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르(아이누어: юкар, 일본어: ユーカラ) 아이누인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서사시. 방언에 따라 투이탁(туитак), 우에페르케(уэпэркэ)라고도 불린다.
주로 신에 다한 이야기인 카무이 유카르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아이누 유카르로 나뉜다. 홋카이도의 자연현상이나 생태를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려는 것들이 많다.
모르는 사람과 커피를 마셨다. 20분 남짓 커피를 마시고 프랑스 작가들에 대한 쓸데없는 얘길 했다. 키가 크고 깊은 눈을 한 그 모르는 사람은 카메라에 내가 찍힌 사진을 보여줬다. 파란 모자를 쓴 안경 쓴 사람이 프레임의 끝에 걸려있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뭔가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과 헤어져서 1시간 쯤 걸었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이 보여준 내 사진을 달라고 하는 걸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깨달은 이유는 홋카이도에는 왜 오신 거에요? 라는 그 사람의 질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그 질문에 대해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는데 그 때, 되찾고 싶은게 있어서요. 같은 바보 같은 대답은 하지 말 걸 그랬다.
한국에 돌아오니 곧 장마가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벽은 여름이 시작하기 전 겁을 내던 것만큼은 덥지 않았고 비는 땅이나 겨우 적실 정도로만 내렸다. 우산 살의 간격이 좁고 크기가 작은 우산을 받쳐들고 퇴근을 하다가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지도의 공백이나 기억의 구멍을 볼 때 처럼 나는 멍하게 그 공간을 쳐다보고 거기에 무엇이 있었을 거란 걸 추측할 뿐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날 꿈에 눈썹이 붙고 굵은 곱슬머리를 한 장사아치가 탁상 위에 여러개의 안경을 늘어놓고 그 중에 하나를 골라 가지라는 제안을 했다. 나는 반짝이는 안경을 만지다가 그런데 내 안경은 어디갔지? 내가 쓰고 있던 안경 말야. 라고 물었다. 곱슬머리의 장사아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을 피했다. 나는 뻔뻔스러운 그 얼굴을 보며 내 안경을 되돌려달라고 말했다.
꿈에서 깨어 안경을 두는 곳에 가보니 내 안경은 그대로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안경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쓰는 것은 여행기라고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자연현상에 대해서 내가 그럴 듯 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하는 유카르, 나만의 아이누유카르라고 하겠다.
나는 내가 이걸 왜 쓰는지도 이해할 수 없고, 단지 내가 메모처럼 남긴 손 글씨에 이 세가지에 대해서 글을 써야한다고 적었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순서도 진실 여부도 아무 의미가 없다.
<<물의 교회>>
“…동쪽에서 신이 내려왔다. 아오다모 나뭇가지 위에 멈췄다. 바위산 쪽에 그 강한 날개짓 소리를 느꼈다…” 사라시나 겐조, <아이누 신화>, 2000. 중 올빼미 신의 노래
물의 교회chapel on the water라는 이름은 아이러니하다. 굳이 번역을 한다면 물 위의 예배당이라고 번역해야 할텐데 종교의식을 위한 모임 장소인 채플이 홋카이도에서도 가장 비싼 리조트 중 한 곳의 숙박객들에게만 - 그리고 그곳에서 결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공개된다. 그걸 보면 이 곳은 일본 고급 호텔 특유의 웨딩채플인 것을 알 수 있다. - 공개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애초에 채플이란 가난한 자와 망토를 나눠입었다는 성 마르티노의 일화 때문에 채플(작은 망토와 어원이 같다)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 아닌가.
종교시설이란 모든 사람을 위한 장소다, 라고 사무 노동자 주제에 유사 프롤레타리아적인 투덜거림을 가슴에 간직하고 리조트에 온 이유는. 열에 일곱 정도의 비율로 안도 타다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이 교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씁쓸하다. 나는 딱히 취미도 없으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건축에 집착할 생각인지. 결국 삿포로에서 특급 기차로도 3시간 가량 떨어진 스키 리조트에, 굳이 할 일 도 없는 초여름에 오고야 말았다.
일본에 도착한지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외국인- 동물이 포함된 액티비티는 일본 체류 10일이 지나야 가능하다고 한다. - 에 가족도 동반하지 않은 혼자 - 리조트의 액티비티들은 기본 1팀 4인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혼자 1팀을 구성하게 되면 팀이 부담해야하는 수수료를 혼자 내야한다 - 스키철도 아닌 스키 리조트에 왔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애초부터 아무 것도 없었다.
리조트가 자랑하는 수많은 비성수기 액티비티들 조차도 대체로 단란한 가족 단위로 설계된 것들이라 독신 남성에게는 권하기가 곤란 한 것들이다. 뭘 어쩌겠는가. 물의 교회에 갔다가. 러닝을 하고, 또 물의 교회에 가고. 다시 러닝을 해야지 하고 농담처럼 생각했는데. 나는 정말로 그렇게 2박 3일을 보냈다.
그렇게 처음 물의 교회를 참관한 것은 밤이었다. 체류한 3일 내내 비가 내리고 그치길 반복했고, 첫 날 밤에도 비는 내렸다. 야간 참관엔 사람이 무시무시하게 많았다. 다들 어떻게든 이 멋진 건축물과 이 멋진 건축물에 있는 자신의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고, 혼자 온 독신 남성에 의욕도 그리 많지 않은 나는 그런 사람들의 프레임에 끼어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썼다.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프레임에 너무 많은 사람이 찍힐 정도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교회로 들어왔다. 알고보니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리조트에서 줄 까지 세우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물의 교회에 딸려있는 연못에 비가 오는 광경은 아름다웠지만, 리조트 스탭이 갑자기 멋진 걸 보여주겠다는 듯이 물의 교회 전면의 창을 오픈 했을 때는 실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한 꺼번에 카메라를 열어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나도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를 켰다. 디즈니랜드를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디즈니랜드랑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결국 첫날은 인파를 견디지 못하고 금세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산 꼭대기에 올라갔다가(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의 교회의 아침 참관시간을 기다려 들어갔다. 홋카이도의 여름 아침은 이르다, 산의 아침은 더욱 이르다. 밤의 참관에 비해 사람은 반의 반의 반도 없었다. 아침 참관은 몇 년 전에 새로 생긴 참관 가능 시간이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사람들이 안다 모른다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아침이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거였다. 밤보다는 여유롭게 나는 연못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도문을 외웠다. 조용한 연못 너머의 숲에서 새 소리가 들렸다.
물의 교회는 특이한 위치에 있다. 리조트 안에는 통채로 레스토랑 건물로 쓰이는 건물이 있고, 그 건물의 1층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물의 교회로 통하는 오솔길이 나온다. 레스토랑 건물의 1층, 2층 창가 위치에서는 물의 교회의 후면부를 바라 볼 수 있다. 나는 그곳에 밥을 먹다가 결혼 예식을 위해 가는 커플을 보고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외에 물의 교회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숲을 직접 한 바퀴 돌아본 봐, 최소한 바지가 엉망으로 젖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물의 교회로 갈 수 없다.
물의 교회는 숲과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연못, 그리고 그 연못에 접한 노출콘트리트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에 접근 할 때는 아까 얘기했던 오솔길을 따라 회색의 벽을 지나쳐 입구로 들어가면 된다. 입구로 들어갔을 때 보이는 것은 교회 건물의 정면, 그리고 연못. 그 연못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흰색의 십자가이다. 사람들이 물의 교회 건물을 가장 똑바로 볼 수 있는 것은 회색의 벽 입구로 들어갈 때 바로 그 순간 뿐이다.
연못의 둘레를 따라 걸어가면 교회 건물로 들어 갈 수 있는데. 교회 건물 위에는 십자가가 겹치듯이 솟아 있고 - 물론 비는 막아주지 않는다. - 반나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예배당이다. 예배당은 작다. 50명, 노력하면 80명 정도도 가능할 지 모르겠다. (영 별로로 보이는) 오르간과 성서, 그리고 프로젝터 정도는 있다. 특이한 것은 설교자를 위한 자리가 없다.
모든 것이 너무 일반적인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어서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정말 어떤 종교적 신념도 없는 사람이다. 굳이 따지자면 선사상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런 곳에서는 기도를 하기 적절하진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다. 나도 몇 번이고 러닝을 반복했다. 숲 길을 달리고 언덕길을 오르내리고 혼잣말을 계속했다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 혹은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서.
그날 밤의 물의 교회는 가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았고 나는 이미 물의 교회에 대해서 아무 것도 기대하는 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삼일째는 또 다시 산에 올랐다. 그리고 밥을 먹으며 물의 교회를 바라보다가 결심이 들어서 한 번 더 물의 교회에 들어갔다. 이번 참관에도 사람은 없었다. 나는 뭘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단지 자리에 앉아서 숲의 소리를 들었다.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30분 정도는 충분히 앉아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지도 스마트폰을 켜지도 않았다. 이미 아침부터 산에 오른 나는 전도자 같은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왕국이 돌아오길 그러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단지 앞을 바라보았다.
아주 우연히. 앞서서 온 팀들이 교회를 떠나고 마지막 입장 시간에 맞춰서 다음 팀들이 교회로 걸어오고 있을 때 아주 짧은 5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교회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앉아있을 때가 있었다. 5분 보단 더 길었을지도, 아니면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 때 산을 스치는 바람이 연못을 쓸어올리며 공중으로 솟아 올랐고. 그 커다랗고 밀도 높은 바람에 물결이 생겨나 연못의 바깥 쪽에서 내가 앉아있는 교회 건물 쪽으로 밀려들어왔다. 모든 숲이 한 꺼번에 말하는 것처럼, 폭풍이 먼 곳에서 불려나올 때 그러는 것처럼 나무가 한 꺼번에 서로 쓸려가며 흔들렸다. 소음이, 바람이 찢겨가는 소리와 돌과 모래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등장 하는 소리처럼 모든게 한 번에 시끄러워졌다 조용해졌다.
그리고 교회의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앞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산지 이른 아침의 어두운 하늘 저 편, 아무 것도 없는 공중을 쳐다보고는. 거기 무언가가 멀리서 날아와 숲의 꼭대기에 바람과 함께 내려 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보이진 않았지만 굳이 모습을 상상한다면 커다란 새. 영혼으로 만들어져 빛처럼 검고, 사람처럼 울고 사람같은 표정을 하니 그 모습이 불길하나 내가 몹시 사랑하는 그런 새 말이다. 그 새가 오랜 시간을 기다려 나를 만나기 위해 산과 산으로 이어진 바람 길을 타고 비와 함께 이곳까지 날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는 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시끄러운 말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교회에 혼자 있는게 아니었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교회를 나섰다. 그리고 새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느새 사라져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리조트에서 해야할 일을 전부 해치운 나는 그날 오전 일찍 리조트를 떠났다. 비는 금세 그쳐 내가 리조트를 떠날 때 쯤이면 완전히 맑은 날씨가 되어 있었다.
<<축제의 밤>>
“…나는 시코츠 호수에 사는 한 마리 여우이다. 인간마을에 뭔가 근심거리가 일어나면, 그것을 몰래 알려주고, 힘든일이 생기면 우는 소리로서 어디에서 재앙이 오는지 주의를 주어서, 노인은 그것에 따라 신에게 가호를 바라고 재앙을 피했다…” 사라시나 겐조, <아이누 신화>, 2000. 중 누키베츠 마을의 카무이 유카르
이번 삿포로 체류는 또 삿포로의 소란부시 축제와 일정이 겹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이 3번째로 일정이 겹치는건데. 작년에는 8월에 축제가 있었던 걸 보니 주최 측에서는 한국 정부, 혹은 내 인스타그램을 통해 출국일정을 확인하는 것 같다.
삿포로에 도착한 첫날 호텔 앞 나카지마 공원 공지에서 소년 소녀들이 소란부시를 연습하고 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그나마 여유가 있던 첫날 쇼핑이나 했던 나는 삿포로에서의 체류 일정을 완전히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의 지방 축제는 대체로 대단하지만 삿포로의 메인 축제 중 하나이기도 한 소란부시 축제는 더 대단하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많았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소란부시 동호회 여러분들이 공원에서, 길가에서, 공터에서 춤을 추고 있어서 삿포로 중심가는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만한 곳이 아니었다.
삿포로 체류 둘째 날은 축제의 메인 일정이기도 했다. 새벽에 강변 러닝을 끝마치고(새벽4시부터 뛰었는데 그 때 이미 춤을 연습하는 소년소녀들이 있었다 아이고 애기들아) 딱히 할 게 없어서 미술관에 갔다가, 바로 근처에 있던 오도리 공원을 포함 삿포로 시내를 가로질러 가며 춤도 구경하고 밥도 먹으려고 했던 건 … 결국 너무 안일한 계획이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삿포로의 여러 축제 중에서도 여름 축제라고 하면 바로 이 소란부시 축제. 오도리 공원을 포함해 삿포로의 메인 스트리트가 사람으로 가득했다. 급하게 연어박물관이니 하수도박물관이니 하는 장소는 어떨까요 하고 트위터에 의견을 물어봤지만 그거야 웃기려고 가는 것이고 그런데를 급하게 간다고 해서 즐거울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몇년 전 홋카이도 다른 곳에서 연어 박물관을 간 적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게 연어 생태관 어쩌고 하는 이름의 장소가 한 두군데가 아니다)
결국 둘 째 날 한 것은 하루 종일 녹초가 되도록 걸어다녔을 뿐이다. 인파에 치어서 마지막으로 희망을 안고 간 홋카이도 대학마저 대학 자체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그 넓은 캠퍼스 부지의 메인스트리트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을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홋카이도 대학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넓고 (삿포로 캠퍼스는 18제곱킬로미터가 조금 안된다. 마포구보다 조금 작다는 뜻이다…) 그곳에 사람이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마이클 잭슨이 삿포로를 방문하는 날 정도 외엔 일어날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스즈키노와 삿포로 역 앞과 오도리 공원을 인파로 가득채우고도, 홋카이도 대학마저 할일 없는 사람들로 가득채울 정도로 삿포로는 거대한 도시였다. 애초에 내가 얕본 것은 삿포로 시민들이었다.
홋카이도 대학에서도 도망 나와서 하루 종일 도대체 뭘 한거지 하고, 회사원 스러운 반성을 하며 사람으로 가득찬 오도리를 건너. 스즈키노를 가로지르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구글 지도를 열어보니 여기가 2016년 처음으로 소란부시 축제를 봤던 날. 스즈키노에서 징기스칸을 배불리 먹고 가게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던 바로 그 골목이었다.
이것도 인연인가 싶어서 잠시 서서 구경을 하려는데, 잠시만 하려고 하던 것이 좀처럼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마을 단위의 사람들이 아이와 어른이 모여 춤을 추고, 학교 단위의 사람들이 모여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뽐낸다. 깃발을 흔들고 옷자락을 폈다. 지치고 힘들어서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잠시 서서 구경이나 하려던 나는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아래의 글은 내가 2016년 10월 10일에 쓴, 16년 6월의 삿포로 여행기 마지막 부분이다.
“…박수를 치고, 다시 춤을 추고. 앉아있다가 일어서고. 여느 꿈처럼 싸구려 전깃불과 스포트 라이트가 사방에 걸려있는데 사람들은 동작을 맞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모두가 자기 멋대로 노래를 부른다…나는 춤을 추지 못하고 공원의 구석에서 낯선 사람들의 춤을 추며 눈물이 가득 고여 밤이 희뿌옇게 사라져가는 것을. 내 마음이 가라 앉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꿈 속에서 춤을 춘다. 가장 멋지게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춤을 추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나는 춤을 추어야했다. 왜냐하면 내가 울고 있는 사이에 모두들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계속해서. 이것이 내가 6월의 홋카이도에서 깨달은 마지막의 것. 소음에서 걸어나와 춤을 추겠다는 것. 나의 나라로 돌아가, 당신에게 같이 춤을 추지 않겠냐고 권하는 것. 다시 한 번 더.”
나는 어떠한 6월이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 때와 똑같이 반쯤 부숴지고 너덜너덜해진 채로 홋카이도에 도착해서, 이동하는 곳마다 글을 쓰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그리고 다시 삿포로에 도착해서 사람들의 축제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 어떤 내가 피할 수 없는 계절적 순환처럼 생각되었다.
축제의 밤은 축제의 밤이고, 춤을 추는 사람은 모두가 변함없이 춤을 추고 있으며.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해서 헤맨다. 해는 이미 져서 거리에 매어둔 등불이 반짝이는데 너는 혼자 우두커니 서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만 하는구나. 춤을 출 생각은 하지 않고. 춤을 출 생각은 하지 않고.
이 여행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내가 지난 번 홋카이도에서 겪었던 일들을 다시 한 번 반복하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그 목적이리라.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나는 축제의 행렬 앞에서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치지 않으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의 기도>>
“…이봐요 젊은이 부드러운 살갗이 뒤덮인 언덕 어루만지며 덩굴 숲 해쳐서 계곡의 낮은 곳으로 내려와 줘요…” 사라시나 겐조, <아이누 신화>, 2000. 중 파우치 카무이의 노래
조지프 캠벨의 명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오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생각 했을 때 가장 많이 일어날 법 한 오독은 모든 신화와 전설들이 궁극적으로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 세계가 실은 어떤 한 사람의 머릿 속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오독이다. 그도 그럴 듯이 조지프 캠벨은 이 재미있는 책의 에필로그에 이르러 이런 멋진 문장을 쓴다.
“…세계는 그를 위해,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신은 이렇게 말했다. ‘오 무함마드여, 내가 없었으면, 내 저 하늘도 만들지 않았으리라.’…” 조지프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민음사,467p
그러나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폐색적인 결론이 아니라, 모든 비의와 종교가 하강하여 어떤 신비도 없어진 현대 사회에서도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좀 더 나은 - 혹은 도덕적인 -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 이라고 생각한다. 더 간단하게 얘기해보자면, 이 책을 여기까지 읽었으니 이 책에 실린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착하게 살도록 하자- 정도가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사람들의 오독에 대해서 얘기해놓고 나만은 오독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구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들은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존재한다. 당신이 당신 자신인 한, 당신은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다. 하지만 당신의 바깥- 당신이 관측하지 않는, 그리고 관측 할 일도 없는 곳 -에도 세상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벌어진 일들이 아무리 충격적인 일이라고 해도 사실 그건 세상이 탄생한 이래로 끝없이 반복된 일들이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일어났을 뿐이다.
여기엔 장점도 있다. 당신은 글로 씌여지고 노래로 불리워진 그 이야기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당신이 보지 않은 곳은 새까만 공백이 아니다 단지 당신은 오래 전에 발명된 무언가를 다시 한 번 발견해 나갈 뿐이다.)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대대로 남겨진 이야기들이야 말로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증거라고 주장 할 생각이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어떤 이야기도 남겨지고 이어져 당신에까지 전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당신은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당신을 -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 마음 속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이 글을 읽고 당신의 고통과 슬픔을 가라앉히길 바라기 때문이다.
도야호를 갈 때는 항상 삿포로에서 버스를 탄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삿포로에서 도야호로 갈 때는 오른 쪽 자리에, 도야호에서 삿포로로 돌아갈 때는 왼쪽 자리에 앉는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앉는다. 그리고 한숨자고 일어나 창 밖을 바라보고 그제서야 내가 산이 잘 보이는 쪽으로 앉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버스의 창에 이마를 대고 산을 바라본다. 사다리 꼴 모양의 산은 6월의 여름 볕에도 불구하고 그 꼭대기부터 중턱까지 흰 빛이 보인다. 아직 눈이 녹을 정도로 덥지는 않은 건지. 나는 한 번도 저 산의 눈이 녹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산의 이름은 요테이이고 다이세츠잔 연봉들처럼 다른 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고 평원에 혼자 솟아 올라와있어서 더 외롭고 웅장해보인다. 창에 이마를 너무 오래 대고 있던 나는 나는 멀미를 하면서도 지치지도 않고 산을 바라본다. 도야호에서도 요테이 산을 바라 볼 수 있지만 굳이 버스에서 요테이 산을 바라보는 이유는 …하하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저 산이 보이는 곳에 있는 한 그 산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을 뿐이다.
삿포로에서 도야호 까지 버스로 가면 2시간이 좀 더 걸린다. 가는 길 대부분은 산 길이고 터널이나 고갯길을 지날 때도 있지만 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해도 좋다. 중간 지점 쯤 있는 휴게소에서는 저 멀리 산이 보인다. 여기만큼 산이 잘 보이는 곳이 없을꺼야 하는 생각에 무리해서 사진을 찍어보지만. 산은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온다.
산 근처에는 스키장이, 호텔을 겸한 아케이드가. 그리고 과수원과 목장들이 있다. 하지만 세속적인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요테이 산이 가진 압도적인 존재감과 신령함은 녹색처럼 선명하다. 나는 요테이 산 뿐만 아니라 토카치의 평원에서 다이세츠잔 연봉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비에이의 언덕 위에서, 후라노의 농장 사이 샛길에서, 그리고 다이세츠잔 중 하나에 올라가 비를 맞으며 산을 쳐다보았다.
다이세츠잔의 연봉 또한 거대하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그 산을 보는 순간. 대대로 이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 산들을 향해 기도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신의 존재를 매일 매일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까. 전승에 따른 선악관과 신이 주는 행운과 불행.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별했던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저 산을 넘어간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나는 산을 보며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다고 해도 산의 모습은 쉬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푸르고, 검고 그리고 희다. 꼭 사람의 마음처럼.
그래서 나는 당신이 여기에 있었으면 하고 기도하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내 옆에 있기를 기도하지 않는다. 단지 눈을 감고 산에 대해 생각한다.
…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6월의 중순, 여느해보다도 서늘하고 더위가 오지 않은 여름이 되었다. 아직까지 창을 열면 바람이 시원하다.
나는 글을 쓰려다가 홋카이도를 돌아오는 날에 산 헤드폰을 쓰고 소파에 기대 아주 잠시 낮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자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아주 희미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무엇인지도 모를 그게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았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 그것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슬픔과 고통, 혹은 낡고 빛이 바랜 여우의 그림자라고 해도 말이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유카르이다.
25년 6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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