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가장 맛있는 파스타는 무엇인가?

그것은 1672년 피렌체 지방의 행정관이었던 모씨가 암살당하기 직전 기다리고 있었던 파스타라고 한다. 죽기 전에 기다리던 파스타라니..그 얼마나 맛이 있을지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라는건 새빨간 거짓말.
이런 쓸데없는 역사적 연구에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과 인생을 위해 기도라도 하고 싶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맛있고 맛없는 파스타를 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걸 측정하는 게 있다면 26일 점심때 내가 만든 파스타가 분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을게 틀림없다. 이름은 파스타지만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싱가폴 시각 11 50, 비행기에서 내리니 여름 나라였다. 덥고 덥고 또 덥다. 이건 좀 시원한 거라는 얘기가 전혀 위안이 가지 않는다. 사방에서 63빌딩 수족관에서나 나는 냄새가 난다.
공기가 뜨뜻하고 무거워 분명 마른 땅을 밟고 있는데도 헤엄치는 것 같다. 말라있는 몸을 용서하지 못하는 싱가폴의 대기는 살아있는 인간이 실외로 나서는 순간 대기가 달라붙어 인간을 끈적하게 만든다.
하느님 맙소사. 사방이 반바지 반팔이며 검거나 젖어있다.(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건 정말 제일 선선한 시기라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발견하고야 만다. 하늘에 계신 피에르 가르뎅이시어 오뛰뜨 꾸뛰르에서 이들을 보우하사)
이 지옥에 대해 단테가 읊은 적이 있던가. 싱가폴 창이공항 1터미널 입구에 뭔가 명패가 붙어있는 걸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온 놈들아 이 문을 나서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형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 싱가폴 여행자체가 형이 싱가폴에 주재하고 있으니, 숙박비는 필요 없잖아?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거니까. 
하지만, 이렇게 형은 덧붙인다. "나는 회사에 나가야 되니까, 알아서 잘 지내야지."
난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여행이었어. 라고 덧붙인다.
형은 내 엉덩이를 찬다.
 

택시를 타고 형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여 빈 방에 짐을 푼다. 내일 밤에 부기스로 와. 교통카드를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는 낙서를 한 싱가폴 지도를 던져준다. 스케줄은 니가 짜야지. 니가 알아서 해.
하하 고마워 형.
잘자라는 인사대신 나는 형의 엉덩이를 찬다.

형이 살고 있는 이 곳은 정말 아름답다. 싱가폴은 밤이 낮보다 훨씬 아름답지만 이 곳의 낮은 고요하고 또 아름답다. 나무를 심고 탁트인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면 그 어디라도 아름답지 않기는 힘들겠지만 워터프론트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일대의 공원은 싱가폴 인들의 자부심과 고민이 스며들어 우리나라의 강변 공원들 보다 훨씬 훌륭하다.

강변을 따라 배기 팬츠를 입은 서양인이 러닝을 하고 있고 강에는 선생님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중학생들이 서로의 카누를 뒤집고 있다. Pebble bay라는 위대한 개츠비에 나올 것 같은 분홍색 맨션이 서 있고 통행을 제한한다는 팻말 너머로 다이빙을 하는 꼬마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형의 냄비를 꺼내, 형의 파스타를 삶는다. 주의깊게 시간을 재고 삶아진 면을 맛본다. 냉장고에서 그럴듯한 크림소스를 찾아 데우고, 비싸기 짝이 없는 블루치즈를 대충 갈아 넣는다. 파란 접시를 꺼내 파스타 면을
딱 나 외에는 아무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어 보이는 파스타는 아무런 반전이 없이 정말 맛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이 없는 파스타를 한줄기 한줄기 놓치지 않고 먹는다. 너무 많이 한 파스타는 점점 불어터져 입안에 넣으면 넣을 수록 숨이 막히고 따로 노는 크림소스는 토할 것 같은 냄새를 내지만.
나는 먹어야했기에 먹었다. 내가 항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너를 보내는 이유가 계속 살아가기위해 있는 것처럼.

 

머릿속으로 편지를 썼다. 아무도 받을 일 없는 편지를. 여긴 싱가폴이고 한국과는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져있는데 내 마음은 결국 한국에 있다. 아무리 걷고 기다려도 내 마음은 바다를 건너지도 산을 넘지도 않고 그냥 한국에 덩그러니 서있다. 눈을 감고. 내 마음이 내게로 돌아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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