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친구 한 명을 묻었다. 비유적인 표현이다. 나는 지폐 몇 장을 내고 절을 두번했다. 자리에 앉아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음식을 쓸어넣고는 딱 30분을 맞춰 앉아있었다. 프로필 사진이 너무 별로다. 라고 굳이 입 밖에 내어 말하고 15분을 밖에서 기다려 마을버스를 탔다. 그제서야 그가 내 친구였다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토요일. 개의 날의 한가운데. 해가 너무 뜨거워 머리 끝까지 뜨거워지고 머리카락을 남겨두는 방향으로 진화해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했다. 커피라도 사지 않으면 주말 내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가는 김에 맥모닝도 사오기로 했다. 왕복 30분 쯤 걸려서 사온 것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나갈 때 사오기로 생각한 맥모닝과 커피(아니 거짓말이다 아샷추를 샀다. 아무래도 커피를 사왔다고 하는 편이 하드보일드해보이지만 실제로 산 것은 아샷추이다.)만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큰 길을 따라 우리집 쪽으로 걸어올라오다 보면 나무들이 듬성이 자라나 있는 언덕이 보인다. 지렁이와 쥐와 가끔 비둘기 날개나 까치 새끼 시체 같은것 까지 가끔 보이기 때문에 나는 그 언덕을 그렇게 집중해서 살피지 않는 편인데. 젖소무늬 동네 대장 고양이 - 커다란 녀석이다-가 오랜만에 보였다. 너무 편한 자세로 낮잠을 자는 것 같길래 너무 더워서 그런가 싶어서 물이라도 갖다 줄까 하고 유심히 지켜보는데. 파리가 붙어있는게 보였다.
 
맥모닝을 집에 모셔다 놓고. 경비실에 가서 삽을 빌렸다. 삼각삽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눈이나 치울 때 쓰는 사각삽 밖에 없었다. 네에 고양이가 죽어 있어서요 여름이고 그래서 일단 묻어주려고요. 네. 잘 쓰고 갖다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의점으로 가서 1.5리터짜리 생수를 한 병 샀다. 목이 말랐을테니까 지금이라도 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니까 물을 땅에 뿌려서 땅을 파기 쉽게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부드럽지도 않은 흩날리지도 않는 적토 언덕이라 사각삽으로는 도저히 구덩이가 파지지 않았다. 생수를 반쯤 뿌려서 땅을 적시고 다시 땅을 팠다. 두 병 살 걸. 그거 별로 비싸지도 않은데. 하고 고양이를 뒤에 두고 땅을 파고 있노라니 말도 안되게 땀이 솟았다. 마지막으로 땅을 판게 언제지. 터무니 없는 이유로 교수를 죽인 일도 없어서 진짜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그럭저럭 땅을 파는 방법은 금방 기억났다. 그냥 자고 있는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주기적으로 했다. 땅을 파는게 너무 싫어서이다.
 
이십분을 파내려가도 저 커다란 대장 고양이를 묻을만큼은 되지 않았다. 이 정도 속도로는 60분이 지나야 겨우 한마리 넣겠어. 근데 그 정도가 되면 날 넣을 구덩이도 하나 더 필요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구덩이를 물끄러미 보는데 물을 뿌리고 땅을 파서 그런지 지렁이들이 몰려들었다. 아니 뭐야 진짜 싶어서 하나하나 지렁이를 떼어내서 주변으로 옮기고 땅을 파는데 한도 끝도 없었다. 거짓말 같았다. 일단 현재 온도 32도라면서 내 느낌상 기온이 38도는 될 것 같았다. 땀이 너무 많이 흘렀다.
 
하는 수 없이 (변명이다. 사실 40분만 더 팠으면 될 것이 아닌가) 고양이 위에 파낸 흙들을 덮었다. 풀들도 가져다가 그 위에 덮었다. 뜻하지 않게 훌륭한 고양이 무덤처럼 보였다. 남은 생수를 무덤 위에 뿌리고.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나는 고양이가 알아들을만한 기도문은 몰라서 편히 쉬어라. 라고 했다. 처음엔 땀이 너무 많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누가 흘린지도 모를 눈물이었다.
 
몇 년 전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때 부터 이 고양이가 이 동네의 대장 고양이였다. 가끔식 발견되는 비둘기 날개죽지 같은 것도 이 녀석 짓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덩치가 크지만 점잖아서 사람들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 한 번 들려주지 않는 그런 고양이였다. 미안하다고 할 걸 그랬다. 편히 쉬어라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 말걸 하고 후회했다. 삽을 경비실에 돌려놓고 집에 올라가는 동안 계속 바보처럼 울었다. 누군가에게 우리 동네 대장 고양이가 죽었어 너무 슬퍼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고양이가 얼마나 커다랬는지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했기에 나는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적당한 기도문을 알아두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집에 돌아와 울며 불며 맥모닝을 먹고 구청 당직실에 전화를 해서 죽은 고양이가 배전반 옆 흙무더기 안에 묻혀있다는 걸 신고했다. 여름의 비를 견뎌낼 정도로 내가 만든 작은 무덤이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지 않기 때문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위생 문제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요. 네 배전반 옆이요 네 지도 좀 열어서 봐주시겠어요 네 샛길요 네. 제 연락처 괜찮습니다. 토요일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
며칠이 지났다. 오늘 성모 호칭 기도 Litany of loreta를 검색했다. 한줄 한줄 읽다보니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걸 참을수가 없어서 나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개처럼 울었다. 아래는 기도문의 일부이다.
 
샛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병자의 나음,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죄인의 피신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근심하는 이의 위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신자들의 도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여러분, 고양이와 저의 친구를 위하여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24년 8월의 글이다.

 
[나는 집의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있다.
이하의 이야기는 단 한 줄의 진실도 없다고 쓰려다가 관둔다. 지금 쓰는 이야기는 한 남자가 더위에 정신이 나가 망상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이마가 녹아버리 것 같은 여름이다. 남자는 땀을 흘리며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햇볕이 얼마나 쎈지 그 얼굴에는 그늘 하나 보이지 않는다. 풀밭에 발목이 쓸리고 땅을 밟는 감촉은 점점 남자를 땅 속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다. 남자는 걸어갈수록 탈수증을 일으켜 정신을 잃어간다. 더위에 익어가는 남자는 망상을 보고 환청을 듣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소음 같았다. 잘 들리지도 않던 소리는 점점 더 확실한 형태와 무게를 가지고 들려오기 시작한다. 남자는 환청이 명확해지는 걸 그대로 둔다. 그러다 말겠지. 남자에겐 다음 장소로 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환청이 명확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환청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씨 ■■씨 내 말 들려요?
 
남자는 땀에 축축해진 목을 움츠리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목소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시 고개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지마요. 뒤돌아 보면 내가 거기에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되잖아요.
 
남자는 뒤돌아보는 자세 그대로 멈춰서서 소름이 끼치는 걸 느낀다.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뒤를 돌아보는 선택이 있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는다. 눈썹 위에 맺혀있는 땀을 닦고는 그대로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간다.
 
웃는 소리가 들린다. 콧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는 남자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미 몇 년 전에 만났었던 연인의 목소리이다. 햇수를 세보니 만났던 때로부터 5년 아니 6년은 된 것 같다.
 
응? 뭐라고요 6년이나 되었다고요? 목소리가 물어본다.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세봐요 뭐라고 하는지 정확하게 못 들었어요.

망상은, 그러니까 목소리는 그의 생각에 끼어들어 물어본다.

세상에 그럼 님 도대체 몇 살이에요? 진짜 완전히 아저씨인거 아니에요?

목소리는 호들갑을 떨다가 더 큰일이 났다는 듯이 말한다.

그럼 나는 몇살이지? 이봐요 ■ ■ 씨 내 나이 기억하죠? 그런거 절대로 까먹는 사람 아니잖아요 저 지금 몇 살이에요?
 
남자는 무시하려던 것은 잊어버리고 목소리에 신경을 쏟는다. 어차피 어떤 생각을 하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목소리가 듣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지. 그는 목소리의 주인의 나이를 생각하려다가 그만둔다.
 
[나는 쓴다.]
[네가 나랑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부탁한게 그거였잖아. 네 이야기를 어디에도 쓰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 누구도 내가 쓴 네 이야기를 읽게 하지 말아달라고. 그러니까 네가 정말로 누군지 특정 할 수 있는 얘기는 쓰지 않을거야.]
[나는 그렇게 한 문단을 쓰고는 끄적거리다가 물을 삼킨다. 이렇게 물을 마시면 목이 아플텐데.]
 
목소리는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너 그거 제대로 안 지켰던 것 같은데 그래도 약속이라고 일단 지키려고 하네?”
[나는 삼킨 물에 사레가 들어 콜록 거린다.]
 
남자는 생각한다. 내가 듣는 네 목소리는 내가 널 처음 만났을 때의 목소리처럼 들려. 그러니까 26살...27살이겠지. 남자는 목소리가 빙그레 웃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 ■ ■ 이 이 더운 날 뭘 하고 있었지? 하고 목소리가 물어본다.

물어보고는 목소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까부터 이름을 불러보려고 하고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이름을 제대로 말 할 수 없는거 보니 지금 하고 있는 것의 룰은 그건가? 우리 서로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말하지 않으면서 대화를 나누는거? 왜냐하면 내가 너한테 마지막으로 했던 부탁이 내 이야기를 어디에도 쓰지 말아달라고 했기 때문에?

남자는 너는 내 망상일 뿐인데도 항상 나보다 머리가 좋네. 하고 생각하고. 목소리는 또 웃는다.

왜 자꾸 나한테 머리가 좋다고 하는거야 것보다 머리가 좋다 정도는 말하면 안되는 정보에 포함이 되지 않는거야?
머리가 좋다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나?
머리가 좋았던 여자친구가 한 둘이 아니라서?
애초에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을 좋아해.
내가 특별한게 아니다?
남자는 생각한다. 네가 특별했으면 좋겠어?
목소리는 말한다. 똑바로 말해야지. 너는 지금 망상 중이잖아. 그러니까 너는 특별해, 라고 생각하는게 맞아.
 
내가 하고 있는건, 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그냥 세상의 작은 어느 구석에서 다른 구석으로 가는 거야.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지.
목소리는 불만스럽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야구는 그냥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일 뿐인거 아냐?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사람들이 작은 곳에서 다른 작은 곳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숫자가 변하기도 하는 거고.
그래 네 말이 맞아.
뭐 내 말이 맞다고? 그것보다 야구는 어떻게 되었어. 어디가 1위지? 는 몇 위야? ■ ■ 아 나 요즘에도 야구 보니?
 
남자는 생각한다.
네가 야구를 지금도 보고 있는지는 몰라. 네가 지금 어디에 사는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후에, 그러고도 몇 번 서로를 길에서 마주쳤지만 그냥 그게 다였어. 너는 항상 네가 좋은 여자친구라고 말했잖아 너는 내 인생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걸로 정말 좋은 여자친구였다는 걸 증명했어.

목소리는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한다.
어때 너는 내가 아직도 야구를 보고 있을 것 같아?
응 넌 미친놈이고 야구가 없으면 네가 미쳐있는게 야구 때문이 아니란걸 사람들이 알게 되잖아.
그래 우리  이 말이 맞다면 그렇겠지. 아직도 야구를 보고 있을거야 너한테 1위 팀을 물어볼 필요도 없지.
 
남자는 묵묵히 걷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자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땀을 닦고 걷기를 반복 할 뿐. 지겨울 정도로 갈 곳은 아직 멀었고 여름은 덥기만 하다.
 
왜 갑자기 내 생각을 했어?
네 생각을 했다고?
응 네가 내 생각을 했고 내 목소리를 떠올렸기 때문에 지금 내가 네 머릿 속에서 말하는 거잖아.
나는 네 생각을 자주 해
얼마나 자주 하는데? 
예전엔 매일 했지.
매일 했겠지 내가 그냥 the girl next door 처럼 생겨서 그렇지. 예쁘고 귀엽고 하여튼 그러니까.
망상 속인데도 자신감은 여전하구나.
네가 생각하고 있는 나니까 그렇지
내가 네 생각을 자주 한 건 네가 예뻐서가 아냐.
예뻐서가 아니라고??
 
목소리는 자못 이해가 안가는 듯이 분해한다. 그리고 나를 향해 묻는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나한테 물어본거지?]
“어 너한테 물어본건데.”
[나는 네가 항상 예쁘다고 생각했어.]
“근데 쟤는 왜 저래?”
[쟤는 이야기 안에 있기 때문이야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너랑 영원히 잡담을 할 수 없는거지. 하고 쓴다.]
 
남자는 생각을 하나 떠올린다.
근데 너 나 좋아하긴 했었니?
목소리는 텀도 없이 빠르게 대답한다. 어어 우리 이 내가 또 엄청 좋아했지.
그럼 사랑하긴 했어?
푸하하하 야 너 뭐 그런걸 물어보십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남자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자 거의 불가능한 것 처럼 그녀에 대한 생각이 흘러나온다.
그게 진짜 단 한 순간이고. 너와 나의 즐거웠던 때는 다 끝나버렸고 그게 네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짧아서 그렇게 끝났지만. 나는 네가 잠시나마 나를 정말로 사랑했었다고 생각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유를 말하려면 나는 너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해. 내가 나한테 했던 이야기들과 네가 했던 말들을 모조리 끌어올려야 하고 그렇게 끌어올린 말들로 너를 한 번 더 만들어서 물어보면 되지. 너 자신보다 27살의 너에 대해서 잘 아는 건 나니까 널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을거야.
그래서 그렇게 했어?

몇번이나 그렇게 했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했지.
그게 그렇게 궁금했어?

그게 되돌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냥 내가 너를 정말로 사랑했느냐만을 확인하는 건데도 스스로를 그렇게 불구덩이에 넣고 데굴 데굴 굴린거야?
 
[나는 쓴다. ]
[그렇게 까지 불구덩이는 아니었어. ]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이 생각한건. 너를 그냥 우연히 만나서 어머 □ □씨 뭐해요 라고 말하고 너도 어머 ■ ■씨 오랜만이에요 라고 말하는거였어. 그러면 나는 오랜만이긴요 엊그제 만났던거 아니에요? 우리 이런데서 만난 것도 웃긴데 저기 가서 커피나 할래요? 하고 걍 아무데나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하는거지.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항상 했어.]
 
목소리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말한다. “너 안 했잖아.”
남자는 생각한다. 갑자기 안 했다니 무슨 소리야?
목소리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남자에게 계속 말한다. 어디까지 얘기했지? 불구덩이까지인가?
너를 생각하는 건 불구덩이 같은 일은 아니었어.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응 그렇게 괴롭지 않았어. 네가 나를 떠나고도 네가 해줬던 이야기들이 나를 오랫동안 지탱했었지. 친척집에 갔던 이야기나 노래를 불렀던 이야기. 대학교에서 연애를 했던 이야기. 친구들과 잡담한 이야기. 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 너는 정말 아무생각 없이 했었던 얘기 같은데 그런 것들이 나한테 비어있는 어떤 부분을 채워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느낌이었어.
전 남자친구 얘길 듣는게 별로 화가 나지 않았나보네.
알고 있었거든 네가 나를 정말로 많이 좋아했었다고.
바보 같은 소리야.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겠어? 너는 그냥 내가 너를 잠시 만났고 내가 너를 좋아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뿐일 수도 있잖아. 몇년이나 지났다면서. 지금에 와서 지금의 나한테 물어볼수라도 있어? 너는 그냥 처음부터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일텐데 이런 생각들이 어떤 도움이 되지?
 
남자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머뭇거린다.
[나는 아무 글도 쓰지 않고 그대로 있는다.]
목소리는 남자의 대답을 기다린다.
[더 이상 뭘 써야할지 알 수가 없었던 내가 그만 이 글을 닫고 침대로 가 한숨 자려고 생각하는 순간 기적처럼 남자는 생각한다.]
 
그 뒤로 누군가를 또 만났어.

그리고 그 사람이랑도 끝났어.

그렇게 반복하다보니 나는 내가 텅 빈 것 처럼 느껴져

나한테 영혼이 정말로 있는지 자신이 없어서. 네 생각을 하는거야.
내가 좋은 여자친구였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널 아주 잠시만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응 우리가 서로를.
 
남자는 걸어간다.
등과 배 모두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그 자국 그대로 회색의 폴로 셔츠가 젖었다. 목소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노래를 귀기울여 듣는다. 남자는 그녀의 노래를 귀기울여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던지 해도 그는 항상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깨물고 뽀뽀를 하고 교차로에 멈춰서면 항상 손을 깍지껴서 잡았다. 그녀가 어땠냐하면 질색했다.

어쨌든 처음부터 아주 오래도록 그는 자기가 그녀를 사랑할 것을 알았다. 이름을 알기 전부터 당신을 사랑했다고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는 그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한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즐겁다는 듯이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님 인생에 가장 사랑한 애인 세 명은 누구죠? 이미 몇 년이나 지났는데 제가 그 중에 들어가 있나요?
남자는 너 그런 식으로 결국 네가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는 거잖아. 대답 안 할거야. 라고 생각한다. 
아항. 그러시겠다 그렇구나. 그러면 3등은 아니라는 얘기네. 그럼 내가 2등이에요? 놀랍네 지금 님 머릿속에 있는 저는 아직 27살 아닙니까? 님은 몇살 쯤 됐죠? 37? 41? 43? 그도 아니면 47 정도 되었나요?
남자는 다시 생각한다. 아니라니까 내가 널 마지막으로 만난지 몇년이나 되었는지가 얼마나 중요하지?
중요한건 아니지만 저 님 항상 여자친구 있는거 알거든요. 나이를 알면 저 이후로 여자친구가 몇 명인지 대충 알 수 있죠.
그렇게 막 살지 못했어.
막 살지 못했다구? 그러면 어디 한 번 봅시다. 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한 애인이 누구죠 혹시 이름에 □ □ 가 들어가나요?
 
남자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며 말한다. “1등 너 아니거든 이 멍청아."
그는 그녀가 알던 그대로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남자가 돌아본 곳에는 여름 말고 아무도 없었다.
 
[24년 8월의 글이다.]
 

 
나는 설명을 잘 못하는 편이다. 어떤 일의 원인1부터 결과인 5까지 12345의 논리적 흐름을 통해 도달해야한다면 나는 주로 5만 말한다. 기껏해야 145정도이다. 12345를 전부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걸 업무 메일 같은 곳에 써야한다? 정말 최악이다. 12345를 전부 쓰는 메일을 작성하려면 한 30분 동안, 아니 3시간 정도 싫음과 고통에 몸부림 쳐야한다.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버릇이 아니란 걸 알고 있는데 모든 걸 뛰어넘고 5만 얘기하다 보니 어떤 친구들은 (비난의 뉘앙스를 담아서) 예언이라도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아 고민하고 싶지 않다 설명하고 싶지 않다. 설명 혹은 변명을 하는 것은 멋지지 않다. 간지가 나지 않는다. 혼자서만 아는 수십가지 의미를 넣어서 음습하게 넣어서 글을 쓰고 설명은 하지 않고 뭔가 남 모를 걸 알고 있다는 듯 한 잘난척 하는 자세로 자신감에 차서 행동하고 싶다.
 
가끔 12345를 전부 설명해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딱히 이유가 없고 순전히 변덕에 의해서이다. 얼마 전에는 회사의 후배가 선배는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일을 하는데 하루 종일 배고프지 않으세요? 라고 질문했다. 실제로 나는 자주 배가 고픈터라 이게 나보고 뚱뚱보라고 놀리는 건지 잘 구분이 들지 않아서 어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벌컥 화를 냈어야 옳다.
 
얼마 전 동네를 찾아온 친구와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러면 안됩니다 어린이 여러분들도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해야할 얘기가 떨어져서 순수한 변덕으로 12345를 얘기할 일이 있었는데. 얘기를 다 들은 친구는 그렇게 슬픈 생각을 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이 블로그나, 나에 대해서 아무 생각나는 것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것들을 설명하려고 한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이 블로그의 글 중에서 제목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은 그 글을 쓸 당시 내가 자주 들었던 곡 중 하나의 제목이다. 
 
2. 이 블로그는 내가 개설한 블로그 중에서 여섯?번째 정도? 된다. 싸이월드에 적었던 글 중에서 여행기만 따로 모아서 올리는 블로그였는데. 다른 블로그들은 모두 폐쇄하고 이제 이 블로그 밖에 남지 않았다. 내 다른 블로그에서 내 글을 봤던 사람이 이 블로그에 찾아와서 혹시 ㅇㅇ님이 아니신가요? 라고 물어보는걸 인생 내내 두려워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오히려 서운한 상황이다.
 
3. 다른 블로그 중 가장 좋아한 블로그는 텀블러였는데. 다른 언어로 동화 비슷한 괴담을 올리는(인기는 없었다) 곳을 제일 좋아했다. 하지만 내 모든 블로그 중에서 제일 인기가 없는 곳은 바로 여기 티스토리이다.
 
4. 티스토리의 모든 글들이 마지막에 ㅇㅇ년ㅇㅇ월의 글이다. 라고 끝나는 이유는 그게 내 여행기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거기에 맞는 또 나만의 법칙의 글들을 써댔다. 대부분 삭제되어서 일부는 출력물 형태로 남아있고 일부는 txt로 남아있다. 그걸 복구 하려면 전에 쓰던 데스크탑을 살려야한다. 내 주제에 굉장히 아름다운 글도 몇 개 썼지만 살리는 것은 너무 귀찮은 일이다.
 
5. 다른 블로그를 모두 없앤 이유는. 크게 상심할 일이 있어서 나 자신의 일부를 상실함으로서 그 상심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다. 
 
6. 최근에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299792로 바꾼 이유는 광속의 속도가 299,792,458m/s이기 때문이다. 광속으로 한 이유는 여기서 말하고 싶지 않다. 
 
7. 나는 자주 이런 물리법칙 상 유명한 숫자들로 비밀번호를 해두는데. 꽤 오랫동안 980665로 해둔 적도 있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중력 가속도 (9.80665 m / s2)의 숫자이다. 여기에 지금 비밀번호를 썼기 때문에 또 비밀번호를 바꿀 생각이다. 여러분은 모두 나를 실제로 볼 일이 없지만. 그래도 뭐.
 
이런 물리법칙이나 수학 상의 유명한 숫자들을 비밀번호로 해두는 이유는 예전에 (전에 사귄) 여자친구의 전화번호로 비밀번호를 해두고는 까먹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을 마셔서였긴 했는데 진짜로 생각이 안나서 2시간 정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980665를 또 까먹을 일이 있을수도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죄송한데 지구의 중력 가속도 좀 검색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라고 해서 집에 들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넌 어느 별에서 왔느냐 첩자 녀석 하고 광선총을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까지 그럴 일은 없었다)
 
8. 나는 이렇게 여러가지 숫자로 비밀번호를 해두는데. 지금 집 비밀번호는 예전에 살았던 집의 번지수이다. 다음 집으로 이사 가면 지금 집의 번지수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좋기 때문이라기 보다 나의 족적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네에서는 6년이나 살았고 이사를 가야한다고 느끼고 있다.
 
9. 대학시절 맘에 안 드는 남학생에 대해서 누가 평을 물어보면 못생겨서 싫어한다.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실은 굉장히 종합적으로 그 사람이 맘에 안 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12345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못생겨서 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곤 했다. 
 
예전에 후배J가 후배C를 좋아하는걸 알고 있었는데. C가 어느날 J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C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정신적으로 의지 했는데 J가 C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차마 혹평을 하지 못하고 애매한 평 - 어어 나쁜애 아냐-을 하고 말았다. 결국 J와 C는 2,3년 정도 사귀게 되었는데 C가 그 후 왜 그랬냐고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몇년이나 사귀었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혹평해야할 때는 사양않고 해야한다는 삐뚤어진 교훈을 얻게 되었다.
 
10. 친구L과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건 몇년 전 나의 연애 때문이었다. L은 상황도 이해하고 네 생각도 이해하지만 그런 연애는 하지 말아야 한다 네가 이 연애를 시작하면 다시는 널 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선언했고. 우리는 그 뒤로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 때는 아니 내가 뭐 만나면 안되는 사람 만나냐 하고 자못 분해했지만. L이 그냥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관계가 망가진 건 전적으로 나의 탓이었다.
 
11. 나는 사실 타고난 동생으로 어리광부리는 걸 엄청 좋아하는데. 사회적 지위도 있고 외관 상 어울리지도 않아서 항상 꾹 참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보이는 차가운 모습이나 짜증나 보이는 모습 중 일부는 어리광을 부리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징그럽게 느껴지겠지만 어쩌겠는가.
 
12. 내가 카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에게 카레를 만들어준 사람은 모두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
 
13. 내가 그 대학의 그 과를 간 이유는. 외할아버지 댁이 그 대학교 후문에 있었기 때문이고 그 분이 문학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반수를 해서 모 대학 법대를 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반수 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말하고 다녔었지만 수능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다. 억울하게도 여름에 알바 하다가 날짜를 헷깔려서였는데.
 
14. 내가 말린 무화과를 먹을 때는 대체로 아버지가 보고싶어질때다. 이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아 왜 말린 무화과냐면 아버지는 석류랑 무화과를 좋아한다. 취향도 이상하지. (향수 필로시코스랑은 관련없다 진짜 징그러운 발상이로군)
나는 아버지 얘기를 좀처럼 안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나와 닮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근본적으로 증오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아버지를 머릿속에서 최대한 지우고 싶어하긴 한다.
 
15. 나는 어릴 때 부터 감정이 남들보다 흐릿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거의 없었고 동물이라도 된 것 처럼 대체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거의 없어서 친누나는 대학생이 되도록 아무도(심지어 연예인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 쯤 나도 스스로의 이상함을 느껴서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친구가 타이른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요지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누군가를 잘해주고 싶고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진다면 그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라는 말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자란 착하고 예쁜 여대생이나 할 법한 얘기긴 했다. (진짜 친한 친구이다)
 
나는 그 뒤로 몇년이 지나도록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게 뭔지 제대로 이해를 못했는데. 서른 살도 넘어서 어느날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좋아한다는게 뭔지 깨달았다.
 
예쁜 사람을 좋아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래 전 내가 술자리에서 찍은 완전히 흔들리고 촛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후배 한 명의 사진을 보고는 스스로가 가진 애정의 깊이를 한 번도 이해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몇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을 매일 했다. 머리가 이상해지고 그 아이가 했던 이야기 마저 어느 쪽이 진짜였을까 하고 의심이 들만큼 오래되서야 이것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거구나 하고 깨달았었더랬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서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해한다. 기묘한 방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방식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을 사귀기 전에 그 사람이 관광지에서 사진사를 고용해 찍은 사진을 여러장 보여주며 어떤 사진이 마음에 들어?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맘에 든다고 고른 사진들은 하나 같이 얼굴색이나 턱 같은 것들이 보정이 되지 않은 사진들이었는데. 그 사람은 좀 질렸다는 듯이 너 나 진짜로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16. 평소에 설명하지 않았던 것을 설명하고 있노라니 스스로가 두배는 멍청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난 평소에 진짜의 두배 정도로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들이란 이렇게 정말 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구 빌어먹을
 
 
24년 7월 30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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