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홋카이도 여행기의 마지막이다. 이것은 일종의 유언이다.

나는 이제까지 내 안의 무언가를 버려서 삶의 의지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번엔 글을 쓰는 것을 그만 둘 생각이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우울할 때면 청소를 한다거나 인간관계를 정리한다거나 하는 것의 조금 다른 표현일 뿐이다.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무엇하나 제대로 버리지 못한다. 


이번에 정리하는 것은 내가 글을 쓰려는 의지이다. 언젠가 아름다운 것을 쓸 수 있으리란 희망이다.

이런 글에 대한 동기만은 아주 오랫동안 나의 힘이 되어주었다. 

알량한 재능, 그리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하겠다는 욕심. 오만함.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고집이었고 동시에 내 삶의 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글을 쓴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만 쓰겠다.

끝맺을 필요가 없는 글을 굳이 쓰는 이유는 이 마지막 글만은 나를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삿포로. 두번째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이 될 날.

나는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잃었다. 농담이 아니다. 장방형으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주소도 알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길을 잃는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이런 식이다. 음음 목적지가 동14 남20이니까, 이 쪽으로 쭉 가서 꺾으면 되겠지! 하고 서 14 북 2에 가있는 식이다.

걸음은 엄청나게 빨라서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4블럭 정도는 거뜬하게 지나쳐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데 정말이다. 나랑 같이 걸어다니면 알 수 있다. 장소를 찾는데 디테일하지 못하다.

망연자실해서 몇분 간이나 멈춰서서 자기 반성을 했다. 철새 여러분 나에게 힘을 주세요. 지구의 자기장을 느끼게 해주세요.

제법 발달해있는 시가지인 삿포로역-스즈키노역 라인과는 다르게 삿포로에도 덜 발달되어 있는 시가가 있는데 중심지에서 멀어질 수록 

건물들이 작아지고 낡는다. 나름 그런 것도 풍취지만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두번 째 홋카이도 여행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해야할 것이 많았다.


홋카이도가 아무리 자연경관이 클라이막스가 되는 지역이라고 해도 삿포로에는 사람이 모이니만큼 볼만한 것들이 많다. 

홋카이도 전역에서 몰려온 식재료의 스프 카레, 라멘, 스시. 카이센동은 싱싱하고 전 지역의 스위츠 샵에서 모여든 유명 디저트들은 아, 왜 인간은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밥에 한계가 있나요. 오늘 하루 잔뜩 먹고 두달 간 굶으면 안 될 까요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사실 일본에 와서 나는 책이나 전자제품, 옷, 화장품 등도 꽤 많이 사는 편인데 실은, 아사히카와를 제외하면 

그런 "일본 여행 와서 기본인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은 삿포로 밖에 없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해. 이래선 후라노에서 첫차를 타고 여기에 온 의미가 없다. 나를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 손에 구글 맵을 숫제 그냥 켜둔 상태로 호텔을 찾아 걸어갔다. 

스즈키노 옆에 있는 호텔로 다가갈 수록 교통정체가 거의 없는 삿포로인데, 어째서인지 관광버스가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길이 막히는 게 보인다.

 코스프레라도 하는 듯이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나이대도 다양하여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부끄럽기 짝이 없는 복장에 진한 화장을 하고 씩씩하게 한 방향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렇다, 16년 YOSAKOI 소란부시 축제가 같은 시기에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도 여러가지 지역 축제가 있다. 

지금은 전국에서 200개가 넘는 팀이 모여들어 5일 동안 각자의 공연을 하고 시민들과 춤을 추는 축제가 되었지만, 

원래부터 소란 부시는 홋카이도 지역에서 청어잡이 철에 부르던 노래이다. 기본적인 가사는 이렇다


야렌 소란 소란, 청어가 오니 갈매기가 시끄럽구나 은빛 비늘에 여울이 빛난다 쵸이!


이런 가사를 지닌 민요에 전국 사람들이 춤을 추고 대회까지 연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다소 촌스럽던 민요는 이토 타키오라는 민요가수가 편곡한 버젼이 의외로 인기를 끌고, 

왓카나이 남중이란 곳의 특활 부가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을 함으로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것이 1991년.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는 느낌으로 각자가 자기 지역에 맞는 가사를 붙이고 안무를 붙여서 각자의 특색에 맞는 

소란부시를 만들어내 공연을 하는데,  그 특징은 파워풀한 안무와 흥겨운 후렴구. 

내가 딱 마음에 든 교토 지역의 공연팀인 "샤라란"의 소란 부시 가사는 이렇다.


흐드러지는 벚꽃과도 같이, 나의 벗들이여 춤을 추어주어 고맙구나. 아프고 고통스럽던 날들이여 안녕.

잔물결이 밀려오고 우리는 모든 인연을 끊는 그 춤사위를 추네.


????그렇다. 그냥 아무말이나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처음 공연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어둠 속을 달려나가는 나의 동지들이여"라는 마이크 워크

(그렇다 소란 부시를 하는 동안 이 팀은 정체불명의 MC하나가 계속 이상한 소릴 한다)를 하길래 미친놈들인가!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다른 팀을 압도하는 군무 수준과 닌자를 이미지화 했는지 중2병을 빤듯한 구성에 나는 이 안무팀이 너무 좋아지고 말았다.

(급히 어느 지역 팀인지 알아내서 공연시간을 확인했으나 시간이 맞질 않았고.결국 그들의 공연을 보게 된 두 번 다 뜻하지 않은 우연이었다)


위에서 얘기한 것 처럼 YOSAKOI축제는 5일 간 시가의 중심이 되는 오도리 공원을 비롯 삿포로 각 지역의 공연 장에서 공연을 하는데 

유료 티켓을 사지 않아도 사도, 한 껏 즐길 수 있으며. 아무 공연장에 가서 질릴만큼 특색있는 공연들을 보고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면 되는 것이다.

호텔에서 짐을 맡기고 오도리 공원에서 소란부시 공원을 보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나는 삿포로 역에서 간단히 2시간을 기다려 스시를 먹고(하하하), 다른 무엇보다 생각을 하기 위해 홋카이도 대학에 간다.

1876년도에 개교한 이 아름다운 학교는, 삿포로 역 바로 위에 있으면서도 거대한 부지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오래된 학교이기 때문에 건물은 고풍스럽고 깨끗하고 잘 정리 된 부지 내의 공원은 넓고 평화롭다. 

보통 닥터 스크루의 배경으로 유명한 대학교...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서른이 넘은 덕후인 사람들 뿐이겠지. 

원래 농학교였기 때문에 수의학과 농학이 굉장히 강한데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지금도 농과 대학의 편차치가 굉장히 높다. 

실용학문으로서 농학이 수준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본내에서 농학의 실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교 부지에는 어딜봐도 관광객인건 나 정도 밖에 없었다. 

모두들 소란부시를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사람이 없는 곳을 굳이 찾아서 홋카이도 대학까지 온 나도 대단하다 싶다.

적당한 잔디밭을 찾아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한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운다. 

고통스러웠다. 정말로 휴가가 끝나서 고통스러웠던 것이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인정해야했다. 더 이상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것과 이제까지 해온 것들이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도망쳐온 시간 낭비였다는 것을.

도망치고 도망쳐서 어디에 다다를 것인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징기스칸과 맥주를 마셨다. 나오는 길에 샤라란의 공연과 우연히 마주쳤다.

이제는 갈 곳이 없었다. 나는 뭘 해야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호텔 방에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걸어갔다.


나는 홋카이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 여름이 지났고 가을이 끝나간다. 

곧 겨울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아래와 같이 쓴다.

언젠가 당신은 당신의 낙원에 다다를 것 이다. 거기에 나는 흔적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이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당신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내 3분의 1을 불태우고 그 나머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괜찮은 거래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삶은 계속 되고 언젠가 사랑은 다시 시작 될 것이다. 감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돌아오는 편지처럼 어느날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된 편지를 받을 것이다.

그것은 슬픔이고, 그것은 기쁨이다. 

어느 비오는 날 세상의 모든 우산이 펴지는 것처럼 당신의 마음이 활짝 펴져 사랑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죽은 사람처럼 살던 내가 여행에서 돌아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무슨일이 생길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떤일이 일어날지 두근거리지 않는가?


나는 낙원에서 잠이 든 적이 있다.

삿포로의 북동쪽, 버스를 타고 가면 있는 모에레누마 공원은 건축가 이사무 노구치의 마지막 꿈이었던 공원이다.

1977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화 하겠다는 플랜하에, 1988년 모든 플랜을 짜고 88세의 나이로 죽는다.

공원이 열린 것은 2005년 그가 죽은 후 17년 후이다. 착공을 시작한 것이 1982년이니 23년에 걸친 거대한 프로젝트 였던 셈이다.

그는 지구 자체를 재현하고자 했다. 재생한 땅에 태어난 "낙원"

산과 숲을 공원에 만들고 재생 에너지로 모든 에너지를 감당하는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파도가 이는 해변을 공원 중심에 만든다.

인간의 흔적을 없애지 않으면서 자연을 재생하려는 목적. 그 얼마나 순진하고 오만한 플랜인지 모에레누마 공원은 아름답다.


나는 자전거를 빌려 두시간 동안 공원을 돌아다녔다. 산을 오르고 바람을 느끼고. 잔디밭에 누워서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나는 끊임없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찾고 있는 것은 뭐죠, 찾기 힘든 것입니까? 가방 속에도 책상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데 아직도 찾아볼 생각입니까?

그것보다 - 저와 춤추지 않겠습니까. 꿈속으로 꿈 속으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밤이 되고 삿포로 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공원 저 너머에서 아직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들려"왔다.

오도리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들 손을 들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흔들고 서로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춤을 추고 있었다. 

밤이 되면 금방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화가 났다.

여러분은 각자의 삶이 있잖아요. 우리는 모두 타인이잖아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서로의 삶에서 서로를 밀어낼 뿐이잖아요.

나를 배신할 거잖아요. 내 마음을 져버릴 거 잖아요.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아요. 옆에 두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거잖아요.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 내 착각이었죠. 차라리 날 죽이고 가요. 내버려두지 말아요. 이럴거면 처음부터 나를 발견하지도 말지 그랬어요.

그래, 내 사랑하는 당신. 저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나는 이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질러요.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을 추어도 바보, 춤을 추치 않아도 바보라면, 추지 않으면 손해.


야렌 소란 소란 소란 소란 소란 하이하이

목이 쉬도록 노랫소리를 높여라 팔이 떨어지는 춤사위로다 쵸이!


박수를 치고, 다시 춤을 추고. 앉아있다가 일어서고.

여느 꿈처럼 싸구려 전깃불과 스포트 라이트가 사방에 걸려있는데 사람들은 동작을 맞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모두가 자기 멋대로 노래를 부른다.


야렌 소란 소란 소란 소란 소란 불어오지 말아라 밤중에 돌풍아

남편은 오늘밤도 바다서 머문다 쵸이! 야세 에에야안사노 돗코이쇼 하아 돗코이쇼 돗코이쇼


나는 춤을 추지 못하고 공원의 구석에서 낯선 사람들의 춤을 추며 눈물이 가득 고여 밤이 희뿌옇게 사라져가는 것을. 내 마음이 가라 앉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꿈 속에서 춤을 춘다. 가장 멋지게 누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춤을 추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나는 춤을 추어야했다. 왜냐하면 내가 울고 있는 사이에 모두들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계속해서 계속해서.


이것이 내가 6월의 홋카이도에서 깨달은 마지막의 것. 소음에서 걸어나와 춤을 추겠다는 것.

나의 나라로 돌아가, 당신에게 같이 춤을 추지 않겠냐고 권하는 것. 다시 한 번 더.




이야기는 나에게서 시작하여, 당신으로 끝이 났기에 여기서 여행기를 끝낸다. 

16년 10월 10일의 글이다.

토모는 어느날 죽어 무당벌레가 되었다. 무당벌레는 산 속의 개울에 빠져 물고기가 되었다. 

토모가 원래부터 무당벌레였던 것은 아니다. 


토모는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로 이루어진 가족의 아이였다. 멍청하고 착한 토모. 

사람들은 토모를 사랑하기보다 불쌍히 여겼다. 흔히 자기 보다 약한자에게 베풀어지는 그런 "호의"는 짜증이 섞이기 마련이라 

토모는 눈치를 보는데 익숙했다. 


하지만 토모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말을 잘 하지 않았지만 입을 열면 너무나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 

토모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아름답고 우아한 어머니는 토모의 실수를 엄하게 다뤘다. 

토모는 오빠를 사랑했다. 토모와는 다른 똑똑하고 활발한 오빠. 사람들은 오빠를 사랑했다. 


토모의 가족이 원래부터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토모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이가 나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자주 때렸고, 가끔 오빠나 토모를 때리는 일도 있었다. 

토모는 아버지가 토모를 던져 팔이 부러졌던 일을 기억한다. 그러나 기억해서는 안될 일이었기 때문에 토모는 기억하지 못하는 척 했다. 


어머니는 가끔, 그리고 자주 집을 나가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어머니는 가끔 무섭도록 표정이 없어지곤 했다. 아름다운 어머니. 뱀처럼 차가운 어머니. 

울면서 매달리는 토모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서 한참을 돌아오지 않던 어머니. 


아버지가 어머니가 어디에 갔냐고 물어보면 토모는 장 보러 가신다고 하셨어요. 곧 돌아온다고 하셨어요. 하고 더듬 거리며 말했다. 

넌 정말 비겁한 거짓말쟁이구나. 하고 아버지가 몇 년 후의 토모에게 말했을때 토모는 오빠를 감싸던 중이었다.

아빠, 오빠가 한거 아니에요. 제가 한 거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그래? 그럼 니가 했다는 증거를 보여봐.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토모는 떨면서 쓰레기통을 뒤졌다. 뒤늦게 돌아온 오빠는 너 뭐하냐?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토모를 비웃으면서 비겁한 거짓말쟁이 새끼...라고 말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토모에게 너와 오빠를 걸고 아빠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어. 

아빠는 계속 너의 곁에 있을거란다. 라고 약속을 했다. 

그것은 둘 다 거짓말이었다. 그 거짓말이 기뻤던 만큼 토모는 슬펐다. 비겁한 거짓말쟁이야 아버지는.


매일 매일 표정이 사라져가던 어머니는 어느날 토모와 오빠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우리 죽을래? 너희 엄마랑 같이 죽을래?

토모는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 토모는 죽고 싶지 않아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토모가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오빠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버렸다. 아름다운 얼굴의 어머니는 구멍을 세개 뚫어놓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토모는 무서워서 어머니를 안았다.

어머니 토모와 함께 있어주세요. 제발 저를 떠나지 마세요. 토모는 본인이 한 말을 크게 후회하게 된다.


몇 년 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장식품을 던져 어머니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서 토모는 사람을 부르려 달려나갔다.

아버지가 그 때 한 말을 토모는 기억하고 있다. 너 새끼 꼼짝마 안 그러면 너도 죽여버릴거야. 

토모는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날 토모가 꼼짝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했던 일은 사실이다. 

토모는 수백 번 그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내가 무엇을 했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곱씹었다. 토모는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어느날 어머니의 언니가 집에서 혼자 자고 있던 토모에게 찾아와, 불쌍한 토모. 어쩌니 하고 울었다.

아버지는 그 집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토모는, 솔직히 말한다면 안심했다.


그 뒤로 어머니와 오빠, 토모 셋이 사는 생활이 되었다. 오빠는 꾸준히 인기인이었고 사람들의 눈에 띄이는 사람이었다. 

누구도 오빠를 건드리지 못했지만 토모는 약했다. 토모는 흠칫거리는 일이 늘었고 선생님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들은 잔혹하다. 약자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낸다. 선생님이 토모를 때리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토모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토모가 또 책을 읽어요. 선생님, 토모가요. 토모가요. 

이러오렴 토모, 너는 근본부터 잘못됐어. 

그런가. 나는 근본 부터 잘못 된 걸까?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나는 비겁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따돌림을 받진 않겠지 하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은 잘 되어 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단 한 푼의 양육비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오빠와 토모가 본가를 찾아가 좋아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정을 설명했을 때.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할머니는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해하지 않는 이상 너희도 내 손주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토모는 여전히 토모에요. 울보 토모. 멍청한 토모. 

오빠는 토모를 일으켜세우고 집에 가버렸다. 


토모는 친구가 없었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나가면 토모는 집안일을 했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했고 남는 시간엔 책을 보았다. 글을 써서 꽤 큰 대회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주말에 뭐했니, 하고 누군가 물어보면 아버지가 쉬는 날이어서 아버지랑 드라이브를 했어. 라고 말했다. 


저는 토모 입니다. 거짓말쟁이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났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오빠와 토모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니까. 나는 그걸 믿으니까.


소풍을 가서는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서 혼자 있었다. 돈을 쓸수가 없었다. 집은 가난해지고 있었다. 내가 아끼지 않으면 안돼. 

돈이 없다고 생각해서 문제집을 사본 적이 없었다. 교과서만 읽었다. 선생님이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어느날 방과 후에 선생님이 토모를 불렀을 때 토모는 또 작문 대회에 나가라시는 걸까. 하고 얼마 전에 쓴 에세이를 들고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에는 담임 선생님 혼자셨다. 토모, 너 특수고에 진학할 생각 있니? 토모는 멍청했지만 항상 공부를 잘 했다. 

무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외우는 것도 곧잘 했다.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하지 않았지만 가끔 친구들이 풀고 난 뒤의 문제집을 고등학생인 오빠가 가져다 주면 그걸 보고 공부를 했다. 

발음기호를 읽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를 읽지 못했지만 고등학교의 독해 문제도 어렵지 않게 풀수 있었다. 

사전을 살 돈이 없어서 토모의 사전에는 외삼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토모는 두근거렸다. 네 선생님. 저 가고 싶어요.


선생님은 웃었다.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 몇 명이랑 특수고 진학 수업을 운영하고 있거든 거기 들어오면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선생님한테 직접 수업도 받을 수 있단다. 

너한테 전혀 손해 보는 이야기가 아니야. 어머니에게 얘기해주지 않을래? 수업료가 비싸긴 해.

선생님이 말한 숫자는 토모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숫자였다.

선생님, 저희 집은 그럴 돈이 없어요.

그럴 돈이 없다고? 너의 오빠 ㅇㅇㅇ지? 걔 옆 학교에서 엄청나게 유명하고 ㅇㅇㅇㅇ고등학교 가지 않았나? 그런 애네 집이 돈이 없다고?

그랬다. 토모의 오빠는 지역에서도 유명한 인기인이었다. 화려했고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도 잘해서 지역 명문고를 가는데 큰 힘을 들이지도 않았다. 토모는 ㅇㅇㅇ의 동생이라고 불리울 때가 더 많았다. 

너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하니. 오늘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내일 다시 보자.

토모는 집에 가도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토모에게 네가 집의 가장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아버지가 떠난 뒤로 집이 너무 가난해졌다고, 집에는 큰 빚이 있고 우리 세 식구는 뿔뿔히 흩어져야 할 것 같다고.

토모, 네가 해야해.


선생님이 토모를 부른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토모는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 저희 집 가난해서 안되요.

갑자기 어금니가 부숴지는 느낌이 왔다. 주먹이었다. 하나가 가고 다른 하나가 왔다. 너 나 무시하냐?

토모가 쓰러지자. 오른 쪽 귀를 누군가의 발이 걷어찼다.

누가 좀, 토모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선생님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듯이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틀거리면서 학교 뒷편으로 나와 물을 마셨다. 귀에서 나던 피는 집까지 걸리는 40분 동안, 멈추질 않았다.

토모는 울지 않는 척을 하려고 노래를 불렀다. 쥐가 한 마리, 쥐가 두마리, 쥐가 세마리, 쥐가 네마리. 하는 노래였다.

반 친구 하나가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토모는 그게 아주 재미있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그 이후로 토모를 매일 불렀다. 일기를 쓰게했다. 거짓말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라며, 매일 노트 한페이지에 걸쳐 토모의 생활을 쓰게했다.

네가 그렇게 가난하다면 한 번 얼마나 가난 한지를 한 번 써봐, 니 거짓말도 지칠 때가 있겠지.


토모의 성적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답안지를 80%만 작성했기 때문이다. 

영재반의 뒷자리에서 토모는 매일의 일기를 적고, 영재반이 끝나면 담임에게 검사를 맡았다.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따귀를 맞고 울면서 빌기 시작할때 쯤 거짓말쟁이라고 쓰여진 노트를 받은 후 

집으로 갔다. 


오늘 저는 복지 재단에서 받아온 쌀을 햇볕에 말리고 쌀 벌레를 골라냈습니다. 

오빠는 쌀 벌레가 나온 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 같이 벌레를 골라주기도 하지만 그건 저의 일 입니다.


오늘 저는 라면과 참기름을 공짜로 받으러 줄을 섰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저와 사진을 찍고 저에게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라면을 빼앗아 갈까봐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라면을 뜯어보니 양념도 들어있지 않은 라면이었습니다. 


너는 거짓말쟁이야. 언제까지 이러는 줄 보자. 회식 중에 돌아온 선생님은 교무실에 혼자 기다리고 있던 토모를 보고 질렸다는 듯이 내뱉었다.

시뻘건 얼굴로 팔을 걷어붙였다. 이리 와, 하고 손가락으로 토모를 불렀다.


매일 매일 노래를 불렀다. 쥐가 한 마리, 쥐가 두마리, 쥐가 세마리. 집으로 가는 길에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네 달이 넘어갔을 때 토모는 저 사람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토모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특수 고등학교가 아닌 성적이 높은 일반 공립고등학교였다. 

너 성적도 개판인데 거기 써서 되겠니? 요즘 반에서 몇등하더라? 15등?

담임은 이죽거리며 토모의 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입학 시험 날 토모는 평소와는 다르게 모든 답안지를 작성했다. 

입학성적은 반에서 3등이었다. 전교에서 정확히 33등이었다.


토모의 키는 금방 커졌다. 마르고 길고 하얀 토모. 표정이 없는 토모. 언제나 제대로 씻지 않은 머리에 낡은 교복의 토모. 

참고서도 제대로 가지고 다니지 않고 수업시간이면 항상 밖을 쳐다보는 토모. 

공립학교에 들어간 것은 어떤 의미에서 구원이었다. 

그 학교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가난하고 모두가 공부를 잘하는 학교. 

토모는 별종 취급을 받았지만 학교의 일원이 되는 것은 허락받았다. 

3년 내내 토모가 반에서 30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며서도 모의 고사만은 10등 안에 드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기가 안 좋은 시기였다.

 집이 좋지 않으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많았으니까. 입을 다물려면 얼마든지 다물수 있었다. 

가정환경 조사서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 동그라미를 쳤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중요해서 3년 내내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으려고 했다.

토모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4년을 견디기로 마음 먹는다. 십년. 

감옥에 들어간 큰 도둑처럼 혼자서 살아갈 힘을 얻을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린 아이가 아무 것도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토모는 다짐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성적으로 조용한 대학교에 가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서. 

아무에게도 맞지 않고,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손벌리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목표, 생존이 토모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꿈이었다.


토모의 마음은 오래 전에 죽었다. 

토모는 웃지 않았다. 

토모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도 모른채 집에 오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나는 괜찮아 잘 하고 있어. 그것이 마음이 죽은 증거라는 것을 토모는 몰랐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대학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사립대학교였다.

등록금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몇년이나 지나서 만난 조부모에게 토모는 고개를 숙였다. 

조부모는 집에 걸려있던 오랜 빚을 변제해주고 토모의 등록금을 내주었다. 

오빠의 등록금과 학자금을 대주기 시작했기 때문에 토모의 등록금을 대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빠는 조부모의 빛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토모는 일주일에 세 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어머니가 토모에게 왜 아르바이트를 하니? 뭐 사고 싶은거라도 있니? 하고 물어봤을때 토모는 되물었다.

어머니, 저희 집 가난했던거 아니었어요?

아니, 우리가 왜 가난해?

어머니, 저희 집 빚 있다면서요.

아니, 그건 너희 아버지 빚이고. 우리집 안 가난해.

어머니가...저희 가난하다고 했잖아요. 빚이 많고 곧 집은 빼앗기고 저는 본가에서 커야 할 거라고. 네가 잘 하지 않으면 우리 집은 망한다고...

그래?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만큼 힘들었었으니까.

토모 안에서 뭔가가 무너졌다. 토모는 정말 맞아도 싼 거짓말쟁이였던 것이다. 

토모는 누군가에게서 용돈을 받으면 모아서 양념과 소금 같은 것을 사 찬장을 채워넣곤 했었다.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하루 종일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조금씩 읽었다. 토모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6군데의 서점이 있었다. 

주말 이틀을 꼬박 돌면 소설 한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하던게 가난 놀이였구나.

토모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등록금을 스스로 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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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기억이다. 모든 기억의 본질은 거짓말이지만. 

나는 거기에 진실이 한 줌 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봄, 나는 마포구 어디 쯤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다. 우리 둘은 자주 밤새 술을 마셨다. 문을 여는 술집을 찾아다녔고 아침이 올 때 쯤이면 카페에 앉아서 미역처럼 늘어져 있었다. 친구의 집은 걸어서도 갈수 있게 가까웠다. 친구는 집이 먼 나를 버리고 휙 가버리지 않았다. 미안해진 나는 마포구에서 분당까지 어떤 경로로 가면 제일 싸게 나오는지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왜 우리 둘이 그렇게나 술을 마셔댔는지 모르겠다. 친구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겐 강을 건너서 만나러 갈만큼 친한 친구가 많지 않았다.


"너 그래서 죽을 날 정해놓으니까 좋냐?"

"어어???"

"너 그거 거기에 써놓은거 너 죽을 날이잖아. 너같이 자기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애들 하는게 뻔하지 뭐"

"푸하하하 무슨 소리야 도대체"

"내 말이 틀려? 아냐 맞아 그것만 말해"

"어 맞아"

"얼마나 됐어?"

"음... 한 일년 좀 더 됐나. 조건을 걸어놓고 그게 안되면 죽기로 했어"

"조건이 뭔데?"

"이런 식으로 내년에도 살고 있으면 죽어야지, 하고 생각했어"


나의 플랜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서 빚이나 보험 같이 꾸준히 돈이 나가는 것들을 다 정리했고

주변 친구들에게 농담인듯, 농담이 아닌 듯 물건들을 나눠줬다. SNS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메모해서 책상에 올려뒀다.

언제쯤 회사를 관둬야 할지, 언제쯤 계약들을 해지해야할지 그런 것들도 일정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움직이고 있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구체적이고 집요하며 의지를 꺾지도 않는다. 한 번 정하면 망신창이가 될 때 까지 멈추질 않는다.

무엇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아주 심플했다. 나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나는 해야할 것이 없었다.


"뭐가 그렇게 어려워?"

"나 어려운거 없어. 알잖아 나는 사는게 어렵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건 대체로 했고 못하는 것도 없어, 그냥 단지"


그냥 단지. 나에겐 이유가 없었다. 나의 실험은 실패했다.

나는 더 큰 것을 바라야 했지만, 작은 것을 바랐고. 내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들에 집중했다.

공부를 해야할 때 알바를 하고, 시험을 봐야할 때 책을 읽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단지 내 재능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무책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걸 손에 넣었지만. 그게 다 였다. 그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사실"

'어, 나는 사실 가족을 갖고 싶었어'라고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 담겨진 내 마음이 너무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서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얌마, 이 누나가 너 안 죽게 해줄게"

"???무슨 소리야"

"봐봐 잘 봐봐. 너 같은 애들은 목표가 사라지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 죽기로 한 날을 잊어버리면 넌 못 죽어"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진짜라니까, 봐봐 자아 내가 하나 둘 셋, 하고 말하면 까먹는다 너"

"어??"

"하나, 둘, 셋. 자 까먹어라"

"어??"

"어??"


나는 그 뒤로 정말 내가 죽기로 한 날짜를 잊어버렸다. 

얼마 뒤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시계를 보더니 "자아, 지났다 짠"하고 말했을 때 나는 그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친구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지금도 나는 그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


홋카이도 여행은 친구와 계획한 것이었다. 친구는 내 계획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차라리 프랑스라던가 미국이라던가. 그게 낫지 않겠니?

하고 말했길래 홋카이도 여행은 플랜C정도로 홋카이도에 뭐가 있는지만 사전에 체크해두었다. 

하지만 여행을 같이 가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혼자 여행을 갔더랬다. 이것이 내 홋카이도 여행기의 가장 처음에 붙어있었어야 할 오프닝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제 여행기는 두 개가 더 남았다. 두 개 다 삿포로에서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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