츠히코나 필립K.딕의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보면 일종의 독서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전은 없다.
내용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따분하고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지하철에서가 아니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
이런게 납득할 만한 변명인지 생각해본다. 웃음이 나온다. 웃음이 쓰다.

매일 수십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쓰고 메일을 적고 있지만, 그게 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구조적으로는 쌍둥이나 다름없는 글을, 누구나 알수 있는 어휘와 이해하기 쉬운 논리로 늘어놓는다.
애매하고 불확실하며 혼란한 서술이 가져오는 마법같은 세계의 확장은 보고서의 세계엔 없다.
내가 보기엔 보고서의 세계야 말로 불분명한 세계를 간단명료한 서술로서 잡아내고 있으니
어느게 더 거짓말이냐고 묻는다면 보고서 쪽이 그럴텐데.
그래, 객관적인 사실을 데이터로 증명한다고 그게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의도에 따라서는 그게 훨씬 거짓말에 더 가까운 말이 될게 틀림없다.

그래, 나는 거짓말이 잔뜩 적혀있는 글들을 읽고 그런 글들을 쓰고,
그렇게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거지.
목 뒤가 뻐근하게 아파온다.
눈에 피곤이 감겨온다.
도대체 언제쯤 밤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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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 스물 아홉살. 한국 나이로는 서른하나. 이제 회사원이 된 지 3년차. 이런 현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고생 중. 스페이스가 안 눌리는 키보드로 글을 쓰느라 신경질마저 작렬.





회색의 코트를 여민다. 조금 신경 써서 목도리를 맨다. 너는 항상 내 목도리 매는 법이 서툴다고 웃었기 때문에.
손가락 끝에 닿도록 가죽 장갑을 끼고, 발끝에서 허벅지까지 힘을 주어 다리 근육을 푼다.
입을 벌리자 곧 겨울이 내 안에 들어온다. 입을 다물어 겨울을 몸 속에 가둔다.



글을 쓸수도 시를 읊을수도 없게된 나는 낯설지만.
조금 더 걸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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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3년차 직장인이 되는 2년차 직장인. 곧 만으로 29살이 되는데
이런 잔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매일 매일 여기저기에 화를 내고 있다.

문득 어느날 밤의 일이 생각났다. 그날, 나는 여자아이와 밤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그래 T라고 하자. 여기서 여자아이의 이름이 그리 중요한게 아니니까. 
10월의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던 T와 나는, 전쟁터에 버려진 오누이라도 되는 양 꼭 붙어서 거리를 걸었다.

그 날 밤 종로 거리에는, 바람보다 더 적은 사람들이 있었고. 커다란 동물들 처럼 버스가 천천히 다가오고 빠르게 사라졌다.
내 품에 파고들어 바람을 피하던 T는 조금 걸어요. 라고 말했다.

버거킹 앞 사거리에는 땅 바닥에 앉아 통곡하는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여자 아이는 남자아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완전히 길바닥에 주저 앉았고, 남자아이는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질리지도 않고 여자아이를 위로했다. 버거킹에서 새나오는 빛보다 밝은 것은 거리에 없었으니, 내가 그 여자아이라도 울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T는 몇번이나 뒤돌아 보면서 괜찮을까 저 아이. 라고 말했다.

인사동 앞 거리에는 택시들이 잔뜩 나와 서로 코를 부비고. 어깨를 부닥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길 기다리는 T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손을 붙잡고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거웠을 것이고. 생각을 하는 T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겁이 났던 것이다.
나에게 T는 완벽한 미지의 존재이고.그 아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두려웠다.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었고. 이 모든 밤거리와 잡고 있는 손도 모두 어떠한 계절에만 꿀 수 있는 꿈같은 것이었다.

인사동에는 아무도 없었다. T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바람을 참아가며 찻집을 찾던 T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그 거리에서 나에게 내 남자친구 할래요? 라고 물었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눈에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아직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데, T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숨처럼 그렇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해의 10월 15일의 일.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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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모자를 쓴 악마는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또 내기에 졌어."
"또 너에게 속았지."
몇달을 불타던 보리밭은 까맣게 타올라 이제 흔적도 남지 않았고. 악마는 재를 잔뜩 발라 얼굴에 발라 슬픈 얼굴을 만들었다.
"봐,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나는 이제 조금 두려워."
 

이 것은 산이 젊어, 모든 강이 끝없이 땅을 달려도 바다에 닿지 않을 적의 이야기이다.
그 시대에도 인간이 살았던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인간같기도 하고 짐승같기도 한 것들이 있어(지금에 우리는 그들을 요妖라 칭한다.)
그들이 밤의 주인이었으니 사람들을 해치고 길을 걸어다녔다.
지금의 세상에 그들이 없는 것은 한 행자의 보살행에 의해서라고 하였다.

연유야 지금의 우리들은 알 수 없으나,
한 행자가 불타 앞에서 세상의 모든 악을 물리쳐 사방을 평안하게 하리라 기원하였다고 한다. 
그 다짐이 얼마나 강했던지 행자의 눈에는 염마가 깃든 것 같았고 그 걸음걸음은 삭풍과 같아.
그가 불타 앞에 머리를 굽힌 뒤 오십년도 되지 않아 세상의 악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나 
그 업의 잔혹함에는 보살마저 혀를 찰 정도였다고 한다.
 
 

천축은 그의 공덕이 크나 죄업 또한 깊음을 알아.
나한으로 삼지 않고 다만 후생에 천인의 왕으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깨달음을 알아,
미래불로 태어나길 바라였다.
하지만, 행자는 다만 세상의 평안을 바랐으니
지금 이 자리에 죽어 육신이 먼지처럼 흩어지길 원했다.
 
 

마침내. 대일여래의 광휘가 행자에게 닿자 행자의 미망은 씻겨 나갔으나,
죄가 깊었던 행자의 육신은 그대로 스러져 혼백마저 간 곳이 없었다.
 
...


불타가 입을 다물었기에, 우리는 그 뒤 행자의 간 곳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이야기꾼 중에선 석가가 가섭의 앞에서 꺾어든 꽃이야 말로 그 행자의 전생이라 하는 자도 있어. 여기에 적어두는 바. 분명 행자에게 후생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렇게 덧없을 것이리라.

이야기꾼인 나 또한 스스로의 죄 깊음을 알아
어떤 신의 위업으로도 구원받지 못함을 알고 있으니,
다만 소원으로서 단 한 명에게라도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니.

세상에서 가장 검은 밤을 걸어갈 뿐이다.
누군가 지나간 뒤에라면 그 밤은 더 이상 가장 어두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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