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홍콩 공항을 걷고 있다.

11 25일 홍콩시간 7 55분에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인 CX715편의 게이트가 2번이기 때문에, 나는 1번 게이트부터 약 80번 게이트 까지 걸어서 왕복하는 중이다. 물론 내가 세계에서 모인 보행자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연습장에 고개를 쳐 박은채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이 글을 쓰는 게 30분 후 2번 게이트 앞의 의자가 되었건 12시간 후 형의 넷북으로 되었건 내가 정말 글을 쓰고 있는 것은 홍콩공항을 맴돌고 있는 지금의 나.
머릿속의 글을 옮길 땐 항상 원래의 글보다 비루해지고 보잘 것 없어지기에 난 내 글에 실망할 게 틀림없다.
뭐 어떤가 세상에 실망할 일이란 원래 넘치도록 많다. 나는 거기에 문장 하나를 더 할 뿐이다.

 

홍콩에 도착하기 47분전, 무심코 본 창 밖의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린다는 의지 외엔 모두 잃어버린 미친 화가가 흩뿌려놓은 듯한 구름 위로 황금색이 천천히 스며든다.
바다가, 그리고 하늘이 끝없이 길다. 숨을 빼앗긴 듯 나는 눈만 크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되면 사람은 울게 된다더니, 나는 오늘에서야 그 말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홍콩에 도착하기 13시간 전, 오늘의 아침.

잠에서 깼을 때 어제 마신 맥주에 속이 더부룩했다. 목은 지독하게 아팠다. 굴뚝에 고개라도 박고 있었던 걸까.
세상 대부분에게 버림받은 비참한 기분으로 창을 열었을 때, 하느님 맙소사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론 뜻하신 바는 아니겠지만 하느님, 이제 곧 우기인 나라로 갈 저에게 괜찮은 날씨 정도는 선물해 주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늘의 처음이자 오늘의 마지막은 아닐, 울컥하는 감정이 솟았다.

그 어떤 행복한 숲 속의 아기곰이라고 해도 이겨내지 못할 우울증이 엄습했다. 짐은 제대로 싸지도 못했고 분리수거도 안했고 캐리어는 어머니의 표범무늬 캐리어라 내가 들으면 게이처럼 보일게 틀림없고
뭐 하나 제대로 되어있는 게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렸다.

 

원래 그리 내키지 않는 여행이었다. 시기가 너무 늦었고 애매했다. 알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았고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 꼬여있는 인간관계와 장래문제를 억지로 정리하기 위한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올해 내내 제대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너무 멍청하게 행동하거나 소심하게 대응했고 솔직하지 못했다.
(항상 그럤던 것처럼)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미련 때문에 또는 감정 때문에 뻔히 알 고 있는 그런 것에 대해서도 실수를 저질렀다. 특히 가을에 와선 그게 더 심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 없이 멍청이처럼 혀를 빼물고 내 앞에서 많은 것들이 지나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올해 내 손으로 직접 버려버린 소중한 것들이 도대체 몇 개 인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리웠다. 내가 버려버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버린다고 해도 결코 버릴 수가 없었던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많았다.

 
홍콩에 도착하기 10시간 전

메일을 보냈다는 말에 전철을 내려 게임방에서 메일을 출력했다. 전자 문서로는 볼 시간이 없었고 싱가폴에 도착 할 때 까지 메일의 내용을 궁금해 하고 싶진 않았다.
공항철도 안에서 메일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나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한 번을 읽고 두 번을 읽고 그닥 길지 않은 메일을 35분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지만 나는 거기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감정도, 의미도 그 무엇도 읽히지 않았고 내용을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단순히 내가 바라는 내용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사용설명서만큼의 감정도 읽어내지 못하겠다. 항상 나 자신보다 훨씬 나은 대답을 내는 내 직감도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침묵.

이 지긋지긋한 기분에 어울릴 만한 침묵.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모든걸 바라보고 먼저 도망쳐버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침묵.

 

홍콩에 도착하기 3시간 15분 전, 한국시간 3시 15분

그렇게 난 비행기를 탔다. 이해 할 수 없는 편지 한 통과 내가 버린 소중한 사람들 몇 명과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남기고는내가 홍콩에 도착하는 것은 홍콩시간 5 30.

 

11 25일 난 이날 한 방울도 울지 않고 조금도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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