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여행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한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할까.

솔직히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무슨 얘길해도 너무 씨니컬하다느니 애가 부정적이라느니 하는 소릴 들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갖은 구박과 나에 대한 정당한 중상모략을 다 감수하고 얘길 하자면, 여행의 좋은 점은 자기가 뭘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태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필요한 태국말이 뭐였냐..고 한다면 역시 마이 싸이 팍치”, 팍치는 빼주세요, 라는 말이다. 팍치가 뭐냐 하면 영어로 코리앤더, 또는 실란트로(코리앤더의 잎을 실란트로라고 한다)라고 하며 우리나라 말로는 고수. 우리나라의 태국음식점에선 그닥 쓰지 않지만 굉장히 오묘한 향을 지닌 향초다. 몸에도 굉장히 좋고 특히 식중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서 동남아시아의 위생관념에 의문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먹어주는게 좋다.

, 먹을 수 있다면 말이지. 난 못먹겠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수 십년을 살면서 못 먹는 음식은 일단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솔직히 팍치는 못 먹겠다. 아니 먹긴 한다. 하지만 너무 괴롭다. 양이 적은 동남아시아의 음식들도 팍치가 들어만 가면 반그릇으로도 충분한 음식이 된다. 실제로 태국에서 여행할 땐 아메리칸 블랙퍼스트 식인 호텔 아침 부페만 죽어라 먹고 하루종일 소식만 하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태국인들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역시 인류는 하나다. 똠양(태국의 국물요리)은 너무 유명해져서 거의 맛이 스탠더드화 되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어딜 가도 비슷한 수준의 맛을 즐길 수 있는데, 불행히도 개중에는 팍치를 마음껏 쓰는 인심좋고 전통에 충실한 요리사들이 있다. 제발 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 요리사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가.

 

또 싫어하는걸 깨달은 게 있다면 바로 코코넛. 영화 같은데서 코코넛을 너무나 맛있게 깨먹기 때문에 다들 우왕 저건 맛있는거..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게 틀림없다.
진실을 얘기해주자면 더럽게 맛없다. 물도 아닌데 그렇다고 달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어정쩡한 맛이다. 삼킬 때 목으로 그냥 삼켜야한다. 혀에 닿으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피부로 코코넛의 수분을 흡수해서 입안에 넣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건 무리다. 우린 진화의 과정에서 뭔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리의 선조가 입을 통해 음식물을 흡수하기로 결정해버렸기 때문에 우린 코코넛을 입으로 먹어야 하는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코코넛이 싫다면 눈치 챘겠지만 코코넛 밀크도 싫다. 다시 말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모든 밥 종류가 싫다. 코코넛 밀크로 밥을 하기 때문인데 웃으면서 밥을 먹다가 입안 가득히 퍼지는 코코넛의 향기에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찾게 된다. 내가 만든 파스타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맛에 굉장히 관대한 편인데.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을 두 세번 먹다 보면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중국인에 대한 이상한 감정을 갖게 되는걸 느낄 수 있는데 내가 알기론 그 감정은 바로 사랑. 밥을 먹을 때 딤섬이나 중국음식점을 헤매여 찾게 되고(여기까지 와서 한식이나 일식을 먹을순 없지 않은가) 중국인들에게 동포의식까지 느끼게 된다. 졸지에 10억명의 형제가 생기는 셈. 말레이시아에 가면 확실히 그런걸 느끼게 된다. 중국인들도 이상하게 우리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다.

 

무엇보다 싫은게 있다면. 바로 두리얀. 과일의 여왕. 하지만 냄새는 왕.

기억난다.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이 싱가폴에 갔다온 이야기를 했을 때 한국에서 사과가지고 가서 비싼 과일이랑 바꿔먹었다느니 하는 소릴 하하 웃으면서 듣다가 갑자기 두리얀이라는 지옥의 과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심각한 모습이 되셨을 때, 나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두리얀을 들고는 호텔에도 비행기에도 못 들어간다는 얘기도 좀 과장이라고 생각했다.(물론 레스토랑에도 안된다. 태국에는 입구에 노 두리얀이 붙어있는 곳이 꽤 있고 호텔 경고문에 분명하게 써있다.)

아냐. 그거 정말이었어. 두리얀은 정말 지옥의 과일. 냄새에 관해선 진짜 왕에 가깝다.

나도 처음엔 그닥 역하지 않다. 나름 달콤한 냄새다. 라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냄새가 나는 쪽으로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냄새는 나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무슨 이상향처럼..)그렇다. 내가 맡은 냄새는 약 15에서 20미터 가량 두리얀에게서 떨어졌을 때 나는 냄새 였던 것이다.

쇠고기 만큼 다양한 등급의 두리얀이 있는데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건 역시 냄새의 강력함과 그 범위,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서양인을 냄새로 죽일 수 있는가로 판정 하는게 아닐까. 거짓말이 아니다 밀봉한 비닐 팩에 씌워놔도 3미터 밖에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과일가게는 10미터 멀리에서도 오직 두리얀 냄새 밖에 나지 않는다. 태국의 뒷골목, 그리고 싱가폴의 뒷골목에는 쓰레기 냄새 따윈 나지 않는다. 두리얀 냄새가 난다. 이제는 사라져 그 모습 간데 없지만 두리얀의 냄새는 뒷골목에 영원히 남는다. 미식축구 뛰고 보호장비 벗고 샤워는 안 한 채로 치즈 버거 먹으러 온 미국인보다도 훨씬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면 어떨까? 아니 냄새 발전기라 불리우는 인도의 카레 전문점의 냄새는? 솔직히 다 두리얀에게는 상대가 안된다. 그것은 바로 왕의 냄새. 범상한 인류가 판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내가 여행 도중 싫어한다는 걸 깨달은 세가지 물건. 또는 냄새에 대해서 적어보았다.(그 외에도 싫어하는게 많아지긴 했다. 예를 들어 태국의 교통사정이나 싱가폴의 택시 할증) 여행은 자기를 발견하는 것. 이라는 말에 대해 자기가 이제까지 몰랐던 싫어하는걸 발견하게 되는거니 역시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 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도 자기가 뭘 싫어하는지 발견하러 가는건 어떨까? 너무 늦기 전에 마이 싸이 팍치, 이 한 마디 만은 확실하게 익히고 태국을 가는게 좋을 것이다. 정신 차려보면 호텔의 아침 식사만 죽어라 먹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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