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드러내는 어리석음
마음을 숨기는 어리석음
인연을 무시하는 어리석음
삶을 부정하는 어리석음
스스로 칼위에 서는 어리석음
막다른 골목으로 돌진하는 어리석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어리석음


바보같은 문장을 몇 줄 쓰고는, 반성하기 위해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여행기를 쓰기로 생각한다. 고로 위에 써둔 문장은 이번에 쓸 글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요 며칠간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했다. 싱가폴의 왠만한 명소에는 다 가봤으며(부기스라든가. 부기스는 딱 한국의 영등포 같은 곳인데 거기서 첫번째 날 겪은 고생은 차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다.) 현지인들과 영어나 일본어로 설악산에 대해서 얘기하고(하느님 맙소사, 이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 입을 긴팔 옷과 코트를 한국에 가기 위해 장만하더라구요) 인도인 점원에게 화이트 초코렛 아이스크림을 와잇 촥컬릿이라고 발음하지 않은 덕 분에 4번이나 주문을 다시 해야했다. 코코넛은 토할 정도로 맛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두리얀은 50미터 밖에서 냄새를 맡으면 천국같은 향기를 낸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기를 쓰는게 아닌만큼 그런 남들이 보기에 즐거운 내용은 털 끝만큼도 쓰지 않았다. 
고로, 약간 반성의 의미로 짜두짝 주말시장에 대해서 써보기로 하자.

짜두짝 주말시장은 방콕 최대의 시장으로서, 주말에만 열린다. 그리고 크다.
대단하다 이국적이다 아름답다 뭐 이런 소릴 원한다면 론리 플래닛 방콕편을 보도록 하자. 그냥 우선 크다. 어느정도로 크냐고 한다면...끄응. 내가 갑자기 어휘력 부족이 된 것은 아니다. 그냥 너무 큰 나머지 모든 곳을 보지도 못했고. 특징이란게 "큰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크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데 잘 되지가 않는다.  하지만 일단 한국 사람으로서 남대문이라는 거대한 시장(게다가 매일 열리잖아?)이 있으니 짜두짝이 아무리 커도 시큰둥하게 된다. '방콕인데 시장은 크네여.'이런 상식 이하의 반응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남대문 보다 좀 크네여.흥' 정도의 반응을 하고 싶다. 나도 한국인 인지라 좀 삐뚤어진 반응이다. 일본인이라면 '쯔키지 보다 좀 크네여.흥', 미국인이라면 '월 스트리트 보다 좀 크네여.흥' 정도로 반응하면 되겠다.

어쨌든 형의 강력한 요망에 의해서 두번째 날 부터 MRT를 타고 가게 된 이 시장은 거대한 주말시장은 매우 흥미로운 장소다. 나로서는 시장 같은데 기껏해봐야 불상이나 팔고 코끼리나 재주넘지 않겠느냐며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내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관광객들만을 위한 장사를 하고 있는 남대문과는 달리 짜뚜짝 주말 시장은 관광객 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의 현지인들이 몰려들어 옷을 하고 생필품들을 판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한 장사의 비중이 커서 기념품 부스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심지어 갤러리와 애완동물 라인까지 있는걸 생각하면 기념품이 짜뚜짝의 모든 것이라고 보긴 힘들다.(아, 소녀시대의 퍼즐도 판다.) 그냥 상품의 종류가 '엄청'많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역시 흥미로운 것은 실용적인 물건 보다 관광객 상대의 기념품이나 프린팅 티셔츠, 미술품들이고 그런것들이 평범한 물건들이 아니다. 태국의 물건들은 싸고 저질의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물론 싸고 저질이긴 하지만 편견을 버리고 열심히 찾아보면 의외로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물건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태국은 아직 수공업 전통이 살아있는 나라인 것이다

프린팅 티셔츠의 디자인 수준이 매우 높고(물론 인쇄 기술이나 티셔츠 자체의 질은 조악한 편이다.) 미술품은 옛 전통의 미술품을 복제하는 수준은 훨씬 넘어서 전위적이기 까지 하다. 가령 신을 조각한 신상은 전통적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복제하게 되기 마련인데 태국의 젊은 예술가 들은 과감하게도 그런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확대 재생산해냈다. 현대 미술이 기술이 아니라 의도의 예술이라는 걸 생각하면 단순한 기술의 뛰어남은 기념품 점에 전시되거나 만화로 만들어져 삼천오백원에 팔리게 되기 마련이지만 태국의 뛰어난 수공업에는 그것 이상의 것이 있다.

역시 이런 뛰어난 제품들을 만들게 된 데에는 세계 이곳저곳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힘이 컸던게 아닐까. 실용적인 목적을 채우기 위해 오는 로컬들과는 다르게 관광객들은 특이한 것, 다른 곳에서 본적이 없는 것을 원할 것이다. 단순히 태국을 대표하는 기념품이면 만족했었던 것이 점점 더 새로운 것을 원하게 되었고 짜뚜짝이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폭발적으로 진화해 간 것이다.

어디 중국의 공장에서 만들어 낸 것 같은 부끄러운 기념품이나 팔고 있고 한류스타의 프린팅 제품이나 팔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수준이다. 태국은 단순한 목기라고 해도 '탐이 나는'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볍게 짜두짝 주말시장에 대해서 쓰고, 이제 좀 제대로 된 여행기 같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생각 이상으로 글 쓰는 재주가 없는 것 같다. 아무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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