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추천하는 작업은 참 즐거웠다. 일종의 변형된 맨즈플레인이나 스피드웨건이라고 생각해도 할 말은 없지만.

뭔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또 설명을 하는게 순수하게 재미있었을 뿐이라고 하면...믿어주려나.

15년 5월 25일 기준 67개의 관심글이 있습니다. 점점 작품에 붙는 부가 설명이 많아서 (4)쯤에서 끝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거 하려고 굳이 트위터 계정도 살렸는데. 조만간 그만 쓰게 될 것 같아요.


40.<뿔>, 조 힐. 원래 트위터에서는 하트모양의 상자를 추천했으나, 바꿨습니다. 최근의 재미있는 공포 소설로 몇번 추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또 추천할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어요. 작가에 대해서 얘기하면 어쩔수 없이 현대 미국 소설의 왕인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얘길 할 수 밖에 없겠네요. 

킹의 책에 비하면 금방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두께는 예사롭지 않다. 다만 사소하게 키를 놔두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좀 티나게 장치를 해두기 때문에 설렁설렁 빨리 읽는게 가능하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서평의 반이라면 작가도 짜증내겠지만 도저히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물론 아버지의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아버지가 맥주를 마시는 선이 굵은 노동자 타입 작가라면 아들인 조 힐은 마리화나를 피우는 지식인 타입의 글을 쓴다. 그의 전작 하트 모양 상자나 이 뿔이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재미있는 소설이다.

연인의 살인누명을 쓰고 지역 공동체에 버림받은 젊은 남자가 어느날 일어나보니 머리에 뿔이 나있었고 뿔을 본 사람들은 자기의 가장 내밀한 욕망을 숨기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 재미있을것 같지 않습니까? 영화는 물론 망했습니다.


41. <Everything's Eventual>, 스티븐 킹.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라든가 여러가지 명작이 있어서 추천하기가 쉽지 않은 작가입니다. 솔직히 제가 추천하지 않았어도 스티븐 킹을 보고 좋아할만한 사람이면 이미 읽었을걸요?

하지만 굳이 추천을 하자니 단편집이 좋겠고.(단편이 정말 훌륭한 작가니까요) 단편집 중에 하나를 고르자니 불멸의 명작 1408이 있는 이걸 추천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근데 스티븐 킹 안 읽는 사람들은 왜 굳이 안 읽고 버티는 겁니까? 읽고 편해지세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172170


42. <15소년 표류기>, 쥘 베른. 여러분 충격받지 마세요 15소년 표류기는 쥘 베른의 작품입니다.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쥘 베른 소설입니다. 여러모로 파리대왕이랑 비교당하는 소설이긴 한데. 아 뭐랄까 소설읽으며 너무 머리 쓰지 맙시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른일테니(어른이죠?) 축약본 같은거 읽지 말고 완역본 찾아 읽어봅시다. 한국에 완역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나는 이야기에요. 소년들이 표류를 하는데 템이 빠방하게 표류하는터라 퓨마도 잡고 바다사자도 쏴죽이고..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실은 15소년 표류기는 기동전사 건담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아 정말일까. 그럼 브라이트는 15소년 표류기에 나오는 흑인 선원 역할일까요.


43.<철의 시대>, 존 쿳시.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흔히들 마이클k, 그의 걸작은 추락 이라고 하지만 몇번이고 타임라인에서 철의 시대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와 함께 받아들이기 쉬운 작품이라서다. 

어떤 예술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걸작 또는 고전이라고 칭송받는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기 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단순히 훈련받은 개념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기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 요는 영상매체에 양방향 매체까지 발달한 지금 "소설"이란 매체가 과연 어떤 특출난 효용이 있는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풍을 한계까지 압축해 거의 시에 가까운 형태로 작품을 구성하는 경우도 생기고있다. 그런 경향을 이끄는 작가들은 6,70년대의 영미권 작가들로,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확립된 흐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쇠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게 아닌가 싶다. 영화의 결말만 읽고는 영화를 봤다고 하는 이 세대는 글을 쓰는 노동자에겐 잔혹하다. 

결국 한계에 가깝게 압축된 문장. 그리고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현재 소설의 트렌드. 

그리고 거기에 심도 깊은 주제 의식을 주입해내는 존 쿳시야 말로 우리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인 것이다. 야만인 여성에게 매혹당한 치안 판사, 아들의 죽음을 쫓는 위대한 작가, 한 순간의 욕망이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한 대학교수, 부랑자 남성을 집에 끌어들인 암환자 여성, 아버지를 도끼로 살해한 딸, 다리가 다친 노인, 로빈슨 크루소의 뒷 이야기, 사후의 심판을 받는 작가. 소름이 끼치는 그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에 대한 한가지 사족.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백인남성으로 사실 그의 문학적 성과는 끊임없이 타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데 있다. 백인 남성 사회와 그 첨병인 작가들의 "세계"가 얼마나 잔혹한지에 대해 말하고 온갖 자기기만과 비겁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것이 그의 혈육이며 피에 스며든 독인 것이다. 그의 아들은 의문의 사고로 죽고 그의 아내는 암으로 죽었다고 알려져있다. 그 둘은 작품에 끊임없이 모티브로 등장한다. 우리는 그 정확한 의미를 알수가 없다. 아마 그의 사후에나 연구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존 쿳시야 말로 제 인생의 존잘님이시죠.


44. <기묘한 이야기> 호시 신이치, 일본 SF소설의 아버지, 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딱히 SF소설가라기 보다 말 그대로 이야기꾼. 인생에 걸쳐 천개가 넘는 작품을 썼다고 한다. 아니 뭐 이런 공장장이 다 있어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님. 온갖 기묘한 이야기를 짧은 분량의 원고에 집약해서 넣었고 하나하나의 퀄리티는 평균을 넘는다. 이런 이야기를 천개도 넘게 썼다니 이 양반. 모든 작품이 역작이고 모든 작품이 절창이다. 한국에 전집이 나와있으니 그 중 아무거나 읽어볼 것.

평소에 책을 즐겨읽진 않는 친구 책장에 왠지 호시 신이치 전집이 꽂혀 있어서 어째서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물어보지 못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작은 마을"이라는 작품인데, 읽어보신 분 있으려나요.


45.<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카포티. 논 픽션 소설 장르를 개척한 작품이자 사실상 (아직도) 최고의 논 픽션 소설. 카포티의 다른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데(그의 자의식은 우스울 정도로 비대하다) 단지 이 소설에서만은 그의 자의식마저 이야기가 된다. 범인은 두 명의 가난한 젊은이. 단 몇 푼의 돈 때문에 사람을 4명이나 살해한 이 사건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고. 당대 문단의 총아 카포티는 이 사건을 취재하게 됩니다. 그런 이 사건에 대해서 카포티는 독자에게 묻죠. 냉혈한은 누구인가.

범인? 그들을 이렇게 몰고 간 사회? 트루먼 카포티 본인? 아니면 이 모든 걸 담담하게 읽고있는 독자?


46. <목수들아 대들보를 올려라>, JD 샐린져. 인생에 단 하나의 책을 추천한다면 이 책 이외에는 모르겠다. 읽은 책으로 산을 쌓아올릴 정도는 안되어도 주변에 책이 부족하지 않게 살아왔는데.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외로울 때는 항상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게 언제였던가. 05년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호밀밭 파수꾼을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은 도대체 왜 읽게 된걸까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다만, 세상의 가장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져 나에게 아무 것도 없을 때. 오직 그럴 때 이 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이 책의 문장을 생각함으로서 비로소 빨리 빨리 그리고 천천히 자러 갈수가 있었다.


47.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SF소설가라는 범주가 없었던 시절, 작가들은 더 자유롭게 자기가 말하고 싶은바를 얘기했던게 아닌가 싶다. 지금 저 타이틀은 심각하게 매너리즘에 빠졌거나 아니면 소설로서 심도깊은 사고실험을 하는 사람을 칭한다. 테드 창은 의문의 여지없이 후자로서. 이게 스페이스 오페라랑 뭐가 달라? 싶은 소설들이 주류인 sf소설계에서. 그리고 모든 소설계에서도 훌륭한 사유와 결과를 보여주는 작가다. 추천은 그의 모든 소설을 하고 싶지만 워낙 과작의 작가라...


48.<분홍리본의 시절>, 권여선. 제 친구가 오랫동안 추천했던 작가. 한국 문학계는 수십년째 여류작가의 성과가 압도적입니다. 질과 양 양쪽에서 뛰어난 작품을 내곤 하는데 스타일이 고착화 된 소위 "중견"작가들 보다 신인들 쪽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90년대에 등단한(96년?) 권여선이 신인작가라고 할 순 없지만. 젊은시절의 신경숙을 생각하는 날카로운 글 솜씨와 주제 의식에 비해 잘 알려져있지 않은 작가란 것은 사실이죠. 저도 이 소설집(그것도 아주 최근) 외엔 읽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작품집이서 사회의 주변인이자 약자로 포지셔닝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굳이 그들의 생명력이나 선함을 포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분노, 삐뚤어진 마음과 악을 그대로 드러내되 혐오하지 않음으로서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죠.

"그녀는 남성사회를 비웃고 있다"라고 하면 반 이상이 거짓말일거고 "그녀는 인류문명을 비웃고 있다"라고 하면 좀 나을테지만 "그녀가 조소하는 것은 인간 내부의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흐릿한 부분이다"라는 말에 비하면 부정확하겠죠. 사실 분홍 리본의 시절은 조금 불편합니다. 차라리 다른 작품 집을 보시는게 나을수도 있어요.


49.<뉴욕 삼부작>, 폴 오스터. 세기의 미남작가 폴 오스터를 이제와서 뭘 추천하냐마는...뭐 항상 하는 얘기지만. 그의 모든 작품 세계는 뉴욕 삼부작으로 완성되었고 다른 작품과의 퀄리티 차이를 생각하면 더 훌륭한 작품은...어쨌든 뉴욕 삼부작의 완성도는 제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 폴 오스터 주제에 어빙 급의 문학적 성과를 보여주는게, 기특하기 짝이 없습니다. 환상과 탐정. 이 정도면 포스트 모더니즘 어렵지 않아요-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트위터에선 스퀴즈 플레이를 추천했지만. 아니 관뒀습니다. 그냥 뉴욕3부작만 읽으세요.


50. <캐치-22>, 조지프 헬러. 이 소설에 대해서 제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가장 유쾌한 전쟁 소설이자, 가장 위대한 반전 소설. 블랙코미디 중의 블랙코미디인 이 소설은 제가 졸업 이후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의 구조는 불합리하죠 등장인물은 이해할수 없게 기괴하고 각자 나름의 이유로 비논리적 언동을 반복하죠. 시간흐름을 무시하고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 재미를 느낄때 쯤에 여러분은 이게 유쾌한 소극이 아니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미친게 아니라 겁을 먹은거죠. 전쟁에 겁먹고 도망치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던 걸, 이 이야기가 거대하고 잔혹한 전쟁에 부숴지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깨닫는 순간 여러분도 같이 부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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