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nimals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을 듣는다.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교토국립 박물관>
 
교토역에서 가모 강을 건너 산쥬산겐도를 근처에 있는 이 조용한 박물관은 항상 교토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서점을 좋아하는 이 습벽은 어디 가질 않아서 혼자 여행을 하면 사양하지 않고 한참 시간을 보낸다. 18년도 도쿄에서 여행을 했을 땐 여행 전체를 도쿄의 미술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을 돌아다니는데 썼다. 몰라서 못 간 적은 있어도 사양 한 적은 없다니, 도박꾼이 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런 대단한 것은 아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좋아한다.
 
교토의 미술관들은 기대보단 그리 대단하지 않은데. 일본 미술의 성지 같은 곳이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 교토에 처음 왔을 때는 미술관들을 주로 찾아다녔는다. 그러다 깨달은게 있다면 뮤지엄이란 뭔가를 모아둔 곳인데 말 그대로 천년의 교도인 교토의 미술과 유물들을 모아두게된다면 아무리 큰 장소로도 부족하다. 굳이 따진다면 교토라는 장소 자체가 거대한 뮤지엄이구나 거기 지하철도 있고 빵집도 있고...너무 무서운데...
그래서 여행 중에 굳이 찾는다면 보통 동선이 이어지는 교세라 미술관이나 교토국립박물관을 찾는다. 물론 마음에 드는 전시가 있는지 찾아보는 건 매번 하고 있다. 이번 여행중에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로산진 기획전 정도가 흥미로웠는데 소중한 시간을 할아버지가 주물주물한 무언가를 보면서 보낸다고? 아니 아니 그럴 순 없지.
 
뮤지엄에서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는 기념품 샵에 들르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추억 삼아서 마그네틱을 수집하고 있는데(우연히도 지금 방금 다시는 안하리라 마음 먹었다) 공항에서 살 수 있는 마그네틱보다 그나마 볼 만한 건 언제나 뮤지엄 기념품샵의 물건들이다. 아무리 전시가 훌륭해도 기념품 샵의 구성이 별로라면 나는 일단 실망하고 보는데. 좋아하는 것은 대표 전시물을 마그네틱으로 만든 것. 그게 아니라면 엽서 뭐 이렇다. 만약에 인형이 있다? 인형이 있다 그럼 최고다. 나는 인형을 모으지 않지만 일단 사고 주변의 아무나에게 준다. 그 대상은 대체로 조카나 친구들인데 예전에 펠메르의 그림을 이미지로 만든 미피 인형은 아직도 조카의 장식장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선물을 한 사람으로서 다시 바랄 수 없는 영광이다.
 
블로그에서 몇 번 박물관에서 봤던 불상의 이야기를 썼던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숨'이라는 소제목으로 부동명왕 상과 대일여래상을 봤었던 일을 쓴 적이 있다. 그 정도의 이야기를 쓸만큼 인상적인 전시물은 없었기 때문에 전시물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한다.(그 전시는 최근 몇 년 간 교토국박의 가장 성공적인 전시 중 하나로 불리우는 국보전이었다 표를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사실 반년이 지난 지금 전시물에 대해서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을 할려면 할 수 있는데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기억하지 않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인 뮤지엄에 대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하다니. 너무 일부러 만들어낸 아이러니 같아서 스스로를 좀 비웃게 된다.
 
뮤지엄에서 좋아하는 활동 또 다른 걸 말해보자. 뮤지엄에 딸려있는 카페나 음식점에서 뭘 먹는 것이다. 이 오래된 습성은 혼자 미술관을 다니다가 생겨났는데. 우리나라의 뮤지엄들은 이전에는 카페가 없었던 엄격근엄진지한 곳이라서 그렇지 않았지만(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게 좀 기쁘다) 해외의 뮤지엄들은 작은 카페라도 하나 딸려있는 것이 대부분. 
언제인가 기억도 안나는데 우에노의 미술관을 반나절 만에 돌아야지 하고 마음 먹고 돌던 중 너무 배가 고파서 그 중 하나에 딸린 카페에서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시켜서 먹었는데 가격이 합리적인 것은 물론이고 꽤 맛이 있어서 대만족한 나머지 기회가 있다면 뮤지엄에 딸려있는 장소에서 뭔가를 먹고 있다.
항상 가격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전시물들을 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가까운 거리에서 달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사실 이번 박물관 방문에서 내가 항상 가던 가게가 없어졌다는 것에(뮤지엄 직원이 알려주었다. 그 분도 정말 쓸쓸한 표정이었다.) 격노했지만 뮤지엄 부지 안에 있는 마에다 커피를 갔더니 이게 웬걸 이 곳 한정 블렌드인 류노스케가 허세스러운 이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맛있고 다른 음식들도 먹을만해서 분노가 사그러들었다. 보통은 밥을 먹고 급히 일어나서 다음 곳으로 가는데 여유가 좋아서 류노스케를 한 잔 더 마시며 혼자 한참을 앉아있었다.
 
"혼자 한참을 앉아있었다.“

<가이유칸>

여러분은 수족관을 좋아하십니까? 이제까지 힘들게 비밀로 해왔지만 저는 동물원과 수족관을 둘 다 좋아합니다.
어느날 아사히카와 동물원에서 불행해 보이는 동물들을 보고 동물원은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가진 않게 되었지만 수족관은 그래도 저항감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고등어나 정어리가 불행한 표정을 지어도 나는 모르니까…아니 농담입니다.
 
그날은 엄청나게 비가 왔다. 애들을 데리고 굳이 저기에 간단 말이지 하고 생각하며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간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혀를 찼는데.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지 않은 것은 먼 미래의 기후조차 예상하는 뛰어난 지혜 덕분이 아니라 그냥 익스프레스 티켓을 여행가기 한달 전에나 예매해야지 하고 생각한(보통 두달 전에 오픈된다) 나의 멍청한 실수 때문이었다. 그 대신 간 곳이 오사카의 가이유칸이었다. 처음부터 가이유칸은 갈 생각이었지만 이왕 가는 김에 좀 더 느긋하게 보자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맞겠다.
 
가이유칸에 생긴 지 몇년 안팍의 비교적 최근에 생긴 프로그램으로 보이는 "백야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고래상어 등 대형어류가 전시되어 있는 태평양 수조를 위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투어인데. 정면이나 옆모습을 그냥 볼 수 있는데 굳이? 위에서?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와 동행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백야드 투어가 포함된 티켓을 샀다. 애초에 나도 그렇고 동행도 그렇고 "그런 인간"인 것이다. 시간이 맞지 않았다면 모를까 시간이 맞다고 하자 고민이 없었다.
 
백야드는 정말로 백야드이다.입장을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입장을 해야하는 곳은 그냥 스탭들이 이용하는 통로로 보여서 여기서 정말로 기다려도 되는걸까 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기다려야 한다. 어색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가 맞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확신이 없다는 듯이 아아 그렇겠죠 하는 식으로 대답한다. 애초에 그렇게 경험해본 사람이 많지 않은 서비스인 것이다. 
시간이 되면 스탭들이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을 하고 물건을 떨어트리면 되찾을 수가 없으니 모두 로커에 넣어달라고 설명을 해준다. 휴대폰은 당연히 휴대 할 수가 없다. 꽤나 다들 진지해서 동행에게 귓속말로 아이돌 콘서트 티켓이랑 각성제 팔아요, 총이랑 칼도 제시하면 싸게 드려요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나와 동행 말고도 외국인과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이 많다. 
 
백야드는 춥고.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 말소리가 울리는 공간에서 스탭이 마이크로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고래상어와 가오리. 그리고 여러 물고기 들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설명은 그렇게 길지 않다. 너희들은 굳이 여기 들어올만한 녀석들이니까 내 설명 같은건 하나도 필요 없을거야. 하는 태도이다. 그 말이 맞다. 사람들은 각자 적당한 위치를 잡고 물 속의 거대한 짐승들을 내려다본다.
 
고래상어는 일정한 서식지가 없다. 물고기 치고는 아주 느릿한 초속 1.3m/s 정도의 속도로 헤엄치며 사람의 걸음걸이로도 조금 급하게 걸어가면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이다. (마이크 펠프스의 수영 속도는 시속 9.7km...그러니까 초속 2.7m/s 정도이다. 장하다 펠프스 고래상어를 이겼구나.)
가이유칸의 고래상어는 오키나와에 있는 츄라우미 수족관의 고래상어보다는 작은 크기지만(작다. 왜냐하면 물어봤다.) 두마리 다 좀 더 활발하다는 느낌이다. 그들은 원래 집이 없는 생물인 것 처럼 끊임없이 헤엄을 친다.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금세, 그리고 천천히 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고래상어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쥐 가오리, 숏테일 가오리 등 가오리들은 상어의 친척다운 우아한 태도로 헤엄을 친다. 사람들은 대체로 물고기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표정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표에서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육상 동물이 3차원을 인식하여 살아가는 바다생물보다 뛰어날지 의문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 안에 물고기들이 가득 헤엄치는게 보인다. 나는 수영장에 누군가와 가면 두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첫번째는 어느날 헤엄치는 방법을 잊어버렸던 이야기이고 두번째는 수영을 하다보면 내가 보지 못하는 이 물 밑에 커다란 물고기가 있을까봐 무서워진다는 이야기이다.

백야드의 철책에 기대어 서서 나는 이거야 말로 내가 무서워 하는, 바닥을 보지 못하는 물 밑의 커다란 물고기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백야드에서의 체류시간은 짧다. 20분 정도이다. 물고기에 환장한 녀석들과 아이들의 시간이 끝나고 나와 동행은 누구보다 오랫동안 물고기를 구경한다. 나는 나가기 전 동행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대관람차>

오사카에는 유명한 대관람차가 세 개나 있다. 요즘 유명해진 도심 속의 헵파이브. 바다 가까이에 있는 린쿠노호시. 그리고 가이유칸에 과하게 가깝게 있는 텐포잔의 대관람차이다. 잊어버리고 말을 안 했지만 나는 관람차도 무서워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가이유칸에 간 날엔 비가 내렸다. 동행은 대관람차를 타고 싶어했다. 물론 동행은 내가 대관람차를 무서워한다는 걸 잘 알 고 있었다. 다만 동행이 나에게 뭔가를 하자고 말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비바람이 부는 슈퍼 악조건에서도 관람차를 타기로 하고. 쪼잔하고 집요하게 그럼 탑승료는 네가 내라고 투덜거렸다.

내가 애초에 탈 것 전반에 약한 것은 사실이다. 20대 후반 쯤 친구들과 이유없이 놀이공원에 가서. 이유없이 후룸라이드-바이킹-롤러코스터를 연속으로 타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어어 나는 괜찮아 어서 다음 탈 것으로 가자고오오 하고 가다가 속이 메스꺼워져서는 토하기 직전이 되어 벤치에 누워버린 적이 있었다. 생리적인 영역에서 일단 멀미에 약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리적인 부분을 뛰어넘어 관람차 그리고 그와 비슷한 케이블카는 정말로 타는 것을 무서워한다. 나는 내가 왜 관람차를 무서워하는지 정확하게 알 고 있다.

동행은 엄청나게 즐거워했다. 겁쟁이 주제에 탈 것은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을뿐더러 내가 곤란해하는걸 보는게 좋은 것 같다. 심지어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 대관림차(하느님 맙소사 일본인들아 천벌이 내릴 것이다.)가 타고 싶은지 그 쪽을 지긋이 보길래 사정을 하며 일반 관람차 쪽을 타자고 했다. 아니 제안했다. 아니 솔직히 빌었다. 부탁드렸다.

저승 아니 천포산의 대관람차는 기다리는 사람도 적었다. 애초에 비바람이 부는 날이다.  발걸음도 가볍게 관람차에 올라타니 천천히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고 저 멀리 도심과 바다 모두가 보였다. 나는 스스로가 충분히 위엄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이 들자. 동행에게 내가 덜덜 떨거나 바닥에 쓰러져 훌쩍훌쩍 울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서 내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자. 바람이 또 엄청나게 불었고 관람차의 창에는 비가 부딪혀서 타닥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대관람차를 무서워하게 된 것은 처음에 고베에 갔을 때 하버랜드의 대관람차를 탔기 때문이다. 그 때는 겨울이었는데 도대체 몇년 전인지도 바로 숫자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옛날이다. 길고 지겨운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얘기하자면 하버랜드의 대관람차 안에서 당시의 동행이자 여자친구였던 사람이 이제 그만 만나자는 얘기를 했다.

왜 거기였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떴다는거야 당연히 알았다 그러나 이 타이밍에? 그것도 관람차 안에서?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거꾸로 알았다는 말을 해야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갔던게 료안지였던 것 같다. 그래 이야기가 그렇게 이어진다. 2년…아니 3년이었던가. 하여간 그 후로 몇 년을 더 만났다. 싸우고 헤어진 것도 여러번. 다시 만난 것도 여러번.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차였다. 내 생일 바로 전 주의 일이었고 그 뒤로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관람차를 무서워하게 된 것이다. 무슨 90년대 소설에 나오는 것 같은 얘기라고 나도 생각한다. 케이블카도 관람차와 비슷해서 그런지 무서워한다.

그리고 (놀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정말로 무서워하는게 관람차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가 정말로 무서워 한 것은 관계가 끝나는 것이다. 나는 그걸 혼자서 케이블카에 타면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천포산의 관람차에서 동행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한 것이다. 당신을 잃는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일단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더 이상 뭔가를 쓰기에는 너무 지쳤다. 요즘 나는 하루에 2시간 이상 자는 날이 드물고 오즈의 나라 용감한 허수아비처럼 마르고있다. 아니 심장이 없는 허수아비인가. 그래 그게 맞겠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직도 다 못했음을 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정말로 갖고 싶어한 것은 헤어질 걱정을 하지 않고 앞으로의 일을 함께 얘기 할 수 있는 사람 - 가족 - 이라는거 라든가. 관계란 결국 서로가 가진 마음의 병을 나누어 갖는 거라는 거라든가.
무엇보다 내가 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 마지막으로 방문한지 7년 만에 다시 교토에 오게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얘기들을 해야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동네 대장 고양이가 죽었을 때와 같다 혼자가 된 나는 그 누구에게도 고양이가 죽은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얘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다. 우리는 이야기로만 스스로를 이해 할 수 있고 이야기-개인서사를 통해서 스스로에 대한 정의마저 바꾸어 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이야기를 바꿔 당신이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존재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만든다고 해도 그걸로 내가 정말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 나에게 스며든 당신을 그대로 그림자로 만드는게 옳은 결정이기는 할까?

나는 더 이상 뭔가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바싹 말라버렸고 어떤 소원도 빌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옳은 일이길 바란다.


24년 8월의 글이다.


 
내가 여행기에 쓰는 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과장이나 거짓말은 없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판단을 잘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7년 후, 교토>의 이어진 여행기인 이 글을 쓰면서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작사/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Ave generosa를 들었다. 더 높은 존재를 위한 찬양가를 듣고 있노라면 그 존재들을 위한 사랑과 사람들이 갈구한 구원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존재가 진실이든 아니든, 그 사랑이 진실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
 
예전에 친구와 광화문 어딘가의 유명한 카페에서 얘기를 했었던 걸 떠올린 것 부터 시작하자. 친구는 큰 키와 만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유머감각을 지닌 이공계 여성으로. 너에겐 도저히 이성으로서 매력을 못 느끼겠는걸 하고 나에게 티를 너무 내서 몇 년이나 가느다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다.(그렇다, 이 사람은 분명히 나보다 웃기다. 유머감각에서 패배했다는 그 열등감에 나는 이 친구에게 주기적으로 집착한다.)
무슨 질문을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하면 개를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보호소 같은 곳에서 봉사 좀 하다가 마음이 가는 개가 생기면 집에 데리고 가는거 아냐? 라고 대답했는데. 그 친구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개는...그냥 어느날 엄마가 데려오는거야. 
데려온다고?
어, 그냥 엄마가 어느날 데려와서 이 개가 니 동생이야. 라고 말하는거야. 그리고 평생 사랑해주는거지.
내가 선택하면 안돼?
안돼.
안된다고?
안된다니까.
 
거기에 나는 이해하지 못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몇 년 동안 친구가 한 말을 곱씹었다.
 
<오하라大原>
 
교토역에서도 한시간 사십오분 쯤 걸리는 (버스의 운행 간격이 30분이고,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15분이다. 중간에 산조-시조를 거치기 때문에 말도 안되게 막히는 구간이 있다) 북쪽의 시골 마을이다. 역사적으로는 유래가 깊은 곳인데 교토 어디든 역사적 유래가 없는 곳이 없을테니 딱히 설명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겠다. 굳이 설명하자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인 헤이케모노가타리의 배경 중 하나가 되는 곳이다. 너무 성의가 없는 설명으로 들리겠지만 교토는 애초에 그렇다. 지나가다가 본 이자카야가 사실은 신선조가 칼부림을 했던 곳이고 술집이 잔뜩 있는 번화가를 걷다가 보면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장소가 나온다.
 
내가 오하라를 좋아하는 이유의 30%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기 때문이다. 카페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잔뜩 있는 것을 보면 일년 중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을텐데 지금까지 5번 정도 찾아왔지만 항상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나중에 료칸의 주인분께 언제쯤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나요 라고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보았더니 요즘에는 한국분들이 많이 찾아와주세요 하고 웃으며 대답하신다. 비밀이지만 난 오하라 사람들한테 똑같은 질문을 한다.
 
사람이 없다. 시끄러운 소리도 나지 않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내가 항상 이 동네에서 제일 시끄럽고 분주한 사람이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멀리 학교가 보이고 좁은 길 사이로 갈대와 계절에 맞지 않게 피안화가 보인다. 시골이다.
오하라에 오는 사람들이 보통 목표로 하는 곳은 산젠인과 잣코인이다. 물론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고도 가는 길이 불편하다. 온천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오하라 산소우 라는 곳인 것 같은데 한 번도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지도를 보면 길고 긴 언덕 길을 - 제대로 포장이 안되어 있다.- 한참 올라가는 곳이여서 픽업 서비스를 운영한다고 한다. 길 주변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라서 동행은 일본의 공포게임 배경 같다고 감격한다. 그런거에 감격할 때가 아닌데 하고 생각보다 언덕길이 길어지니 초조한 기분이 들어서 캐리어를 질질 끌고 가다보면 료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한다. 
 
너무 일본 특유의 사찰 거리 기념품 가게 같은 곳들을 지나서 도착한 작은 료칸이 내가 오하라에 오는 이유의 40%이다. 사람이 많아서 예약을 못 할 정도가 되는 것은 또 바라지 않아서 블로그든 어디든 이 료칸의 이야기를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유명해진지 오래라서 사람이 없는 계절인데도 한국인 숙박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너무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곳이 있지 않은가. 이 료칸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7년만에 오는 겁니다. 오하라에 7년만에 오세요? 그것도 그렇지만 이 료칸에 7년만에 와요. 지난번엔 가을에 와서 송이버섯이 있었죠 점심을 먹으러 혼자 왔었어요. 아 그렇군요.
저녁을 먹을 땐 나이가 드신 점원 분이 와서 시중을 드시다가 슬쩍 얘기 한다. 저는 7년 전에도 여기 있었습니다. 나는 짐짓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웃다가 엊그제 뵌 것 처럼 하나도 변한게 없으신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를 좋아해. 하고 스무 번 쯤 반복해서 말한다. 그래서 같이 오고 싶었어. 하고 열 번 쯤 이어서 말한다.
 
오하라에서 구경할 만한 가장 훌륭한 것은 스팀에서 칠천오백원에 파는 공포게임의 배경이랑 마을이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지만. 그 외에 가장 유명한 것은 사원. 산젠인三千院, 짓코인実光院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센인宝泉院이다.
 
산젠인은 훌륭한 본당과 넓은 정원이 유명한데. 특히 이끼가 잔뜩 낀 작은 동자등 석상이나 줄지어 서있는 아기 지장보살이 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짓코인도 지지 않는다. 헤이케이모노가타리의 배경이라는 점이 소수의-정말 소수의- 매니아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데다가 2천년대 초반 범인 불명의 방화로 인해서 천년 이상 내려오던 소나무는 물론 본존인 지장보살 상 마저 파괴되었다는 스토리 텔링이 있는 절이다.
 
그러나 호센인은 그런거 없다. 절의 규모도 다른 절의 반토막인데다가 이 절의 가장 유명한 스토리텔링은 무사들이 피묻은 칼 싸움을 하다가 묻은 핏자국이 묻은 나무판자를 (맙소사 중세 일본피플 맙소사) 절의 천장에 그대로 썼다 뭐 이 정도인데. 절의 사람에게 물어보면 바로 저쪽이에요 하고 알려준다. 무섭지도 웃기지도 않은 스토리 텔링이라고 보면 된다.
 
아름다운 것은. 이 절의 정원을 툇마루에 앉아서 감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떡과 말차를 주는데 천년 전통을 지켜가는 맛인지 그닥 맛은 없다. 하지만 정원의 모든 시야를 사로잡는 나무는 굉장하다. 아무 일정도 없이 아침 일찍이나 절이 문을 닫을때 쯤 - 일본의 절들은 보통 5시면 문을 닫는다 - 가면 사람도 별로 없이 툇마루에 원하는 만큼 앉아 있을 수 있는데 이것도 천년 전통인가 싶을 정도로 춥고 외로운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호센인을 오하라에서 제일 좋아한다.
 
내가 오십년이 지나서 다시 온다고 하여도, 이 마음만 그대로 가져간다면 오하라는 그대로겠지 하는 기대를 한다.
 
 
<가츠라리큐桂離宮>
 
교토에서 가장 예약하기 힘든 명승지라고 한다면 사이호지西芳寺이다. 얼마 전까지 무려 엽서로 신청서를 내고 일본 내 주소로 그 회신이 오면 그걸로 예약을 확정해주던 말도 안되는 곳인데. 홈페이지가 생기더니 이제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아준다고 한다. 여전히 겨울에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진짜인가, 여름에 교토를 오라는 건가. 너희 외국인들도 한 번 혼나보라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키부네 신사도 가본 나도 사이호지는 가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2등은 어디인가. 그건 모르겠지만 일본 궁내청에서 관리하는 가츠라리큐와 슈가쿠인리큐도 사전 예약이 꼭 필요한 쉽지 않은 장소이다. 원래 교토의 유명 관광지 중 궁내청이 관리 하던 곳에는 교토고쇼, 교토센토고쇼도 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 정도 까진 관리 안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는 의견이 있었는지. 이제는 리큐 두 곳 정도만 예약하기 쉽지 않은 장소가 되었다. 홈페이지에서 신청 후 궁내청으로부터 승인 메일을 받아. 그 승인 번호를 입장 시에 가져가야한다. 물론 돈도 내야한다.
 
그래서 그럴 가치가 있나요. 라고 누가 물어보면 항상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예약하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닐까요 하고 대답하지만. 이거야 말로 거짓말이다. 가츠라리큐는 모든 일본 정원 문화의 정수이며 아직까지도 해외 정상들이 방문할 때 견문하도록 짜여져 있는 곳이라서 아직도 궁내청에서는 온 힘을 다 해 이 곳을 관리하고 있다. 교토에 갈거면 가츠라리큐를 가야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키요미즈데라 봣서여 이나리 진쟈 봣서여 이러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속으로 이 바보놈들 그런데 가서 뭐하게 하고 투덜거리고 있다. (우연이지만 24년 2월 키요미즈 데라와 이나리진쟈 양 쪽을 다 다녀왔다. 간만에 가니까 웅장하고 좋더라.)
 
나는 여기 벌써 세번째야 하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한다.
 
정원이란 결국 우주의 작은 축소품이다. 보통 정원의 3요소는 빛과 흙 그리고 물이라고 여겨지는데. 가레산스이의 뛰어난 점은 모래, 바위 그리고 이끼를 통해서 - 기존과 재료를 달리해서- 우주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재료가 달라지니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 필요하였고. 자연스럽게 이는 우주에 대한 추상화로 이어졌다. 
사찰의 정원이 그 표현 목적을 지상의 땅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이상적인 현실 즉 정토를 표현하고자 한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 할 것이다. 다만 이런 목표와 재료의 변화가 절묘하게 조화되어 정원을 자연의 축소판에서 자연의 추상화로 어떻게 연결 시켰는지는 나로서는 의문이다.
애초에 료안지와 같은 거대한 연못과 그 주변을 산책하는 식으로 구성된 정원은 소위 지천회유池泉回遊라고 부르며. 이는 이전까지의 왕궁귀족들의 정원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료안지의 충격적인 가레산스이는 거대한 정원의 아주 작은 부분 일종의 상자 정원으로 구성된 것이다. 나의 일본 사찰과 정원 양식에 대한 집착도 일본인들의 추상화된 세계를 통해 극락정토라는 개념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가츠라리큐는, 그 모든 정수를 모아서 만들어진 정원이다. 넓은 부지와 막대한 비용. 세계에 대한 추상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기에 작은 원막은 배를 상징하고.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어부들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는 제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놓은 작은 장난 같은 추상화이다. 가츠라 리큐는 황궁이 지배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이상화와 더불어서 가장 느슨한 형태로 재현을 시도한다.
영토만을 축소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정원은 4계절에 대한 재현 또한 시도한다. 모든 계절이 이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되도록 다양한 나무를 심고 또 관리하려 한다. 나는 아직 달이 뜨는 밤이나 꽃이 피는 계절에 이 곳에 와본 적이 없다. 아름다운가요? 라고 물으니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라는 대답을 듣는다.
 
정원을 1시간 남짓 구경하고 나오면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역까지는 그럭저럭 걸을만하지만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역까지 가면 맥도날드 정도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새삼 눈치를 본다. 여길 보여주고 싶었다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여기 이미 세번째야 하고 안해도 될 말을 한다.
 
 
<산조-시조>
 
나는 교토의 밤 길을 걸어간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닥 바뀌지 않은 거리는 그대로이다. 소품가게와 오래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가방 가게. 지나갈 때 마다 내 시선을 끄는 경양식 집과 극장도 그대로 있다. 저 건물을 지나 꺾어서 계단을 올라가면 내가 자주 가던 카페이다. 저 쪽으로 좀 더 가면 아침에 커피와 팬케익을 주는 가게이다. 수십번을 각각 다른 마음을 가지고 이 거리를 지나쳤다.
 
예전 어느날 밤의 일이다. 나는 완전히 쓸쓸해져서 사거리를 건넜다. 교토에 왔을 때는 보통 혼자였지만 그건 다른 곳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 대단한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1시간 정도 아니 30분이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머릿 속에 나 자신의 이야기가 가득차서 독처럼 나를 점점 무너트리고 있었다. 내가 나의 머릿 속에서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을 읽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말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그냥 당신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허락을 받을만큼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았다.
 
다시 교토의 산조 거리에서.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달래려고 하지만 당신의 말은 어느 것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이 내 옆에 있기만 한다면 나는 금세 화가 풀린다.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마귀 같은 얼굴을 하고 내 안의 당신을 본다. 당신은 내가 처음 봤을 때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다. 당신에 대해서 나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의 감정도 마음도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의문투성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정말로 당신을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분노와 증오가 사실은 스스로에 대한 분노이고 애초에 그 감정은 모두 당신에게서 느끼던 애정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마지막 문장을 쓰며 들은 것은 Víkingur Ólafsson – Bach: Organ Sonata No. 4, BWV 528: II. Andante [Adagio] 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사랑했으며. 앞으로 그걸 계속해서 후회하며 살아가야한다. 그래서 계속 걸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밤이 좀처럼 끝나질 않는다. 
그리고 여기까지 쓴 시점에서 24년 2월의 교토에 대해서 아직 다 쓰지 않은 걸 깨닫는다. 나는 한 편의 글을 더 써야만 이 이야기를 완성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미친 사람의 말이고. 24년 8월의 글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강한 햇볕을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싫어해서 그늘지고 사람이 없는 곳을 좋아한다. 시끄럽지 않은 곳에서 책을 읽고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당신과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엇을 한다고 해도 좋아한다. 시끄러운 곳에 가서 햇볕을 쬐는 건 어떨까? 라고 말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당신이 짖궂은 농담을 하면 어떻게 받아야할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시끄럽고 사람이 많으며 햇볕이 내리쬐는 곳 중에 내가 좋아하는 곳이 있다. 나는 교토를 좋아한다. 출장을 포함하면 10번도 넘게 갔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싱가폴이나 도쿄는 출장을 포함하면 각 30...50...100번쯤 갔다...)

왜 교토를 좋아하느냐고 하면. 거기 보다 자체 컨텐츠가 넘쳐나서 아무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아무 곳에나 갈 수 있는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혼자 일주일을 있는다고 하고 친구들은 만나지 않는다고 하면 4일 쯤 후부터 도대체 뭘 해야하나 고민해야하지만 교토는 그렇지 않다. 돈과 시간만 있다면 나는 한달 정도는 매일 매일 다른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어서 말해두지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내 거의 모든 교토 여행은 혼자서 하는 여행이었다. 오사카나 다른 곳에 숙소를 두고 누군가와 같이 교토를 들린 적이야 많다. (특히 출장이 그렇다. 별로 되지 않는 예산으로 교토에 숙소를 잡긴 쉽지 않다.) 다만 교토는 정말로 좋아하는 곳이라서 혼자서 가기에 거부감이 없어서 가야겠다 생각이 들면 그 누구와도 조정을 하지 않고 슥 다녀오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농담처럼, 난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교토를 같이 가자고 하니까 내가 교토에 같이 가자고 하면 조심해 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언젠가 교토에 같이 가자는 말은 수 없이 듣고 또 하고 다녔지만(하하 흘리기 대장) 정말로 교토에 같이 가자고 말을 한 적은 딱 한 번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요 얼마 전에 7년만에 오사카와 교토에 다녀왔다.
아주 오랫동안 교토를 다녀오지 않은 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해외여행을 몇년 동안이나 가지 않은 탓도 있었고. 해외여행을 계획 할 만큼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교토에 다녀온 것은 2017년 늦여름-가을 쯤이었다. 7년이나 되었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왜 그 동안 교토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 몇 년을 그냥 꿈처럼 보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쓴 웃음이 났다.

이 여행의 여행기는 아직도 쓸 생각이 없다. 하지만 7년 만의 교토에 대해서는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을 쓰고 있다. 정말로 여행기를 쓰게 된다면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나에게 상처가 될 것이다. 

 
이 여행에선 어떤 음악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 여행기와는 다르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게 없다.
하지만 절대로 쓰지 않으려고 생각해놓고 마음을 바꿔 이 글을 쓰기로 했을 때, 그리고 또 쓰는 동안 들었던 음악은 다음과 같다.
 
- Laufey, <Where or When>
노래 제목이 이 블로그의 이름과 같다. 핀란드의 싱어송라이터 Laufey의 최신곡으로. 원래 클래식을 했던 사람(첼리스트였다고 한다)이 도대체 어떤 계기로 재즈풍의 싱어송 라이터가 된건지 궁금해진다. Be witched 앨범도 훌륭했는데.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딱 하나를 고르자면 이 곡이다. 이 글의 주제를 Where or When으로 정하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 박영미,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도입부부터 가사까지 이 노래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바다의 노래이다. 예전, 누군가가 나에게 이 노래의 가사를 리퍼런스로 편지를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대체로 타인에 무심한 편이다.
 
- 이현우, <마취(Unquantize mix)>
나는 사실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이현우씨와 똑같다. 물론 노래는 형편없이 못 부르지만 이현우씨 노래를 듣고 있다보면 내가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곡 하나를 몹시 좋아하는데. 국내서비스에서만 곡이 올라와있기 때문에 몇년에 한번 멜론에 가입하고 질릴 때 까지 들은 다음 서비스를 해지하길 반복한다. 07년도의 앨범인 Heart Blossom의 완성도 또한 말이 안될 정도로 높다.
 
다음에 나오는 장소들의 순서는 내가 24년 2월에 방문했던 장소의 순서가 아니다. 심지어 이번 여행에서 방문하지 않았던 곳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을 뿐이다.
 
 
<아라시야마, 아다시노넨부츠지あだし野念仏寺>

교토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아라시야마를 간다는 얘기를 할 때 마다 나는 질색한다. 우웩 그냥 관광지잖아요 거길 도대체 왜 가는거에요. 카페 간다고요? 치쿠린? 그거 대나무 숲 별로 길지도 않아요. 곰세마리 동요를 다 부르기도 전에 끝난다구요. 이렇게까지 말해도 그래도 아라시야마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통 추천한 것은 아다시노넨부츠지あだし野念仏寺였다. 아라시야마 남쪽에 진짜로 대단한 신사랑 절이 있는데요. 아 나를 믿고 예약을 아 제발...! 이렇게 비는데도 왜 사람들은 내가 추천하는 곳을 안 가는 걸까 툴툴 하면서.
 
아다시노넨부츠지는 아라시야마에서는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산길을 조심해서 올라가면 있는 절인데. 그 기원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200년 전의 절로 내가 아는 한 교토에서 가장 성지에 가까운 장소 중 하나이다. 그곳은 일본 절 고유의 요소인 경내의 묘지와 죽은 이들의 공양에 특화되어 있이며. 돌로 된 지장 보살과 나무로 된 묘표가 가득차 있는 고요한 장소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곳을 찾았을 때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지만 그곳에 있던 것은 몰래 졸고 있던 입장소의 직원과 아기 지장보살 앞에 나란히 서서 말도 없이 조용히 울고 있던 젊은 부부 밖에 없었다. 나는 묘지에 가득한 나무 묘표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망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묘표는 흔들리며 서로 부딪혀 소리를 냈다.

아직도 아다시노넨부츠지 뒷 뜰의 죽림에서 녹음한 대나무가 스치는 소리 파일을 가지고 있다. 울고 있던 젊은 부부가 자리를 떠나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기다리느라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편지를 반장 정도 쓸 수 있는 시간 동안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와 사람 하나 없는 작은 식당에서 두부요리를 먹었다. 왜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아참 여기 산길이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오히려 예전에 봤던 것보다 아라시야마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찻길과 인도가 구분이 안 갈 정도가 되었다.
아니 슬슬 여기에 별거 뭐 없다는거 알잖아 라고 투덜투덜 거리며 길가에서 유명하다는 두부 요리를 먹었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카페에 들어가 커피도 마셨다. 역시 온 김에 치쿠린을 가볼 까 하고 곰세마리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부지만 있다면 대나무 숲은 순식간에 생겨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라시야마의 치쿠린은 무책임한 국가의 정부 부채처럼 엄청나게 늘어있었다. 30분쯤 걸었는데 대나무 숲은 끝나는 일이 없이 다른 대나무 숲으로 이어져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이어 나갔고 중국인 한국인 인도네시아인 하여튼 온갖 외국인들은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는지 다들 싱글벙글 웃으면서 치쿠린에 대 만족해 하고 있었다. (물론 고갯길이라 그걸로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는 여기 대나무 숲 아니었는데. 여기도 아니었는데 하면서 시끄럽게 투덜거렸다.)
나는 평소에 치쿠린이 고작 뒤뜰 정도 수준이라고 욕하고 다닌것이 면구스러워서 그 뭐냐 내가 아라시야마를 처음 온 것은 2012-3년이었거든 어쩌고 하면서 변명을 했다.
 
역시 이러면 너무 부끄러우니 아다시노넨부츠지를 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길을 찾는데 분명 방향은 맞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잘 포장된 길에 예전에 가파른 고갯길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양쪽에 새로 조성된 주택가와 (이미 한 번 유행을 타고 다시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의) 카페와 양식집이 있었다. 어째서지 싶어서 일단 한참을 걸어서 아다시노넨부츠지에 도착하니. 유튜버 한 명이 택시를 타고 절에 들어가고 있었고. 서양 청년들 4,5명이 동양문화의 심취해서 묘지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라고 외국인인 건 다를바 없지만 왠지 젠체하며 확인해보니. 입장료가 500엔이었다. 여기가 500엔이라고? 팜플렛도 있어? 하고 생각은 했지만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절은 그대로지만 왠지 팻말이 많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 소리를 한참 듣고 있던 대나무 숲은 그냥 고갯길의 뒷 뜰 같았다. 내가 느꼈던 외로움과 신비로움은 도대체 어디 간거야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잔뜩 늘어놓았다.

돌아오는 길에 안되겠다 싶어서 길거리의 킷사텐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궁금해서 사장님께 아니 여기 언제부터 이렇게 도로가 포장이 된거에요? 라고 하더니 이해를 못하셨다. 여기 원래 산길이었잖아요. 라고 재차 묻자. 아니 손님 진짜 여기 오랜만에 오셨나 보다 이거 한 십년 되었어요. 라고 말해서 아라시야마가 너무 싫어서 이 곳에 온지 정말 10년이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두부를 먹었던 가게를 검색해보니 어떤 사이트에서 별점이 4.0을 넘는 무시무시한 유명 맛집이 되어있었다.
 
 
<가라스마, 롯가쿠도六角堂>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날 니조성에 나와 가라스마로 정처없이 걷다가. 제대로 방향을 찾지 못해서 (변명을 하자면 오열을 하며 걷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방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방향치지만 그렇다고 교토에서 길을 잃을 정도로 방향치는 아니다.) 원래 가려던 방향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불쑥 들어간 곳이 이 작고 아름다운 절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죠호지頂法寺의 롯가쿠도六角堂이다. 도심 속의 절이라는 매력적인 모순과 육각형을 한 본당-롯가쿠도-의 모습 때문에 많은 관광 도서에도 소개가 되어 있는 곳이지만 그닥 크지도 볼 것이 많지도 않다. 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컨텐츠라는게 정해져 있는게 아닌가.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가고 있었던 터라 어디 멀리에 갈 수도 없었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얼굴이 끔찍해진 상태로 다른 어디 가게에 들어가는 것도 민폐라서 얼굴을 대충 정리하고 (남자가 얼굴을 정리했다는 말은 사실 큰 의미는 없는 얘기다) 절의 경내를 구경하는데 육각형을 하고 있는 본당이 제일 아름답긴 하였지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절의 경내에 백조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새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데 백조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문득 외할아버지가 다시 태어나신다면 저런 커다랗고 무심한 새 같은게 되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를 다니는 어머니가 알면 질색을 하시겠지만. 이모는 잘했다고 칭찬을 했을 것이다. 지갑에 들어있던 몇만엔을 통채로 꺼내서 절에 시주를 했다. 내 짧은 일본어로 제대로 설명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의 사람은 외국인인 내가 어떤 이유로 시주하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매번 교토에 들를 때 마다 롯가쿠도에도 들렸다. 내 사정으로는 꽤 고액을 그 곳에 시주하고 항상 외할아버지의 명복을 빌어달라는 기도를 부탁했다. 그러기 위해서 숙소도 보통 가라스마 부근으로 잡아서 귀찮아서라도 롯가쿠도에 가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들르는 것은 항상 즐거웠다. 과일가게를 들르거나 좁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경양식 집에 들어가 아무 거나 먹다가 저녁이 오기 전에 롯가쿠도를 가면 되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백조를 구경하다가 절의 원무과에 들러서 사정을 설명하고 시주를 할 수 없겠느냐고 물으면 익숙한 듯이 종이를 가지고 왔다.
처음에는 글을 제대로 못 쓸 정도로 눈이 흐려져서 한참이 걸렸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름을 쓰고 준비한 봉투에 시주를 부탁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백조를 구경하는 시간은 더욱 늘었다. 백조들은 항상 나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었고. 나는 그걸로 만족했다.
 
절이 닫는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다시 와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고 절 뒷 쪽 카페에서 본다면 백조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외조부의 명복을 비는 시주를 할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가셨겠지. 이제는 다른 곳에 있으시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딱 10년이 되었다. 누군가 백조는 30년을 가까이 산다고 말해주었다. 백조들은 나를 기억 할 까 라는 덧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료안지龍安寺>

인기 없는 여행지가 되었다. 유명한 가레산스이의 바위 정원龍安寺方丈庭園도 비슷비슷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버렸다. 바위와 물 그리고 이끼만을 통해서 우주를 표현하려고 한다는 간지나는 설정도 어느새 긴가쿠지를 포함 다른 절들이 따라해서 교토의 절을 구성하는 한가지 필수 요소가 되었다. 다른 절에 비해서 형편없는 접근성과 비싼 입장료. 컨텐츠라고는 가레산스이 말고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벚꽃철 처럼 저절로 절이 아름다워지는 시기가 아니면 사람들이 대체로 찾지 않는 곳이 된 듯 하다. 두 번이나 말했지만 사실 예전에 비해서 그렇다는거지 지금도 충분히 찾아오는 사람은 많다.
 
절이라고 하면 애초에 사상과 미학을 전달하는 일종의 테마 파크 아냐?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하고 그들의 고양된 감정에 맞춰서 돈도 받아내고. 물론 위대한 미술작품 같은게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거고. 정말로 미술작품을 보고 싶으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면 되잖아? 하고 별로 대단치 않은 이론을 힘줘서 얘기해본다. 듣는 사람은 또또 저런다 라는 느낌으로 내가 하는 말을 흘려듣는다.
 
12년쯤 되었을 것이다. 내가 료안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정말 마음 속 깊이 감동했다. 오사카를 가던 도중에 시간을 내서 교토를 온 거니까 다른 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나는 가레산스이의 컨셉에 정신적 오열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여행에 왔던 동행을 설득해서 접근성도 나쁜 료안지로 향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절의 경내는 춥고. 전날 크게 싸운 동행과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냥 둘이서 서로 보고 싶은거나 보고 나중에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그건 또 그러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나는 감동과 더불어 약간의 고집을 더 해서 1시간 정도 료안지에 있었던 것 같다. 바위 정원의 앞에 앉아서 바위의 갯수를 세고 또 세면서 난방이라고 하나도 없는 료안지의 추위에 부들부들 떨었다.

그날 대들보에 기대서 정원을 보던 동행인의 사진은 정말 아름다운 사진이었지만, 그 사진을 지워버려서 나에겐 없다. 사진을 지우자. 나는 오랫동안 내가 처음 료안지를 간 것은 혼자서였다고 기억하게 된다.
 
하여튼 료안지는 나에게도 바위 정원을 제외한다면 그냥 경내가 크기만 할 뿐인 절이 되었다. 나는 내가 료안지에서 했던 말도 거기서 느꼈던 마음들도 자꾸 잊어버린다. 언젠가는 누군가와 같이 간 적이 한 번도 없는 곳으로 기억하고 다시는 가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교토를 수없이 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료안지의 차가운 마룻바닥과 정원 앞에서의 어떤 순간이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가모강변>

철이 들고 혼자 살게 된 다음에야 강변 근처에서 살게 되었지만 물 가까이에서 산다는 것은 특별하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바다 근처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한 번도 바다 근처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의 언어로는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옮길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이미 그 사람을 마음 속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곱씹고 곱씹고 곱씹었다.
나는 내가 그 때 했었던 곱씹음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나는 그 사람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집에서 산책하는 거리에 바다가 있는게 어떤 의미인지 내 언어로는 설명 할 수 없다.
 
나는 가모강을 좋아한다. 강변의 둑길에 그냥 앉아있는 것도 강변을 따라 의미 없이 걸어가는 것도 좋아한다. 시조부터 산조로,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걸어가 데마치야나기로 향한다. 가모가와 델타까지는 가봐야 비로소 좀 기분이 풀린다. 교토 시민들이 열심히 관리하고 있는 모양인지 도시를 종단하는 하천인데도 불구하고 가모강은 깨끗하다. 가장 더울 여름에도 냄새 같은 건 나지 않는다. 물새들이 때때로 날아와 풀 숲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분명 철학적이고 품위있는 행동이겠지. 개구리와 논쟁을 벌이다가 꿀꺽 삼킨다든지.

밤이 되면 강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강을 볼 수 있는 테라스가 갖춰진 술집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들어가 술을 마신다.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각자 뭔가를 쥐고 둔덕에 앉는다. 서로들 적당한 자리를 벌리고 있어서 뭘 하러 왔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나는 때때로 그리고 자주 가모가의 둑길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술을 마시거나 했다. 웃음 소리가 들린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져온 맥주 캔을 다 마실 때 까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숙소가 여기서 멀다면 굳이 여기서 그러고 있을 필요는 없을텐데 나는 대체로 가라스마나 기온 근처에서 숙소를 잡았다. 롯가쿠도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7년이 지난 후 가모강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없고 나는 더 이상 이 동네에 숙소를 잡지 않는다.

나는 가모강을 건너다가 문득 네 얼굴을 본다. 이번에도 강변에서 맥주 마실거에요? 아뇨 이번에는 안해도 될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아니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다시 네 쪽을 본다. 너는 없다. 나는 처음부터 혼자였다. 갑작스러운 상실에 나는 정신을 잃을 것 처럼 흔들린다.
 
 
모든 것을 후회한다. 내가 했던 말들,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을 후회한다.
내가 숨쉬고 내뱉고 있는 모든 호흡을 전부 후회한다. 바다를 갔던 것. 파도를 보며 혼자 등대를 보고 서있었던 것을 후회한다. 편지를 쓴 것을 후회한다. 마음을 열었던 것을 후회한다. 어깨위로 내려 앉은 꽃잎을 주먹에 쥐고 가만히 서있었던 일을 후회한다. 혀 위에 닿은 눈 송이도 무릎 가에 닿던 물결도 후회한다.
 
빛 때문에 흐트러지는 그림자와 벽 위에 느슨하게 서있는 그림자와. 오후의 온도에 늘어지는 소음과 바깥으로 점점 퍼져가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물드는 색과.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것 같던 파란 하늘과. 어떤 때보다도 선명하게 보이던 그 말들을 떠올린다.
웃었던 일들 울었던 일들 화를 냈던 일들. 혼자 생각했던 일들 기다렸던 일들. 그 모든 일들이 처음부터 그리고 다시. 그리고 처음부터. 그리고 다시 떠오르고 또 사라진다. 생을 되감는 것처럼.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말해도 목이 쉬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어서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게 ■년 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후회한다.
■■에 대한 글을 쓴 것을. 그리고 참아 내지 ■하고 ■ ■ 에 대한 글을 ■ 것을 후회 ■ 다.
그리고 ■ 는 견디지 못하고 ■을 크게 ■ ■ 소리를 ■ ■ ■ ■ ■ 모든 ■ 들을 ■ ■ ■ .

...
이제 7년 후의 나에 대해서 쓸 차례이다. 잠시만 눈을 감고 쉰다. 이 모든 것은 미친 사람의 말이고 24년 8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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