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시간으로 9 27, 방콕은 8 27, 한국은 10 27


방콕이니만큼 아이팟에 노래는 소녀시대로 바꾸어놓고 발코니 창을 열었다. 침대가 흔들거린다. 비즈니스용 투베드 침실이라 그럴까. 7시에 여는 호텔의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왔다. 30분간 사이클을 타고 30분 동안 수영을 하고. 한 호흡도 제대로 못 쉬는 물장구를 수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타올로 몸을 닦고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한국을 떠나 올 때 프린트 해왔던 이메일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이제야 조금 냉정한 눈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을 읽듯이 행간을 읽고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목소리를 불러와 그 사람의 목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눈을 감고 편지를 되뇌이고. 또 숨을 멈추고 목소리를 떠올린다.

 

편지를 다 읽고 웃었다. 왜 웃었는지 같은 건 나도 모른다.

다만 내가 지옥처럼 웃었을 거란 사실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말이 누워서 잠들지 않는 것처럼 개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자세로 잠든다. 귀를 땅바닥 가까운 곳에 대고 다가오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민감하게 느끼면서 잠든다.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바로 일어나 이빨을 세운다. 하지만 내가 본 방콕의 개들은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다리를 뻗고 잠이 든다. 천적이란게 없다는 듯이 계단에서, 복도에서, 호텔의 로비에서 머리를 대고 잠이 든다. 가까이 다가가도 잠에서 깨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나면 그 제서야 민감한 녀석들만 살며시 머리를 들어 ?”하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5일간 그렇게 많은 개를 보았는데도 개 짖는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머리를 땅에 대고 잠드는 방콕의 개들은 짖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방콕에만 11만 마리의 떠돌이 개가 있다는데 그 크고 작고 어리고 늙은 11만 마리의 개들은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잠이 드는 듯 하다.

 

사람은 누구나 경계를 한다. 자신만의 원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다른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도록 신중하게, 때로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그 경계의 선이 만들어지는 경로는 다양하다.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편견이나 타고난 성격이 경계를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경계가 완성되면 그것은 사람을 지키는 벽이 됨과 동시에 그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사람들은 나에게 마음의 벽이 너무 굳건하다고들 말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본 바에 의하면 마음의 벽이 없는 사람 따위 한 명도 없었다. , 마음이 열린 사람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비밀을 가지고 있거나, 그 누구도 마음 속에 들이지 않고 잡동사니만 다른 사람들이 만지게 하는 사람이기에 본질에 접근하는 걸 그 누구에게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의 벽을 넘어서 그 사람에게 다가 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로선 전혀 이해할 수도 분석도 하지 못하겠다. 나는 나의 경험에서 밖에 진술하지 못하는데 내 경험이란 편견과 악의로 가득 차 있는 삐뚤어진 텍스트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달의 표면처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가까이서 보았을 때 마저도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든지 좋아지는 때와 싫어지는 때가 있었으며 내가 아무리 변덕스러운 인간이라고 한다고 해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항상 같은 정도 만큼 영원히 사랑하는 일 따윈 생각 할 수 가 없다.

이건 내가 아닌 인간의 문제인가. 그래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기에 나는 너무 늙었거나 너무 젊다. 심지어 러시아 인이나 독일인도 아니다. 고민하지 말자.

 

저 개의 곁에 잠시만 머물러 주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해악과 적의에서 도망치는 저 개는 꿈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오늘 하루만 당신에게서 받은 용기와 선량함으로 머리를 땅에 대어보는 것이다. 그 개가 바라는 것은 그것 뿐, 그가 잠들 때 까지만 당신이 잠시만 머물러 있기를. 잠에서 깨면 모든 게 꿈이었다는 듯이 당신은 사라져 새벽의 더럽고 비열한 거리에서 홀로 깨어나게 되겠지만 그걸로 그 개는 앞으로 10년 간 그 날의 친절함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테지.
 

하지만 당신은 어디에도 없다. 잠들지 못하는 그 개는, 그리고 나는 핏발이 선 눈으로 밤을 배회한다. 이제 나는 밤과 같은 피부를 지닌 괴물. 당신이 갔으리라 생각되는 곳의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더 멀리. 더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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