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명을 잘 못하는 편이다. 어떤 일의 원인1부터 결과인 5까지 12345의 논리적 흐름을 통해 도달해야한다면 나는 주로 5만 말한다. 기껏해야 145정도이다. 12345를 전부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걸 업무 메일 같은 곳에 써야한다? 정말 최악이다. 12345를 전부 쓰는 메일을 작성하려면 한 30분 동안, 아니 3시간 정도 싫음과 고통에 몸부림 쳐야한다.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버릇이 아니란 걸 알고 있는데 모든 걸 뛰어넘고 5만 얘기하다 보니 어떤 친구들은 (비난의 뉘앙스를 담아서) 예언이라도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아 고민하고 싶지 않다 설명하고 싶지 않다. 설명 혹은 변명을 하는 것은 멋지지 않다. 간지가 나지 않는다. 혼자서만 아는 수십가지 의미를 넣어서 음습하게 넣어서 글을 쓰고 설명은 하지 않고 뭔가 남 모를 걸 알고 있다는 듯 한 잘난척 하는 자세로 자신감에 차서 행동하고 싶다.
 
가끔 12345를 전부 설명해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딱히 이유가 없고 순전히 변덕에 의해서이다. 얼마 전에는 회사의 후배가 선배는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일을 하는데 하루 종일 배고프지 않으세요? 라고 질문했다. 실제로 나는 자주 배가 고픈터라 이게 나보고 뚱뚱보라고 놀리는 건지 잘 구분이 들지 않아서 어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벌컥 화를 냈어야 옳다.
 
얼마 전 동네를 찾아온 친구와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러면 안됩니다 어린이 여러분들도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해야할 얘기가 떨어져서 순수한 변덕으로 12345를 얘기할 일이 있었는데. 얘기를 다 들은 친구는 그렇게 슬픈 생각을 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이 블로그나, 나에 대해서 아무 생각나는 것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것들을 설명하려고 한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이 블로그의 글 중에서 제목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은 그 글을 쓸 당시 내가 자주 들었던 곡 중 하나의 제목이다. 
 
2. 이 블로그는 내가 개설한 블로그 중에서 여섯?번째 정도? 된다. 싸이월드에 적었던 글 중에서 여행기만 따로 모아서 올리는 블로그였는데. 다른 블로그들은 모두 폐쇄하고 이제 이 블로그 밖에 남지 않았다. 내 다른 블로그에서 내 글을 봤던 사람이 이 블로그에 찾아와서 혹시 ㅇㅇ님이 아니신가요? 라고 물어보는걸 인생 내내 두려워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오히려 서운한 상황이다.
 
3. 다른 블로그 중 가장 좋아한 블로그는 텀블러였는데. 다른 언어로 동화 비슷한 괴담을 올리는(인기는 없었다) 곳을 제일 좋아했다. 하지만 내 모든 블로그 중에서 제일 인기가 없는 곳은 바로 여기 티스토리이다.
 
4. 티스토리의 모든 글들이 마지막에 ㅇㅇ년ㅇㅇ월의 글이다. 라고 끝나는 이유는 그게 내 여행기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거기에 맞는 또 나만의 법칙의 글들을 써댔다. 대부분 삭제되어서 일부는 출력물 형태로 남아있고 일부는 txt로 남아있다. 그걸 복구 하려면 전에 쓰던 데스크탑을 살려야한다. 내 주제에 굉장히 아름다운 글도 몇 개 썼지만 살리는 것은 너무 귀찮은 일이다.
 
5. 다른 블로그를 모두 없앤 이유는. 크게 상심할 일이 있어서 나 자신의 일부를 상실함으로서 그 상심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다. 
 
6. 최근에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299792로 바꾼 이유는 광속의 속도가 299,792,458m/s이기 때문이다. 광속으로 한 이유는 여기서 말하고 싶지 않다. 
 
7. 나는 자주 이런 물리법칙 상 유명한 숫자들로 비밀번호를 해두는데. 꽤 오랫동안 980665로 해둔 적도 있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중력 가속도 (9.80665 m / s2)의 숫자이다. 여기에 지금 비밀번호를 썼기 때문에 또 비밀번호를 바꿀 생각이다. 여러분은 모두 나를 실제로 볼 일이 없지만. 그래도 뭐.
 
이런 물리법칙이나 수학 상의 유명한 숫자들을 비밀번호로 해두는 이유는 예전에 (전에 사귄) 여자친구의 전화번호로 비밀번호를 해두고는 까먹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을 마셔서였긴 했는데 진짜로 생각이 안나서 2시간 정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980665를 또 까먹을 일이 있을수도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죄송한데 지구의 중력 가속도 좀 검색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라고 해서 집에 들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넌 어느 별에서 왔느냐 첩자 녀석 하고 광선총을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까지 그럴 일은 없었다)
 
8. 나는 이렇게 여러가지 숫자로 비밀번호를 해두는데. 지금 집 비밀번호는 예전에 살았던 집의 번지수이다. 다음 집으로 이사 가면 지금 집의 번지수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좋기 때문이라기 보다 나의 족적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네에서는 6년이나 살았고 이사를 가야한다고 느끼고 있다.
 
9. 대학시절 맘에 안 드는 남학생에 대해서 누가 평을 물어보면 못생겨서 싫어한다.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실은 굉장히 종합적으로 그 사람이 맘에 안 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12345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못생겨서 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곤 했다. 
 
예전에 후배J가 후배C를 좋아하는걸 알고 있었는데. C가 어느날 J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C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정신적으로 의지 했는데 J가 C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차마 혹평을 하지 못하고 애매한 평 - 어어 나쁜애 아냐-을 하고 말았다. 결국 J와 C는 2,3년 정도 사귀게 되었는데 C가 그 후 왜 그랬냐고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몇년이나 사귀었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혹평해야할 때는 사양않고 해야한다는 삐뚤어진 교훈을 얻게 되었다.
 
10. 친구L과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건 몇년 전 나의 연애 때문이었다. L은 상황도 이해하고 네 생각도 이해하지만 그런 연애는 하지 말아야 한다 네가 이 연애를 시작하면 다시는 널 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선언했고. 우리는 그 뒤로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 때는 아니 내가 뭐 만나면 안되는 사람 만나냐 하고 자못 분해했지만. L이 그냥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관계가 망가진 건 전적으로 나의 탓이었다.
 
11. 나는 사실 타고난 동생으로 어리광부리는 걸 엄청 좋아하는데. 사회적 지위도 있고 외관 상 어울리지도 않아서 항상 꾹 참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보이는 차가운 모습이나 짜증나 보이는 모습 중 일부는 어리광을 부리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징그럽게 느껴지겠지만 어쩌겠는가.
 
12. 내가 카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에게 카레를 만들어준 사람은 모두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
 
13. 내가 그 대학의 그 과를 간 이유는. 외할아버지 댁이 그 대학교 후문에 있었기 때문이고 그 분이 문학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반수를 해서 모 대학 법대를 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반수 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말하고 다녔었지만 수능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억울하게도 여름에 알바 하다가 날짜를 헷깔려서였는데.
 
14. 내가 말린 무화과를 먹을 때는 대체로 아버지가 보고싶어질때다. 이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아 왜 말린 무화과냐면 아버지는 석류랑 무화과를 좋아한다. 취향도 이상하지. (향수 필로시코스랑은 관련없다 진짜 징그러운 발상이로군)
나는 아버지 얘기를 좀처럼 안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나와 닮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근본적으로 증오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아버지를 머릿속에서 최대한 지우고 싶어하긴 한다.
 
15. 나는 어릴 때 부터 감정이 남들보다 흐릿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거의 없었고 동물이라도 된 것 처럼 대체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거의 없어서 친누나는 대학생이 되도록 아무도(심지어 연예인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 쯤 나도 스스로의 이상함을 느껴서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친구가 타이른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요지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누군가를 잘해주고 싶고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진다면 그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라는 말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착하고 예쁜 여대생이나 할 법한 얘기긴 했다. (진짜 친한 친구이다)
 
나는 그 뒤로 몇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게 뭔지 제대로 이해를 못했는데. 서른 살도 넘어서 어느날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좋아한다는게 뭔지 깨달았다.
 
예쁜 사람을 좋아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래 전 내가 술자리에서 찍은 완전히 흔들리고 촛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후배 한 명의 사진을 보고는 스스로가 가진 애정의 깊이를 한 번도 이해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몇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을 매일 했다. 머리가 이상해지고 그 아이가 했던 이야기 마저 어느 쪽이 진짜였을까 하고 의심이 들만큼 오래되서야 이것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거구나 하고 깨달았었더랬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서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해한다. 기묘한 방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방식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을 사귀기 전에 그 사람이 관광지에서 사진사를 고용해 찍은 사진을 여러장 보여주며 어떤 사진이 마음에 들어?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맘에 든다고 고른 사진들은 하나 같이 얼굴색이나 턱 같은 것들이 보정이 되지 않은 사진들이었는데. 그 사람은 좀 질렸다는 듯이 너 나 진짜로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16. 평소에 설명하지 않았던 것을 설명하고 있노라니 스스로가 두배는 멍청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난 평소에 진짜의 두배 정도로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들이란 이렇게 정말 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구 빌어먹을
 
 
24년 7월 30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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