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휴양지는 살기 좋다.

다른데선 500원 하는 생수가 1200원이라든가 앗차 하는 사이에 1주일 만에 한달치 월급을 다 쓴다던가 하는 문제만 제외하면 휴양지는 살기 좋다. 너무 비싸서 관광객이 아예 손도 대지 않을 정도로 비싸지 않는다면 정부도 물가에 신경쓰지 않지만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택시기사라든가 사기를 치는 가이드 같은데는 아예 철퇴를 내린다.

나로선 관광산업에 어디 정당한 목적이나 생산적인 부분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일단은 편안한 휴식과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관광객과 지역사회의 수요공급이 맞아 떨어졌을 때 관광지라는게 성립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사기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아무리 춘천이 강원도 도청소재지로서 닭갈비는 맛있지만, 조용해서 그닥 관광으로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고 해도 즌상이가(발음에 정말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살던 곳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떼로 몰려오는걸 볼 때. 그 메카니즘이 극히 불합리한 "선호"위에 합리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런 얘길 하는 이유는, 정말 외국의 생활을 알려면 관광지에 가서는 안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에 있어도 휴양지에 가면 실생활 감각을 잃고 보통 때라면 죽어도 안 살 부채춤추는 인형 같은걸 산다. 그런데 다른 나라, 심지어 휴양지에 간다면 오죽하겠는가. 뭐 다른 나라의 생활을 알기 위해 간다...면서 관광을 가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말이다.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를 다녀왔다. 
조호바루는 조호주의 주도로서 싱가폴에 맞붙어 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중에서도 유수의 부자도시이다. MRT(전철)을 타고 우즈랜드역에 내려 버스를 타면 금방 접경지역에 도착한다. 한국에선 왠지 상상하기 힘든 육로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다시 버스를 타면 지그재그 요상한 길을 올라 말레이시아에 도착한다. 

싱가폴에 워낙 가까이 있기 때문에 싱가폴 사람들에게 "시간 있으면 조호바루라도 다녀오세요."라는 얘길 많이 듣지만. 말레이시아 여러분 죄송합니다. 조호바루는 정말 아무 매력도 없는 땅이다. 여자로 치면 9살때 부터 아이돌가수의 팬덤에 투신해 어느새 삼만명 짜리 카페의 운영자가 된 14살짜리 여자아이며 남자로 치면 7세부터 22세까지의 모든 남자다.

취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낡은 건물과 시끄럽게 들려오는 볼리우드 풍의 음악이 매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불결한 음식물과 외국인을 째려보는 말레이인들이 매력이라고 해도 얘기가 다르다. 하지만 말이지 바닥에 얼룩무늬 처럼 새똥이 널려있고 터미널 바로 앞에서 관광객들이 먹다 남긴 맥도널드 사이드 메뉴를 씹고 있는 사람이 있는건 어떻게 봐도 매력은 아니다.

싱가폴 사람들은 강도 조심하세요,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정말 있어요. 그것도 많아요. 이런 소릴 하면서 도대체 왜 조호바루에 다녀오라고  하는지 알수가 없다. 아마 그건 과거 싱가폴이 말레이 연방의 하나 였으며 언제든지 말레이시아처럼 될 수 있다는 자각을 갖고 살아가야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 매력하나 없는 땅에서 나는 뭔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싱가폴 처럼 잘 정돈되어 있지도 않으며 방콕처럼 수도이자 관광지도 아니다. 험상궂은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일을 나가는 이 도시를 몇시간 동안 걸으면서 이 도시의 생활감각을 느낀 듯한 기분이 든다. 무슨 생각으로 이 오줌냄새 나는 교차로를 걷고 찌그러진 벤치에 앉고 더럽혀진 계단을 오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정말 말레이시아 사람이 되어 그들과 잠시나마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누구도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말레이시아의 관광지에 갔다면, 분명 느끼지 못할 기분이었으리라.

나는 웃지도 성내지도 않고, 묵묵히 길을 걸었다.

어긋나거나 주저함도 없이.

그렇게 많은 것을 잊은척 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이번은 칠리크랩의 이야기이다.

싱가폴의 가장 유명한 음식은 칠리크랩chili crab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게 요리임에도 불구하고 싱가폴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국의 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는 싱가폴에서 달리 눈에 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싱가폴의 문화 특징을 설명 할 수 있는 용어 중에 '페라나칸peranakan'이라는 것이 있다. 싱가폴에서는 주로 인도네시아인과 중국화교들과의 혼혈로 19세기부터 꾸준히 인도네시아와 부근 지역에서 살기 시작해 이제는 싱가폴의 다수로서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싱가폴의 특징적인 혼합문화를 설명하는데 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건축양식은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식문화에 있어서도 그들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데 칠리크랩이 말레이시아와 중국음식의 혼합이라는 면에서 싱가폴의 가장 싱가폴 다운 음식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칠리크랩은 신선한 레드칠리와 토마토 소스, 신선한 달걀, 파로 만든 그레이비를 곁들여 만든다. 걸죽한 양념과 함께 볶아내고 향초를 곁들인 커다란 게요리라고 할 수 있는데 매운 요리인 만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다. 토마토 소스의 영향으로 살짝 단 맛을 내는 이 요리는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먹게 되지만 손으로 먹는 것이 이 보다 잘 어울리는 요리도 드물다.
코리엔더 향이 약간 풍기는 소스에서 게 다리를 꺼내 껍질을 부순다. 살이 가득한 게살은 탄력이 가득하며 살짝 튀겨진 향초의 향이 콧속에 가득 퍼진다. 보통 추가적으로 시켜야하는 빵이나 볶음밥은 소스와 함께 먹기에 딱 좋다. 비싸기 때문에 먹기에 양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먹다보면 배가 부르는 것과는 다른 만족감이 생겨난다. 매운맛과 껍질을 입에 물고 먹어야하는 게라는 요소 때문인지 금세 입이 얼얼해지며 만족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칠리크랩이다.

유명한 가게로는 클락키의 점보가 있지만 점보는 관광객 상대의 가게로 싱가폴의 비싼 식당이 그렇듯 시간내에 식사를 마쳐야한다. 그것보다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이스트 코스트 시푸드 센터로 택시를 타고 가 그곳의 롱비치를 이용하는 것. 시푸드 센터 자체에 많은 해산물전문(정확히 말하자면 모두 칠리크랩이 메인인 가게)가게가 있지만 롱비치가 그중 가장 오래되었고 칠리크랩을 만들었, 아니 최소한 돈주고 팔기 시작한 가게로 소문이 나있다. 점보나 노사인보드 같은 가게도 물론 시푸드 센터에 입점해있다. 하지만 한국인 입맛에 가장 맞는 칠리크랩은 역시 롱비치. 맵고 자극적이다. 웨이트리스에게 한국인이란 걸 들키면 자연스럽게 가장 매운 (클래식도 있고 맵지 않은 것도 있다.) 칠리크랩을 추천해준다. 입가에 썩소를 짓고 가장 맵다는 칠리크랩을 먹어주도록 하자. 물론 그닥 맵지 않다 그래도 다 먹을 때 쯤엔 입술이 후끈거리는걸 피할 수 없다.

특이할 만한 점은 싱가폴의 가게는 기본으로 나오는 것이 없다는 점. 물티슈, 같이 나오는 땅콩 같은 것도 나중에 계산서를 확인해 보면 다 포함되어 있다. 물티슈야 칠리크랩을 먹는데 필수지만 땅콩은 맛도 없기 때문에 가지고 오자마자 필요없다고 돌려보내도록 하자.
롱비치에서 맛있는 것은 삼발깡콩이라는 야채 볶음. 빵을 시켜도 좋지만 세트로 책정되어 있는 메뉴를 먹으면 2인 메뉴 기준으로 키180이 넘는 남자 둘이 먹어도 배부르게 먹을 정도다.

또 주의해야할 점은 좀 비싼 음식이긴 해도 싱가폴 체류 중에 두 번 정도는 먹어주는게 좋다는 점. 맛있는 음식이지만 조금 비싸. 이렇게 생각되긴 하지만 한 번만 먹고 싱가폴을 떠나게 되면 꼭 생각나게 되어 있다. 두 번 먹어서 칠리크랩에 대한 미련을 싱가폴에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솔직히 정량은 두 번 반 정도라고 생각한다.
두 번 먹으면 조금 생각나지만 세 번 먹으면 조금 질리는 정도의 맛이다.

 

두 번 반. 오묘한 숫자다.

 

그 덕에 그 반만큼 나에겐 무언가가 남았다. 언젠가는 싱가폴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고 싶다.

항상 쓰고 있는 다이어리와는 별개로 뭔가를 쓰고 싶었다. 여행기일 수도 있지만 여행의 이야기이기보다는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며 내키는 대로 농담을 쓰거나 조금은 복잡한 사고를 거쳐서 나온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매일 날짜를 붙여서 그날 있었던 일과 관련된 일들을 쓰는건 그냥 그렇게 쓰는게 아무 맥락 없이 쓰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내 글 대부분이 그렇듯이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으며 (읽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싸이 게시판에 썼던 다른 글 처럼 곧 비공개로 전환되어 내 기록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내 답장이다. "세상"에 대한 답장. 결국은 글을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언젠가는 결론을 지어야 할 삶의 어떤 '장'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처음장과 함께 마지막 장이 같이 쓰여졌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Long goodbye(기나긴 이별)"이며 익히 알려진 것과 같이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 실질적인 최후의 작품이고 나는 이 작품을 내 이번 여행 가방에 쑤셔넣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미 존재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뭔가를 배워가고 꺠달아가고 있다는 듯이 쓰고 있었지만 마지막 한 문장을 이미 정해놓고 그곳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뿐. 내가 깨달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쩌면 나는 내가 어떤 외국생활을 하든지 결국에 어떤 흐름을 따라 한 결론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서 계속 쓰여지고 있고 결국은 내가 준비해 놓은 마지막 한 문장과 동시에 내가 준비해 놓은 끝으로 진행되게 된다. 나는 결국 글쟁이이기 떄문에 끝맺음을 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글 "인연"을 쓰면서 (원래 이번 글의 내용은 말레이시아 여행에 대한 농담이 될 예정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듯, 인생을 만들어 갈순 없는게 아닐까. 신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나로선 읽을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내가 하고 있는 짓은 자기 만족의 멍청한 짓이 아닐까.

적절한 갈등?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이야기 흐름? 완벽하 결말? 인생에 그런게 있던가. 내가 맺고 싶어하는 그러한 형태의 끝맺음은 인생에는 없는게 아닐까. 어떤 이야기든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인생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지 인생 자체가 이야기가 될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얼마 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불교의 교리처럼 우리 인간들의 인연이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긴 것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도, 이을 수도 없어서 삼생에 걸쳐서 이어지는 것이란 걸까. 나의 분노도, 사랑도, 노력도, 지혜도 모두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서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전생에서도 사랑했고 후생에서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깨달음을 기다린다.
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꺠달음을 기다린다. 내 사고와 감정을 넘어서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해줄 깨달음을 기다린다. 내가 세계에 "답장"을 보낼 수 있게 해줄 그런 것을.

아직은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전에 깨달음을 기다릴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분명 그럴 것이다.

누군가 여행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한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할까.

솔직히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무슨 얘길해도 너무 씨니컬하다느니 애가 부정적이라느니 하는 소릴 들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갖은 구박과 나에 대한 정당한 중상모략을 다 감수하고 얘길 하자면, 여행의 좋은 점은 자기가 뭘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태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필요한 태국말이 뭐였냐..고 한다면 역시 마이 싸이 팍치”, 팍치는 빼주세요, 라는 말이다. 팍치가 뭐냐 하면 영어로 코리앤더, 또는 실란트로(코리앤더의 잎을 실란트로라고 한다)라고 하며 우리나라 말로는 고수. 우리나라의 태국음식점에선 그닥 쓰지 않지만 굉장히 오묘한 향을 지닌 향초다. 몸에도 굉장히 좋고 특히 식중독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서 동남아시아의 위생관념에 의문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먹어주는게 좋다.

, 먹을 수 있다면 말이지. 난 못먹겠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수 십년을 살면서 못 먹는 음식은 일단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솔직히 팍치는 못 먹겠다. 아니 먹긴 한다. 하지만 너무 괴롭다. 양이 적은 동남아시아의 음식들도 팍치가 들어만 가면 반그릇으로도 충분한 음식이 된다. 실제로 태국에서 여행할 땐 아메리칸 블랙퍼스트 식인 호텔 아침 부페만 죽어라 먹고 하루종일 소식만 하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태국인들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역시 인류는 하나다. 똠양(태국의 국물요리)은 너무 유명해져서 거의 맛이 스탠더드화 되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어딜 가도 비슷한 수준의 맛을 즐길 수 있는데, 불행히도 개중에는 팍치를 마음껏 쓰는 인심좋고 전통에 충실한 요리사들이 있다. 제발 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 요리사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가.

 

또 싫어하는걸 깨달은 게 있다면 바로 코코넛. 영화 같은데서 코코넛을 너무나 맛있게 깨먹기 때문에 다들 우왕 저건 맛있는거..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게 틀림없다.
진실을 얘기해주자면 더럽게 맛없다. 물도 아닌데 그렇다고 달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어정쩡한 맛이다. 삼킬 때 목으로 그냥 삼켜야한다. 혀에 닿으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피부로 코코넛의 수분을 흡수해서 입안에 넣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건 무리다. 우린 진화의 과정에서 뭔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리의 선조가 입을 통해 음식물을 흡수하기로 결정해버렸기 때문에 우린 코코넛을 입으로 먹어야 하는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코코넛이 싫다면 눈치 챘겠지만 코코넛 밀크도 싫다. 다시 말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모든 밥 종류가 싫다. 코코넛 밀크로 밥을 하기 때문인데 웃으면서 밥을 먹다가 입안 가득히 퍼지는 코코넛의 향기에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찾게 된다. 내가 만든 파스타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맛에 굉장히 관대한 편인데.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을 두 세번 먹다 보면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중국인에 대한 이상한 감정을 갖게 되는걸 느낄 수 있는데 내가 알기론 그 감정은 바로 사랑. 밥을 먹을 때 딤섬이나 중국음식점을 헤매여 찾게 되고(여기까지 와서 한식이나 일식을 먹을순 없지 않은가) 중국인들에게 동포의식까지 느끼게 된다. 졸지에 10억명의 형제가 생기는 셈. 말레이시아에 가면 확실히 그런걸 느끼게 된다. 중국인들도 이상하게 우리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다.

 

무엇보다 싫은게 있다면. 바로 두리얀. 과일의 여왕. 하지만 냄새는 왕.

기억난다.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이 싱가폴에 갔다온 이야기를 했을 때 한국에서 사과가지고 가서 비싼 과일이랑 바꿔먹었다느니 하는 소릴 하하 웃으면서 듣다가 갑자기 두리얀이라는 지옥의 과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심각한 모습이 되셨을 때, 나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두리얀을 들고는 호텔에도 비행기에도 못 들어간다는 얘기도 좀 과장이라고 생각했다.(물론 레스토랑에도 안된다. 태국에는 입구에 노 두리얀이 붙어있는 곳이 꽤 있고 호텔 경고문에 분명하게 써있다.)

아냐. 그거 정말이었어. 두리얀은 정말 지옥의 과일. 냄새에 관해선 진짜 왕에 가깝다.

나도 처음엔 그닥 역하지 않다. 나름 달콤한 냄새다. 라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냄새가 나는 쪽으로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냄새는 나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무슨 이상향처럼..)그렇다. 내가 맡은 냄새는 약 15에서 20미터 가량 두리얀에게서 떨어졌을 때 나는 냄새 였던 것이다.

쇠고기 만큼 다양한 등급의 두리얀이 있는데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건 역시 냄새의 강력함과 그 범위,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서양인을 냄새로 죽일 수 있는가로 판정 하는게 아닐까. 거짓말이 아니다 밀봉한 비닐 팩에 씌워놔도 3미터 밖에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과일가게는 10미터 멀리에서도 오직 두리얀 냄새 밖에 나지 않는다. 태국의 뒷골목, 그리고 싱가폴의 뒷골목에는 쓰레기 냄새 따윈 나지 않는다. 두리얀 냄새가 난다. 이제는 사라져 그 모습 간데 없지만 두리얀의 냄새는 뒷골목에 영원히 남는다. 미식축구 뛰고 보호장비 벗고 샤워는 안 한 채로 치즈 버거 먹으러 온 미국인보다도 훨씬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면 어떨까? 아니 냄새 발전기라 불리우는 인도의 카레 전문점의 냄새는? 솔직히 다 두리얀에게는 상대가 안된다. 그것은 바로 왕의 냄새. 범상한 인류가 판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내가 여행 도중 싫어한다는 걸 깨달은 세가지 물건. 또는 냄새에 대해서 적어보았다.(그 외에도 싫어하는게 많아지긴 했다. 예를 들어 태국의 교통사정이나 싱가폴의 택시 할증) 여행은 자기를 발견하는 것. 이라는 말에 대해 자기가 이제까지 몰랐던 싫어하는걸 발견하게 되는거니 역시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 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도 자기가 뭘 싫어하는지 발견하러 가는건 어떨까? 너무 늦기 전에 마이 싸이 팍치, 이 한 마디 만은 확실하게 익히고 태국을 가는게 좋을 것이다. 정신 차려보면 호텔의 아침 식사만 죽어라 먹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커다란 나무를 보면 기분이 좋다.

보통 너무 커다란 것을 보면 무서워 지기 마련인데(예를 들자면 미군부대에서 시킬수 있는 점보 사이즈 버거와 밀크 쉐이크, 슈퍼모델, 너무 큰 레포트 뭉치..) 나무는 아무리 커도 사람을 무섭게 만들지 않는 몇 안되는 물건이다.

싱가폴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많다. 길가에, 공원에, 그리고 도심에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년 수령의 커다란 나무들이 서있다. 남쪽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한 걸까? 아니다. 최소한 내가 본 방콕의 시내는 그렇지 않았다. 위도상으로 방콕이 살짝 북쪽이긴 하지만 거의 같은 기후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싱가폴은 훨씬 푸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싱가폴의 나무들은 대부분 아프리카 수종이다. 수십년전 아프리카에서 나무들을 사와 자기들의 땅에 심은 싱가폴 행정부는 나무에 번호를 붙이고 세심하게 그들을 관리한다. 이 섬뜩해보이기 까지 하는 싱가폴의 섬세한 국가정책은 싱가폴의 힘과 이 작은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모두 간접적으로 알수 있게 해준다.

싱가폴은 흔히들 유교적 사회주의라고들 한다. 농담처럼 현재 존재하는 단 세 개의 사회주의 국가를 일본, 싱가폴, 북한이라고 하는데, 싱가폴은 단 한 사람의 구상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정신적으론 영국인이자 싱가폴의 국가적 멘토인 '리콴유'는 오랜 시간에 걸쳐 싱가폴을 정교한 예술 제품처럼 만들어냈다. 물론 싱가폴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명성이나 국제적인 위상을 생각하면 이 적도 부근의 도시국가가 단 2세대 정도(65년 공화국 설립)에 만들어졌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물론 그가 싱가폴을 독재 하에 운영하고 있으며 수상자리를 자기 아들에게 맡김으로서 세습체제로 영구적인 권력자의 위치까지 노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국가들 또한 독재정부 하에 운영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 지역에서 싱가폴의 경우가 그리 특별하다고 볼 순 없으며 오히려 같은 독재 정부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자본 이동과 탄탄한 해운 산업 기반으로 일본과 홍콩에 버금가는 아시아 자본의 상징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의 독재가 매우 특별한 것이란걸 반증한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자본을 싱가폴로 결집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것이다. 혼란 속에 빠져 있던 1960년대의 동남아시아는 많은 자원과 인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독재나 군부의 통치 속에서 효율적으로 통제 할 수 없었고 행정적인 통치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국민들은 교육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낮아 치안도 불안했다.

그러나 일찌기 영국의 식민지이자 일본의 식민지였던 싱가폴은 일단 공화국으로서 기능하게 되자 사회주의 기조 하에 강력한 행정력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모든 독재국가는 강력한 행정력을 가질 수 밖에 없지만) 안정적인 국가환경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일단, 강력한 벌금과 국민통제를 통해 치안 등에서 외국에 신뢰받을 수 있게 되자 안그래도 해운에 있어서 중심지였던 싱가폴의 항구들은 치안이 불안정한 주변의 항구로 가는 배들을 모두 끌어들일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안정적인 치안과 효율적인 해운이라는 메리트는 주변의 화교자본을 끌어들이면서 싱가폴의 빠른 성장을 견인해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보이는 싱가폴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싱가폴 정부의 사회주의적인 특성때문이다.
싱가폴 도심을 다니다 보면 뜬금없이 녹지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새로운 쇼핑센터(한국과는 전혀 다른 규모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가 어디선가 계속 지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광경으로 가장 번화한 상점가인 오차드 로드에서 조차 새로운 쇼핑센터가 생겨나고 중심지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클락키에 5년전에만 해도 없던 레스토랑 가가 생겨나있다. 그건 싱가폴의 모든 토지가 실질적으로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99년, 999년 기준으로 국가를 사용자에게 빌려주며 이런 정책은 국가가 지대를 통해 자기의 배만 불린다고 비판을 듣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도시국가로서 부동산이 폭증할 가능성이 있는 싱가폴의 땅값을 안정시키며 낮은 수준으로 유지함과 동시에 국가가 전체적이고도 효율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해서 언제라도 도심지역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의 건축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하자면 영등포에 새로 생긴 타임스퀘어는 경방백화점의 자리에 생겨난 것으로 과연 우리나라의 그런  번화가 자리에 더 이상 대규모의 쇼핑몰이 생겨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한 서민아파트를 가장 중요한 지구인 지하철 부근에 건설함으로서 월 20만원 이하의 집세만으로도 서민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관리. 싱가폴의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교적인 서민주의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건 다민족 국가인 싱가폴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국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싱가폴은 불안정한 국가이다. 독재로 인한 강력한 행정과 결집되어 있는 국제적 자본, 사회주의 기조를 통해 이룩한 서민정책에도 불구하고 싱가폴의 위치는 불안하다. 전술한바와 같이 다민족국가에 외국인 노동자(한국 교민 2만, 일본 교민 7만..싱가폴 전체 인구가 430만 정도지만 실질적으로 300만 정도만 싱가폴 국민이라고 한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싱가폴은 군사적으로 강력한 대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낀 모래성과 같다. 싱가폴 자체적으로도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역사가 짧아 충성도가 낮고 소속감이 거의 없는 싱가폴의 국민들은 국가 산업 특성상 자유화 되어 있는 자본의 이동을 등에 업고 언제든지 싱가폴을 떠날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나무에 번호를 붙이듯이 통제해 온 싱가폴의 국민들이 국가적 위기에서 자신들의 자본을 희생해가며 싱가폴에 충성하리라 생각하기 힘들다. 민주주의 체계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쓸려나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바로 국가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는 자각에 의해서 였던 것이다.

1923년생인 리콴유에게 남은 시간이 길다고 보긴 힘들다. 얼기 설기 만들어져 강력한 행정력과 사회주의 기조 아래 완성된 이 나라가 언제까지 유지 될 수 있을지는 알수 없다. 싱가폴이 가진 강력한 자본은 사실 싱가폴이 가진 무기이자 주변 국가들이 싱가폴을 노리게 만드는 먹음직스러운 과실이다. 이 작은 나라가 작은 지방이 되는데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항상 재미있게 살기는 참 힘들다. 내 경험에 의하면 시트콤 처럼 재미있는 일만 일어나는건 불가능에 가깝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항상 비루하고 지루하다. 있다면 그 어떤 한심한 일이라고 해도 재미있게 만들수 있는 재미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 재미있는 사건이 있는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항상 재미있게 살 수는 없다. 인간에겐 주어진 일정 수준의 재미 마일리지 란게 있어서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포인트를 가지는 법이라 보통 재미있는 사람도 마일리지를 다 소진하고 나면 한심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재미 마일리지가 머리 끝까지 차 있다고 해도 재미있게 만들기 너무너무 어려운 일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휴양지에서 4박5일의 휴가를 보낸 후 돌아가는 날 이라든지.
그렇다. 휴양지에서 돌아가는 날은 어떻게 해도 재미있게 되기 힘들다. 게다가 급하게 짐을 싸야하는 데다가 짐이란게 장난이 아닐 경우가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서 가볍게 싸온다고 싸왔는데 짐의 태반이 태국(태국 또한 한가지 예다)의 기후에 맞지 않는 옷이라 입지도 않았고 현지에서 사온 티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그 티셔츠란걸 아무 생각없이 너무 사버린 덕에 가방이 터질 정도고, 인도인 테일러를 만나 양복 합계 4벌 추가 바지 3개 셔츠 합계 8벌을 샀으며 각자 구두가 너무 싼 나머지 구두 두 켤레에 가방까지 사고 말았다.....는 예를 들 수 있는데. 생각만 해도 마음이 갑갑해질 정도 아닌가?

이런 짐을 급히 싸야하는데 마음이 풍요롭고 즐겁다면 그건 재미 마일리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즐겁다는 사람은 경찰에 신고해 아무래도 얘 마약하는 것 같아요, 라고 신고해야한다.

게다가 휴양지가 마음에 들었다면 더 빡치는 노릇이다. 돌아갈 곳이 에...예를 들어 싱가폴? 아니다 애팔래치아 산맥 같은 걸로 해보자.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에서 소를 치는 목동이 재미 마일리지를 3년간 모아 태국..아니 로스 앤젤레스에 갔다고 치자. 가서 스티븐 시걸도 보고 패리스 힐튼이 들린 가게도 가보고 채식주의자들이나 먹는다는 콩버거도 먹어보는 등 너무너무 즐거운 휴가를 보냈을 때.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돌아가는 그의 마음은 어떠할 까? 게다가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중요한 자각마저 한다. 아...나는 쇠고기를 싫어한다. 채식주의자였구나! 이러면서. 3년간 모아온 것이니 만큼 재미 마일리지가 300포인트 정도 남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울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휴양은 언제나 끝나는 법. 금세 끝나 버린 휴가는 길게 여운을 남기고 당신은 한참 동안 우울증에 빠져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당신이 어떤 재미 마일리지를 쌓는 사람인지 모른다. 어떤 꿈을 지니고 있고 뭘 위해서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다만 어금니를 깨물고 현재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만 알고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은 항상 인생 그 자체보다 더 긴 일상이다. 우린 또 어찌됐든 비루한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재미 마일리지를 사용해가며 재미 마일리지를 모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꾸면서... 즐길 수 없다고 그걸로 모든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애팔래치아에서 소를 치는 목동에게도 삶을 사랑할 기회는 언제나 있다. 즐거운 일 따윈 하나도 없지만, 당신이 운만 좋다면 일상을 휴가보다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믿으라. 내 말은 대부분 틀리지만 가끔가다 옳을 때도 있다.

우기라는데, 도착하고 나흘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큰 비를 봤다.
싱가폴의 창이 공항으로 택시를 잡으러 나갈 때 부터 바람이 불고 하늘이 어두워 지더니 택시를 타자 차창에 뭔가 쏟아지는 소리가 나며 비가 부딪혀온다. 걸어다니는 모든 것의 무릎을 꿇리고 서 있는 것 모든 것들의 고개를 숙일 만큼의 비다. 시야가 어두워져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휴가를 내고 나와 함께 태국에 가는 형과 매일 매일 맛없는 파스타 만들기 기록을 갱신하고 있던 나는 촌스러운 북반구인 답게 쏟아지는 비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쳐다본다. 

싱가폴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그건 산업적으로는 해운운송의 중심국가라는 뜻이고, 관광객에게는 싱가폴을 기점으로 하면 어느 나라도 싸고 가고 쉽다는 뜻이다. 북쪽으로는 육로로(!)말레이시아에 갈 수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배타고 금방. 태국이든 필리핀이든 저가 항공(Budget airline)을 타면 싸고 쉽게 갈 수 있다.
4박 5일의 짧은 여정에, 체류지는 방콕으로 한정했다. 여행지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형인지라 내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계획이 있는 것 같은 얼굴로 결연히 태국 지도를 펼쳐본다.(형이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것은 호텔에 가자마자 밝혀진다.)
문명 국가 싱가폴도 이렇게 더운데 관광국인 태국은 얼마나 더울까. 눈물이 났다. 마음에 땀이 났다.

싱가폴은 세련되었다. 아마 적도 부근의 어떤 나라보다도 세련되었을 것이다. 관광객을 보아도 외국인을 보아도 그들은 관심이 없고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공항과 쇼핑몰은 친절하다기 보다 예의바르게 사람들을 맞는다. 하지만 세련됨을 가장한 그들의 무표정은 일본에서 느낀다는 서양인들의 섬뜩함 이상일 것이다.

대국 중국의 마지막 꼬리로서 적도에 다다른 싱가폴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정책상으로도 관광객들이 필요 할 것이다. 볼모로서, 면세 혜택과 화려한 소비문화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도시국가.

매일같이 싱가폴을 입에 올리고, 브로슈어와 광고에는 싱가폴과 머라이온의 상징이 끝없이 등장한다. 유교적 사회주의 사상을 기반에 두었음에도 자유무역에 선두에 선 싱가폴은 모순된 나라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에도 쏟아지는 비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 나라가 어울리는 땅이 있다면 그건 분명 강철의 침엽수와 거울같은 호수가 있는 겨울의 땅일 것이다.

여름 나라라는 이름은 아름답고 어설프며 더럽고 친절한 불교의 나라 태국에 좀 더 어울리는 것이리라.

문득, 수영이의 큰 딸이 생각났다. 싱가폴에서 태어나 싱가폴에서 자라난 3살 짜리 꼬마. 큰 이마와 선연한 눈매를 가지고 태어난 그 아이의 속을 알 수 없는 머리는 비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어렸을 때 내가 했던 것처럼 이마에 달라 붙은 머리카락을 문지르며 창가에 머릴 대고는 놀라움과 아련함으로 비를 바라보고 있을까.중국어와 한국어, 영어로 사고하는 그 아이는. 싱가폴을 고향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비를 볼 때 마다 느끼는 이 아련함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28일 밤 태국에 도착하다. 방콕의 스완나품 공항은 아름답지도 편리하지도 않았고 싱가폴보다 높은 기온의 방콕의 밤 바람은 뜨겁다. 하지만 한국이 아님에도 태국은 편안하다. 사방이 이방인이며 이방인들은 모두 미소를 짓는다. 현지인들 또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나는 이 친절함을 거부하기 위해 고독을 몸에 두르고, 밤을 걷는다.
그리고 한 번 더 그 작은 여자아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와키 선생님께,

 

여름문안인사를 드리고 싶은 날씨입니다.
가본적은 없으나 일본의 여름이 이렇지 않을까 싶게 하늘이 파랗습니다. 선생님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곳은 선생님께서 싱가폴의 호텔에서 일하고 계실 때와 많이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북극이 그렇듯이 적도 부근의 나라는 달라지기 힘드니까요. 이렇게 끝없이 지속되는 여름이 있는 나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여름이 지속되는 한 아마 이 곳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계시던 그 때 그 대로의 풍경을 저도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선생님, 얼마 전 저는 지하철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여학생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 봤을 리는 없겠지만 보란 듯이 한국어 교재 프린트를 제 앞에서 들고 공부하는 모습에 저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수도는_입니다. 라느니. 저의 이름은_입니다. 라느니. 간단한 한국어 회화와 한국단어들이 있는 교재가 매우 귀여웠습니다. 어쩌면 제가 한국인이란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곳 사람의 말로는 제가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굉장히 달라 보인다고 합니다. 키가 크고 하얗기 때문에 중국인으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말이라도 걸어봐야 했을까요. 어쩌면 열심히 하라고 응원이라도 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대 앞을 걸어 갈 때 아무리 두꺼운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다녀도 일본인인걸 모두 알아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려나요.

 

선생님은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시나요.

귀엽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어쩌면 이 곳은 일본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시게 되시나요.

저는 항상 세상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건방지게 외국이라곤 다녀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rpg에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결국 마을은 똑같은 텍스처를 사용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곳이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제 생각이 맞긴 했지만 제 생각이 틀리기도 한 듯합니다. 싱가폴의 번화가인 타운홀과 오차드 로드 일대를 걸어다니니 완전히 다르고도 비슷한 한국의 번화가가 생각나더군요. 세계적으로 확산된 자본주의의 구동방식에 알맞게 진화했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팔과 날개를 지닌 짐승들처럼 똑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도쿄, 서울, 싱가폴동아시아의 한 형제들.


선생님, 싱가폴 또한 한국의 여느 곳이나 다를 바 없는 땅이었지만, 동시에 이 곳은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제 주장이 맞다면 전 싱가폴에서도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하고 외로움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아야 했는데, 전 왠지 참혹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제가 완전히 흰 피부에 금발머리를 한 외국인이었다면 이 참혹한 기분을 이그조틱이라느니 하면서 웃으며 넘겼을텐데 나와 비슷하고도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곳에서 입안에 모래가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지도 모르겠군요.
화려한 쇼윈도와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소비의 천국에서 저는 아무래도 고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상실’이란게 뭔지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미련이 없어졌다고 생각한 한국 땅을 그리워하고 슬퍼하게 된 것이겠지요.


저는 어쩌면 영영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모든 눈물을 머금은 그 곳으로요.
봄의 꽃과 여름의 밤 가을의 달과 겨울의 공기.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한 저의 고향으로요. 제 몸 하나하나를 이루는 모든 것을 내주었고 또 그것을 모두 거둬갈 제 하나 밖에 없는 고향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정해진 수순이라면, 제가 이 여름 나라의 매일 밤을 오열하면서 보낸다고 해도. 결국은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지겠지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사람의 명운을 움직이는 것이 신도 개인의 의지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영혼이고. 결국 언젠가는 있어야 할 곳에서 고요히 잠들게 된다고 한다면요.

선생님, 이 곳의 밤은 아름답습니다. 바람이 불고 또 바람이 불어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제 자리는 없습니다.

 

2009년 현재, 싱가폴에는 빨간은행과 파란은행의 내전 중이다.

모든 ATM
은 빨간은행..즉 화교은행과 파란은행즉 대화은행 두가지 종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연적으로 모든 싱가폴인들은 저 두 은행 중 하나의 추종자로서 다른은행의 ATM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테러하고, 그 은행들의 크레딧 카드를 모아 집을 장식하거나. 응 그런 일은 없다. 미안하다.

두 은행은 어딜 가나 쌍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ATM도 항상 동수로 설치되어 있다. 씨티은행같은 글로벌해보이지만 소수세력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정말로 돈을 뽑으려면 시티홀에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 기묘한 붉은 색과 푸른 색의 조화는 뭔가 문화적인 특이현상을 관찰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한다. 어쨌든 한국인이 보기에 ATM에 말도 안되게 길게 줄을 선 싱가폴인들은, 어쩐지 외국인으로선 알 수 없는 종교의 신도들이라는 느낌을 준단 말이다. 그것은 ATM이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서나 부족하기 때문일까?
씨티홀 주변의 시티은행에 갔는데 거기도 ATM이 고작 4. 각 은행의 신도들은 서로를 향해 불신과 경계의 눈초리를 날리며 질서정연하게 돈을 인출해간다. 빨간은행과 파란은행 모두 자비로운 지배자는 아닌 듯. 씨씨티홀 ATM하나만 더 설치해도 좋지 않을까. 아니다 외국의 종교적인 문화에 너무 신경을 쓰면 지는거다.
한국에는 동네 슈퍼에 한 개가 있고 조금만 번화해도 6개에서 4개 정도가 갖춰져 있는걸 생각하면, 그건 싱가폴에선 독신에 가까운 무서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소중한 싱가폴 달러를 인출한다. 나는 빨간은행의 신도도 파란은행의 신도도 아니지만, 씨티은행의 신성한 ATM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신에게로 가는 단 하나의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신의 사도 ATM은 입을 벌리고 신의 은혜를 내뿜으시는데, 이 돈이 원래 내가 저축했던 돈이라는 은혜도 모르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오 신이시여. 나의 영혼을 현찰로 채우시사. 

 

이 빨간 은행, 파란 은행 얘길 해준 것은 내 오랜 친구인 여자아이(파란은행의 독실한 신자이심). 이젠 딸 둘의 엄마로 어쩌다보니 은근슬쩍 26일 오후에 만나게 되었다.

158번 버스를 타고 Aljunied역에 도착하고 녹색선 지하철을 타고 붉은선 Bukit Batuk역에서 내려 77번 버스를 타고서야 도착했다. 고생스러웠지만 보람은 있었다. 작은 딸은 유모차에 태우고 큰 딸은 손을 잡고 나타나서는 배시시 웃는데 예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예뻐진 것 같기도 하고 나보다 한 살 어리면서도 두 아이의 엄마라는게 기묘한 느낌을 준다. 2001년부터 알았던가. 내게 이젠 거의 없는 오래된 지인이다. 어찌어찌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 외국에 가서 까지 만날 정도가 되었다.

 

새침떼기 큰 아이와 기가 쏀 둘째. 어디선가 본 듯한 두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에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자기도 그닥 잘 걷는 것도 아니면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동생이 넘어질까 손을 꼭 잡고 놓치 않는다. 낯선 아저씨가 유모차를 끌자 동생을 데려갈까 무서웠는지 유모차를 쥐고 유모차에 질질 끌려가듯 따라간다. 엄마가 동생에게 밥을 먹이자 혼자 카스텔라를 먹고 있다가 콧노래를 부른다. 콧노래를 부르는걸 낯선 아저씨에게 들키자 자기도 모르게 새침떼기짓을 못하고 배시시 웃어버린다.
동생 손을 꼭 잡은 모습이 너무 뭉클해서 오래도록 마냥 쳐다만 보았다.

너는 앞으로 커서 빨간은행의 신도가 될지 파란은행의 신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동생을 언제까지나 사랑해줘야한다.

바보같은 글에 어떻게든 훈훈한 결론을 내려는 내 노력이 가상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맛있는 파스타는 무엇인가?

그것은 1672년 피렌체 지방의 행정관이었던 모씨가 암살당하기 직전 기다리고 있었던 파스타라고 한다. 죽기 전에 기다리던 파스타라니..그 얼마나 맛이 있을지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라는건 새빨간 거짓말.
이런 쓸데없는 역사적 연구에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과 인생을 위해 기도라도 하고 싶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맛있고 맛없는 파스타를 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걸 측정하는 게 있다면 26일 점심때 내가 만든 파스타가 분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을게 틀림없다. 이름은 파스타지만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싱가폴 시각 11 50, 비행기에서 내리니 여름 나라였다. 덥고 덥고 또 덥다. 이건 좀 시원한 거라는 얘기가 전혀 위안이 가지 않는다. 사방에서 63빌딩 수족관에서나 나는 냄새가 난다.
공기가 뜨뜻하고 무거워 분명 마른 땅을 밟고 있는데도 헤엄치는 것 같다. 말라있는 몸을 용서하지 못하는 싱가폴의 대기는 살아있는 인간이 실외로 나서는 순간 대기가 달라붙어 인간을 끈적하게 만든다.
하느님 맙소사. 사방이 반바지 반팔이며 검거나 젖어있다.(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건 정말 제일 선선한 시기라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발견하고야 만다. 하늘에 계신 피에르 가르뎅이시어 오뛰뜨 꾸뛰르에서 이들을 보우하사)
이 지옥에 대해 단테가 읊은 적이 있던가. 싱가폴 창이공항 1터미널 입구에 뭔가 명패가 붙어있는 걸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온 놈들아 이 문을 나서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형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 싱가폴 여행자체가 형이 싱가폴에 주재하고 있으니, 숙박비는 필요 없잖아?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거니까. 
하지만, 이렇게 형은 덧붙인다. "나는 회사에 나가야 되니까, 알아서 잘 지내야지."
난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여행이었어. 라고 덧붙인다.
형은 내 엉덩이를 찬다.
 

택시를 타고 형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여 빈 방에 짐을 푼다. 내일 밤에 부기스로 와. 교통카드를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는 낙서를 한 싱가폴 지도를 던져준다. 스케줄은 니가 짜야지. 니가 알아서 해.
하하 고마워 형.
잘자라는 인사대신 나는 형의 엉덩이를 찬다.

형이 살고 있는 이 곳은 정말 아름답다. 싱가폴은 밤이 낮보다 훨씬 아름답지만 이 곳의 낮은 고요하고 또 아름답다. 나무를 심고 탁트인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면 그 어디라도 아름답지 않기는 힘들겠지만 워터프론트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일대의 공원은 싱가폴 인들의 자부심과 고민이 스며들어 우리나라의 강변 공원들 보다 훨씬 훌륭하다.

강변을 따라 배기 팬츠를 입은 서양인이 러닝을 하고 있고 강에는 선생님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중학생들이 서로의 카누를 뒤집고 있다. Pebble bay라는 위대한 개츠비에 나올 것 같은 분홍색 맨션이 서 있고 통행을 제한한다는 팻말 너머로 다이빙을 하는 꼬마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형의 냄비를 꺼내, 형의 파스타를 삶는다. 주의깊게 시간을 재고 삶아진 면을 맛본다. 냉장고에서 그럴듯한 크림소스를 찾아 데우고, 비싸기 짝이 없는 블루치즈를 대충 갈아 넣는다. 파란 접시를 꺼내 파스타 면을
딱 나 외에는 아무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어 보이는 파스타는 아무런 반전이 없이 정말 맛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이 없는 파스타를 한줄기 한줄기 놓치지 않고 먹는다. 너무 많이 한 파스타는 점점 불어터져 입안에 넣으면 넣을 수록 숨이 막히고 따로 노는 크림소스는 토할 것 같은 냄새를 내지만.
나는 먹어야했기에 먹었다. 내가 항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너를 보내는 이유가 계속 살아가기위해 있는 것처럼.

 

머릿속으로 편지를 썼다. 아무도 받을 일 없는 편지를. 여긴 싱가폴이고 한국과는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져있는데 내 마음은 결국 한국에 있다. 아무리 걷고 기다려도 내 마음은 바다를 건너지도 산을 넘지도 않고 그냥 한국에 덩그러니 서있다. 눈을 감고. 내 마음이 내게로 돌아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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