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러니까 무려 두달을 기다려서 애플워치가 왔다. 10월 중순 쯤의 내 메모를 슬쩍 들여다보면 “연휴 중 변덕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하나 샀다. 하나도 필요 없는 비싼 전자 제품을 또 산 것이다.”라고 써있는데, 아 맙소사 변덕으로 산 애플워치를 이렇게 오래 기다려서 받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 들러서 로그인을 했고. 자기 구매 내역을 확인하려면 꼭 두 번 로그인을 해야하게 만든 애플 홈페이지의 구조에 치를 떨었다.

마스크를 재빨리 내려서 페이스 아이디로 로그인을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할 동안 내 기대치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두근두근 하는 마음에 구매내역을 확인하면. 항상 내 애플워치는 <준비 중>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대실망쇼에 목숨이 좀 줄었을 지도 모른다. 분명 내분비계 어딘가에 악영향을 미쳤을거라고.

그래서 매일매일 이걸 어느 시점에서 취소 하는게 가장 현명한 행동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가장 현명한 것은 이걸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만...

그런거 있지 않나. 정말 필요한거냐 아니면 갖고 싶었던 거냐 하고 물어보면 별로 할 말은 없다. 양 쪽 다 아니기 때문이다. 변명조차 할 수 없다. 몇 년 간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결국 산 거지만 이걸 가지고 도대체 뭘 하지 싶다. 역시 그것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애플의 마케팅 팀의 승리겠지. 이걸로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사게 만들다니.

순순히 사실을 얘기하자면 카드 결제를 하고 난 다음, 배송 예정일을 봤을 때도 주문일로부터 6~8주가 나왔다.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 8인 식탁을 부탁해도 저것보단 빨리 도착 할 것 같았지만 당시 나는 거꾸로 좀 안심이 됐다. 그 동안 좀 갖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구매를 취소해도 될 것이고, 8주는 충동구매를 반성하고 스스로 뺨을 두대 정도 때린 다음 카드 결제를 취소한 후 안심하기 까지 충분한 시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이번이 웨어러블 기기를 산 처음이 아니다. 그것고 굉장한 돈 낭비였는데.
순토의 카일라쉬라는 모델로 발매 당시 120만원 쯤. 정확히는 웨어러블이 아니라 아웃도어용으로 유명한 메이커에서 스마트폰 연동도 되는 모델을 발매한 것인데. 코퍼 모델의 간지에 반한 데다가, “특정한 위치를 입력하면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그곳까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먼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 불명의 기능에 마음을 빼앗겨 그만 사고 말았다. 너무 인문계스러운 프로모션 포인트 아닌가요. 내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위치를 등록해 두면 너와 나의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어...하고...

네 물론 거의 쓰지 않았고 방 찬장에 그대로 있습니다. 처음엔 여행 갈 때 마다 차고 나갔는데, 생각해보면 제가 여행을 가는게 무슨 오지도 아니고...그냥 일본이나 하여간 아시아 어딘가라서 딱히 방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물론 툼레이더 리부트 작에선 고대 히미코국의 유적이라면서 일본의 오지가 나오지만 제 말을 믿으세요 일본에 그런 오지는 없습니다. 식생도 우리나라랑 거의 같아서 방향을 몰라도 휘휘 동서남북 한 번 돌아보면 방향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 같죠? 제가 홋카이도를 몇번이나 갔다고 생각하시는거에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시계를 차고 다니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 이틀에 한 번은 충전해줘야 하는. 그리고 기능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과 이동루트를 트랙킹해주는 것 밖에 없는 물건을 차고 다닐리가 없었다...(물론 다른 기능도 자잘하게 많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쓰는 건 그 정도였습니다)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플워치를 산 건 실수구만 싶긴 한데. 심지어 내가 샀다는 얘길 뒤늦게 듣고 구매버튼을 누른 친구가 나보다 3주 먼저 애플워치를 받았다. 3주 먼저 라기 보다 그 친구는 그냥 일주일 동안 배송이 빠른 다른 쇼핑몰을 쳐다보고 있다가 재고가 뜬 걸 보고 바로 주문을 했고 그 다음날 애플워치를 받았다. 100% 재생 알루미늄이라는 이유로 조금 장난감 느낌이 나는 블루 컬러를 산 나와는 다르게 친구는 스테인레스를 샀다. 과연...싶을 정도로 예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으며. 나는 지금이야 말로 구매를 취소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과 아 억울해 진짜 이거 올 때 까지 기다린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취소를 정말로 누르려던 날, DHL의 배송 번호가 떴다. 그러고도 약 7일간 추적 루트에 아무것도 뜨지 않아. DHL마저 나를 속이려는 건가 (저는 일 관련으로 DHL에 관해서는 무분별한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하고 화가 날 때 쯤에, 갑자기 회사로 DHL트럭이 찾아와 시계를 받았습니다. 어...감사합니다.

유용하냐고요? 어...일단 이제와서 이런 얘기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시간 감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기차타고 다닐때 익힌 능력인데 대체적으로 지금 몇시 몇분인지를 가늠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시계가 거의 필요 없습니다. 몇분이 지났는지도 대충 안다고요. 그래서 시계 페이스는 정보값이 제일 적은 사람 얼굴을 그래피티로 해둔 것을 하고있습니다. 귀여워요 누르면 조금씩 변한다는 점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쓰는 기능은 운동기록 기능과 아침에 깨워주는 알람 기능. 그리고 아이폰이 어디있는지 모를 때 커다란 소리를 내서 알려주는 기능 정도입니다. 후회하고 있느냐 하면 아니 뭐 어차피 산거고 귀엽고 해서 딱히 싫진 않습니다.

어쨌든 제 워치는 6세대에 파란색 알루미늄. 파란색 솔라루프를 하고 있습니다. 제 손목에 차면 정말 쪼끄마하답니다.

사람이란 원래 변덕스럽고 뭔가 실수를 하는 존재니까요. 실수를 함으로서 뭔가 고민도 해보고 수습도 해보면서 성장하는게 아닐까 한다니까요. 그래서 이번 애플워치 구매도 긍정적으로...잠깐만 어떻게든 그럴듯 하게 수습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20년 12월의 글이다.

기억은 어떤 순간을 머리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기억해내는 일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일어날 일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당신은 어느날 밤 나에게 인사를 하고 급하게 사거리를 건너서 가버린다. 나는 몇 번이나 당신이 길을 건너는 것을 지켜보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당신의 뒷 모습을 처음 본 밤의 일이다.

밤은 차갑고 미지근 하다. 공기는 낮게 깔렸고 나는 오늘의 내일에 비가 내릴 것을 안다. 우리는 내일도 만날 것이고 나는 또 똑같은 뒷모습을 보내고 혼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실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날 밤은 내가 당신의 뒷모습을 보는 첫번째 날이다. 나는 내가 신은 나이키의 콧등을 보고 번화가의 진열장을 쳐다본다. 그 때 내가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당신이 떠나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 하고 어서 돌아가 오늘 마저 읽지 못한 책을 더 읽어야지 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당신은 나에게서 도망치는 것 처럼 가버리고,
나는 당신이 가버리는 장면에서 등을 돌려 그 가버리는 모습을 끝까지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당신이 가버리는 장면에서 등을 돌려 그 가버리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쳐다보려고 애쓴다.

혹시 당신이 나를 한 번 더 쳐다보지 않았을까 하고 바란다.
내가 원한다면 나는 당신이 내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신은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고 나 또한 당신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기억 속의 장면을 삼키기 위해 노래를 떠올린다.

- 해가 반짝이는 날 구름도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기마저 달콤한 그날.
- 당신 나에게 그 거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거리로 갈 수 있죠?

실제로 그러지 않았음에도 그 장면의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는 나를 삽입한다. 꼭 그렇게 하면 시간을 되돌려 길을 건너는 당신에게 내 노래를 들려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나는 술집의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미 술에 얼큰하게 취해 얼굴이 빨개진 나는 안 좋은 버릇으로 먹지도 않을 안주를 뒤적거리며 이것도 저것도 더 시켜볼까 하고 생각한다. 테이블 건넛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상대도 이미 한참 취해서 더 이상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눈치이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들라크루와 그리고 쇼팽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니 이젠 음악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 겨우겨우 회사원이나 하고 있는 제가 예술이 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건 주제넘은 일이지만

이라고 말을 꺼내면서 나는 주제넘게 예술론에 대해서 길고 지루한 의견을 말한다. 사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삶은 콩을 좀 더 시킬까였으면서, 상대의 눈치까지 보며 혹시라도 틀린말을 하게 될까봐 고리타분한 고전 독일의 미학론보다 하나도 나을게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칸트의 미학론이었던가 괴테의 미학론이었을까. 학교에서 배운 애매모호한 그리고 이제와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렇게 상대가 내 말에 질려하고도 남았겠지 하고 내심 안심하는 시점까지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상대가 하는 말을 놓친다.

네 뭐라고요? 라고 다시 물어본다. 상대는 약간 풀린 혀로 그럼 님이 생각하는 예술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냐고요? 라고 다시 말해준다. 당황한 나는 너무 바보 같은 말투로 더 바보 같은 대답을 한다.

-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요.

...

녹음 된 파일을 본다. 200X년 X월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녹음 파일은 여러 개이고 젊은 나의 목소리이다. 건방지고 오만하고 자신에 차있으며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어딘가 운동장이나 역의 뒤 구석에서 스스로만 납득 할 수 있는 이론들을 녹음하곤 했다. 때때로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새벽이 흐리게 시작되는 그런 때면 감정에 복받쳐서 더욱 아무 말이나 하곤 했다.

그 중에 하나를 들어본다. 녹음된 상태는 좋지 않고 파일의 시작부분에 차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소리가 같이 녹음되어 있다. 나는 이 녹음 파일이 어디서, 왜 녹음된 건지 떠올리려고 한다. 목소리는 약간 술에 취한 것 같고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 모든 이야기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불멸이란 결국 죽음에 대한 복선이다. 가장 유명한 불멸자인 아킬레우스가 발뒤꿈치의 약점을 제외하고 무적의 신체를 가지는 이유는. 그가 결국 그 약점으로 죽을 것을 의미한다...

200X년의 나는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듣지 않을 녹음 파일에 약 10분에 걸쳐서 결락과 제한이 만들어내는 불멸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이 불멸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두려워해야한다. 우리가 가진 영혼이 정말 불멸한다면 그 불멸하는 영혼은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후 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불멸성이라는 철학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야한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녹음된 파일을 닫는다.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녹음되어 있는지 기억 해낸다. 나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이 파일을 지울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

여덟? 아홉살때 쯤의 나. 아버지는 서른 다섯 쯤이다. 아버지와 나는 저녁을 먹고 있다. 생선을 먹던 그는 나에게 생선을 먹으면서 열역학의 제 1법칙에 대해서 설명한다.

- 쉽게 말하자면 네가 지금 먹고있는 생선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얘기야, 질량 보존의 법칙에서 모든 질량은 형태만 바꿔서 존재한다고 하지...

아버지는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만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내가 열역학을 이해하길 기대하며 한참을 설명한다.

- 젓가락으로 생선의 살을 발라내면...이 생선의 살은, 네 안에서 네 몸이 되고 또 에너지가 되어 운동을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네 몸도 다른 형태로 바뀌어서 다른게 되는거야 어느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고 순환하게 된다.

- 지금 내가 말한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돼?
하고 아버지는 묻는다.

서른이 넘은 나는 대답한다.
관측하는 우리가 닫힌 계 안에 있으며 우리는 순환하는 것이 아닌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여 결국은 더 낮은 곳으로 사라진다는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서른이 넘은 나의 대답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묻는다.

- 이해가 돼? 세상에 어느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는거야.

아버지를 쳐다보며, 항상 과학보다 신학에 더 관심이 많았던 어린 나는 우물쭈물하다 그럼 우리의 영혼은 나중에 어디로 가요? 하고 묻는다. 불교도인 아버지는 무슨 생각인지

- 우리에겐 전생도 영혼도 없어
라고 대답한다.

...

이 우주는 불멸이 아니기에 약점도 없는 신, 브라흐마의 하루이다.
그의 하루는 길고 긴 계절로 나뉘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의 하루를 계절로 나누고 또 계절로 나눈 찰나와 같은 나눈 짧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이름은 칼리유가이며 우리는 불화와 불만의 아이들이다. 정당한 댓가와 정의는 이 시대와 조금도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당함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고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시대가 불의한 시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데서 연유한다.
우리는 얼마나 하찮고 고귀한지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우리의 삶과 칼리유가의 시대를 벗어나 신의 하루를 세려고든다.

나는 때때로 그의 하루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주 전체를 하루동안 살아가는 그와 달리, 나는 겨울이 삶의 전부인 것 처럼 살아간다.
나는 겨울에 태어나 첫번째 기억조차 겨울에 대한 것이다. 모든 일들은 겨울에 일어난 일이고 나의 평생은 겨울에 걸쳐있다. 그런 시간 밀도의 차이는 내가 그를 인식하기도 쉽지 않게 만든다. 해를 볼 수 없을 촛불에게 내일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신의 하루는 인간에겐 의문의 덩어리 일 뿐이다.
내가 그에게 질문을 힌다고 가정할때 물어볼 것은 정해져있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보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다 가더라도 신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오래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말들은 고스란히 신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우리의 질문에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할 때 까지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간을 가늠 해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의 대답이 도착했을 때 나는 연못 안의 얼어붙은 물고기이거나 또는 누구에게도 도달하지 못한 노래일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겠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

오늘 아침 일어나 긴 바지를 입고 집 밖에 나왔더니 발치에 낙엽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햇볕이 쨍해 모자 위에 후드를 쓰고도 눈이 부시지 않는 그늘로 걸었더니 찬 기운이 안개처럼 깔렸다. 평소보다 아침의 해가 더 낮구나 정말 겨울이 온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해가 반짝이는 날 구름도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기마저 달콤한 그날.
- 당신 나에게 그 거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거리로 갈 수 있죠?

나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손을 내밀었고 당신은 그 손을 잡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손은 서늘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 감촉과 당신의 체온은 봄날의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나의 운명은 분명.

20년 11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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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중의 특징적인 경향 중 하나는, 믿음을 먼저 결정하고 그 믿음에 따라 증거를 찾으려고 하는 행동 방식이다. 대중이 무엇을 믿고 싶든지 간에 그들은 인터넷에서 그 근거를 찾아낼 수 있고, 모두 자신의 주장만이 사실이라고 주장 할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런 시대를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를 예언한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실”을 인식하는 현대인의 현실인식 체제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내린 듯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내 말이 맞아? 하고 불안하게 질문을 하는 것 뿐이다.

<여행의 핑계>

이것은 2020년 1월의 캄보디아 여행기이다. 모든 문단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런 연관이 없다. 나는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고 여기에 그 흔적만 남겨둔다.
애초에 이 여행기는 캄보디아의 씨엠립을 거쳐 캄보디아 최북단의 유적인 쁘레아 위히어를 거쳐 육로를 통해 수린, 그리고 태국 북단의 우돈타니 또는 치앙마이로 가는 긴 여정에 대해서 작성될 예정이었다.
다만 씨엠립 일정만 결정한 채로 우돈타니는 너무 심한가 싶어서 마지막 도착지로 치앙마이를 결정하고 나서. 바로 옆 부서의 신입사원 분이 거의 같은 일정으로 치앙마이로 여행을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차마 치앙마이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원래 8박 9일의 일정은 4박 6일의 일정으로 바뀌었고 나는 모든 일정을 씨엠립에만 있게 되었다.

<가을은 남자와 힌두교의 계절>

씨엠립에 오려던 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한 10년 전 쯤 부터 친구들에게 가을만 되면 “가을은 남자와 힌두교의 계절”이라며 앙코르왓에 가자고 꼬셨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내 계획은 간단했다. 우리 같이 앙코르왓에 가서 사원을 보자 ==> 끝. 그 외에 디테일은 없다. 굳이 앙코르왓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가을인 이유도 그냥 추석때 심심할까봐...정도의 이유였다. 내가 가고 싶지만 같이 누가 갔으면 좋겠어... 이 정도의 생각으로 여행을 꼬셔봤자 잘 될 리가 없다.

마침 친구들 사이의 리더십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나는 가을 여행에 대해 단체 메신져 방에서 언급할 때 마다 “네가 계획 다 짜면 휴가 봐서 같이 가든가 갈게” “응 그럼 나도 너 계획 봐서” “응 그럼 나도” 정도의 리액션 밖에 못 받았고 매년 그게 되풀이 되었다. 10년 동안 앙코르왓은 꿈도 꾸지 못한 채로 계획만 어딘가 폴더에 보관 된 채로 시간만 가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내 여행은 변덕이 전부이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는데엔 많은 것이 필요 없다. 녹색의 습지를 가로지르는 기차나 수면 위에 솟아오른 앙상한 나무가지의 이미지 같은 것 하나면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캄보디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도착을 프놈펜이 아니라 씨엠립 공항으로 해야하는 것도 몰랐으니까.

<심야의 도착>

천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비행기는 심야에 있다. 대신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보다도, 프놈펜으로 가는 비행기보다도 훨씬 싸다. 비행기 안에는 단체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예전같지 않다고 했는데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걸까. 비행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도착비자를 받기 위해 달려간다. 나는 사전에 인터넷에서 비자를 받아두었다. 캄보디아의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저렇게 링크를 타고 가면 받을 수 있는데, 구글로 검색하다보면 업자에게 연결되어 아주 비싼 값에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이제 우리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은 구글로 검색을 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공항을 나오니 완전히 까만 밤이었다. 심야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조트에 차를 부탁해두었다. 사륜구동의 튼튼하고 승차감이 안 좋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꼭 저승을 빠져나가는 길처럼 길은 까맣고 숲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 군데 군데 전구를 켜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나라의 모르는 숲들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서웠다.

도착한 리조트는 더욱 무서웠다. 사람이 아무도 없고 마지막 체크인인 나를 기다려주기 위해 한 명의 당번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골길 (몰랐던 일이지만 씨엠립에는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았다) 주변의 리조트인 이 곳은, 나무와 작은 연못과 유수풀이 있는 28동 정도의 작은 마을 같은 곳이다. 새벽 1시에 가까운 시간이긴 했지만 짐을 들어주겠다는 걸 거절하고 랏지로 들어가며 너무 조용한 나머지 나 말고 손님이 있기는 한 걸까 하고 생각했다. 겁을 먹은 나는 문을 잠그고 캐리어로 문을 막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 위에는 “관대함은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라고 써있는 팜플렛이 놓여있었다. 일종의 동물들이 나오는 우화였는데, 말하자면 택시기사들과 호텔직원 등 당신이 마주치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팁을 마구 주지 말라는 경고였던 것 같다. 나는 더욱 기분이 이상해졌다.

<첫째 날의 클라이막스는 고양이에게 밥을 준 것>

침에 본 리조트는 밤에 볼 때 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 조식 시간에 맞춰서 나와 과일과 빵을 먹었다. 거짓말이다 과일과 빵과 계란 후라이와 캄보디아식 쇠고기 국수와 버터를 먹었다 태국 음식에 비하면 캄보디아 음식은 별로라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가 태국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라임을 만진 손에서 좋은 냄새가 나서 하루 종일 이 냄새가 나길 바랐다.

리조트 앞에서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닐 뚝뚝 기사를 소개 받고 - 꼭 태국 영화에 악당으로 나올 것 같이 생긴 사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둘째 날 나를 내버려두고 어딘가로 사라졌고 덕분에 둘째 날 여행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 매표소로 갔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매표소에서 끊을 수 있는 통합 권은 2020년부터 거의 모든 유적군에 적용이 되도록 바뀌었는데. 전에는 적용이 되지 않던 뱅 밀리아와 반테이 스레이도 통합 권으로 입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매표소는 5시부터 문을 여는데 그것은 아침에 표를 끊고 일찍 앙코르왓의 해돋이를 보러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표의 앞에는 표를 산 사람의 얼굴과 일련번호가 있고 뒤에는 1부터 31일까지의 숫자가 찍혀 있어서 유적군에 입장을 할 때 펀처로 표시를 한다. 그러니까 13이라는 숫자에 표시를 하면 1월 13일에 입장을 했다는 표시인 것이다. 일일 당의 입장료를 나눠서 계산하보면 당연히 하루 입장권 보단 삼일 입장권이 삼일 입장권 보단 칠일 입장권이 싸다. 길 곳곳에 체크포인트가 있어서 공무원들(아마도 공무원들)이 서서 표를 계속해서 검사한다.

생각하기에 좀 이름 시간인 7시쯤에 유적군으로 들어갔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유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남문에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데 내가 탄 툭툭 기사는 멈춰달라고 하기 전에 엄청난 속도로 남문을 지나쳐가버렸다. 아 툭툭 기사분들 대단하네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나중에 와서 찍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한 것이 하나 나중에 그럴 기회 따윈 없었고 둘째 이 기사 분만 이렇게 툭툭을 빨리 모는거였다. 어떤 기사도 이 정도로 빠르게 툭툭을 몰지 않았고 이 기사가 모는 툭툭은 어떤 툭툭도 추월하지 못했다. 무의미한 장점이랄까...

나는 이 여행기에는 사원에 대해서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한다. 사원에 대한 이야기만 따로 떼어내서 다른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 여행기와 사원에 대한 글은 원래 하나의 글이었고 나는 가느다라한 접합 부분만을 이 여행기에 남기고 글을 통채로 떼어냈다. 한달이 넘게 이 여행기를 끝내지 못하다 보니 왜 그런 짓을 했지 하는 후회를 이백번째 하고 있지만 뭐 어떤가. 씨엠립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사원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할 이야기를 내가 굳이 또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나는 그에 대해서 한 편의 글을 썼는데 말이다.

하여간 앙코르왓 유적군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기에, 사람들이 오기 좋지 않은 때인데도 그렇다. 호텔 예약 사이트를 찾아보니 예약률이 30%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 100%면 어떻게 되는거지 하는 생각과 도대체 왜 30%밖에 안되는 건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앙코르왓 유적군의 유적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역사를 잃어버리고만 도시답게, 우리가 이 도시에 대해서 알고있는 것은 너무 부족하고. 하나 같이 아름다운 유적들이지만 오랫동안 똑같은 유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이걸 이렇게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지 의심이 든다. 먼지로 가득찬 길을 지나서 아름다운 사원 앞에 도착했더니 단체 관광객들이 우글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도 짜치는 이유이다. 흙길이 아니면 돌 바닥이기 때문에 발목과 무릎이 아플 정도인데 이렇게 하루 종일 유적을 보는 것 말고는 뭐가 있을까 고민이 든다. 열심히 보지 않으면 아쉬운데 열심히 보고 있으면 왜 이걸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신기한 곳이다.
믿어달라. 나는 한국의 30대 회사원이다. 그것도 해외영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것은 인류 1%수준의 실력으로 허황되고 말도 안되는 말을 숫자 까지 포함해가며 쓸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가상의 친구는 없지만 가상의 매출은 있는(그것도 엄청 많이) 있는 사나이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성을 갖고 짜쳤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장소는 많았다. 앙코르왓의 사원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창가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는 것이랑은 다른 요소들이다. 세월이 켜켜히 쌓여 만들어놓은 그 모든 것들과 이제는 잃어버린 영광들, 그리고 신에게 서원했던 그 마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공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놓고 말하자면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해도 애초에 사람이 수만명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예술적인 감동을 느끼는 것은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의 영역이다. 나같은 아마추어는 짜낼 수 있는게 별로 없어서 그냥 짜치는 걸 짜친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첫째 날에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것은 스라스랑이었다. 그냥 아무 것도 없는 저수지이고 그 주변에는 캄보디아의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정말 많은 개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와서야 나는 내가 무엇을 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리 할 수가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는 프레룹에 올라 한 시간을 넘게 해가 지는 걸 기다렸다. 생각해보면 앙코르와트에 해가 지는 것보다 프레룹에 석양이 닿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고 한 시간이 넘게 해가 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리조트로 돌아오고서, 나는 별다른 의욕이 없어서 리조트에서 저녁을 먹었다 새끼 고양이 몇마리가 내 발치에 와서 밥을 얻어먹었다. 농담 소재로 써먹으려고 북한 음식점에 가보려고 했지만 두 군데 다 닫았다고 한다. 맛없고 비싼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야 하고 생각은 했지만 한편 억울한 감이 있었다. 이래서야 여행에 왔다고 할 수 있나. 여행은 돌발적이고 웃기고 진짜 아무 짓이나 해야 여행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여행에 웃기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친구들은 너무 실망했지만 나도 내가 이렇게 온건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못했다. 방에서 프런트에 전화를 거니 전화가 고장나 있었다. 맙소사 업자를 불렀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프런트 사람의 표정을 보니 분명 며칠 정도 고장난 게 아닌 것 같았다.

<둘째 날의 클라이막스는 너무 빨리 왔고>

앙코르왓에서 보는 일출은 어쨌거나 씨엠립여행의 클라이막스이다. 현지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서 아침 5시쯤 나왔지만 후에 알게 된 것은 앙코르왓의 두 개의 연못 중 하나가 공사 중이어서 어차피 모두가 우글우글 한 곳에 모여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딱히 일찍 가지 않아도 뷰는 비슷했다는 것이다.
딱 콘서트를 끝나고 택시를 잡아 집에 가려고 하는 사람의 수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앙코르왓의 앞 뜰을 향해간다. 다들 자기네 모국어로 너무 어두워 앞이 안 보여 하고 투덜거린다. 앙코르왓만은 다른 유적군보다 입장 시간이 빠르다. 해돋이를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앙코르왓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 쪽 연못의 왼쪽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풀숲이라 가렵고 축축했다. 한시간을 넘게 기다리며 사원의 그림자와 숲의 윤곽 위로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가 뜬 직후 사원에 입장 할 수 있는데 가이드 북에 “해가 뜬 이후엔 앙코르왓엔 사람이 적으니 그 때 보세요”라고 말한게 생각나서 앙코르왓을 관람했다. 이게 사람이 없는거라고? 꼭 토요일의 신세계 경기점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사람이 없는거였다. 앙코르왓 꼭대기 층의 도서관 건물 구석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그곳만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 때 인드라의 신상이었던 것에 옷을 입히고 절을 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나타나 이것이 붓다의 상이냐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쓰고 있던 양키즈 모자를 보여주며 미안해 나 퀸즈에서 왔어. 하고 악수를 청하고 가버린다. 속은 것 같진 않지만...

그리고 앞에서 썼지만 앙코르왓을 나와보니 나를 데리고 다음 지역으로 갈 뚝뚝기사가 사라졌다. 한시간 동안 그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기분이 나빠질대로 나빠진 나에게 다른 뚝뚝기사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리조트에서 관대함은 좋은 것만이 아니다 이런 우화를 갖다놓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이 넘게 본인 기사를 찾고 있던 내가 멍청해보였던 걸까. 타프롬 사원에 갔다가 호텔로 돌아가는데 20불을 부르는 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여행 중에는 절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내면의 회사원이 튀어나왔다. 두 명을 경쟁시켜서 10불로 깎고 타프롬에 갔다가 호텔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10불도 아까웠지만 팁으로 2불을 더 챙겨주고 없어진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의 동료들 말로는 그가 앙코르왓의 주차장에 있다고 한다. 나는 기가 차서 말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일단 앙코르왓까지 데리고 간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에게 10불을 건네주고는 전해줘, 라고 말하고 숙소로 와버렸다. 가난한 사람의 수고비를 빼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에게 전해졌는지는 내 알바 아니었다.

오후에는 좀 쉬다가 다시 사원을 보러 가거나 박물관에 갈 생각이었으나 툭툭 기사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참고로 다음날 다음 리조트로 옮길 때 리조트 직원과 교섭할 때는 6불에 승락한 기사가 도착하자 짐을 붙잡고는 7불을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이 동네의 툭툭 기사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풀사이드에 누워 책을 읽었다.

캄보디아의 공기는 탁했다. 우리가 기대하던 파란 하늘과는 전혀 달랐다. 이게 특별히 공기가 안 좋은 시기야? 라고 물어보니 건기에는 항상 이렇다고 한다. 나만큼이나 하얀 서양인들이 풀사이드에 누워 빈둥대고 있었다 평생 배고파본적이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긴 나도 언제 배고프기나 했을까. 나는 그 사람들만큼이나 피둥하고 하얀 내 몸이 부끄러워져서 금세 방으로 들어와 저녁을 기다렸다. 레스토랑에는 또 새끼 고양이들이 있을거고 그런 생각을 하니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싶지가 않았다. 바 근처에서는 유럽억양의 영어를 쓰는 연주자들이 재즈를 연주하고 있었다. 1시간쯤 그걸 듣다가 악수를 하고-악수를 하며 팁을 주고- 돌아와 또 일찍 잠들었다.

다음 날에는 호텔에서 소개한 택시 기사와 좀 먼 사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잠이 들며 원래 사람은 하루 중 몇번씩 배가 고파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몇번이나 배가 고픈 걸까. 우리는 누구도 새끼 고양이만큼도 배가 고프지 않다.

<셋째 날 실은 넷째 날>

행기에 리조트 얘길 적는 것은 바보 같다. 그런 것 치고 나는 여행을 오기 전부터 마지막 하루를 묵기로 한 리조트를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예산으로 따져도 비행기 값 + 나머지 3박의 숙박비가 마지막 일박의 숙박비와 비슷할 정도였다. 정문은 묵직한 나무문이었다. 툭툭을 타고 나무 문을 열자 색조가 전혀 다른 녹색이 가득한 인공의 낙원이 거기에 있었다. 이것은 단 한치의 거짓말도 없는 표현이다 인공의 낙원.

캄보디아의 농촌을 컨셉으로 만들어진 이 곳에는 잔디로 만들어진 녹지를 만드는 대신 논과 논길을 만들어두었다. 오래된 오두막을 개조한 술집에는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듣고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린다. 밤이 되면 개구리들이 울었고 사람이 없는 풀사이드에 나는 옷을 벗고 헤엄을 쳤다. 나는 마지막 날 예약해 둔 톤레압 호수의 투어를 취소하고 출국하는 시간까지 이 리조트에 머물러 있기로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쓰고. 그렇게 씨엠립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바로 전에 쓴 사원에 대한 글은 대부분 리조트에서 완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말이다.

“멀리 사원의 후문에는 지뢰 피해자인 군인들이 캄보디아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면서, 같은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 사원 어디에 있든지 그 음악 소리가 들리고, 나는 희미하게 음악이 들리는 지점- 사원의 끄트머리, 숲의 가장자리-까지 걸어와 앉았다.”

어쩌면 내가 씨엠립에 다시 온다면 이 리조트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 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꼭 이 곳을 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돌아가는 길은 처음 올 때 처럼 완전히 까만 밤이었다. 심야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조트에 차를 부탁해두었다. 아마 내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이 사람들은 차를 부탁해두었을 것이다. 꼭 저승을 빠져나가는 길처럼 길은 까맣고 숲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 군데 군데 전구를 켜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창 밖을 바라본다. 나는 숲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려다 숲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문다.

<옷을 입은 우리의 신에게 기도하는 법>

비행기는 한 시간을 늦고 두 시간을 늦는다. 나는 밤의 공항에 구석진 자리에서 내가 왜 이 여행을 오려고 마음 먹었는지 깨닫는다. 마침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것 같은 키가 크고 마른 아이 하나가 빨간 마그네틱 하나를 사려고 주춤거리는 모습을 본다. 아이는 동그란 이마를 문지르더니 기념품을 사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서있는 줄로 돌아간다. 중국의 청도행을 알리는 사이니지가 보딩을 알린다.
나는 비행기가 떠난 후 아이가 사지 않은 마그네틱을 사서 가방에 넣는다.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그 얼굴을 잊어버리겠지만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아이에게 선물이라도 할 것 처럼 말이다.

무슨 이유로 지어졌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이 앙코르왓의 유적군은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도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 사람들은 불경하게 사원의 창에 몰려들어 어디 쇼핑몰의 메인 화면에 쓸 것 같은 사진을 찍고 있다. 신의 상은 언제부터인가 부처의 상이 되었고 불경한 행위는 그 어떤 행위보다 더 숭고하게 이해된다.

나는 여행에서 믿음과 배고픔에 대해서 생각했다. 레스토랑의 고양이들과 숲의 윤곽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로 진실인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의 수만큼 진실이 있다는 말은 불합리하다. 일어난 일은 단 하나 뿐이고 역사가 여럿이며 그 역사를 읽는 우리들 또한 다수일 뿐이다. 믿음. 나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려다 그만둔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 그리고 믿어야 하는 것들 말이다.

언제나처럼 나는 늦게 이해하고 나중에서야 말한다. 여행을 가고 또 돌아올 때 마다 내가 명확한 이유로 여행을 온 것이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유가 있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과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후 무언가를 깨닫는 것. 둘 다 사실 여행과는 하나도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변명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천 오백년 전의 사원 위로 해가 뜨고 그리고 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붓다의 옷을 입은 인드라 상을 떠올린다. 아니 비슈누의 상이었던가.

내가 그 모습을 잊어버리기 전에 나의 신에게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비행기를 탄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면 아무리 빠른 속도라고 해도 기도는 어디에라도 전해질 것이다. 나는 해야할 기도와 해야만 하는 기도 양 쪽을 모두 떠올린다.
그 기도는 이것이다.

“주여 내가 매일 같이 주로부터 멀어지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를 사랑하시나이까.”


20년 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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