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도시마다 인기 있는 플레이리스트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거 알고 계십니까? 애플 뮤직 같은 곳에서는 도시 별 핫 플레이 리스트를 공유 하는데 혹시 스포티파이는 더 자세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홋카이도의 플레이 리스트라고 한다면 나약한 동아시아의 음악 같은건 아니고 컨츄리 음악입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한 70-80년대의 컨츄리 음악이 홋카이도에 딱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은 이번 6월 여행 중 홋카이도에서 제일 많이 들은 음악은 소란부시라는 민속 춤 공연과 관련된 어레인지 곡들이었습니다. 민속춤? 네 홋카이도 지역의 풍어를 기원하는 전통 춤 같은 것이었는데 몇 번의 공중파에서의 대히트로 어느새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에 쓴 홋카이도 여행기 중 하나에도 소란부시 축제에 대해서 자세히 쓴 적이 있는데. 인연도 인연이겠거니와 우연이 겹쳐서 올해의 축제가 제가 삿포로에 있는 기간 중 정확하게 겹쳤습니다. 고생도 좀 있었지만, 몇 년 전에 신상에 일이 있는 상태에서 홋카이도에 왔을 때 야밤의 소란부시 춤을 구경했었던 것처럼 올해도 스즈키노의 사거리에 서서 소란부시를 구경했습니다.


(8) <Don’t you want me baby?> Mandy smith, <Summer of the mirage> Yoshimasa terui & Orika okachi

나는 대체로 계획적으로 게으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계획을 짜지 않았다. 여행 계획을 짠다는 것 자체가 괴로웠고 하루에 반 정도는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을 하고 (하하) 있었기 때문에 계획이랍시고 한 달 전 쯤 호텔만 대충 예약해두고 가기 싫어서 투덜거렸다.

가기 3일 전 쯤에 그나마 러닝코스도 보고 잡지를 찾아서 3,40군데 정도 음식점을 구글맵에 무작정 저장해뒀다. 그걸로 여행 계획은 끝이었다. 진짜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리스트하고 우선순위도 적어두고 괜찮아 보이는 동선까지 정리해둔 12월의 도쿄 여행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나는 정말로 순조롭게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삿포로에서 이틀째인 토요일은 정말 아무 계획도 세워두지 않았는데, 처음 하려고 생각했었던 청바지 사기는 그 전날 해버렸고 부탁받거나 했던 것들도 대체로 다 해버리니까 할 일이 없었다.

아침에 강변을 10킬로미터 쯤 달리면 좋은 생각이 나겠지 하고 일단 달려봤는데 기분만 상쾌해지고 더 건강해졌을 뿐 좋은 생각이 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홋카이도도립 근대 미술관에 가는 거였다. 숙소에서 가까웠기도 했지만 그림을 보고 있으면 뭔가 좋은 생각이 나겠지 하는 멍한 생각이었다.

오픈시간에 맞춰서 근대미술관에 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가기 전에도 몰랐고 티켓 줄에 설 때도 몰랐지만 19세기의 우키요에 작가 중 가장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요시카와 쿠니요시의 홋카이도 전시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 예약까지 하고 온 부지런한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냥 멍한 상태로 가죽점퍼에 까마귀처럼 옷을 입은 키가 큰 대학생 뒤에(어떻게 알았냐면 학생 할인을 받더라) 서서 아니 이거 국뽕 전시(아니 일본이니까 일뽕인가…)아냐 그냥 상설전이나 볼까 하고 투덜거리며 천육백엔이나 하는 티켓을 샀다.

전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티켓팅하면서 투덜거린 것 치고 너무 즐거웠는데 질과 양 모두 풍부하고 징그럽고 웃겨서 대만족 했다 정도?

무엇보다 티켓을 살 때부터 앞에 서있던 대학생을 관찰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는데 팜플렛에 연필로 뭔가를 열심히 적으며 집중해서 전시를 보다가도 갑자기 순서를 건너 뛰어서 앞으로 가버리거나 하는 걸 반복했다. 그런데도 순서대로 전시를 보던 나와 계속 동선이 겹쳤는데 키는 힐탑재 기준 나보다 약간 작은 정도로 키가 큰데 소심한지 전시를 보고 있는 한 무리의 시니어들만 보면 앞지르지를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도 깜짝 놀란게 삿포로 시민들 특히 시니어분들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시는거지? 몇무리나 되는 시니어분들이 토론을 하며 전시를 보고 계셨다.

결국 키가 엄청 큰 외국인(크왕!)인 내가 염치불구하고 계속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소리합니다 익스큐즈 어스 하면서 시니어 무리들을 뚫고 앞으로 나가기를 반복했는데. 대학생 분은 그 때 마다 내 뒤를 쫓아왔다. 그렇게 전시를 보는 1시간 내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게 편한 걸 알아버린 것이다.

우타가와 전을 다 보기 전에 나는 대학생 분보다 먼저 나가서 상설전을 보러 갔다. 그것도 너무 재미있었다만 시간이 너무 걸린 것 같다. 상설전을 다 보고 카페에서 30분 동안 커피를 마시고 왜 아직도 밥 시간이 아니지 하고 투덜더리면서 뮤지엄샵(너무 좋아한다)을 갔더니 거기에 아까의 대학생 분이 물건을 고르다가 눈이 마주쳐서는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를 했다.

왜 인사를 했냐고 물어보니 저도 모르게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


(9) <Tears dry tonight> CYRIL, <Wouldn’t change a thing> Kyile Minogue

삿포로 시내에서 들려온 곡이다.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하기도 민망한게 메인 도로들을 전부 점령하고 있는 축제인파를 피해서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파스타를 먹거나 했다. 소란부시 축제에 대해서는 따로 쓸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다니.


(10) <Peter Gunn Theme> the blues brothers

70년대와 80년대 SNL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코미디언 존 벨루시와 댄 애크로이드가 결성한 2인조 밴드 브루스 브라더스는 뚱뚱보와 말라깽이 조합의 제법 코미디 듀오의 스탠다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애초에 이름도 브룩스 브라더스를 뒤튼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전업 가수들 못지 않아서 결국 빌보드 200에서 1위를 하기에 이르렀는데…블루스와 코미디를 결합한 공연이던 그들의 흥겨움이 장점이 되었고.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레이 찰스 같은 당대 최고 아니 미국대중 음악 역사를 통틀어서도 전설인 인물들과 협업을 하기에 이르게 된다. 특징적인 것은 검은 페도라에 검은 수트 그리고 검은 선글라스로 두 콤비는 어떤 유쾌한 공연을 해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웃지도 않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영화(아니 SNL캐릭터로 무려 영화를 찍었다는게 그들의 인기를 보여주는 거긴 한데)에서도 마찬가지로 저는 어느날 그 영화를 공중파의 명화 극장 방송에서 보았습니다. SNL이 뭔지로 모를 나이였던 저야 저 사람들이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기에 맥락 있는 유머들은 하나도 이해를 못했지만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언젠가 2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고 합니다. 아 그 시절엔 코미디 영화는 시리즈화 되는 게 할리우드의 룰이었거든요. 물론 속편이 나오긴 하지만 1편이 1980년도에 나온 것에 비해서 1998년에 나왔으니 18년이나 걸린거죠. 블루스 브라더스의 키가 작은 쪽이자 진짜 천재였던 존 벨루시가 33살의 젊은 나이에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 주된 이유였겠죠. 1편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한 번 보시는 걸 권합니다. 아니 뭐 블루스 브라더스 얘길 한바닥을 했네. 제가 좋아하는 영화라서 그렇습니다.

나카지마 공원 근처에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런 곳으로 삿포로의 중심가에서는 묘하게 벗어나 있어서 손님의 90%는 그 동네 살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나카지마 공원 근처라고 해도 7분 가량을 걸어야 한다. 게다가 파는 것은 700엔 가량의 콜드 샌드위치거나 그보다는 살짝 비싼 핫 샌드위치인데 굳이 거길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야 하는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우연히도 그 샌드위치 가게의 반경…한 2킬로미터 이내에 있다면. 그리고 밥을 먹어야 한다면 충분히 갈 이유가 된다. 사장 내외는 유쾌하며 더하고 덜 것 없는 깔끔한 접객 태도를 보여주며. 가게 내부는 경영자들의 유머감각을 반영해서 깨끗하고 과하지 않은 유머가 있다. (예를 들어서 흑판에 대놓고 빅토리아 케네픽의 책을 인용해 EAT or we both starve 라고 써둔게 웃기다) 그런 가게라 그런지 브루스 브라더스의 OST를 틀어놓아도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하여튼 그런 좋은 가게인데 샌드위치는 어떠냐고? 우리 이모는 이런 샌드위치를 미국맛이라고 좀 낮춰 보는 경향이 있는데. 빵은 유럽 샌드위치처럼 두껍지 않고 얇지만 안에 들어간 햄은 짜고 감칠맛이 난다.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영화가 재미있었을 때의 기분처럼 씹을 수록 맛이 난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할 맛이다. 다름 아닌 제가 좋아하는 맛이기 때문에 그 가게가 다음에 갈 때도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게의 이름은 HASAMIYA라고 합니다.

그건 그렇고 블루스 브라더스의 곡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아레사 플랭클린이 부른 <think>인데 아니 블루스 브라더스가 이 곡에서 뭘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춤 같은걸 추나.

(11) <Scherzo No.4 en mi Majeur, OP 54> Anne Quefflelec

낙원은 글의 소재가 될 수 없어도 쇠락한 낙원은 글의 소재가 된다. 이 리조트에 처음으로 왔던 때를 기억한다. 뭐가 그렇게 싫었는지 여행 내내 미친 사람처럼 숙소를 계속 바꿨고. 매일 2-3시간을 이동하며 도시에서 도시로 움직였다. 비오는 날에도 걸었고 해가 떠있어도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올라갔고 아무도 타지 않는 버스 정류장에서 하루에 4번 있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여행의 거의 마지막 쯤에 도착한 것이 이 리조트였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이미 이 지역은 쇠락과 회복을 반복하며 정체라고 해야할지 복구라고 해야할지 명확하게 말하기 힘든 그런 상태를 지속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진으로 주변의 농촌과 주택가가 큰 피해를 입고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숫자로 말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이곳은 내가 그 때 까지 본 중에서 가장 커다란 온천 리조트였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나는 디즈니 랜드라도 온 것 처럼 리조트의 탕을 바꿔가며 목욕을 했다. 그리고 밤에는 불꽃놀이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는 아쉬워하면서 리조트를 떠나는 걸 반복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걸까. 이번에 이곳을 방문한 것은 4번째 쯤 된다. 몇 년 전 리노베이션을 한다는 홈페이지 공지를 보았다 뭔가가 바뀌어 있겠지 하고 기대했던 것 같다. 좀 다른게 있다면 이전에는 적당한 엔트리 레벨의 룸 플랜으로 왔다면 이번에는 미친 사람처럼 제일 비싼 플랜 중 하나로 왔다. 그래놓고 계속 아 왜 이렇게 비싸지 하고 투덜댔다. 기대를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 일 것이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 전체에 대해서 놀랍도록 아무 기대도 없었지만 이 리조트에서 쉬는 것만은 기대했다. 매일매일 온천을 하고 10킬로미터씩 뛰고, 라운지에 앉아서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이걸 쓰는 것도 라운지에서이다. 나는 체크 아웃 후 삿포로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리조트에는 예전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 않았다. 비성수기인 6월이라고 해도 미어터질 것 같이 붐비던 식사 장소도, 온천에도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2박 이상의 연박을 하는 손님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였다. 다들 삿포로에서 출발해 4시에 도착한 후 다음날 10시면 리조트를 떠났다. 어쩌면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이 곳의 비용이 너무 비싸졌고, 비슷한 규모의 리조트들이 새로 몇개나 생겼기 때문에 손님들이 다른 곳으로 나눠진 걸까?

하지만 호수를 도는 유람선에도 산책로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온천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그런 곳인게 탄로난 것일까 하고 심술궂은 생각을 한다. 새로운 리조트들이 몇 개 생겨난 만큼 쇠락하여 소멸해가던 호수 근처의 거리들은 예전과 다르게 편의점과 마트가 생겼지만, 이미 배경이 되는 주택가는 소멸해있던 터라 새로운 주택가가 생겨나지는 않은 것 같다. 가게들은 대다수 문을 열지 않았다. 성수기면 다시 여는 걸까, 아니면 완전히 문을 닫은걸까.

혼자 보는 불꽃놀이는 지독하게 재미없었다. 맥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불꽃놀이 배가 호수를 횡단하기도 전에 창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었다. 해가 뜰 때 쯤, 이 온천이 자랑하는 옥상의 노천 온천에 가보았을 때. 분명 청소를 끝낸 뒤일 노천 온천 위에 벌레들이 떠있는 걸 보고 쓰게 웃었다. 아니 방 안에 이미 자쿠지가 있는데 여긴 또 왜 와서 이런 걸 보고있는거지. 옥상으로 가는 문에는 얄궂게도 6월 초순부터 벌레들의 대규모 발생이 있습니다 양해해주십시오 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나는 뭘 기대한거지 어떤 맛있는 조식도 이틀을 연속으로 먹으면 질리기 마련인데.

나는 여기의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라운지에는 400몇 년 수령의 나무(어딘가 신사의 신목이었다고 한다. 진짜 무엄한 짓을 하는구나)가 죽으면서 그걸 일부 테이블로 만든 것이 있다. 거기 엎드려서 생각을 해보니 생각이 잘 된다. 나는 너무 고집이 쎄고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기면 그걸 질릴 때 까지(잘 질리지도 않으면서)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죠 400년 수령의 신목님?

가끔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어떠냐.
그렇군요 영험하시네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라운지에서는 지겹도록 쇼팽을, 그도 아니면 슈베르트를 튼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질릴 정도였다.(로비에선 바흐를 틀어놓는다. 보통은 반대 아냐?)

(12) <the razors edge> AC/DC, <Can’t happen here> rainbow

리조트에서 삿포로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는 작고, 무릎이나 펼만한 그런 곳이었다. 주로 라이더들이 즐기는 곳인듯 한데 휴게소 밖의 화장실은 고장나서 안의 작은 화장실을 써야했다. 뭐라도 하나 사줘야지 싶어서 가게를 들러봤지만 음료도 자판기나 있어서 구미 하나를 사서 계산을 하려는데 The razors edge가 나왔다. 에이씨디씨네요 라고 말하니까 그 때 까지 너무 과하게 친절하던 (90년대 락가수 머리를 한) 사장님은 아주 흉폭하게 씨익하고 웃으셨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글이 25년6월의 홋카이도 여행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아주 적절한 글인 것 같다.


25년 6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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