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조금 더 가까이로 올래요?

내 말을 들어봐요. 아주 잠시만 말하고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을거에요. 나는 모자를 잃어버렸어요. 집에 있는 모자 중 머리에 맞는 단 한 모의 모자인데 말이에요. 그만 호텔에 두고 가져오는 걸 잊었어요. 저는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고 이제 모자 없이 어떻게 울지? 하는 걱정을 제일 먼저 했어요. 당신이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아무말도 저에겐 남지 않았어요.

우연히 몇 년 전에 썼던 문장을 똑같이 한 번 더 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긴, 꼭 어디서 내가 썼음직한 문장이었고, 나는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똑같은 문장을 7년의 차이를 두고 똑같이 썼다는 것보다.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바보 같은 싸이클에 빠져든지는 한, 십년 쯤 되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잘못 되었는지는 알아도 어디서 부터 잘못 된 건지는 모르겠다. 한 쪽 끝을 꼬아 다른 한 쪽 끝에 연결 한 것 처럼 아무리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삶이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피곤해졌다. 결론만 말해보자. 나는 나 자신이 지겨워졌다.

홍콩은 오랜만이다. 몇 년 전의 나는 일년에 5,6번 정도는 홍콩에 왔었다. 홍콩에 왔다고 하는 건 좀 문제가 있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홍콩에 오면 대부분의 시간은 공항에서 보내고 가끔 고객과 미팅을 하거나 전철을 타고 심천으로 넘어가는데 시간을 보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홍콩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홍콩의 색감과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자라난 도심을 좋아한다. 맛없는 밥을 맛있게 먹는 이 나라 사람들을 좋아하고 이 곳의 밤 거리를 좋아한다. 홍콩의 밤거리는 특별하다. 이미 이 도시의 밤은 현대의 고전이나 다름없다. 내가 홍콩에 처음 왔을 때 밤 8시에 도착하여 아침 9시에 떠나는 일정이었다. 나는 무슨 생각인지 공항 철도를 타고 이름을 아는 아무 역(그렇다 커우룬 역이었다)에 내려서 밤새도록 홍콩을 돌아다녔다. 얼마나 신물이 났는지 다시는 홍콩의 밤거리를 돌아다니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심천에서 택시를 타고 홍콩공항에 가던 날을 기억한다. 흐리고 또 비가 왔다. 낡은 택시는 국경을 너머 골든 코스트를 지나는 9번 국도를 돌았다. 잠시 해가 개이고 볕이 들자 화물선이 떠있는 아름다운 바다와 길고 우아한 커브가 계속되었다. 뒷자리에 앉은 일행은 곯아떨어져 있고, 중국인 기사와 나는 할 수 있는 대화가 없었다. 나는 창 밖을 찍어보려 했지만 이런 종류의 순간은 평범한 재능으로는 담을 수 없다. 어쩌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재능과 사진을 찍어 공유 하는 재능은 전혀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결국 개인적인 체험을 공유 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화하는 것 이겠지. 그 후로 몇 번 더 같은 루트를 타고 홍콩 공항을 갔고 시간대도 날씨도 달랐지만 나는 매번 같은 순간 감동하고 홍콩에 왔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똑같이 홍콩 공항에 도착해 홍콩을 떠난다.

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홍콩을 좋아한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감정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겹도록 이 곳에 왔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홍콩”을 돌아다닌 적은 거의 없다. 홍콩 섬으로 넘어가 본 적도 몇 번 없다. 기껏해야 침사츠이를 돌아다니거나 쇼핑몰에서 밥을 먹거나 했을 뿐이다. 자주 가는 홍콩 중심가에 가까운 해변은 싫어할 수가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이 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밤의 해변에 나와 먼 곳을 쳐다본다.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야경이 아름답기 때문이겠지만, 모여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모든 건 다 핑계이고 다들 외롭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있는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홍콩은 불안정한 도시라고 했다.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100년 간 홍콩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완전한 타향으로 있었으며, 반환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타향이 된 것 같다고.

나는 중얼 거린다. 네가 여길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도. 나는 네가 여길 언제든지 떠나리란 걸 알아.

언제나 떠나야 하는 곳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나는 정말 홍콩을 홍콩 답게 사랑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신차려보면 나는 항상 홍콩 공항에 있다. 가장 오래시간을 보낸 곳은 22번 게이트의 구석진 자리이다. 정해진 것처럼 반복된 행동을 한다. 하도 돌아다녀서 공항 구석 구석 모르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십년 동안 별로 변하지 않았으니까. 불편한 자리와 맛 없는 맥도널드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공항 외진 곳에 누워 환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내 오랜 친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맛 없는 음식. 내가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 없는 음식은 홍콩 공항 파파이스의 모닝 메뉴이다. 다행히도 더 이상 세상에 슬픔과 고통을 퍼트리지 않고 없어졌다.

싱가폴인과 이야기를 한다. 홍콩은 꼭 이스턴 싱가폴 같아. 싱가폴은 꼭 웨스턴 홍콩 같고.
싱가폴인은 웃는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말한다. 그래도 음식은 홍콩보다 싱가폴이 훨씬 나아. 나는 좀 심술이 나서 아냐 홍콩 음식도 괜찮아. 라고 말한다.


이번엔 새로운 곳을 갔다. 침사츠이의 북쪽인 몽콕이다. 레이디즈 마켓이 있는 오래된 번화가이다. 와이파이를 빌려 쓰려고 잠시 들른 비즈니스 호텔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새삼 홍콩은 이런 곳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를 쓰고 저녁을 먹으러 나온 몽콕의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다. 홍콩을 열 댓 번 쯤 오는 동안 한 번도 몽콕에 온 적이 없었는데 침사츠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홍콩이 고스란히 거기 있었다. 혼잡한 거리와 너무 많은 사람이 오래된 사진 처럼 어울려서 꼭 일부러 누가 그렇게 배열해 놓은 것 같았다. 오래된 건물 벽 너머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라지고 쏟아져 나왔다. 목 없이 매달린 새와 돼지, 파인애플과 볶아지는 밥들 사이로 새로 런칭한 트렌디한 광고가 이층 버스에 실려 지나갔다. 연극처럼 연극의 배경처럼.
힙스터 플레이스가 따로 없네, 여기 오면 분명 좋아했을거야. 라고 생각하고 나는 곧 누가? 하고 생각한다. 무엇이? 왜? 어쩔수 없이 웃으면서 거리를 찍었다. 동영상의 마지막에 나는 “투머치 홍콩이다”라고 중얼거린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문장 그대로. 우리는 가끔 문장처럼 아프다.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참았다. 내가 슬퍼하는 이유를 생각 해 본다.

나는 항상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되기 전에 잠에서 깨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우리가 사도들처럼 잠이 들어있어도 일부분이 깨어있어서 잘못된 정류장에서 깨지 않도록 경계하고 주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것이 수호천사든 뭐든 적당한 이름을 붙여서- 항상 우리를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걸까? 우리는 모르는 스스로의 해악, 혹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사악함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말이지. 혹시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아픈 질문을 하나 해야한다. 우리에게 정말로 우리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있을 수 있는 걸까? 우리가 평생 체험하고 삼키는 것은 오롯이 우리 자신이 아닐까.

공항에서 나는 주저 앉아, 깨진 그릇처럼 말이 흘러나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더 이상 말이 흘러나오면, 이 얼마 남지 않은 말마저 흘러나가버리면 내 안에 뭔가가 남기라도 할까?

1번 게이트에서 255번 게이트까지 끝에서 다시 끝으로. 홍콩 공항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공항을 이유없이 걸어다닌다. 공항 안을 걸어 다닌 시간이 세 시간이 넘어가자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한 권 사고 물을 사고 젤리를 세 봉지 샀다. 이타이산 한 박스와 글렌피딕 두 병,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벤티로 사서 마신다. 할만큼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글을 쓰는 것 말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해야겠다.

22번 게이트의 구석 의자에 앉아 밤을 쳐다본다. 나는 언제나 여기에 앉는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여기에 앉아 보냈는지 모르겠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말들을 삼켜왔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리면 유일한 소원일 것이다.

곧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모자는 없다. 비행기는 서서히 떠올라 만천이백미터쯤 되는 상공을 천오십킬로미터 쯤 되는 속도로 날아오를테지만 내가 우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목이 갈라질 것처럼 울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울 것이다. 이렇게 서럽게 우는 것만이 무언가를 증명이라도 할 수 있다는 듯이.

그리고 항상 아무 이유 없이 울기 시작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갑자기 울기를 그만두고는, 내가 왜 혹은 내가 정말 그랬었는지 그 사실 조차 잊어버린 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리를 일어나 걸어나갈 것이다. 어디로 향해 가고 있을 때만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되새길 것이다. 나는 결국 (당신을 잃은 채로)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걸 기꺼이 삼킨다. 또 나 자신을 한 번 더 뒤집어 쓴다.

밤이 깊고, 낮은 가까워져온다. 비행기가 뜰 시간이 되었다.

2018년 11월 19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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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우리 집에는 집을 끊임없이 어지럽히는 키 188에 몸무게 92짜리 유인원이 하나 있고, 그를 저지하거나 그의 뒷처리를 하기엔 너무나 무기력한 A형의 30대 남자가 하나 있다.

거실에는 책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쌓이고 있다. 한 달에 10만원 어치만 사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달에 30만원 어치 정도 사고 있다. 간단히 계산해보자, 대충 일주일에 소설이나 에세이면 세네권. 좀 집중해야 하는 책이면 1.5권 정도 읽으니까. 내가 한달에 읽을 수 있는 책은 대략 가벼운 책 15권 혹은 무거운 책 6권이다. 가격으로 계산해보면 가벼운책 12만5천원 어치 혹은 무거운 책 18만원 어치 정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이런 속도로 가다간 매달 10만원 어치 이상의 책 무덤이 생긴다. 1년이면 120만원, 가벼운 책으로 100권 무거운책으로 40권이다.

내 주요 생활 공간은 거실이다. 거실의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운동도 거실에서 한다. 그래서 어지러지는 것도 거실이다. 어느날 내가 하는 집안 일 중에서 제일 무의미한게 뭘까 생각하다가 거실의 의자에 입고 난 바지를 쌓아두고 한 꺼번에 세탁하기 시작했다. 또 어느날 빨래를 다 하고 개는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빨래를 개지 않은 채로 소파 옆에 쌓아두다 한 꺼번에 개기 시작했다. 내 거실에는 신라의 왕릉처러 책의 무덤 바지의 무덤 빨래의 무덤이 있다. 

설거지가 싫다. 바닥을 청소하는게 귀찮다. 그러나 위생에 문제가 생기는 건 싫어서 매번 요리를 할 때 마다 세면대를 씻고 억지로 다이슨과 물걸레를 꺼낸다. 목욕 할 때 마다 스프레이를 칙칙 뿌리고 스윽스윽 솔로 여기저기 문지르고 욕조물로 휙휙 청소를 한다. 그럴 때 마다 집에 누가 놀러오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 이상 깨끗하게 집을 유지 하는 건 어려울거야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저 책의 무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추석 전 맞이를 위해 냉장고를 청소 했다. 종량제 봉투 두개에 남은 식자재를 눌러 담았다. 무화과가 반이상 썩어서 눈물이 나왔다. 인간이 미안하다. 다시는 사 먹지 않을게. 하고 우르르 쏟아 담았다. 종량제 봉투가 다 떨어졌다. 오늘은 분리 수거를 하고 종량제 봉투도 사야지. 페트병과 상자를 안고 분리수거를 하러 간다.

내가 이 아파트에 이사온지 6개월이 넘었다. 그 동안 대략 28가구의 사람들 73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 동에 40가구가 살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성적은 아니다. 출근하는 시간도 퇴근하는 시간도 좀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자주 부딪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대체적으로 중학생 이하의 자식들이 있는 가족이다. 젊은 부부들도 있고 손자를 봐주는 노부부도 있다. 외국인도 두 가구가 있다. 내가 이사 온 후 이사를 가고 온 집은 3가구, 6개월 동안 3가구라니. 이론적으로 모든 가구가 전세라면 한달에 두 가구 정도는 항상 이사를 가야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부분 이 오래된 아파트에서 자가로 살고 있는 걸까? 외국인은 분명히 전세일텐데, 나 말고 전세가 세 가구? 나는 너무 자세한 걸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의 대체적인 인상만 남기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종량제 봉투까지 담아서 버리니 역시 봉투를 사러 가야겠다. 사실 오늘은 감기로 연차를 썼다. 오늘이 아니면 이번주 내내 아플 수 있는 날이 없다. 나는 다음주 추석 연휴에 이어서 쓴 휴가도 취소하려고 생각 중이다. 여름 휴가를 결국 안 쓰게 되었다. 어차피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고 집에서 책이나 읽었을게 틀림없다.

바닥청소에 대해서 생각하자. 지금은 먼지를 대충 털고 다이슨으로 바닥을 청소하고(여기까지 몹시 스무스하고 쾌적하다) 물걸레로 바닥을 민다. 쾌적한 부분인 진공청소기 돌리기 까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바닥을 닦지 않는다면 앞의 두 공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물걸레로 바닥을 미는게 싫다. 싫은 걸 정당화 하기 위해 물걸레 청소기를 검색해본다. 시집가기 전엔 안 살래요. 하고 속으로 다짐하고 쇼핑몰을 닫는다. 어차피 시집은 무리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사는게 좋지 않을까. 

정리 하겠다던 책 방과 옷 방은 하나도 진척이 없이 그대로 지저분한 채로 있다. 컴퓨터 위엔 연습장을 북 뜯어서 휘갈겨 적은 유서가 있는 것도 그대로 이고, 이 박스에 있는 건 다 버릴거야 하고 마음 먹은 책 상자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져간다. 곧 내 힘으로 혼자서는 집 밖으로 옮기지 못하게 될텐데 어쩌지. 책 상자가 무거워지는 것보다 마음이 더 무겁다.

동네 마트에 가보니 종량제 봉투를 꾸러미로 팔지 않는다는 소리를 하신다. 아 그러면 낱개로 스무 장만 주세요. 라고 말하니까 얘기를 못알아들으셨네 아저씨 하는 표정으로 저희가 그렇게 봉투를 많이 안 갖다놔요. 다섯 장만 드릴게요. 하고 다섯 장을 준다. 나는 그럼 종량제 봉투를 어디서 사죠? 라고 말했더니 앞으로 여기 와서 쇼핑하면서 매번 종량제 봉투로 봉투 해가면 되시죠. 하고 말한다. 나는 환하게 소리없이 웃고 포카리 스웨트와 우유와 종량제 봉투 다섯 장을 받아서 마트를 나간다. 이 정도 웃음이면 누구라도 아들이나 남동생이나 대학시절의 남자친구를 떠올릴 그런 웃음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평했다.

집에 가면 쓸데없는 단문을 쓰고, 우유를 마시고 또 드보르작이나 듣다가 운동을 하고 자야지. 꼭 동전을 주머니에 가득 넣은 아이처럼 집으로 갔다.

누구도 내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않고 있는 사람이란걸 모를 정도로. 밝고 명랑하게 걸어갔다.


18년 9월 17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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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삶에서 그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불행해지는 일 뿐이다"

쿳시의 소설을 욕조에서 읽다 웃었다. 뭐라도 들어야지 싶어서 유투브를 틀었는데 드보르작이 나왔다. 신세계에서가 왜 나오는거야 맙소사. 우르르쾅쾅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를 물에 넣었다. 머리 끝까지 따뜻해지고 곧 숨이 막히는 지점이 오겠지.

나는 물 안에 잠긴 사람처럼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요즘엔 혼잣말도 하지 않는다. 머리가 텅 빈 사람 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책을 가득 쌓아놓고 하나하나 읽는 이유는 내 안에 아무 문장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으로라도 채워보려는 노력이다.

집에 산더미 처럼 책이 쌓여져 간다. 또 그럭저럭 지지 않는 속도로 책들이 치워친다. 하지만 글자들은,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말들은 하나도 내 안에 고이지 않고 어딘가로 흘러나간다. 통장에 난 구멍만큼이나 커다란 구멍이 신경 어딘가에 나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소설 몇 권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모래에 물을 뿌리는 것처럼 내 안으로 글들이 빨려들어가지만 어디로 빨려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사라진다. 나는 그게 어디로 가버리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할 말이 없다.

한 때 소설은 나의 육신, 서사는 나 자신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는 내가 이야기로 만들어진 인간이라고 확신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껍데기처럼 철컹거리고 텅 빈 울림 소리나 내고 있는 요즘은, 역시 인간은 탄소와 물로 이루어져있는거지 하고 생각한다. 

옛날의 사람은 대충 사람이 흙과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었나보다. 흙을 모아 모습을 이루고 거기에 호흡을 불어넣으면 불완전 하나마 생육하고 번성하는 무언가가 생겨나다니, 황금시대로다 좋은 시대로다. 지금의 사람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오랜 기간의 사회화와 재정적인 노력, 공동체의 지원과 부모의 여러가지 뭐시기 등. 신품의 인간이 아닌 나는 내 몸을 구성하는데에 이야기가 조금쯤은 섞여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희망적인 생각을 해본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그렇게 변명해 보라지.

내가 뭘 했더라. 회사의 일이 아닌 것들은 집중을 해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해낼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제는 마켓 컬리로 실리콘 얼음틀을 주문했다. 공룡이나 바다생물들 모양 대로 얼음을 얼릴 수 있다. 나는 커다란 컵에 고래 얼음을 넣어 마시고 싶다는 이유로 얼음틀을 사서 고래와 돌고래와 거북이와 하여튼 이것저것을 얼렸다. 커다란 컵에 넣고 물을 넣어봤는데 생각만큼 예쁘진 않았지만 지금 고래 얼음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고 있다. 만족하고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엔 아는 사람을 닮은 사람을 봤다. 얼마나 닮았냐고 묻는다면, 15%정도 닮았다. 나는 그 15% 정도 닮은 그 사람이 신기해서 커피를 한 잔 다 마시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쳐다봤다. 동행한 과장님이 아는 사람이에요? 뭐 그렇게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세요. 이래서 생판 남입니다. 혹시 고소 당할 여지가 있을까요? 하고 물어봤다.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 아구찜 보다 맛있는걸 드세요. 라고 말했는데 오늘 아구찜을 시켜먹었다. 평소에 시켜먹는 곳과 다른 곳이었다. 달고 짰다. 아구찜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하고 몇 번째로 다짐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 있었다. 자격증 하나 따두려는게 있어서 추석 때는 그걸 공부해야지 생각했는데 그만 그게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이 되었다. 꼼짝 없이 추석때 아무 것도 안하게 생겼다. 

이런 일이 있었다. 도미노에서 나온 파인애플 피자, 큰 판 시켜서 두 조각 먹고 나머지 얼려놨더니 정말 잘 먹고 있다. 얼마나 잘 먹었는지 토요일 아침으로 남은 6조각을 다 먹었다.

그래, 이런 일이 있었고 또 뭐가 있었지. 잘 모르겠다. 내가 또 무슨 할 말이 있었지. 나는 왜 어디도 걸어다니고 싶지 않은 거지. 어제 새로 나온 게임을 하다가 미술관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부분을 플레이 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나 미술관이랑 박물관을 좋아했다니 참 웃기는군. 하고 플레이스테이션을 끄고 잠을 자러 갔다. 그래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쓴 어떤 말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다. 단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뿐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상실이나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모를 것이다. 건조기에 돌린 침대보를 안고 나오는데,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얼굴을 파묻고 잠시 숨을 멈춰보았다. 이것이 오늘의 유일한 좋은 일이었다.


18년 9월의 16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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