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쉽게 빌어서는 안된다.
문제는 항상 그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졌을 때 일어난다. 우리는 우리가 빈 소원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가 없고 그 방식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나는 아버지의 서가를 물려받았다. 이제 그 중에서 내 손에 남아있는 것은 한 권도 없지만 주로 독일문학(그 유명한 마인 캄프트도 있었다)과 20년치의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그리고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전공책들이 아버지 서가의 주요 구성요소 였다. 아버지가 내 앞에서 뭔가를 읽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지만 끊임없이 뭔가를 읽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하게 알 고 있었다. 당대에 유행하는 책은 거진 읽는 것 같았고 개중에는 아직 도입 초기이던 웹에서 유행하던 소설까지도 있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기 전부터 아버지의 책은 내 책이나 다름없었기에 뭐가 그렇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후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한국판 발행을 멈출 때 까지 계속해서 정기구독을 했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역시 아버지가, 그리고 아버지의 서가가 나에게 남긴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할아버지의 서가는 작았다. 방 반 정도의 크기였던 서가는 할아버지가 이사를 갈 수록, 그리고 나이가 드실 수록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책장 하나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그렇게 서가가 작아졌을 때도 버리지 못했던 것은 평양계 실향민들을 위한 잡지들. 다른 것들은 말년의 취미셨던 어학 책들이 다수. 때때로 책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할아버지의 친구들이 낸 회고록이었다. 그 세대의 교양있는 노인들이라면 누구나 회고록을 내고 싶어했는데,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진 정치적인 격동들과 고도의 경제성장들을 겪은 세대이다보니. 스스로의 인생이 어떤 기록물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강한확신을 가지시는것이 보통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군인이었던 적이, 아니 정확히는 20년이 넘도록 군인을 했다는 것을 안 것도 내가 성인이 된 후였는데. 어린 내가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할 때면 할아버지는 곤란하다는 듯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동화를 들려준다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어린시절의, 고향의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다.

누군가에게는 의외의 사실이었나보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2016년에 돌아가셨다)에야 오랫동안 일기를 써오셨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나는 그걸 읽어보기는 커녕 존재조차도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일기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았다. 그 분은 그런 세대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일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은 할아버지가 귀여워하셨던 친척고모로 간만에 수도권에 올라오실 일이 있어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뜬금없이 이야기가 나왔다. 네 할아버지가 백인 여자랑 연애했다는거 아나? 아뇨 전혀 몰랐는데,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셨잖아요. 나도 몰랐다. 근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그 분 일기를 봤다 아이가. 거기에 금발의 백인 여자랑 찐하게 연애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는데…그게 또 얼마나 문학적이고 참신하던지 이런 양반이었나 싶어서 내 깜짝 놀랐다.

금발의 벽안. 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에 짚히는게 있는 것이 그게 정말로 벌어진 일이라면 아마 할아버지가 30대때 펜타곤에 파견나가있을 때의 일 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미 결혼을 해서 아버지는 물론 작은 아버지도 있을 때 쯤의 일이 아닌가 근데 그런 시기에 연애를 했다면 그냥 불륜이잖아 싶어서 화제를 돌리려던 차. 친척 고모는 웃으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일기장에 뭐라고 써있었는지 자세히 알려주셨다. 뭐가 도대체 참신하단 말인가, 그냥 진부하고 천박한 표현이라 나는 머릿 속으로 항상 내 앞에선 점잖은 노인인 할아버지를 떠올리고는 음 그 이야기인 재미있지만 더 듣고 싶진 않아요 라고 말했다. 그래 일기장은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 일기장이 같이 있었을 할아버지의 서가에 대한 이야기는 묻지 못했다.

외할아버지의 서가는 원래 서재라고 하기도 부족했고 집의 부지 안에 책만 넣어두는 건물을 세우셨었다고 한다. (그게 사실 서재의 정확한 정의인가.)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사업을 그만 두고 서울의 빌라에서 살고 계셨던 외할아버지의 문간방. 책으로 가득했던 그 방이다. 책으로 가득했다고 말하는 것도 면구한 것이 외할아버지의 집은 거실도 다른 방들도 책으로 가득차 있었고 책이 없는 것은 화장실과 침실 뿐이었다. 하지만 책 외에는 어떠한 기능도 없던 문간방을 나는 멋대로 서재라고 불렀는데. 서재의 가장 큰 책장은 내 지정석 같은 곳이라 외할아버지 댁을 가게 되면 항상 그 주변을 얼쩡거리며 책 등에 써있는 제목들을 읽어보곤 했다.

외할아버지의 소장 도서들은 분별있게 모여있던 것이 아니었고 영문과 일본어, 한자와 한글을 섞어서 쓰던 분 답게 책들도 마구잡이로 섞여있었는데. 그 제각각인 책들을 제목이라도 전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자손 중에서는 그나마 나 뿐이라 나는 항상 외할아버지의 서재를 물려받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그 책들을 물려받고 싶었다. 군사학과 건축학. 미술과 문학. 특히 일문학에는 조예가 깊어 다수의 일본 작가들과 교류도 있었던 외할아버지는 꽤 많은 수의 초판본과 희귀본. 더불어 여러나라의 작가들과 교류한 흔적-서간문들도-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가쪽 친척들과의 교류도 일시적으로 끊었던 나는. 그 책들이 어디로 갔을지 몇 년 동안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아쉬워했다. 이혼을 해 가정사정이 어려워진 작은 딸과 그 아들은 외조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가엽기 때문에 거두신거겠지만 역시나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 분이 돌아가시도록 나는 내가 그 분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가 없었고 최소한 외할아버지 생전의 본인과 가장 가까운 물건, 그 분의 책들을 그 분의 뜻에 따라 물려받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무엇도 아닌 외할아버지의 말과 글이야 말로 본질의 그 분과 가장 가까운 것이기에…

또 몇년이 지난 후 이모와 화해를 하고 한가로이 잡담을 하던 날. 이모에게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대해서 묻자 전쟁과 그 후의 기록도 있고 결국 국방 대학에 전부 기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할아버지 뿐만이 아니다 외할아버지 또한 군문에 오랫동안 계셨다.) 아니 일본문학관련 초판본도 다수이고 희귀본도 꽤나 있을텐데 그걸 통채로 기증했어요? 이모는 그런거 몰랐지 그러면 네가 기증하기 전에 추려내지 그랬니. 하고 여상하게 대답하는 이모의 모습에 나는 할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거기 외할아버지 일기장이 있어서 그걸 국방대학에 기증하는 전날 밤까지 읽고 그랬거든. 거기에 말년의 외할아버지 기록도 있는데 말년에는 네 이야기가 그렇게 많더라 ㅇㅇ이랑 다음주 점심. ㅇㅇ이랑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뭐 그런 내용 말야. 그야 말년에는 외할아버지랑 제일 자주 만난 사람이 이모랑 저니까 그렇겠죠. 라고 대답을 하면서 나는 내 목소리가 조금 갈라진 것을 깨달았다. 서운했을거야 너 회사 들어간 다음에는 자주 안 찾아왔잖아. 매달 일본에 갈 때 마다 단무지나 먹을거 잔뜩 사서 어머니 편으로 외할아버지한테 보냈는데요. 그런 것보다 얼굴 보는게 훨씬 좋지 당연한 걸 모르니 너는.

내 집의 서재에는 아직 풀지 못한 짐들이 쌓여있다. 그 중에서는 다른 사람이 내 집에 놓고 간 책들이 있다. 책들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가벼운 표현인 것 같다. 무게로 따지면 10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을 책 무더기가 있다. 나는 이걸 버리려고도 주인에게 돌려주려고도 했지만 어떻게 된 것이 모두 실패했고.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의 인생의 일부 분량 정도는 될 듯한 책 더미를 가지고 있게 되었다. 이것은 혹시 누군가의 일부라도- 그 사람의 서가를- 가지고 싶어하던 내 소원이 삐뚤어지게 이루어진 결과인걸까 싶었지. 우리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조절 할 수 없다. 그것이 소원의 정의이기도 하다.

금요일엔 새로 산 책장이 온다. 그러면 그 중 한 책장에 이 책들을 다시 꽂아놔야겠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박스에 책을 둔 채로 방치하면 책은 곰팡이가 피고 냄새가 나게 된다. 이 책들을 펴서 읽을 일은 없겠지만 그 책등을 살피며 제목을 읽어보는 것 정도는 나에게도 허락된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뜻하지 않게 책을 맡게된…솔직히 말하자면 뒤에 남겨진 사람의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26년 1월의 글이다.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인테리어가 끝날 때 까지 임시로 살고 있는거니까 3주 정도만 살면 되는 곳인데 요즘 날씨가 너무 추운지 그냥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자면 이 오피스텔 건물에는 스타벅스가 있는데 여긴 전에 만났던 분과 처음으로 갔었던 카페다. 왜 그랬었는지 아구찜을 먹고선 스벅에 가 그 분이 만났던 예전 남자친구들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철벽을 치려고 그런 얘길했던게 아닌가 싶지만. 나는 그 때 이미 그 분이 마냥 좋기만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도 즐겁기만 했다.
매일 내 방으로 들어가기 전 스벅에 들러서 커피라도 하나 살까 생각을 하다 그 분이 내게 해줬던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거기에 만족해서 방에 그대로 들어간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항상 이야기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란다 나는 그럼 그대로 만족해서 몇 년이나 당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잠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묵고 있는 방은 계산해보면 하루 5만6천원 정도의 풀옵션이다. 노력하면 대여섯 걸음 정도는 걸을 수 있는 크기인데도 샤워부스가 딸린 화장실이 있고 세탁기와 조리도구, 세미싱글 정도 되는 침대가 딸려있다. 작은 냉장고도 텔레비젼도 있으니까 뭐 사는데 부족한 것은 없는 셈이다. 부족한게 있다면 상당히 건조하고 죽도록 춥고 새벽2, 3시쯤 깨서 귀를 기울여 보면 희미하게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나고 어딘가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것 정도이다. 회사에서 걸어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것 까지 생각하면 이 한심천만한 가성비가 거슬리지 않는 한 4년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층마다 25개의 방이 있는데도 여기서 산지 1주일이 넘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층에서 누군가와 마주치기라도 한 적은 딱 한 번 뿐이다. 친구는 역 앞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는건 기본적으로 범죄자들 뿐이야 라고 편견 가득한 얘길 하며 오며가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목을 유심히 보라고 했지만. 애초에 누굴 마주치질 않으니까 그런 기회는 없는 셈이다. 어째서 이렇게 까지 누굴 마주치지 않는 걸까 중정을 가진 ㅁ자모양의 건물이라서 그런걸까. 이 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나오는걸 보고는 나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반댓쪽으로 빙그르르 돌고 있는걸까.

눈이 오는 어느 날 중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이 끝나버린 걸 눈치채지 못하고 눈치 없이 혼자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중정으로 난 창을 통해서 아랫층도 볼 수 있었지만 내가 내려다 볼 수 있는 약 200개 쯤 되는 문 중 어떤 문도 열리지 않았고 10개 가까운 복도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사이 2주 아니 3주가 거의 지나가고 있다. 나는 늦든 빠르든 결국 이곳을 떠나게 된다. 그러니 좀 더 감상에 젖어보자면. 이사를 간다는 것은 연애가 끝나는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어느 쪽이 다른 한 쪽의 메타포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사를 나왔던 곳에 우연히라도 오게 되면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거의 그대로 있지만 이상하게도 낯선 기분이 들고, 더 이상 이 곳에 속해있지 않다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거기 남아있는 것들은 내가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망하거나 없어지거나 하는 일도 없이 그냥 예전처럼 살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떠나온 곳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던 것이다. 미련가득히 중얼거려본다 그렇게까지나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나요 대답해보세요 영통구여. 내가 8년이나 살았던 곳이여.

이 글의 제목이 Flight to Denmark인 이유는 듀크 조던의 앨범을 들으며 겨울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찰리 파커와도 같이 연주했다)였지만 뉴욕에서는 전문적인 피아노 연주자 잡을 잡지 못해서인지 사정이 어려웠던 탓인지 택시드라이버로 투잡을 뛰던 듀크 조던은 70년대 유럽의 재즈 유행에 힘입어 덴마크에 초청되어 가서 여러 연주를 했고 이 멋진 앨범을 냈다. 이 앨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넘버는 Everything happens to me 인데 아니 이게 … 이 곡(듀크 조던 앨범에 있는)이 그 곡(쳇 베이커의 보컬로 유명한)이라고?? 하고 생각하며 러닝을 했다. 들을 때 마다 거기서 울지 말고 이 근처로 와서 이 연주를 들으며 울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대단한 연주이다. 그리고 그는 이 앨범의 대성공을 계기로 미국을 떠나 덴마크로 완전히 이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죽는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뭐 그런 쓸쓸함에 대한 것이다.

듀크 조던과는 다르게 내가 덴마크에 가게 된다면 그 여행기의 제목은 <덴마크는 감옥이다>라고 짓고 누군가가 댓글로 “그렇다면 이 세상도 온통 감옥이겠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기다릴 생각이다. 누군가 정말 그렇게 댓글을 달면 낄낄 웃고는 포스팅을 지우겠지. 나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오직 한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 글을 읽고 있지 않을테지. 단 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으로 과분하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사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목숨이 간당간당한 사람처럼 살고 있는걸까.

여기서 사는 것도 이제 3,4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곧 내가 산 집으로 이사를 간다.


26년 1월의 글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둔다. 의미를 갖고 해석하고, 이해하려 들고 현상들을 스스로의 안에 받아들여 영혼에 새기려고 한다. 우리가 현상의 일부 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해석이란 결국 주관의 다른 이름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허공에 그어진 선이고 바닥을 누르는 압력과 소리이며. 공중을 떠다니는 진동, 전기적인 신호이다. 우리는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현상을 이해했다고 주장하고 예측과 관찰을 통해 해석이 맞았음을 증명하려 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있어서 해석은 결국 예측을 위한 도구이다. 예측이 결여된 해석은 결국 망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가 불완전한 언어로 하고 있는 이 모든 소통이 모래 밭 위에 세워진 드높은 탑처럼 언젠가는 무너질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면. 당신도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린다.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을 잃어버린다. 모든 것이 소진 될 때 까지 생산하고 소비해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기 위해 버리고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것을 사악한 행위의 일종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높은 지대의 땅에 쓰레기장을 만들고 그곳에 가장 비싼 가치 없는 것들을 모아둔 후.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일을 하는 사원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소비라는 이름의 강박을 좀 더 신실한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고. 버리는 것과 사는 것 모두를 삶의 목표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요소이고 기계이다. 거대한 책에 놓여진 점과 같다. 우리가 어느 지면에 찍히든 이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많이 걷거나 서있다. 세월의 노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노력은 배신한다, 마음은 가라앉는다. 삶은 흘러간다. 이제까지 어떠한 알려진 사례에서도 시간을 돌릴 수 있었던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흘러간 시간과 노력에 대해 동등한 보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비슷한, 그러나 절대 동등하지 않은 것들이다. 돌아오지 않는 것을 적당한 비용과 합리적인 수준의 스트레스를 통해 변환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멋진 피아노 연주 솜씨, 월급, 반짝거리는 자동차, 무릎부상, 소꿉친구와의 돌이킬 수 없는 헤어짐, 매미껍질, 바닷가에서 주운 매끈한 유리조각, 긴 머리카락.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것은 우리의 가능성 뿐이지만 우리가 가진 전부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의 총합이라는 이야기이다.



25년 1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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