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모는 어느날 죽어 무당벌레가 되었다. 무당벌레는 산 속의 개울에 빠져 물고기가 되었다. 

토모가 원래부터 무당벌레였던 것은 아니다. 


토모는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로 이루어진 가족의 아이였다. 멍청하고 착한 토모. 

사람들은 토모를 사랑하기보다 불쌍히 여겼다. 흔히 자기 보다 약한자에게 베풀어지는 그런 "호의"는 짜증이 섞이기 마련이라 

토모는 눈치를 보는데 익숙했다. 


하지만 토모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말을 잘 하지 않았지만 입을 열면 너무나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 

토모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아름답고 우아한 어머니는 토모의 실수를 엄하게 다뤘다. 

토모는 오빠를 사랑했다. 토모와는 다른 똑똑하고 활발한 오빠. 사람들은 오빠를 사랑했다. 


토모의 가족이 원래부터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토모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이가 나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자주 때렸고, 가끔 오빠나 토모를 때리는 일도 있었다. 

토모는 아버지가 토모를 던져 팔이 부러졌던 일을 기억한다. 그러나 기억해서는 안될 일이었기 때문에 토모는 기억하지 못하는 척 했다. 


어머니는 가끔, 그리고 자주 집을 나가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어머니는 가끔 무섭도록 표정이 없어지곤 했다. 아름다운 어머니. 뱀처럼 차가운 어머니. 

울면서 매달리는 토모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서 한참을 돌아오지 않던 어머니. 


아버지가 어머니가 어디에 갔냐고 물어보면 토모는 장 보러 가신다고 하셨어요. 곧 돌아온다고 하셨어요. 하고 더듬 거리며 말했다. 

넌 정말 비겁한 거짓말쟁이구나. 하고 아버지가 몇 년 후의 토모에게 말했을때 토모는 오빠를 감싸던 중이었다.

아빠, 오빠가 한거 아니에요. 제가 한 거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그래? 그럼 니가 했다는 증거를 보여봐.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토모는 떨면서 쓰레기통을 뒤졌다. 뒤늦게 돌아온 오빠는 너 뭐하냐?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토모를 비웃으면서 비겁한 거짓말쟁이 새끼...라고 말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토모에게 너와 오빠를 걸고 아빠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어. 

아빠는 계속 너의 곁에 있을거란다. 라고 약속을 했다. 

그것은 둘 다 거짓말이었다. 그 거짓말이 기뻤던 만큼 토모는 슬펐다. 비겁한 거짓말쟁이야 아버지는.


매일 매일 표정이 사라져가던 어머니는 어느날 토모와 오빠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우리 죽을래? 너희 엄마랑 같이 죽을래?

토모는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 토모는 죽고 싶지 않아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토모가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오빠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버렸다. 아름다운 얼굴의 어머니는 구멍을 세개 뚫어놓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토모는 무서워서 어머니를 안았다.

어머니 토모와 함께 있어주세요. 제발 저를 떠나지 마세요. 토모는 본인이 한 말을 크게 후회하게 된다.


몇 년 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장식품을 던져 어머니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서 토모는 사람을 부르려 달려나갔다.

아버지가 그 때 한 말을 토모는 기억하고 있다. 너 새끼 꼼짝마 안 그러면 너도 죽여버릴거야. 

토모는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날 토모가 꼼짝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했던 일은 사실이다. 

토모는 수백 번 그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내가 무엇을 했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곱씹었다. 토모는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어느날 어머니의 언니가 집에서 혼자 자고 있던 토모에게 찾아와, 불쌍한 토모. 어쩌니 하고 울었다.

아버지는 그 집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토모는, 솔직히 말한다면 안심했다.


그 뒤로 어머니와 오빠, 토모 셋이 사는 생활이 되었다. 오빠는 꾸준히 인기인이었고 사람들의 눈에 띄이는 사람이었다. 

누구도 오빠를 건드리지 못했지만 토모는 약했다. 토모는 흠칫거리는 일이 늘었고 선생님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들은 잔혹하다. 약자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낸다. 선생님이 토모를 때리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토모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토모가 또 책을 읽어요. 선생님, 토모가요. 토모가요. 

이러오렴 토모, 너는 근본부터 잘못됐어. 

그런가. 나는 근본 부터 잘못 된 걸까?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나는 비겁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따돌림을 받진 않겠지 하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은 잘 되어 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단 한 푼의 양육비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오빠와 토모가 본가를 찾아가 좋아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정을 설명했을 때.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할머니는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해하지 않는 이상 너희도 내 손주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토모는 여전히 토모에요. 울보 토모. 멍청한 토모. 

오빠는 토모를 일으켜세우고 집에 가버렸다. 


토모는 친구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나가면 토모는 집안일을 했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했고 남는 시간엔 책을 보았다. 글을 써서 꽤 큰 대회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주말에 뭐했니, 하고 누군가 물어보면 아버지가 쉬는 날이어서 아버지랑 드라이브를 했어. 라고 말했다. 


저는 토모 입니다. 거짓말쟁이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났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오빠와 토모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니까. 나는 그걸 믿으니까.


소풍을 가서는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서 혼자 있었다. 돈을 쓸수가 없었다. 집은 가난해지고 있었다. 내가 아끼지 않으면 안돼. 

돈이 없다고 생각해서 문제집을 사본 적이 없었다. 교과서만 읽었다. 선생님이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어느날 방과 후에 선생님이 토모를 불렀을 때 토모는 또 작문 대회에 나가라시는 걸까. 하고 얼마 전에 쓴 에세이를 들고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에는 담임 선생님 혼자셨다. 토모, 너 특수고에 진학할 생각 있니? 토모는 멍청했지만 항상 공부를 잘 했다. 

무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외우는 것도 곧잘 했다.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하지 않았지만 가끔 친구들이 풀고 난 뒤의 문제집을 고등학생인 오빠가 가져다 주면 그걸 보고 공부를 했다. 

발음기호를 읽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를 읽지 못했지만 고등학교의 독해 문제도 어렵지 않게 풀수 있었다. 

사전을 살 돈이 없어서 토모의 사전에는 외삼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토모는 두근거렸다. 네 선생님. 저 가고 싶어요.


선생님은 웃었다.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 몇 명이랑 특수고 진학 수업을 운영하고 있거든 거기 들어오면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선생님한테 직접 수업도 받을 수 있단다. 

너한테 전혀 손해 보는 이야기가 아니야. 어머니에게 얘기해주지 않을래? 수업료가 비싸긴 해.

선생님이 말한 숫자는 토모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숫자였다.

선생님, 저희 집은 그럴 돈이 없어요.

그럴 돈이 없다고? 너의 오빠 ㅇㅇㅇ지? 걔 옆 학교에서 엄청나게 유명하고 ㅇㅇㅇㅇ고등학교 가지 않았나? 그런 애네 집이 돈이 없다고?

그랬다. 토모의 오빠는 지역에서도 유명한 인기인이었다. 화려했고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도 잘해서 지역 명문고를 가는데 큰 힘을 들이지도 않았다. 토모는 ㅇㅇㅇ의 동생이라고 불리울 때가 더 많았다. 

너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하니. 오늘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내일 다시 보자.

토모는 집에 가도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토모에게 네가 집의 가장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아버지가 떠난 뒤로 집이 너무 가난해졌다고, 집에는 큰 빚이 있고 우리 세 식구는 뿔뿔히 흩어져야 할 것 같다고.

토모, 네가 해야해.


선생님이 토모를 부른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토모는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 저희 집 가난해서 안되요.

갑자기 어금니가 부숴지는 느낌이 왔다. 주먹이었다. 하나가 가고 다른 하나가 왔다. 너 나 무시하냐?

토모가 쓰러지자. 오른 쪽 귀를 누군가의 발이 걷어찼다.

누가 좀, 토모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선생님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듯이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틀거리면서 학교 뒷편으로 나와 물을 마셨다. 귀에서 나던 피는 집까지 걸리는 40분 동안, 멈추질 않았다.

토모는 울지 않는 척을 하려고 노래를 불렀다. 쥐가 한 마리, 쥐가 두마리, 쥐가 세마리, 쥐가 네마리. 하는 노래였다.

반 친구 하나가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토모는 그게 아주 재미있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그 이후로 토모를 매일 불렀다. 일기를 쓰게했다. 거짓말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라며, 매일 노트 한페이지에 걸쳐 토모의 생활을 쓰게했다.

네가 그렇게 가난하다면 한 번 얼마나 가난 한지를 한 번 써봐, 니 거짓말도 지칠 때가 있겠지.


토모의 성적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답안지를 80%만 작성했기 때문이다. 

영재반의 뒷자리에서 토모는 매일의 일기를 적고, 영재반이 끝나면 담임에게 검사를 맡았다.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울면서 빌기 시작할때 쯤 거짓말쟁이라고 쓰여진 노트를 받은 후 

집으로 갔다. 


오늘 저는 복지 재단에서 받아온 쌀을 햇볕에 말리고 쌀 벌레를 골라냈습니다. 

오빠는 쌀 벌레가 나온 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 같이 벌레를 골라주기도 하지만 그건 저의 일 입니다.


오늘 저는 라면과 참기름을 공짜로 받으러 줄을 섰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저와 사진을 찍고 저에게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라면을 빼앗아 갈까봐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라면을 뜯어보니 양념도 들어있지 않은 라면이었습니다. 


너는 거짓말쟁이야. 언제까지 이러는 줄 보자. 회식 중에 돌아온 선생님은 교무실에 혼자 기다리고 있던 토모를 보고 질렸다는 듯이 내뱉었다.

시뻘건 얼굴로 팔을 걷어붙였다. 이리 와, 하고 손가락으로 토모를 불렀다.


매일 매일 노래를 불렀다. 쥐가 한 마리, 쥐가 두마리, 쥐가 세마리. 집으로 가는 길에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네 달이 넘어갔을 때 토모는 저 사람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토모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특수 고등학교가 아닌 성적이 높은 일반 공립고등학교였다. 

너 성적도 개판인데 거기 써서 되겠니? 요즘 반에서 몇등하더라? 15등?

담임은 이죽거리며 토모의 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입학 시험 날 토모는 평소와는 다르게 모든 답안지를 작성했다. 

입학성적은 반에서 3등이었다. 전교에서 정확히 33등이었다.


토모의 키는 금방 커졌다. 마르고 길고 하얀 토모. 표정이 없는 토모. 언제나 제대로 씻지 않은 머리에 낡은 교복의 토모. 

참고서도 제대로 가지고 다니지 않고 수업시간이면 항상 밖을 쳐다보는 토모. 

공립학교에 들어간 것은 어떤 의미에서 구원이었다. 

그 학교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가난하고 모두가 공부를 잘하는 학교. 

토모는 별종 취급을 받았지만 학교의 일원이 되는 것은 허락받았다. 

3년 내내 토모가 반에서 30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며서도 모의 고사만은 10등 안에 드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기가 안 좋은 시기였다.

 집이 좋지 않으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입을 다물려면 얼마든지 다물수 있었다. 

가정환경 조사서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 동그라미를 쳤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중요해서 3년 내내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으려고 했다.

토모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4년을 견디기로 마음 먹는다. 십년. 

감옥에 들어간 큰 도둑처럼 혼자서 살아갈 힘을 얻을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린 아이가 아무 것도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토모는 다짐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성적으로 조용한 대학교에 가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서. 

아무에게도 맞지 않고,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손벌리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목표, 생존이 토모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꿈이었다.


토모의 마음은 오래 전에 죽었다. 

토모는 웃지 않았다. 

토모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도 모른채 집에 오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나는 괜찮아 잘 하고 있어. 그것이 마음이 죽은 증거라는 것을 토모는 몰랐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대학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대학교였다.

등록금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몇년이나 지나서 만난 조부모에게 토모는 고개를 숙였다. 

조부모는 집에 걸려있던 오랜 빚을 변제해주고 토모의 등록금을 내주었다. 

오빠의 등록금과 학자금을 대주기 시작했기 때문에 토모의 등록금을 대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빠는 조부모의 빛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토모는 일주일에 세 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어머니가 토모에게 왜 아르바이트를 하니? 뭐 사고 싶은거라도 있니? 하고 물어봤을때 토모는 되물었다.

어머니, 저희 집 가난했던거 아니었어요?

아니, 우리가 왜 가난해?

어머니, 저희 집 빚 있다면서요.

아니, 그건 너희 아버지 빚이고. 우리집 안 가난해.

어머니가...저희 가난하다고 했잖아요. 빚이 많고 곧 집은 빼앗기고 저는 본가에서 커야 할 거라고. 네가 잘 하지 않으면 우리 집은 망한다고...

그래?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만큼 힘들었었으니까.

토모 안에서 뭔가가 무너졌다. 토모는 정말 맞아도 싼 거짓말쟁이였던 것이다. 

토모는 누군가에게서 용돈을 받으면 모아서 양념과 소금 같은 것을 사 찬장을 채워넣곤 했었다.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하루 종일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조금씩 읽었다. 토모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6군데의 서점이 있었다. 

주말 이틀을 꼬박 돌면 소설 한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하던게 가난 놀이였구나.

토모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등록금을 스스로 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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