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9월 30일 이제껏 없었다던 10일간의 휴가 중 5일을 보내기 위해, 교토로 갔다. 이번에도 여행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연휴 기간 동안 내가 밥을 해먹고 싶지 않았고, 이런 여행이라도 가야 연휴 동안 아무 것도 안 했다고 징징 안 대시겠죠- 라고 후배가 이야기를 했으며 때마침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비행기가 있는 곳이 간사이 뿐이었다. 계획 이라고는 아이폰을 사는 것과 일본에서 놀고 있는 후배와 저녁을 먹는 것 뿐이었다.

4박 5일 간의 교토 여행 동안 나는 아이폰을 사고 친구와 두 끼의 저녁을 먹었고 비가 오는 루리코인과 오하라를 들렀으며 사이호지에 갔다 사전 예약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일 해지는 가모가와의 강변에 앉아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칵테일 바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고 호텔에 가기 전 커피 하우스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 호텔이나 카페에서 밥을 먹었고 교토국립미술관과 산쥬산겐도를 들렀다. 나는 여행 내내 하고 싶은 말을 찾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직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고 나는 여행의 기록을 정리한다. 

이번 여행기는 <낮>과 <밤> 두 개로 정리한다. 두 가지의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를 거의 완성하고 보니 어쩌면 여행의 기록을 정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핑계이고 나는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진 건지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우리에게 혹은 내가 당신에게 할수 있는 말은 제한되어 있고 나는 힘들게 힘들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한 마디만을 여기에 쓴다.

이번 여행에도 음악을 많이 듣진 않았다. 교토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조용하다. 가게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는 편이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 여행 중 월요일에는 종일 비가 내렸다. 이끼의 정원 위에 비가 내렸다. 당신은 어떤 소리가 날지 상상 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이 들은 것은 Sonder의 Too fast
https://youtu.be/zZmPZDySFMI

그리고 Kamasi Washington 의 harmony of difference 앨범이다.
https://youtu.be/rtW1S5EbHgU


괜찮으면 이 글을 듣는 동안 이 곡들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 커피

커피를 좋아하십니까? 저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건 안하려고 드는 속물 근성 때문에 믹스 커피를 거부하고 살아온 기나긴 삶. 그 후 시애틀의 카페 체인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믹스가 아닌 커피가 당연해진 것도 20년이 다 되어 가건만. 
좋아하는 커피라면 몇 개 정도는 항상 댈 수 있지만, 커피라면 글쎄요 싶다. 콩의 차이와 배전의 차이를 아직도 모르겠다. 주는대로 마십니다. 
교토의 커피를 이야기할 때면 보통 8,90년대의 소위 서드 웨이브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콩을 쓰더라도 균일한 향과 맛을 내는 추출방식이 대세였던 시대에서 산지와 추출방법을 다양하게 하려고 했던 시도 말이다. 지금에야 당연하게 생각되던 콩 산지에 대한 애호가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공급망을 통일함으로서 균일한 커피 맛을 만들려고 했던 대규모 커피 체인점이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지점과 일치한다. 거꾸로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산지"를 중요시하는 점이 교토인의 마음에 든걸까? 아니면 예술의 영역에 가버려서 귀찮게 변해버린 차노유(다도)에 질린 걸까. 가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교토의 번화가에는 골목 골목 마다 커피 하우스가 있다. 물론 교토의 여러 커피 전문점들은 길어야 겨우 100년 (그렇다, 소바 집에 500년을 넘게 하고 당고 집이 400년을 이어가는 동네에서 100년은 고작인 것이다) 정도의 역사를 가졌지만 실은 교토는 일본 내에서도 인구 당 커피 소비 량이 최고인 도시. 일찍 부터 아침을 먹으러 커피 하우스에 가보면 동네 사람일게 분명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지역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내는 스타벅스의 컨셉 스토어도 교토에는 두 점포나 있으며, 니넨자카의 다다미 방 형식의 스타벅스는 한국에서도 기사화가 될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해당 사실로만 보면 그냥 스타벅스가 노력하는구나 정도겠겠지만 교토 인들의 커피 사랑을 생각하면 그래 이 동네는 그럴만 하다 하는 생각이 든다.
교토의 커피는 조금 특이하다. 배전은 지독하리만큼 진하게 하지만 추출은 맑다. 마시는 순간 차를 마시고 있는건가 하는 착각이 든다. 내가 잘못 주문한 건가 하고 커피를 내려놓고는 맛을 느끼려고 눈을 감아본다. 기름지지 않다. 향은 훅하고 들어오는 듯 하지만 결코 진하지 않다. 그래 나는 착각하지 않았어 내가 마시는 건 차야 커피가 아니라고. 나는 안심하며 잔을 다시 들고 조금 더 마셔본다. 아 하지만 커피이다. 카페인이 올라오지도 않고 입안에는 쓴맛이 아주 얇게 남다가 날아가버린다. 고소함은 없다.
교토의 오리지널이라고 불릴만한 커피라면 역시 이노다 커피인데 커피에 밀크와 설탕을 넣어주는, 일본에서라면 특이한 커피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응당 진해야할 이노다 커피 조차도 맛이 느슨하다. 이걸 싫어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에 극단적으로 가까우면서 결코 차의 맛은 아니며 성의가 없는 맛 또한 아니라니.
몇개의 커피 하우스에 들러서 커피를 마셨다. 의자는 딱딱하고 서비스는 과한 곳 하나 없이 딱 맞아 떨어진다. 팔짱을 끼고 괜찮은 문장이 떠오르기를 기다힌다. 교토에 와서 콜드브루 같은 걸 시킬리가 없다. 커피가 나오는데는 항상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커피가 나와도 금방 마시진 않는다 괜찮은 문장이 떠오르면 그걸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매일 아침 일찍 교토의 커피를 마신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교토를 시작하게 하는 것은 커피이다.


- 강변
쇼와 39년 7월 10일 일본법률 167호 하천법에 의거하여 하천은 원류에서 하구 혹은 합류 지점까지 동일한 명칭으로 통일되게 되었다. 가모가와는 비와호에서 부터 흘러나오는 “요도가와”의 지류로 요도가와는 지역에 따라 세타가와, 우지가와 등으로 이름을 바꿔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고도 교토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 답게 많은 문학 작품에 등장하며 때로는 그냥 “동하(동쪽의 하천)”이라고 불린 적도 있는 듯 하다.
한국인이라면 아무래도 동서를 관통하는 하천에 익숙하기 때문에 어째서 이런 곳에? 하며 방향을 착각하기 딱 좋은 북남 방향의 하천이다. 거대한 분지인 교토를 오사카와 잇는 수운으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으며 의외로 풍수지리적으로는 그닥 좋지 않은 위치라고 해서 후세에 말이 있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으나,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이미 교토는 천년 동안의 수도였고 그 동안 험한 일도 좋은 일도 수도 없이 많았는데. 
가모가와에 오게 되면 놀랄만한 것은 수서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대도시를 관통하는 강 치고는 깨끗하게 관리 되어 있어서 특히 새들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는 점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가모가와 강변을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고 밤이 되면 산조와 시조 사이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가와도코”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가와도코는 나무로 된 바닥을 강변에 설치하여 음식점이나 술집을 강변에서 영업할 수 있게 한 장소인데, 밤이 되면 가와도코에서 설치한 노란 색 등롱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결코 밤의 어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명을 설치해두었다. 
이런 가와도코를 제외하고도 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밤의 강을 감상하는데 일본인들이 그들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를 자조적으로 “가모가와 등간격의 법칙”이라고 일컬으며 이런 무리들 사이는 자동적으로 등간격으로 배치된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데 과연, 딱히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 없이 다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강을 바라보고 있다.


- 숨

아마노산 콘고지의 목조 대일여래상은 항삼세명왕, 부동명왕과 같이 한 조로 취급되고 있지만 <국보>를 주제로 한 이번 교토 국립박물관의 전시에는 대일여래와 부동명왕만이 전시되었다. 
실상, 불상 미술은 간다라 미술에 의해서 기초적인 기술은 모두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성한 인간, 혹은 신으로서의 불상을 표현하는 방법 자체는 끊임없이 발전과 쇠퇴를 거듭해왔다. 신상이 상당한 과장, 데포르메를 가진 다는 것은 상식이다. 보통 거대한 인체의 형태를 하는 신상은 거대할 수록 그 모습을 한 눈에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가는 신상의 머리를 상대적으로 크게 설계하고 참배자가 바닥에서 “우러러”볼 때에 자연스러운 위엄을 갖도록 한다.
태양의 화신이자 우주 제공의 조화를 상징하는 대일여래, 그리고 그 대일여래의 뜻을 받아 일체의 장애를 제거하는 그의 분노를 나타내는 이 부동명왕.
이 두 상도 동일한 강조와 불균형을 통한 조화를 통해서 만들어졌는데 기본적으로 실제 인체의 몇배나 되는 형태를 한 이 좌상들은 조형미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물론 우주가 혼돈 속에서 태장의 질서 속에 수태되고 완성되는 모습을 그리긴 하나, 이 조상의 기본 목적은 장엄함과 숭고함에의 표현이다. 아름답지 않아도 좋다. 설령 그것이 공포라도 좋다. 이걸 보는 자들이 이 앞에 엎드리고 신의 세계를 편린이나마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종교 철학의 구현이다.
부동명왕. 자리에 앉아 항마의 검과 금강삭을 지닌 채 자신의 앞에 선 참배자를 휘둥그레 쳐다보는 이 명왕은 정면이 아닌 아랫쪽에서 볼 때 솟아오른 어깨와 부푼 흉곽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왕의 동작 - 숨을 들이키는 호흡과 오른 쪽의 칼을 들고 휘두르려는 준비 자세-을 떠올리게 된다. 명왕의 정면에 있는 이상 그의 시야 밖을 벗어날 수 없다. 항마의 검은 당신을 향하며 금강삭이 겨누고 있는 상대는 당신이 된다. 신상이 숨을 다 들이키는 순간 동작은 시작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다. 아무리 정교하다고 하여도 목조로 만든 신상이 움직일리가 없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이 숨을 들이쉬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일여래. 원래는 가운데에 놓여있어야 할 이 금색의 조상은 부동명왕의 상과는 반대이다. 그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지혜의 수인인 지권인을 한 대일여래는 황금 빛으로 빛나며 눈을 반쯤 감았다. 그의 숨은 고요하며 들이키는 숨이 아니라 들이내쉬는 숨을 암시한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당신을 벗어난 모든 세계이며 그게 비추는 것은 당신을 포함한 모든 세계이다. 
내쉬는 대일여래와 들이쉬는 부동명왕. 세계는 불타의 한 호흡 위에 놓인다.


- 나무
서기 594년 건립된 오하라의 잣코인에는 일본의 유명한 “헤이케이이야기”에도 나오는 소나무가 있다. 그 구절은 대략 1186년의 봄, 고시라카와 법왕이 오하라에 행차하며 헤이케 일족의 명복을 빌고 있던 겐레이몬 도쿠코를 방문하는 장면이다. 
나카시마의 소나무에 기대어...애달프게 너울거리는 보랏빛 등나무 꽃이여, 라고 시인은 읊는다.
이 유명한 나카시마의 소나무는 2000년에 발생한 본당의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고 2004년 말라죽고 만다. 
오래된 이야깃 속에서 옛날과 지금을 이어주던 천 년의 세월을 보낸 소나무를, 지금의 우리는 흔적만을 볼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아니 어떤 사람들이 이 나무를 너무나 사랑하여 천년을 살게 했으나 그들의 사랑으로 조차 나무의 생명을 더 이어지게 하는 것은 어려웠구나. 



- 창
어두운 방안에 빛이 들어오고 손 때가 묻어 까맣게 되고 만 기둥들, 꺼끌꺼끌한 다다미. 사람들이 그 위를 걸어다니는 소리. 이끼 낀 정원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또 하나의 눈꺼풀을 감는다. 
눈꺼풀 뒤에 있는 방, 자리에 앉아 어딘가에 있는 창문을 연다. 볕이 충분히 들어오도록. 
나는 한참을 창 앞에 서서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언제인지 모를 녹색의 계절들이 스치면, 이윽고 충분하리만치 볕이 들어온다. 빛을 받은 사물의 윤곽선들은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한다. 색은 더 진해지고 형태는 더 분명해진다. 사물들은 따뜻해져가고, 그 직선과 곡선의 모든 형태를 더 날카롭게 빛내는 것도 잠시. 무너져내린다. 흐트러진다. 
먼 곳 하얀 모래의 별이 모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드럽게 가라앉는 것 같다. 나는 우리를 지탱하는 것이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색도 윤곽도 모두 그림자가 벌인 행위임을. 빛이 오는 쪽으로 몸을 돌린다. 녹아없어지는 형태들. 밤이 오길 기다린다.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야 말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인식 안에서 존재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혹은 우리 유인원 류는 두 가지 사건을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으로 인식하는 사고-인과-를 발명해냄으로서 서사와 논리를 만들어냈다.

 어째서일까, 좀처럼 글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토마토 스프를 끓이고 빵을 버터에 발라 구워먹었고 미드를 한 시즌 통채로 보고 나니 그제서야 뭔가를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담배를 필 줄 알았다면 글을 시작하기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나의 동료 일반 인간들, 혹은 유인원들의 사고체계와는 다르게 이 글은 논리적인 서사가 없다. 

 17년 5월 31일 부터 6월 7일 까지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올해로 3년 째, 초여름에 홋카이도를 여행하고 있다. 이미 길고 긴 홋카이도 여행기를 쓴 적이 있기 때문에 굳이 여행기를 쓸 필요는 없겠지만, 나중을 위해 간단한 메모를 써서 남기려고 한다. 친구는 이번에는 음식에 대해서만 정리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전과 같이 플레이 리스트와 먹을 것에 대해서 정리하겠다.

- 프롤로그
 여행의 주제가는 Codes In the Clouds <Where dirt Meets Water>였다. 여행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다. 이지리스닝에 가까운 곡(뭐라고? 이지 리스닝을 뭘로 보는거야) 이고 실은 어느 곳에 있어도 듣기에 알맞은 노래였다. 무섭도록 홋카이도의 어느 곳에서도 잘 어울렸다. 아마 아이누 민속 체험을 할 때 들었어도 좋았을 노래이다. 문과생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노래의 제목이었다. 

 그 다음은 Kyte <Boundaries> 낮은 선율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같은 가사가 반복된다. Hear Silence choking you, Listen to the World. Run away speaking true, Break down in the cold. 라고. 맙소사 가사가 왜 이래. 하고 계속해서 들었다. 홋카이도에 있을 때는 항상 세상의 끝을 생각하게 된다. 거기에 무엇이 있든지 간에 끝을 바라보는 것은 내 나쁜 습성인지도 모르겠지만 홋카이도에서 나를 가장 매혹시키는 것은 바로 그 어떤 경계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다. 네 물론 동네 마다 24시간 편의점이 있는 섬에서 그런걸 느끼다니 자의식 과잉은 확실합니다.

 여행 내내 별 심각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변을 흘끔 거렸고 그렇지 않을 때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문제다.

- 오타루의 플레이 리스트
 이 곳에 마을이 생겨난 것은 1596년, 1800년대 초의 홋카이도 개척 초기에만 해도 오타루는 삿포로보다 훨씬 커다란 홋카이도 제2의 도시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와 고풍스러운 일본은행 건물,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있는 회관들. 모두 좋았던 오타루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지금이야 삿포로의 위성도시에 관광업으로 유지되고 있는 작은 거리가 되었다. 물론 도시 자체의 활력도 많이 줄어들어 오후 6시가 되면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거리에선 사람들이 자취를 감춘다. 아무리 비성수기의 거리라지만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나 신나던지!


 숙소가 보통 오타루라고 얘기하는 오타루 운하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오타루 짓코였기 때문에 항상 산책을 하며 왔다갔다 할 수 있던 점은 좋았지만 홋카이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황폐한 곳이 군데군데 있었다. 뉴욕의 힙스터들 한 떼가 몰려들어서 이제부터 갤러리를 열겠다고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거리는 결국 사람의 흐름, 아무리 관광지가 되어 유지가 된다고 해도 그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정한 흐름이 도시를 성장시키고 유지시킨다. 오타루가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얼마나 유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 곳에서는 오타루 짓코의 보트 선착장을 바라보며 Glenn Gould 가 녹음한 Bach BMW 988, Bach BMW 1048 을 들었다. 그냥 바다를 보면 바흐를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보통은 그냥 사무실에 있을 때 듣고 싶어집니다만 네...그냥 좋아해서 들은 거 로군요. 겨울 바다도 아닌데 슈베르트나 쇼팽을 들을 순 없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겨울에 여길 왔다면 블루스를 들었겠지 싶다. 밝고 명랑한 Analogfish <Baby soda pop>은 어떨까? 오타루 짓코의 밤 풍경은 멋지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몹시 낭만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 오타루의 거리
 나는 홋카이도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 항상 오타루는 여행의 마지막에 배치하도록 권유하는데, 보통은 말을 듣지 않는다. 삿포로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에 무심코 오타루에 먼저 가게 되는게 아닐까 싶은데 하여튼 오타루는 홋카이도 3대 과자 대장인 롯카테이, 르타오, 기타카로가 거리 하나에 모여있기도 하고 오르골 공방 등 도 있어서 자칫 잘못하다간 세일만난 비단장수 처럼 봇다리 단위로 쇼핑을 하게 될수도 있다. 더 안 좋은 경우는 오타루에서 잔뜩 산 과자를 홋카이도 여행 내내 다 먹어치우고 출국하기 전에 한 번 더 사는 것이다. 당신이야 말로 오타루 지역 상권의 수호자이십니다.

 특히 르타오는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거지만) 이름부터가 오타루(おたる)의 애니그램 (オタル->ルタオ)이라서 그런지 도시 전체에 아주 각양 각색의 컨셉의 르타오 지점이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들 6시 전에 문을 닫았다 어쩌란 말인가) 수공예품과 디저트를 좋아한다면 오타루는 정말 개미지옥 같은 곳이다. 내가 추천하는 곳은 오르골 공방과 캔들 공방 정도. 특히 캔들 공방은 해외의 희귀한 캔들이 많아서 항상 공부하겠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들르게 된다.

 다양한 경로로 미스터 초밥왕을 읽은 한국인에게 오타루의 먹을거리라면 역시 스시인데, 초밥 거리가 있을 정도로 스시가 유명한 오타루에서 기대한 만큼 맛있는 스시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생선의 신선도가 아주 뛰어난데도 실제로 스시로 먹어보면 기대한 만큼 맛있지 않다. 아니 어째서 이 곳은 쇼타의 고향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오타루의 스시에 대해서는 기대가 높지 않았는데, 친구의 추천으로 스시집 ㅋ의 오마카세를 시켜보고 그냥 내가 스시를 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스시를 꽤나 먹어봤다고 해도 내가 스시와 스시의 재료에 대해서 뭘 알겠는가. 스시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초밥을 쥐는 요리사. ㅋ에서 스시를 먹은 후 뛰어난 재료를 선택하고 기술을 다해 만들었을 때 스시가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렇게 맛있는데 인당 오천엔 오마카세라니, 인류에게 재능을 기부해서 다음 생에 진짜 좋은 걸로 태어나시려고 그러는 걸까.일본어를 모르면 예약도 주문도 안되는 시스템인데(예약할 때 오마카세로 할 것인지 다른 요청이 없는지 물어본다) 스시를 먹다 보니 중간에 예약없이 중국인 청년이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어보러 들어왔다. 거절하시는걸 보고 딱 예약 받은 만큼만 재료를 준비해두신다는 걸 깨달았다. 과연... 그리고 이 년 전에 예약 없이 ㅇ스시집에 갔다가 거절당했던 기억이 나서 왠지 유쾌해졌다.

 가장 맛있던 것은 광어 같은 기본적인 재료였는데, 사장님께서는 도키사케(홋카이도의 자연산 연어이다)같은 걸 더 맛있다고 생각할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좀 시무룩해 하셨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일본의 오래된 도시는 항상 그렇듯이 소바가 맛있었다. 오타루에서 스시를 못 먹겠으면 그냥 소바를 먹는게 좋을 것 같다.


- 샤코탄, 바다와 하늘과 카무이미사키
 샤코탄은 오타루의 서쪽에 있다, 비쿠니 같은 어항도 있지만 바다에 맞닿은 산으로 이어진 지역이라 교통이 불편하다. 샤코탄에 가는 길의 버스에는 나 말고 세 명 밖에 손님이 없었다. 제복을 입은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는 조심스럽게 시골길을 달렸다. 해변을 달리다 나무로 만든 집이 가득한 마을에서 방향을 돌려 산 위를 오른다. 샤코탄은 산과 바다가 맞닿은 곳이다. 가는 도중에 내가 먹은 체리 냄새가 났고 길가에는 작약도 패랭이도 아닌 보라색 꽃이 잔뜩 피었다. 오르막 길 옆 산 속에는 야구장이 있고 그 너머의 숲은 푸르렀다.

 비가 왔기 때문에 카무이미사키를 갔지만 오래 체류하지 않았다. 바다가 아름다웠지만 기후에 따른 영향이 커서 날씨가 맑은 날에만 샤코탄이 자랑하는 "샤코탄 블루"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바람이 조금만 쎄도 위험해서 올라가는 길을 폐쇄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19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카무이미사키의 등대에 살고 있는 등대지기 일가가 해변의 길을 건너 등대로 가다 사고를 만난 적이 있었을 정도로 외진 곳이다. 이 곳에 있는 염불터널은 위에 나온 등대지기 가족의 사고 이후 만들어진 터널이다. 양쪽에서 파기 시작했지만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염불을 외우면서 서로 방향을 맞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안 쪽에서 두 번이나 꺾이는 동굴이 되었다.(지금은 폐쇄된 곳이다)

 여러가지 전설이 있지만 사실 바다의 끝에 닿은 카무이미사키의 아름다움에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다. 어떤 이야기도 이 곶보다 아름답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갈대가 핀 언덕을 오르면 곧 관문이 보이고 그 뒤로 곶이 보인다. 관문 뒤로는 보이는 것은 하늘과 바다.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고 그 발판은 몹시 좁았다. 분명 끝까지 올라가면 스크롤이 올라가고 엔딩이 나왔을 것이지만, 나는 아직 엔딩을 볼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중간에 돌아왔다. 카무이미사키 끝까지 가 보신 분은 알려주세요 엔딩 나오던가요.

 여기서는 아무 노래도 듣지 않았다. Death cap for cutie <I will Follow you into the Dark>를 들었으면 어떨까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Arizona <Oceans Away>를 들었다. 버스의 창으로 빗방울이 부딪히고 거칠어진 바다가 아름다웠다. 지금 생각하면 이현우 10집의 <마취>도 괜찮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 삿포로의 샌드위치
삿포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번 썼다. 특히 몇 번이고 길을 잃고 있다는 얘기를 썼는데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잃었다. 더 이상은 슬퍼서 쓰지 않겠다.
친구가 삿포로는 샌드위치가 맛있다고 했을 때 나도 샌드위치라면 환장하는 몸이지만,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닭한마리"를 먹는데 나는 그런 걸 먹어본 적이 없다. 그냥 한국인 블로그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인가 하고 생각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홋카이도의 노포 카페인 ㅅ에서 먹은 샌드위치는 엄청나게 맛있었다. 계란 샌드위치와 가츠 샌드위치는 나도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주 먹었는데 이 곳의 샌드위치는 진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단연 이제까지 먹었던 모든 계란 샌드위치 보다 맛있었고 같이 시킨 후르츠 샌드위치는 소박 단순하나 대단한 맛이었다. 아주 신선한 부드러운 촉감의 하얀 빵에 신선한 제철 과일을 넣고 빵의 부드러운 식감에 지지 않는 살짝 단 신선한 크림을 넣으면 완성되는 샌드위치다. 내가 너무 신선함과 부드러움을 남발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소프트 앤드 신선데쓰.

 오도리 공원 벤치에 앉아서 울면서 먹었다. 다음에 홋카이도에 가게 되면 꼭 다시 먹으리라.

 그러고보니 친구가 추천해준 홋카이도의 먹거리는 모두 다 맛있어서 이런 것이 재능의 차이인가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친구는 홋카이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면서 "이거 맛있을거야"하고 추천해준 것이다. 그 때의 나의 마음은 서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홋카이도처럼 맛있는 후르츠 샌드위치는 만들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을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것처럼 질투가 났다.

 삿포로를 떠나면서 들은 노래는 신나는 락 음악인 Jimmy Eat World <The Middle>과 Gnash <I hate u, I love u> 좀 복잡한 심정이었다는 걸 밝혀둔다. 노래를 그닥 열심히 듣지 않았기 때문에 라인업이 거의 비슷비슷하다.


- 도야호
 여행 중에 마지막 까지 고민한 루트가 바로 이 도야호로 가느냐 아니면 니세코로 가느냐 였다. 렌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삿포로까지 송영버스를 보내주는 도야호로 가게되었다고 합니다. 보고 싶었던 요테이 산은 버스 안에서 볼 수 있었다. 도야호로 가는 길과 도야호에 도착해서까지 생각이 이것저것 많아서 복잡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 여행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도야호의 리조트에 도착하고 호수를 한 바퀴 걷자 많은 것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용기가 생겼다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는 아름다웠다. 체류한 2박 동안, 호수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는데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처음 봤을 때의 거칠어진 호수도, 다음 날 나카지마에 다녀와서 낮잠을 자며 보았던 호수도, 날이 흐려져 수묵화로 그린듯했던 호수도. 그리고 매일 밤의 불꽃놀이와 비오는 하늘 아래서의 온천을 하며 보는 호수도 좋았다. 맑은 날이면 호수 너머로 요테이 산이 보였다. 분명 누군가는 산을 보고 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당신을 떠올렸다고 대답할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숲을 올라 꼭대기에서 공터를 걸었다.
 비가 오는 산을 올라 꼭대기에서 구운 계란을 먹었다.

 이렇게 이틀 밤을 보냈다.

 이곳에서 주로 들은 곡은 Olafur Arnalds <Near Light>, Douglas Dare <Swim> 이다. Arnald의 노래를 이지 리스닝의 부드러운 곡이지만 Swim은 불안하고 슬픈 곡이다. 날씨가 안 좋을 때 도야호는 먹물로 만들어진 세계처럼 변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것이 공기가 아니라 물로 만들어진 무언가고 저 하늘은 우리가 알기 전에 물에 잠긴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나는 너무 많은 물을 보면 두려워진다. 그래서 이런 곡을 들었던 것 같다.

- 도야호 온천 리조트의 식사
 온천 리조트의 식사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온천 료칸의 식사라고 하면 좀 환상을 가지고 있겠지만, 혼자서도 씩씩하게 료칸을 잘 가는 저는 거기에 환상이 없습니다. 맛있는 곳은 맛있고 맛 없는 곳은 맛없지만 가격은 평등하게 비쌉니다. 그래서 의외로 온천 료칸과 리조트의 식사는 신경써서 고르는게 좋다. 굳이 고르자고 하면 리조트 쪽을 더 좋아하는데, 식사가 망할 가능성이 적고 온천 탕이 다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에 묵었던 ㄴ리조트의 식사는 훌륭했다. 부페의 퀄리티는 그냥 먹을만하지 싶었지만 따로 주문하였던 가이세키 석식/조식은 둘 다 수준급이었다. 가이세키 요리를 시키면 꼭 전반부에 사시미가 나오는데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판에 나오는 튀김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시미도 튀김도 단독으로 먹을 때 훨씬 맛있다.

 실은 내가 일본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얀 쌀밥과 밥반찬. 절대로 부페로는 나올 수가 없는 맛이다. 야채 요리를 먹으면 그 지역의 음식문화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밥과 함께 오이절임 같은 걸 우물우물 씹고 있노라면 일본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그릇에 뚜껑을 열고 국을 마시고 우물우물 밥을 씹는다. 정말로 잘 먹었습니다 하는 인사가 나온다. 물론 제가 이번에 먹은건 음식이 나오기 전에 전체 코스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요리장의 도장까지 찍히는 그런 가이세키였습니다. 미안합니다. 하나도 안 소박해.


- 비에이의 거리
홋카이도에 왔을 때 한 번도 비에이를 빼먹은 적이 없다. 아름다운 언덕과 그 바람들을 잊을수가 없다. 이번에도 청의 호수(아오이이케)에 다녀왔는데 비도 오고 성수기도 아닌지라 사람이 나 외엔 딱 두 명 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듣고 있는 곡은 Olafur Arnalds & Nils Frahm <Life Story>이지만, 비에이에서 계속 흥얼거린 노래는 Beatle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Yellow submarine>이다. 그 외에 자이언티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선곡하는 재주는 없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구릉을 넘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푸른 언덕을 넘어서 바람이 불고 멀리 나무가 보이는 곳에 올라오면, 나는 이 곳이야 말로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을 생각하면 머릿 속 어딘가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 비에이의 야채
 이번에 먹은 것은 만날 가서 먹는 대중식당 ㅈ의 튀김덮밥과 레스토랑 ㅇ의 요리.
한국인에게 너무 잘 알려진 것이 틀림없다. ㅈ에 들어갈 때는 한 무리의 붉은 등산복 한국인들이 있어서 압도당하고 말았으나 변함없이 맛있었다. 물론 큰 소리로 가게에서 떠드는 사람들 덕분에 피곤해졌다. 도대체 왜 본인들이 무리지어 있으면 좀 시끄러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달리 생각해보면 한국인 등산객(등산객이 아닐수도 있다, 그냥 등산복을 입었을 뿐이다) 한 무리가 있는데 조용하다면 그거대로 무서울 것 같긴 하다. 

 먹는게 정말 즐거웠던 것은 역시 레스토랑 ㅇ의 요리. 특히 야채요리는 아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요 싶을 정도로 맛있었는데, 풍요로운 비에이의 밭에서 자란 야채인만큼 삶고 끓여서 그릇 위에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알고보니 얼마 전에 미슐랭에 새로 등재되었다고, 비에이에는 미슐랭에 등재된 가게가 둘이나 있는 셈이다. 한 곳은 프렌치, 다른 한 곳은 이탤리언이다.

- 후라노의 멜론
 (달리 쓸 곳이 없어서 비에이 부분에 쓰는거다) 내가 좋아하는 멜론은 후라노에서 판매하는 칸탈로프 멜론인데, 이제까지 유바리시에서 재배하는 유바리 멜론과 같은 종으로만 알고 있다 아무리 먹어봐도 맛이 달라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유바리킹멜론은 스파이시 칸탈로프와 얼즈페이버릿을 교잡한 종으로 일반 멜론에 가까운 맛과 식감이 특징이라고 한다.
실은 후라노의 멜론이 유바리보다 수확철이 좀 늦기 때문에 이번에는 먹지 못했다. 홋카이도의 멜론 하면 유바리를 떠올릴 정도로 일본인의 유바리 멜론 선호도는 절대적인 것 같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보수적인 유바리 멜론보다는 부드럽고 진한 후라노의 레드퀸 품종이 좋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홋카이도의 멜론 얘길 하면서 후라노의 멜론이라고 정확하게 적지 못한 것에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 다음에 여름의 홋카이도를 방문하게 된다면 더 열심히 후라노의 멜론을 먹어줄 생각이다. 굳은 결심을 한다.


- 삿포로의 스프카레
 역시 스프카레라고 하면 야채인가. 이번이 스프카레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것 같은데 항상 고기투성이의 녀석을 먹다가 이번에는 야채 위주의 녀석을 먹었더니 즐거웠다. 꼭 겨울밤 땅에 묻어놓은 야채를 꺼내다가 자 스프 해먹자 하고 호호 불어가며 먹는 느낌이다. 홋카이도 대학 앞의 스프카레 집이었다. 국적불명의 인테리어에 딱히 인도 같지도 않고 네팔 같지도 않은게 맛은 일본풍이었다. 왜 이런 집이 맛있는 걸까. 한국에서 이런 디스플레이의 집은 100%의 확률로 맛이 없다. 

 홋카이도는 치사하다 고기도 싸고 맛있는 주제에 야채도 싸고 맛있다. 한국은 어차피 농산물시장 개방할거면 쌀 농사 말고 밭 농사 위주로 구조를 바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맛있고 신선한 야채는 항상 수요가 있다. 이미 망한거 어쩔수 없긴 합니다만 아쉽다.

- 삿포로의 징기스칸
 이번에 와서 안 건데, 징기스칸도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었다. 처음 징기스칸을 먹은게 아사히카와, 그리고 그 다음이 다루마 - 둘 다 비슷한 한국식 고기 요리이다. 판 위에 야채를 깔고 양고기를 먹지만 소스 같은 것은 올리지 않는다 - 였기 때문에 꼼짝없이 징기스칸이란 양고기를 한국식으로 먹는 요리이다. 하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가본 마츠오의 징기스칸은 탕이 있었고 그 외엔 양고기와 야채 위에 소스를 뿌린다. 그리고 그것은...불고기 양념입니다. 어찌 되었든 한국식 고기 요리였습니다. 취향인 쪽은 다루마 같다 아무래도.

- 마지막, 소프트 아이스크림
 공항에 내려서, 그리고 공항에 돌아와서 르타오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훌륭한 맛이었다.
여기에 쓰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여행 내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계속 사먹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 훌륭했던게 바로 이 공항에서 먹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었다. 왜 이 곳의 소프트가 맛있는지야 100개도 넘는 이유가 있겠지만, 소프트크림을 먹으며 이 여행을 오게되서 잘 되었다는 생각했다. 

 홋카이도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그것은 홋카이도에 오는 아주 훌륭한 이유가 된다.


- 에필로그
에필로그 곡을 고르는게 쉽지 않다. 어쩐 일인지 여행 중에 한 번도 듣지 않았던 노래를 고르게 된다.
밝고 명랑한 락인 The Charlatans <So Oh>, Kleerup <With Every Heartbeat> 그리고 (나에겐) 항상 홋카이도를 기억하게 하는 John Butler Trio <Young And Wild> 이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한다면 여행 도중에 저스틴 비버의 <What do you mean>을 꽤 들었다. 좀 복잡했던 것 같다.

 굳이 추가 한다면 한 곡을 더 추가하고 싶다. Aaron Carter <Sooner or later>란 팝 음악이다. 이 글을 고치면서 이 곡을 들었다.

"빠르든 늦든 그녀는 시카고로 떠날거야, 빠르든 늦든 그녀는 가버릴거고, 나는 그녀에게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해"

 이 노래는 결국 용기에 대한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용기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할 자격이 없다.


 지난 1월 여행 후 나는 반성이 없는 삶의 훌륭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몇 년 간 나는 계속해서 고민-꼭 다른 생에 있었던 일처럼 멀고 먼, 그러나 아직도 나와 같이 있는 그런- 하고 있는 것이 있고 나는 그 고민이 어떤 형태로도 해결 될 수는 없으나, 어딘가에 그에 대한 답, 혹은 보답이 있을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

 여행 중에 문득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과거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연속 선상 어디에 우리가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건은 계속해서 과거가 되어간다. 

 그렇다면 인과와 순차적인 사고 방식-서사-의 노예이길 거부한다면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총합이 현재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에 의해서 과거가 선택적으로 기억되어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기억이 바로 과거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 쯤의 좌표에서 당신의 인생에 놓이게 될까. 

 우리가, 우리를, 어디서부터 우리라고 여기고. 어느 시점에서 드디어 만났노라고 말 할 까.

17년 6월11일의 글이다.


이것은 딱히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후배는 이번 대선 때 이민 일정이 맞물려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송별을 겸해 밥을 먹는데 (투표를 할 수 있어도) 누구도 뽑고 싶지 않다는 얘길 담담히 했다. 후배는 모 당의 유력후보 중 한 명을 공개 지지했으나 그 후보는 최종 대선 후보는 되지 못했다.

결국 대선 후보가 된 그 후보의 지지자들에 대해서 그런 비열한 사람들이 승리에 도취되는 걸 보고 싶지도 않다.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했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누군가 정치인을 선거 등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후보가 말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가까운 사람들 마저 후보보다 당신을 먼저 공격하고 자못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하게 설교를 한다. 실수를 하지 않아도 각종 네거티브에 시달려야 한다. 

선배, 그 사람을 지지한다고 한 후에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그 사람을 왜 지지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세요? 라고 말했다. 수고했다고, 공개적으로 누굴 지지한다는 것은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걸로 후배가 기분이 풀렸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용감한 행동이다. 아무래도 나같이 무기력한 인간보다는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고 사회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움직이는게 아닌가 싶다. 부정할수 없다. 우리가 피드백을 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는 요구하는 자들의 이끌림에 의해서 움직여나가고 형성되어 왔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반영하는 것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사회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런 열렬한 지지자들이 꼭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지지자를 지닌 정치인이 있을 때 그를 지지한다고 해서 모두 완전히 동일한 의견을 가질 수는 없다. 정치인이란 결국은 "챔피언"이고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여 한가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이 된다. 수렴과 발산, 모순된 속성을 가진 이 정치인과 지지세력 사이의 균형을 우리들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인 그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비극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탄생했다. 크게는 수많은 전쟁들 이고 작게는 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후배에게 상대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욕을 퍼부은 사람들일 것이다. 아니 작지 않다. 나에겐 충분히 기분 나쁜 일이었다.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나는 나같은 무기력한 부동층에게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게 있다. 

우리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특정한 이유, 그러니까 계층이라거나 특별한 정책 때문에 그 후보를 꼭 지지하고자 마음 먹은게 아니라면 나는 감히, 그러니까 감히 쉽게 누군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을 권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당신 스스로가 선거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100%동일한 관점과 정책을 지닌 후보는 누구도 없다.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하며 짜잔 놀랍겠지만 선택을 하려면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건 Trade off를 통해 균형을 맞춰서 최상의 점수를 지닌 대안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안다, 귀찮은거. 그냥 우리 고향 사람이니까 하는 식으로 선택을 해버리면 간단하다. 당신이 가장 알기 쉬운 것 예를 들어서 국가관이나 안보관 같은 걸로 재빠르게 선택을 해버리고 TV토론을 할 때 축구경기를 하는 식으로 응원하고 투표소에 가서 딱 손 털고 투표 결과를 보는거, 그거 얼마나 쉽고 신나는가. 만약에 당신이 뽑은 후보가 당선이라도 되게 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투표 인구가 4천만명 정도 되는데 당신이 누구한테 찍든지 당신의 표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사표인데 뭐 그렇게 열심히 생각해야하는가.

나는 명확한 도덕기준을 지니고 -반드시 투표하는- 침묵하는 부동층이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수는 30%까지도 필요 없다. 단지 15%만이라도 좋다. 단독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끝의 끝까지 선택을 유보하는 그런 부동층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부가 부도덕한 선택을 할 때, 명확하고 발전적인 기준을 원칙으로 삼아 선택을 하는 그런 부동층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SNS에서 도덕적인 뭐시기의 시기에 중립이나 지키는 놈들은 지옥불에 타버릴 것이다 라는 위협을 들어도 하아? 하고 무시해버릴 수 있는 그런 태평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보다 악마에 가까워서 지옥불 쯤이야 뭐, 하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가 있다면, 나라는 극단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정체를 알수 없는 정치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지층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만들 것이고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TV토론에서 바보 같은 소리를 하지 않도록 참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정치인들의 열혈지지층이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자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다. 봐 우리가 싸우고 있는 사이에 저기 지옥불에 타고 있는 관중들이 눈썹을 찌푸리고 있어. 하고 말이다.

나는 진보를 원한다. 인권이 더 많이 보장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얻고 능력에 따라 소득을, 그리고 그 능력은 정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존권은 나라가 보장해주는 권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경제적 성장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하며 그것이 우리나라가 이 별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 이룩해야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좀 더 애매모호한 지역에 나 자신을 두고 싶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이든 완벽하게 도덕적일 수 없으며, 우리가 너무 빠르게 선택을 해버리면 더 나아질 가능성을 빼앗기는게 아닌가 의심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는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17년 4월 24일, 대선을 어 며칠이지 얼마 앞두고 쓴 글이다.




'부재증명_(에세이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0916] Either-or  (0) 2018.09.16
[20180511] 잔불  (0) 2018.05.13
[20161230] 가모가와, 강변의 여우  (1) 2016.12.30
[20160723] 친구가 결혼했다.   (2) 2016.07.23
[20160406] 망고  (0) 2016.04.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