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4시, 아니 새벽 5시쯤 자기 시작해서 8시에 일어났다. 별로 하고 싶은게 없어서 책을 정리 하다가 이제 갈 일이 없어진 여행 예약을 취소 하고는 8월 말 까지 무료 취소인 이 예약은 그 때 가서 취소 할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가 더 바보 같은 생각을 떠올렸지만. 지금 쓰는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12시가 될 때 까지 책을 읽고 있다가 오늘은 만물이 생동하는 주말이니까 분리 수거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꾸러미에 플라스틱 병과 콜라 캔을 잔뜩 넣고 분리 수거장으로 내려갔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 쪽 구석에 보라색티에 마스크로 입을 가린 말라깽이 아이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 엘레베이터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굉장히 놀라고 동요하여 서로 눈이 마주친 말라깽이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하는 것도 못 본 척 하고 밖으로 나가 천천히 분리 수거를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정도 되었으려나. 주눅이 든 아이 특유의 표정에 얼굴은 어둡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분리수거장은 그늘 아래에 있었는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항상 쓰레기통 주변에서 서성이는 까치도 나무 위 그늘 안 보이는 곳에서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가지 위에 앉아있었다. 나무 그늘 벗어난 곳의 아스팔트는 지옥처럼 뜨거웠다. 바로 오늘의 일이니까 감히 현재형을 써서 말할 수 있다. 숨을 쉬기가 싫을 정도로 덥다.
 
돌아오는 길에 본 말라깽이 아이는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워서 탈진 하고 있는 아이 특유의 나른해진 표정이 몹시 신경이 쓰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목이 마른 것도 배가 고픈 것도 쉽게 눈치 챈다. 여자친구들이 대체로 바싹 말라 물도 안 마시는 사람들이었던 탓이 크다.
집에 올라와 화장실에서 보니 아랫 잇몸 중 하나에 피가 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놀라서 입술을 깨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피는 검고 멍울져있었다.
 
해야할 빨래가 있고. 집안일이 있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아직도 있다. 이걸 다 치우는데는 얼마나 걸리려나 빽다방에 가서 아샷추라도 사와야지 싶었다. 지갑을 가지고 나가는 길에 냉장고의 펩시제로 한 캔을 꺼내 가지고 나갔다. 아이가 있으면 줘야지 목이 말라보였으니까. 아이가 없으면 그걸로 다행이다 쿨팩이라고 생각하고 목 뒤에 대고 카페에 가야지.
 
저기요, 하고 캔을 내밀자 아이는 아주 순순히 캔을 받았다. 말도 안되게 더운데 이미 한 시간 이상 앉아있었던 것 같다. 너무 더울텐데 이거라도 드세요. 하고 말했다. 아이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목이 갈라져서 제대로 말을 못하고 겨우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다. 아파트 통로인데도 후덥지근하다.
 
나는 걸어서 10분, 15분 정도 되는 카페까지 걸어가며 생각한다. 내가 돌아갈 때도 아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하지. 스마트폰 배터리는 있는 것 같은데 부모가 어디 멀리에서 오고 있는건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는데. 어디에서 봤더라. 콜라에 카페인이 들어있는데 초등학생이면 마시면 안되는거 아닌가. 
아샷추를 샀다. 그것도 큰 사이즈로. 그리고 그걸 들고 평소의 반도 안되는 속도로 느릿하게 걸어간다. 아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하지. 곧 1시가 되고 2시가 되면 더 더워질텐데 어떻게 하지.
 
언덕 등성이를 올라가는 나무 계단에서 나는 속으로 애타게 기도한다. 제발 다른데로 가게 해주세요. 걔가 기다리는게 누구이든 이 더운 날에 걔를 그만 기다리게 하게 해주세요.
 
계단에 앉아있는 뒷모습을 보니 다행히 콜라는 마시기로 한 것 같았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보니 가끔 동네에서 보이던 중학생인 것을 알았다. 우리 동은 아니다. 우리 동 같은 라인에 친구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이면 항상 아파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아서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고 그냥 말라깽이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저기, 12시부터 앉아계시지 않았나요? 더운거 괜찮으세요? 아이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좀 두서없이 대답한다. 아 친구가 1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자고 있었데여 지금 일어났다고 해서 2시에 만나기로 했어여. 아이는 얼굴에 난 여드름을 가리는 버릇이 있는지 얼굴을 가리며 웃는다. 아 친구라는게 그 못생긴 남자 아이 얘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네. 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요리를 하려고 아샷추를 한 모금 마시고 손을 씻다가 마음을 바꿔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하나 꺼내 1층으로 내려가서 아이에게 주었다. 콜라 하나 마시는 정도로 열기가 가셨을리가 없을거고. 그 나이대 남자애들이 흔히 그러듯이 배려 하나 없이 더 기다리게 할 거라는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
그 뭐냐. 친구가 2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면 그냥 집으로 가세요. 아이는 문자로 따지면 ㅎㅎㅎ정도 될 듯한 웃음 소리를 내며 차가운 탄산수를 받았다. 다시 엘베를 타려고 올라가는데 소리가 너무 크게 나지 않게 조심히 잡아서 탄산수 뚜껑을 여는 소리가 났다.
지금은 고기를 재워두고. 빨래가 돌아가길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글을 쓰는 사이 2시 20분 쯤 되었고 지금쯤 말라깽이 아이는 다른 말라깽이 친구를 만나서 원래 하려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 아까 그렇게 놀랐냐고 하면.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흘낏 그 아이를 보는데 내 아이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나는 결혼을 한 적도 없고,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이 없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나는 그 새처럼 마른 아이를 잘못 보고 깜짝 놀라 입술을 깨물었다. 잇몸에 고여있는 피를 닦아내자 입술에서 난 피가 다시 이빨에 맺혔다.
 
이상하지 애초에 나한테 아이가 있지도 않았는데 왜 입술을 이렇게 아프게 깨문거지. 하고 또 다시 생각한다.
 
 
2024년 7월 28일 너무 더워서 정신이 이상해버릴 것 같은 날에 쓴 글이다.

(아래의 이야기에는 어떠한 진실도 없다. 진실이 있다면 아버지의 음악 취향 정도이다.)
 


...이런거 물어보는게 너무 쓰레기 같은 질문이지만 우리가 어떤 사이였지?
 
그러니까, 대단한건 아니고. 스마트폰에서 뭔가를 검색하려고 찾다가 우연히 네가 보냈던 문자가 검색에 걸렸어. "ㅖ"인지 "ㅕ"인지 하여튼 모음만 저렇게 쓰는 일은 별로 없잖아. 그래서 네 문자가 나왔어. 너 이상한 오타를 냈더라. 하여간 네가 저 문자를 보낸지 진짜 몇 년이나 지났더라.
번호는 있는데 이름은 지우지 않았고 문자를 주고 받은걸 보니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네가 누군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 이름을 지운 걸 보니 그렇게 좋은 형태로 관계가 끝이 난 건 아니었겠지만 굳이 문자를 지우지 않은 걸 보면 널 완전히 잘라내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근데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두 세번 읽어보았지만 하나도 기억이 안나. 이제 몇년이나 지난 일이니까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겠지만. 문자 타래를 지우려고 하다 보니까 네가 누군지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진>
같이 찍은 사진이 있으려나. 문자를 주고 받은 날 기준으로 앞 뒤 한 달 두 달 정도를 천천히 찾아보자 네가 있을수도 있어. 최소한 너랑 같이 있을 때 찍은 밥 사진이라도 있겠지. 너도 알지만 나는 사진을 좀처럼 지우질 않아. 사진이 없으면 어떤 일들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게 되니까. 그거 알고 있어? 꿈은 보통 그냥 머릿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나쁜 꿈을 꾸더라도 그걸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등 적극적으로 기록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고 그냥 머리 속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금방 잊어버린다고 하더라. 나는 그래서 너무 괴로운 꿈을 꾸게 되면 그걸 잊어버리도록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있어. 잠깐만 내가 너한테 이 얘길 했던가?
 
아 사진. 사진 얘길 하고 있었지. 나는 진짜 사진을 지우는게 힘들어. 사진을 지우면 진짜로 그 시간이 지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래서 내가 아주 싫어하는 기억들에 대해서는 일부러 사진을 더 지우는 적도 있지. 예를 들어 바람을 하도 피우던 여자친구 같은거 있잖아. 사진은 싸그리 지워버렸거든 그래서 몇년이 지나버린 다음에는 걔와 했었던 일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딜 갔었는지 뭘 먹었는지 그런게 다 흐릿하고 사진 속에는, 예를 들어 수족관 앞에서 바다거북 흉내를 내고 있는 내 사진은 아주 어색하게 혼자 찍혀있지. 그 앞 뒤엔 무슨 일을 한건지 아무 것도 찍혀있지 않아. 아주 잘라내버린 것처럼.
 
너랑 사진을 찾다 보니까. 지금은 해외로 아주 가버린 친구와 찍었던 사진을 찾았다. 정확히는 그 친구를 찍은게 아니라 그 친구와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광고판을 찍은 사진이야. 웃기지만 그 광고판 사진을 보니까 그날 친구랑 무슨 얘길 했는지 내가 얼마나 걔를 좋아했는지가 다 기억나네. 의외라고? 나도 사람을 좋아하긴 해.
근데 너랑 찍은 사진은 없다. 사진을 찍지 않은걸까 아니면 네가 정말 싫어서 찍힌 사진을 모두 지운 걸까.
 
<음악>
뭔가 기록이 있다면 그냥 사소한 실마리만 있으면 네 이름이 떠오를 것 같아서. 그 당시 들었던 음악을 좀 찾아보고 있어. 알고 있지 않았어? 그 때만 해도 나 음악평론 블로그(가명으로)하고 있었을 때니까. 그 블로그 인기도 하나도 없었고 날려버린지 오래지만 그래도 트위터도 그렇고 여기저기에 계속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는 적어두었거든. 아마 그 때 쯤에도 어딘가 전세계 적으로 아무런 흥행 돌풍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힙합 레이블이나 락 밴드 음악이나 듣고 있었을거야.
그걸 들으면 네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까? 나 네 동생 이름도 완전히 까먹었거든. 네가 누군지도 잊어버렸으니 네 동생 이름이 기억날 리가 없지.
 
하여간 음악은 참 편리하지 않아? 그 때 듣던 노래를 들으면 그 때가 생각나잖아. 사람들이 그래서 유행가를 듣는지도 모르지. 나는 비틀즈를 들으면 항상 어릴 때가 기억나. 주말이면 아버지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곤 했는데 (대부분 할아버지 댁이었지) 아버지 취향이 모차르트 좋아하고 팝송만 듣고 그런 묘하게 속물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반쯤 잠이 들어서 꾸벅꾸벅 졸면서 비틀즈를 들었던 기억이 되게 많거든. 아버지의 비틀즈 앨범은 본인이 맘대로 편집한 본인만의 베스트 앨범이라서 비틀즈의 어떤 앨범을 들어도 조금씩은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가던 그 밤의 생각이 나. 그래 너한테 이 얘기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한테 비틀즈 뭐 좋아하냐고 물어봤던가? 그래 그 때 처음 LHCB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페니레인 얘기도 한 것 같은데...그건 MMT거든. 근데 나 그 때 아직 20대였는데 왜 비틀즈 같은 얘길 했지.
 
아 근데 딱 너랑 연락 할 때 쯤 들었던 노래 확인해보니까 뜬금없이 한국 대중 가요인데? 심지어 리믹스 버전이고 이 가수의 이 리믹스가 실려있는 앨범은...애플뮤직에도 유튜브 뮤직에도 없어. 음 잠깐만 멜론 딱 한 달만 구독할게. 들으면 뭔가 기억이 나지 않을까?
 
<SNS>
아니. 지금 이 노래 일주일째 듣고 있거든. 적어도 백번은 들었을텐데 아무 기억도 안 나는데? 그냥 좋은 노래란 것은 알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음악 취향은 나랑 제일 잘 맞는구나. 나 아직도 네가 누군지 생각이 안나. 이름도 생각이 안나.
이럴 때는 일기장 같은게 있으면 편할텐데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아. 그 뭐냐 일기를 쓰면...나중에 내가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을때 사람들이 그걸 다 읽을거 아냐. 걱정도 팔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진짜로?
 
근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진짜 궁극의 해결책이 있는데. 내 SNS를 검색하는 거야. 그 날짜에 해당 하는 글을 읽다 보면 뭔가 ...힌트라든가...그런게...아니 근데 나 진짜로 SNS는 예전에 엄청 많이 해서 온갖 블로그를 다 했거든.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을 때 마다 하나씩 태워버려서 지금에야 남아있는 계정이 없지만. 웃기게도 카카오스토리에는 내가 좋아한 그림(그것도 순수 회화만)을 간간히 올리다 보니 없애질 않았고. 인스타랑 트위터도 그대로 남아있어. 몇 번이나 없애려고 했는데 안 없애고 그래도 있다고. 너 그 강남에 강남대로 가기 전에 오른 쪽 골목으로 돌면 있는 건물 3층인가 4층에 있는 파스타집 기억나? 엄청 넓고 사람은 별로 없는데 칵테일을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어서 나 거기서 술 엄청 마셨는데. 너랑 몇 번 가지 않았나? 가서 술만 엄청 마신 것 같은데. 거기 사진 정도는...어 아냐 나 거기 너무 어두워서 사진 찍는거 포기했었는데. 사진이 없으니 인스타에 뭔가 남아있을리는 없고. 잠깐만 지금 네가 기억날 것 같았는데.
...
아니 모르는척 하는게 아니고 진짜로 기억 못했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당시의 나에게 너는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나봐. 화났어? 근데 내가 정말로 너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어쩔수 없는거야. SNS를 검색하는건...그만두자 진짜 끝도 없는 일이고. 특히 나 내 텀블러 백업해둔 파일 그거 열면 안돼. 아니 진짜로 거기에 네 이름이랑 내가 찍은 네 포트레이트가 있어도 안 열어볼거야. 진짜 안 열어볼거냐고? 어 없는거 알고 있거든 거기 네 이름은 없어.
 
<이야기하기>
그러니까 나는 이제 네가 누군지 알 것 같아. 좀 더 노력을 하면 네가 나에게 했던 말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건 네가 남긴 문자를 볼 때 부터 알고 있었어. 아무도 깨어있지 않았을 것 같은 시간에 보낸 문자라든가. 내가 아무 대중 없이 보낸 문자에 후다닥 보낸 답이라든가. 더럽게 재미없는 얘길 하는데도 웃어준거라든가.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너를 내가 통채로 잊어버렸다는게 결국 내가 너에게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걸 알수 있어서. 몇년 아니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갑자기 네가 누군지 궁금해졌어.
다른 무엇보다. 네가 다시 친구를 해달라고 보낸 문자에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어떤 말을 할 자격이 없어.
 
너를 만나지 않게 된 후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 친구도 많이 생겼고 많이 생긴 만큼 많이 잃었지. 되도 않는 농담을 하면서 살았고 쓰지 않아도 될 글들을 많이도 썼지.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었어 네가 걱정했던거랑 다르게 말야. 왜? 내가 그렇게 세상 끝날까지 사람을 싫어하면서 살 줄 알았어? 
 
너에게 화를 낸 건. 그래 온당하지 못했어. 나는 항상 내가 이성의 화신이라도 되는 듯 굴지만 전혀 그런 사람이 아냐. 형편없는 사람이지. 너에게 그렇게 화를 내선 안되었었는데. 네 상처 받는 얼굴을 봤을 때 그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 뒤로도 똑같은 실수를 몇번이나 했어. 그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겠지만.
 
너는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었고. 아마 지금 이 마음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 둘을 구할 수는 없을거야.
...그래도 이 멍청아 내가 널 진짜로 잊어버리기 전에 나한테 뭘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지 그랬어. 나는 아직도 너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 밤에 너는 뭘 하고 있냐고.
 
그리고 어쩌지. 나 이제서야 네 이름이 기억났어.
 
24년 7월 26일 비가 오는 날 밤에 쓰는 글이다.

 
당신이 바다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 하는게 나을 것 같네요. 당신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결정론자입니다. 운명론자라고 하는 편이 낫겠네요. 왜냐하면 저는 아주 유치하고 자기 위주인 방식으로 운명론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자신이 운명론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주 어릴 때였습니다. 기도를 하면 누군가가 저에게 맘에 드는 장난감을 사줄거라고 믿을 때였으니까요. 저는 어린만큼 사물을 그렇게 주의깊게 보지 않았고 생각을 여러 번 하지도 않았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쉽게 바뀌나요.) 그 나이 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어 여러가지를 세상과 어른들에게 기대하곤 했는데 그만큼 간절했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어쩌구 로봇 자동차를 받게 해주세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해하게 해주세요, 오늘은 맞지 않게 해주세요, 어른들이 저에게 친절하게 해주세요 같은 것들 말입니다. 바라는 것이 많은 만큼 실망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실망했던 날. 혼자 흙투성이가 되어서 놀이터에 앉아서 울던 날. 저는 제가 바랐기 때문에 그 일들이 일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것들을 기대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가 아니라. 내가 머릿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어떤 훌륭하고 강력한 존재가 그걸 엿듣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버린다고. 누구에게도 그런 생각을 말할 순 없었지만 어린 저는 한동안 그 생각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심부름을 할 때 계산대 앞에 서서 돈 계산을 겨우 겨우 할 정도의 나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피했습니다. 작은 행운이라도 있길 기대하면서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생각을 다짐처럼 계속했습니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무엇일까요? 핏줄이라든가 태어날 때의 별의 위치라든가. 하여튼 그런 것 일까요? 스무살이 좀 지나서 저는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자신이라고.

그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누군가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거나. 우리의 노력이나 성품이 곧 운명이 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저는 아주 오랫 동안 저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우리의 운명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저의 말이 맞다면. 저는 제 운명을 아주 오래 전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있었던 셈이겠습니다.
 
당신은 어떠셨습니까? 운명을 믿으시나요? 아니면 별로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사람들은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지 않나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대단히 운이 좋은 사람이고 주변에 사람들이 친절해서 무슨 일이든 잘 풀린다고 말하더라고요. 또 어떤 사람은 자기에겐 행복 같은 게 사치이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선 안된다는 사람도 있었고요. 어느 쪽이든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좋아했습니다. 그것이 불행이든 행복이든 간에.
 
가끔, 운명 같은게 어디있어? 운명은 내 스스로 개척하는거지 라고 강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틀렸다는 얘길 하는 건 아니에요. 근데 그냥,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가끔 불안해 질 때가 있지 않나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 보다는 누구든 거대한 손이 당신을 조종하여 앞으로 당신에게 닥칠 불행을 피하게 해주고 앞으로 가게 하고 있다고 믿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하지 않나요?
운명의 진실이 어떻든 간에 삶은 여간 잔혹한게 아니고 그걸 받아들이며 계속 살아가기란 쉽지 않잖습니까.
 
저에게 일어났던 운명론적 이상한 일들을 몇 개 더 말해볼까요? 저는 이상하게 말입니다. 연애를 하던 도중에 이성과 단 둘이서 술을 마시게 되면 1,2주 내로 스마트폰이 박살나곤 했습니다. 처음엔 친구들과 하던 그냥 농담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진짜로 그렇게 되어서 휴대폰을 소중히 다루게 되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한 네 번 정도 연속으로 (그들끼리)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농담이었는데 두 번 정도 연속으로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던 이후로 세번째 상대에게 혹시 고등학교 ㅇㅇ인가요? 라고 물어보고 난 뒤로는 농담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저희 동네 고등학교냐고요? 아뇨 전혀 아니었어요.
 
저는 그래서 그런 묘한 징크스를 깨주는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물론 “당신은 저의 징크스를 깨주었어요!”라고 고백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 무슨 로맨틱 코미디 같은 상황이래요)
항상 여자친구 혈액형은 B형이었던 저한테(네 진짜 이해 할 수 없죠?) 어느날 데이트 상대가 저는 AB형인데 왜 그런걸 물어보는거죠? 장기라도 빼가려고 그러시나요 라고 말 할 때 저는 정말 진심으로 활짝 웃었답니다. 당신 장기는 필요 없어요 저는 A형이거든요. AB형은 A형한테 수혈도 못한다니까.
 
그 외에도 저는 온갖 징크스와 운명론에 대한 이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말해 줄 수 없어요. 제 약점이니까.

사실 위에서 얘기한 것들은 모두 이미 깨져버린 운명들이랍니다. 말하고 보니 판타지 소설 같고 멋있네요. 저는 AB형 여자친구도 있었고 O형 여자친구도 있었습니다. 진짜 많이 좋아했어요.
스마트폰이 깨지는 건 지겨워서 연애를 하던 도중에 이성과 단 둘이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건 뭐라고 말하기 그렇네요. 근데 아시잖아요 액정 수리비는 정말 비싸답니다. 테스트해보고 싶지 않아요.
 
제 첫번째 운명론적 이론은 깨졌냐고요? 그 뭐라고 해야하나. 요즘에도 자주 생각하긴 해요. 기도 같은 거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나쁜 시나리오들을 상상하고 그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건설적인 것 같죠?

하지만 이제까지 몇 번 제가 생각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들을 생각하고, 또 그게 이루어지는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진짜 운명에 얻어맞은 것처럼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머릿 속으로 나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는 것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머릿 속으로 만약에 일어날지도 모를 행복한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아시잖아요. 저는 정말 오래된 탑처럼 먼지가 되어 무너지고 말겁니다.
 
얼마 전 저는 혼자 땡볕 아래 공원에 앉아서 아무 생각도 안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 말도 못하는 시간낭비를 한 셈이었죠. 그것도 섭씨 32도가 넘어가는 폭염 아래에서 말이죠.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이 미쳤는데.

뭐냐면. 대학교 시절 아직 신촌에 멀티 플렉스가 아닌 극장이 있던 시절에 친구들과 2:2로 데이트를 했던적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진짜 재미로, 순전히 재미로 극장 안에 있던 사주팔자 머신(하하 진짜 20세기 같은 이름이다)에 각각 몇천원씩 넣고 사주 팔자를 보았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멀쩡하고 평범한(두뇌가 뛰어나고, 관운이 있으며...외모가 뛰어나 결혼운이 있으며...어쩌고) 사주가 나왔는데 이상하게 저만 아주 이상한 사주가 나왔는데 거기 뭐라고 써있었냐면.
 
"많은 사람을 구하나, 스스로를 구하진 못한다."- 라고 써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엄청 어색해져서 잡담을 하다가 그냥 영화를 보러 들어갔는데. 무슨 영화를 봤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냥 이상한 문구만 기억나지.
 
그리고 웃기는 것은 몇 년이 지난 후 군대에 갔을 때 전산실의 친한 선임에게 웃기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얘기해줬더니. 얘기를 심각하게 듣고는 잠깐만 기다려봐 그러고는 사주팔자 프로그램(아니 뭐야 그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며 한 번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딱히 안 할 이유는 없었어서 해보았는데 전에 극장에서 했었던 사주랑 전체적으로 하나도 맞는 것은 없었는데. 끄트머리에 비슷한 문장이 있더라고요.
 
"사람들을 외로움에서 구하나, 스스로를 구하진 못한다."
 
선임에겐 별 말 하지 않고. 아 지난번이랑 하나도 안 똑같네요. 하고 웃었습니다.
 
그 뒤로도 사주는 꽤 보았습니다 재미있으니까 장난으로 사주를 본 적도 있고. 전문 역술인에게 돈을 내고 본 적도 있고요. 저는 물을 타고난 사주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제가 전 여자친구와 결혼했다면 멀지 않아 죽었을거라고 하더하고요. 박수를 치며 웃었습니다.
사주 팔자 머신으로 운세를 본 뒤, 그 뒤로 몇년 동안. 아니 십 몇년 동안 저 문구가 생각납니다. 가끔 무슨 문구인지 생각을 해보는 때도 있습니다. 말도 못하는 시간 낭비이죠. 이젠 정말로 저 문구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니까.

그런데 말한 것 처럼 저는 운명론자, 그것도 대단히 어리광쟁이인 운명론자입니다 당신도 익히 알다시피요.

그래서 제 유일한 친구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나서, 아니 그렇게까지 오래 시간이 지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어느날 당신이 바다에 다다르게 되면. 검고 먼 잿빛의 바다와 바다를 따라 끝이 없는 백사장 사이 어딘가에
혼자 앉아있을 저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때 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라면 저를 알아 볼 수 있을테니 잠시만 제 옆에 같이 앉아주세요. 그리고 제 어깨를 두드리고 눈을 바라보며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아무리 먼 훗날이 지나도 제가 당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그것이 저의 부탁입니다.
 
24년 7월 25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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