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시간으로 9 27, 방콕은 8 27, 한국은 10 27


방콕이니만큼 아이팟에 노래는 소녀시대로 바꾸어놓고 발코니 창을 열었다. 침대가 흔들거린다. 비즈니스용 투베드 침실이라 그럴까. 7시에 여는 호텔의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왔다. 30분간 사이클을 타고 30분 동안 수영을 하고. 한 호흡도 제대로 못 쉬는 물장구를 수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타올로 몸을 닦고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한국을 떠나 올 때 프린트 해왔던 이메일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이제야 조금 냉정한 눈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을 읽듯이 행간을 읽고 이메일을 보낸 사람의 목소리를 불러와 그 사람의 목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눈을 감고 편지를 되뇌이고. 또 숨을 멈추고 목소리를 떠올린다.

 

편지를 다 읽고 웃었다. 왜 웃었는지 같은 건 나도 모른다.

다만 내가 지옥처럼 웃었을 거란 사실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말이 누워서 잠들지 않는 것처럼 개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자세로 잠든다. 귀를 땅바닥 가까운 곳에 대고 다가오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민감하게 느끼면서 잠든다.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바로 일어나 이빨을 세운다. 하지만 내가 본 방콕의 개들은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다리를 뻗고 잠이 든다. 천적이란게 없다는 듯이 계단에서, 복도에서, 호텔의 로비에서 머리를 대고 잠이 든다. 가까이 다가가도 잠에서 깨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나면 그 제서야 민감한 녀석들만 살며시 머리를 들어 ?”하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5일간 그렇게 많은 개를 보았는데도 개 짖는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머리를 땅에 대고 잠드는 방콕의 개들은 짖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방콕에만 11만 마리의 떠돌이 개가 있다는데 그 크고 작고 어리고 늙은 11만 마리의 개들은 모두 머리를 땅에 대고 잠이 드는 듯 하다.

 

사람은 누구나 경계를 한다. 자신만의 원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다른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도록 신중하게, 때로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그 경계의 선이 만들어지는 경로는 다양하다.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편견이나 타고난 성격이 경계를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경계가 완성되면 그것은 사람을 지키는 벽이 됨과 동시에 그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사람들은 나에게 마음의 벽이 너무 굳건하다고들 말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본 바에 의하면 마음의 벽이 없는 사람 따위 한 명도 없었다. , 마음이 열린 사람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비밀을 가지고 있거나, 그 누구도 마음 속에 들이지 않고 잡동사니만 다른 사람들이 만지게 하는 사람이기에 본질에 접근하는 걸 그 누구에게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의 벽을 넘어서 그 사람에게 다가 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로선 전혀 이해할 수도 분석도 하지 못하겠다. 나는 나의 경험에서 밖에 진술하지 못하는데 내 경험이란 편견과 악의로 가득 차 있는 삐뚤어진 텍스트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달의 표면처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가까이서 보았을 때 마저도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든지 좋아지는 때와 싫어지는 때가 있었으며 내가 아무리 변덕스러운 인간이라고 한다고 해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항상 같은 정도 만큼 영원히 사랑하는 일 따윈 생각 할 수 가 없다.

이건 내가 아닌 인간의 문제인가. 그래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기에 나는 너무 늙었거나 너무 젊다. 심지어 러시아 인이나 독일인도 아니다. 고민하지 말자.

 

저 개의 곁에 잠시만 머물러 주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해악과 적의에서 도망치는 저 개는 꿈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오늘 하루만 당신에게서 받은 용기와 선량함으로 머리를 땅에 대어보는 것이다. 그 개가 바라는 것은 그것 뿐, 그가 잠들 때 까지만 당신이 잠시만 머물러 있기를. 잠에서 깨면 모든 게 꿈이었다는 듯이 당신은 사라져 새벽의 더럽고 비열한 거리에서 홀로 깨어나게 되겠지만 그걸로 그 개는 앞으로 10년 간 그 날의 친절함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테지.
 

하지만 당신은 어디에도 없다. 잠들지 못하는 그 개는, 그리고 나는 핏발이 선 눈으로 밤을 배회한다. 이제 나는 밤과 같은 피부를 지닌 괴물. 당신이 갔으리라 생각되는 곳의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더 멀리. 더 멀리. 

나에게 있어서 형은 딱 두 사람 밖에 없다. 두 명 다 이모의 아들들로서 여기서 나오는 형이란 작은 사촌형 쪽을 의미한다.
이 형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하루 종일이라도 얘기 할 수 있다. 내 최초의 기억에도 형은 있었고 내 가장 최근의 기억에도 형은 있었으며 내 여름의 기억에도 겨울의 기억에도 형이 있다. 핸드폰의 단축번호는 7번이고(엄지손가락으로 누르기에 제일 편한 번호다.) 내 여자친구들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은 형이다. 여자친구가 없어질 때 마다 형은 나를 데리고 여행을 가거나 데이트 연습을 했고 서로의 엉덩이를 발로차며 이래서는 안된다고 반성을 하곤 한다.

어쨌든 젊었을 때의 외할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형은,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왠만한 파는 음식 정도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미적인 재능이 뛰어나 가끔 놀랄 정도의 그림을 그리곤 하고. 책을 엄청 읽는다. 외가쪽의 특징인 괴팍하고 배타적인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상냥해서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노인에게 공손하다. 요는, 직업이나 학벌/배경 같은 것을 제외해도 어떤 여성들에게는 사정없이 어필할 수 있는 실로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형 남자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사촌동생인 내 입장에선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불완전한 창조물일 따름이지만, 형이랑 같이 있으면 나도 즐겁게 놀 수 있기 때문에 



나.
겨울양복 한벌, 여름양복한벌, 겨울양복여름양복의 엑스트라 트라우저 한 벌 씩, 맞춤 셔츠 6장(한장은 보너스)

 

형.
겨울양복 한벌, 여름양복한벌, 여름양복의 엑스트라 트라우저, 맞춤셔츠2장

 

아무 생각없이 가게에 들어선 관광객에게 이 정도 물건을 팔아치우니 누가 그를 장사꾼 오브 장사꾼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도를 깨치고 어리석은 관광객들을 주무르니. 그의 무자비한 상술에 대해서 여기 적어본다.

 

 

곧 입사 하게 되니 양복을 사거라. 하는 소릴 많이 들었다. 어머니는 계속 양복을 사라고 재촉하셨지만 그닥 몸에 와 닿지도 않았고 비싼 물건을 살 때는 오래 고민하는 스타일이라서 다 무시하고 그냥 살고 있었다. 하지만 방콕이 물건이 싸다는 이모의 부추김에 방콕 시내를 구경하는 중에 몇 번 씩 양복점에 들러서 가격을 알아보곤 했다.

 

그러다 운명의 장소, 한국여행사도 있다는 카오산 거리에 이르렀을 때 일은 터지고 만다. 이제 태국에서 영어를 쓰는데 주저함이 없어진 나는 카오산 거리 곳곳에 있는 양복점에 들어가 까다로운 양복구매자인척 하면서 캐시미어 몇 퍼센트 라느니 재봉선이 어떻다느니 투덜거릴수도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여유. 철없는 일본인인척도 하고 철없는 한국인인척도 하면서(태국 사람들은 일본/한국의 구별을 거의 못한다.) 마음껏 현지의 재봉사들을 농락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 대부분 5천바트 선에서 (17만5천원이다. 맞춤양복 한 벌 가격이...) 해결된다는 걸 알고 한 벌 정도 맞춰볼까 싶어서 카오산 거리 입구에 있는 KIng's international tailor에 시험삼아 들어갔을때.

아 여긴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야했다.

보통 카오산 로드의 대부분의 가게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데 단 입구의 뉴 보스턴과 킹즈 인터내셔널만이 호객을 하지 않는다. 킹즈 인터내셔널은 입구에 인도인 한 명이 의자에 앉아 나른하게 쉬고 있을 뿐이다.(후에 이 사람은 파파 짐의 노예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좋은 사람인 것 같긴 한데 너무 게이스럽다. 옷 입을 때 뚫어져라 쳐다본다)

여기서 돌아갔으면 좋을 것을...가게에 들어가니 수염투성이의 인도인 할아버지가 앉아있다. "뭘 도와드릴까 친구여."이런다(물론 영어다) 그럼 그 순간 웬만큼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사람 뭔가 다르다. 가격이나 알아보자 하며 실실 웃으며 들어왔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더니 연습장에 엄청난 악필로 가격을 제시해버린다. 어디서 왔냐를 물어보더니 싱가폴, 한국 정도의 키워드가 나오자 마자 뭔가 그에 관련된 고객리스트를 쏟아낸다.(가게 천장에 세계 곳곳에서 온 고객들의 사용후기가 붙어있다 ㅋㅋㅋ아욱 ㅋㅋㅋ)

그는 뭘 사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이 만큼 샀다. 네가 이만큼 산다면 난 이렇게 해주고 싶다. 옵션은 이거랑 이거다. 라고 제시한 후 고민하고 있다가 옵션에 대해 물어보면 (물론 산다고는 아직 말 안했다.) 스무스하게 다음 절차로 넘어가버린다. 어느새 사는게 되어버렸다.

보통 가게에 가게 되면 난 너무 예의바르게 굴거나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장사치들이 당황해 과도하게 친절하게 군다. 하지만 파파짐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나는 왕, 이라는 태도로 한가하게 앉아서 잘 알아보라. 하지만 여기서 한다면 난 이런걸 해준다. 이러면서 일을 후다닥 진행해 버린다.

연애로 친다면 어라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부모님 상견례. 이런 느낌이다. 자기야 그냥 밥먹는거라고 했지? 이러고 갔더니 여자친구 아버지가 장인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이르지 않냐고 호통을 치시고 어머니는 여보 그러지 마세요 호호 이러더니 식장은 아는 곳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 격이다.

 

형은 정신을 못차리고 으헤헤 파파 짐 이러고 있고. 그나마 정신줄을 꼭 붙잡고 있었던 나는 파파 짐이 얼굴 색이랑 옷감을 대봐야한다며 모자를 벗겨버리자 (아무리 봐도 내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서 벗긴거다. 제기랄...)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해서 굽실굽실. 파파짐의 관대한 처우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되었다.

이런 전문가 장사치와 교섭 할 때 내 전략은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가 먼저 무너지게 만드는 건데, 안 통한다. 어설픈 지식이야 20년이 넘게 재봉사 일을 하고 있는 파파 짐에겐 통하지 않는다. 3살짜리 애 팔 꺾어놓듯이 파파짐은 실크로 양복 안감 까지 신청해버리고 말았다. 우리 예산이 얼만큼인지 알기라도 하듯이. 예산의 거의 꼭대기 까지 우릴 밀어넣었다.(이건 형이 내가 내년에 입사한다느니 하는 소릴 해서 그런것도 있다 딴 가게에선 말도 거의 안하면서 파파짐에겐 어느 학교 나왔는지도 털어놓을 기세였다)

 

치수를 재고 카드로 가격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이것이 파파짐의 무자비한 상술이란 말인가?

자신을 드러내는 어리석음
마음을 숨기는 어리석음
인연을 무시하는 어리석음
삶을 부정하는 어리석음
스스로 칼위에 서는 어리석음
막다른 골목으로 돌진하는 어리석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어리석음


바보같은 문장을 몇 줄 쓰고는, 반성하기 위해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여행기를 쓰기로 생각한다. 고로 위에 써둔 문장은 이번에 쓸 글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요 며칠간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했다. 싱가폴의 왠만한 명소에는 다 가봤으며(부기스라든가. 부기스는 딱 한국의 영등포 같은 곳인데 거기서 첫번째 날 겪은 고생은 차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다.) 현지인들과 영어나 일본어로 설악산에 대해서 얘기하고(하느님 맙소사, 이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 입을 긴팔 옷과 코트를 한국에 가기 위해 장만하더라구요) 인도인 점원에게 화이트 초코렛 아이스크림을 와잇 촥컬릿이라고 발음하지 않은 덕 분에 4번이나 주문을 다시 해야했다. 코코넛은 토할 정도로 맛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두리얀은 50미터 밖에서 냄새를 맡으면 천국같은 향기를 낸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기를 쓰는게 아닌만큼 그런 남들이 보기에 즐거운 내용은 털 끝만큼도 쓰지 않았다. 
고로, 약간 반성의 의미로 짜두짝 주말시장에 대해서 써보기로 하자.

짜두짝 주말시장은 방콕 최대의 시장으로서, 주말에만 열린다. 그리고 크다.
대단하다 이국적이다 아름답다 뭐 이런 소릴 원한다면 론리 플래닛 방콕편을 보도록 하자. 그냥 우선 크다. 어느정도로 크냐고 한다면...끄응. 내가 갑자기 어휘력 부족이 된 것은 아니다. 그냥 너무 큰 나머지 모든 곳을 보지도 못했고. 특징이란게 "큰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크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데 잘 되지가 않는다.  하지만 일단 한국 사람으로서 남대문이라는 거대한 시장(게다가 매일 열리잖아?)이 있으니 짜두짝이 아무리 커도 시큰둥하게 된다. '방콕인데 시장은 크네여.'이런 상식 이하의 반응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남대문 보다 좀 크네여.흥' 정도의 반응을 하고 싶다. 나도 한국인 인지라 좀 삐뚤어진 반응이다. 일본인이라면 '쯔키지 보다 좀 크네여.흥', 미국인이라면 '월 스트리트 보다 좀 크네여.흥' 정도로 반응하면 되겠다.

어쨌든 형의 강력한 요망에 의해서 두번째 날 부터 MRT를 타고 가게 된 이 시장은 거대한 주말시장은 매우 흥미로운 장소다. 나로서는 시장 같은데 기껏해봐야 불상이나 팔고 코끼리나 재주넘지 않겠느냐며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내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관광객들만을 위한 장사를 하고 있는 남대문과는 달리 짜뚜짝 주말 시장은 관광객 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의 현지인들이 몰려들어 옷을 하고 생필품들을 판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한 장사의 비중이 커서 기념품 부스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심지어 갤러리와 애완동물 라인까지 있는걸 생각하면 기념품이 짜뚜짝의 모든 것이라고 보긴 힘들다.(아, 소녀시대의 퍼즐도 판다.) 그냥 상품의 종류가 '엄청'많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역시 흥미로운 것은 실용적인 물건 보다 관광객 상대의 기념품이나 프린팅 티셔츠, 미술품들이고 그런것들이 평범한 물건들이 아니다. 태국의 물건들은 싸고 저질의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물론 싸고 저질이긴 하지만 편견을 버리고 열심히 찾아보면 의외로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물건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태국은 아직 수공업 전통이 살아있는 나라인 것이다

프린팅 티셔츠의 디자인 수준이 매우 높고(물론 인쇄 기술이나 티셔츠 자체의 질은 조악한 편이다.) 미술품은 옛 전통의 미술품을 복제하는 수준은 훨씬 넘어서 전위적이기 까지 하다. 가령 신을 조각한 신상은 전통적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복제하게 되기 마련인데 태국의 젊은 예술가 들은 과감하게도 그런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확대 재생산해냈다. 현대 미술이 기술이 아니라 의도의 예술이라는 걸 생각하면 단순한 기술의 뛰어남은 기념품 점에 전시되거나 만화로 만들어져 삼천오백원에 팔리게 되기 마련이지만 태국의 뛰어난 수공업에는 그것 이상의 것이 있다.

역시 이런 뛰어난 제품들을 만들게 된 데에는 세계 이곳저곳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힘이 컸던게 아닐까. 실용적인 목적을 채우기 위해 오는 로컬들과는 다르게 관광객들은 특이한 것, 다른 곳에서 본적이 없는 것을 원할 것이다. 단순히 태국을 대표하는 기념품이면 만족했었던 것이 점점 더 새로운 것을 원하게 되었고 짜뚜짝이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폭발적으로 진화해 간 것이다.

어디 중국의 공장에서 만들어 낸 것 같은 부끄러운 기념품이나 팔고 있고 한류스타의 프린팅 제품이나 팔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수준이다. 태국은 단순한 목기라고 해도 '탐이 나는'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볍게 짜두짝 주말시장에 대해서 쓰고, 이제 좀 제대로 된 여행기 같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생각 이상으로 글 쓰는 재주가 없는 것 같다. 아무렴 어때. 

우기라는데, 도착하고 나흘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큰 비를 봤다.
싱가폴의 창이 공항으로 택시를 잡으러 나갈 때 부터 바람이 불고 하늘이 어두워 지더니 택시를 타자 차창에 뭔가 쏟아지는 소리가 나며 비가 부딪혀온다. 걸어다니는 모든 것의 무릎을 꿇리고 서 있는 것 모든 것들의 고개를 숙일 만큼의 비다. 시야가 어두워져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휴가를 내고 나와 함께 태국에 가는 형과 매일 매일 맛없는 파스타 만들기 기록을 갱신하고 있던 나는 촌스러운 북반구인 답게 쏟아지는 비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쳐다본다. 

싱가폴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그건 산업적으로는 해운운송의 중심국가라는 뜻이고, 관광객에게는 싱가폴을 기점으로 하면 어느 나라도 싸고 가고 쉽다는 뜻이다. 북쪽으로는 육로로(!)말레이시아에 갈 수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배타고 금방. 태국이든 필리핀이든 저가 항공(Budget airline)을 타면 싸고 쉽게 갈 수 있다.
4박 5일의 짧은 여정에, 체류지는 방콕으로 한정했다. 여행지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형인지라 내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계획이 있는 것 같은 얼굴로 결연히 태국 지도를 펼쳐본다.(형이 아무 계획이 없었다는 것은 호텔에 가자마자 밝혀진다.)
문명 국가 싱가폴도 이렇게 더운데 관광국인 태국은 얼마나 더울까. 눈물이 났다. 마음에 땀이 났다.

싱가폴은 세련되었다. 아마 적도 부근의 어떤 나라보다도 세련되었을 것이다. 관광객을 보아도 외국인을 보아도 그들은 관심이 없고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공항과 쇼핑몰은 친절하다기 보다 예의바르게 사람들을 맞는다. 하지만 세련됨을 가장한 그들의 무표정은 일본에서 느낀다는 서양인들의 섬뜩함 이상일 것이다.

대국 중국의 마지막 꼬리로서 적도에 다다른 싱가폴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정책상으로도 관광객들이 필요 할 것이다. 볼모로서, 면세 혜택과 화려한 소비문화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도시국가.

매일같이 싱가폴을 입에 올리고, 브로슈어와 광고에는 싱가폴과 머라이온의 상징이 끝없이 등장한다. 유교적 사회주의 사상을 기반에 두었음에도 자유무역에 선두에 선 싱가폴은 모순된 나라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에도 쏟아지는 비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 나라가 어울리는 땅이 있다면 그건 분명 강철의 침엽수와 거울같은 호수가 있는 겨울의 땅일 것이다.

여름 나라라는 이름은 아름답고 어설프며 더럽고 친절한 불교의 나라 태국에 좀 더 어울리는 것이리라.

문득, 수영이의 큰 딸이 생각났다. 싱가폴에서 태어나 싱가폴에서 자라난 3살 짜리 꼬마. 큰 이마와 선연한 눈매를 가지고 태어난 그 아이의 속을 알 수 없는 머리는 비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어렸을 때 내가 했던 것처럼 이마에 달라 붙은 머리카락을 문지르며 창가에 머릴 대고는 놀라움과 아련함으로 비를 바라보고 있을까.중국어와 한국어, 영어로 사고하는 그 아이는. 싱가폴을 고향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비를 볼 때 마다 느끼는 이 아련함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28일 밤 태국에 도착하다. 방콕의 스완나품 공항은 아름답지도 편리하지도 않았고 싱가폴보다 높은 기온의 방콕의 밤 바람은 뜨겁다. 하지만 한국이 아님에도 태국은 편안하다. 사방이 이방인이며 이방인들은 모두 미소를 짓는다. 현지인들 또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나는 이 친절함을 거부하기 위해 고독을 몸에 두르고, 밤을 걷는다.
그리고 한 번 더 그 작은 여자아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카레신사: 웃음은 강탈당하고, 유머감각은 납치당한 서른살. [황혼의 짝사랑]이라느니 [농락의 아이콘]이라느니 하면 구석에 숨어서 울기 시작한다.

트위터가 재미없다. 미안. 내가 재미없어졌다. 유머감각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유머감각이란 내 또다른 존재증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머감각 또한 내 후천적인 특질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웃겨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1학년때부터였다. 내가 하는 의미없는 중얼거림이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경험이었지. 그렇게 보이지 않았겠지만 유머감각을 단련하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도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실제로 노력은 별로 안 한 것 같다 미안.

그래서 그랬던 건 아니고, 이제까지 썼던 글을 정리해야할 것 같아서 티스토리를 열고 조금씩 글을 정리하려고 한다. 일단은 09년에 쓴 여행기부터, 그리고 북리뷰나 간단한 일기글들. 그리고 언젠가는 소설들을.
그래 아마 소설들을 올리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모니터로 보는 소설이란 정말 지독하게 재미도 없고 집중도 안되는 법인데 뭣하러 굳이 여기에 내 소설들을 올릴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제 한톨도 웃지 못하고 웃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뭔가 달라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 데 말이다. 하긴 어렸을 때 부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현실이 그보다 항상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현실은 가끔식 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안 좋았다.

글을 몇번 쓰고 지운다.
당신은 나쁘지 않습니다. 라고 쓰고는 다시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나쁩니다. 라고 쓴다.
그리고 그 두개를 비교하다. 또다른 문장을 쓴다.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이다.

블로그의 창을 닫고, 노래를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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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키 선생님께,

 

여름문안인사를 드리고 싶은 날씨입니다.
가본적은 없으나 일본의 여름이 이렇지 않을까 싶게 하늘이 파랗습니다. 선생님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곳은 선생님께서 싱가폴의 호텔에서 일하고 계실 때와 많이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북극이 그렇듯이 적도 부근의 나라는 달라지기 힘드니까요. 이렇게 끝없이 지속되는 여름이 있는 나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여름이 지속되는 한 아마 이 곳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계시던 그 때 그 대로의 풍경을 저도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선생님, 얼마 전 저는 지하철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여학생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 봤을 리는 없겠지만 보란 듯이 한국어 교재 프린트를 제 앞에서 들고 공부하는 모습에 저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수도는_입니다. 라느니. 저의 이름은_입니다. 라느니. 간단한 한국어 회화와 한국단어들이 있는 교재가 매우 귀여웠습니다. 어쩌면 제가 한국인이란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곳 사람의 말로는 제가 같은 동양인이라고 해도 굉장히 달라 보인다고 합니다. 키가 크고 하얗기 때문에 중국인으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말이라도 걸어봐야 했을까요. 어쩌면 열심히 하라고 응원이라도 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대 앞을 걸어 갈 때 아무리 두꺼운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다녀도 일본인인걸 모두 알아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려나요.

 

선생님은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시나요.

귀엽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어쩌면 이 곳은 일본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시게 되시나요.

저는 항상 세상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건방지게 외국이라곤 다녀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rpg에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결국 마을은 똑같은 텍스처를 사용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곳이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제 생각이 맞긴 했지만 제 생각이 틀리기도 한 듯합니다. 싱가폴의 번화가인 타운홀과 오차드 로드 일대를 걸어다니니 완전히 다르고도 비슷한 한국의 번화가가 생각나더군요. 세계적으로 확산된 자본주의의 구동방식에 알맞게 진화했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팔과 날개를 지닌 짐승들처럼 똑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도쿄, 서울, 싱가폴동아시아의 한 형제들.


선생님, 싱가폴 또한 한국의 여느 곳이나 다를 바 없는 땅이었지만, 동시에 이 곳은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제 주장이 맞다면 전 싱가폴에서도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하고 외로움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아야 했는데, 전 왠지 참혹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제가 완전히 흰 피부에 금발머리를 한 외국인이었다면 이 참혹한 기분을 이그조틱이라느니 하면서 웃으며 넘겼을텐데 나와 비슷하고도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곳에서 입안에 모래가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지도 모르겠군요.
화려한 쇼윈도와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소비의 천국에서 저는 아무래도 고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상실’이란게 뭔지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미련이 없어졌다고 생각한 한국 땅을 그리워하고 슬퍼하게 된 것이겠지요.


저는 어쩌면 영영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모든 눈물을 머금은 그 곳으로요.
봄의 꽃과 여름의 밤 가을의 달과 겨울의 공기.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한 저의 고향으로요. 제 몸 하나하나를 이루는 모든 것을 내주었고 또 그것을 모두 거둬갈 제 하나 밖에 없는 고향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정해진 수순이라면, 제가 이 여름 나라의 매일 밤을 오열하면서 보낸다고 해도. 결국은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지겠지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사람의 명운을 움직이는 것이 신도 개인의 의지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영혼이고. 결국 언젠가는 있어야 할 곳에서 고요히 잠들게 된다고 한다면요.

선생님, 이 곳의 밤은 아름답습니다. 바람이 불고 또 바람이 불어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제 자리는 없습니다.

 

2009년 현재, 싱가폴에는 빨간은행과 파란은행의 내전 중이다.

모든 ATM
은 빨간은행..즉 화교은행과 파란은행즉 대화은행 두가지 종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연적으로 모든 싱가폴인들은 저 두 은행 중 하나의 추종자로서 다른은행의 ATM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테러하고, 그 은행들의 크레딧 카드를 모아 집을 장식하거나. 응 그런 일은 없다. 미안하다.

두 은행은 어딜 가나 쌍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ATM도 항상 동수로 설치되어 있다. 씨티은행같은 글로벌해보이지만 소수세력은 발을 붙이지 못한다.(정말로 돈을 뽑으려면 시티홀에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 기묘한 붉은 색과 푸른 색의 조화는 뭔가 문화적인 특이현상을 관찰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한다. 어쨌든 한국인이 보기에 ATM에 말도 안되게 길게 줄을 선 싱가폴인들은, 어쩐지 외국인으로선 알 수 없는 종교의 신도들이라는 느낌을 준단 말이다. 그것은 ATM이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서나 부족하기 때문일까?
씨티홀 주변의 시티은행에 갔는데 거기도 ATM이 고작 4. 각 은행의 신도들은 서로를 향해 불신과 경계의 눈초리를 날리며 질서정연하게 돈을 인출해간다. 빨간은행과 파란은행 모두 자비로운 지배자는 아닌 듯. 씨씨티홀 ATM하나만 더 설치해도 좋지 않을까. 아니다 외국의 종교적인 문화에 너무 신경을 쓰면 지는거다.
한국에는 동네 슈퍼에 한 개가 있고 조금만 번화해도 6개에서 4개 정도가 갖춰져 있는걸 생각하면, 그건 싱가폴에선 독신에 가까운 무서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소중한 싱가폴 달러를 인출한다. 나는 빨간은행의 신도도 파란은행의 신도도 아니지만, 씨티은행의 신성한 ATM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신에게로 가는 단 하나의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신의 사도 ATM은 입을 벌리고 신의 은혜를 내뿜으시는데, 이 돈이 원래 내가 저축했던 돈이라는 은혜도 모르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오 신이시여. 나의 영혼을 현찰로 채우시사. 

 

이 빨간 은행, 파란 은행 얘길 해준 것은 내 오랜 친구인 여자아이(파란은행의 독실한 신자이심). 이젠 딸 둘의 엄마로 어쩌다보니 은근슬쩍 26일 오후에 만나게 되었다.

158번 버스를 타고 Aljunied역에 도착하고 녹색선 지하철을 타고 붉은선 Bukit Batuk역에서 내려 77번 버스를 타고서야 도착했다. 고생스러웠지만 보람은 있었다. 작은 딸은 유모차에 태우고 큰 딸은 손을 잡고 나타나서는 배시시 웃는데 예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예뻐진 것 같기도 하고 나보다 한 살 어리면서도 두 아이의 엄마라는게 기묘한 느낌을 준다. 2001년부터 알았던가. 내게 이젠 거의 없는 오래된 지인이다. 어찌어찌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 외국에 가서 까지 만날 정도가 되었다.

 

새침떼기 큰 아이와 기가 쏀 둘째. 어디선가 본 듯한 두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에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자기도 그닥 잘 걷는 것도 아니면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동생이 넘어질까 손을 꼭 잡고 놓치 않는다. 낯선 아저씨가 유모차를 끌자 동생을 데려갈까 무서웠는지 유모차를 쥐고 유모차에 질질 끌려가듯 따라간다. 엄마가 동생에게 밥을 먹이자 혼자 카스텔라를 먹고 있다가 콧노래를 부른다. 콧노래를 부르는걸 낯선 아저씨에게 들키자 자기도 모르게 새침떼기짓을 못하고 배시시 웃어버린다.
동생 손을 꼭 잡은 모습이 너무 뭉클해서 오래도록 마냥 쳐다만 보았다.

너는 앞으로 커서 빨간은행의 신도가 될지 파란은행의 신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동생을 언제까지나 사랑해줘야한다.

바보같은 글에 어떻게든 훈훈한 결론을 내려는 내 노력이 가상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맛있는 파스타는 무엇인가?

그것은 1672년 피렌체 지방의 행정관이었던 모씨가 암살당하기 직전 기다리고 있었던 파스타라고 한다. 죽기 전에 기다리던 파스타라니..그 얼마나 맛이 있을지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라는건 새빨간 거짓말.
이런 쓸데없는 역사적 연구에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과 인생을 위해 기도라도 하고 싶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맛있고 맛없는 파스타를 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걸 측정하는 게 있다면 26일 점심때 내가 만든 파스타가 분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을게 틀림없다. 이름은 파스타지만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싱가폴 시각 11 50, 비행기에서 내리니 여름 나라였다. 덥고 덥고 또 덥다. 이건 좀 시원한 거라는 얘기가 전혀 위안이 가지 않는다. 사방에서 63빌딩 수족관에서나 나는 냄새가 난다.
공기가 뜨뜻하고 무거워 분명 마른 땅을 밟고 있는데도 헤엄치는 것 같다. 말라있는 몸을 용서하지 못하는 싱가폴의 대기는 살아있는 인간이 실외로 나서는 순간 대기가 달라붙어 인간을 끈적하게 만든다.
하느님 맙소사. 사방이 반바지 반팔이며 검거나 젖어있다.(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건 정말 제일 선선한 시기라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발견하고야 만다. 하늘에 계신 피에르 가르뎅이시어 오뛰뜨 꾸뛰르에서 이들을 보우하사)
이 지옥에 대해 단테가 읊은 적이 있던가. 싱가폴 창이공항 1터미널 입구에 뭔가 명패가 붙어있는 걸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온 놈들아 이 문을 나서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형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 싱가폴 여행자체가 형이 싱가폴에 주재하고 있으니, 숙박비는 필요 없잖아?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거니까. 
하지만, 이렇게 형은 덧붙인다. "나는 회사에 나가야 되니까, 알아서 잘 지내야지."
난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여행이었어. 라고 덧붙인다.
형은 내 엉덩이를 찬다.
 

택시를 타고 형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하여 빈 방에 짐을 푼다. 내일 밤에 부기스로 와. 교통카드를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는 낙서를 한 싱가폴 지도를 던져준다. 스케줄은 니가 짜야지. 니가 알아서 해.
하하 고마워 형.
잘자라는 인사대신 나는 형의 엉덩이를 찬다.

형이 살고 있는 이 곳은 정말 아름답다. 싱가폴은 밤이 낮보다 훨씬 아름답지만 이 곳의 낮은 고요하고 또 아름답다. 나무를 심고 탁트인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면 그 어디라도 아름답지 않기는 힘들겠지만 워터프론트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일대의 공원은 싱가폴 인들의 자부심과 고민이 스며들어 우리나라의 강변 공원들 보다 훨씬 훌륭하다.

강변을 따라 배기 팬츠를 입은 서양인이 러닝을 하고 있고 강에는 선생님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중학생들이 서로의 카누를 뒤집고 있다. Pebble bay라는 위대한 개츠비에 나올 것 같은 분홍색 맨션이 서 있고 통행을 제한한다는 팻말 너머로 다이빙을 하는 꼬마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형의 냄비를 꺼내, 형의 파스타를 삶는다. 주의깊게 시간을 재고 삶아진 면을 맛본다. 냉장고에서 그럴듯한 크림소스를 찾아 데우고, 비싸기 짝이 없는 블루치즈를 대충 갈아 넣는다. 파란 접시를 꺼내 파스타 면을
딱 나 외에는 아무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어 보이는 파스타는 아무런 반전이 없이 정말 맛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이 없는 파스타를 한줄기 한줄기 놓치지 않고 먹는다. 너무 많이 한 파스타는 점점 불어터져 입안에 넣으면 넣을 수록 숨이 막히고 따로 노는 크림소스는 토할 것 같은 냄새를 내지만.
나는 먹어야했기에 먹었다. 내가 항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너를 보내는 이유가 계속 살아가기위해 있는 것처럼.

 

머릿속으로 편지를 썼다. 아무도 받을 일 없는 편지를. 여긴 싱가폴이고 한국과는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져있는데 내 마음은 결국 한국에 있다. 아무리 걷고 기다려도 내 마음은 바다를 건너지도 산을 넘지도 않고 그냥 한국에 덩그러니 서있다. 눈을 감고. 내 마음이 내게로 돌아오길 기다린다.

나는 지금 홍콩 공항을 걷고 있다.

11 25일 홍콩시간 7 55분에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인 CX715편의 게이트가 2번이기 때문에, 나는 1번 게이트부터 약 80번 게이트 까지 걸어서 왕복하는 중이다. 물론 내가 세계에서 모인 보행자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연습장에 고개를 쳐 박은채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이 글을 쓰는 게 30분 후 2번 게이트 앞의 의자가 되었건 12시간 후 형의 넷북으로 되었건 내가 정말 글을 쓰고 있는 것은 홍콩공항을 맴돌고 있는 지금의 나.
머릿속의 글을 옮길 땐 항상 원래의 글보다 비루해지고 보잘 것 없어지기에 난 내 글에 실망할 게 틀림없다.
뭐 어떤가 세상에 실망할 일이란 원래 넘치도록 많다. 나는 거기에 문장 하나를 더 할 뿐이다.

 

홍콩에 도착하기 47분전, 무심코 본 창 밖의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린다는 의지 외엔 모두 잃어버린 미친 화가가 흩뿌려놓은 듯한 구름 위로 황금색이 천천히 스며든다.
바다가, 그리고 하늘이 끝없이 길다. 숨을 빼앗긴 듯 나는 눈만 크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되면 사람은 울게 된다더니, 나는 오늘에서야 그 말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홍콩에 도착하기 13시간 전, 오늘의 아침.

잠에서 깼을 때 어제 마신 맥주에 속이 더부룩했다. 목은 지독하게 아팠다. 굴뚝에 고개라도 박고 있었던 걸까.
세상 대부분에게 버림받은 비참한 기분으로 창을 열었을 때, 하느님 맙소사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론 뜻하신 바는 아니겠지만 하느님, 이제 곧 우기인 나라로 갈 저에게 괜찮은 날씨 정도는 선물해 주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늘의 처음이자 오늘의 마지막은 아닐, 울컥하는 감정이 솟았다.

그 어떤 행복한 숲 속의 아기곰이라고 해도 이겨내지 못할 우울증이 엄습했다. 짐은 제대로 싸지도 못했고 분리수거도 안했고 캐리어는 어머니의 표범무늬 캐리어라 내가 들으면 게이처럼 보일게 틀림없고
뭐 하나 제대로 되어있는 게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렸다.

 

원래 그리 내키지 않는 여행이었다. 시기가 너무 늦었고 애매했다. 알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았고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 꼬여있는 인간관계와 장래문제를 억지로 정리하기 위한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올해 내내 제대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너무 멍청하게 행동하거나 소심하게 대응했고 솔직하지 못했다.
(항상 그럤던 것처럼)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미련 때문에 또는 감정 때문에 뻔히 알 고 있는 그런 것에 대해서도 실수를 저질렀다. 특히 가을에 와선 그게 더 심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 없이 멍청이처럼 혀를 빼물고 내 앞에서 많은 것들이 지나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올해 내 손으로 직접 버려버린 소중한 것들이 도대체 몇 개 인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리웠다. 내가 버려버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버린다고 해도 결코 버릴 수가 없었던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많았다.

 
홍콩에 도착하기 10시간 전

메일을 보냈다는 말에 전철을 내려 게임방에서 메일을 출력했다. 전자 문서로는 볼 시간이 없었고 싱가폴에 도착 할 때 까지 메일의 내용을 궁금해 하고 싶진 않았다.
공항철도 안에서 메일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나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한 번을 읽고 두 번을 읽고 그닥 길지 않은 메일을 35분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지만 나는 거기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감정도, 의미도 그 무엇도 읽히지 않았고 내용을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단순히 내가 바라는 내용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사용설명서만큼의 감정도 읽어내지 못하겠다. 항상 나 자신보다 훨씬 나은 대답을 내는 내 직감도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침묵.

이 지긋지긋한 기분에 어울릴 만한 침묵.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모든걸 바라보고 먼저 도망쳐버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침묵.

 

홍콩에 도착하기 3시간 15분 전, 한국시간 3시 15분

그렇게 난 비행기를 탔다. 이해 할 수 없는 편지 한 통과 내가 버린 소중한 사람들 몇 명과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남기고는내가 홍콩에 도착하는 것은 홍콩시간 5 30.

 

11 25일 난 이날 한 방울도 울지 않고 조금도 웃지 않았다.

인간이 이렇게나 슬픈데 주여人間がこんなに哀しいのに主よ、
바다가 너무나 파랗습니다. 海があまりにも碧いのです.
엔도 슈우사쿠遠藤周作「沈黙」の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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