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3년차 직장인이 되는 2년차 직장인. 곧 만으로 29살이 되는데
이런 잔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매일 매일 여기저기에 화를 내고 있다.

문득 어느날 밤의 일이 생각났다. 그날, 나는 여자아이와 밤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그래 T라고 하자. 여기서 여자아이의 이름이 그리 중요한게 아니니까. 
10월의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던 T와 나는, 전쟁터에 버려진 오누이라도 되는 양 꼭 붙어서 거리를 걸었다.

그 날 밤 종로 거리에는, 바람보다 더 적은 사람들이 있었고. 커다란 동물들 처럼 버스가 천천히 다가오고 빠르게 사라졌다.
내 품에 파고들어 바람을 피하던 T는 조금 걸어요. 라고 말했다.

버거킹 앞 사거리에는 땅 바닥에 앉아 통곡하는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여자 아이는 남자아이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완전히 길바닥에 주저 앉았고, 남자아이는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질리지도 않고 여자아이를 위로했다. 버거킹에서 새나오는 빛보다 밝은 것은 거리에 없었으니, 내가 그 여자아이라도 울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T는 몇번이나 뒤돌아 보면서 괜찮을까 저 아이. 라고 말했다.

인사동 앞 거리에는 택시들이 잔뜩 나와 서로 코를 부비고. 어깨를 부닥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길 기다리는 T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손을 붙잡고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거웠을 것이고. 생각을 하는 T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겁이 났던 것이다.
나에게 T는 완벽한 미지의 존재이고.그 아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두려웠다.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었고. 이 모든 밤거리와 잡고 있는 손도 모두 어떠한 계절에만 꿀 수 있는 꿈같은 것이었다.

인사동에는 아무도 없었다. T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바람을 참아가며 찻집을 찾던 T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그 거리에서 나에게 내 남자친구 할래요? 라고 물었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눈에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아직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데, T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숨처럼 그렇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해의 10월 15일의 일.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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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면서 자리에 일어나 자판을 두들긴다. 나는 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책장을 살펴본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너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게 될까.


[20100131] 에필로그 또는 패배

나는 망가졌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를 미쳤다고 칭한다면, 나는 미친것 같다.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서 혼자 낄낄거리면서 웃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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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사진관 집 아들. 사진을 찍는 걸로 돈을 번 적도 있지만, 최근 충격적이게도 아마추어에게 "사진 정말 못찍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닥 틀린 얘기도 아닌지라 겸허하게 자신의 형편없는 촬영실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카메라를 갖게 된 것은 8년만이다. 군대에 가기 전 원래 아버지의 카메라였던 니콘과 렌즈를 돌려드리고 사진을 이제 다시는 안 찍어도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게 8년 전인 거다. 그 동안 두 명의 대통령이 있었고(세명의 대통령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몇 명의 여자친구가 있었고 대학 2년생이었던 나는 2년차의 회사원이 되었지만. 카메라는 한 개도 없었다.
카메라가 갖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찍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온 후론 주기적으로 카메라 뽐뿌에 시달렸다. 올림푸스 Pen에서부터 시작했고(실은 내 책상엔 지금도 오리지널 Pen이 있다. 바로 그 필카 말이다.) 소니의 Nex나 알파 시리즈 같은 거. 때로는 회사에서 나오는 등외품 카메라를 사고 싶어져서 마우스 훨만 주륵주륵 굴리곤 했다. 옆자리의 과장님에게 말한다. 저 또 카메라 뽐뿌왔어요. 사지 그러냐. 아니 잠시만 버텨내면 됩니다. 이렇게 2년을 버텼다. 그런데 문득 Pen이 싸게 팔길래, 다른 것도 아니고 몇십년 째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Pen이길래 사버렸다. 5분만에 고르고 2분만에 결재하고 1분만에 후회했다. 왜 샀지 왜 샀지 그러면서.
회사로 배송지를 잡은 것도 그래서일까. 왜 안오징. 주말인데 왜 안오징.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는 게 싫었나보다. 카메라를 기다리는 것도 가지고 노는 것도 싫었나보다. 주말 내내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뒹굴거리면서 곧 도착할 카메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사실 잘 보지 않았다. 일도 바빴거고요. 카메라가 도착했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얼른 택배 상자에서 메뉴얼만 빼서 가방에 집어넣고는 상자채로 봉인했다. 파트장이 다가오더니 왜 하이브리드로 샀냐. 똑딱이는 싫어서요. 데쎄랄은 부담스러워요 고르는데 세달 사는데 한달 걸릴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더니 잘했네. 이러고선 한참 상자를 본다. 삼성꺼 좋잖아. 옆자리 과장이 손사레를 친다. 무슨 소리에요 소니가 나아요 하이브리드는. 합치면 나이가 여든이 다되는 양반 둘이서 하이브리드로는 뭐가 좋은지로 싸우기 시작한다.

집에서 상자를 뜯었다. 하얗다. 응 내가 하얀거 샀지. 싶어서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메모리를 꽂는다. 그랬더니 할게 없어서 만지작만지작 스트랩을 묶는다. 한참이 지나도 충전은 될 기미가 안 보인다. 잠시 꽂았다고 충전이 되면 더 이상한게 아닐까. 모르겠다. 왜 충전이 안될까. 메뉴얼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예전엔 셔터 스피드랑 조리개만 대충 계산해서 노출 맞추면 됐었는데. 포커싱은 렌즈를 만지작거려서 헀는데. 뭐야 이건. 잔다.

이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배터리를 꽂는다. 켜보니 켜진다. 날짜를 맞춰보니 맞춰진다. 최소한 시계할만큼은 되는거지? 생각했다. 렌즈를 끼워보니 예쁘다. 흔들흔들 흔들어보고 메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간지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싶어서 카메라를 이곳 저곳에 겨눈다. 카메라를 잡은 손이 낯설다. 이젠 차라리 요리를 더 잘할거다. 프레스코화를 그려보라고 해도 이렇게 당황하지 않을텐데

찰칵, 하고 카메라가 돌아간다. 오른손에 잡히는 렌즈가 낯설지만. 친하게 지내자. 라고 말을 걸었다. 

카메라도 뭔가 대답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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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스무디킹을 홍보하는 엔젤푸드 봇.  

술이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얼굴이 빨갛게 되었나 싶으면 묵묵히 술자리를 정리하고 사람들을 집에 보낸다.
술을 싫어하시냐고 묻는다면. 결코 싫은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술을 먹는다는 것은,
너무 많이 마셔야하고 억지로 놀아줘야하고 재미없는 술자리 게임에 함께 해야하고 집에 늦게 가야된다는 걸 의미하니
좋아할 수가 없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의 범위가 지방출신 대학생 신촌 자취방 수준으로 좁으니 술자리 대부분이 싫다.
좋아한다면 친구들과 조금의 안주 작은 술병을 들고 잠시 쓸데없는 얘길 하다가 집에 가는 것.
돌아가는 길에 맥주를 사서 제3세계 작가의 책을 읽으며 홀짝거리는 것.
이런 내 음주취향에 대해 너무 노인스럽다는 의견도 있지만 뭐 어떻게 하겠는가.
혼자 방에 누워 세계가 나무처럼 천천히 확장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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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지도 성내지도 않고, 묵묵히 길을 걸었다.

어긋나거나 주저함도 없이.

그렇게 많은 것을 잊은척 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이번은 칠리크랩의 이야기이다.

싱가폴의 가장 유명한 음식은 칠리크랩chili crab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게 요리임에도 불구하고 싱가폴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국의 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는 싱가폴에서 달리 눈에 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싱가폴의 문화 특징을 설명 할 수 있는 용어 중에 '페라나칸peranakan'이라는 것이 있다. 싱가폴에서는 주로 인도네시아인과 중국화교들과의 혼혈로 19세기부터 꾸준히 인도네시아와 부근 지역에서 살기 시작해 이제는 싱가폴의 다수로서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싱가폴의 특징적인 혼합문화를 설명하는데 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건축양식은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식문화에 있어서도 그들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데 칠리크랩이 말레이시아와 중국음식의 혼합이라는 면에서 싱가폴의 가장 싱가폴 다운 음식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칠리크랩은 신선한 레드칠리와 토마토 소스, 신선한 달걀, 파로 만든 그레이비를 곁들여 만든다. 걸죽한 양념과 함께 볶아내고 향초를 곁들인 커다란 게요리라고 할 수 있는데 매운 요리인 만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다. 토마토 소스의 영향으로 살짝 단 맛을 내는 이 요리는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먹게 되지만 손으로 먹는 것이 이 보다 잘 어울리는 요리도 드물다.
코리엔더 향이 약간 풍기는 소스에서 게 다리를 꺼내 껍질을 부순다. 살이 가득한 게살은 탄력이 가득하며 살짝 튀겨진 향초의 향이 콧속에 가득 퍼진다. 보통 추가적으로 시켜야하는 빵이나 볶음밥은 소스와 함께 먹기에 딱 좋다. 비싸기 때문에 먹기에 양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먹다보면 배가 부르는 것과는 다른 만족감이 생겨난다. 매운맛과 껍질을 입에 물고 먹어야하는 게라는 요소 때문인지 금세 입이 얼얼해지며 만족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칠리크랩이다.

유명한 가게로는 클락키의 점보가 있지만 점보는 관광객 상대의 가게로 싱가폴의 비싼 식당이 그렇듯 시간내에 식사를 마쳐야한다. 그것보다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이스트 코스트 시푸드 센터로 택시를 타고 가 그곳의 롱비치를 이용하는 것. 시푸드 센터 자체에 많은 해산물전문(정확히 말하자면 모두 칠리크랩이 메인인 가게)가게가 있지만 롱비치가 그중 가장 오래되었고 칠리크랩을 만들었, 아니 최소한 돈주고 팔기 시작한 가게로 소문이 나있다. 점보나 노사인보드 같은 가게도 물론 시푸드 센터에 입점해있다. 하지만 한국인 입맛에 가장 맞는 칠리크랩은 역시 롱비치. 맵고 자극적이다. 웨이트리스에게 한국인이란 걸 들키면 자연스럽게 가장 매운 (클래식도 있고 맵지 않은 것도 있다.) 칠리크랩을 추천해준다. 입가에 썩소를 짓고 가장 맵다는 칠리크랩을 먹어주도록 하자. 물론 그닥 맵지 않다 그래도 다 먹을 때 쯤엔 입술이 후끈거리는걸 피할 수 없다.

특이할 만한 점은 싱가폴의 가게는 기본으로 나오는 것이 없다는 점. 물티슈, 같이 나오는 땅콩 같은 것도 나중에 계산서를 확인해 보면 다 포함되어 있다. 물티슈야 칠리크랩을 먹는데 필수지만 땅콩은 맛도 없기 때문에 가지고 오자마자 필요없다고 돌려보내도록 하자.
롱비치에서 맛있는 것은 삼발깡콩이라는 야채 볶음. 빵을 시켜도 좋지만 세트로 책정되어 있는 메뉴를 먹으면 2인 메뉴 기준으로 키180이 넘는 남자 둘이 먹어도 배부르게 먹을 정도다.

또 주의해야할 점은 좀 비싼 음식이긴 해도 싱가폴 체류 중에 두 번 정도는 먹어주는게 좋다는 점. 맛있는 음식이지만 조금 비싸. 이렇게 생각되긴 하지만 한 번만 먹고 싱가폴을 떠나게 되면 꼭 생각나게 되어 있다. 두 번 먹어서 칠리크랩에 대한 미련을 싱가폴에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솔직히 정량은 두 번 반 정도라고 생각한다.
두 번 먹으면 조금 생각나지만 세 번 먹으면 조금 질리는 정도의 맛이다.

 

두 번 반. 오묘한 숫자다.

 

그 덕에 그 반만큼 나에겐 무언가가 남았다. 언젠가는 싱가폴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아침으로 라면을 먹어도 괜찮은 소년. 불행하면 살이 찌는 이중고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009년에 썼던 여행기를 블로그에 갱신 중이다.

여행기는 싸이 게시판에 써둔 것이다. 약 세달이 넘게 이어진 여행기로. 실은 '매일매일'썼다.
일부분은 저장을 하지 못해 연습장에만 써있고 일부분은 티스토리에는 게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용은 하나도 대중없이 웃긴가 싶으면 우울하고 정보가 가득한가 하면 쓸데없는 내용만 들어가있다. 친구가 여행기라면 좀 더 내용이 충실해야하냐고 물어본적이 있는데 그런 읽으면 보람이 찬 여행기를 읽으려면 서점에서 돈 주고 사라고 말해주고 엉덩이를 발로 차버렸다.

지금 본인으로서도 뭘 올려야하고 올리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초반부는 어떻게든 대부분을 다 실었지만 점점 글이 쉬르리얼리스틱해지고 저질스럽게 웃기게 된다. 특히 싱가폴 동물원에 대해서 쓴 동물원 3부작은 정말 웃기긴 하지만 정말 전위적이라. 이걸 일반에 공개해도 내 얼마 안남은 사회적 평판이 괜찮을지 고민이 된다. 
대작이지만, 제목도 이 따위이다.

1편: 아가씨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다.
2편: 호랑이는 우리 안을 배회한다.
3편: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지만, 안녕 곰아저씨 

궁금하다면 밑의 동물원 3부작 예고편을 읽어보자.

[1편 줄거리, 카레신사는 버스를 타고 동물원에 도착해 악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는 양키 남자 둘을 발견한다. 그런 그는 8.9불짜리 피자 네개를 시켜 먹고 있는 양키를 보고 다시 한 번 분노. 동물원에 들어가자마자 기념품 점으로 향하는데….카레신사는 양키에 대한 이 풀지 못할 분노를 극복할 수 있을까?]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겠는가? 이런걸로 본편의 내용을 가늠해낼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그 만큼 심혈을 기울여서 쓴 이야기라 티스토리에 올리려면 처음부터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누가 이런 걸 읽으면서 기뻐해줄 거라곤 생각 안하지만. 그래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기쁠 것 같다.

글을 쓰고 싶다. 더 많은 글을 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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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고 싶다.

항상 쓰고 있는 다이어리와는 별개로 뭔가를 쓰고 싶었다. 여행기일 수도 있지만 여행의 이야기이기보다는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며 내키는 대로 농담을 쓰거나 조금은 복잡한 사고를 거쳐서 나온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매일 날짜를 붙여서 그날 있었던 일과 관련된 일들을 쓰는건 그냥 그렇게 쓰는게 아무 맥락 없이 쓰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내 글 대부분이 그렇듯이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으며 (읽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싸이 게시판에 썼던 다른 글 처럼 곧 비공개로 전환되어 내 기록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내 답장이다. "세상"에 대한 답장. 결국은 글을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언젠가는 결론을 지어야 할 삶의 어떤 '장'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처음장과 함께 마지막 장이 같이 쓰여졌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Long goodbye(기나긴 이별)"이며 익히 알려진 것과 같이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 실질적인 최후의 작품이고 나는 이 작품을 내 이번 여행 가방에 쑤셔넣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미 존재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뭔가를 배워가고 꺠달아가고 있다는 듯이 쓰고 있었지만 마지막 한 문장을 이미 정해놓고 그곳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뿐. 내가 깨달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쩌면 나는 내가 어떤 외국생활을 하든지 결국에 어떤 흐름을 따라 한 결론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서 계속 쓰여지고 있고 결국은 내가 준비해 놓은 마지막 한 문장과 동시에 내가 준비해 놓은 끝으로 진행되게 된다. 나는 결국 글쟁이이기 떄문에 끝맺음을 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글 "인연"을 쓰면서 (원래 이번 글의 내용은 말레이시아 여행에 대한 농담이 될 예정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듯, 인생을 만들어 갈순 없는게 아닐까. 신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나로선 읽을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내가 하고 있는 짓은 자기 만족의 멍청한 짓이 아닐까.

적절한 갈등? 발단전개절정결말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이야기 흐름? 완벽하 결말? 인생에 그런게 있던가. 내가 맺고 싶어하는 그러한 형태의 끝맺음은 인생에는 없는게 아닐까. 어떤 이야기든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인생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지 인생 자체가 이야기가 될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얼마 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불교의 교리처럼 우리 인간들의 인연이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긴 것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도, 이을 수도 없어서 삼생에 걸쳐서 이어지는 것이란 걸까. 나의 분노도, 사랑도, 노력도, 지혜도 모두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서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전생에서도 사랑했고 후생에서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깨달음을 기다린다.
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꺠달음을 기다린다. 내 사고와 감정을 넘어서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해줄 깨달음을 기다린다. 내가 세계에 "답장"을 보낼 수 있게 해줄 그런 것을.

아직은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전에 깨달음을 기다릴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분명 그럴 것이다.

싱가폴 시간으로 9 27, 방콕은 8 27, 한국은 10 27


방콕이니만큼 아이팟에 노래는 소녀시대로 바꾸어놓고 발코니 창을 열었다. 침대가 흔들거린다. 비즈니스용 투베드 침실이라 그럴까. 7시에 여는 호텔의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왔다. 30분간 사이클을 타고 30분 동안 수영을 하고. 한 호흡도 제대로 못 쉬는 물장구를 수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타올로 몸을 닦고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한국을 떠나 올 때 프린트 해왔던 이메일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이제야 조금 냉정한 눈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을 읽듯이 행간을 읽고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목소리를 불러와 그 사람의 목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눈을 감고 편지를 되뇌이고. 또 숨을 멈추고 목소리를 떠올린다.

 

편지를 다 읽고 웃었다. 왜 웃었는지 같은 건 나도 모른다.

다만 내가 지옥처럼 웃었을 거란 사실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말이 누워서 잠들지 않는 것처럼 개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자세로 잠든다. 귀를 땅바닥 가까운 곳에 대고 다가오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민감하게 느끼면서 잠든다.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바로 일어나 이빨을 세운다. 하지만 내가 본 방콕의 개들은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다리를 뻗고 잠이 든다. 천적이란게 없다는 듯이 계단에서, 복도에서, 호텔의 로비에서 머리를 대고 잠이 든다. 가까이 다가가도 잠에서 깨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나면 그 제서야 민감한 녀석들만 살며시 머리를 들어 ?”하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5일간 그렇게 많은 개를 보았는데도 개 짖는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머리를 땅에 대고 잠드는 방콕의 개들은 짖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방콕에만 11만 마리의 떠돌이 개가 있다는데 그 크고 작고 어리고 늙은 11만 마리의 개들은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잠이 드는 듯 하다.

 

사람은 누구나 경계를 한다. 자신만의 원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다른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도록 신중하게, 때로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그 경계의 선이 만들어지는 경로는 다양하다.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편견이나 타고난 성격이 경계를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경계가 완성되면 그것은 사람을 지키는 벽이 됨과 동시에 그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사람들은 나에게 마음의 벽이 너무 굳건하다고들 말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본 바에 의하면 마음의 벽이 없는 사람 따위 한 명도 없었다. , 마음이 열린 사람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비밀을 가지고 있거나, 그 누구도 마음 속에 들이지 않고 잡동사니만 다른 사람들이 만지게 하는 사람이기에 본질에 접근하는 걸 그 누구에게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의 벽을 넘어서 그 사람에게 다가 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로선 전혀 이해할 수도 분석도 하지 못하겠다. 나는 나의 경험에서 밖에 진술하지 못하는데 내 경험이란 편견과 악의로 가득 차 있는 삐뚤어진 텍스트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달의 표면처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가까이서 보았을 때 마저도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든지 좋아지는 때와 싫어지는 때가 있었으며 내가 아무리 변덕스러운 인간이라고 한다고 해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항상 같은 정도 만큼 영원히 사랑하는 일 따윈 생각 할 수 가 없다.

이건 내가 아닌 인간의 문제인가. 그래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기에 나는 너무 늙었거나 너무 젊다. 심지어 러시아 인이나 독일인도 아니다. 고민하지 말자.

 

저 개의 곁에 잠시만 머물러 주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해악과 적의에서 도망치는 저 개는 꿈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오늘 하루만 당신에게서 받은 용기와 선량함으로 머리를 땅에 대어보는 것이다. 그 개가 바라는 것은 그것 뿐, 그가 잠들 때 까지만 당신이 잠시만 머물러 있기를. 잠에서 깨면 모든 게 꿈이었다는 듯이 당신은 사라져 새벽의 더럽고 비열한 거리에서 홀로 깨어나게 되겠지만 그걸로 그 개는 앞으로 10년 간 그 날의 친절함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테지.
 

하지만 당신은 어디에도 없다. 잠들지 못하는 그 개는, 그리고 나는 핏발이 선 눈으로 밤을 배회한다. 이제 나는 밤과 같은 피부를 지닌 괴물. 당신이 갔으리라 생각되는 곳의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더 멀리. 더 멀리. 


이와키 선생님께,

 

여름문안인사를 드리고 싶은 날씨입니다.
가본적은 없으나 일본의 여름이 이렇지 않을까 싶게 하늘이 파랗습니다. 선생님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곳은 선생님께서 싱가폴의 호텔에서 일하고 계실 때와 많이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북극이 그렇듯이 적도 부근의 나라는 달라지기 힘드니까요. 이렇게 끝없이 지속되는 여름이 있는 나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여름이 지속되는 한 아마 이 곳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계시던 그 때 그 대로의 풍경을 저도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선생님, 얼마 전 저는 지하철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여학생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 봤을 리는 없겠지만 보란 듯이 한국어 교재 프린트를 제 앞에서 들고 공부하는 모습에 저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수도는_입니다. 라느니. 저의 이름은_입니다. 라느니. 간단한 한국어 회화와 한국단어들이 있는 교재가 매우 귀여웠습니다. 어쩌면 제가 한국인이란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곳 사람의 말로는 제가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굉장히 달라 보인다고 합니다. 키가 크고 하얗기 때문에 중국인으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말이라도 걸어봐야 했을까요. 어쩌면 열심히 하라고 응원이라도 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대 앞을 걸어 갈 때 아무리 두꺼운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다녀도 일본인인걸 모두 알아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려나요.

 

선생님은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시나요.

귀엽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어쩌면 이 곳은 일본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시게 되시나요.

저는 항상 세상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건방지게 외국이라곤 다녀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rpg에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결국 마을은 똑같은 텍스처를 사용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곳이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제 생각이 맞긴 했지만 제 생각이 틀리기도 한 듯합니다. 싱가폴의 번화가인 타운홀과 오차드 로드 일대를 걸어다니니 완전히 다르고도 비슷한 한국의 번화가가 생각나더군요. 세계적으로 확산된 자본주의의 구동방식에 알맞게 진화했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팔과 날개를 지닌 짐승들처럼 똑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도쿄, 서울, 싱가폴동아시아의 한 형제들.


선생님, 싱가폴 또한 한국의 여느 곳이나 다를 바 없는 땅이었지만, 동시에 이 곳은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제 주장이 맞다면 전 싱가폴에서도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하고 외로움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아야 했는데, 전 왠지 참혹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제가 완전히 흰 피부에 금발머리를 한 외국인이었다면 이 참혹한 기분을 이그조틱이라느니 하면서 웃으며 넘겼을텐데 나와 비슷하고도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곳에서 입안에 모래가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지도 모르겠군요.
화려한 쇼윈도와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소비의 천국에서 저는 아무래도 고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상실’이란게 뭔지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미련이 없어졌다고 생각한 한국 땅을 그리워하고 슬퍼하게 된 것이겠지요.


저는 어쩌면 영영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모든 눈물을 머금은 그 곳으로요.
봄의 꽃과 여름의 밤 가을의 달과 겨울의 공기.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한 저의 고향으로요. 제 몸 하나하나를 이루는 모든 것을 내주었고 또 그것을 모두 거둬갈 제 하나 밖에 없는 고향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정해진 수순이라면, 제가 이 여름 나라의 매일 밤을 오열하면서 보낸다고 해도. 결국은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지겠지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사람의 명운을 움직이는 것이 신도 개인의 의지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영혼이고. 결국 언젠가는 있어야 할 곳에서 고요히 잠들게 된다고 한다면요.

선생님, 이 곳의 밤은 아름답습니다. 바람이 불고 또 바람이 불어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제 자리는 없습니다.

 

2009년 현재, 싱가폴에는 빨간은행과 파란은행의 내전 중이다.

모든 ATM
은 빨간은행..즉 화교은행과 파란은행즉 대화은행 두가지 종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연적으로 모든 싱가폴인들은 저 두 은행 중 하나의 추종자로서 다른은행의 ATM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테러하고, 그 은행들의 크레딧 카드를 모아 집을 장식하거나. 응 그런 일은 없다. 미안하다.

두 은행은 어딜 가나 쌍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ATM도 항상 동수로 설치되어 있다. 씨티은행같은 글로벌해보이지만 소수세력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정말로 돈을 뽑으려면 시티홀에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 기묘한 붉은 색과 푸른 색의 조화는 뭔가 문화적인 특이현상을 관찰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한다. 어쨌든 한국인이 보기에 ATM에 말도 안되게 길게 줄을 선 싱가폴인들은, 어쩐지 외국인으로선 알 수 없는 종교의 신도들이라는 느낌을 준단 말이다. 그것은 ATM이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서나 부족하기 때문일까?
씨티홀 주변의 시티은행에 갔는데 거기도 ATM이 고작 4. 각 은행의 신도들은 서로를 향해 불신과 경계의 눈초리를 날리며 질서정연하게 돈을 인출해간다. 빨간은행과 파란은행 모두 자비로운 지배자는 아닌 듯. 씨씨티홀 ATM하나만 더 설치해도 좋지 않을까. 아니다 외국의 종교적인 문화에 너무 신경을 쓰면 지는거다.
한국에는 동네 슈퍼에 한 개가 있고 조금만 번화해도 6개에서 4개 정도가 갖춰져 있는걸 생각하면, 그건 싱가폴에선 독신에 가까운 무서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소중한 싱가폴 달러를 인출한다. 나는 빨간은행의 신도도 파란은행의 신도도 아니지만, 씨티은행의 신성한 ATM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신에게로 가는 단 하나의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신의 사도 ATM은 입을 벌리고 신의 은혜를 내뿜으시는데, 이 돈이 원래 내가 저축했던 돈이라는 은혜도 모르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오 신이시여. 나의 영혼을 현찰로 채우시사. 

 

이 빨간 은행, 파란 은행 얘길 해준 것은 내 오랜 친구인 여자아이(파란은행의 독실한 신자이심). 이젠 딸 둘의 엄마로 어쩌다보니 은근슬쩍 26일 오후에 만나게 되었다.

158번 버스를 타고 Aljunied역에 도착하고 녹색선 지하철을 타고 붉은선 Bukit Batuk역에서 내려 77번 버스를 타고서야 도착했다. 고생스러웠지만 보람은 있었다. 작은 딸은 유모차에 태우고 큰 딸은 손을 잡고 나타나서는 배시시 웃는데 예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예뻐진 것 같기도 하고 나보다 한 살 어리면서도 두 아이의 엄마라는게 기묘한 느낌을 준다. 2001년부터 알았던가. 내게 이젠 거의 없는 오래된 지인이다. 어찌어찌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 외국에 가서 까지 만날 정도가 되었다.

 

새침떼기 큰 아이와 기가 쏀 둘째. 어디선가 본 듯한 두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에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자기도 그닥 잘 걷는 것도 아니면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동생이 넘어질까 손을 꼭 잡고 놓치 않는다. 낯선 아저씨가 유모차를 끌자 동생을 데려갈까 무서웠는지 유모차를 쥐고 유모차에 질질 끌려가듯 따라간다. 엄마가 동생에게 밥을 먹이자 혼자 카스텔라를 먹고 있다가 콧노래를 부른다. 콧노래를 부르는걸 낯선 아저씨에게 들키자 자기도 모르게 새침떼기짓을 못하고 배시시 웃어버린다.
동생 손을 꼭 잡은 모습이 너무 뭉클해서 오래도록 마냥 쳐다만 보았다.

너는 앞으로 커서 빨간은행의 신도가 될지 파란은행의 신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동생을 언제까지나 사랑해줘야한다.

바보같은 글에 어떻게든 훈훈한 결론을 내려는 내 노력이 가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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