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내 티스토리에 비공개로 게시되어 있는, 지추 미술관에 관한 글의 일부인 모네의 수련에 대한 글이다. 17년 1월의 글이고 나는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에 대해서 쓰다 마지막 결론을 내지 못하고 글을 닫았기에 여기에 그 일부를 인용해도 괜찮을 듯 하다.
(2)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 수련Warter lilies
바닥이 이상하다. 흰색의 작은 (일반적인 주사위보다 작은) 정사각형으로 바닥을 깔았다. 물 빠짐과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 일까. 습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까. 신발을 벗고 전시 공간에 들어가면 습기가 가득찬 공간에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렇다 그것은 착각이다. 예술작품에 있어서 습기란 작품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한 공간에 있다는 착각은 작품 앞에 서있는 때 더 강해진다. 모네의 수련. 늪의 표면에서 터져나온 색과 생명.
전시 공간 안에 수련 다섯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이즈에 따라 배치 한 것인지 뒷면 양쪽에는 100*200의 작품이. 양 옆에는 200*200의 작품이. 그리고 정면에는...200*300의 두 장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걸려있다. 압도적인 이미지. 물기가 하나도 있을리 없는 공간에 느껴지는 습기. 높은 천장으로 소리가 난반사되어 울린다. 들릴리가 없는 물방울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수련이란 원래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었던가. 어쨰서 이렇게 거대하고 무질서하며 깊은 가. 사방을 돌아보아도 늪으로 가득한 이 전시공간에서 수련이라는 아름답고 우아한 이름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혼돈이고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그 혼돈에서 터져나온 생명이다.
사실 나에게 이 작품은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 지추 미술관을 방문한 것은 이 수련을 보기 위해서 였다. 같은 여행에서 오하라 미술관의 수련을 보았지만 전혀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동양화를 전공하였는데 몇 안되는 서양화 그림도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같은 그림이 식탁의 내 자리에서 보이는 곳에 걸려 있었는데 검은 밤과 숲을 그려넣은듯한 그림으로 항상 아무도 이 그림의 윗쪽과 아랫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농담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그림은 수련을 몹시 닮았다.
…
모네의 그림을 그리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때때로 그리워 질 때가 있다. 그것은 모네에게 느끼는 그리움이라기 보다는 내가 어릴 때 부터 가장 많이 봤던 최초의 회화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이번 도쿄여행의 계기는 우에노의 서양미술관에서 하는 모네전에 수련 중 몇 점이 온다는 기사를 본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말을 꺼내보았지만 그 때 이미 나에게서 마음이 떠나있었던 여자친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간다고 하면 겨울 쯤이 되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어떤 변덕으로 나는 도쿄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혼자였다.
6일짜리 여행이었지만 실제로 여행이 가능한 일정은 4일 뿐이었고. 미술관의 휴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인파를 피해서 관람을 할 수 있는 날은 금요일의 낮시간 잠시 뿐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정은 수련을 보기 위한 일정을 먼저 정한 후에 하나씩 정했다. 아메카지를 하려고요. 러닝을 하려고요. 라고 말했지만 그건 모두 거짓말이었다. 나는 단지 한 점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왔다. 그 그림을 볼 수 만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요즘 그릇이 깨져버린 사람처럼 자주 슬퍼하고 쉽게 화를 낸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질 때 마다 밖에 나가 차가운 공기를 맞으면서 러닝을 하고 긴 문장을 읽지 못하게 되어 불을 끈 채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때때로 기도를 한다. 무엇을 위한 기도인지는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소원을 빌지 않기 위해서 너무 슬퍼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기도이다. 사람들은 세상 어디엔가 기도를 들어줄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며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들을 한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영혼에 구원이 된다. 기도를 하는 행위 자체가 그 영혼을 위로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변덕스럽게 기도를 할 때 마저 거짓말을 한다. 그저 평화를 바란다고.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되고 있기 때문에 바싹마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엔 식욕이 별로 없어요 라고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며칠 예전처럼 먹어보았는데도 살은 찌지 않고 그대로 세상 어딘가의 구멍에 떨어진 것처럼 체중이 다시 줄어들었다. 예전처럼 먹는 것은 너무나 많은 노력이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그냥 눈 앞에 있는 것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여행에 와서도 무언가를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아무 것이나 먹었고. 야채가 부족한데 싶어서 호텔 조식을 두 번 먹은 것 외엔 정말 되는대로 먹었다. 커피? 향이든 뭐든 상관없이 커피면 그냥 아무 거나 먹었다. 제대로 된 커피는 단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여행 사실 상의 첫날 금요일. 황궁런을 뛰고 애플워치까지 사고 나니 배가 고플 만 했는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우에노로 향했다. 아침에 호텔 조식을 성의있게 먹었기 때문이다. 흰 쌀죽에 명란젓과 낫토를 듬뿍 넣고 슬슬 비벼서 먹는 것이 내가 일본 호텔에서 제일 좋아하는 조식이다. 계란 후라이(써니사이드 업이어야 한다)라도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우에노의 서양미술관은 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곳이다. 미술관의 카페 겸 레스토랑 스이렌(그렇다, 그곳의 이름 또한 수련이다.)은 풍광이 좋아서 한가할 때 가면 기분 좋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전시를 보고 그곳에서 밥을 먹어야지 하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가을. 12월이 되었는데도 도쿄는 가을 같았다. 도쿄 사람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나는 바람이 쎄지도 춥지도 않은 12월의 도쿄가 마음에 들었다. 황궁런을 이미 한 번 해봤기에 방한 도구를 꽁꽁 싸매지 않아도 러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이 정도 날씨라면 매년 12월에는 도쿄에 와서 달리기를 해도 되겠어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우에노 공원은 언제나처럼 사람이 많았고 사람보다 많은 나무들이 있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은행잎들과 융단처럼 깔린 은행잎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떼를 지어 개찰구에서 쏟아져나왔다. 저 때는 뭘 해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즐거울 시기이다. 나는 좀 외따로 떨어져 가방에 넣어둔 책을 읽을 생각이나 하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친구들이랑 있는게 싫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우르르 어딘가로 향한다 서양미술관의 모네전 보다는 국립과학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조류에 관한 특별전이 목표인가보다. 나도 저 전시는 꼭 보고 싶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티켓을 미리 사뒀기 때문에 줄을 서지 않고 수월하게 입장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네 전이 도쿄에서 개최 후 내년부터는 교토에서 또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아버려서(편의점의 예약 티케팅 예약 리스트에 떠있었다.) 내가 왜 기를 쓰고 여길 이 시기에 왔는가에 대해서 회의가 잠시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괜찮겠지. 미술관 앞에 웨이팅을 위한 배리어를 설치해둔게 말도 안되게 긴걸 보고 내가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기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좁지도 않은 서양미술관의 앞마당에 구불구불하게 줄을 설 수 있는 곳을 만들어두었다.
* 혹시 모르니 써둔다. 도쿄의 서양미술관에서의 전시는 25년 2월 11일 까지이고, 교토의 교세라미술관(아이구)에서 25년 3월 7일부터 6월 8일까지. 그리고 도요타시미술관에서 6월 21일부터 9월 15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모네 전 관람은 1시간을 조금 넘겨서 다 볼 수 있었다. 모네 전에 대해서 뭔가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우리가 아는 모네이고. 당신도 모네에 대해서는 잘 알 고 있을 것이다. 전시에 대해서 코멘트 하자면 전시품은 충실했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작품들로 잘 구성되어 있었다.
5개인가로 나눠져있는 전시 중에 해외에서 가져온 작품들을 모아둔 3전시의 작품들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두었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보존의 목적이 아닌 이상 작품의 사진 정도는 마음 껏 찍게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3전시실에 이르자 사람들이 모두 작품을 보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사진만 찍고 있는 것을 보자 생각을 바꾸었다. 나도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하지만 위대한 회화를 볼 때 마음 속에 남는 그 충격과 감상이야 말로 회화를 보는 진정한 보상일텐데 사진을 찍어서 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으면 그 회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아무렴.
전시를 다 보고서는 서양미술관의 상설전을 보았다. 훌륭한 작품이 꽤 많다. 교과서에나 있는 그런 작품들도 있어서 나는 꼭 상설전을 챙겨본다. 다 보고 나니 힘이 쭉 빠져서 미술관 굿즈를 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모네 특별전 굿즈들은 모두가 사고 싶어했는지 굿즈를 사러 입장하는 줄이 미술관의 중정부터 이어져있길래 포기하고 상설전의 굿즈를 조금 샀다. 엽서와 마그네틱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는 기대하던 카페 스이렌으로 가서 파스타와 커피를 시켜서 먹었다. 모네 특별전을 기념해서 뭔가 웃기는 특별 메뉴라도 있을줄 알았는데 만날 나오는 그 뭐냐 파스타+디저트+커피의 세트가 전부였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리 싸지도 않는 세트인데 좀 웃기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문득 교토국박에서 마신 블렌드 커피 류노스케가 생각났다.
자리는 어디에 앉아도 미술관의 중정이 잘 보인다. 공항에서 사온 메모장에 러닝을 할 때 봤었던 큰부리 까마귀의 그림을 그렸다. 까마귀들은 지성을 가지고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 제법 무섭다. 하지만 그 까마귀는 내가 뭔가 불쌍하게 생각되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날아가버렸다. 왜?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하면 눈이라도 쫄 생각이었던거야?
…
모네의 전시를 보던 중, 어떤 그림 앞에서 나는 울었다. 나라는 그릇이 깨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쉽게 우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울었다는 말에 몹시 놀라는 지인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흐느꼈다기 보다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어서 계속 눈물이 흐르게 내버려두었다. 어떤 그림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꽃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 색과 형태의 흐트러짐이. 너무나 영원같고 덧없어서 눈물을 흘렸다. 아니 거짓말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노쇠한 화가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너무나 기가 막혀서 울었다. 아니 이것도 거짓말이다.
나는 그냥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다. 이 그림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서 괴로웠다. 말이 흘러넘치는데 그 말들이 그대로 바닥 어딘가에 흘러 떨어지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그런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고독했다.
나는 꽃을 찾으러 이곳에 왔지만. 그것 뿐이었다. 꽃을 찾는 일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덧없이 사라져 버릴 그런 마음이다. 어쩌면 나의 유일한 친구인 당신이라면 내가 어떤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다만. 다만 그 조차도 큰 의미는 없는 일이다. 하찮기 그지 없다.
잘 생각해보면 사람의 생명만큼이나 그 소원이란 대체로 하찮은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 꽃을 당신과 함께 보고 싶었다 라든가.
24년 1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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