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휴양지는 살기 좋다.

다른데선 500원 하는 생수가 1200원이라든가 앗차 하는 사이에 1주일 만에 한달치 월급을 다 쓴다던가 하는 문제만 제외하면 휴양지는 살기 좋다. 너무 비싸서 관광객이 아예 손도 대지 않을 정도로 비싸지 않는다면 정부도 물가에 신경쓰지 않지만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택시기사라든가 사기를 치는 가이드 같은데는 아예 철퇴를 내린다.

나로선 관광산업에 어디 정당한 목적이나 생산적인 부분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일단은 편안한 휴식과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관광객과 지역사회의 수요공급이 맞아 떨어졌을 때 관광지라는게 성립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사기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아무리 춘천이 강원도 도청소재지로서 닭갈비는 맛있지만, 조용해서 그닥 관광으로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고 해도 즌상이가(발음에 정말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살던 곳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떼로 몰려오는걸 볼 때. 그 메카니즘이 극히 불합리한 "선호"위에 합리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런 얘길 하는 이유는, 정말 외국의 생활을 알려면 관광지에 가서는 안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에 있어도 휴양지에 가면 실생활 감각을 잃고 보통 때라면 죽어도 안 살 부채춤추는 인형 같은걸 산다. 그런데 다른 나라, 심지어 휴양지에 간다면 오죽하겠는가. 뭐 다른 나라의 생활을 알기 위해 간다...면서 관광을 가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말이다.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를 다녀왔다. 
조호바루는 조호주의 주도로서 싱가폴에 맞붙어 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중에서도 유수의 부자도시이다. MRT(전철)을 타고 우즈랜드역에 내려 버스를 타면 금방 접경지역에 도착한다. 한국에선 왠지 상상하기 힘든 육로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다시 버스를 타면 지그재그 요상한 길을 올라 말레이시아에 도착한다. 

싱가폴에 워낙 가까이 있기 때문에 싱가폴 사람들에게 "시간 있으면 조호바루라도 다녀오세요."라는 얘길 많이 듣지만. 말레이시아 여러분 죄송합니다. 조호바루는 정말 아무 매력도 없는 땅이다. 여자로 치면 9살때 부터 아이돌가수의 팬덤에 투신해 어느새 삼만명 짜리 카페의 운영자가 된 14살짜리 여자아이며 남자로 치면 7세부터 22세까지의 모든 남자다.

취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낡은 건물과 시끄럽게 들려오는 볼리우드 풍의 음악이 매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불결한 음식물과 외국인을 째려보는 말레이인들이 매력이라고 해도 얘기가 다르다. 하지만 말이지 바닥에 얼룩무늬 처럼 새똥이 널려있고 터미널 바로 앞에서 관광객들이 먹다 남긴 맥도널드 사이드 메뉴를 씹고 있는 사람이 있는건 어떻게 봐도 매력은 아니다.

싱가폴 사람들은 강도 조심하세요,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정말 있어요. 그것도 많아요. 이런 소릴 하면서 도대체 왜 조호바루에 다녀오라고  하는지 알수가 없다. 아마 그건 과거 싱가폴이 말레이 연방의 하나 였으며 언제든지 말레이시아처럼 될 수 있다는 자각을 갖고 살아가야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 매력하나 없는 땅에서 나는 뭔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싱가폴 처럼 잘 정돈되어 있지도 않으며 방콕처럼 수도이자 관광지도 아니다. 험상궂은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일을 나가는 이 도시를 몇시간 동안 걸으면서 이 도시의 생활감각을 느낀 듯한 기분이 든다. 무슨 생각으로 이 오줌냄새 나는 교차로를 걷고 찌그러진 벤치에 앉고 더럽혀진 계단을 오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정말 말레이시아 사람이 되어 그들과 잠시나마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누구도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말레이시아의 관광지에 갔다면, 분명 느끼지 못할 기분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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