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곧 홋카이도에 간다. 6년만이다. 뉴욕에 가려다가(혹은 런던에 가려다가) 예산이 걱정되어 홋카이도에 간다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다. 언제 내가 예산을 신경썼는가. 6개월 전에 예약을 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계획을 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11월에 어디로 갈지 결정했고 아주 오랫동안 비행편 외엔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뉴욕에 가지 않기로 한건 환율 때문이었잖아 라고 말한다면 1년 간의 환율 등락을 보여줄 수 있다. 비행기를 예약했을 때의 환율은 그리 높지 않은 구간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11월에 비행기를 예약했다. 국적기 항공사의 마일리지를 써서 말이다. 내가 홋카이도에 가는 것은 어떤 이유도 없이 그저 거기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어떤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법이고 내가 존재하는 방식의 발현이다.

그렇다면 왜 홋카이도를 가야만 했는가 그걸 대답하려면 짜치는 질답을 해야한다. 지금부터 어색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 질문을 해보겠다. 당신은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얼마 전 홋카이도 관광청을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구시로 습원을 횡단하는 노롯코라는 이름의 열차가 2026년을 기해서 운행을 중단한다는 아티클이 있었다. 노롯코는 승차감이 좋지 않고 내부는 나무로 이루어진 작고 시끄러운 열차다. 장점은 커다란 창문으로, 노롯코를 타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구시로 습원을 구경할 수 있다. 관광열차지만 예전에 운행되던 일반열차와 완전히 동일한 사양이다.

나는 노롯코를 한 번 타본 일이 있는데. 홋카이도를 처음 가게 된 계기도 구시로 습원의 녹색을 가로질러가고 있는 노롯코 열차의 사진과 구시로 습원에 대한 짧은 글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 글을 다시 인용하진 않기로 하자. 왜냐하면 2015년에 있었던 그 여행에 대해 2016년에 여행기를 쓰면서 그 글을 인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블로그에 그 때의 여행기가 기재되어 있다. 비공개로 돌렸으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디테일들이 있고, 단지 한 줄의 문장을 쓰고 싶어서 여행에서 돌아온지 1년이 지났는데도 굳이 써내려간 여행기. 내가 썼던 가장 아름다운 글 중 하나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글을 다시 읽어보니 여행기에는 쓰지 않았던 일 - 실은 15년도의 여자친구와 하와이 혹은 프랑스를 가려다가 대판 싸우고 나는 홋카이도, 여자친구는 라스베가스를 갔던 걸 - 떠올렸다. 나는 홋카이도를 다른 장소의 대체가 아니면 가질 못하는 걸까.

노롯코호가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다니. 역시 구시로에 가서 마지막으로 노롯코를 타야 하는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미신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의 나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 현실의 나를 아는 사람도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 내가 가진 묘한 징크스 중에 하나는 “내가 알아야 할 일은 반드시 알게 된다.”는 것이 있는데 타이밍 좋게 알게 된 운행중단 소식은 꼭 내가 거길 반드시 가야한다는 우주적 의지로부터의 조언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2015년, 바로 딱 십 년 전 내 영혼, 아니면 정체성이라고 할 만한 것의 일부를 구시로 습원에 그대로 둔 채로 나의 일부만 거기서 도망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경 이야기는 너무 길게 하지 않기로 하자. 나는 가족을 잃었고, 하고 싶었던 유일한 커리어는 포기했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20대 중반을 보냈는데. 삶의 이유 같았던 - 왜냐하면 내가 아니면 그 사람은 죽을 거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20대에 자주 있는 일이다. - 연애가 끝난 후, 말 그대로 무너져 있던 나는 일주일에 70시간씩 회사일을 하고 남는 시간은 전부 누워있는 걸로 시간을 보냈는데.
당시 나를 일으키려고, 최선을 다해서 해야할 일을 만들어주고 잔소리를 하고 매주 약속을 만들어 불러냈던 것이 (나중에는 질려서 나를 버려두고 그냥 라스베가스로 가버렸지만) 당시의 여자친구였다. 나는 그런 상황 - 내 유일한 친구와도 같았던 당시의 여자친구가 나에게 질려 나를 버리기 직전 - 까지 가자 스스로도 더 이상 이렇게 지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 홋카이도에 갔다. 그리고 밤기차를 타고 수백킬로 미터를 가로질러, 홋카이도에 도착한 두번째 날 구시로 습원에 갔다. 1시간 동안 혼자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했고 이윽고 그렇게 그곳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어떤 부분을 잘라낸 뒤 3시간을 걸어 도시로 돌아갔다. 그것은 내가 즉석에서 해낸 의례의 일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실제로 그 후에 비교적 멀쩡해져 그 때 홋카이도에서 뭘 했는지 아무에게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내가 뭘 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맞다. 그렇게 나는 1년을 더 보냈고 16년에 다시 한 번 홋카이도에 가서 옥수수와 멜론을 죽어라고 먹어댄 후, 삿포로의 구석진 곳에서 모든 게 녹아서 물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울고는 홋카이도의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라스베가스로 도망간 여자친구와는 홋카이도에서 돌아온 후 거의 바로 헤어지게 되었지만, 여러분이 알고 있는 나는 대체로 구시로 습원에서 뭔가를 버린 후에 만들어진 사람이다.
다음은 지금은 비공개로 되어 있는 그 여행기의 일부이다.

<…녹색이, 녹색이, 녹색이, 녹색이 펼쳐져 있다. 녹색의 소음이 산불같은 소리를 내면서 사방에서 떨어져 내린다. 상상하고 있던 흙의 비린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싱싱한 풀을 갓 잘라내었을때 나는 냄새만이 느껴진다. 여긴 거대한 풀의 한 가운데야. 세상에 놓여진 세상의 끝 중 하나야. 너는 그래서 여기까지 온거야.
나는 습원에 놓여진 나무 잔교의 한 쪽에 서서 귀를 기울여 사방을 본다. 눈으로는 어떤 새도 동물도 볼수가 없었다.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내 옆을 치고 가버렸다.
(나는 순순히 나의 끝을 인정했다)
나는 여기에 무너지기 위해 온 것이다. 멀리 바다를 건너, 기차를 타고 밤의 끝에 도착한 도시에서. 습지로. 무엇이라도 혼잣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음이 나를 안았다.
나는 그렇게 통곡하기 위해 찾아간, 그 땅 끝 같은 벌판에서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왔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음. 우주의 모든 곳에서 떨어져 나온 신호 같았다. 그것은 내 삶의 끝이고. (언젠가 혹은 바로 지금) 이빨처럼 나를 찢어 흩뿌릴 것이다. 나의 일부가 저 푸른 습지에서 소음이 되어 사라졌다. 나는 소음과 끝의 위로를 받아들였고 습지를 걸어나온 나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조각이 되어 습지에서 산으로, 그리고 도시로 각자 걸어나갔다… >

지금은 2025년이다. 나는 또 누군가를 너무 많이 사랑해버렸고 1년 가까이 시도했던 온갖 방법들은 별로 소용이 없이. 나는 블로그에 (비공개를 포함하면) 50개가 넘는 아티클을 적었고, 러닝을 너무 잘하게 된 나머지 5월에는 2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꼭 어떤 마지막 경고 앞에 선 비상탈출처럼 홋카이도에 다시 한 번 가는 건. 지난번에 했던 걸 한 번 더 해야한다는 뜻인가? 노롯코호가 운행을 중단하기 전에? 아…정말 사양하고 싶다. 나도 10년 동안 뭔가 배운게 있어야 할게 아닌가. 아직도 꿈이, 밤이 매 순간 순간이 나를 두들기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이 글은 내가 왜 홋카이도에 가려고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아주 짧게. 너무 우울하고요 죽고싶고요 할 수만 있다면 미친 사람처럼 본인의 정체성 일부를 아무도 없는 곳에 버리고 오려고요. 라고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테지만. 그것은 좀 바보 같아 보일게 틀림없다.

그래서 이번 홋카이도 여행은 여행 직전이 될 때 까지 아무 일정도 없다시피, 그냥 숙소만 철저하게 사람이 많은 곳 위주로 짰다.

. 수요일 - 출국, 바로 토마무로 기차를 탐. 비싼 저녁을 먹고 안도 타다오의 물의 교회를 봄(저녁) 그리고 러닝을 함.
. 목요일 - 운해를 구경하고 트래킹을 살짝 하다가 아침을 먹음. 물의 교회를 또 봄(아침) 그리고 러닝을 함.
. 금요일 - 마지막으로 물의 교회를 보고, 러닝을 하고 기차를 타고 삿포로로 감. 삿포로에서 아메카지! 를 함. 생각나면 밤에 러닝을 함.
. 토요일 - 러닝을 함. 그거 말고 아무 생각 없음.
. 일요일 - 러닝을 함. 그리고 버스를 타고 도야호로 가서 온천을 함. 불꽃놀이를 보며 맥주를 마심.
. 월요일 - 러닝을 함. 온천. 불꽃놀이. 그거 말고 일정 없음.
. 화요일 - 러닝을 함. 마지막으로 온천을 하고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감. 그리고 출국.

이것이 이번 여행의 일정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할지. 뭘 보고 뭘 느낄지 전혀 모르겠다. 다만 할 수 있다면 러닝을 좀 더 하고 생각은 하지 않고. 책을 무더기로 들고가고. 글을 더 쓸 생각이다. 이미 글을 써야할 이유를 잃어버린지 오래로 나는 내 글을 누가 읽는지 왜 읽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터라(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겐 미안하지만, 당신이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다.) 글을 쓰지 않는 편이 나에게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뭔가를 쓰는 것 말고 나를 여기에 고정시켜둘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하지만 글을 쓴다고 해도 여행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게 된 이상 나의 모든 글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홋카이도에 가서 한 짓을 누가 궁금해하겠는가. 이제는 당신도 나를 읽지 않게되었는데 말이다.

25년 6월 1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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