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구는 주택가로 둘러싸인 조용한 곳이다. 도쿄 현대미술관은 그곳의 역시나 조용한 공원 - 키바 공원이라는 이름이다 - 외곽에 뜬금없이 세워져있다. 어떤 지하철 노선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런 곳에 어째서 미술관을 세웠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도쿄 어디를 가도 시간이 일정하게 걸리는 시나가와에서도 1시간은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

도쿄의 버스는 120엔에 노선의 끝에서 부터 끝까지 갈 수 있다. 비싸고 상업화되어 있는 전철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도쿄 도민의 발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으로 가기위해 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며 낯선 - 나는 고토구에 올 일이 없다 - 동네를 두리번 거리며 구경했다. 추운 겨울인데 사람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다.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지만 우리 동아시아 인들은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혼자 무표정 으로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상태이다. 모두들 다른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겨울의 햇볕을 각자 즐기며 고요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버스에 안에서 본 거리의 풍경은 겨울처럼 따뜻했다. 아이들을 태운 자전거와 산책을 하는 노인들. 어딘가로 우르르 달려가는 중학생들. 대단지를 이루지 않고 다양한 크기로 세워져 있는 맨션들은 깨끗하고 안전해보였다.
키바 공원은 좋은 곳이다. 넓지 않은 공원이지만 나무들이 충분히 나이가 들었고 공터는 넓다. 내가 좋아하는 홋카이도 오비히로의 공원을 닮았다. 공터 어딘가 멀리에서 축구공 만한 아이에게 남자어른이 축구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니 축구를 가르치는 것보다 공을 굴리고 있었다는게 좋을 것이다.

미술관 관람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수고가 아까워진 나는 지하의 패밀리레스토랑이라도 가볼까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그곳은 아이들과 온 부모들로 가득하고 줄까지 서있었다. 그래보이지 않았는데 혹시 소문난 맛집인가. 초코 파르페를 커다랗게 찍은 포스터를 보자 나도 먹고 싶어졌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는 역시나 축구공만한 아이(아까와는 다른 아이이다. 어째서 다들 축구공만할까?)가 산타 복장을 입고 계단을 혼자 내려가보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버스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잘 보니, 이 노선은 스카이트리와 신주쿠를 왕복하는 상당히 긴 노선인 것 같다. 스카이트리에 가고 싶은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사람이 몰리는 유명한 관광지는 좀처럼 가지 않는 속물근성으로 유명한 나는 아까 미술관에서 본 전시 작품들 생각을 하면서 그에 대해서 어떤 글을 쓸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니 하려고 했다.

내 주의를 끈 것은 버스 의자에 앉아 졸고, 아니 완전히 잠에 빠져있는 작은 아이이다. 아이는 촌스러운 털옷에 상하의의 색깔이 어울리지 않게 입고 있었다. 빨간 색에 가까운 자주색의 바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연보라색의 윗옷은 오랫동안 길가에 놔둔 것처럼 회색이었다. 신발은 역시 작고 더러웠다. 아이는 좌석에 완전히 파묻혀서 버스에 얼굴을 대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몇살 쯤 되었을까. 나는 조카를 생각한다. 또래보다 키가 큰 것이 자랑인 조카라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버스 안의 아이는 5살 정도 되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오래 쓴 듯 조금 닳아있지만 마스크는 알록달록한 어린이용 마스크이다. 머리카락은 역시나 알록달록한 방울 - 나는 저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슈슈라고 부르던가. - 로 단정하게 묶어두었다. 나는 아이를 돌봐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안심한다. 그리고 아이의 근처 앞 좌석에 타고 역시나 고단하게 자고 있는 어른 한 명이 아이의 보호자일거라고 추측한다.

그 사람은 역시나 좌석에 깊숙하게 기대어 앉아 자고있다. 햇볕에 상한 피부라 나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옷은 역시나 때가 탔고 잠에 곯아떨어져 있는 와중에도 손으로는 등산지팡이를 꼭 쥐고 있다. 발치에는 옷만큼이나 낡은 빨간 색의 백팩이 놓여져 있다. 모녀하고 하기엔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 할머니일까. 갈라진 손등을 쳐다본다. 안전할 게 틀림없는 버스 안에서 잠에 곯아떨어져 있을 때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 같은 손등이다.

겨울이기 때문일까. 노선의 끝에서 끝까지 가도 한 사람 당 120엔. 아마 한 쪽은 아이였기 때문에 버스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노선의 한 쪽 끝에는 신주쿠이다. 원래는 신주쿠에서 살고 있는 사람일까. 120엔에 따뜻하게 걱정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자이다. 1400엔을 내고 전시를 보고 역시 그 정도 돈을 내고는 맛없는 커피와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먹었다. 호텔로 돌아가면 잠시의 변덕으로 사치스럽게 예약해둔 킹사이즈 베드의 방이 기다리고 있다. 몇 년만에 온 도쿄의 물가는 말도 안되게 올라가 있었다. 도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묻자 아주 저렴하게 먹으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다른 물가는 말도 안되게 올랐지. 도쿄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하고 혼잣말을 하니 친구는 그러게, 관광객들이랑 부자들 말고는 다 죽으라는 거랑 비슷하지. 라고 말한다.

세이브더칠드런 재팬은 24년 7월 아동계층의 빈곤에 대해서 19년 이래 최대급의 앙케이트를 벌였다. 전국의 일반층3만명과 단체에서 후원한 비과세세대의 13세부터 70세까지의 당사자층. 그리고 17세까지의 아동층이 대상이다. 해당 설문에서 우리의 주의를 끌만한 점은 19년의 앙케이트와 비교하여 아동빈곤에 대해서 알고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퍼센테이지가 10%이상 늘어났다는 점이다. 아동 빈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한 비율은 더욱 더 줄어들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추정되는 일본의 절대 빈곤층, 즉 하루 $2.15 이내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일본 인구의 0.35%로 보여진다. 올해 일본의 인구는 1억2450만명. 즉 절대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40만명이 넘고 그 중 대부분이 복지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는 어린이로 추정된다.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을 수 없는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야유를 당하고 있는 일본의 사회복지 체제는, 일을 할 수 없는 어린이에게는. 어린이를 길러야 하는 부모에 대해서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스카이트리로 가는 정류장이 얼마 남지 않자 버스안의 사람들은 더욱 웅성거린다. 누군가는 짐을 다시 챙기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보며 지도를 확인한다. 하지만 좌석에 앉은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걸 - 버스 안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들처럼 - 깨닫고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창 밖으로 눈을 돌린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어째서인지 자꾸 자고 있는 아이의 땋은 머리를 물끄러미 보게되어 나는 버스를 내린다.

나를 버스에서 내리게 한 것이 죄책감인지 아니면 비열한 안도감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24년 12월의 글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크고 작은 판단을 내린다. 그건, 매일 같이 판단의 숫자가 늘어가는 만큼 실수도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라고? 우리는 실수를 하는 것만큼이나 잊어버리기도 잘한다. 그래서 결국 시간이 지나면 틀린 판단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어느새 자기 판단력의 뛰어남에 대해서 자신하고 만다. 바보처럼.

하지만 감히 말하고 싶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이다. 그 지난한 과정은 지루하고 때때로 치명적이기까지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이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면 내가 여행지에서 러닝을 하는 것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러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여행 중 매일 5킬로미터 정도 뛰었고. 원래 피트니스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호텔(6년 만에 왔으니까 그럴만하다)에도 피트니스가 생겼으니 굳이 실외 러닝을 할 필요도 없어서 몹시 편리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애초에 여행을 가서 매일 러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 나간 짓이라는 거다. 고작해야 달리기인데 얼마나 힘들겠냐 라고 생각해선 오산이다. 운동용 워치를 켜고 달려보면 안다. 10분만 달려도 칼로리가 빠르게 소진되고 30분, 40분이 넘어가면 말도 안되는 숫자가 찍힌다. 내가 일상적으로 달리는 페이스는 40분 혹은 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인데 요즘 등에 문제가 생긴 나는 한 번 그렇게 러닝을 하면 등이 아파서 한참을 쉬어줘야한다.

그런데도 러닝을 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러닝을 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선량한 민주시민들이지만 아니 일부는 선량한 민주시민들이지만 일부는 아니 대부분은 정신나간 미친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에 러닝을 하는 형과 이야기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나라에 마을버스를 전부 없애고 다들 뛰어다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할 수 없는 몸 상태인 사람들을 위해서 공공인력거 같은 걸 만드는 건 어때요 라고 맞장구를 쳤다. 여행을 하면서 더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국민들에게 러닝화랑 운동용 워치를 주고,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선 자동차만큼 빠른 슈퍼 전기 자전거 같은걸 공공 보급하는게 어떨까. 이 정책이 성공만하면 차기 대선도 꿈이 아니야.

이번 글의 주제가는 MJ Lenderman - She’s Leaving you 이다. 2024년 발매된 앨범 Manning Firework는 여러모로 인디락의 올해 최고 걸작이라는 평이다. (나의 애증 매체) 피치포크는 심지어 이 앨범을 베스트 뉴 뮤직 상을 줬고 롤링스톤은 심지어 인디록의 보석이라는 평을 했는데, 이 정도까지 칭찬을 받는 앨범이라면 예전 피가 끓는 때의 나라면 오기가 나서라도 안 들었지만 나도 어느덧 어른이 되서 성장을 했다. 앨범 자체는 락음악의 문법에 하나도 벗어나지 않는 잘 만들어진 전통 음악이다. 윤마치의 <새벽에게>만 들은게 아니라 러닝을 할 때 들었다. 과연…역시 러닝에는 락 음악이다. 아니 진짜로.

여러분도 한 번 쯤은 황궁런을 들어보시지 않았나요? 아니 정신나간 러닝인간들, 해외까지 나가서 러닝을 하려고 드는 인간들에게는 상식 같은 용어지만. 여러분도 물론 알고 계시겠거니 하는 기대를 품어봅니다. 하지만 일부 아는게 없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러닝코스로. 도쿄의 황궁이 주변이 도쿄역 근처라 접근성이 높으면서 풍광이 아름답고 신호등 같은게 없이 비교적 쾌적하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도쿄 지역 내 러너는 물론이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심지어는 해외의 러너들에게도 유명하게 되었다. 궁금하면 한국어로 황궁런이나 고쿄런으로 검색하기 바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나간 달리기맨들과는 딱히 교류가 없던 나는 황궁런의 존재를 알게 되자 신나서 여러가지 언어로 검색을 하게 되었고 개중에서는 여행을 가서 러닝을 하고 싶은 이상한 사람들 - 아 저 또한 당신들 중 일부입니다. - 이 모여있는 웹사이트도 알게 되었고 도쿄 여행 중의 러닝에 대해서 여러가지 모색을 하게 되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도쿄는 수십번은 이미 가본 터라 대략적으로는 도쿄를 알고 있는 내가 여행 전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찾아본 것이 도쿄의 러닝코스였다.

황궁을…요요기 공원을…다마가와 강가를…오오 도쿄에 이렇게 좋은 러닝코스들이 있을 줄이야. 하고 감동했다. 심지어 도쿄에는 러닝스테이션이라는 공간이 있어서 물건을 맡길 수 있고 샤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러닝용 용품을 빌려주는 곳까지 있다고 하니 주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것도 오산이라는 게 후에 밝혀졌다만)
나는 신이 나서 러닝스테이션 서비스를 해주는 동네의 목욕탕들 까지 찾아가며 러닝 코스를 짰다! 왜 목욕탕이냐, 그냥 러닝이 유행하게 되니까 기존에 모든 설비를 갖춘 목욕탕들도 런너들을 위한 서비스를 하기로 한 것 같았다. 이 블로그에는 정보성 글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도쿄에서 러닝을 하고싶은 달리기맨 여러분 구글에서 러닝스테이션이라고 검색만 하지 말고 러닝 코스 별로 주변에 목욕탕도 찾아보세요.

다른 달리기맨들은 모르겠다만. 새로운 야외 코스에 항상 목이 말랐던 나는 일본에 도착하고(밤에 도착해서 달릴 수가 없었다.) 바로 다음날이 되자 뭐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채비를 갖추어서 황궁으로 향했다. 나는 이미 장비가 있는데 돈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기에 한국에서부터 러닝화를 준비했고 러닝용 의류들을 바리바리 싸들고(이것도 오산이라는게 후에 밝혀졌다만22) 호텔 타올을 가방에 넣고 황궁에서 제일 가까운 걸로 보이는 러닝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더럽고 사람 많던 도쿄역 주변은 마루노우치 스트리트 등 재개발이 계속되면서 어느새 깔끔하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바뀌었고.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그런 지역은 모두 신주쿠-시부야 라인에 넘겨버렸다는 것이 좀 우습다. 요는, 관료들이 상주해있는 라인들은 어느새 깔끔하고 땅값이 비싼 쾌적한 지역으로 계속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도쿄역 부근이 상점가가 밀집해있는 긴자-유락쵸에서 넘어오기만 해도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장소가 되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외국인은, 혹은 일반 일본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천천히 흘러가는 거스를 수 없는 땅값의 변동같은 것이 이 지역을 이렇게 만든걸까?

쾌적하게 정비된 대로를 건너서 가려고 마음 먹었던 러닝스테이션으로 향하는데. 그 위치가 불길하게도 도쿄 도내 최고의 심령스팟인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머리 무덤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서 외국인인 나는 엄청나게 웃었다. 가까이에 있는 일본인들을 생각해서 소리내서 웃지는 않았다만, 평생 일부러 찾아갈 생각도 안한 이런 역사적 스팟이 도심지에 덩그러니 있다니. 비슷하게는 오다 노부나가의 사망 장소이자 묘지인 혼노지가 교토의 번화가 중심에 있긴 하다만. 정말로 작고 좁은 공간에 묘지만 세워져 있다. 거기가 마사카도의 묘지란 것을 알아낸 것은 거기가 얼마전에 한 게임 - 그렇다 나는 많은 일본 문화를 게임에서 배웠다 - 에서 나오는 마사카도의 무덤과 너무 똑같이 생겨서 찾아봤기 때문이다. 공통적으로 공식 정권이 두려워한 인물이지만 결국 나라의 정통 계승자가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좋은 취급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이다. 악역 역할을 맡은 프로레슬러처럼 인기는 좋지만 대전료는 그렇게 높지 않은 선수의 뒷 사정을 들은 기분이다.

러닝스테이션은 기본적인 서비스인 락커와 샤워만 사용해도 천엔을 내야하는 무시무시하게 비싼 곳이었다. 그런만큼 신발은 물론 여러가지를 빌릴 수도 있고. 자체 러닝 대회나 강습도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나으리들이 이용하시옵는 이런 동네에서 장사를 하니까 비쌀 수 밖에 없지 싶다. 별로 멀지도 않고 살짝 북쪽인 칸다의 지점은 기본 사용료가 600엔에 심지어 곧 폐업이 예정되어 있다고…역시 매니아 - 정신 나간 달리기맨들 - 상대의 장사는 하지 않는게 좋지 않는게 좋다. 벽에 빽빽히 진열되어 있는 러닝 신발의 모델은 나이키의 고급 라인으로 한국에서는 최저 23만원은 줘야 살 수 있는 모델이다. 나이키가 비싼 나라인데 라인업을? 도대체 일본 나으리들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벌고 있는 걸까.

황궁런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뭘 잘못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일단 러닝화를 포함한 짐이 무겁다. 겨울철의 러닝이라 바지+바람막이+비니+장갑 정도만 가지고 왔는데도 짐이 한가득이다. 보스턴 백이라도 가져왔어야 하는건데 얄팍한 샘소나이트 백팩으로는 꽉차는 느낌으로 수납을 했어야했고 러닝을 한 다음에는 젖어서 부피가 늘어난 가방이 부담스러워졌을 정도다. 그렇게 러닝을 한 다음에 그 가방을 그대로 들고 관광을 한다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닌 짓이었다. 이건 순전히 내가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인데, 내가 갔던 러닝 스테이션이 용품 일체를 빌려주는 - 유료료, 그리고 비싸게 - 곳이긴 했지만 그냥 빌려쓰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최소한 러닝화를 신고 외출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여행이 끝난 다음에 하는 이야기지만 출국 전날 저녁 (러닝화가 아닌 그냥) 신발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바닥을 보았더니 구멍이 나있었다. 내가 도대체 얼마나 걸어 다닌걸까.
여기서 정신 나간 달리기 인간인 선배의 의견을 인용해보자 “러닝화가 내구도가 안 좋다는건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러닝화를 아무데서나 신고 다녀서 그래.” 그렇다고 한다. 나도 그 선배의 말에 감명을 받아서 러닝화는 가능한 달릴 때만 신기로 하였기 때문에 차마 러닝화를 신고 나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자 본질적인 부분을 잘 생각해봐라. 관광객 주제에 도대체 왜 이런 것에 돈을 아끼려고 하는가. 시간과 체력과 캐리어의 공간이 훨씬 중요한 여행에서 돈을…왜 이런 것에 돈을…나는 한국의 쇼핑몰에서 일본의 120%정도 되는 가격으로 파는 물건을 굳이 아끼겠다고 돈키호테에서 2시간 들여서 보따리처럼 사는 사람도 이해하지 못한다.(이에 대해서는 이번 여행기의 뒤에 더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나의 두번째 착각은 내 체력이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람이 러닝을 5킬로미터 쯤 하면 쉬어줘야한다. 10킬로미터 쯤 뛰면 농담이 아니고 체중자체가 줄어들 정도로 러닝은 쉽지 않다. 나는 야간 비행기로 도착 후 다음 날인 이날 대충 이런걸 했다.

<황궁런(5킬로미터 러닝) - 유락쵸로 가서 애플워치 구매 - 우에노로 가서 모네 전 등 서양미술관 관람 - 과학박물관 어쩌고에 가서 조류 전시를 봄 - 아메요코 시장에 가서 옷을 구경함 - 친구가 부탁한 커피 콩을 삼(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진짜 내가…아우…) - 선배가 면세셔틀 해주면 밥사준다고 해서 긴자로 가서 카페에 앉아 힘들어서 울기 시작함 - 선배가 위치 잘못 알려줘서 30분 넘게 돌아다님 - 하브스 케익 얻어먹음, 3시부터 배고프다고 했더니 케익 사주냐고 그러니까 파스타도 사줌 - 선배랑 돈키호테에서 2시간을 같이 있음(선배한테 꼭 복수해야지 하고 다짐함…이 사람이 그렇다고 많이 아꼈는가? 한 6만원 아끼긴 했음) - 호텔에 도착하니 11시 직전>

그렇다. 러닝을 여행의 아이템으로 삼았으면 철저히 러닝을 하려고 했어야 하는 것이다. 나처럼 이도 저도 아니게 계획을 짰다가는 배가 고프고 슬프고 등이 아프고(안 그래도 등 건강에 문제가 있는데 러닝도구를 전부 지고 다녔고. 이날 나의 걸음 수는 34천보에 달했다…) 하여간 삶이 고달파진다. 여러분. 달리기 동지 어려분 그리고 달리기를 안해도 하여간 동지 여러분. 이도 저도 아니게 계획을 짜지 맙시다. 그리고 이상한 것에 돈을 아끼지 맙시다.

옷을 갖춰입고 러닝화를 신은 채 바닥을 밟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한국과는 다르게 도쿄는 그렇게 춥지 않았다. 거꾸로 좋은 기록이 나올 것 같은 기온이다. 다른 일본의 러너들처럼 반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오전 일찍 나와 황궁을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아무 옷이나 대충 들쳐입고 달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내가 따라 가야 하는 것은 학생들이었다. 차도가 가까운데도 공기는 더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시작점으로 삼는 북쪽 끝이 아니라 동쪽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잘 정비된 도로를 밟으며 나아가니 금세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일본인 러너들이 달리고 있었다. 혹시 너희는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성을 아니? 일곱번을 돌고 큰 소리를 지르면 성이 무너진다고 하는데 너희들 …숫자를 세면서 달리고 있는거 맞니? 일곱번 넘은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그 사람들에게 합류했다. 누군가는 빠르고 누군가는 느리다. 단지 정해져 있는 방향 - 시계 반대방향 - 으로 달리는 것은 똑같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기분으로 살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궁런에 대해서는 할 말은 별로 없다. 나는 얼마 전에야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재활 러너이고. 러닝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쓸 글들이 많을테니까. 아니 조금만 써볼까.

러닝은, 결국 어느 곳에서 달리든 간에 러닝이다.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 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는 황궁런이 너무 즐거웠다. 적당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잘 정비되어 있는 길을 달리며 지나가는 경찰들에게 모두 오하이요고자이마스 라고 인사를 했는데 한 열 번은 인사를 한 것 같다. 나는 짧게 두번 들이마시고 두번 내쉬는 리듬을 반복하면서 땅이 계속 거기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사진은 없다. 달리는 도중 사진을 찍을 정도로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달리는 것에 집중하는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워서 달리는 내내 웃었다.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 - 나는 동네방네 유명한 길치이다 - 스마트폰을 들고 뛸 생각이었는데. 갈림길이 나올 때 마다 내 뒤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선배 러너가 나타나 나를 추월하며 길을 알려주었다. 다들 겨울인데도 손바닥만한 팬츠만 입고 독기 넘치게 달리더라. 저것이 선배러너라는 것이구나. 나는 선배님들의 앞서 가는 길을 따라가며 달렸다. 도쿄에서 사는 사람을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는데 딱 그 때 황궁을 달리면서 도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손바닥만한 팬츠를 입고 달리는 러닝 선배들 때문에 그런건 아니었다. 솔직히 좀 꼴보기 싫었다.)

성의 해자에 배를 탄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그 위로 물새가 떼를 지어 날아갔다. 은행 나무 아래 잘 치워둔 은행잎을 잘못 밟아 잎들이 튀어올랐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을 쳐다보며 저건 누구의 설계일까 궁금해했다. 한 바퀴를 돌고 5킬로미터를 넘자. 나는 조금 더 달리고 싶은 기분과 싸웠다. 한 바퀴만, 딱 한 바퀴만 더 돌면 어떨까. 내가 요즘에 하는 농담이 있다. 자네는 마지막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해본 적이 언제인가. 네 오늘 아침에 러닝을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심장이 엄청 뛰더라고요.

글이 너무 길어진다. 다른 날의 러닝에 대해서는 다시 쓰도록 하겠다.

24년 12월의 글이다.


도쿄에 굳이 여행을 갈 필요가 있을까. 출장을 도대체 몇 번을 왔을까. 어림잡아 50번은 넘는다. 예전 여권을 찾아보면 확실히 몇 번 인 지 알 수 있을텐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 출장을 가는 날엔 대체로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다 공항 리무진을 타기 때문에 버스에 타기 전부터 늘어져있다. 짧은 비행인데도 물걸레처럼 피곤해져서 심야의 하네다 공항에 내리면 며칠을 체류하든 기내 사이즈 캐리어에 정확히 맞춘 짐을 끌고는 전철을 타고 시나가와 역에서 내린다. 또 여기구나 하고 다카나와 출구의 엉망인 보도블럭 위에 질질 끌리는 캐리어 소리를 들으며 사쿠라자카를 올라 다카나와 호텔에 들어간다. 오래되고 조용한 호텔이라 직원들도 말이 없다. 데스크 앞에서는 체크인하겠습니다. 라고 짧게 한 마디를 할 뿐이다. 또 오셨군요 라든가 오랜만입니다. 같은 말은 없다.

내가 한창 다닐 때는 15만원 정도면 일박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충동적으로 호텔을 잡으며 보니 조식도 포함하지 않았는데 일박에 25만원이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럼 숙박 예산이 안되잖아 넌 일본 출장 갈 때 뭐 도요코 인 같은데 묵니?하고 묻자 아직도 일본 출장을 가야하는 후배가 표정을 구긴다. 그렇죠 뭐. 시나프리 타워(시나가와 프린스 호텔의 4개 중에서 가장 가격이 싸고, 좁다) 정도는 되긴 해요 엄청 좁아서 그렇지(그렇다 좁다). 전에 일본인 동료 하나가 구겨진 채로 밤을 새며 일만하다 호텔에서 나온 나를 보며 제가 고향에 있을 때 꿈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건 도쿄에 출장을 와서 프린스 호텔에서 묵는거였습니다. 시나프리 호텔 방은 니네 집보다 좁을걸? 하, 저희 집보다 좁은 호텔은 없어요. 후에 그가 자기 집을 찍은 방을 보여주었는데 실제로 호텔보다 좁았다.

맙소사. 도쿄를 여행으로 가다니. 잘 기억나지 않는 기억들을 잘 떠올려보니 서너번 도쿄를 여행으로 온 적이 있긴 하다. 한 번은 좀 긴 여행기를 쓴 적도 있다. 그 때는 그 당시의 여자친구와 사귀기 전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였기에. 나는 여행기란 형태로 아주 긴 러브레터를 쓴 것이었다. 어쩜 그럴 수 있냐고? 아니 알게 뭔가 여긴 내 블로그고 내가 맘대로 아무 거나 적는 곳이다. 단지 이 블로그를 읽어주는 독자 여러분에게, 그리고 그 여행기를 읽은 그 당시의 여자친구 후보(대학교 후배였다)에게 아무 설명도 안 했을 뿐이다. 하지만 혹시 그 여행기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그걸 러브레터가 아니면 뭐라고 한단 말인가.

도쿄에 가긴 해야겠군 하는 생각을 한 건. 4월 쯤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여자친구가 있었고(맙소사) 나는 여자친구와 하고 싶은 액티비티를 모아서 리스트해두는 취미가 있었기 때문에 가을부터 우에노의 서양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모네전에 여자친구를 데려가고 싶었다. 수련 시리즈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얘기 할 필요도 없겠지. 수련을 보여줬을 때 여자친구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나는 처음 수련 시리즈 중 하나를 보았을 때 안절부절 못하며 전시실을 나갔다 들어오길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십 년은 지난 일인데도 나는 아직도 그 때의 감정에 대해서 정의내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녀의 언어로 수련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나는 그 마음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애정 중의 하나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는데. 늦가을 쯤 여전히 여자친구는 없고. 매달 카드값을 400 쯤 쓰고 있다가 모 항공사의 마일리지가 올해 만료 된다는 것을 깨닫고 별 고민 없이 겨울의 도쿄 비행기를 예매했다. 별로 좋지 않은 시기에 비행기를 예매했다는 것은 명백하였다. 마음에 드는 전시들은 다 끝나거나 신년을 기다리는 중이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도쿄에 갈 때면 항상 휴관을 하는 네즈미술관은 이 여행시기에도 휴관이었다. 그래 도쿄에 가도 할 게 없다. 애초에 나는 홍콩이나 교토에 가지고 있는 애틋한 감정이 도쿄에 없다. 그냥 한국에서 가까운 메갈로폴리스 중 한 곳일 뿐이다. 일로나 가던 곳인데 거기를 여행으로 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이왕 이렇게 된거 아메카지를 좀 해볼까 싶었다.

아메카지가 뭐냐면. 아 왠지 이 설명을 하는 것 부터가 좀 수치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아메리칸 캐쥬얼을 일본인들이 대충 섞어버린 조어로. 실용성을 강조한 미국의 캐쥬얼, 가령 워크 자켓이나 리바이스 진즈 같은 것들을 일본인들이 재해석한 패션을 의미한다. (내 설명이 어딘가는 틀렸을게 뻔하니 제발 다른 곳에서 정확한 정의를 알아봐주기 바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스타일에 꽤 열심이라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한물 간 20년대나 30년대의 청바지들도 일본의 로컬 업체들이 제조설비들을 일본에 수입해와 그 스타일들을 복각해서 판매하고 있어서 이름이 아메리칸 캐쥬얼이지, 실제로는 일본의 스타일이다. 미국의 위세와 문화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던 시절 세계인들이 접한 최초의 미국 문화, 미국 스타일에 대한 동경이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는데.

내가 아메카지에 마음이 들었던 점은 옷이 튼튼하고 엄청나게 실용적이어서 어릴 때 부터 옷의 방어력을 중시한(나의 실친들은 알고 있다. 왜 이런 옷을 샀어 라고 물어보면 주머니가 많아 라든가 튼튼해서 방어력이 좋아 같은 소리를 정말로 한다.) 나에겐 너무나 만족스러운 패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트렌드는 트렌드라 언젠가는 유행의 저 멀리로 사라지겠지만. 뭐 어떤가 튼튼하고 좋은 옷은 10년도 20년도 입는다. 한 번 사서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 까지 입는다고 생각하면, 어 아니다 내가 할머니가 될 일은 없지 하여간 요지는 중년의 남자가 트렌드에 좀 벗어나는 옷을 입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일은 없으니. 최근 한국에 아메카지가 각광받고 있는 지금 뻔뻔스럽게 그 트렌드에 올라타서 장비를 갖추겠다 이거다.

회사의 가장 친한 동료 중 하나인 부장님께 도쿄에 좀 다녀오려고요 라고 하자. 부장님은 자연스럽게 도쿄 가서 뭐하려고라고 물어보셨는데. 나는 그만 경솔하게도 아메카지를 좀 하려고요. 라고 대답했다. 내 잊지 않으리다. 내가 가장 친한 사람들 몇 명에게 도쿄 여행의 목적을 아메카지를 하는 것으로 말했더니 가장 심하게 비웃은 사람들이 아래의 사람들이다.

회사 선배이자 친한 선배 ㅅ부장님.
대학교 신입생때부터 내가 꾸준히 귀여워한, 현재 패션 유통사에서 일하는 후배ㅎ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아는 동생ㅇ

셋이 얼마나 비웃었는지 여러분은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ㅇ는 안부 전화를 하다가 말이 나왔는데 내가 평소에도 워크자켓 사고 싶당. 어쩌고 했기 때문에 그 날도 자연스럽게 아메카지를 좀 하려고 했더니 며칠 간 우울했다는 것은 거짓말인 듯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내가 최대한의 침착함을 모아서 조용히해 개자식아 라고 말했는데도 아니 오빠 돌았냐구 껄껄껄 하며 한 5분은 웃은 것 같았다.

그리고 후배ㅎ는 밥을 먹다가 아메카지를 하려고 라고 하자. 말 없이 크로와상을 뒤적거렸다. 오빠가요? 라고 했던가 니가요?라고 했던가. 충격 때문에 잘 기억이 안난다. 나는 뭐라고 했더라. 왜 나는 안되니? 아뇨 그런건 아니고요. 그리고 크로와상을 계속 뒤적거렸다. 모모타로 진 같은거 있잖아 아 오카야마에 대한 애향심이 솟아나는 바지죠 이러면서 후배는 딴청을 부렸다.

ㅅ부장이 제일 통렬하게 비웃었는데. 부자이자 왜인지 모르게 힙스터 스타일로 옷을 입고 다니는 나의 후배 J얘기를 꺼내며. 카레야 너 아메카지 하면 J된다. 라고 해서 나는 어리둥절해서는 부장님 제가 부장님한테 무슨 실수 했어요? 왜 그런 막말을 하세요? (오해 말기 바란다 나는 후배J과 정말 친하다) 라고 했는데. 부장님은 하여간 그건 진짜 아냐 카레야 도대체 왜 이래 이러고 성의를 담아 조롱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아메카지라는 말을 입에 담은 것 만으로도 이렇게 가장 친한 사람들 중 일부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내가 무슨 일장기를 온 몸에 두르고 다닌다고 한 것도 아니고 젖꼭지를 드러내고 살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나를 비난하고 조롱했으며. 한국의 중년 남성인만큼 멘탈이 더럽게 약한 나는 엉엉 울며 일본 아메카지 브랜드들의 유튜브를 밤에 정독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내가 여행기를 작성하는 이유는 보통 더럽게 한가해서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기는 나의 복수를 담은 슬픔으로 가득찬 이야기이다. 나는 이 글을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작성하고 있다. 기대하기 바란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다고 하였으나 나는 빠르고 뜨거운 인스턴트 복수를 원한다.

이것은 아메카지를 둘러싼 모험이다.

이 것도 여행기이기 때문에 일단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써야할텐데. 출발시점에서 나는 윤마치의 앨범 두 개 만을 다운 받았다. 이대로 가다간 12월의 윤마치 0.1% 배지는 내가 딸 것이 틀림없다.

윤마치 - <새벽에게>
윤마치 - Oh, Life 앨범 중 <항복>, <Lovers>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이자.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얼굴이 말도 안되게 매력적인 이 아티스트는 23년에 발매된 이 두 앨범에서 묘한 시도를 하는데. 이전까지 OST 혹은 아이돌 앨범 B사이드 수록곡처럼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듣기 편안한 음악을 만들더니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통해 어떤 장면 - 심상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겠다 -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재주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를 위해 한국어로는 정확하게 맥락이 이어지지 않게 느껴지는 보컬을 선보이는데. 이는 개별 언어에서 단어 의미보다 언어의 음악성이 보여주는 흐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게 아닐까 싶다.

이 여행기를 읽는 동안, 내가 주로 저 음악들을 들으면서 다녔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것은 24년 12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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