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문장들은 내가 아이패드에 남겨둔 짧은 메모들이다. 어떤 편지의 일부이며 단상이고 쓰다 만 소설의 일부이다. (내 글이야 뭐 그렇지)
아래 메모들에게는 각자 노래 이름으로 된 제목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제목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내가 정말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어느 날 밤, 평소처럼 퇴근이 늦은 날이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불을 끄고, 계단을 내려와 뒷 문의 현관 앞에 섰다. 코트를 챙겨 입고 헤드폰을 꼈다. 곧바로 문을 나서지 않고 유리문 밖을 바라보며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올 때 까지 기다렸다. 문장이 동작이 되고, 생각이 호흡이 되기라도 하듯이 나는 밤을 그대로 바라보다 밖으로 나섰다.

문 밖엔 직각의 건물들과 그 사이를 가로질러 전선이 늘어져 있었고, 아무도 칠할 수 없는 색들이 거기에 있었다. 사방을 보았다. 공업도시의 오피스 건물들이 하늘과 맞닿은 선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직선들이 추상을 향한 기도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벌리면 밤이 입안에 고여들까봐 입을 벌리지도 못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볼륨으로 음악을 들었다.

세상을 감각하는 것과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동작이다. 세계를 표현하는것과 표현된 세계를 감상하는 것이 전혀 다른 동작인 것 처럼 말이다.


(2)
나를 제외한 모든 세계에 한 명의 타인도 없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세계가 결국 불완전한 자신의 일그러질 상일 뿐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우리가 어떠한 것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고 애정 또한 고여있는 물처럼 어딘가에 쏟아져버리기만 할 뿐 이라면.

(3)
나는 항상 “달moon”이라는 단어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 지구의 단어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이러한 종류의 어떤 불안정한 애정은 어디로 가고 어떻게 남을까. 나는 새삼 두려워진다.


(4)
나는 아무래도 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라고 생각을 한 건 밥을 먹고 해변을 산책하다가 중간 쯤 와서야.
중간이라고 하는 이유는...원래는 훨씬 더 멀리 까지 다녀와서 저 멀리 보이는게 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중간 쯤 네 생각을 하게 되고 너를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서 돌아갔어. 돌아가는 중에 스피커로 트로트 들으면서 걸어가시는 분이랑 동선이 겹쳐서...몹시 후회가 되었지. 이럴 바엔 그냥 저 멀리 까지 갔다가 돌아갈걸 그랬지.

하지만 바다보다 저 멀리 보이는 흐릿한 풍경들 보다 밤새 고집부리며 뒤척거리다 잠이 든 널 보는게 중요하게 느껴져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리고 나는 이렇게 메모를 쓰고있지. 딱히 할 말이 있어서는 아니고. 지금 방으로 들어가면 나는 참지 못하고 너를 깨울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더 자게 해주고 싶거든.

어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 중간 중간에 나는 깜빡 졸았는데도 꿈에서조차 너랑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기분이 들어.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은 어쩌면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만둔다.

나는 수많은 실패를 했어.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실패-실수 들이었는데 결국 그 모든 실패-실수를 하는 동안 나는 죽도록 후회를 했고 똑같은 바보 짓은 하지 않을거라고 맹세를 했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또 이렇게 커다란 후회의 전조가 될 일을 하고 있구나.
이제까지 배웠던 것들은 다 무의미한 어디 망해버린 공화국의 짧은 역사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너와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마실거고) 같은 풍경을 보며 서로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네.

나는 또 그리고 계속해서 두려워져 그리고 널 보고 있으면 그 실수들이 다 아무래도 괜찮을 일들로 느껴져. 가끔 꺄르르 웃는 네 웃음이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들이나 놀란 눈을 하고 고장이 나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조금 화가 나기도 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문제를 점점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걸까. 우리는 좀 더 제대로 뭔가를 해결해야하는게 아닐까?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얘길 해야하지 않을까?


(5)
오늘 며칠이더라? 아니 확인 안해봐도 괜찮아. 그냥 어떤 말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말해본거야.
일단 잠시만 있자. 이제 곧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거야. 하나…둘 하고 셋. 봐봐 진짜로 나오지.

아주 오랫동안 너한테 편지를 쓰려고 했었어. 할 말이 있을 때면 편지를 쓰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나 스스로도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를 때는 편지를 쓰는게 정말로 어려워. 한 바닥이 넘는 편지를 쓰고도 결국 해야할 말을 찾지 못해서 찢어버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냐.

깔끔하게 인정하고 시작하자.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죽을 것처럼 보고 싶어. 하지만 그래서 편지를 쓰는 건 아냐. 아니 제기랄 그래서 편지를 쓰는 거기도 해. 이렇게 편지를 쓰면 네가 보고 싶은게 조금이라도 가실거니까. 나는 때때로 죽을 것처럼 보고 싶다는 말이 너무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해. 만약에 죽게 된다면 그건…정말로 끝이잖아. 다시는 볼 수 없는거잖아. 근데 죽을 것 처럼 보고 싶다는게 말이 돼? 그냥, 그 말을 처음에 한 사람은 아마도 누군가를 보지 못하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았을거라고 생각했을거야. 스스로도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쓴거지. 그대가 보고 싶소 죽을 것처럼 보고 싶소. 꼭 지금의 나처럼 말이지. 나는 모순된 말을 하고 있잖아 안 그래?

언젠가 내가 지하철의 통로를 쥐 한마리가 뛰어가는 걸 봤다는 얘길 했던가? 아마 안 한 것 같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니까. 그건 내가 스무살, 아니 스물한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야. 그 때 우리집 앞이 종점이었던 호선이 하나 있었는데. 그 나이 때의 나는 그 호선의 전철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내가 사는 곳에서 멈춰선다는게 참을 수 없게 좋았거든. 그래서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마지막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갈 때가 많았어.

전철이 천천히 느려지며 살짝 쉰 듯한 목소리의 기관사가 - 나는 기관사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 곧 종점에 도착한다고 말하면 한숨처럼 느려진 전철이 멈추고. 몇 되지 않는 승객들 - 대부분이 주정뱅이 - 이 느릿하게 전철에서 내려. 그러면 전철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려는 듯이 전철의 불이 한번. 그리고 두 번 꺼지고. 종점의 막차는 어떤 승객도 태우지 않고 저 멀리 터널로 사라져버리지. 보통 역장들은 - 역장들은 내 얼굴을 알았어 나는 보통 첫차를 타고 알바를 하러 가서 마지막 차를 타고 돌아왔거든 - 플랫폼에 있는 손님들을 다 데리고 나가서 어 그리고…모르겠다 어떻게 하지? 역의 불을 끄나? 사람들이 더 이상 플랫폼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철창으로 닫아버리는거야 많이 봤지만 역을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쥐를 본 날은 - 아니 정말 대단치 않은 이야기야 -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날이었어. 그냥 나는 그날도 밤이 늦도록 알바를 했고, 이제 막차를 타고 들어왔으니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다른 알바를 하러 갈 차례였지. 그런데 그날은 왠지 너무 많이 지쳐서 막차에서 내려서 그냥 플랫폼의 벤치에 앉아있었어. 그날따라 주정뱅이도 없어서 막차에서 내린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날이었어. 그리고 쥐 한 마리를 봤어. 막차가 사라진 열차선 어디선가에서 나타나서는 뭘 찾는 것처럼 두리번 거렸지. 나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어. 아니 분명히 마주친 것 같아. 찍찍하는 느낌으로 내 쪽을 쳐다보며 두 번 수염을 움찍 거렸으니까. 그리고는 적은 없어 라는 식의 표정을 짓고는 또 어딘가로 열심히 사라졌어.

나는 솔직히 이 이후에 지하철에서 쥐를 본 적이 없어. 아니 진짜로. 차라리 우리 동네의 풀 숲에서 보거나 번화가의 하수구 근처에서 본 적은 있는데. 지하철에서 쥐는 정말 없단 말야. 그래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거야 신기했거든. 어디론가 사라졌던 쥐는 금세 열차 선로 근처에서 나타났는데. 친구. 아니 친구일까? 하여간 다른 쥐 한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어. 그리고는 또 내 쪽을 보고 찍찍 하는 느낌으로 코를 찡긋 거리더니. 터널 저 편으로 뛰어갔어. 마지막 전철이 사라진 전차 정거장 쪽이 아니라 마지막 전 정거장이 있는 쪽으로 말이지. 친구도 그 쥐를 따라갔어. 꼭 이 방향에서 이제 더 이상 전철이 오지 않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두 마리의 쥐는 찍찍 거리면서 신나서 뛰어가버렸어. 나는 안중에도 없었지.

나는 느릿느릿 플랫폼을 기어나와서 역장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아저씨 여기 쥐가 있어요?라고 물어보니까 역장아저씨는 웃더니 네 쥐 있겠죠? 하고 말씀하셨어. 진짜 별거 아닌 이야기지.

우리가 그 두마리의 쥐처럼 용감했다면 좋았을텐데. 설령 죽음을 부르는 수십톤짜리 괴물이 그 어떤 재앙보다 빠르게 달려온다고 해도 어두운 통로를 함께 달려나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겁이 많은 나는 그러지 못했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너를 잃는게 두려웠어. 그 모든 감정들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모순일 뿐이었는데 말이야.


(6)
일주일만에 머리를 감았다. 새까맣게 더러운 냄새가 날텐데 다행히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침에 배달시킨 커피에 진통제를 한 알 먹는다.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은 지 일 년 쯤 되었고 노트에 적어 놓은 채 정리하지 않은 메모들이 피딱지 나는 상처처럼 뭉그러져 있다. 이제 글을 쓸 때가 된거다.

아파트의 난방을 끄고 써큘레이터를 꺼내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은 통로에 켜둔다. 창문을 열어 먼 곳을 쳐다보니 오래된 공원 저 건넛편에 나무들이 듬성하게 서서 잎을 늘려가고 있었다. 국도를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본다.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창을 좀 더 여니 소리는 더 이상 부드럽진 않고 더 크게 들려왔지만 창 앞의 울타리가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보다 너무 낮아 깜짝 놀라 창을 다시 닫았다. 여름이 오고 있었다. 나는 창 밖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이제 그만 끝 마치려 하지만 어떻게 글을 끝맺어야 하는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모든 글의 순서는 시간의 순서나, 사건의 원인과 결과와 상관없다.

나는 요즘 계속 같은 꿈을 꾼다. 거기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꿈은 몹시 꿈일 뿐이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상들은 나에게 의미가 많아서 잠에서 일어나면 나는 한참동안 꿨던 꿈을 곱씹고 어디에도 기록을 남기지 않고 고스란히 잊어버린다.

꿈은 그렇게 잊어버리지만. 어떤가 나는 당신이 이걸 모두 읽는다면 내가 어떤 노래를 들으며 이 글들을 썼는지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지금 듣고 있는 것은 다니엘 바렌보임의 BWV 846이다. 아무 의미도 없지만.

24년 9월의 글이다.





이 글은 2018-20년 사이에 쓴 글이다. 정확하게 언제 썼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여러군데에 글을 남겨두었는데, 이 것은 아이패드에 있었던 글이고 아이패드의 어플은 글의 최초작성을 알려주지 않는다. (갓뎀 애플아이엔씨)
이 글을 읽다보니 내가 아닌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썼던 글인 걸 깨달아. 미완성인 글을 조금 고쳐 블로그에 올린다.

아마 이 글을 받았어야 할 사람에게는 너무나 늦은 메세지 일 것이다.


3주 째 일요일 저녁에 카레를 만들고 있다. 커다랗게 자른 감자와 눅진눅진 할 정도로 진한 카레가 먹고 싶어서 계속 카레를 끓이고 있었는데 좀처럼 성공하지 못한 탓도 있다. 재료는 심플하게 감자와 양파, 그리고 때때로 아보카도나 토마토를 넣는다. 쇠고기가 있으면 쇠고기를 넣고 돼지고기가 있으면 돼지고기를 넣는다. 중요한 것은 결국 감자와 양파다.

골든카레 박스 뒷면을 보니 4피스 카레에 물은 1.2리터를 넣어야 한다. 처음엔 좀 진하지 않을까 싶어서 1.4리터를 넣었더니 카레가 무슨 국물처럼 되었다. 울면서 카레를 마시고 다음 주엔 물을 1.2리터를 넣었더니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토마토를 너무 많이 넣었고 감칠맛을 위해 넣은 아보카도가 덜 익었는지 쓴 맛이 났다. 월요일 저녁까지 차갑게 식은 카레를 먹으며 내가 뭘 잘못했지 하고 실패를 곱씹었다.

오늘은 일단 감자를 7개나 깎았다. 양파 커다란 걸 잘라 잘게 자른 후 캬라멜라이즈를 시도했다. 주간에 사둔 쇠고기를 잘게 잘라 갈변하기 시작한 양파와 섞고 볶은 후 커다랗게 자른 감자를 쏟아부었다. 냄비 밑 바닥이 타는 기분이 들어서 앗차 싶길래 물을 0.8리터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치킨 스톡이라도 넣을까 하는 유혹이 들었지만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보니 갈색에 아주 멋져 보이는 고깃국이 되었다. 역시나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형 카레를 넣고 15분 정도 끓이고 15분 정도 숨을 죽였더니 걸죽하고 감자가 커다란, 내가 처음부터 만들고 싶었던 카레가 되었다.

누군가 당신은 혼자 산 지 몇 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카레를 만드는 방법을 모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항상 카레 만드는 방법을 까먹어서 매번 카레를 만들 때 마다 그 방법을 발명해내야한다고 변명 할 생각이다.

그것은 100%의 사실이다. 애초에 나는 카레를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카레를 잘 먹는 사람이다. 어떤 종류의 카레든 상관없다.

몇 년 전인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처음으로 카레를 만들어 본 날, 그걸 먹어본 여자친구는 이거 되게 국 같아 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카레를 만들어 준 걸까. 생각해보니 다른 건 몰라도 예의범절은 올바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전에는 내가 만드는 카레가 못 먹을, 아니 나나 먹을 음식이란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스스로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때로 그걸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로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우주의 중심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나는 평범하리만큼 나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던 일들은 대체로 누군가에게는 몹시 이상하고 끔찍하게 들릴 수 있는 일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서는 정의롭고 똑똑한, 그리고 자기가 누군지를 알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온 우주는 그들을 돕고, 모든 노력은 보상 받으며. 마지막에는 행복과 화해가 약속되어 있지만 자아를 깨달을때 쯤 우리는 우주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길거리에 마주치는 아무개 하나조차도 그 사람의 우주에서는 주인공이며 그에게는 또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우주가 있다.

당신은 그걸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주는 나에게 친절하며 나는 인복이 있는 사람이고 모든 일들은 다 나의 뜻대로 이루어질거야 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 나름의 우주도 꽤 아름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은가. 나에게 적당히 무관심한 우주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우주의 진짜 얼굴을 바라보는 것.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원래 우주는 카레를 제대로 한 번 만들기 위해서도 3주가 넘게 걸리는 그런 귀찮은 곳이다.
나는 별명이 고등학교때부터 카레인 사람이고.진짜 카레 가루를 쓴 것도 아니고 마트에서 편하게 산 고형카레와 정육을 쓴 건데도 말이다.

들어주기 바란다.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
길고 긴 카레 만들기의 이야기를 한 것은 내가 이런걸 썼을 때 여기까지 읽어줄 사람은 당신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아픔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잘 모른다. 당신의 말을 더 귀기울여 들었다면 좋았을텐데 형편없는 인간인 나는 당신의 도와달라는 말을 쉽게 흘려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바빴다.

우리 모두의 인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해야할 말을 올바른 시기에 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좀 더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창 밖에서 보이는 탁한 색의 햇볕도, 어느날 문득 발 밑을 보았을 때 줄을 지어 걸어가는 개미들의 앞길을 피해주는 것도, 목이 마른날 마셨던 미지근한 물도. 우리가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인사들도 모두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 썼던 글 중에 <현대인의 신념구조>와 <사악한 자들의 기도>는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결국이라고 말하니 좀 우습다. 어떻게 완성해야할지도 알고있었고 얼개도 짜서 기록해두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완성하지 못했을 뿐이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사람들에게 준 고통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이것저것 메모를 해둔 페이지를 넘겨보며 그래도 작년엔 쓰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는 쓰고 싶은 것 마저 없었다.

중력의 연구(1)이라고 써둔 메모에는 내 손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을 향해 낙하한다”
메모를 뒤집어 보아도 중력의 연구(2)는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다. 나는 조금 참담한 기분이 되어 볼펜을 찾아 “중력의 연구(2)”라고 적는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한 후 그 뒤를 이어서 적는다.

중력의 연구(2) “그들은 끌어당기는 힘을 발견했을 뿐, 밀어내는 힘은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라고 쓴다.

언젠가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단지 모든 방향으로 낙하하고 있을 뿐이다.

24년 9월에 올린 미완성의 글이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미망이다. 라고 하셨다. 나는 스승 앞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며 가만히 스승의 게송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장작에 불이 붙어 타오른다고 하여, 장작을 원망할 것인가 불을 원망할 것인가. 100년을 살지 못함을 분히 여길 것이라면 태어남을 분히 여기기도 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너는 파도에 쓸려 나가면서도 바다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히 여길 것인가. 겉 그림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를 내가 아까는 앉고 방금은 누웠으니 다음은 앉고 그 뒤엔 눕겠구나 하였다. 그러자 속 그림자가 말하기를 내가 아까는 앉고 방금은 누웠으니 다음은 서도록 해야겠다. 그렇다면 너에게 묻겠다 너는 일어서겠느냐 앉겠느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식은 찻잔에 찻물을 더 했다. 물이 섞여 찻잎이 빙그르르 돌았다. 스승과 나는 찻잎이 도는 것을 보았다. 까마귀 우는 소리가 멀리에서 들렸다 오전의 까마귀는 길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스승은 더 이상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스승이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몇년에 걸친 가뭄을 겨우 나고 살림이 힘들어진 암자에 살던 승려 하나가 어찌어찌 풀칠이라도 하려 나무열매라도 남은 것이 없을까 산등성이를 헤매고 있었다. 한 때는 열 댓 명은 머물던 규모가 작지 않았던 암자는 어느새 동문인 두 승려 밖에 남지 않았고 서로 도와가며 공부를 하고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었지만 그 해의 가뭄은 혹독하여 그것도 올해가 끝으로 보였다. 둘 중에 넉살이 더 좋은 동문은 저잣거리로 탁발을 나섰고 융통성이 없는 승려는 산을 뒤지고 다녔다.

가뭄은 사람이 사는 곳에도 가혹하였지만 산에도 가혹하였다. 연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겨우겨우 떨어진 도토리를 모았으나 수확이 좋진 않았다. 태반이 썪었고 알이 작은 것들만 겨우 모아 그릇에 두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평소에는 갈일이 없던 산 속 까지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볼이 홀쭉한 승려는 너무 멀리까지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길거리로 탁발을 나간 동문에게 아무 것도 내어오지 못할 것이 더 두려웠다. 승려는 더…더 깊은 산 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승려 자신은 모르고 있었으나, 그는 이미 짐승들의 영역에 들어서 있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호랑이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검은 짐승 하나가 풀 섶에서 몸을 일으키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승려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몇 줌의 도토리가 모여있는 나무 그릇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짐승은 파란 안광으로 승려를, 그리고 그가 쥐고 있는 나무그릇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윽고 들짐승 특유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승려는 오금이 저려와 주저 앉고 말았다. 나는 죽는구나 이렇게 잡아먹히는구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연실 외우며 양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짐승은 승려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다만 그를 그대로 둔 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수풀을 지나 저 편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뒤를 돌아 승려를 돌아보더니 아주 낮은, 사람이 중얼거리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고는 사라져버렸다. 승려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어째서 이 혹독한 가뭄에 호랑이인지 늑대인지 모를 짐승이 자기를 잡아먹지 않고 살려두었는지 알수가 없어서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겨우겨우 끌고 숫제 기어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암자까지 겨우 도망쳐온 승려는, 그제서야 겨우겨우 모은 도토리와 나무그릇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굶주림은 호랑이보다 무서웠다. 차마 동문이 탁발해온 낱알을 염치없이 얻어먹을 수가 없어서 승려는 다음날 그 알량한 도토리라도 되찾으려 호랑이를 만난 곳으로 돌아갔다. 산 속으로 산 속으로.
그러나 분명 호랑이를 만났던 그 자리로 가도 도토리는 커녕 나무그릇도 발견 할 수가 없었다. 승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사방을 뒤졌다. 호랑이가 어제도 나를 해치지 않았으니 오늘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믿으며 연신 불호를 외웠다. 그러다 짐승을 만났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석굴 하나를 발견하였다.

석굴은. 산등성이 수풀을 넘어 비탈길을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석벽에 있었다. 입구가 어른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작았으나. 기이하게도 누군가가 오래전에 서툰 솜씨로 만든듯한 석불하나가 -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작은 바위로 알 것 같은 모습으로 - 놓여있었다. 승려는 호기심이 들었다. 어째서 이런 산 속 깊은 곳에 수도승이 거처로 쓸 듯한 작은 암굴이 있을까. 이렇게 입구가 좁으니 어제의 커다란 호랑이가 쫓아오면 도망칠 곳으로 쓸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암굴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석굴 안은 아주 작은 방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역시나 누군가가 - 수도승일것이다 - 생활을 하였던 곳인지 오래된 세간이 놓여있었고 한 쪽엔 깎다가 말았는지 아니면 그걸로 끝이었는지 나무불상들이 여섯개 놓여있었고. 벽 한 쪽에는 돌로 된 앉은뱅이 탁상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그 위에는 승려가 어제 잃어버렸던 나무그릇이 놓여있었다. 쌀이 반쯤 차있는 채로.

승려는 짐승을 만났을 때 보다도 더 크게 놀랐다. 이 가뭄에 어디에서 쌀이 나서 여기 버려진 암굴에 쌀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분명 이 나무그릇은 내가 어제 잃어버린 것인데 누가 이걸 여기에 가져다 두었단 말인가. 승려는 쌀이 담긴 그릇을 덜덜 떨며 만졌다. 이 쌀이 있다면 탁발을 하러 간 동문도 나도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이 쌀이 누군가 - 이 암굴에서 살고 있는 - 의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고민은 길었지만 승려는 결국 나무그릇에 든 쌀을 들고 도망치듯 암자로 돌아갔다.

탁발을 끝내고 돌아온 승려의 동문은, 승려가 끓여내온 쌀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암자의 사정을 뻔히 아는 그로서는 이런 하얀 쌀이 나올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동문은 분명 이 쌀이 떳떳하지 못한 곳에서 나온 것이라고 직감하였으나. 밥에는 죄가 없었다. 두 승려는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너무 오랜만의 밥이었다.

배를 채운 동문은 승려에게 그제서야 슬쩍 물었다. 자네 이 쌀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승려는 처음에는 말해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재촉에 승려는 결국 산 속에서 호랑이 - 짐승 - 를 만난 것과 석굴을 하나 발견 한 것. 그리고 거기에 쌀이 있었다는 것을 실토하고 말았다. 한참을 말이 없던 동문은 승려를 탓할 수가 없어서 그런일이 있었나 그랬나. 하고 연신 소용도 없는 탄성을 질렀다.

다음날 동문은 승려를 재촉하여 쌀이 있었던 석굴로 같이 가보기로 하였다. 승려는 쌀을 훔쳤다는 죄책감에 가고 싶지 않았으나. 동문은 내심 거기에 쌀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두 승려는 산 속을 다시 들어가 비탈길 언저리에 숨겨진 석굴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두 승려는 돌 탁상 위에 또 쌀이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보게 자네 내가 뭐라고 했는가. 동문은 탄성을 질렀다. 쌀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승려는 당황하였다. 어제 분명 그릇에 있는 쌀을 다 털어서 가져오지 않았는가. 여기에 있는 쌀은 뭐란 말인가. 멍하니 있던 승려는 동문의 재촉에 정신을 차렸다. 둘은 구멍투성이의 가사를 소중히 오므려 쌀을 주워담았다. 쌀은 딱 두 사람이 하루를 먹을만한 양이었다.

그 쌀로 만든 밥을 먹던 동문은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라고 불리웠지 않은가. 이 쌀은 분명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우리를 위해 부처님이 내리신 쌀일 것이야. 그런가. 승려는 이틀 연속으로 벌어진 행운을 이해할수는 없었지만 부처님이 내리신 쌀이라고 하니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이 가뭄에도 불구하고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문은 탁발을 다니느라 자주 저자로 내려갔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오직 용맹하게 수행에 정진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내일도 석굴에 가보지 않겠는가? 동문이 권하는 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역시나 그 다음날에도 또 쌀이 있었다. 나무그릇을 챙겨온 두 승려는 하나에는 쌓여있는 쌀을 담았고 다른 하나는 쌀이 있던 돌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상하게도 또 쌀이 있을거란 확신히 있었던 것이다. 승려는 석굴 안 나무 불상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동문은 석굴 앞 석불을 깨끗하게 청소하였다. 둘은 절을 하고 또 절을 하였다. 이 후 둘은 매일매일 찾아왔지만. 쌀은 매일매일 쌓여있었다. 두 승려는 매일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탁발을 가는 일도 도토리를 줏으러 가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저자에는 결국 암자의 승려 둘이 굶어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매번 탁발을 돌며 이삭 부스러기를 받아가던 승려가 얼굴을 비추지 않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를 불쌍하게 생각한건지 아니면 주인이 없어진 암자를 차지하러 한 건지 떠돌이 승려 하나가 산 속의 암자를 찾아온다. 물론 두 동문 승려는 굶어죽지 않았다. 오히려 이 가뭄 중에 그렇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훤한 신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떠돌이 승려는 깜짝놀랐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저자에 소문이 좋지 아니하여 걱정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라고 말하자 어허 그렇습니다. 라고 두 승려는 미심쩍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두 승려는 아침에 받아온 두 사람 분의 쌀을 나눠 세 사람 분의 쌀죽을 만들어 떠돌이 승려와 나눠 먹었다. 양은 적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쌀이라 떠돌이 승려는 허겁지겁 자기 몫을 먹고 곧 암자를 떠났다. 두 분이 무사하다는 것을 전하겠습니다, 라며. 그리고 다음날 평소처럼 암굴로 가 쌀을 받아온 두 승려는 쌀이 두 사람 분보다 더 많은 세 사람 분의 쌀이 놓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으로 부처님의 은혜로다. 떠나기는 하였으나 어제 세 사람이 암자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 세 사람 분의 쌀을 주셨구나. 한 승려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승려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비쳤다.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어제 쌀죽을 나눠준 떠돌이 승려의 눈치가 보통이 아닌 걸로 보였소. 분명 우리가 굶어죽었으면 암자를 차지할 생각으로 온 듯 한데… 다른 승려는 의문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가 멀쩡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되는 것 아니겠소. 아니 멀쩡해도 너무 멀쩡한 것이 문제이죠. 심지어 쌀죽까지 나눠주었으니 무슨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겠소? 이번 한 번만 찾아오는 것이 아닐 것 같아서 불안하오. 두 승려는 생각했다. 이것이 부처님의 은혜라면 몇 명의 승려 정도야 더 먹이는 것이 일은 아니지만, 만약에 이것이 정해져 있는거라면? 우리도 쌀을 못 먹게 되는 것이 아닌가? 둘은 불안하게 서로를 쳐다본다.

그 뒤로 지난번의 떠돌이 승려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때때로 두명이, 때로는 세명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두 승려는 불안해져 쌀을 남겨보려고도 하였으나. 여러번 시도한 결과 암자에 쌀이 남아있으면 그만큼 다음날의 쌀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손님이 찾아왔을때에도 쌀을 전부 쓰지 않으면 암자의 두 승려도 굶게 된다. 차라리 다음날 그들이 돌아갔을 때 사람 수만큼 많아진 쌀을 써서 배불리 먹는 것이 낫겠다. 그런 마음으로 암자의 두 승려는 대접을 소홀히하지 않았다.

그러나 떠돌이 승려들은 어느날부터인가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머무르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댔지만 결국은 식사가 나오니 이 곳에 있겠다 이거였다. 겨울만 이곳에서 보내겠다는 자도 있었으나 자기 집처럼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대로 머무리는 자도 있었다. 그런 떠돌이들이 하나씩 늘어나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그 수가 도합 다섯. 두 승려는 그 숫자에 돌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까지 합치면 일곱 명의 승려가 석굴의 쌀로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석굴 안에 있는 나무 불상이 여섯 위, 돌 불상이 한 위 이 또한 일곱이라는 사실을 그 때 두 승련는 눈치 채지 못하였다.
두 사람이 받아오는 쌀도 자연스럽게 일곱사람 분으로 늘었지만 어딜 봐도 자연스럽지가 않다. 두 그릇은 될 듯한 쌀을 매일매일 어디선가 받아오니 누가 이걸 모르는척 하겠는가. 산속으로 사라지는 두 승려를 몰래 따라오려고 하는 승려까지 있었다. 비밀이 지켜지긴 어렵다. 두 승려는 그런 생각을 하였고 결국 결심했다.

두 승려는 다른 다섯 명의 승려를 암자의 가장 큰 방에 모았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하였다.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불도를 정진하기 위해 매일매일 관세음보살에서 온 힘을 다해 기도를 드리던 날 밤. 산신의 사자가 암자에 찾아온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호랑이는 사람처럼 말을 하며 두 승려에게 너희의 정성이 갸륵하여 이 가뭄을 이겨낼 방도를 하나 내었으니 나를 따라오라, 라고 하였고 두 승려는 휘엉청 밝은 달 아래 호랑이를 따라 걸었고. 신비한 석굴을 하나 발견하였다고. 이름하여 쌀이 나오는 굴이라 하여 미혈굴.

다섯명의 승려들은 얼이 빠진 표정을 하였다. 쌀이 나오는 굴이라니 그것이 말이 된단 말인가. 그러나 두 명의 승려는 자못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호랑이는 말하였다. 이 쌀은 부처님의 영험하신 은혜를 받아 산신의 허락으로 너에게 주는 것이니, 오직 불도에 그 뜻이 있고 용맹정진하기 위한 자들만을 위한 쌀이다. 삿된 자들에게는 단 한 톨의 쌀도 허락해서는 안되며 너희에게 암자에 있는 사람수만큼의 쌀을 줄터이니 너희는 그것을 먹고 불도에 정진하라. 다만 이 굴의 위치는 어떤 자에게도 비밀이며 의문을 표해서는 아니된다.

두 명의 승려는 그리고 이렇게 말을 끝마쳤다. 비밀을 지키지 않는 자나 미혈굴의 위치를 캐려고 하는 자는 내가 직접 와서 벌할 것이다. 짐짓 엄숙한 그 끝맺음을 듣고 다섯 명의 승려는 그것이 말이 되느냐 추궁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였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두 승려가 어딘가에서 쌀을 가지고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 모두는 그 둘이 가져오는 쌀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다섯 명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복된 일이요 복된 일이요.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영험으로 벌어진 일이니 우리는 더욱 감사히 여기고 불도를 정진하여야 하겠소. 그러자 다른 승려들이 모두 입을 모아서 동의를 표했다. 그 뒤로 다른 승려들은 모두 두 승려가 어디서 쌀을 가지고 오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일곱 명의 승려는 길고 긴 가뭄을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날 쌀의 양이 줄어들기 전까지는.

쌀이 조금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칠분의 일이 줄어들어. 평소의 칠분의 육이 되었다. 밥을 하고 난 뒤에는 똑같이 칠등분을 하였기 때문에 모두의 밥은 정확하게 칠분의 일이 줄어들어있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 변화에 대해서 의견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두 승려 중 하나는 그것이 다른 한 승려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였다. 뻔뻔하게 빌붙어있는 다섯 승려들을 내보내기 위해서 양을 줄인 것이 아닐까. 칠분의 일이 줄어든 정도로야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다섯 승려들은 빌붙어 사는 몸. 눈치를 채게 되면 불편해져서 암자를 나갈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좋은 수라고 생각하였다.

다섯 승려 중 누군가는 어떤 놈인지 모르겠으나 쌀을 훔쳤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암자에 있는 사람수와 쌀의 양을 고려하여 미혈굴에서 쌀이 나온다고 하나 만약 쌀을 훔쳐서 암자 밖에 숨겨둔다면? 일곱명이 아주 살짝만 굶주리겠지만 한 사람 분의 쌀은 확실히 확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쌀을 훔친 놈은 미혈굴의 위치를 아는 저 두 명의 중놈 중 하나의 짓이다.

일곱명의 승려는 모두 생각하였다. 지금은 일단 참는다. 아직까지는 무엇을 할만한 때가 아니다. 그리고 서로 밥의 양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쌀이 더욱 줄어드는데는 그닥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칠분의 일이 더 줄어들어. 원래의 칠분의 오가 되었다. 밥을 하게 되니 양이 궁색하여 일곱의 승려가 모여서 식사를 하는 시간은 짧아졌다. 애초에 대화를 나누고 뭐고 할 것도 아니었으나 최소한 안부나 감사 인사 정도는 있었으나 밥이 줄어드니 다들 입에 밥을 넣기에 바빠진 것이다.

두 승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요새 묘하게 쌀의 양이 줄어들었다고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것이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수행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되오. 우리가 더욱 열심히 정진하면 다시 예전처럼 쌀의 양이 늘어날 것이니 힘을 내십시다. 한 승려가 그의 말에 동의하며 오늘부터 관세음보살님께 맹렬히 기도를 드리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확신을 가졌다. 쌀을 빼돌리고 있는게 네놈이구나.
다른 승려는 또 생각하였다. 이런 식으로 쌀의 양을 줄이면 우리 다섯 중 하나라도 암자에서 도망치칠거라고 생각한게로구나. 참 아둔하고 어리석은 놈들이구나. 우리 다섯은 단 한 명도 여기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미혈굴의 위치를 알게 되기만 하면. 너희 두놈들은 우리에게 암자에서 내쫓지 말아달라고 빌어야 할 것이다.

칠분의 사. 그리고 칠분의 삼. 쌀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칠분의 이.
처음 두 승려가 가지고 왔었던 쌀과 완전히 같은 양이 되었다. 밥을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적은 양이라서 이제는 쌀죽을 쑤어서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이제는 식사 공양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너무나 적은 양이라서 소중히 먹느라 그런 것이다.

다섯 명의 승려 중 하나는 생각했다. 저 두 놈들이 정말 철면피 같구나 우리 다섯명 분의 쌀을 꼬박꼬박 가져와 암자 밖 어딘가에 숨겼겠지. 중놈 주제에 욕심이 많아서 저런 짓을 하는구나.
다섯 명의 승려 중 또 다른 하나는 생각했다. 처음엔 저 두 승려가 수상했으나 이제는 이상하다. 우리를 내쫓으려고 한다면 이렇게 몇주 동안이나 쌀죽을 먹으면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 다섯 중 하나가 미혈굴의 위치를 알아내어…다섯명 분의 쌀을 빼돌리고 두 사람 분의 쌀만 남긴 것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 다섯명이 포기하고 이 암자를 떠나면 저 두 승려를 제압하고 미혈굴의 쌀을 독차지할 생각이겠지. 그렇다면 나를 제외한…최소한 세명이 여기에 작당을 했다는 얘기이다.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두 명의 승려 중 하나는 식사 공양이 끝나고 몰래 다섯 명의 승려 중 몇 명이 눈 빛을 나누는 것을 보았다. 마음에 걸려서 그들의 뒤를 몰래 따라가보니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섯 승려를 볼 수 있었다. 옳커니 저 염치 없는 자들이 드디어 이 암자를 떠날 생각을 하는구나. 애초에 둘이 먹던 쌀을 일곱이 나눠먹으니 이렇게 배가 고픈거지. 어째서 쌀이 두 사람 분으로 줄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섯이 떠나면 둘이 먹기에는 충분하다. 이렇게 생각한 승려는 며칠이나 쌀죽만 먹어 배가 고픈 중에서도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날 밤. 인기척에 잠에서 깬 승려는 쉬잇…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뭔가가 휘둘러지는 소리와 머리에 뭔가가 와서 부딪히는 걸 느꼈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 승려는 동앗줄에 묶여있엇고. 다섯 승려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떤이는 몽둥이를, 어떤 이는 날붙이를 들었다. 다섯 승려는 먹지 못하여 바싹 말라 눈만 번뜩이고 있어 분위기가 흉흉하였다. 쉽게 일이 끝나지 않을 성 싶었다. 과연…그들이 며칠 전부터 몰래 나누던 이야기는 이것이었는가. 두 승려는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몹시 후회했다. 다섯 승려는 일단 그들을 묶었으나 무엇을 할지는 명확하게 정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승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 밤 중에 무슨 일을 하는 것이오. 뭔가 오해가 있는 듯 하니 동앗줄을 풀고 서로 대화로 풀어보지 않겠소? 다른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 같은 불제자가 아니오 몇 달 간 같은 암자에서 생활하였는데 대화로 풀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소? 그러나 다섯 승려는 그들을 풀어줄 생각은 없는 듯 하였다.

그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대화를 하더니 그 중 하나가 두 승려에게 물었다. 미혈굴, 그 위치가 어디오?

두 승려 중 하나가 나섰다. 지난번에 우리가 했던 말을 못 들었소. 미혈굴을 위치를 발설하면 산주인이 와서 필히 물어죽인다고 말하였소. 다섯 승려 중 하나가 피식 웃더니 몽둥이를 들어 바닥을 내리치고 말하였다. 헛소리는 그만하지 그 산주인은 불도를 정진하는 동도들끼리 쌀을 나눠먹으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너희 두 놈 중 하나가 농간을 부려서 쌀의 양을 줄여서 가져오지 않았는가? 그 말을 듣자 두 승려 중 하나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자신의 동문이 실제로 그렇게 해서 다섯 승려를 내쫓으려고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승려는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농간을 부리다니 오히려 농간을 부리는 것은 당신들 중 하나가 아니오. 우리가 항상 날이 밝은 다음 쌀을 가지러 간다는 것을 알고 앞 질러서 쌀을 훔치고 있는 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소. 우리 둘은 오직 동도들의 편의를 위하여 처음부터 숨김없이 쌀을 나눴는데 이제서 당신들을 내쫓으려고 쌀을 숨겼다니 그것이 말이 된다는 소리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뒤에 서서 듣고 있던 한 승려가 분을 못 이겨 뛰쳐나오더니 몽둥이를 휘둘렀다. 네 이놈 말이라고 잘하는구나 네놈들이 알량한 쌀을 나눠주면서 얼마나 우리를 내려다 봤는지 모를지 아느냐. 분통이 터져서 참을수가 없구나. 몽둥이를 휘두른 승려는 씩씩대며 분을 참을 수가 없는지 발을 구르고 성을 내다 문득 주변의 시선이 이상한 것을 느꼈다.

무슨일인가. 그가 휘두른 몽둥이에 묶여있던 승려 하나의 머리가 맞아 쓰러져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경악하는 승려도 있었고 얼굴이 파래진 승려도 있었다. 묶여있던 승려는 맞아서 쓰러진 승려의 곁으로 기어가 자네 괜찮은가 정신을 차리게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 덧없이도 쓰러진 승려는 눈이 반쯤 뒤집어져 살아날 방도는 없어 보였다…맞은 위치가 안 좋은 탓이었으리라.

다섯 승려 중 하나가 다시 나섰다. 쓰러진 자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너 까지 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범하고 침착하여 승려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는 묶여있던 승려를 억지로 일으켜 쓰러진 승려에게서 떨어트리고는 말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미혈굴로 안내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 네 명이 자네를 어떻게 할지 나도 말릴 수가 없다.

한 명의 묶인 승려와 다섯 명의 무기를 든 승려들은 산길을 걸어갔다. 아직 한 밤 중이라 걸음을 걷기에 불편하다. 몽둥이 하나에 묻은 피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한 명의 묶인 승려는 반쯤 실성하여 걸음은 걷지만 헛소리를 중얼 거린다. 늙은 수행승이 숨긴 쌀이 어떻고. 석굴 구멍이 어떻고 하는 헛소리이다.
다섯 명의 승려는 몹시 불편한 기분이 되었다.

그 중에 하나는 원래 암자에 살던 두 명의 승려가 그냥 불쌍한 멍청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쌀을 빼돌린건 누구인가. 그들 다섯 명 중 하나가 틀림없다.
그 중에 하나는 다른 생각을 한다. 아까 대범하게 나서서 큰 소리를 치던 놈이 쌀을 빼돌려서 숨기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 놈이 죽었으니 숨겨둔 쌀을 찾는 건 다 글른 일이 되었다. 산 어딘가에 숨겼겠지만 찾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승려는 피가 묻은 몽둥이를 보면서 묘하게 흥분하여 자신이 한 일을 떳떳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놈은 너무 건방졌어. 그리고 분명 저 놈도 건방지겠지. 아니 우리 다섯 명 중에서도 건방진 놈이 있지. 그건 바로 저놈이다. 하고 침착한 승려의 뒷통수를 노려본다.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저 놈에게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버르장머리를 가르칠 기회를 노릴때 풀 숲 저 멀리. 거대한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산주인이다. 침착한 승려가 중얼거리면서 허리에 찬 날 붙이를 꺼내서 양손에 꼭 쥐었다. 호랑이라면 순식간에 그들 말라깽이 중들 여섯 명 정도야 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호랑이라면 여섯이나 되는 숫자 그리고 쇠붙이까지 가지고 있는 무리를 습격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한 명 정도는 물려갈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내가 될 순 없지.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침착한 승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묶인 승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풀 숲으로 달려나갔다. 산주인님 산주인님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호랑이는 분명 아닌 어떤 짐승의 포효가 밤하늘로 울려퍼졌다.

도망가버린 묶인 승려를 쫓을 것인지. 아니면 풀 숲에서 달려나오는 저 검은 짐승을 대비할 것인지. 그 잠시의 망설임 사이. 다섯명의 승려가 발톱에 갈가리 찢기고 갈려 나갔다.

묶인 승려는 미혈굴에 도착하였다. 짐승은 여기까진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에 미쳐서 반쯤 실성한 마음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산길을 무리하여 걸었다. 발도 손도 피투성이이다. 얼굴도 피투성이이다. 누가 흘린 피인지는 모른다. 묶인 승려는 미혈굴로 기듯이 들어가 그리고…평소에 쌀이 놓여있던 돌걸상 앞으로 기듯이 가 벽에 입을 가까이 가져간다. 벽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이 있다.

미혈굴에 자주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모를 구멍이다. 묶인 승려는 미혈굴의 그 구멍에 입을 갖다대고 중얼거린다. 오늘은 오늘은 한 명이오. 나 한 명.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그러나 구멍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묶인 승려는 숫제 애걸 하면서 말한다 나 혼자란 말이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당신이 신불의 사도라면 충분히 나를 살리고도 남지 않소. 그러나 구멍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묶인 승려는 굴 안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어째서인지 길고 긴 꼬챙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언제부터 이런것이 있었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 생각은 지워졌다.
그는 꼬챙이를 들고는 자못 분개하여 말했다. 나를 살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 쪽에도 생각은 있다. 그리고는 꼬챙이를 들어서 벽의 구멍을 향해 힘껏 찔렀다.

다섯 명의 승려 중에 도망 친 것은 하나 뿐이었다. 손가락을 세개나 잃었다. 발톱에 당하여 어깨죽지에서는 피가 흘렸다. 하지만 짐승이 다른 승려들을 물어뜯느라 정신이 팔려있을때 그는 묶인 승려가 도망친 곳을 향해 달려갔다. 미혈굴 까지는 짐승이 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거 말고는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었다. 과연. 미혈굴은 가까이 가지 않으면 좀처럼 알 수 없는 석벽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상처입은 승려는 미혈굴로 걸어들어갔다. 미혈굴에는 묶인 승려가 있었다. 그는 꼬챙이를 들고 실성한 채로 주저앉아있었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경련하고 있는 것을 보니 제 정신을 다시 차릴 것 같지 않았다. 다친 승려는 미혈굴을 자세히 보았는데 한 쪽 구석에는 오래전 입적한 승려들의 사체처럼 보이는 것들이 여섯구 놓여있었다. 그리고 항상 쌀이 놓여있다는 돌로 된 걸상에는 쌀이 아니라 피가 흘려있었는데. 잘 보아하니 피는 묶인 승려가 흘린 것이 아니라 벽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 다친 승려는 직감하였다 미혈굴에서 쌀이 나오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멀리 짐승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와 승려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스승께서는 모든 이야기를 다 하시고는. 불편한 손이 아니라 온전한 손으로 찻잔을 잡아 찻물을 천천히 삼키셨다. 완전히 식어있는 찻물을 삼키는 소리는 컸다. 나도 스승도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승은 해가 지고 있는 산너머를 살피시고는 이윽고 너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나에게 물었다. 무엇을 여쭈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승은 나의 기색을 살피더니 다시 물었다. 너는 이야기에서 무엇을 얻었느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스승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24년 8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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