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임을 밝힌다. 아니 안 밝혀도 되는건가?

아이패드를 새로 샀다. 원래부터 생일선물로 아이패드 하나 사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어서 별로 고민 없이 샀다.
무슨 거짓말을 고하랴 나는 원래 뭘 살 때 딱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어 사야지 하고 사면 끝이다.
원래부터 그런 못된 습성을 가진건 아니고 믿어달라, 어릴 때 부터 나는 모든 걸 아껴쓰기로 유명한 아이였다.
어릴 때의 나와…지금의 나를 비교한다고 하면 비슷한 점이 훨씬 적은 것 같지만…하여튼

원래 여행기와 나의 근황을 부재증명이라는 이름으로 올리기 시작한 이 블로그가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거나 올리는 곳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원래의 역할을 잊어버리면 안되겠기에 이렇게 근황을 올린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솔직해지자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아이패드랑 매직키보드를 같이 샀는데 더럽게 더럽게 비싸면서 별로 제 역할은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일단 글을 써보면서 자신의 소비를 정당화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의 편집이 좀 이상하게 보인다면, 그건그냥  아이패드로 작성했기 때문이다.

요즘 티스토리에 글을 쓰면 적게는 30, 많게는 100이 넘는 방문객이 들어온다. 여러분이 이 티스토리에 무엇을 기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아무 글이나 쓰는 사람이고 아무 일이 없을 때 나의 텐션은 이 정도이다. 언제 어디서 물어봐도 귀신 이야기나 문학 이야기 두 세 개는 뽑아낼 수 있지만 (애초에 그런 인간이 아니면 블로그를 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나는 회사원이다. 우울하고 문학적인 마음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다.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효율적으로 일하고 빨리 집에 가서 누워있는 것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관심있는 것은 글을 쓰는 것 뿐이다. 하루 종일 유령같은 마음으로 지내다가 두부 세일하면 두부 4모 살까, 하고 고민 하는 정도가 전부이다.
어제는 2시간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수육을 샀다. 아무래도 고기가 먹고 싶어서이다. 무친 무말랭이랑 그런 것들이랑 먹다 보니 두 입을 먹고 나서 더 이상 먹고 싶어지지 않았지만 억지로 먹었다. 복통이 심해서 2시간 정도 모로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머릿 속으로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미술적 상징에 대해서 생각했다. 연기가 나는 거울이라고 불리운다니 얘네들의 제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거지?

그거 말고 뭐하고 지내냐면, 그래 아즈텍 신화의 신에 대해서 자기 전에 생각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을리가 없지.
극단적으로 편식을 하며 두부, 수박, 냉면만 먹고 있다. 회사에서 먹는 점심은 친구와 같이먹기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그럭저럭 먹지만 왠지 집에 혼자가 되면 다른 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얼마 전 역의 쇼핑몰에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에일리언의 신작을 보고나서가 아니고 그냥 냄새가 너무 역해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이게 바싹 마른 녀석들의 식욕인가? 하고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집에 돌아와서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두부를 먹었다. 진짜 아무 것도 안 먹으면 배가 고픈걸 보니 바싹 마른 녀석들처럼 되기엔 무리 같다. 얼마 전에 회사 동료에게 저 살 많이 빠졌죠? 라고 하니 얼굴만 빠진거 아냐? 라고 하길래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누가 봐도 저자식 왜 저렇게 말랐지 소리를 듣고 싶다.

SNS에서는 아무나 일단 팔로잉 하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내 이 증상들이 언제 나아질지 알수가 없어서 우선 내 머릿속에서 나 자신을 좀 뽑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나가서 누군가를 만날 생각을 하니 내 평소의 적당한 매너와 유머감각을 유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최근에 아는 동생과 몇명이 차례차례 우리 동네에 찾아와서 만난 적이 있다. 엉망인 얼굴을 하고 나온 나와 잘도 놀아준다 싶었다.
(사촌)형이 동네로 찾아올 정도였으니 다들 나를 걱정하고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냥 만화카페에 가고 싶은데 자기 동네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깨가 아직도 낫지 않아서 어떤 운동도 하기 적당하지 않지만 달리기가 하고 싶어졌다. 정말 이상하다 나는 혼자가 되면 달리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거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길 반복한다.
지웅이형과도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형에게 그래도 글을 쓰면 위로가 되더라고요 이상하죠? 라고 말하자 형은 아냐 맞어 그러니까 우리가 안되는거야 라고 대답했다.
형은 몰랐겠지만 나는 그 때 쇼핑몰 구석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형의 대답이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아니 형의 대답이 감동적인 것으로 하겠다.

항상 글을 쓰고 나서 생각한다. 조금 더 살아가야지.

24년 8월의 글이다.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한가지 이야기의 두가지 측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자춘전(杜子春傳)은 당나라 때 이복언(李復言)이 편찬한 <속현괴록(續玄怪錄)>의 명나라 시대 판본에 실려있다. 그 원본은 대당서역기에 실려있는 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자춘 전의 원본에 대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선 원본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북주, 수 연간의 사람인 두자춘은 본디 세가의 자식으로 부유하게 자랐지만 가문의 재산을 탕진하여 빈곤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는 어느날 정말 우연히 노인 하나를 마주쳤는데 노인은 자춘을 어떻게 여겼는지 갑자기 그를 도와주며 친척도 주지 않을 큰 돈을 무상으로 그에게 줍니다. 자춘은 그에게 크게 감사하며 앞으로 착실하게 살리라 다짐하였지만 그것은 몇년을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금세 재산을 탕진하였고 상심해있던 그에게 노인이 또 다시 나타나 아까보다 더 큰 재산을 내려주며 이 재산으로 잘 살아보라고 말합니다. 자춘 또한 더욱 기뻐하고 감사해하지만 첫번째보다 더 큰 재산도 몇년이 걸리지 않아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이제 정말로 끝이구나 하고 상심해있던 자춘의 앞에 노인은 다시 한 번 나타나 그에게 이번엔 더 큰 재산을 줄텐데 이 재산을 가지고도 탕진하면 너는 평생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이야.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두자춘전은 실수를 반복하는 주인공과 그를 도와주는 신비로운 인물이라는 몹시 매력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 두자춘이 어떤 실패를 하고 어떤 반성을 하게 될까 기대하게 되는 법인데...의외로 두자춘은 여기서 실패하지 않는다.
 
몇 번의 재산의 탕진 끝에 교훈을 얻은 자춘은, 이번에 얻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재산을 자선을 위해 사용한다. 전화에 상처입은 지방을 재건하고 사람들을 구한다. 몇년 후에 자선을 행하고 있는 자춘을 만난 노인은. 그의 삶에 기뻐하면서 이제 살만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자춘은 노인을 향해 감사하면서 이제 속세의 삶은 누릴대로 누렸기 때문에 노인과 같은 신선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과연 노인은 신선이 맞았고 자춘을 자신이 살고 있는 화산에 데려가 신비로운 선술-연단술-을 행하는데 자춘에게 신신당부 하기를. 절대 입을 열어 말하지 말라. 그렇다면 너는 어떠한 해도 입지 않고 끝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면 나는 선단을 얻으며 너는 나와 같은 신선이 되리라. 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자춘은...생각도 해본 적 없는 신비로운 환상을 보게됩니다...
 
그러니까 두자춘의 세번의 기회는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길고 긴 프롤로그다. 그리고 내가 이 시점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소설가 아쿠다카와 류노스케가 지은 두자춘 전이다.
1920년 아쿠다카와는 잡지 <붉은 새>에 두자춘전을 발표하는데. 동화를 염두에 둔 구성과 그 내용으로 원래의 두자춘전과는 완전히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어떤 이야기냐면 앞부분은 완전히 같다. 
 
두자춘은 명가의 자식이나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아 요행만을 노리는데 어느날 신비로운 노인을 만나서 그에게 세 번의 기회를 얻고. 그에게 감사해하지만 자신도 신선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를 제자로 삼기로 하고 아미산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아미산에 도착하자 노인은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서. 대신 내가 없는 동안 너는 온갖 유혹과 사술에 시달릴 수 있으니 내가 없는 동안 너는 어떠한 일이 닥쳐도 한 마디도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다짐을 받습니다.
 
노인을 기다리던 자춘이 본 것은 과연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그를 위협하더니 그 뒤에는 짐승들이 그를 위협합니다. 온갖 자연현상이 일어나더니 이제는 금빛 옷을 입은 장군이 그에게 너는 누구냐 왜 여기에 있느냐고 위협을 합니다. 그래도 말을 하지 않자 수천 수만의 군병들이 그를 위협합니다. 입을 벌리라! 말하라 네가 누군지! 왜 여기로 왔는지! 하지만 자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금빛 옷을 입은 장군은 자춘의 목을 한 칼에 날려버리고 맙니다.
 
자춘은 지옥에 끌려갑니다.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 자춘은 저승의 위엄을 손상시키는 자로서 엄한 벌을 받게 됩니다. 온갖 지옥을 돌아다니면서 고통을 받지만 자춘은 노인의 당부를 생각하며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기가 찬 염라대왕은, 한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려 축생도에 떨어져 있던 자춘의 죽은 부모를 데려옵니다. 자춘의 부모는 둘 다 말이 되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었고 자춘을 알아본 듯 합니다. 지옥의 졸개들은 오직 자춘이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 자춘의 부모를 가혹하게 고문하기 시작합니다. 자춘은 부모가 고통을 받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며 몇번이나 입을 열까 하다가도 노인의 말을 떠올리며 참습니다. 이윽고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우리는 괜찮다. 네가 행복한게 제일이니 네가 입을 열지 않아야 한다면 그대로 다물고 있거라. 라는 어머니의 말이 들렸습니다. 자춘은 참지 못하고 달려가 어머니를 껴안고 어머니라고 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춘이 깨어난 곳은 처음 노인을 만난 낙양이었습니다. 노인은 어떠냐 이래도 신선이 될 생각이 들더냐 라고 묻습니다. 자춘은 부정합니다. 노인은 오히려 웃으며 네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면 내가 그 자리에서 널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자 이제 신선도 부자도 되지 못한 너는 무엇이 될 것이냐 라고 묻고. 자춘은 사람답게 정직하게 살겠다고 대답합니다.
...
 
이것이 아쿠다카와 두자춘전. 그의 나이 28세에 지은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원전의 두자춘전은 어떻게 될까? 아쿠다카와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 두자춘이 선술에 걸려 환상을 보는 것은 완전히 같다...
 
입을 다물고 있는 자춘을 금빛 옷을 입은 신장은 위협을 가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신장은 어디선가 자춘의 아내를 잡아와 고문하기 시작합니다. 차마 여기에 쓰지 못할 만큼 고문은 가혹합니다. 아내는 자춘에게 빌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자춘은 처음과 같이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입니다. 아내는 자춘에게 원망의 말을 남기고 죽고. 신장은 지독한 놈이라고 혀를 차더니 자춘의 목을 한 칼에 날려버립니다.
자춘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곳에서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아 온갖 지옥을 도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도산, 화탕, 한빙, 검수, 발설...모든 지옥을 한 번씩 돌고도 자춘은 입을 다뭅니다. 그러나 염라대왕은 격노하여 이 자는 심기가 음한자이니 다음 생에서 여자로 태어나리라 하고 그를 인간계로 쫓아냅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산동성 선부현 왕근의 집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한대로 여자아이로 태어난 두자춘은 어릴때 부터 아무소리도,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통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았기에 벙어리 아이가 태어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벙어리인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미모를 가진 규수로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그녀이기에 구혼자가 끊이지 않았으나. 아버지 왕근은 그녀가 벙어리라는 이유로 아무 곳에도 시집보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노규라는 진사가 왕씨집 딸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끈질기게 구애를 하여 결국 혼담이 성사되었고. 왕씨집 딸이 벙어리임에도 불구하고 금슬이 매우 좋았습니다. 곧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도 말 한마디 없고 표정도 없는 왕씨에게 노규는 점점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두살이 되던 해 일이 터지고 맙니다. 너는 남편을 공경하지 않느냐, 너는 내 글 솜씨에 존경하는 마음이 들지 않느냐 하며 화를 내던 노규는...노규는 겨우 두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의 다리를 잡아 돌 위에 집어 던집니다. 원전은 아이의 머리가 깨지고 피가 다섯 걸음을 걸 정도로 흘러나왔다고 말합니다. 왕씨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릅니다.
 
왕씨, 아니 자춘이 깨어나보니 선술은 실패하였고 자춘의 눈 앞에 노인이 서있었습니다. 노인은 그가 칠정인 희노애구오욕(喜怒哀懼惡欲)을 모두 잊었으나. 마지막에 하나 사랑(愛)을 잊지 못하여 선단을 만드는 것도. 신선이 되는 것도 실패하였다며 그를 크게 탓하고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고 두자춘을 남긴 채 떠나갑니다.
 
어떤가? 두자춘전의 원전은 훨씬 잔혹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고 어느쪽 이야기가 더 아름답고 사리에 맞느냐고 묻는다면 열이면 아홉은 아쿠다카와의 두자춘전을 고를 것이다. 
그렇다면 아쿠다카와가 어째서 두자춘전을 이렇게 편집-아니 재창작이다-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텐데 대답은 싱겁다. 애초에 이 작품을 발표한 붉은 새 부터가 어린이를 위한 아동문예집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난세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잔혹한 이야기가 반 이상이다. 거기에 어떠한 신비로운 전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두려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오히려 전개와 결말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린이 잡지에는 실릴 수 없을텐데 도대체 왜 굳이 이야기를 선택해서 각색했는지가 의문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 추측 할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애초에 아쿠다카와의 작품 중에 특별히 뛰어난 작품도 인기 있는 작품도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도 아니다.
 
다만 왜 결말을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두자춘이 새 사람으로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추측 할 수 있는데 그건 아쿠다카와가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어머니의 발광으로 인해서 외삼촌의 집에서 양자로 키워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양부모를 진짜 부모로 여기고 살아갔다고 하지만. 그가 11살 때 죽은 친 어머니에게서 광기를 물려받은게 아닐까 스스로 평생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가 한살이 되기 전에 큰 누나의 때 어린 죽음으로 광기가 발현된 어머니...그런 그에게 어린 아들이 살해당해 비명을 지르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1920년 당시 젊은 나이(겨우 스물 여덟살이었다)인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던게 아닐까. 1919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된 그는 자신과 똑같은 젊은이인 두자춘이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결말에서 모종의 구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결말을 알고 있다. 아쿠다카와의 두자춘전은 자춘이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는 것에서 끝나지만. 1921년 아쿠다카와는 신경쇠약을 앓기 시작한다. 위궤양(위궤양은 그의 스승 나쓰메 소세키의 직접적인 사인이기도 했다). 불면증. 매형의 자살로 인한 빚. 그는 겨우 1927년에 자살한다. 두자춘이 새로운 삶을 다짐한지 7년 후의 일인 것이다.
 
나에게 두 개의 두자춘전 중 어느 쪽의 두자춘전이 인생의 진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고민을 하지 않고 원전의 두자춘전이라고 하겠다. 아쿠다카와의 두자춘전은 너무나 아름답니다. 결말은 완벽하고 전개는 매끄럽다. 그러나 원전은 그런 것이 하나도 없고 그냥 어느날 어떤 비렁뱅이의 악몽을 적어놓은 것처럼 두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몹시 진실되다. 그래서 나는 의문을 갖는다.

이것은 두자춘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왕근의 딸에 대한 이야기인가. 살던 곳도 태어난 곳도 몹시 불분명한 두자춘과 다르게 왕근의 딸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한 질량을 갖고 있다. 흡사 두자춘이 아니라 왕근의 딸이야 말로 진짜로 있었던 사람인 것 처럼 말이다. 나는 두자춘이 떠난 후 그 세계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가 떠난 후 왕근의 딸은 자식이 죽은 그 세계에 그대로 남아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꿈처럼 스러져 사라지는 걸까.
 
여기 내가 생각한 두자춘전을 하나 더 써서 남긴다. 모든 이야기는 원전과 같다. 단지 마지막 부분이 다르다.
 
술에 취한 노규는 왕씨부인의 아름다운 - 무표정한 - 얼굴을 보면서 소리를 지른다. 옛날 가대부의 아내는 남편을 천하게 여겨 웃지 않았으나 남편이 꿩을 맞추자 마음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나의 글솜씨와 인품은 꿩을 맞추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데 너는 왜 나를 보며 웃지 않는 것인가. 남편이 아내의 존경을 얻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내가 여자에게 바보취급을 받는다면 재산이 무엇이며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보라. 노규는 방 구석에서 불안하게 부모를 바라보고 있던 자신의 장자를 들어 왕씨 부인의 앞에 들이밀었다. 술에 취한 노규는 얼굴이 붉고 그 숨은 거칠다. 왕씨 부인은 아이를 보지도 노규를 보지도 않는다. 흰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눈은 슬프게 가라앉았다. 입이 떨리는 듯 하더니 곧 굳게 닫힌다. 보란 말이다. 노규는 왕씨 부인을 다그친다. 아이를 흔들며 소리 친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운다. 노규가 굳게 잡은 손이 고통스러운 듯이 아이가 몸을 비튼다.
 
노규는 방을 나선다. 문은 연 채로 그대로다. 방 밖에서 불안하게 기다리던 하녀 하나가 비명을 지른다. 마님, 도련님. 도련님이. 다른 하녀 하나가 뛰어와 방 안을 살펴보고 비명을 지른다. 의원을...의원을...하고 말을 더듬으며 기듯이 자리를 떠난다. 노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숫제 도망치는 듯 하다.
 
바닥에 엎드린 왕씨 부인은 아이를 안고 있다. 흰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검은 머리는 더욱 검어졌다. 커다랗고 촉촉한 눈은 더욱 커다랗고 촉촉해졌다. 입은 굳게 다물고 울음을 참는다. 어매, 어매요. 어매요...중얼거리는 소리가 난다. 왕씨 부인의 목소리는 아니다. 작고 붉어진 것이 어머니를 부른다. 왕씨 부인은 필사적으로 비명을 참는다. 다만 피가 흘러나오는 곳을 손으로 부여잡고 피를 막는다.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왕씨 부인은 괜찮아 엄마가 여기있어 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왕씨 부인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은 아주 어릴 적 병약하여 항상 아버지에게 안겨있던 그녀에게 아버지 왕근이 그녀를 달래며 해주었던 어떤 이야기이다. 이야기에서는 두자춘이라는 건달이 있었는데 그는 재산을 탕진하고도 기회를 얻어 신선이 될 수 있는 시험을 보게 된다. 거기서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으면 신선이 되게 해준다는 스승의 말을 신의를 다해 지켜 신선이 된다. 그리고 모든 자신의 잘못과 고통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왕씨 부인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을까 궁금해한다. 아이는 이제 말을 하지 않고 자꾸 축 늘어진다. 의원은 아직도 오지 않는다.
 
왕씨 부인은 아이를 꼭 껴안고 울음을 속으로 삼키다가 방 한 쪽 구석에 서있는 당신을 발견한다. 당신은 이곳에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다. 왕씨 부인은 당신이 신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신의를 지키는지 확인하기 위해 온 신선. 희노애구구욕의 칠정을 모두 잊은 자신에게 사랑마저 잊었는지 확인하러 온 신선. 그리고 이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갑게 식어가는 아이도. 혼자 몸으로 병약한 딸을 키우느라 모든 자산을 탕진한채 늙어버린 아버지도. 바닥에 가득 흘러가는 자신의 눈물과 아이의 피도. 그래서 정신이 나가버린 눈으로 당신을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지. 당신은 왕씨 부인에게 무슨 말을 할지.
 
24년 8월의 글이다…
 
 
.....왕씨 부인은 혼자 몸으로 아이를 키운다. 노규는 그 날로 나서서 큰 길로 도망치다 달리는 말에 치어 죽었다. 의원이 제 때에 당도한 덕에 아이는 순조롭게 회복한다. 말이 늦되는 것은 아닌지 걸음이 느린 것은 아닌지 사람들이 걱정하였지만 왕씨 부인은 서툰 발음으로 괜찮아요 그래도 고맙기만 해요. 라고 말한다. 아이는 이제 왕씨 부인을 보고 곧잘 웃는다. 왕씨 부인 또한 아이를 보며 웃는다.

아버지인 왕근은 가끔 왕씨 부인을 찾아온다. 아버지는 늙었지만 아직 정정하다. 가끔 왕씨 부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왕씨 부인은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아버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왕근은 알 수 있었다. 왕근은 마음 속 깊이 천지신명과 신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왕씨 부인이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신선이나 다름없는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그녀가 불행해지는 곳으로는 갈 수 없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기로 결심하였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겠다. 20세기의 이야기이다.
 
나라고 20세기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20세기의 후반에 태어났고 이제 21세기에 살았던 시간이 더 길어져서 20세기의 일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설령 아니 그렇다고 해도. 사람에겐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어느날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창문 밖의 눈오는 밤을 쳐다본 일. 우리 외엔 아무도 없는 호텔의 옥상에 앉아서 불꽃놀이를 봤던 일. 정글짐의 꼭대기에 앉아있다가 말을 걸었던 일.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더운 여름에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던 일. 아버지가 저 멀리 해변의 트라이포트를 향해서 저건 고래의 뼈야 라고 말해줬던 일 같은거 말이다. 사기꾼 자식 진짜.
 
20세기의 전경이라고 해도 지금과 크게 다를바는 없다. 나는 공업도시에서 자랐다. 어느 정도 공업도시였냐면 아파트를 벗어나면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사는 저층의 주거지들이 있었고 바로 공장단지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를 가려면 공장 단지를 가로질러야 했으니까 말은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아이들의 통학이 위험하고 어쩌고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학교를 다닐 시절엔 초등학생들의 값이 쌌다. 한 두명 정도 한꺼번에 등교에 늦어도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1학년 때 나는 반친구 두명과 놀다가 깜빡 늦어서 30분 정도 늦게 등교했는데 선생님은 우리가 오지 않은 것도 몰랐다)
오히려 내가 1학년일때 고가도로로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는데 서럽게 울고 있는 나를 공장 아저씨들이 번쩍 들어서 사무실에 데려가더니 약을 발라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제강제철을 위주로 하는 2차 가공 공장이었는데 그곳에서 가공된 철강제품을 인천의 수출단지로 보내는 그런 곳이었던 것 같다. 얼굴이 시꺼멓게 검댕이 묻어서는 옳지 옳지 하며 사내니까 울면 안돼 하며 나를 토닥이고 보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공장을 아주 좋아한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지금과 결정적으로 다른게 있다면,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초등학생들이 정말 값이 싸서 역곡시장에 가면 싱싱한 초등학생 한 명에 오천원 정도했으니까. 어딜 가나 친구들이 많아서 아파트 아무 곳에나 가도 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다치거나 구르거나 하는 것도 신경쓰지 않았는데. 나와 누나가 이유없이 꿀벌을 포충망 가득히 잡아서 가지고 다니다가 포충망이 찢어져서 내가 꿀벌에게 수십군데를 쏘였을 때도 (중간에 좀 다른 얘길 하자면 몇 년 후 소년이 꿀벌에 잔뜩 쏘여서 아나팔락시스 쇼크를 일으켜 죽는 영화가 나왔는데. 어린 나는 와 죽을뻔 한거구나 하고 소름끼쳐했다.) 내 친구가 통학길에 진도잡종인 커다란 개한테 청바지가 찢어지도록 물렸을 때도 어른들은 대단치않게 생각했다.

우리는 어땠는가. 어린애들도 보통 자기의 생명과 안전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한달에 두명 정도는 아파트 정글짐에서 뛰어내리다가 팔을 부러트렸으니까.
 
그렇다면 20세기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건 우리 부천시 소사구만의 가치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나는 가난과 불화의 상징 부천시에서 자랐다.) 100원짜리 동전이 초등학생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 무슨 동전 몇 닢에 목숨을 파는 용병 같은 소리인가 하드보일드 하구만. 하지만 정말이다. 20세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는 재화들은 대부분 100원 아니면 200원이었고. 500원짜리는 이미 고급의 영역이었다. 
 
여러분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간단히 말해주자면 거의 모든 아이스크림이 200원을 넘지 않았다. 500원을 넘어가는 것은...부의 상징 월드콘 정도였다. 엑셀렌트? 내가 너무 늙어보이지만 엑셀렌트는 내가 이미 좀 자아가 생긴 어린이였을 시절에 번개처럼 등장했다. 황금색 껍질을 가진 그런 비싼 물건은 어른들이 사주지 않으면 절대로 먹지 못하는 고급품 중의 고급품이었다.

우리 동네 태권도 사범님이 어느날 아주 침통한 표정을 하면서 얘들아 100원이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데 왜 뽑기(그 뭐냐 요즘엔 가챠라고 하지)를 하니? 그런 잡동사니를 사는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으렴. 이라고 설교를 하신 적이 있다. 이는 베트남 전에도 참전하신 진짜 20세기 인간 사범님과 우리 20세기 말의 어린이, 자본주의 악마 졸개들 사이의 차이였는데 우리는 먹을 것보다 재화(아무런 가치가 없더라도)와 도박(가챠는 도박이니까 말이지)에 혼이 나간 말세의 자식들이었다.
 
그런 말세의 자식을 가졌으면 응당 장난감을 좀 사줘야 했을텐데 부모님은 누나와 나에게 장난감을 그닥 사주지 않았다. 째째하다기 보다 아버지의 월급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쯤 아버지가 집에 가져다 주시는 돈이 80만원이라는 걸 알았는데 한국의 통계청 소비자 물가 지수 화폐가치 계산에 따르면 대략 1990년의 만원은 2020년의 이만육천원이다. 생각해보니 아니 집에 고작 200만원을 가져다 줬단 말인가? 확인해보니 1990년 기준 중위 소득은 92만원인데 명문대를 나와서 당시 모 기업의 이사였던 주제에 겨우 80만원을 받았다는 얘긴데 정말 믿을 수 없어졌다. 생각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째째해서 나는 장난감이 거의 없었다.
 
대체로 가지고 노는 것은 사촌형의 장난감 중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것인데 나는 어른들이 꼴보기 싫어할만큼 내 장난감들 - 주로 레고였다 - 에 집착했는데. 가장 즐겨했던 것은 매일 5시쯤부터 공영방송에서 하는 만화를 보고는 그 만화의 내용을 내 장난감들로 재현하고 재창작하는 활동이었다.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때는 공영방송 외에는 제대로 된 채널이 없어서 하루 종일 만화만 틀어주는 채널 같은 건 없어서 아침에 만화를 보려면 잘 기다리다가 AFKN의 TV 방송을 봐야했다. 지금은 아날로그 TV송출을 완전히 중단한 것 같지만. 그 때는 세서미 스트리트나 각종 일본 애니의 영어 더빙 버젼을 오전에 해줬기 때문에 다음 방송이 뭘 할지도 모르면서 나는 멍하니 AFKN을 봤다. 만약에 마징가 같은 것의 더빙 방송이 나오면 대박이었다!
내가 세서미스트리트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면 외국인들은 가만 듣고 있다가 근데 너는 한국인이잖아?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나도 어릴 때 세서미 스트리트를 봤다고. 내 인생에서 가장 영어를 잘했던 건 4세에서 7세까지 였다고. 집에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지만 혼자 영어로 노래부르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녔으니까.
 
어느날 나는 환상특급 (이게 뭔지 궁금하다면 트와일라잇 존을 검색해보면 된다)을 보다가 "악당의 최후"라는 제목을 보고는 어머니에게 가서. 엄마 엄마 최후라는 게 무슨 뜻이야?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스튜어디스 출신이기 때문에 영어도 꽤 잘 했는데 하루 종일 영어를 물어보는 내게 좀 질려서는 뭘 물어보든지 좀 시큰둥하게 대답하던 시기였기에 그 때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건 죽었다는 뜻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는데 난 악당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죽기를 바라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결말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왈츠를 추듯이 등장인물들이 영원히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줬으면 한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그 최후라는 말의 무서움을 떠올리며 엉엉 울기 시작했는데. 나는 때때로 그렇게 아무도 모를 이유로 우는 경우가 많았어서 누구도 나를 달래주지 않았고. 나 또한 아무에게도 내 슬픔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공업도시라고 해도 주변은 전부 산이었다. 그야 여긴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릴때 바다 근처에서 자란 사람이 자기 어릴 때 얘길 해주면 홀린듯이 듣곤 했는데. 아파트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저수지와 논밭. 그리고 과수원이 있었다. 지금 그 곳은 멋진 이름의 수목원이 되었는데 예전 논밭과 과수원이 있던 시절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온실 같은게 생겼잖아요 라고 말하면 우리 때는 비닐 하우스가 있었다구 라며 엣헴거리고 싶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게 지겨워지면 나가서 놀았는데. 내가 좋아하는건 역시 모래 장난이었다. 얼마 전에 우리 아파트에서는 동네 놀이터의 바닥재를 교체한다면서 투표를 했는데 분명 우리 동에서는 압도적으로 모래를 밀었으나 결과는 합성수지로 결론이 났다. 모래 장난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다들 까먹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못 분해했지만. 생각해보면 모래 장난을 하고 온 아이가 얼마나 더럽고 집에 모래를 잔뜩 흘리는지 까먹은 것은 내 쪽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모래 장난을 할 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다름 아닌 비가 온 직후이다! 그 전 까지 함정이나 파고 탑이나 쌓아올리는게 전부였다면 비가 오면 그 꾸정물로 해자를 가득 채우고 강을 만들어 그 위에 다리를 세우는 것도 할 수 있었는데. 어릴때 부터 건축이라면 이상하게 환장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신나는 이벤트라서 비가 그치기만 하면 집을 뛰쳐나가서 거대한 마을을 축조했다. 크고 멋지게 만들면 만들수록 동네 어린이들이 몰려들어서 나의 거대 마을에 고사리손이라도 보태겠다는 뜻을 표하곤 했는데. 나는 관대한 건설자요 시장이었기 때문에 동전 하나 받지 않고 그들의 참여를 허락했다.
 
시간 제한은 항상 5시였다. 집에 가야할 시간이다. 만화가 할 시간이었기 때문에 집에 가서 손발을 씻고 혼나지 않으려면 세수도 해야했다. 만화를 보면서 모로 누워있으면 누나가 와서 나 이거봐야해 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만화를 틀었고 그것도 보면서 구석에서 누워있으면 어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불렀다.
 
나는 오늘 반찬이 뭔지 묻지 않는다. 아까부터 갈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24년 8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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