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나는 러닝 코스라도 찾아볼까 싶어서 가벼운 차림으로 집 근처 산책을 나갔다. 내가 사는 곳은 수도권의 공업 도시로 넓은 산업 연구 단지와 그 기반 시설로 몇천 단위의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라 어디를 돌아다녀도 길게 달릴 만한 곳은 없었다. 크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도 주변은 그래도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3킬로미터 정도의 직선 루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후보지를 몇 군데 선정하고 나가보았던 것인데. 이내 나는 길 주변을 까맣게 채운 까마귀들에 질려서, 아니 겁먹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까마귀들의 겨울 도래지가 된 것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겨울철 이 지역을 찾아와 산과 들에서 겨울을 지내던 까마귀가 도심지나 국도로 모여든 것은 정말 최근의 일로, 이 도시의 배경지였던 전답과 야지가 차례차례 개발되어 아파트가 된 탓에 밤에 안전하게 보낼 곳이 없어진 까마귀 떼들이 나머지 도심지로 몰려든 것이다. 송전선들이 집중되는 교통의 요지일수록 (전깃줄이 많아) 말 그대로 까맣게 까마귀로 가득해서 저녁 나절이 되면 히치콕도 질릴 정도의 까마귀떼가 몰려들고, 땅에는 일부러 뿌려도 어려울 정도로 하얗게 새똥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도 이런 상황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파트 단지와 회사로 이어지는 좁은 루트만 반복해서 돌아다니고 있어서 이 정도로 심각한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전깃줄에 매달려 있는 까마귀 떼를 보고 거의 질려 도망을 갔고. 나 말고도 다른 행인들이 파랗게 질려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까마귀라고 하면 반포지효라든가 오비이락이라든가. 여러가지 관련된 사자 성어도 많지만 무수하게 몰려있는 까마귀들에 대해서 표현한 문장은 찾기가 어렵다. 지금 그나마 생각이 나는 수도 많은 까마귀에 대한 문장으로는 ‘三千世界の鴉を殺し、主と添寝がしてみたい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이고, 서방님과 늦잠을 자고싶구나)’ 라는 일본의 도도이츠 (都々逸、남녀들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던 속곡)가 있다. 이는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나 19세기 일본 양이지사였던 다카스키 신사쿠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해석하면 까마귀가 우는 아침이 되면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실테니, 삼천세계 즉 사바세계의 까마귀를 모두 죽여 아침이 오지 않게해 당신과 함께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구나...라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유명한데. 하여간 여성의 깊은 애정과 그 깊은 애정을 실현하는 방식의 과격함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왜 하필 까마귀이냐 하면, 사실 까마귀는 아침에 우는 새로 유명해서지만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사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성 때문에 저 위의 도도이츠에서 한 발짝 더 나간 해석도 있는데.
고전 라쿠고로 유명한 산마이키쇼三枚起請라는 이야기의 베리에이션 중 하나로. 대략 내용을 설명하자면 남자손님과 쉽게 결혼 약속을 하는 기녀를 둘러싸고 그 기녀가 손님 중 세명과 결혼 약속을 한 걸 알게 된 남자들의 호들갑을 떠는 것이 이 라쿠고의 주요 스토리인데 앞 부분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다 빼고 까마귀에 대한 것만 설명하자면.
마지막 부분 드디어 기녀가 신의가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너같은 신의가 없는 사람들 때문에 (계약과 신의를 담당하는) 우에노 신사의 까마귀가 한 번에 세마리씩 떨어져 죽는 것이다!’라고 말하자 기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세상의 까마귀를 모두 죽이고 싶은데요?’ ‘아니 까마귀를 죽여서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럼 느긋하게, 아침잠을 자보게요’ 라고 대답하고 라쿠고는 끝이난다.
아까 위에서 설명했던 유명한 도도이츠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비틀어서 남자가 다 뭐냐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느긋한 아침잠이다 라는 기세 좋은 대답으로 끝내는 셈이다.

근본적으로 이 라쿠고에서 나오는 키쇼라는 것이 기녀가 기녀에서 은퇴했을 때 누군가에게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문서, 요는 키쇼를 세 장이나 썼다고 못난 남자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세 장을 쓰든 네 장을 쓰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종이 한 장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그 근성이 마음에 안든디. 나는 원본의 도도이츠보다 이 라쿠고에서의 주인공이 하는 저 마지막 대사를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까마귀는 억울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인간인데 우에노의 까마귀들이 떨어져 죽어야 하는가. 게다가 인간이 늦잠 좀 자겠다고 (까마귀가 좀 시끄럽기로서니) 그걸 다 죽이겠다고 하다니. 삼천세계이든 우에노든 까마귀가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둘 다 다를 바가 없다.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까마귀의 서식지에 아파트를 잔뜩 지어버리니 도심지로 까마귀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 분연히 주먹을 쥐고 역시 까마귀는 나쁘지 않다 보통은 인간이 나쁘다. 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국도변 보도를 완전히 하얗게 물들인 까마귀 똥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그걸 물로 청소 하고 있는 자영업자 분들을 보면 아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인간에게도 나름의 억울한 부분이 있어! 하는 생각이 들고 최대한 까마귀가 없는 도로로만 다녀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느 날 나는 오늘에야 말로 새로운 루트를 찾아볼까 싶어서 잘 가지 않는 길로 가보다가 국도 곁 야지가 그대로 드러나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와 쓰레기들만 가득한 구석의 어느 국도 변에서 연석과 트럭 사이에 까마귀 두 마리가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변을 찾아보았고 그 두마리 주변엔 하얗게 똥이 떨어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까마귀 떼는 보이지 않았다.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무슨 연유에 떨어져 죽은 것이리라. 묻어주기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땅이라도 팔 것이 있나 야지를 둘러보는데, 분명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까마귀가 아니 까마귀 떼가 야지 근처 나무 근처 어두운 곳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나는 쓰러진 까마귀를, 그리고 저 멀리의 까마귀 떼를 번갈아가며 보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저 땅에 떨어진 까마귀는 어떤 이유로, 땅에 떨어지고 만 것 일까. 누가 어떤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떨어진 것인가. 나는 급하게 자리를 비우고. 까마귀들은 이번만은 봐주겠다는 듯이 나를 보고만 있었다.

20년 12월의 글이다.

아니 그러니까 무려 두달을 기다려서 애플워치가 왔다. 10월 중순 쯤의 내 메모를 슬쩍 들여다보면 “연휴 중 변덕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하나 샀다. 하나도 필요 없는 비싼 전자 제품을 또 산 것이다.”라고 써있는데, 아 맙소사 변덕으로 산 애플워치를 이렇게 오래 기다려서 받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 들러서 로그인을 했고. 자기 구매 내역을 확인하려면 꼭 두 번 로그인을 해야하게 만든 애플 홈페이지의 구조에 치를 떨었다.

마스크를 재빨리 내려서 페이스 아이디로 로그인을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할 동안 내 기대치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두근두근 하는 마음에 구매내역을 확인하면. 항상 내 애플워치는 <준비 중>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대실망쇼에 목숨이 좀 줄었을 지도 모른다. 분명 내분비계 어딘가에 악영향을 미쳤을거라고.

그래서 매일매일 이걸 어느 시점에서 취소 하는게 가장 현명한 행동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가장 현명한 것은 이걸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만...

그런거 있지 않나. 정말 필요한거냐 아니면 갖고 싶었던 거냐 하고 물어보면 별로 할 말은 없다. 양 쪽 다 아니기 때문이다. 변명조차 할 수 없다. 몇 년 간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결국 산 거지만 이걸 가지고 도대체 뭘 하지 싶다. 역시 그것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애플의 마케팅 팀의 승리겠지. 이걸로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사게 만들다니.

순순히 사실을 얘기하자면 카드 결제를 하고 난 다음, 배송 예정일을 봤을 때도 주문일로부터 6~8주가 나왔다.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 8인 식탁을 부탁해도 저것보단 빨리 도착 할 것 같았지만 당시 나는 거꾸로 좀 안심이 됐다. 그 동안 좀 갖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구매를 취소해도 될 것이고, 8주는 충동구매를 반성하고 스스로 뺨을 두대 정도 때린 다음 카드 결제를 취소한 후 안심하기 까지 충분한 시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이번이 웨어러블 기기를 산 처음이 아니다. 그것고 굉장한 돈 낭비였는데.
순토의 카일라쉬라는 모델로 발매 당시 120만원 쯤. 정확히는 웨어러블이 아니라 아웃도어용으로 유명한 메이커에서 스마트폰 연동도 되는 모델을 발매한 것인데. 코퍼 모델의 간지에 반한 데다가, “특정한 위치를 입력하면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그곳까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먼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 불명의 기능에 마음을 빼앗겨 그만 사고 말았다. 너무 인문계스러운 프로모션 포인트 아닌가요. 내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위치를 등록해 두면 너와 나의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어...하고...

네 물론 거의 쓰지 않았고 방 찬장에 그대로 있습니다. 처음엔 여행 갈 때 마다 차고 나갔는데, 생각해보면 제가 여행을 가는게 무슨 오지도 아니고...그냥 일본이나 하여간 아시아 어딘가라서 딱히 방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물론 툼레이더 리부트 작에선 고대 히미코국의 유적이라면서 일본의 오지가 나오지만 제 말을 믿으세요 일본에 그런 오지는 없습니다. 식생도 우리나라랑 거의 같아서 방향을 몰라도 휘휘 동서남북 한 번 돌아보면 방향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 같죠? 제가 홋카이도를 몇번이나 갔다고 생각하시는거에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시계를 차고 다니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 이틀에 한 번은 충전해줘야 하는. 그리고 기능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과 이동루트를 트랙킹해주는 것 밖에 없는 물건을 차고 다닐리가 없었다...(물론 다른 기능도 자잘하게 많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쓰는 건 그 정도였습니다)는 얘기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플워치를 산 건 실수구만 싶긴 한데. 심지어 내가 샀다는 얘길 뒤늦게 듣고 구매버튼을 누른 친구가 나보다 3주 먼저 애플워치를 받았다. 3주 먼저 라기 보다 그 친구는 그냥 일주일 동안 배송이 빠른 다른 쇼핑몰을 쳐다보고 있다가 재고가 뜬 걸 보고 바로 주문을 했고 그 다음날 애플워치를 받았다. 100% 재생 알루미늄이라는 이유로 조금 장난감 느낌이 나는 블루 컬러를 산 나와는 다르게 친구는 스테인레스를 샀다. 과연...싶을 정도로 예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으며. 나는 지금이야 말로 구매를 취소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과 아 억울해 진짜 이거 올 때 까지 기다린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취소를 정말로 누르려던 날, DHL의 배송 번호가 떴다. 그러고도 약 7일간 추적 루트에 아무것도 뜨지 않아. DHL마저 나를 속이려는 건가 (저는 일 관련으로 DHL에 관해서는 무분별한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하고 화가 날 때 쯤에, 갑자기 회사로 DHL트럭이 찾아와 시계를 받았습니다. 어...감사합니다.

유용하냐고요? 어...일단 이제와서 이런 얘기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시간 감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기차타고 다닐때 익힌 능력인데 대체적으로 지금 몇시 몇분인지를 가늠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시계가 거의 필요 없습니다. 몇분이 지났는지도 대충 안다고요. 그래서 시계 페이스는 정보값이 제일 적은 사람 얼굴을 그래피티로 해둔 것을 하고있습니다. 귀여워요 누르면 조금씩 변한다는 점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쓰는 기능은 운동기록 기능과 아침에 깨워주는 알람 기능. 그리고 아이폰이 어디있는지 모를 때 커다란 소리를 내서 알려주는 기능 정도입니다. 후회하고 있느냐 하면 아니 뭐 어차피 산거고 귀엽고 해서 딱히 싫진 않습니다.

어쨌든 제 워치는 6세대에 파란색 알루미늄. 파란색 솔라루프를 하고 있습니다. 제 손목에 차면 정말 쪼끄마하답니다.

사람이란 원래 변덕스럽고 뭔가 실수를 하는 존재니까요. 실수를 함으로서 뭔가 고민도 해보고 수습도 해보면서 성장하는게 아닐까 한다니까요. 그래서 이번 애플워치 구매도 긍정적으로...잠깐만 어떻게든 그럴듯 하게 수습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20년 12월의 글이다.

기억은 어떤 순간을 머리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기억해내는 일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일어날 일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당신은 어느날 밤 나에게 인사를 하고 급하게 사거리를 건너서 가버린다. 나는 몇 번이나 당신이 길을 건너는 것을 지켜보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당신의 뒷 모습을 처음 본 밤의 일이다.

밤은 차갑고 미지근 하다. 공기는 낮게 깔렸고 나는 오늘의 내일에 비가 내릴 것을 안다. 우리는 내일도 만날 것이고 나는 또 똑같은 뒷모습을 보내고 혼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실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날 밤은 내가 당신의 뒷모습을 보는 첫번째 날이다. 나는 내가 신은 나이키의 콧등을 보고 번화가의 진열장을 쳐다본다. 그 때 내가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당신이 떠나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 하고 어서 돌아가 오늘 마저 읽지 못한 책을 더 읽어야지 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당신은 나에게서 도망치는 것 처럼 가버리고,
나는 당신이 가버리는 장면에서 등을 돌려 그 가버리는 모습을 끝까지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당신이 가버리는 장면에서 등을 돌려 그 가버리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쳐다보려고 애쓴다.

혹시 당신이 나를 한 번 더 쳐다보지 않았을까 하고 바란다.
내가 원한다면 나는 당신이 내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신은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고 나 또한 당신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기억 속의 장면을 삼키기 위해 노래를 떠올린다.

- 해가 반짝이는 날 구름도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기마저 달콤한 그날.
- 당신 나에게 그 거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거리로 갈 수 있죠?

실제로 그러지 않았음에도 그 장면의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는 나를 삽입한다. 꼭 그렇게 하면 시간을 되돌려 길을 건너는 당신에게 내 노래를 들려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나는 술집의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미 술에 얼큰하게 취해 얼굴이 빨개진 나는 안 좋은 버릇으로 먹지도 않을 안주를 뒤적거리며 이것도 저것도 더 시켜볼까 하고 생각한다. 테이블 건넛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상대도 이미 한참 취해서 더 이상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눈치이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들라크루와 그리고 쇼팽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니 이젠 음악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 겨우겨우 회사원이나 하고 있는 제가 예술이 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건 주제넘은 일이지만

이라고 말을 꺼내면서 나는 주제넘게 예술론에 대해서 길고 지루한 의견을 말한다. 사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삶은 콩을 좀 더 시킬까였으면서, 상대의 눈치까지 보며 혹시라도 틀린말을 하게 될까봐 고리타분한 고전 독일의 미학론보다 하나도 나을게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칸트의 미학론이었던가 괴테의 미학론이었을까. 학교에서 배운 애매모호한 그리고 이제와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렇게 상대가 내 말에 질려하고도 남았겠지 하고 내심 안심하는 시점까지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상대가 하는 말을 놓친다.

네 뭐라고요? 라고 다시 물어본다. 상대는 약간 풀린 혀로 그럼 님이 생각하는 예술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냐고요? 라고 다시 말해준다. 당황한 나는 너무 바보 같은 말투로 더 바보 같은 대답을 한다.

-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요.

...

녹음 된 파일을 본다. 200X년 X월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녹음 파일은 여러 개이고 젊은 나의 목소리이다. 건방지고 오만하고 자신에 차있으며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어딘가 운동장이나 역의 뒤 구석에서 스스로만 납득 할 수 있는 이론들을 녹음하곤 했다. 때때로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새벽이 흐리게 시작되는 그런 때면 감정에 복받쳐서 더욱 아무 말이나 하곤 했다.

그 중에 하나를 들어본다. 녹음된 상태는 좋지 않고 파일의 시작부분에 차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소리가 같이 녹음되어 있다. 나는 이 녹음 파일이 어디서, 왜 녹음된 건지 떠올리려고 한다. 목소리는 약간 술에 취한 것 같고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 모든 이야기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불멸이란 결국 죽음에 대한 복선이다. 가장 유명한 불멸자인 아킬레우스가 발뒤꿈치의 약점을 제외하고 무적의 신체를 가지는 이유는. 그가 결국 그 약점으로 죽을 것을 의미한다...

200X년의 나는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듣지 않을 녹음 파일에 약 10분에 걸쳐서 결락과 제한이 만들어내는 불멸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이 불멸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두려워해야한다. 우리가 가진 영혼이 정말 불멸한다면 그 불멸하는 영혼은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후 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불멸성이라는 철학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야한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녹음된 파일을 닫는다.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녹음되어 있는지 기억 해낸다. 나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이 파일을 지울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

여덟? 아홉살때 쯤의 나. 아버지는 서른 다섯 쯤이다. 아버지와 나는 저녁을 먹고 있다. 생선을 먹던 그는 나에게 생선을 먹으면서 열역학의 제 1법칙에 대해서 설명한다.

- 쉽게 말하자면 네가 지금 먹고있는 생선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얘기야, 질량 보존의 법칙에서 모든 질량은 형태만 바꿔서 존재한다고 하지...

아버지는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만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내가 열역학을 이해하길 기대하며 한참을 설명한다.

- 젓가락으로 생선의 살을 발라내면...이 생선의 살은, 네 안에서 네 몸이 되고 또 에너지가 되어 운동을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네 몸도 다른 형태로 바뀌어서 다른게 되는거야 어느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고 순환하게 된다.

- 지금 내가 말한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돼?
하고 아버지는 묻는다.

서른이 넘은 나는 대답한다.
관측하는 우리가 닫힌 계 안에 있으며 우리는 순환하는 것이 아닌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여 결국은 더 낮은 곳으로 사라진다는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서른이 넘은 나의 대답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묻는다.

- 이해가 돼? 세상에 어느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는거야.

아버지를 쳐다보며, 항상 과학보다 신학에 더 관심이 많았던 어린 나는 우물쭈물하다 그럼 우리의 영혼은 나중에 어디로 가요? 하고 묻는다. 불교도인 아버지는 무슨 생각인지

- 우리에겐 전생도 영혼도 없어
라고 대답한다.

...

이 우주는 불멸이 아니기에 약점도 없는 신, 브라흐마의 하루이다.
그의 하루는 길고 긴 계절로 나뉘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의 하루를 계절로 나누고 또 계절로 나눈 찰나와 같은 나눈 짧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이름은 칼리유가이며 우리는 불화와 불만의 아이들이다. 정당한 댓가와 정의는 이 시대와 조금도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당함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고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시대가 불의한 시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데서 연유한다.
우리는 얼마나 하찮고 고귀한지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우리의 삶과 칼리유가의 시대를 벗어나 신의 하루를 세려고든다.

나는 때때로 그의 하루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주 전체를 하루동안 살아가는 그와 달리, 나는 겨울이 삶의 전부인 것 처럼 살아간다.
나는 겨울에 태어나 첫번째 기억조차 겨울에 대한 것이다. 모든 일들은 겨울에 일어난 일이고 나의 평생은 겨울에 걸쳐있다. 그런 시간 밀도의 차이는 내가 그를 인식하기도 쉽지 않게 만든다. 해를 볼 수 없을 촛불에게 내일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신의 하루는 인간에겐 의문의 덩어리 일 뿐이다.
내가 그에게 질문을 힌다고 가정할때 물어볼 것은 정해져있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보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의 삶이 다 가더라도 신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오래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말들은 고스란히 신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우리의 질문에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할 때 까지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간을 가늠 해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의 대답이 도착했을 때 나는 연못 안의 얼어붙은 물고기이거나 또는 누구에게도 도달하지 못한 노래일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겠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

오늘 아침 일어나 긴 바지를 입고 집 밖에 나왔더니 발치에 낙엽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햇볕이 쨍해 모자 위에 후드를 쓰고도 눈이 부시지 않는 그늘로 걸었더니 찬 기운이 안개처럼 깔렸다. 평소보다 아침의 해가 더 낮구나 정말 겨울이 온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해가 반짝이는 날 구름도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기마저 달콤한 그날.
- 당신 나에게 그 거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 거리로 갈 수 있죠?

나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손을 내밀었고 당신은 그 손을 잡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손은 서늘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 감촉과 당신의 체온은 봄날의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나의 운명은 분명.

20년 11월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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