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7월 1일 홋카이도 여행 4일 째


눈을 감으면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언덕을 달려내려가는게 느껴진다.

이렇게 눈을 감으면 언젠가는 나뒹굴어질 거란걸 알면서, 나는 언덕을 내려갈 때 자주 눈을 감았다.

자전거는 튼튼하고 전동식이라 기어를 올리고 힘을 주면 언덕을 미끄러지듯이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길고 긴 녹색의 구릉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간다. 


비에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비에이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해서 1년 간 여행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원래 이 여행기는 내 친구를 위해 쓰기 시작한 이야기이었지만,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기 전, 친구는 나에게 실망해서 나를 떠나갔다.

언젠가는 네가 이걸 읽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다시는 나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걸 이렇게 쓸꺼야. 하고 친구에게 얘길 했고 그걸 그대로 쓰는게 나에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원래의 구조는 불완전해지고 글은 무의미해진다. 결론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여행기는 결국 온전히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1년 가까이 여행기를 끝마치지 못한 것은 그 이유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이 이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비를 맞으며 시골길을 걷고, 갖가지 색으로 펼쳐진 라벤더 밭을 보고 자전거로 구릉을 오르며 보았던 모든 것들을.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기분으로 너에게 지금 무얼 하고 있냐고 물어봤던 건지.


나는 일부러 너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다. 너의 얼굴도 목소리도 떠올리지 않고, 옛 친구에게. 라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15년 7월 1일. 홋카이도 여행 4일 째.


저기, 내가 가끔 아주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솔직히 나는 8킬로미터 쯤 걷는 것은 그닥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그게 홋카이도의 6월이라는 점에서 1점 플러스(예에!) 그리고 비가 오고 길을 잘 모른다는 점에서 1점 마이너스지...2점쯤, 아니 3점쯤 마이너스지.

도대체 왜 그렇게 오전 내내 후라노를 걸어다녔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아사히카와에서 후라노로 가는 열차를 탈 때는 분명 아, 이거 먼걸 하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 그리고 아침부터 흐리군 비가 오겠어. 하는 생각도 했던거 기억난다. 라벤더를 보고 기분이 들떴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봐 내가 도대체 언제 그렇게 넓은 곳에 라벤데가 펼쳐져 있는걸 봤겠어?


라벤더 바타케 역에서 내렸을때 쯤엔 굉장히 실망하고 아 뭐지 이거 하는 기분이 들었던것 같은데 말야....

라벤더 바타케 역은 상시 개장되는 역은 아냐. 라벤더 철이 되어야 정차하는 역이라서 그런지 역 주변엔 창고 뿐이야. 내린 순간 아, 내가 지역관광청에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 창고만 가득하고 자꾸 나에게 영어로 얘기하려고 드는 청년에게 겨우겨우 도미타 팜이라는 곳이 라벤더가 굉장히 많다는 얘기를 듣고 그 쪽으로 갔지. 나는 일본어로 얘기하고 청년은 영어로 얘기하고! 내 뒤에서는 여자 두 분이 저 사람 한국인인가봐 쫓아가자 수군수군. 이러고 있었다고! 게다가 지역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슬로프를 손보고 있는걸 봤을때(그리고 그 언덕에 미묘한 보라색으로 심어져 있는 라벤더를 봤을때) 나의 실망은 어떤 결심적 지점에 다다랐지. 야, 어서 라벤더 바타케 역으로 돌아가서 비에이로 가버리자! 하고.

아 하지만, 도미타 팜의 멜론을 안 먹을 순 없었어. 아까 청년이, 라벤더는 아직이지만 메론은 드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래 무엇을 숨기랴. 이 동네에서 재배하는 메론은 칸탈루프가 많아. 일반 메론은 참외에 가까운 맛이지만 이건 두리안에 가깝달까.

너도 잘 알거야. 보통 멜론처럼 옅은 녹색이 아니라 오렌지처럼 샛노란 메론 말야. 나도 많이 먹어본 것은 아냐. 동남아에서 먹으면 거의 좀 단단한 칸탈루프를 먹게 되지. 하지만 여기의 멜론은 좀 달라 엄청 물이 많고 부드럽고 달지. 듣기로는 프로슈트와 함께 먹는 것도 일반 메론이 아니라 이런 칸탈루프 종의 메론이래. 그래 이것도 숨길수 없지 나는 참외는 싫어하지만 햄메론은 너무나 좋아한단다. 안 갈 수가 없었어. 메론이 있다니!


라벤더 바타케 역에서 10분간 실망하고 10분간 꽃밭을 구경하면서 북쪽으로 걸으면 그 쯤에서 내가 와야 할 곳을 왔다는 걸 알게 되지.

엄청난 색이 펼쳐져 있거든. 그래, 라벤더 밭이야. 갖가지 색의 꽃들이지. 알겠어? 눈 앞에 언덕이 가득하고 그 언덕 모두에 꽃이 심어져 있어. 

저쪽 멀리 마르쉐 풍의 매점이(얏호 여기선 멜론빵 멜론케익 생멜론 멜론 아이스크림을 팔아!) 있고 아직 제철이 되지 않은 라벤더의 보라색은 비를 맞아 점점 진해져가. 바람이 강해져가는데 꽃들은 아랑곳하지 않아. 네가 이걸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라벤더, 사루비아, 해바라기, 양귀비. 그리고 라벤더와 사루비아와 해바라기와 양귀비.


솔직히 말한다면 그렇게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어. 중국인 관광버스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도착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들은 군대처럼 내려서 향수와 각종 샤프란을 파는 가게로 달려가 기념품을 싹쓸이 하고 다들 손에 뭔가 들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어. 그렇게 많아보였던 라벤더도 중국 관광객들과 1:2정도 비율인 것처럼 보였지.


나는 오백엔에 믿을 수 없을만큼 단 삶은 옥수수를 먹으면서(미안, 멜론 빵 먹었다는 얘기 빼먹었네 보자마자 먹었어) 온 몸에 차오르는 감동과 기력에 이제 뭘 할까 생각하고 있었지. 여길 도망쳐야 한다는 건 명백했는데 어쩔까 비에이에 가야하나. 아니면 로컬 미술관을 하나쯤 들를까. 고민하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툭치더라고.


"???"

"저기 한국분이시죠"

"아, 네..."


아까 기차역에서 날 쳐다보던 여자 두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어.


"일본어 잘 하시길래 한국분인지 일본분인지 헷깔리셔서요" 하며 내 옆에 다가오더라구 히이익

"혹시 도미타 팜 다음에 어디 가실거에요?"

"아, 저..."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 그도 그럴 것이 후라노에 온다면 비에이에 가거나 후라노 역으로 돌아가거나 둘 중 하나니까. 어쩌지 나처럼 비에이를 가는 사람이면 어쩌지? 설마 동행하자는 건 아니겠지 히이이익. 결단을 내려야해 하고 생각했지. 아 절대로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자.

"가미 후라노(약 8키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다)까지 걸어서 가려고요"

"걸어서요?"

"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하고 나는 한국인에게서 도망치겠다는 씩씩하고 멍청한 이유로 3시간에 걸친 비오는 시골길 트래킹을 시작하고 말았어.


자, 이 시점은 겨우 오전 9시야. 나를 위해서 유투브를 열어서 Take me country road를 켜주지 않을래?

기껏해야 경기도에서 근교 농업 하는 거나 봤던 내가 뭘 알았겠어. 그렇게 컨츄리 로드가 길고 길줄은...

컨츄리 로드라니, 컨츄우우우우우우우리이이이이이 로오오오오오드 정도 된다구. 

처음 출발 할 때는 가미 후라노 쯤에 있는 고토 스미오 미술관에 들릴 생각이었지. 

미술관 자체도 아름답지만 자연 풍경을 세밀한 묘사로 그려낸 작품도 뛰어나지

문제는 내가 걸어야 되는 거리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것 뿐이야.


비가 왔지만 우산을 쓰면서 걸을 정도는 아니었어. 중학교때 이런 생각했던거 기억나? 한 번 쯤 비오는 날 우산 없이 걸어올 때가 있잖아. 

왜 기말고사 성적이 이것밖에 안나올까, 용돈을 깎이는게 아닐까. 그래도 주말에 치킨시켜먹고 싶은데 엄마한테 혼나겠지? 그런 생각하면서, 

미안 나만 그렇구나. 하여간 나는 그런 분위기였어. 그냥 농촌을 왜 걸어서 종단하겠다고 했을까. 머릿속에선 여러가지 잡념이 들기 시작하지.


잠깐만, 내가 걸어가면서 컨츄우우우우우리리리리 로오오오드 부르는거 녹음한거 있는데 들어볼래? 눈물과 웃음의 대서사시라구.

불러도 불러도 언덕이 안 끝나!

밭은 쳐져 있었지. 내가 자주 보던 논이 아니라 꽃을 심은 밭. 커다란 트랙터들.

여기가 미국이었으면 나는 24키로미터 지점 쯤에서 코요테한테 물려죽거나 지쳐서 3주 후에 발견되었겠지.


2시간 후 (그래 8키로미터 정도는 2시간이면 주파한다) 카미 후라노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떠한 긍정적인 마음도 없었어.

그냥 어딘가 들어가서 대충 따뜻한 음식을 먹고 아이폰을 충전한 다음 침대에 누워서 SNS에서 출근해있는 사람들이나 놀리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가 길었고(이 때 쯤 12시가 좀 안됐었어) 다음 내가 갈 곳이 있으니까.


비에이는 홋카이도의 거의 정 중앙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야. 1899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마을이고 구릉지역에 있지.

농촌이구나, 싶은 조용하고 작은 마을인데 연간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길 찾아온대. 

개척마을이었을 때는 아이누어로 "피-에(탁한 강, 기름이 떠있는 강)"이라고 불리우는 곳이었대. 

그래 누가 여길 탐낼까 싶을 정도로 구릉에 강에 숲이 있는 작은 마을이야. 사람들이 여길 찾아오는 이유는 다른게 아냐, 아름답기 때문이야.

일본 안의 유럽이라고 해도 괜찮을거야. 나도 맛있는 집을 찾으려고 했더니 이탤리언이랑 프렌치 비스트로만 잔뜩 나오더라고.


시가지는 비에이 역과 철도를 중심으로 남동/북서로 나뉘어져 있어. 주택가가 있는 곳은 주로 비에이역 주변의 남동쪽이지

하지만 요즘은 북서쪽의 주택가에 비스트로가 많이 생겼나봐. 트라토리오? 비스트로? 잘 모르겠다. 그냥 일반 주택처럼 하고 있고 아주 작은 간판만 하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가게인지는 모르겠어. 개 중에는 아주 멋진 피자 화로가 집 옆에 보이는 곳도 있었는데 설마 취미로 그런걸 하신건 아니겠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이탤리언에서 밥을 먹었어 내가 외국인인걸 아니까 아무 것도 묻지 않았지. 세트 메뉴에 디저트까지.

테이블이 세개 밖에 없는 가게라 그냥 아는 사람 집에 불려가 밥을 먹는 느낌이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뭘 먹었는지 찍어두지도 않았더라.

기억하고 있어, 샐러드, 파스타, 케익. 하하 


나는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지. 여길 돌아보고 싶었어. 나는 이 다음에 갈 곳이 있었거든.

역 앞에는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많아. 깨끗해 보이는 자전거가 많은 집에 들어갔지. 잡화점도 겸하고 있는 곳이야.

자전거 코스 좀 찍어주세요 라고 하니까 어디까지 알아봤는지 몰라도 내 말대로 해, 라는 표정으로 코스를 그려주셨지.

대략 설명해주신건 여긴 자전거 코스가 크게 세개 정도 있다는 거야.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구릉코스, 다른 하나는 산쪽으로 가는 코스 다른 하나는 남쪽의 시가지를 가는 코스.

어느게 제일 비에이 답나요. 라고 물어보니 구릉에 가야지. 하고 한국어로 된 지도를 꺼내 색연필로 코스를 주욱 그려주셨어.

이게 한시간 짜리에요. 한시간 반을 가려면, 여기서 한 바퀴 더 돌면 되지.


"버스는 두시간 뒤에 있으니까. 한시간 반 코스로 타고 돌아와서"

"돌아와서 아오이케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겠네요"

"그래요'

"다녀오겠습니다"


후에 알게 된 거지만, 나는 이 분이 알려준 코스를 비슷하게 가려고 노력은 했는데 약간 틀렸어. 

이렇게 가면 두시간짜리 코스인데 잘도 시간내에 왔네 하고 웃으셨지.


기찻길을 너머서 본격적으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여기가 이 작은 시내와는 전혀 다른 곳이란걸 알 수 있어.

녹색

끊임없이 펼쳐진 녹색.

녹색 뒤에는 녹색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흰 꽃(무슨 꽃일까)과 보라색 꽃과 내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꽃들이 가득해.

올라오는 길조차도 그런데. 언덕길로 내려와 아주 먼 곳에 보이는 또다른 언덕으로 뛰어내려갈 때의 기분은...

나는 페달을 밟았어. 으으으 아아아 하고 작은 소리를 질렀지. 허벅지가 아프고 엉덩이가 쑤셔왔지만 도저히 멈출수가 없었어.

도대체 어디까지 이 길이 계속 되는지 저 너머에는 이 녹색이 끝날까? 아니면 계속될까. 작은 공포와 작은 기대가 번갈아가며 솟아올랐고

나는 언덕의 가장 위에 올라설 때 마다 멈춰서서 사방을 바라보았지. 구릉 사이에 서있는 나무들. 녹색과 노란색의 길들.

이렇게 넓은데, 아무도 없었어.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 밖에 없었어. 아무리 먼 곳을 쳐다봐도 이 모든 땅이 비어있었지.


사람들과 때로 스쳐지나가면, 중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지나가면 나는 길을 잠깐 옆으로 비켜서 흰색 꽃을 바라보았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페달을 밟고 하늘을 날듯이 언덕길을 달려내려갔어. 

나는 바람이에요. 자 봐요 엄청나게 빨라요. 나를 보지 않으셔도 되요. 저는 바람일 뿐이니까요.


언덕을 몇개나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높은 곳에 나무 하나가 있었어.

사진을 찍었지. 내 얼굴을 찍고 하늘을 찍고 그리고 공터를 찍었어.

내 옛친구. 너는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아직 기억하고 있니?

나는 약속처럼 너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었어. 그것이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처럼.

그리고 금방 다시 자전거에 탔지. 쉬지도 않았어.


구릉을 달려내려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어.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나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니었어. 고개를 드니

거대한 신과 같은 것이 지평선 위에 서있었다. 다이세츠잔, 구릉 너머로 보이는 산.

22만6천 헥타르에 달하는 위대함. 나는 말야, 왜 옛날 사람들이 산을 신으로 받들었는지 이해했어.

낯선, 아주 낯설고 거대한 것을 보자 저런 것이야 말로 사람의 이상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걸 실감했지.


결국 이 구릉을 한바퀴 돌아서 전망대에 돌아오자 나는 공주처럼 지쳐서 헥헥거리고 있었지.

그제서야 오늘 처음으로 생 멜론을 시켜서 전망대 테이블에서 먹었어. 물론 기적처럼 맛있었지.

점원에게 물었어. 저기 저렇게 가득히 피어있는 꽃의 이름이 뭐죠?

믿어져? 저 하얀 아름다운 꽃이 고구마 꽃이래. 너랑 같이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나는 고구마 꽃이 피어있는 밭을 한참 바라보다, 자전거에 올라탔어.


곧 자전거 대여시간이 끝난다. 이제 자전거를 반납하고. 버스를 타고 아오이케에 갈거야.

거기엔 아무 것도 없이, 단지 아오이케만 있을 뿐이라고 하더라.

돌아가는 길은 알고 있어 이 언덕길을 내려가 구릉을 두개 타고 가면 된다.

눈을 감으면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언덕을 달려내려가는게 느껴진다.

바람이 불었다.





...

남자는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 혼자 서있다. 누군가 그를 1년이 넘게 기다리게 한 것 같은 모습이다.

6월이지만 홋카이도에 있기에는 조금 섣부른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발치에 작은 캐리어가 있다.

휴가의 첫날,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지만, 열차를 놓쳐 4시간이 넘게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다섯시가 된 지금에서야 열차를 한 번 갈아타고 4시간 가까이 걸려 섬의 남부에 있는 구시로란 도시로 갈 생각이다.

대합실엔 지친 한 무리가 날씨 예보가 나오는 NHK를 보고 있다. 


벌써 플랫폼 건너편은 새까맣다. 드문하게 서있는 교외의 건물들은 아무 흥미로운 것이 없는데 남자는 그 쪽을 쳐다본다. 

밭인지 공터인지 알 수 없는 땅이 있고 사람 한 명 짐승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다.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아이폰을 들어 역의 여기 저기를 찍는다. 반댓 편에는 남자 처럼 일찍 플랫폼에 기다리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다. 

저쪽 반댓 편은 숲이 있다. 숲의 건너편도, 까맣기는 마찬가지이다.


남자 자신 외에 아무도 그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남자는 허공을,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다.

곧 열차가 온다. 열차를 타고 그는 아주 멀리 갈 생각이다.

2015년 6월의 일이다.


혼자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었겠지만, 기차 여행을 하고 싶었다.

원래는 친구와 같이 가기로 했던 여름 휴가 계획이 어그러진 것은 5월이었다.

원래 일정은 파리였던가 하와이 였던가, 아니면 저 먼 남미였던가.

여행을 혼자 가려면 가지 않는게 나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주 멀리 느리게 흔들리며 나를 옮겨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저 소란과 말들 사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항에서 산 오리 인형을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오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복도자리라 창 밖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 흔들리고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아주 멀리로 가고 있다. 오리와 함께 이 밤의 기차를 타고. 

친구의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거지. 눈을 감는다.


구시로 역,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흩어진다.

이 남쪽 끝의 항구 도시는 홋카이도 열차의 마지막 도착지점이기 때문에 이 곳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오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11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에 내리는 걸까. 아, 오늘은 일요일이지. 입으로 한국어를 중얼거리고 웃는다.

택시를 타도 괜찮았지만, 호텔은 걸어도 충분한 거리에 있다. 역 앞 사거리를 건너서 나도 월요일을 찾아 흩어지는 사람들중 하나가 되었다.

북쪽 항구 도시의 밤은 6월인데도 추웠다. 가방에 든 후드 티를 입을 생각도 못하고 반바지에 티 차림으로 신음 소리를 내며 걸었다.

지금은 영상 8도, 내일 해가 뜨는 시간은 3시 45분이고 첫번째 열차를 탈 때 쯤이면 기온이 14도까지는 올라갈 것이다.


아무도 없다. 사거리를 세번 건널 동안 마주치는 사람 한 명도 없고 건물은 완전히 불이 꺼져있다.

거리의 건물들은 2층보다 높은 건물은 거의 없다. 비교적 새로 만든 오피스 건물들도 있지만 대부분 낡고 노란 가로등 불빛에 이라크의 흙벽돌 집처럼 보인다. 바람이 부는데도 그 바람소리 사이로 내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죽어있는 도시에 온 걸까. 사거리를 여섯개 지나쳐서 구시로 시청에서 오른쪽. 사거리를 다섯개 더 지나쳐서 구시로 시청에서 오른쪽.

졸음과 추위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중얼거린다. 세상이 내가 기차를 타고 있는 사이에 멸망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시청 옆의 편의점에 들어가 물을 샀다. 편의점의 점원도 호텔의 데스크에서 서있는 남자도 졸린 기색이 역력하다.

이 도시에 12시는 유령과 바람 외엔 아무 것도 지나다니지 않는 것이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아 안심한다. 그렇다 나는 이런 아무도 없는 풍경을 보러 이 곳에 온 것이다.


내일은 습지에 갈 것이다. 누우면 언제나처럼 잠이 온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몇 주가 지났다. 

피트니스에서 트레드밀에 올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평소라면 안 볼 여행 프로그램을 봤다.

노인들이 타이완의 과일 가게에서 망고와 석가 같은 과일들을 먹고 있었다. 

트레드밀의 TV는 그닥 선명하지 않지만, 입가에서 물이 떨어지고 과일향이 사방에 퍼지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밤의 마트에 가서 망고를 샀다. 

노랗고 둥글 넓적하게 온순한 작은 망고를 몇개 샀다. 망고는 공화국의 사람 값처럼 쌌다.

나는 망고를 자르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운데에 대충 칼을 넣고 껍질을 벗겨 입안에 넣었다.

망고는 달콤하고 시었다. 과육은 생각보다 얇았다. 


나는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뭐가 먹고 싶다거나 하는 걸로 떼를 쓰는 아이는 아니었다. 

달라붙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였지.할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언제 쯤이었을까 옛날 중국에 뭐시기 라는 이름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가난한지, 부자인지 다른 가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병에 걸린 늙은 어머니가 있었다.

새도 날지 못할 만큼 눈이 내리는 겨울, 쇠약해진 어머니는 남자에게 딸기가 먹고 싶구나. 하고 말을 한다.

노인의 투정이었을까 열이 머리에 까지 미쳐 제대로 생각을 못했던 탓일까. 한 겨울에 딸기라니.

하지만 쇠약해진 나머지 딸기가 나오는 봄까지 버틸수 없어 보이는 어머니에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절을 하고 물러나온 남자는. 채비를 갖추고 산으로 떠난다.

강을 건너고, 숲을 가로지르고, 갖은 고생을 하며 연못 근처의 공터에 다다른 남자는 

거기서 빨갛게 익어 얼지도 않은 딸기를 발견해 소중히 품고 돌아와 노인에게 먹인다.

 

그래서요, 할아버지 딸기를 먹여서 어떻게 되었어요?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다니, 그냥 딸기를 먹였다는 이야기야. 

병이 낫거나 그러진 않고요?

아니 도대체 뭐하는 병이길래 한참을 앓던 사람이 딸기를 먹는다고 낫는다더냐. 

- 그냥, 딸기를 먹고 싶다고 하니 딸기를 가져와 먹인게지.

그게 뭐에요, 별로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너한테는 아직 이야기가 어려웠구나.


할아버지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틀렸다고 하는 법도 없으셨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 손자가 하는 말 들어보시오 이 아이가 이렇게 똑똑하다오.

내가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가 놀라서 호통을 치신 것은 5살쯤 되던 내가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였다.

아이고 이놈. 하고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매어주셨다. 그게 다였다. 아이고 이놈.


할아버지는 16년 3월, 금요일의 어느 밤에 돌아가셨다.

얼마나 오랫동안 아프셨는지, 해로 세어도 한참이었다.

보통 사람은 돌아가시고도 남은 뇌수술을 받은지 십년도 넘었지만

이렇게 돌아가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걸 믿지 않은 것은 나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건했던 할아버지를 무너트린 건 노쇠였는지 우울이었는지.

가끔식 건강하고 힘이 강했던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일부로 보였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금방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믿은 것은 나 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눈이 망가지고 귀가 안 들리고 머리 한 쪽이 움푹 패였어도.

건강이 점점 나빠져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였다.

 

할애비는, 위가 찢어졌단다.

전보다 더 작아진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길을 가다가 쓰러지고 말았지. 사람들이 꼼짝없이 죽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일어는 났단다.


할아버지는 커다랬는데 건강한 땀내가 나고 성큼성큼 걸어다니셨는데

할아버지가 떼어냈다는 몸의 일부가 얼마나 컸던지 할아버지는 조그맣게 되셨다.

할애비랑 점심이나 먹자구나. 시간 있느냐?

할아버지랑 저는 제 평생만큼 시간이 있어요. 아시잖아요.

이야기하다가 가끔 혼자 잠드시는 것도 괜찮아요.

할머니 몰래 술드시겠다고 제 핑계 대시는 것도 괜찮아요.

걸음이 엄청나게 느려지신 것도 괜찮아요.

할아버지 다 괜찮아요. 내가 서투르고 느리게 걸을 때 할아버지가 거기에 있었잖아요.


친구들이 말이다. 이제는 죽어도 장례에 참석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루는 친한 친구 놈이 죽었는데도 코배기도 안 비추길래,

아이 이놈아 내가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데도 이렇게 식장엘 다녀왔는데 너는 뭐하는거냐? 하고 했더니

이보게 자네는 그래도 아파트 단지 밖에 나갈수나 있지. 하더라고

이것이 할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마지막 농담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망고가 맛있고 더 달수록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중국의 뭐시기 라는 남자가 바로 이런 마음이었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아주 잠시라도 맛있는 것을 먹이려는 마음.

어머니, 먹어보세요 딸기에요. 입술이 말라붙어 터지고 죽도 못 삼키시는데도 딸기는 드시고 싶어하셨잖아요.

 

그리고 이것이 호흡기를 차시기 전에 할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대화이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 까지 의식이 또렷하셨다.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호흡기를 차셔서 말씀을 못하시고 그렇다 아니다 라는 의사 표현만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의지가 강한 분이셨다. 내가 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아마 끝까지 이겨내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게 틀림없다.


할아버지, 고모가 전화해서 깜짝 놀랐잖아요. 이게 뭐에요

그렇게 됐다.

어울리지도 않게 누워서 뭐하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얘야, 할애비가 많이 어려울 것 같구나.

왜 자꾸 이상한 소리 하세요. 할머니랑 고모가 겁먹잖아요.

-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래 그렇구나. 많이들 겁을 먹었겠구나.

어서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불고기랑 평양 냉면 먹으러 가요.

...요새 할애비는 불고기도 평양냉면도 별로구나.

그럼 뭐가 먹고 싶으세요?

글쎄다. 요새 먹고 싶은게 뭐였냐면.


나는 할아버지가 무엇이 먹고 싶으셨는지 끝까지 듣지 못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일 못 오면 모레 올게요.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는 개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게 내가 사람이라는 증거라도 되는 듯이 울었다.

나에게 그 마음은 사랑이었다. 재처럼 희미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16년 4월 비오는 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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