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문제였냐고 하면 짜슐랭이었다. 친구J가 오후 내내 짜슐랭을 이렇게 먹으면 맛있다고 단체방에서 얘길 했는데. 그렇게까지 맛이 있진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먹고 싶어져서 평소보다 40분 이상 일찍 퇴근했다.
걸어갈 때 잠시 블로그를 읽긴 했지만 내 블로그에 내가 썼던 내용에 뭔가 이상한게 없는지 확인 했을 뿐이었다. 신발도 나름 접지력이 좋은 괜찮은 신발이었고. 눈은 한참 전에 그쳐서 녹고 있었다. 마트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 갈 때는 주머니에 손도 넣지 않았다.

단지 오전에 내린 눈이 물이 되어 계단 위에 그대로 있었고, 저런 상태라면 사람이 넘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다. 2월 12일 수요일 오후 6시 45분. 바로 전에 넘어진지 딱 4주째였다.

기절하지 않았다. 넘어지며 왼팔을 급하게 뒤통수로 넣어서 머리가 부딪히는 걸 막았는데 내가 뭘 했던 건 딱 그 정도였고 넘어지면서 계단을 몸으로 내려왔다. 도대체 어디서 느껴지는지 모르겠는 격통 때문에 나는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 아니 이 때는 안 울었다. -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3명인가 4명인가 몇명씩 사람들이 지나가다 괜찮으시냐고 119불러드릴까요 라고 물어보았는데. 괜찮다고 거절하고 더 앉아있었다. 그래 누가 봐도 넘어진 사람으로 보였겠지. 일어나려는데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내가 망했다는 걸 알았다.

20미터만 걸어가면 내가 평소에 가는 정형외과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곳에 가면 괜찮을거란 GTA적인 희망으로 팔을 붙잡고 힘들게 그곳에 갔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 하는 동안 서서 덜덜 떨고 있는데 앞의 차례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는 잡담을 하느라 계속 기다리고 있어서 아 기절하겠다 기절한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고 있던 간호사 한 분이 다치셨어요?(나는 이 병원에 왼쪽 어깨 때문에 1년째 다니고 있는데, 이번에 다친 것도 왼쪽 어깨이다. 메이저 리그 진출은 물건너 갔다고 보면 된다) 라고 하더니 나를 알아보기에 아 넘어졌어요. 라고 말하고 덜덜 떨면서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른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아 선생님 한 4주만에 뵙는것 같은데 저 요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너무 아프네요. 라고 덜덜덜 떨면서 말하는게 최선이었다. 내 어깨를 보는 선생님도 표정이 별로 안 좋아보이셨다. 어깨 엑스레이를 보며 아이고 부러졌어요…라고 말하시는걸 들으면서도 나는 진짜 아니길 바랐다.

뭐라고 하셨더라. 수술을 안하면 팔이 짧아질거라고 하셨던가. 저는 팔이 너무 긴게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급하게 진통주사를 맞고 바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하는 걸 권했고 나는 쓰고 달고 시고 뭘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정말 너무 아파서 덜덜 떠는거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진통주사를 맞기 위해 눕는 것도 바지를 내리는 것도 못했다. - 이 때 쯤 부터 질질 울기 시작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억울했기 때문인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앞서서 넘어진지 딱 4주째 되던 날이었다. 도대체 왜? -

병원 사람은 친절하게 다음 병원을 수배해주고 1층까지 내려와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었다. 운이 좋게도 그 병원도 첫번째 병원에서 200미터정도면 걸어가면 되는 병원이었는데. 진통 주사로 덜덜 떨지는 않게 된 나는 옆자리 부장님과 형에게 전화를 했고, 친구들 몇 명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형은 어제 면회에 와서 내가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했는데, 나는 전화하면서 울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지 싶었지만 형이 쇠고기를 사줬기 때문에 그냥 내가 운 걸로 했다.

그리고 지금 16일 일요일. 나는 입원 중이다. 5인실이지만 사람들이 빨리도 퇴원하고 입원하길 반복하는 이 병원은. 간병인도 보호자도 병실에 두지 않는 맘에 드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나보다 먼저 이 병실에 와있던 할아버지 하나가 이젠 눈치도 보지 않고 보수 우익 유튜브를 스피커로 틀고 있어서 나는 현재 너무 괴롭다. 진짜로 괴롭다. 엄청 큰 소리는 아니지만 귀를 기울이면 무슨 얘길 하는지 알아들을 정도로는 크다. (아니 할아버지와 나의 병실은 양쪽 끝인데도 그렇다.) 수술이 잘 되어 내일 점심 때 쯤이면 퇴원 할 수 있을 거란 얘길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참인데도 기분이 좋지 않다.

나의 진단명은 좌축상완골 골절이다. MRI를 찍고 나서 알게 된 것 같지만 오른 쪽 늑골도 골절되었다고 한다. 아니 뭐 어쩌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부러져 있던 것이 아닌지. (이전 블로그 글 참조)

당일에는 수술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진통제를 받아들고 집에 와서 식은 땀을 흘리면서 앓았고 1회차 넘어 질 때 받았던 슈퍼 진통제가 놀랍게도 두 봉지가 남았기 때문에 하나를 먹어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전 블로그에 안 썼음)
다음날엔 종일 금식 상태로 대기 하다가 겨우 17시가 되었을 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40분이 걸릴거고 2시간이면 깰 거라고 하더니 일어나보니 0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상의 어깨 부분엔 피가 말라붙어있었고 - 당연하다 수술을 받았으니 - 처음보는 거창해보이는 서포터가 장착되어 있었고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저 이제 자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았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걸 보니 전에 누군가가 못자게 했었던 이력이 있었던 것 같지만 저 당시에는 내가 왜 저런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저렇게 얘기 했다.

자려고 했지만 잠이 들지는 못했다. 무통 주사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며 아픔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이것도 후에 알았지만 내가 메스꺼워했기 때문에 무통주사를 닫아놓았다고 한다. 아니 도대체 그럼 난 뭘 기대하며 무통주사 버튼을 밤새 딸깍 거렸단 말인가. 아침에야 다른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 수 있었는데 그러고 잠에서 깨자 내가 전날 수술을 받은 후에 했었던 진상 짓들이 생각나서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그날 밤에도 아파서 제대로 잠이 들지 못했던 건 똑같았다.

어제가 되서야 소독을 하게 되어 내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수술 상처가 생각보다 컸다. 해적처럼 흉이 지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몇명이 찾아왔고 형네 가족, 이모와 이모부가 오셨었다. 조카는 너무 긴 운전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모가 요즘엔 굿도 단가가 많이 비싸져서 1억 정도 한다고 말해주었다. 치료비 다 하면 500정도 들 것 같은데 그러면 굿 한 번 할 돈으로 20번 정도 넘어질 수 있네요. 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20번이나 넘어지고 싶지 않다 진짜 싫다.
내가 이렇게 넘어진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제각기 내가 체중이 너무 빨리 줄어들어서 그렇다거나 아니면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렇다든가 하면서 의견을 내고 있다. 나 본인의 의견은 글쎄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그럴만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의 의견을 반영 하려면 나는 살도 10킬로그램을 찌우고 피티도 6개월 받고 굿도 1억원어치를 받아야한다. 그럴바엔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지금은 좀 덜 아프다. 아직 팔에 주사바늘은 꽂혀있지만 진통제는 먹기만 하고 주사로 따로 맞진 않는다. 갈비뼈가 부러진건…진짜로 괜찮은가보다. 시험삼아 기침을 해보았는데 아픈 걸 모르겠다. 팔이 조금 덜 불편해지면 러닝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서포터를 하고 다녀야 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실을 뽑는데도 2주 정도 걸리고 어깨뼈에 박은 핀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한다. -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 생각보다 나는 꽤 심하게 다쳤다. 하지만 다치자마자 집 앞 정형외과 선생님과 형수 - 형수는 의사다. - 양쪽에게 저 얼마나 많이 다친거에요?라고 물어보았는데 둘 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별 거 아니라고 하기엔 인간적으로 미안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어찌 되었든 내 발로 병원까지 걸어갔으니까 의학적으로 중상환자는 아닌거지 싶다.

오늘, 앞으로는 더 넘어지지도 아프지도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넘어지면…아니 뭐 문제가 있는거다 이건.
아까 잠시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살아가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만 살고 싶다면 더 편하고 쉬운 방법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더 아프지도 말고 더 넘어져서도 안된다.
병실 침대 주변에는 커튼이 쳐져있다. 그 앞에 그림자가 질 때면 의료진이란걸 알면서도 나는 꿈에서 자꾸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본다.
어제는 ㅇㅇ의 꿈을 꿨다. 묘하게 굿하는데 1억이라는 이모의 말이 인상에 남았는지. 나는 500정도 들거면 매달 220은 네가 그냥 써도 괜찮아. 라고 말했다. ㅇㅇ는 220은 너무 많지 않아요?라고 하기에 그러면 180 어때라고 제안했다. 도대체 뭐하는 무슨 꿈인지 모르겠다.

마취가 풀릴 때 쯤. 내가 너무 아파서 울었던 게 그렇게 기억났다. 그리고는 이렇게 아플거면 울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입으로 와 … ㅇㅇ이 보고 싶다. 라고 말하고 울었다. 그리고 다시 기절했다. 어떤 말들은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그런 말들이 있는거겠지.


22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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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문장은 현실의 조악한 복제품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기관과 지각능력의 한계로 인하여 현실을 완벽하게 수용해낼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문장으로도 그럭저럭 충실한 현실의 재현품을 삼을 수 있다.

우리는 회상이라는 형태로 비교적 쉽게 과거를 재현해 낼 수 있지만, 재현은 재현일 뿐이다. 불완전한 세계의 불완전한 반영이다. 실제로 현실의 시간을 뒤로 돌려 완벽하게 과거를 다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장은 완전한 역행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의 모습을 최대한 뭉툭하게 깎아내어 현실이 가진 속성들의 중요한 부분만을 추출한 후. 몇 번이나 재현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주장에는 한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문장을 읽어줄 불변의 독자이다.

이론 상 - 물론 이론 상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지만 - 세상 어딘가에 불변하는 독자라는 모순적인 존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 불변하는 독자에게 문장을 읽게 함으로서 그의 머릿속에서만은 동일한 현실을 반복해서 재현시킬 수 있다. 그것은 재현이라기 보다는, 강림이나 재생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변의 독자. 문장의 모든 체험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당신을 가정해보자. 나의 모든 글을 읽었을 당신이 나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라고 해야할까.
누군가는 이 불변의 독자가 신에 대한 메타포로 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불변의 독자를 신이라는 가정을 부정한다. 당신이 정말로 신이라면 내가 쓴 모든 것들은 단지 길고 지루한 기도문일 것이고, 내가 겪고 있는 부패와 결락들은 결국 신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재료가 될 뿐이다.

고전 모험, 추리소설의 소설가들은 독자제현 이라는 말로 자신의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이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자기의 컨텐츠를 봐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유 불명의 적대감을 표시하는게 유행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자신의 소중한 존재. 다시 없는 사람. 글과 나 사이에 놓인 유일한 세계.

샐린저는 소설에서 시모어가의 둘째가 쓴 글을 통해 독자가 누군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가상의 독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 이유는 새가 그 어떤 것보다 영혼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독자 당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불완전한 글을 읽고 있는 완벽한 타자인 당신은. 예전에는 더욱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빠르게, 세월 그 자체보다 빠르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떠올리지 못하게 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는 한 밤 중의 변덕으로 빨랫감을 들고 집 근처의 코인라운드리에 갔다. 당신이라면 알 고 있을 집 근처 상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곳의 코인 라운드리 얘기이다. 물론 빨랫감을 들고 가기 전 마트에 들르는 척 라운드리에 들러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세탁기는 비어있는지 몰래 살펴보았다. 웃기게도 내가 염탐하러 갔던 그 때 보다 손님은 줄어들었지만 커다란 빨랫 바구니를 들고 간 사람들이 늘어 줄을 서 있었던 탓에. 나는 삼십분이 넘도록 빨래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코인 세탁기 앞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글을 쓰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가 당신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생각한 건. 그 삼십분이다. 나는 내 차례가 되자 타올 한 무더기와 속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집에 돌아가 책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코인 라운드리는 세상 그 어떤 곳보다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것이라면 나란히 앉아서 손을 잡는 것 정도이다.

나는 대만 작가가 쓴 소설책을 맨 뒤부터 읽으며 (처음부터 읽을 때 이해가 가지 않고 별로 좋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초식동물이 되새김질을 하듯이 진동하는 소리를 내는 커다란 세탁기들의 소리를 들었다. 어떤 남자들은 - 대체로 남자들이었다. 심부름이겠지 - 아이들이 쓸것 같은 이불을 들고 찾아왔고. 어떤 사람들은 급하게 세탁해야하는게 틀림없는 속옷들을 들을 들고 사라졌다. 세탁소 밖은 춥고 새까만 밤이라.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내세가 이런 곳이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옆자리의 아저씨는 어딘가로 사라지기에 담배라도 피러 나갔나 싶었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몰래 먹기 시작했다.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텐데 혼자 군것질을 하는게 왠지 불편한 눈치이다.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아저씨가 편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도록 더더욱 신경쓰지 않는 척 한다. 여름부터 내내 읽고 있던 책이라 조금 너덜너덜해졌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여름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 대만은 아열대 기후이다. 어떤 계절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에겐 그냥 여름으로 느껴진다. - 책을 읽으며 비가 내리는 어떤 곳에 대한 생각을 한다.

세탁기를 돌리는데 30분. 건조기를 돌리는데는 4분에 500원. 만원짜리를 전부 동전으로 바꾼 나는 40분이고 50분이고 건조기를 돌릴 수 있었지만. 왠지 낭비를 하는 기분이 들어 20분만 건조기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80분 남짓한 시간이 그 주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당신, 나의 불변의 독자인 사람을 떠올렸다. 당신이라면 나의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읽어주리라. 내가 왜 행복해했는지, 왜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해주고 싶었는지 이해해주리라. 매일 매일 당신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까.
당신은 새를 좋아할까.

25년 2월의 글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실망을 쌓아가는 것이다.

나는 대체로 6시에 일어난다. 대체로라고 말하는건, 사실 아무 때나 일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제는 5시에 일어났고 오늘은 6시 30분에 일어났다. 규칙적인 생활이랑 거리가 멀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에 러닝을 하는걸 선호하지만 요즘엔 역시 춥다. 6시에 일어나면 그냥 출근을 할지 운동을 하고 나갈지 고민하는 신성한 시간을 갖(침대에 그냥 누워있는다는 뜻이다)다가 러닝을 하러 나간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하루 종일 묘하게 나른하지만 운동에 대한 부채감이 없는 하루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선호하는 러닝 거리는 5킬로미터이다. 전에는 급하면 3킬로미터 정도만 뛸 때도 있었지만 역시 좀 서운한 거리이다. 러닝 선배들은 킬로미터 기준으로 운동량을 정하지 말고 시간을 기준으로 다양한 시간을 뛰라고 조언해주지만. 실은 나는 풀코스 마라톤 같은 건 관심없다. 그냥 좀 더 달리고 싶을 뿐이다.

러닝을 하든 하지 않든. 집에서는 8시 전에 나간다.
회사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보통 걸어서 출근한다. 아닌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는지도 모른다. 실은 2.5에서 3.0킬로미터 정도 거리다. 왜 0.5킬로미터 정도 차이가 나냐면 굳이 좀 돌아서 가는 경우가 많다.
고래로 철학자, 수학자, 정치인, 백수건달, 은퇴한 아저씨 등 자기가 대단한 뭔가를 사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책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주장하는데. 그건 모르겠다 나는 그냥 걷는 걸 좋아하고 요즘은 아침 출근 시간이 피ㅋ민을 하는 시간이다.

하여간 회사에 도착하면 아침밥을 회사에서 먹는다. 회사 식당에서 앉아서 먹어도 되고, 테이크아웃류의 음식들을 받아서 가도 된다.(사무실 내 자리에서 먹는다) 받는 것은 건강한 야채구이라든가 군고구마니 삶은 계란이니. 아니면 기성품 커피 같은 것이다. 실은 나는 군고구마가 너무 좋다. 너무 많은 고구마가 건강에 안 좋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깟 건강.

변덕 때문에 7시 30분 정도 쯤에 회사에 도착 할 때도 있다. 그러면 회사 정문 시큐리티 업체 분 중에서 가장 미인이신 분에게 아침 인사를 할 수 있다. 딱히 하는 건 없다 그냥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정문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이게 나의 하루의 클라이맥스다. 미인한테 인사 할 수 있다니 너무 신난다.

자리에 앉으면 받아온 테이크아웃을 먹으며 메일을 체크하고. 그날 해야할 일을 바로 시작한다. 출근하면서 오늘 뭘 해야하는지 생각해두기 때문에 나는 업무속도가 꽤 빠르다. 의외겠지만 일상생활 중에서도 일 생각을 많이 한다.
갑자기 뭔가 옆에서 튀어나오는 업무가 있어도 30분 이상 걸리는 일은 드물다. 집중을 해야하는 일이 있으면 귀를 막기 위해서 에어팟을 꽂고 노래를 듣는다. 때때로 3,4시간 정도 집중해서 일해야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일만 하고 있어서 이상하다는 얘길 듣는다. 아니 왜지 기계처럼 일하는 회사원 처음 보시나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메신저로 친구들과 농담을 하거나, 동네 맛집 얘길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게임 얘기나 한다. 더 한가할 때는 인터넷으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쓸모도 없는 지식들을 검색해서 읽는다. 너무 놀았다 싶으면 시장 레포트나, 테크 레포트 같은 것을 찾아서 읽고 내키면 뭔가 스스로 레포트를 생산해낸다.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과외의 일이다.

아직 어릴 때 회사원이었던 아버지에게 아빠는 회사에서 뭘 해?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회사에선 일을 하지. 라고 말을 하기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데? 라고 재차 물어보니. 아버지는 자못 곤란하다는 듯이. 여러가지 일을 해 라고 대답했다. 누가 나한테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나도 여러가지 일을 하죠 정도로 밖에 대답을 못하겠다. 진짜로 회사원은 여러가지 남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일을 한다. 나도 기관사처럼 설명하기 쉬운 직업을 갖으면 좋을 것 같다.

점심은 친구들과 먹는다. 부지런한 회사원이기에 점심 메뉴는 꼭 체크한다. 점심 메뉴를 체크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 회사원이 있다? 그 녀석은 먼 미래의 인공지능이 보낸 기계 암살자이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하여간 절대 그런 짓을 해선 안된다 점심 메뉴는 괜히 식당에 가서 고민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사전에 정해둔 메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길 바란다.

날씨가 좋을 때는 회사 근처 천변에 산책을 간다. 몇년 쯤 그랬을 까 생각해보니 6,7년은 된 습관이다. 요즘엔 너무 춥고, 또 러닝으로 충분히 운동량이 채워지는 것 같아서 산책을 잘 하지 않는다. 나의 친구인 당신에게 나는 몇 번 천변의 풍경을 설명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갈대가 많고 느티나무가 천변에 늘어서 있다. 오리와 비둘기, 그리고 설명 할 수 없는 작은새들이 많다. 게임이라도 하면서 걸어다니면 좋을 것을. 나는 생각을 하거나 머릿 속으로 글을 쓴다. 두개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저 두 가지는 진짜 명백하게 다른 활동이다. 그런 질문을 한 걸 반성하기 바란다.

얼마 전에 후배가, 선배는 심심할 새가 없겠어요. 아무 생각이나 하고 그걸 또 입으로 말하시잖아요. 라고 말하는데 내용이고 뉘앙스고 전혀 칭찬이 아니었을 뿐더러. 꼭 입가에 밥풀 붙이고 나온 다섯살짜리 꼬마한테 아이구 배고플까봐 도시락 가지고 나왔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은 말투라서 선배한테 진심을 다해서 공손하라고 설교를 해주었다.

점심을 먹으면 하루가 다 간거다. 쓸데없는 업무를 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오후는 또 금방 간다. 아니 거꾸로 오후 시간이 안 갈 때도 있는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을 좀 빨리 처리하는 편이라서 해야할 일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후배는 선배든 친구든 꼬셔서 커피를 사러 간다. 같이 가는 멤버에 따라서 커피를 사면서 잡담을 할 때도 있고 회사를 한바퀴 돌 때도 있고. 그냥 자리로 돌아올 때도 있다. 나는 보통의 회사원들은 사죽을 못쓰는 신기하고 기기묘묘한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해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 그냥 평범하게 재테크 얘기나 애들 키우는 이야기 그런걸 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안합니다 내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이상한 동물 이야기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녁시간은 금방 온다. 회사원들은 체력이 약해서 해가 지기 시작하면 준비해온 집중력이 다 해서 다들 비실거린다. 야근을 하니 뭐니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손이 느린 놈들이 그러는 것이다. 가끔 후배들이 업무에 퀄리티를 올리겠다고 아등바등 하며 일을 하는걸 볼 때가 있는데 내심 회사원은 업무 퀄리티보다 마감기한이 훨씬 중요한거라고 잔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네 참습니다. 잔소리해서 뭘 하겠습니까.

저녁 식사로 저녁 테이크아웃을 받아 먹으면 진짜로 그날 회사 업무도 거의 끝이다. 메뉴는 또 삶은 계란 뭐 그런 것들이다. 맛이 없는데 괜찮냐고요? 맛이 없는 것도 그냥 먹는 것이 진정한 뚱뚱보의 자세이다. 까불지 말기 바란다.

일이 남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둡니다. 그러면 오늘의 업무는 진짜로 거의 끝이다. 나는 쓸데없이 회사에 남아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사무실 체류 시간은 대체로 10시간 정도이다. 이젠 회사에서 밤을 새거나 남들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컨퍼런스콜을 하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남은 것은 퇴근이다.

퇴근도 거의 걸어서 집에 간다. 출근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다.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가면 신이 난다. 퇴근이 좋은건 어떤 회사원을 막론하고 동일한 습성인데. 나는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잠이 들고 로봇처럼 그냥 출근하는 생활을 오래해서 그렇게까지 퇴근이 즐겁진 않지만 아 콧노래를 안 부를 수는 없다.

퇴근하는 루트는 출근하는 루트보다 조금 짧다. 하지만 마트를 들른다. 요즘에 사는 것은 싱싱한 딸기나 우유, 집에 식료품이 부족하면 두부나 컵라면이나 하여간 두 손으로 들고 갈 수 있는 것을 산다. 뭐라도 사서 들어가야 마음이 좀 덜 허전하다.

집에 오면, 아무도 없다. 뭔가 해야할 집안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 퇴근한 시간에 해야한다. 왜냐하면 옷을 갈아입고 어딘가에 등을 기대게 되면 퇴근한 직장인 모두가 그런 것처럼 끈적하게 녹아버려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거지, 빨래, 청소 하여간 뭐든지 해야할 일들을 한 30분내로 하고 나면. 그래 그제서야 온전히 누워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에 러닝을 하지 못했다면 이 시간에 러닝을 한다. 퇴근의 기쁨이 가시지 않은 이 시간에 하는 것이 비결이다. 이전에는 집안일을 마치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11시 12시에 러닝을 하고 그랬는데. 생활 습관 상으로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고담시 같은 곳에선 가져서는 안되는 습관이기도 하다. 극장 뒤에서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뭘 하냐면. 뭘 하지? 다양하다. 책을 읽거나 뭔가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잠을 일찍 잔다. 회사에서 업무가 많지 않아도 그냥 회사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모든 기력을 소진한 상태라 마음만 먹으면 바로 눈을 감고 잘 수 있다.

씻기? 러닝을 하고 나서 씻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아침에 씻는다. 세간에 들키지 않게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할 사실이지만 가끔 세수를 하지 않고 그냥 잠이 들 때도 꽤 많다. 유독 지치고 늘어지고 촉촉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어떤 얼굴을 떠올릴 때도 있다. 괴물도 신도 아닌, 사람의 얼굴이다. 침대에 누워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떠올린다. 표정들을. 순간들을. 어떤 감정들을. 나는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말랑말랑한 무인양품표 쿠션을 껴안는다.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피와 살로 된 애정인것처럼. 그리고는 아무 꿈도 꾸지 않기를 바라며, 숫자를 세는 양치기보다 빠르게 잠이 든다.

꿈을 꾸지 않는 것. 그게 나의 요즘 바라는 바이다.

그거 말고는 없다.
처음에 무슨 얘기를 했지? 살아간다는 것은 실망을 쌓아가는 거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계속 살아가는데는 어떤 형태로든 희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희망이 없이. 아무 의미도 없는 하루를 쌓아가면서.

25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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