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재미있게 살기는 참 힘들다. 내 경험에 의하면 시트콤 처럼 재미있는 일만 일어나는건 불가능에 가깝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항상 비루하고 지루하다. 있다면 그 어떤 한심한 일이라고 해도 재미있게 만들수 있는 재미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 재미있는 사건이 있는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항상 재미있게 살 수는 없다. 인간에겐 주어진 일정 수준의 재미 마일리지 란게 있어서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포인트를 가지는 법이라 보통 재미있는 사람도 마일리지를 다 소진하고 나면 한심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재미 마일리지가 머리 끝까지 차 있다고 해도 재미있게 만들기 너무너무 어려운 일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휴양지에서 4박5일의 휴가를 보낸 후 돌아가는 날 이라든지.
그렇다. 휴양지에서 돌아가는 날은 어떻게 해도 재미있게 되기 힘들다. 게다가 급하게 짐을 싸야하는 데다가 짐이란게 장난이 아닐 경우가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서 가볍게 싸온다고 싸왔는데 짐의 태반이 태국(태국 또한 한가지 예다)의 기후에 맞지 않는 옷이라 입지도 않았고 현지에서 사온 티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그 티셔츠란걸 아무 생각없이 너무 사버린 덕에 가방이 터질 정도고, 인도인 테일러를 만나 양복 합계 4벌 추가 바지 3개 셔츠 합계 8벌을 샀으며 각자 구두가 너무 싼 나머지 구두 두 켤레에 가방까지 사고 말았다.....는 예를 들 수 있는데. 생각만 해도 마음이 갑갑해질 정도 아닌가?

이런 짐을 급히 싸야하는데 마음이 풍요롭고 즐겁다면 그건 재미 마일리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즐겁다는 사람은 경찰에 신고해 아무래도 얘 마약하는 것 같아요, 라고 신고해야한다.

게다가 휴양지가 마음에 들었다면 더 빡치는 노릇이다. 돌아갈 곳이 에...예를 들어 싱가폴? 아니다 애팔래치아 산맥 같은 걸로 해보자.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에서 소를 치는 목동이 재미 마일리지를 3년간 모아 태국..아니 로스 앤젤레스에 갔다고 치자. 가서 스티븐 시걸도 보고 패리스 힐튼이 들린 가게도 가보고 채식주의자들이나 먹는다는 콩버거도 먹어보는 등 너무너무 즐거운 휴가를 보냈을 때.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돌아가는 그의 마음은 어떠할 까? 게다가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한 자각마저 한다. 아...나는 쇠고기를 싫어한다. 채식주의자였구나! 이러면서. 3년간 모아온 것이니 만큼 재미 마일리지가 300포인트 정도 남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울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휴양은 언제나 끝나는 법. 금세 끝나 버린 휴가는 길게 여운을 남기고 당신은 한참 동안 우울증에 빠져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당신이 어떤 재미 마일리지를 쌓는 사람인지 모른다. 어떤 꿈을 지니고 있고 뭘 위해서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다만 어금니를 깨물고 현재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만 알고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은 항상 인생 그 자체보다 더 긴 일상이다. 우린 또 어찌됐든 비루한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재미 마일리지를 사용해가며 재미 마일리지를 모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꾸면서... 즐길 수 없다고 그걸로 모든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애팔래치아에서 소를 치는 목동에게도 삶을 사랑할 기회는 언제나 있다. 즐거운 일 따윈 하나도 없지만, 당신이 운만 좋다면 일상을 휴가보다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믿으라. 내 말은 대부분 틀리지만 가끔가다 옳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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