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야 말로 영혼이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증거이다.

2025년 6월에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정확히 나는 이 글을 여행의 6일째 날인 6월 9일 월요일에 온천 리조트의 라운지에서 쓰고 있다. 방금 나와 같이 삿포로에서 출발한 외국인 시니어 커플이 체크아웃 하고 떠나는 걸 보니 마음이 안 좋아졌는데, 세상 누가 온천 리조트에서 혼자서 2박 3일이나 한단 말인가. 나는 외로워졌고 그럴 때 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러닝…아니 글 쓰기 밖에 없다.

이번 여행은 6년만의 홋카이도이다. 여행을 가기 전, 나는 이제까지의 형태로는 여행기를 쓰지 않을거라고 말했지만 수다쟁이인 나는 당신과 밤을 새고도 남을 정도의 말이 솟아올라 여행에 대해서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감추고 오직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내가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도록 글을 쓸 생각이다.

여행기의 주제는 홋카이도 여행 중에 들은 음악이다. 단지 내가 선택해서 들은게 아니라 어딘가 가게에서, 거리에서, 호텔의 라운지에서 들었던 음악들에 대한 리스트이다. 내가 아는 곡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샤잠으로 어떤 노래인지 체크해서 확인했다. 세상에 맙소사 내 목숨은 이제 100년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음악들이 너무 많다. 음악이나 아티스트에 대해서 뭔가 잘못 쓴 내용이 있다면 양해를 부탁한다. 지적해준다면 진짜 빠른 속도로 수정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왜 이런 형태의 여행기를 쓴냐고 한다면, 때때로 사람은 너무나 하찮은 기억들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당신에게도 있지 않은가? 잘 말라있는 차가운 테이블에 손을 올려놓고 누군가의 옆 얼굴을 쳐다보던 기억. 특별한 날도 특별한 장소도 아니었지만 곱슬머리에 북슬북슬해진 머리를 쳐다보며 정작 해야할 말은 잊어버리고 가만히 있었던 때. 어떤 기적같은 일이 벌어져서 그 사람이 당신을 쳐다보며 뭔데요, 라고 말하는 그런 기억들. 그 눈과 콧등.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던 아주 흔하디 흔한 노래 같은 것들. 그런것들이 우리 하찮은 인간들의 영원을 장식하는 법이다.

(1) <Last call>, Logic

이해는 안가지만 홋카이도의 음식점은 음악 선곡이 좋은 가게들이 많다. 특히 카레 가게들의 선곡들은 굉장해서 아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 음악을 찾아서 듣는거야 싶을 정도의 곳도 많다. 아니 애초에 홋카이도의 카레 명점의 조건은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냐고? 적어도 저에겐 진실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은 것은 토마무에 있는 라멘 가게 ㄷ이다. 내가 도쿄에서 예전에 자주 가던 라멘 가게는 음악을 아예 틀지 않았고 어떤 가게는 지겹도록 엔카만 틀어댔는데 그건 그 나름대로 스타일이라고 존중 할 수 있었지만. 어떤 가게에서 드래곤애쉬와 엠플로를 틀은 걸 보고 과연 이런 가게가 맛이 있을까 하고 상당히 부당한 판단으로 미안하다고 하고 가게를 그냥 나온 적이 있다.
내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일본에서 라멘이나 카레 가게는 소규모로 가게 주인이 장인정신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음식 하나에 자기 커리어는 물론 인생을 거는 사람들에게 스타일이 없을 수는 없으며 그런 스타일이 있는 사람들은 음악 선곡 능력 또한 굉장하다. -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되시나요? 네 뭐 별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란 것에는 동의합니다.

20대때 이미 빌보드 200안에 들어가고 30살때 랩퍼에서 은퇴한 로직이 유명하지 않다고는 볼 수 없지만 라멘집에서 들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은 안되는 라인업이 아닙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노래를 틀어둔 가게의 라멘은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습니다. 홋카이도는 원래 재료의 질이 좋아 라멘 맛으로 만날 티격태격 싸우는 중인데 이 가게는 미소도 시오도 맛있었고 들어간 재료들도 성의가 가득했다. 토마무에 가게 되면 들러보기 바란다.

아니 근데 No pressure 앨범 뒤로 은퇴한 것이 아니었는지? 확인해보니 그래놓고 계속 앨범을 내고 있었다고. 하이고. Ultra 85(2024) 앨범의 Deja vu가 아주 쫀득쫀득하니 좋네요. 좀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두 번째 찾아갔을 때는 Amin의 <redmercedes>가 나오고 있었다. 라멘가게 사장님이 뭘 좋아하는지 진짜 알 것 같았다.

(2) <Mr. Bojangles>, Nitty Gritty Dirt Band

아까 바로 위에서 말했지만, 적어도 홋카이도에서 카레 명점(맛집이란 말로는 부족하다)의 조건은 간지 나는 선곡이다. 내가 홋카이도 하면 운명적으로 떠올리는 노래 중에 하나 <Young and Wild>도 어느날 물에 젖은 타올처럼 지쳐서 들어간 후라노의 카레 집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노래이다. 어두컴컴해서 제대로 된 조명도 없는 카레집에서 먹은 카레가 너무 짙고 맛이 있어서 심정적으로는 거의 오열을 하며 밥을 먹었다.

이 카레 가게도 그 정도 임팩트가 있었다. 토마무의 리조트 안에 있는 가라쿠의 분점(본점은 삿포로의 추오구에 있다 중심가 중에 중심가이다.)이었는데 별 기대를 안하고 야채를 많이 먹고 싶어요 라며 야채카레에 야채토핑만 추가해서 먹었는데 배도 안 고픈 상태였으면서 말 그대로 접시까지 햝아먹고 말았다. 너무 맛이 있어서 계산을 하며 제가 이제까지 먹어본 스프 카레 중에 제일 맛있습니다 라고 하니까 자주 듣는 말인듯 칭찬 고마워요 라고 하고 끝났다. 아니 아니라니까 너희는 정말 홋카이도의 보물이라니까.

하여간 보쟁글스란 이름의 댄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 이 곡은 빌보드 핫 100에도 들었던 컨츄리 곡으로 원곡은 1960년대에 발매되었지만 니티 그리티 더트 밴드에 의해 포크록 감성을 아주 조금 섞은채로(아니 애초에 블루글래스가 메인인 밴드니까…) 발매되었다. 원곡이 워낙에 명곡이고 아직도 본 밴드의 주요 곡이라고 하면 이 곡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듀크 엘링턴의 보쟁글스랑은 상관이 없다. 가사가 정말로 아름다운데 스프카레를 먹을 때 같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스프카레에 어울리는 노래는 컨츄리 음악이다.

(3) <Follow me>, Yagami junko

내가 토마무에 있었던 리조트 부지에는 몇 개의 브랜드(하지만 모두 호시노 리조트 산하이다)가 같이 있는 구조였는데 그 중 한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셔틀 버스는 도착 시에 똑같은 음악을 크게 틀었다. 그게 바로 이 곡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표곡인 <황혼의 베이시티>같은 건 너무 유명해서 나도 듣는 순간 알았을텐데 팔로우미는 야가미 준코의 노래인지도 몰랐다. 1983년에 발매된 노래를 굳이 트는 건 기사 분이 좋아해서 일까? 토마무 리조트에 있는 동안 비가 오든 말든 고집스럽게 계속 러닝을 했는데 역시 산 속이라 그런지 수도 없이 비가 왔다. 바람막이를 입고 숲 속의 오솔길을 뛰는 동안 저 멀리서 팔로우 미가 들리면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여기가 일본은 일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이 노래를 일부러 트는 건 가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탁이에요 당신, 부드럽게 날 따라와줘요 마음과 발을 멈추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중략) 등 뒤의 구두 소리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어요 부탁이에요 당신 곧바로 나를 따라와줘요 사실은 겁이 많은 제 강한 척을”

달리기를 하다가 노래 듣고 울었다니까 진짜.

(4) <Sour&Sweet>, 뱀뱀

해외에서 한국인인걸 가장 강하게 의식하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 그건 아주 멀리에서 아무리 작은 소리라고 해도 씨발이라는 말이 들려올 때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그 단어만은 언제든, 어디서든, 혹은 소리내어하지 않아도 알아 들을 수 있다. 한국인 여러분 해외 나가서 말 좀 작게 하시고 해외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말 좀 현지어로 하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삿포로 중심가에선 살짝 벗어난 ㅇ라는 카레집에 들어갔을 때 들은 노래이다.
마침 숙소 근처에 일본국내산 청바지를 파는 편집샵이 있었고 그 근처에 카레 명점이 있다고 해서(그렇다 또 카레를 먹으러 갔다.) 들어갔는데, 내가 한국인이란 걸 알고 그러셨는지 아니면 원래 듣고 계셨는지 모르겠는데 뱀뱀의 노래가 나왔다. 뒤이어서 하이키라든가 좀 일본인에겐 마이너한 (25년 현재 일본에서 아이돌의 왕은 트와이스이다. 롱리브더킹) 아이돌 음악이 나왔는데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나는 신상을 털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몸가짐을 정갈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어 가사가 나와서 한국 노래란건 알았지만 뱀뱀의 노래인건 전혀 몰랐다.

내가 시킨 건 스프카레가 아니라 제일 인기가 좋다는 햄버그 카레였는데 한국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안절 부절 못하고 있다가 영혼 같은 김이 펄펄 올라오는 햄버그 카레를 보자 이것도 역시 접시까지 싹싹 긁어먹고 말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사장님은 재료를 사러 가셨다가 좀 나중에 오셨고 음악을 선곡한 건 가게에 있었던 다른 점원(여성분)이었던 것 같다. 사장님이 60살이 넘으신 것 같은데 뱀뱀 같은 해외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면 그것도 나름 몹시 스타일리시한 일이다.

(5) <Mystical Magical>, Benson Boone

한창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이 22살의 젊은 싱어는. 솔직히 말하자면 탑건 매버릭에서 마일스 탤러가 분한 “루스터”랑 스타일링이 똑같아서 혹시 미국에는 저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뭔가가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갔던 전 여자친구에게 탑건 매버릭은 친구의 아들을 어떻게 저렇게 해버리려는 중년 게이의 욕망에 대한 영화이고 이런 영화를 18세 이상 관람가로 만들지 않은 것은 영진위의 태업이라고 강하게 주장한 적이 있다. 그날 바로 차이지 않은 게 용하다. (나는 대학생 때 영화 욕을 하다가 여자친구에게 차인 적이 있다. 진짜로)

딴 얘기만 해서 죄송한데. 위에서 쓴 청바지 가게에서 들은 노래다. 요즘 너무 잘 나가는 싱어라서 뭐라고 설명하기도 좀 그런데. 저 곡이 수록된 앨범인 American Heart는 웃통을 벗고 성조기를 들고 있는 벤슨의 모습이 있어서 앨범 아트를 삭제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청바지를 58천엔 어치나 사는 바람에 삼성카드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인이 사신게 맞냐고. 맞습니다…

(6) <Good luck, babe!>, Chappell roan

그렇게 오래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성장 중인 아티스트인게 도드하진다. 특히 2024년에 발매된 이 트랙은 대단하다. 80-90년대를 재현하겠다는 의지로 신디로퍼나 마돈나가(아니 사실 신디 로퍼만) 걸어온 길을 똑바로 따라가고 있는 채플 론은 스스로가 작곡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본인이 뭘 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내가 잘 모르는 영국 어디 쯤 90년대 아티스트인 줄 알았다.

여행 중간, 그리고 지금까지도 허리가 아파서 이 날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뭐라도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간 햄버거 가게에서 들은 노래이다. 구글맵에서 대충 찍어서 갔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가게의 운영은 사장 부부 분이 하고 있었고 가게 안은 동네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한 로컬 음식점이었다. 사람들은 가게에 킵해놓은 보틀에 아주 웃기는 본인들의 폴라로이드를 붙여놓았고 대충대충 메세지를 적은 포스트잇. 그리고 구글맵의 리뷰에도 동네 사람들의 애정 어린 메세지가 잔뜩 있었다. 로컬 맛집을 찾아다니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그냥 관광객이면 관광객 답게 관광객 음식이나 먹으라고! 하며 심술을 부리고 있기는 하나 이런 로컬 사람들의 애정이 담긴 가게에 가게 되면 아주 잠시나봐 내가 거기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마저 든다.

뜨겁다 못해서 김이 펄펄 나는 치즈버거와 사장님이 직접 만들어서 좀 못생긴 피클을 먹고는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계산을 하니. 사장님이 건강 조심해요 라고 생면 부지인 나에게 인사를 해주셨다. 눈물이 많아지는 건 중년의 증거이다. 그렇지 않은가?

25년 6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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