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그냥 가장 바라는 세계에 다가가는 문제에 관해서예요.
- 코맥 매카시(2023), 스텔라 마리스. p327
 
오늘 퇴근하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고개를 돌려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쪽을 보니 기가 막힌 토끼 구름이 떠있었다. 여름이었고 비가 그친 후 무더위가 시작하기 전이라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흰 색이었다. 분명 해가 질 때 쯤이면 더욱 멋진 하늘이 되겠지. 색은 보라색에 천국을 암시하는 듯한 형태의 멋진 뭉게구름.
 
나는 그 사람들과 오래 같이 있지 않았다. 그들이 감탄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방금 찍은 멋진 사진을 보내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 보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웠던 탓이다. 걸음을 재빨리 해 커다란 회사 공터를 가로지르다가 그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깨달았는데.

애초에 나는 이 몇 년간 이런 사진을 보내도 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머릿 속의 무언가가 잘못되어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완전히 혼자였다는 것을 아무런 계기도 없이 알아채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나는 너무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로 급하게 게이트를 넘어 집으로 도망갔다.
 

작년 여름, 작가 하나가 죽었다. 아주 유명한 작가이다. 나는 그의 죽음을 제 때에 애도하지 않았지만 세상 중에 만명 정도는 그의 죽음을 제 때에 애도했을 것이다. 아니지 이만명 정도로 하자. 아니 오만명 정도로 할까?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지만 작가는 죽음으로서만 온전한 평가가 시작된다. 살아있을 때는 그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도 있고 그에게 불필요할 정도로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도 있지만. 작가가 너무 유명해지면 무엇보다 "너무 유명해서 싫어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 물론 세상에 몇 안되는 독서인구 중에 "너무 유명해서 싫어하는"사람들의 비중이 몇이나 되겠어 라고 얕볼 수야 있지만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런 세상에서 굳이 책을 읽고 앉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제정신인 녀석은 별로 없다. 감히 말하건데 독서인구라는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유명하면 싫어"라는 생각을 갖고 산다. 내기를 해도 좋다.

하지만 작가가 죽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사람들은 자비로워져서 그가 현대 문학에 미쳤던 커다란 영향 같은 것을 앞다투어 얘기하고 흑백사진에 생몰을 적어서 올리기도 한다. 물론 너무 살아있는 전설이라는데 책이나 읽어볼까 같은 기특한 생각을 해주는 사람도 줄어들긴한다. 그러니까 어쨌든 죽어야 올바른 평가를 받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의 유명세는 기묘한게, 그의 몇 편의 영화와 그 영화의 명성을 완전히 갉아먹을 정도로 형편없는 시나리오 작업에서도 나타났다. 애초에 문장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희곡을 써도 그의 문장을 제대로 표현 할 수가 없어서 결과물이 형편없어진다고 해야할까.

예를 들어 내가 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희곡 하나는 더 이상의 캐스팅은 없을 사무엘 존슨과 토미 리 존스의 연기로 영화화 되었는데 아무리 한국어로 읽었다지만 이게 같은 작품이 맞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잠들고 말았다. 중간에 잠이 들 정도로 길지도 않았는데 깨고 보니 엄청 상쾌하기까지 했단 말이지.

그렇게 문장이 아름답다면 시인을 해야하는게 맞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시인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 장광설이라는 버릇이 있어서 시인을 하기에는 또 적합하지 않다. 과작의 작가라서 대체로 한가한지 갑자기 뜬금없는 내용을 엄청난 분량으로 쏟아낸다. 주제에 관련이 없는 내용이냐고? 아니 기본적으로는 있다. 그래서 그런 점이 더 화가 난다. 애초에 플롯이 복잡한 작가가 아니라서 줄거리가 10줄 이내로 끝나는 소설이 오백페이지가 넘어간다.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그의 문장을 정말로 사랑한다. 왠지 집에 자동소총도 다섯 정 정도는 사뒀을 것 같은 노인네지만 (심지어 그는 군인 출신이다 없을리가 없다) 그의 소설의 아름다움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한다.
예를 들어서 멸망한 세상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바다에 도착한다. 밑의 인용은 그 묘사이다.
 
저 멀리 잿빛 해변이 보였다. 둔한 납빛 물결이 느릿느릿 밀려왔다. 멀리서 소리도 들렸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세계의 해변에서 부서지는 어떤 이질적인 바다처럼 황량했다. (중략) 그리고 재가 그리는 잿빛의 스콜 선. 남자는 소년을 보았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파란색이 아니어서 미안하구나. 남자가 말했다. 괜찮아요. 소년이 말했다.
- 코맥 매카시(2006), 더 로드. p244
 
중략이라고 써두었지만 내가 생략한 것은 두 줄 반 정도의 문장이다. 짧고 간결하게 그는 상황을 설명하고 그보다 더 짧고 간결하게 사람의 마음을 묘사한다. 그는 좀처럼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의 문장을 통해서 그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한다. 하나를 더 보자.
 
고요 속에서 눈이 소곤거리며 내렸고, 불꽃들은 피어났다 희미해지다 영원한 암흑 속에서 죽었다.
- 코맥 매카시(2006), 더 로드. p111
 
이런 글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령 조지 부시 주니어를 지지했다거나(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인터뷰도 아직 보지 못했다) 지구 온난화는 사기야 하고 8기통 차량을 밟으며 다녔더라도 (그가 환경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인터뷰도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런 문장을 쓴다면 남들에게 비밀로 하는 일이 있어도 좋아했을 것이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것은 그의 유작인 연작 소설이다. 작년 겨울에 발매된 책을 이제와서 읽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리 쉽게 잃혀지지 않고 30페이지 쯤 읽다가 며칠을 쉬고 문장 몇 줄을 읽고 한 시간쯤 다른 짓을 하며 천천히 읽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엔 남녀가 나오는데. 남자는 자기를 떠나간 여자에 대한 생각을 십년도 넘게 지난 지금(작중 시간)에서도 멈추지 못하고. 여자는 ... 아니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 것은 관두자. 그냥 말하자면, 아주 기나긴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정도로 해두자.
 
하여간 유작인 책을 읽고 있노라니. 내가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읽으면서 별별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정말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인간 존재 내면에 사라지지 않는 고독? 자아와 타자 사이의 갈등만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게 한다는 거? 모르겠다. 몇주 쯤 아니면 몇 개월  쯤 진득하게 생각해야 알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연구자가 아니니 이러다가 남이 써놓은 글을 읽고는 아이구 그렇구나 그런 내용이구나 하고 납득 할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성을 초월한 이치 같은것이 인간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가 직접적으로 "이것은 스파게티의 화신이다." "이것은 정부 관료제의 화신이다." 뭐 이런 설명을 집어넣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인간을 초월한 것이 분명한 것들 나오고. 평범한 인간인 등장인물을 말 그대로 박살내어 버리는 전개가 많이 등장한다. 어떤 초인 판사가 등장하는 서부 배경의 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소설에서는 그가 문명의 화신 비슷한 것이란 걸 잘 숨기지도 않으며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등장 인물은 그 초인 판사의 손에 의해 말 그대로 박살난다. 말하고 보니 무슨 히어로물 같은데. 살인 강간 강도 방화 이 모든게 나오는 끔찍한 소설이다.
 
그런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는. 구원 받지 못하는 인간이다. 무언가를 구하겠다 는 의지를 가진 인간은 반드시 실패하고 그들을 정말로 구하는 것은 글쎄... 작중의 등장 인물들을 정말로 구하는 게 한 번이라도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곰곰히 생각해봐도 기억나는게 없다.
그들이 받은 구원은 얄팍하고 불안한 것이고, 우리가 읽지 않는 동안 책 바깥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져서 순식간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연약하다. 그들은 정말로 순간. 딱 어느 순간만 구원 받는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해야할지 우리의 필멸의 여정 중에 주어지는 잠시간의 위로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왜 갑자기 이 작가에 대해서 쓸 생각이 들었지 싶었는데. 잠시 서재에 앉아서 생각해보니 스스로 나에게 주어진 구원이 몹시 얄팍한 것이고 한 번도 구해진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아 빌어먹을. 서부극에 혼자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죽는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닐텐데 왜 이런거에 꽂혀있지 하고 쓴 웃음이 나온다.
 
그래. 오늘 다른 사람의 책으로 가득찬 방에서 내가 정말로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도 혼자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래서 지금 글을 쓰다 말고. 그가 쓴 작은 희곡의 문장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그 희곡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구하려고 대화하는 내용 밖에 없는 책이다. 마지막 문장은 기억나지만 구원을 거부하고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말이 뭐였더라.
 
결국 원하던 구절이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글을 쓰길 그만두고 서재를 뒤져가며 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어째서인지 책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나는 필사적이 되어서 제발. 제발이라고 중얼거린다. 중얼거리다 못해 제발, 이라고 기도한다.
 
 
이제 댁이 뭘 구한 건지 알겠지요.
구하려고 했지. 구하려고 하고 있고. 열심히
- 코맥 매카시(2006), 선셋 리미티드. p135
 
24년 7월 24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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