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썼던 글을 지우고는 오늘은 어떤 글도 쓰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오후엔 가까운 유니클로에 가서 구제불능처럼 러닝용 쇼츠팬츠와 자외선차단 파커를 샀다. 어찌된 걸까 분명히 출근용 옷을 좀 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장바구니에 옷을 넣어서 덜렁덜렁 걸어가는데 아주 좋은 바람이 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단지 시원하고 맑은, 아주 좋은 바람말이다. 아침에 10킬로미터를 뛰어주지 않았으면 또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겠지. 나는 대신 아주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햇볕조차 너무 좋은 오후 3시였다.

회사의 시큐리티를 담당하는 업체에는 눈에 띄는 여성 분이 있다. 나보다 80살 정도는 어릴 듯한 미인 분인데. 회사 동료와 지나가다가 그 분이 나에게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 걸 보고 회사 동료가 깜짝 놀라서 아는 사이에요? 라고 묻기에. 어 서로 이름 정도는 알죠 라고 했더니 도대체 어떻게 한거냐고 계속 물어보았다. 귀찮아서 사실 저희 어머니입니다. 라고 둘러댔다. 실은 그냥 왔다갔다 하면서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인사를 했더니 언제부터인가 서로 인사를 하게 되었을 뿐이다. 사원증을 서로 패용하고 있으니 이름 정도는 서로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분은 사원증에 걸린 얼굴과 그걸 걸고 있는 사람을 비교하는게 일인 사람이니까.
요는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고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인사를 하면 상대도 나를 우호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편의점 직원이나 단골 바리스타 직원이 퇴사 전 인사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카페는 얼굴을 금세 익히게 되는데, 매일 아침 일찍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카페에서 콜드브루를 주문하던 시절 카페의 바리스타는 내가 커피를 주문하면 숫자를 열까지 세기도 전에 내주곤 했다. 열 보다 늦어질 때는 오직 커피에 낙서를 하실 때 뿐이었다.(가끔 토끼나 고양이 같은 그림을 그려주셨다.)

내 친구들은 내가 그럴 때 마다, 낯선 사람들에게 제일 친절하다고 그렇게 친절하게 구는 걸 볼 때 마다 기분이 나쁘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말이 맞다. 나도 내가 사교적이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단지 굳이 비사회적인 특성을 티를 내며 살 필요가 있을까.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면 좋잖아. 그게 뭐가 어때서 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며 녀석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면 친구들은 더 불쾌해한다.
이런 얘기들은 별 거 아닌 것들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픈 구석이 있다. 나는 뭐가 잘못된 인간인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소중한 사람을 더 소중히 여겼어야 하는게 아닌가.


오늘은 5월 18일이다. 날씨가 아주 좋은 늦 봄 또는 초여름이다. 그리고 7월이 되면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1년이 된다.

사이가 나빠진 것은 5월 부터였기 때문에 사실은 이제 슬슬 1년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우리집의 창가에서 초여름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여자친구가 버스를 타러 가는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일요일의 오후였는데 그날 따라 일찍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 날은 배웅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1년 동안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그날 배웅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는지는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글은 해답편의 해답이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솔직하게 말하는게 너무 힘들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를 위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걸 아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는게 맞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워 한다는 것은 나름의 순화된 표현이다. 헤어지는 과정은 별로였고, 헤어진 뒤에 벌어진 일들도 엉망이었지만 인정하기로 하자. 나는 변함없이 그 사람을 사랑한다.

내 인생에 어떤 사람보다도 그 사람을 깊숙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는 온갖 수를 다 써가면서 그 사람을 잊어보려고 했지만 (약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사귄다거나. 홧김에 약혼한다거나 그런 건 하지 못했다. 사실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일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 모두 다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작년의 5월부터 7월 까지 몇개월 동안 그 사람을 관찰하며 그 사람의 마음이 떠나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항상 그 사람에게 약속한 것처럼 그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은 나와 헤어진 후로 연락을 해오지 않는다. 그것은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자못 어른스럽게 잘난척을 한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라든가 어른은 짝사랑은 하지 않는다거나. 하여간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얘기를 수없이 해놓고 이제 드디어 솔직하게 말한다. 나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그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도 없었다.
실은 최근의 나는 몇개의 계절을 보내면서(그리고 미친놈처럼 책을 읽고 러닝을 하면서) 꽤 성공적으로 그 사람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겨울이 지난 어느날 부터는 더욱 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괴로웠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지워버렸던 원래의 해답편에 써두었던 것을 인용해보겠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멀어지면서. 그 사랑하는 것이 가진 속성이 세계 전부로 퍼져가는거야. 나는 내 애정의 원형을 돌려받을 수 없기에 그 속성들에 집착하지. 어떤 뒷모습, 비슷한 이름, 이빨의 모양, 목소리의 고저, 말투, 표정, 걷는 방법 같은 아무 것도 아닌 것. 아무 의미도 없는 것. 단지 내가 사랑한 것이 가지고 있던 그 속성들은 부숴진 세상의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속성들을 발견할 때 마다 내 애정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거야.
그리고 거기에 내 감정이 있다는 착각을 하지. 그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은 한 때 하나였던 세계의 파편일 뿐인데. 365분의 1의 파편. 아무 의미도 없는 단편적인 조각들…”

요지는, 세상의 어떤 것을 보아도 거기서 그 사람의 일부를 보기 때문에 괴롭다는 얘길 문과 특유의 뱅뱅 돌려말하기. 아니 앵간한 문과도 이 정도로 돌려말하진 않겠지 하여간 내 특유의 뱅뱅 돌려말하기로 써둔 것이다. 나는 매일밤 그 사람의 꿈을 꿨고 매일 그 사람의 생각을 하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모든 속성들을 떠올려야 했기 때문에 꼭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산산히 분해되어 세상의 모든 것에 깃든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고통은 그 사람이 부재하기 때문에, 점점 내 머릿 속에서 그 사람이 잊혀져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들어야만 치유되는 종류의 고통이다. 그래서 나는 그 고통을 계속해서 어떤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려고 노력했다. 그 사람의 부재와 더불어, 나는 그 사람을 잊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잊지 않으려는 내면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지겨워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에 와 두부 한모를 먹고 한 숨 잔 다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마 또 어느날의 변덕으로 이 글을 그대로 블로그에서 지울 지도 모른다. 알게 뭐야 내 블로그인데)

나는 그냥 그 사람을 좀 처럼 잊을 수 없다는 것과 그 사람이 내 일부에 스며들어 있어서 내가 아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걸 자의로는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한다.
나의 실패에 대한 겸허한 인정과 더불어서. 그대로 시간이 어떻게 가고 그와 함께 내가 어떻게 되어갈지를 지켜보기로 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어쩌면 이렇게 살다가 어느날 으악 하고 죽을 수도 있는 법이다. 아니면 어느날 어떤 여자아이를 만나고 뭐지 얘 엄청 웃기네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단지,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말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지 말고. 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스러지고 내 영혼의 빛이 어떻게 바래어가는지 그 시간을 견뎌보도록 하기로 한다.

그렇게 하기로 하자.

2025년 5월.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511] 중유(中有)  (2) 2025.05.12
[20250505] 평일에 대한 서문  (0) 2025.05.05
[20250418] 4월, 비가 왔다.  (0) 2025.04.18
[20250409] 춘래불사춘  (3) 2025.04.09
[20250405] 청명, 다음날  (0) 2025.04.06

5월 10일, 마을버스 뒷바퀴에 깔린 사람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젯밤 9시 40분쯤 서울 ㅇㅇ구ㅇㅇ동ㅇㅇ터널 사거리 인근 한 버스 정류장에서 ㅇㅇ대 여성이 마을버스 바퀴에 깔려 숨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여성은 마을버스에서 내린 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이후 버스 오른쪽 뒷바퀴에…(후략)>

찾아본 바, 9개의 매체에서 기사가 나왔고 내가 봤던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볼 일이 없었던 기사였지만 다른 기사를 보다 우연히, 그리고 무심코 클릭해서 보게되었다. 기사를 읽은 건. 5월 10일의 오전 쯤으로 기억한다.

사고가 난 곳은 내가 아주 잘 아는 곳이다. 기사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은 감시카메라의 화상의 캡쳐된 이미지(어두운 비오는 날의)였고 지도 어플을 열어 예상되는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가 난 장소는 모교의 후문에서 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나는 마침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알고 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사고가 난 ㅇㅇ구에 있는 모든 응급병원과 장례식장을 검색하고 빈소에 등록된 망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었던 나는. 해당 구의 근처에 있는 3구지역의 병원들을 모두 찾아서 확인했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한 건 직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오랫동안 회사원으로 일했던 사람의 업무 방법론 같은 것이다. 거기에 내가 아는 이름은 없었다.

그렇지만 한 번 머릿 속에 들어온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같은 구 혹은 인접 구 내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족들에게 가까운 곳으로 장례식장을 옮기는 경우도 충분히 많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찾아봐야 하는 범위를 넓힌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엇을 찾아야 하고 어딜 먼저 찾아봐야 하는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하지만 그건 광기나 다름없는 생각이다. 전국의 모든 병원, 아니 최소한 수도권의 모든 병원을 확인하기 전에는 계속해서 집착하게 될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창을 닫고 이름을 찾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기사의 댓글에는 주로 사고로 사망한 승객이 불쌍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승객이 내릴 때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던게 아니냐든가 버스기사가 불쌍하다는 댓글 또한 꽤 많았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모든 기사, 모든 댓글을 다 읽었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승객의 부주의함과 운전사의 무결함을 전제 삼아서 댓글을 달고 있던 걸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읽은 기사들 중에는 더 이상 의미 있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승객이나 운전사의 그 어떤 추가 정보 없이 나는 뭔가를 판단 할 수 없었다.

한국은 이상할 정도로 운전자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운전자가 보행자에 대한 사망 사고를 일으켜도 죽은 보행자보다는 운전자의 트라우마를 걱정한다던가 여러가지 멸칭으로 보행자를 칭하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의 다수는, 적어도 댓글 창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다수는 보행자로서 사고를 당하는 불행은 자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불운한 - 불운하다고 하자 - 사고에 대해서 죽는 쪽 보다는 죽지 않는 쪽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은 보행자고 그 반도 안되는 수만 운전자일텐데 말이다.

5월 9일 밤에는 비가 왔다. 서울은 물론 수도권 전체적으로 비가 왔다.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내리는 승객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는 있다. 특히 차량의 왼쪽에 운전석, 오른쪽에 하차석이 있는 한국의 버스는 하차하는 승객들이 잘 안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가 왔다. 마을버스의 오른쪽 뒷바퀴에 깔려서 사망했다면 하체가 아닌 상체가 깔렸다는 이야기이고. 그렇다면 아마 승객은 미끄러져서 뒤로 넘어진 상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가 앞으로 가는 것을 피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넘어지는 것을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올해 몇 번 넘어졌다. 웃기게도 500킬로미터를 넘게 러닝하는 동안 함 번도 넘어지지 않았으면서 그냥 출근을 하다가 넘어진게 두번. 퇴근을 하다 넘어진게 한 번이다.

그 중 출근을 하다 넘어진 날은 눈이 오는 날이었다. 나는 펭귄처럼 조심해서 걷다가 넘어졌고 그런 내 머리 바로 2미터 앞에서 차의 앞바퀴가 멈췄다. 평소에는 차들이 미친듯이 과속하는 구간이었는데 그날은 경찰차가 구석에 멈춰서 차들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차들은 묘하게 서행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넘어진 것은 우연 때문이지만 내가 차에 치이지 않은건 구석에 멈춰서서 차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경찰차 덕분이다. (몹시 억울하게도, 이 때 넘어져 무릎을 다친 나는 절룩거리며 언덕을 내려가던 중 한 번 더 넘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졌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행운을 과신하고, 우연을 아예 없는 것처럼 군다.

80% 성공 확률이라고 한다면 5번중에 1번은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고 봐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전 게임에 대해서 다룬 유튜브 채널에서 80% 성공 확률을 가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100% 확률인 것처럼 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제 확률을 좀 더 높여서 90%정도로 보정한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냥 우연히 읽게 된 기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 스스로에겐 절대 어떤 억울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댓글창의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5월 11일에는 산책을 했다. 공원을 지나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다 내 옆을 지나 빠르게 걸어가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비가 그쳐 바람을 시원하고 공기가 맑았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25년 5월의 글이다.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518] 해답편의 해답  (0) 2025.05.18
[20250505] 평일에 대한 서문  (0) 2025.05.05
[20250418] 4월, 비가 왔다.  (0) 2025.04.18
[20250409] 춘래불사춘  (3) 2025.04.09
[20250405] 청명, 다음날  (0) 2025.04.06

너는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에서 수돗물을 받아 마신다. 미지근한 물은 마시는게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수돗물은 음용수로 써도 문제가 없는 걸 알고 있기에 손을 모아 물을 담고는 물을 꿀꺽 삼킨다. 목구멍도 가슴도 아닌 어딘가가 살짝 지글거리며 아프던 감각이 금세 사라져간다. 공기를 잘못 삼켜 그렇게 어딘가가 작게 부풀어오르듯이 아파올 때면 물을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너는 언젠가 고집스럽게 그 아픔을 가만히 놔두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기다려본 적이 있었다. 아픔은 작아지지만 결코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너는 그 뒤로 - 공기를 잘못 삼켰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은 원인을 모를 - 그 아픔이 올 때면 물이 있는 곳에 달려가 물을 마셨다. 그 아픔은 갈증과는 다르다. 그리고 갈증처럼 물이 없는 이상은 영원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네가 있는 곳은 병원이다. 몸이 아픈 것은 아니고 정기적으로 들르는 곳이다. 아직 진료까지 시간이 남아 - 그리고 어쩐지 목 한 쪽 구석이 아직 아픈 것처럼 느껴져 - 커피를 사러 카페에 가려다가 혈액검사실 앞에 자판기가 있는 것을 발견해서 생수를 뽑아 마신다. 자판기가 있었던걸 알고 있었나 모르고 있었나. 화장실에 달려가 수돗물을 마신게 왠지 바보처럼 느껴진다. 주말에 예약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평일에 예약하고 왔던 건데, 평소에 느꼈던 것 보다 더 노인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너는 나도 어떤 사람이 보기엔 노인이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나이의 사람이면 나를 노인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해한다. 스무살 쯤이면 그러려나.

진료는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났다. 마지막 진료 후에 사고가 있었어서 두달 가까이 제대로 운신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너는 고집스럽게 유산소 운동에 집착해서 숫자는 오히려 3개월 전보다 더 나아져 있었다. 너는 밝은 표정으로 깔깔 거리며 웃고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적당한 농담을 해서 괜찮은 사람을 연기한다. 너의 주치의는 - 어느 덧 10년 가까이 너를 진료해준 사람 - 웃으면서 4개월 후에 보자고 한다. 성공이다. 이 사람은 네 상태가 좋으면 다음 내원시기를 뒤로 미룬다. 그러면서 너무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지는 말고요. 하고 덧붙인다. 그건 네가 하루에 천칼로리씩 태우면서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 잘 아는 이야기이다. 여자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는 왜 1이랑 10밖에 없는 사람 같아? 너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칭찬을 들은 사람처럼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다. 그게 칭찬이 아니란걸 알기 때문이다.

약국에는 역시 노인들이 많다. 너는 약국 안의 사람의 수를 센다. 약 하나가 나오고 다음 사람이 약을 받는 시간을 세보고는 내가 얼마나 기다려야할까를 계산해본다. 의식해서 하는 거라기 보다, 모든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3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는 살짝 실망한다. 그리고 내심 달리 할 일도 없으면서 뭘 실망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가져온 책을 편다.

넌 알고 있을까. 너는 요즘 위태로울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다. 밖의 모든 것에 관심을 끄고 싶다는 듯이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책을 읽는다. 걸어다닐 때도 책을 읽고 자리에 앉아있을 수만 있다면 책을 읽는다. 억지로 책에서 고개를 돌려서 유튜브를 보고 스마트폰을 쥐고 뉴스를 듣는다. 세상 어딘가에 연결이 되어있지 않으면 사람은 살수 없다는 것을 너는 안다. 그러면서도 그걸 외면하고 싶어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너는 억지로 먹고 억지로 웃고 억지로 잔다. 자고 일어나면 달리기를 하고. 회사를 나간다. 그리고 남는 시간 전부를, 책을 읽는데 쓴다. 그것이 요즘 너의 작은 비밀이다.

삼십분은 금방이다. 처방전과 영수증을 찍어 보험회사에 보내며. 너는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밝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약국을 나간다. 친구들은 너의 그런 모습을 싫어한다. 낯선 사람에게 가장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 그것은 네가 싫어하는 너의 아버지와 같은 습성이다. 아버지는 가까운 사람에게 잔혹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처럼 되는 것은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거기에 생각이 닿자 너는 자기가 했던 가혹한 행동들과 말을 떠올린다.


날씨가 좋은 평일이지만 네가 해야할 일은 없다.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해야할 일들은 전부 다 해두었기 때문이다. 1시도 되지 않아 모든 할 일을 마치니 이제 해야할 것이 없어진 너는 서점을 갈지 미술관을 갈지 고민이다. 누군가를 만날 약속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는 방법을 까먹기라도 한 것 같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면 된다. 대체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리운 사람들이다.
아침에 지나왔던 덕수궁 길은 정말 예뻤지. 너는 적당히 시원하고 공기가 맑은 평일의 오후가 아쉬워서 경희궁과 숭정전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본다. 점심시간은 슬슬 끝나갈 텐데 주변의 직장인들이 무리를 지어서 산책하고 있다. 평소보다 나무의 색은 더 진하고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는 스프링쿨러마저 신나보인다. 목요일이면 노동절이고 그 뒤로 연휴가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좋아보인다. 어쩌다가 직장으로 잡혀 와서 월급을 벌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마 네 얼굴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물론 너는 오늘 출근을 한게 아니기 때문에 파란색의 볼캡에 진청색의 워크자켓, 진한 색의 진을 입어서 별로 직장인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표정이 그럴거라고 말해볼 뿐이다.

경희궁을 한바퀴 돌고 나니. 너는 또 서점에도 가고 미술관에도 가기로 한다. 덕수궁 미술관에도 보고 싶은 전시가 있었지만 현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는 주말에는 자못 붐벼 지금이 아니면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왜 할일을 가득 만들어내서 일정을 꽉채우고 싶어할까. 여유롭게 밥이라도 먹으면 좋을텐데 너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왜 밥을 먹지 않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너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한다면 도대체 왜 잘 읽지도 않는 과월호 스켑틱을 또 샀는지를 먼저 물어보는게 낫겠지.
너는 책을 산 돈은 네 돈이 아니라 나라에서 주기라도 한 것처럼 책을 사댄다. 안 그래도 그랬던 것을 요즘에는 더욱 고삐가 풀린 것처럼 사댄다.

네가 보고 싶었던 전시는 해외 현대조각가의 전시는 아니었지만. 하고 있던 특별전을 피한 적이 없는 너는 바로 티켓을 끊어서 보러 들어간다. 네 취향일리가 없다는 걸 알고있어서 반쯤 웃으려고 들어간 너는 역시나 전시물 전부를 깔깔 거리면서 본다. 전시물과, 전시물을 둘러싸고 있는 관람객들 모두가 너무 웃기다. 그렇게 까지 비웃을 필요는 없이 나름 조형적인 미를 지닌 뛰어난 작품들이었지만 너는 유쾌한 기분으로 전시를 둘러본다. 다른 모든 관람객들과 다르게 혼자서 보러온 거기 때문에 전시를 다 보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는 또 남들은 잘 보지 않는 다른 특별 전시까지 꼼꼼히 보고는 웃기긴 한데 좀 아쉽다 그치, 라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 너는 어딘가에 혼자있어야 할 때 유쾌한 사람의 흉내를 내거나 다른 누군가가 있는 듯한, 그것도 아니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흉내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혼자 있어야 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저 흉내들을 때때로 두개 이상, 어떤 때는 세개 이상을 하기도 했다.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유쾌한 태도로 뭔가 생각을 하는 것처럼 굴었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너에게 그런 흉내를 내지 않아도 그 어떤 사람도 너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 라고 말해줘야 할 텐데 나는 너도 이미 그걸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자기 배역에 빠진 광대처럼 이제는 그 흉내를 그만두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너는 뭐가 진짜인지 이제는 좀처럼 알수 없게 된게 아닐까 싶다.

전시를 다 보고 너는 평소 그랬던 것처럼 기념품 점을 기웃거리고, 다른 미술관에는 없는 이 미술관의 장점인 예술 서점을 들린다. 좁고 손님도 적은 이 서점은 네가 이 미술관을 들를 때 마다의 기쁨이다. 이미 미술관에 들르기 전 대형 서점에서 잡지 몇권을 사서 가방이 무거운데도 오늘도 굳이 들르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불편하게 길고 좁은 형태로 되어 있는 이 서점은 책 진열대 앞에 서있으면 어색하게 다른 손님과 나란히 서있게 된다. 너는 책을 훑어보다 스스로 생각한 농담에 웃겨 비척비척 움직이려다 옆에 서있던 사람에게 부딪힐뻔 한다. 부딪히지 않았는데도 너는 깜짝 놀라서 그 사람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너는 쑥스러워져서 (살 생각이 없었던) 스티븐 샤피로와 히토 슈타이얼을 하나씩 들어서 계산을 하고 나간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고 바람이 살짝 더 강해졌을 뿐 아직도 그대로 좋은. 고스란히 아름다운 오후였지만. 너는 황급히, 얼굴이 빨개진 채로 뛰쳐나간다.

나는 네가 왜 깜짝 놀랐는지 안다. 너는 책을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옆에 있었던 모르는 사람에게 봐봐 이거 웃기다 라고 보고있던 책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네가 그런 짓을 하려고 했는지도 안다. 거긴 네가 자주 가던 미술관에 딸린 서점이었고 옆에 서있던 낯모르는 사람은 너에게 아주 익숙한 키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키의 사람이 바로 옆에 서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너는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걸 봐. 하고 말을 걸려고 했었다.

그건 그냥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어 라고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너는 깜짝 놀라서 이미 미술관을 나와 거의 뛰는듯한 속도로 도망친다.

나무는 흔들리고. 오후가 아직 남아있었는데 말이지.

25년 5월의 글이다.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518] 해답편의 해답  (0) 2025.05.18
[20250511] 중유(中有)  (2) 2025.05.12
[20250418] 4월, 비가 왔다.  (0) 2025.04.18
[20250409] 춘래불사춘  (3) 2025.04.09
[20250405] 청명, 다음날  (0) 2025.04.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