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고, 글을 읽지도 않은 사람.


글을 쓰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

책상위에 무실의 "특성없는 남자"는 읽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고, 어딘가 연구소에서 편집한 미래트랜드 보고서는 목차를 읽고 집어던져버렸다. 회사에서 선물받은 책이란게 그렇지 뭐.

오랫동안 집중을 하기가 힘들어서 비교적 간단한 책들을 읽고 있었다. 교고쿠 나츠히코나 필립K.딕의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보면 일종의 독서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전은 없다.
내용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따분하고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지하철에서가 아니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
이런게 납득할 만한 변명인지 생각해본다. 웃음이 나온다. 웃음이 쓰다.

매일 수십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쓰고 메일을 적고 있지만, 그게 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구조적으로는 쌍둥이나 다름없는 글을, 누구나 알수 있는 어휘와 이해하기 쉬운 논리로 늘어놓는다.
애매하고 불확실하며 혼란한 서술이 가져오는 마법같은 세계의 확장은 보고서의 세계엔 없다.
내가 보기엔 보고서의 세계야 말로 불분명한 세계를 간단명료한 서술로서 잡아내고 있으니
어느게 더 거짓말이냐고 묻는다면 보고서 쪽이 그럴텐데.
그래, 객관적인 사실을 데이터로 증명한다고 그게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의도에 따라서는 그게 훨씬 거짓말에 더 가까운 말이 될게 틀림없다.

그래, 나는 거짓말이 잔뜩 적혀있는 글들을 읽고 그런 글들을 쓰고,
그렇게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거지.
목 뒤가 뻐근하게 아파온다.
눈에 피곤이 감겨온다.
도대체 언제쯤 밤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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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 스물 아홉살. 한국 나이로는 서른하나. 이제 회사원이 된 지 3년차. 이런 현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고생 중. 스페이스가 안 눌리는 키보드로 글을 쓰느라 신경질마저 작렬.





회색의 코트를 여민다. 조금 신경 써서 목도리를 맨다. 너는 항상 내 목도리 매는 법이 서툴다고 웃었기 때문에.
손가락 끝에 닿도록 가죽 장갑을 끼고, 발끝에서 허벅지까지 힘을 주어 다리 근육을 푼다.
입을 벌리자 곧 겨울이 내 안에 들어온다. 입을 다물어 겨울을 몸 속에 가둔다.



글을 쓸수도 시를 읊을수도 없게된 나는 낯설지만.
조금 더 걸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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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3년차 직장인이 되는 2년차 직장인. 곧 만으로 29살이 되는데
이런 잔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매일 매일 여기저기에 화를 내고 있다.

문득 어느날 밤의 일이 생각났다. 그날, 나는 여자아이와 밤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그래 T라고 하자. 여기서 여자아이의 이름이 그리 중요한게 아니니까. 
10월의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던 T와 나는, 전쟁터에 버려진 오누이라도 되는 양 꼭 붙어서 거리를 걸었다.

그 날 밤 종로 거리에는, 바람보다 더 적은 사람들이 있었고. 커다란 동물들 처럼 버스가 천천히 다가오고 빠르게 사라졌다.
내 품에 파고들어 바람을 피하던 T는 조금 걸어요. 라고 말했다.

버거킹 앞 사거리에는 땅 바닥에 앉아 통곡하는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여자 아이는 남자아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완전히 길바닥에 주저 앉았고, 남자아이는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질리지도 않고 여자아이를 위로했다. 버거킹에서 새나오는 빛보다 밝은 것은 거리에 없었으니, 내가 그 여자아이라도 울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T는 몇번이나 뒤돌아 보면서 괜찮을까 저 아이. 라고 말했다.

인사동 앞 거리에는 택시들이 잔뜩 나와 서로 코를 부비고. 어깨를 부닥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길 기다리는 T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손을 붙잡고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거웠을 것이고. 생각을 하는 T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겁이 났던 것이다.
나에게 T는 완벽한 미지의 존재이고.그 아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두려웠다.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었고. 이 모든 밤거리와 잡고 있는 손도 모두 어떠한 계절에만 꿀 수 있는 꿈같은 것이었다.

인사동에는 아무도 없었다. T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바람을 참아가며 찻집을 찾던 T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그 거리에서 나에게 내 남자친구 할래요? 라고 물었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눈에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아직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데, T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숨처럼 그렇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해의 10월 15일의 일.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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