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까지의 스토리>
나는 일본에 여행을 가서라도 러닝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실제로는 그게 꽤나 바보 같은 아이디어란 것을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면서 들은 것은 Laufey - Let you break my heart again 이다. NPR에서 한 라이브 버젼 밖에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22년에 발매한 앨범에 (스튜디오는 아니고 이것도 라이브지만) 수록곡으로 있는 걸 발견해서 열심히 듣고 있다. 이 아티스트에 대해서는 몇 번 적은 것 같지만 모든 것이 정확하다 박자와 음정, 이 사람이 부르는 노래의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피치포크의 어떤 앨범 리뷰에서는 심술궂게 그에 대한 수식어로 틱톡이 가장 사랑한 현대 재즈 보컬리스트라고 적었다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티스트의 기량은 항상 모든 심술궂은 말들을 반박해낸다. 어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정도로 엄청난 곡은 아니긴 하다. 나도 그냥 피치포크에서 뭐라고 하면 일단 빈정거리고 싶은거다.
<시부야>
6년만의 시부야는 엄청난 곳으로 변해있었다. 내 딴에는 히카리에 정도가 최신 트렌드였다만. 어느새 생긴 시부야 스크램블과 스트림 때문에 길을 찾는게 정말 어려웠다. 일본은 올해 25년 엑스포를 준비하고있기 때문에 좀 번화가다 싶은 곳은 어디나 공사 중이다. 특히나 시부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공사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많이 바뀌었는데 또 뭘 바꾸겠다고? 어떤 느낌이냐면 교차로와 거리들을 너무 꼬아둔 나머지 직관적으로 눈 앞에 보이는 곳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한 거리가 되었다. 도겐자카도 이제 더 이상 라멘이나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원래부터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쇼핑이 아니면 시부야에 올 일이 없는데, 앞으로 더 시부야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부야의 사람들은 열심이었다. 어딜가나 관광객이 많은 도쿄지만 시부야와 하라주쿠는 좀 특이하게 일본인들의 비율이 꽤 높은 느낌이다. 너무 복잡해진 거리 때문에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시부야에 흥미를 느낄 사람이면 역시 일본의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원래 시부야의 완전한 중심지였던 하치공 광장 근처에 거대한 주술회전 광고판이 있는 것을 보고 엄청 웃었다. 주술회전에서는 작 중 시부야에서 사고가 터져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는다. 야 너희들 여기 있다간 다 죽어 이런건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시부야에 오면 으레 갔었던 음악감상 카페 같은 것은 가지 않았다. 더 이상 뭔가를 먹는 것에도 듣는 것에도 미련이 없는데 그런걸 해서 뭘 하겠어 하는 생각이었는데. 거꾸로 좀처럼 들르지 않는 타워레코드에서 잘 모르는 음반들의 청음을 하다보니 묘하게 즐거워졌다. 할 수 있는 한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정작 음악을 열심히 들을 때는 타워레코드 놈들 음반 리뷰들은 다 엉망이야 라고 투덜거리면서 1층만 훑어보다 나가곤 했는데. 7층의 구석진 코너에서 추천 음반을 청음하고 있노라니 내가 오랫동안 잊어버린 어떤 애정을 다시 찾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음반 리뷰들은 엉망이고 알 수 없는 말이나 길게 늘어놓았지만. 거기에 음악이 있다는 것이, 아직도 이렇게나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다음에 들른다면 꼭 맘에 드는 엘피를 한 뭉치 정도 사서 가야지 하고 다짐했다. (이번엔 안 샀다는 이야기이다. 말했지 않는가 유니클로 파커코트 엄청 두껍다고)
시대는 틱톡의 시대가 되었고. 3분도 못참아서 40초의 음악만을 듣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고리타분하게도 판 위에 바늘을 올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나에겐 안심이 되었다.
<긴자-유락쵸-신바시>
한 때 유락쵸에는 무인양품의 비공식적인 본점이 있었다. 거대한 건물에 무인양품 물건이 가득차 있는 멋진 곳이었는데 그 곳이 사라진 이후로 나는 유락쵸를 조금 덜 좋아하게 되었다.
전에 내가 이 거리에 대해서 썼던 글이 생각난다. 회사원으로 가득해서 무심코 눈이 마주친 사람들마다 다 나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속해 있는 거리는 여기가 아닐까 싶다. 라고 했던가. 이제는, 이제는 택도 없지. 나는 이제 사시사철 회사원의 눈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대체로 멍하고 풀린 눈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황궁에서 부터 도쿄역까지의 거리를 깨끗하게 정비 중이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몰라볼 정도로 깔끔해져있었다. 마루노우치 스트리트 같은 속빈 강정(퉷)도 생기고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가게들은 엄청나게 사라져서 여기가 내가 알던 도쿄역 인근이 맞나 하며 투덜거리다가 유락쵸 근처로 가보니까.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좁은 곳에 복작복작한 것이 내가 알던 유락쵸가 맞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심지어 4억엔? 정도 최종 1등 상금이 붙어있다는 점보 어쩌고 복권을 사려고 500명 정도가 줄을 서있는 모습을 보자(500명이란 말은 농담도 과장도 아니다. 나는 운동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이것이 유락쵸지 하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많이 간 곳이 이 도쿄-유락쵸-긴자 라인이다. 나이가 드니까 새로운 맵을 열고 싶지 않다는 그런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서 꼭 가야할 것이 아니면 다른 곳에 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대체로 이 동네에 있었다. 어쨌거나 나에겐 익숙한 동네이고. 긴자는 좀처럼 가게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도쿄도에서도 압도적으로 길을 찾기가 쉬운 곳이다. 긴자의 버버리 매장은 아직도 위치를 알 고 있다. 신입사원 때 쯤에 아직 버버리 같은 것에 대해서 동경이 있었던 그 시절 아시아에서 버버리 코트를 산다면 바로 거기지 하는 추천을 받아서 갔는데. 무려, 놀라지 마라 무려 버버리 코트가 90만원이었다. 지금은 350쯤 할 것 같은데. 어…하여간 거기서도 어깨에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코트를 사지 못하고 내심 안심한 기억이 있다.
이제는 긴자에서 간다면 츠타야 서점이나 유니클로 말고 딱히 가고싶은 곳도 없다.
긴자 미츠코시 지하에 벤치가 있었던 곳에는 벤치를 치워두었다. 어느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에 출장을 온 ㅊ차장과 이미 30일을 넘긴 장기 출장 중이었던 나는 시간을 맞춰서 만났는데. 일본에 왔으니 뭐라도 그럴 듯한 걸 해야지 하는 ㅊ차장의 의견에 굳이 긴자에 가서. 그 지하의 식품관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신기하게 보였던 복숭아 빛깔을 한 커다란 딸기를 사서 나눠먹었다. 그렇다 지금은 없어진 그 벤치에서 먹은 것이다.
뭐냐 이거 맛이 특이하다. 그러게요. 너 일본에 대해선 뭐든지 아는거 아냐? 제가 일본 대통령이라도 되나요 뭐든지 알진 못해요. 같은 소리를 하면서 ㅊ차장(차장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냥 형 같은 사람이었다.)과 좀 잡담을 했지만 ㅊ차장은 긴자는 역시 너무 복잡하다고 진절머리를 내며 숙소로 돌아가버렸다. 왜 미국에서 태국으로 가던 길에 여길 들른 걸까? 그 때는 이해가 안 갔지만. 글쎄 지금도 이해가 잘 안간다.
하지만 세어보면, 내가 당시의 ㅊ차장과 비슷한 연차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왜 ㅊ차장이 일본에 들렀는지 알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시나가와>
시나가와 같은 곳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오해가 있다 나는 시나가와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도쿄 도내 어디를 가더라도 1시간이면 도착하는 탁월한 교통편의성을 높이 사는 것 뿐이다. 이번에 황궁런을 하면서 느낀거지만 다음엔 꼭 도쿄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매일매일 황궁런을 할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애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한 300밤 정도는 시나가와에서 잤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교통이 편리하면서 비교적 조용한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잠깐만 너무 이상한 말인데 일단 시나가와는 하나도 조용하지 않다. 그나마 조용하다는 평판에 도움을 주던 다카나와의 상가건물 몇개가 통채로 철거되었고. 더럽게 비싸고 맛은 없던 싱가폴 게요리점도 사라지고 말았다. 더럽게 비싸고 맛이 없더라도 사라지는건 다른 문제이다 아쉬운 건 아쉽다 이거다.
황궁런을 뛴 후, 러닝이 그렇게 편안한 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이번 시나가와 숙박이 마지막 시나가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핑계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다이바나 아라카와에 가서 러닝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3일 동안 내내 시나가와 근처를 달렸다. 골목 하나 상가 하나 전부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분히 감상적인 나의 시나가와에 대한 작별인사 같은 것이었다. 이제는 말도 안되게 비싸져서 더 이상 가성비가 좋다고는 도저히 말 할 수 없게 된 다카나와 호텔에 대한 작별 인사라고 해도 좋다.
시나가와 근처를 달리기로 한 첫번째 날에는 시나가와 역을 가로질러 소니 건물까지 간 다음 러닝을 시작했다. 덴노즈아이루와 부둣가를 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시나가와라고 한다면 그 동네를 떠올릴텐데 나는 거기에 가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냥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언덕처럼 경사가 있는 다리를 건너자 끝에서부터 천천히 바다가 보이고. 다리를 내려와 사거리를 건너 공터 옆을 지나자 야구를 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부둣가의 컨테이너 하역장이 가까워 먼지가 많고 트럭들이 점잖은 거인들처럼 신호를 지키고 섰지만, 막상 스치기만 해도 박살이 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아 이렇게 먼지가 많다니 완전 실패다 부둣가 달리기에 이상한 로망을 갖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며 바다 옆 물류 지대를 뛰었다. 낄낄 웃음 소리가 나왔다. 상상도 못하게 맹렬한 바닷바람이 불어서 순간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온이 분명 2~3도 정도 였을텐데 이 추위는 뭐지 하고 생각하며 부둣가를 달렸다.
돌아오는 길엔 부리또를 사 먹었다. 된장국에 생선구이라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나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돌아오기 전 날 마지막 날에는 호텔 주변을 뛰었다. 호텔 부지를 뛰기엔 좀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어서. 고갯길을 달려 내려가 할 수 있는 한 - 신호등이 허락하는 한 - 멀리 북쪽으로 달렸다가 방향을 꺾어서 커다란 사각형을 그리며 달렸다. 해가 뜨기 전의 밤이었고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때 이른 출근을 하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부지런한 일본인들은 뭐지 이 미친 새끼는? 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동네 골목길에서 러닝을 할 정도로 짜증나는 인간은 일본에도 몇 없었을 것이다. 골목에 대해서 뭐라고 묘사를 하면 좋을까.
나는 사실 이 동네의 골목길을 알 고 있다. 출장을 와서 숙소에 돌아가면 보통 심야였고 그러면 나는 그대로 짐만 풀고 일을 하다가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는 걸로 자는 걸 대신했다. 때때로 시간이 남으면 호텔에서 기어나와 멀지도 않은 이 동네를 혼자 산책하곤 했다. 어디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지. 어디에 자판기가 있는지 대체로 알 고 있다. 어느 기업인가 새로운 연수원을 만든다고 역시나 공사를 하고 있어서 내가 좋아하던 나무가 없어진 것을 보고 꽤 기분이 나빴지만 외국인인 내가 뭘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그냥 그렇게 골목을 달렸다.
차갑게 낮아진 공기가 천천히 떠오르는 해에 달궈지는 걸 느껴보려고 노력하면서. 계속해서 러닝을 했다.
다음 언젠가는 너무나 먼 훗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서.
24년 12월의 글이다.
'High as a kite_(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224] 24년 12월 도쿄_탄게 겐조를 찾아 떠나는 모험 (0) | 2024.12.24 |
---|---|
[20241223] 24년 12월 도쿄_꽃을 찾아가보는 모험 (0) | 2024.12.22 |
[20241221] 24년 12월 도쿄_속. 아메카지를 둘러싼 모험 (0) | 2024.12.21 |
[20241219] 24년 12월 도쿄_러닝을 찾아 떠나는 모험 (0) | 2024.12.18 |
[20241218] 24년 12월 도쿄_아메카지를 둘러싼 모험 (0) | 2024.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