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조금 더 가까이로 올래요?

내 말을 들어봐요. 아주 잠시만 말하고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을거에요. 나는 모자를 잃어버렸어요. 집에 있는 모자 중 머리에 맞는 단 한 모의 모자인데 말이에요. 그만 호텔에 두고 가져오는 걸 잊었어요. 저는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고 이제 모자 없이 어떻게 울지? 하는 걱정을 제일 먼저 했어요. 당신이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아무말도 저에겐 남지 않았어요.

우연히 몇 년 전에 썼던 문장을 똑같이 한 번 더 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긴, 꼭 어디서 내가 썼음직한 문장이었고, 나는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똑같은 문장을 7년의 차이를 두고 똑같이 썼다는 것보다.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바보 같은 싸이클에 빠져든지는 한, 십년 쯤 되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잘못 되었는지는 알아도 어디서 부터 잘못 된 건지는 모르겠다. 한 쪽 끝을 꼬아 다른 한 쪽 끝에 연결 한 것 처럼 아무리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삶이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피곤해졌다. 결론만 말해보자. 나는 나 자신이 지겨워졌다.

홍콩은 오랜만이다. 몇 년 전의 나는 일년에 5,6번 정도는 홍콩에 왔었다. 홍콩에 왔다고 하는 건 좀 문제가 있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홍콩에 오면 대부분의 시간은 공항에서 보내고 가끔 고객과 미팅을 하거나 전철을 타고 심천으로 넘어가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홍콩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홍콩의 색감과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자라난 도심을 좋아한다. 맛없는 밥을 맛있게 먹는 이 나라 사람들을 좋아하고 이 곳의 밤 거리를 좋아한다. 홍콩의 밤거리는 특별하다. 이미 이 도시의 밤은 현대의 고전이나 다름없다. 내가 홍콩에 처음 왔을 때 밤 8시에 도착하여 아침 9시에 떠나는 일정이었다. 나는 무슨 생각인지 공항 철도를 타고 이름을 아는 아무 역(그렇다 커우룬 역이었다)에 내려서 밤새도록 홍콩을 돌아다녔다. 얼마나 신물이 났는지 다시는 홍콩의 밤거리를 돌아다니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심천에서 택시를 타고 홍콩공항에 가던 날을 기억한다. 흐리고 또 비가 왔다. 낡은 택시는 국경을 너머 골든 코스트를 지나는 9번 국도를 돌았다. 잠시 해가 개이고 볕이 들자 화물선이 떠있는 아름다운 바다와 길고 우아한 커브가 계속되었다. 뒷자리에 앉은 일행은 곯아떨어져 있고, 중국인 기사와 나는 할 수 있는 대화가 없었다. 나는 창 밖을 찍어보려 했지만 이런 종류의 순간은 평범한 재능으로는 담을 수 없다. 어쩌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재능과 사진을 찍어 공유 하는 재능은 전혀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결국 개인적인 체험을 공유 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화하는 것 이겠지. 그 후로 몇 번 더 같은 루트를 타고 홍콩 공항을 갔고 시간대도 날씨도 달랐지만 나는 매번 같은 순간 감동하고 홍콩에 왔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똑같이 홍콩 공항에 도착해 홍콩을 떠난다.

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홍콩을 좋아한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감정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겹도록 이 곳에 왔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홍콩”을 돌아다닌 적은 거의 없다. 홍콩 섬으로 넘어가 본 적도 몇 번 없다. 기껏해야 침사츠이를 돌아다니거나 쇼핑몰에서 밥을 먹거나 했을 뿐이다. 자주 가는 홍콩 중심가에 가까운 해변은 싫어할 수가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이 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밤의 해변에 나와 먼 곳을 쳐다본다.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야경이 아름답기 때문이겠지만, 모여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모든 건 다 핑계이고 다들 외롭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있는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홍콩은 불안정한 도시라고 했다.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100년 간 홍콩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완전한 타향으로 있었으며, 반환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타향이 된 것 같다고.

나는 중얼 거린다. 네가 여길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도. 나는 네가 여길 언제든지 떠나리란 걸 알아.

언제나 떠나야 하는 곳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나는 정말 홍콩을 홍콩 답게 사랑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신차려보면 나는 항상 홍콩 공항에 있다. 가장 오래시간을 보낸 곳은 22번 게이트의 구석진 자리이다. 정해진 것처럼 반복된 행동을 한다. 하도 돌아다녀서 공항 구석 구석 모르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십년 동안 별로 변하지 않았으니까. 불편한 자리와 맛 없는 맥도널드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공항 외진 곳에 누워 환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내 오랜 친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맛 없는 음식. 내가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 없는 음식은 홍콩 공항 파파이스의 모닝 메뉴이다. 다행히도 더 이상 세상에 슬픔과 고통을 퍼트리지 않고 없어졌다.

싱가폴인과 이야기를 한다. 홍콩은 꼭 이스턴 싱가폴 같아. 싱가폴은 꼭 웨스턴 홍콩 같고.
싱가폴인은 웃는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말한다. 그래도 음식은 홍콩보다 싱가폴이 훨씬 나아. 나는 좀 심술이 나서 아냐 홍콩 음식도 괜찮아. 라고 말한다.


이번엔 새로운 곳을 갔다. 침사츠이의 북쪽인 몽콕이다. 레이디즈 마켓이 있는 오래된 번화가이다. 와이파이를 빌려 쓰려고 잠시 들른 비즈니스 호텔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새삼 홍콩은 이런 곳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를 쓰고 저녁을 먹으러 나온 몽콕의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다. 홍콩을 열 댓 번 쯤 오는 동안 한 번도 몽콕에 온 적이 없었는데 침사츠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홍콩이 고스란히 거기 있었다. 혼잡한 거리와 너무 많은 사람이 오래된 사진 처럼 어울려서 꼭 일부러 누가 그렇게 배열해 놓은 것 같았다. 오래된 건물 벽 너머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라지고 쏟아져 나왔다. 목 없이 매달린 새와 돼지, 파인애플과 볶아지는 밥들 사이로 새로 런칭한 트렌디한 광고가 이층 버스에 실려 지나갔다. 연극처럼 연극의 배경처럼.
힙스터 플레이스가 따로 없네, 여기 오면 분명 좋아했을거야. 라고 생각하고 나는 곧 누가? 하고 생각한다. 무엇이? 왜? 어쩔수 없이 웃으면서 거리를 찍었다. 동영상의 마지막에 나는 “투머치 홍콩이다”라고 중얼거린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문장 그대로. 우리는 가끔 문장처럼 아프다.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참았다. 내가 슬퍼하는 이유를 생각 해 본다.

나는 항상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되기 전에 잠에서 깨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우리가 사도들처럼 잠이 들어있어도 일부분이 깨어있어서 잘못된 정류장에서 깨지 않도록 경계하고 주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것이 수호천사든 뭐든 적당한 이름을 붙여서- 항상 우리를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걸까? 우리는 모르는 스스로의 해악, 혹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사악함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말이지. 혹시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아픈 질문을 하나 해야한다. 우리에게 정말로 우리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있을 수 있는 걸까? 우리가 평생 체험하고 삼키는 것은 오롯이 우리 자신이 아닐까.

공항에서 나는 주저 앉아, 깨진 그릇처럼 말이 흘러나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더 이상 말이 흘러나오면, 이 얼마 남지 않은 말마저 흘러나가버리면 내 안에 뭔가가 남기라도 할까?

1번 게이트에서 255번 게이트까지 끝에서 다시 끝으로. 홍콩 공항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공항을 이유없이 걸어다닌다. 공항 안을 걸어 다닌 시간이 세 시간이 넘어가자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한 권 사고 물을 사고 젤리를 세 봉지 샀다. 이타이산 한 박스와 글렌피딕 두 병,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벤티로 사서 마신다. 할만큼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글을 쓰는 것 말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해야겠다.

22번 게이트의 구석 의자에 앉아 밤을 쳐다본다. 나는 언제나 여기에 앉는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여기에 앉아 보냈는지 모르겠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말들을 삼켜왔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리면 유일한 소원일 것이다.

곧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모자는 없다. 비행기는 서서히 떠올라 만천이백미터쯤 되는 상공을 천오십킬로미터 쯤 되는 속도로 날아오를테지만 내가 우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목이 갈라질 것처럼 울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울 것이다. 이렇게 서럽게 우는 것만이 무언가를 증명이라도 할 수 있다는 듯이.

그리고 항상 아무 이유 없이 울기 시작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갑자기 울기를 그만두고는, 내가 왜 혹은 내가 정말 그랬었는지 그 사실 조차 잊어버린 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리를 일어나 걸어나갈 것이다. 어디로 향해 가고 있을 때만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되새길 것이다. 나는 결국 (당신을 잃은 채로)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걸 기꺼이 삼킨다. 또 나 자신을 한 번 더 뒤집어 쓴다.

밤이 깊고, 낮은 가까워져온다. 비행기가 뜰 시간이 되었다.

2018년 11월 19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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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홍콩 공항을 걷고 있다.

11 25일 홍콩시간 7 55분에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인 CX715편의 게이트가 2번이기 때문에, 나는 1번 게이트부터 약 80번 게이트 까지 걸어서 왕복하는 중이다. 물론 내가 세계에서 모인 보행자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연습장에 고개를 쳐 박은채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이 글을 쓰는 게 30분 후 2번 게이트 앞의 의자가 되었건 12시간 후 형의 넷북으로 되었건 내가 정말 글을 쓰고 있는 것은 홍콩공항을 맴돌고 있는 지금의 나.
머릿속의 글을 옮길 땐 항상 원래의 글보다 비루해지고 보잘 것 없어지기에 난 내 글에 실망할 게 틀림없다.
뭐 어떤가 세상에 실망할 일이란 원래 넘치도록 많다. 나는 거기에 문장 하나를 더 할 뿐이다.

 

홍콩에 도착하기 47분전, 무심코 본 창 밖의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린다는 의지 외엔 모두 잃어버린 미친 화가가 흩뿌려놓은 듯한 구름 위로 황금색이 천천히 스며든다.
바다가, 그리고 하늘이 끝없이 길다. 숨을 빼앗긴 듯 나는 눈만 크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되면 사람은 울게 된다더니, 나는 오늘에서야 그 말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홍콩에 도착하기 13시간 전, 오늘의 아침.

잠에서 깼을 때 어제 마신 맥주에 속이 더부룩했다. 목은 지독하게 아팠다. 굴뚝에 고개라도 박고 있었던 걸까.
세상 대부분에게 버림받은 비참한 기분으로 창을 열었을 때, 하느님 맙소사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론 뜻하신 바는 아니겠지만 하느님, 이제 곧 우기인 나라로 갈 저에게 괜찮은 날씨 정도는 선물해 주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늘의 처음이자 오늘의 마지막은 아닐, 울컥하는 감정이 솟았다.

그 어떤 행복한 숲 속의 아기곰이라고 해도 이겨내지 못할 우울증이 엄습했다. 짐은 제대로 싸지도 못했고 분리수거도 안했고 캐리어는 어머니의 표범무늬 캐리어라 내가 들으면 게이처럼 보일게 틀림없고
뭐 하나 제대로 되어있는 게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렸다.

 

원래 그리 내키지 않는 여행이었다. 시기가 너무 늦었고 애매했다. 알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았고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 꼬여있는 인간관계와 장래문제를 억지로 정리하기 위한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올해 내내 제대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너무 멍청하게 행동하거나 소심하게 대응했고 솔직하지 못했다.
(항상 그럤던 것처럼)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미련 때문에 또는 감정 때문에 뻔히 알 고 있는 그런 것에 대해서도 실수를 저질렀다. 특히 가을에 와선 그게 더 심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 없이 멍청이처럼 혀를 빼물고 내 앞에서 많은 것들이 지나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올해 내 손으로 직접 버려버린 소중한 것들이 도대체 몇 개 인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리웠다. 내가 버려버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버린다고 해도 결코 버릴 수가 없었던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많았다.

 
홍콩에 도착하기 10시간 전

메일을 보냈다는 말에 전철을 내려 게임방에서 메일을 출력했다. 전자 문서로는 볼 시간이 없었고 싱가폴에 도착 할 때 까지 메일의 내용을 궁금해 하고 싶진 않았다.
공항철도 안에서 메일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나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한 번을 읽고 두 번을 읽고 그닥 길지 않은 메일을 35분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지만 나는 거기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감정도, 의미도 그 무엇도 읽히지 않았고 내용을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단순히 내가 바라는 내용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사용설명서만큼의 감정도 읽어내지 못하겠다. 항상 나 자신보다 훨씬 나은 대답을 내는 내 직감도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침묵.

이 지긋지긋한 기분에 어울릴 만한 침묵.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모든걸 바라보고 먼저 도망쳐버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침묵.

 

홍콩에 도착하기 3시간 15분 전, 한국시간 3시 15분

그렇게 난 비행기를 탔다. 이해 할 수 없는 편지 한 통과 내가 버린 소중한 사람들 몇 명과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남기고는내가 홍콩에 도착하는 것은 홍콩시간 5 30.

 

11 25일 난 이날 한 방울도 울지 않고 조금도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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